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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 문서는 한반도 전반에서 나타나는 자유주의, 즉 Liberalism in Korea에 대해 다룬다. 대한민국의 자유주의는 개별 문서가 존재하므로, 개화기,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로는 이북 지역의 자유주의를 위주로 다룬다.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는 대한민국이며 북쪽 정권 자체가 불법정권으로 간주된다.[1] 이에 따라 남한(대한민국)에서는 "한국","한반도"는 포괄적인 (영어로써)"Korea" 지역의 전체를 대변하는 의미로도 사용된다.[2] 그러나 나무위키에서 한국은 대한민국으로 넘겨주기 되기 때문에 '한반도의 자유주의'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2. 역사
2.1. 광복 이전
조선 시대 인물 허균이 자유주의를 주장한 적은 있었지만 동시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으며 이후 허균이 역적이 되면서 잊혀졌다. 허균의 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내용은 허균의 사상 참조.조선 말기나 대한제국 시기, 즉 개화기 시기에 자유주의적 단체가 생겨났었다. 온건개화파나 개화반대파가 주도한 수구당과 경쟁했던 개화당이 자유주의 당파였다. 독립협회 등도 기존의 소중화적 봉건주의에 저항한 반청 노선의 근대주의, (고전적인) 자유주의를 보였다.
이후 한반도에서는 자유주의가 일제강점기 당시 들어온 사회주의에 밀려서 20세기엔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았다. 이는 역사와도 관련이 있는데, 당시 자유주의자들 상당수가 일제의 실력양성론에 동조한 과거로 인해 크게 세력을 떨치지 못하였다.[3] 하지만 정상적인 자유주의자라면 동남아시아, 중화민국, 미국 등 주변국 국민들의 생명권과 재산권을 빼앗는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했을 것이다.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인들도 개인의 여러 자유를 침해받고 있었다만 그런 주장을 대놓고 펼쳤다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을 받았을 것이다. 특히 3.1운동의 경우 사회주의적인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유주의적,민족주의적 독립운동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2.2. 광복 이후 이북 지역
해방 이후에도 자유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는 중도우파[4][5] 인물들은 극우와 극좌의 물리적 대립에 견디지 못하고 몰락하였다. 조선로동당 일당독재 체제가 수립된 이후 북한에서 '자유주의'자는 반동주의자로 몰려서 심하게 탄압받고 있다.1945년 창당된 조선민주당은 이념적으로 보수주의에 경도된 정당이기는 하지만 이북 지역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마지막 자유주의[6] 정당이었으나 워낙 심하게 탄압당한 나머지 남한에 와서 극우 세력으로 흑화한 케이스도 있었다. 이후에도 이북에 남아 독일 자유민주당(동독)처럼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성향으로 전향한 이들조차도 김일성 반대파로 있다가 8월 종파사건 시기에 전부 숙청당한다. 현재 조선민주당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조선사회민주당의 경우 일반적인 보수주의,자유주의적 성격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공식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우나 실질적으로는 주체사상에 기반한 독재정당인 조선로동당의 들러리 역할이나 하는 구색정당에 불과하다.
8월 종파사건 이후 김일성파가 이북 지역 정치를 완전히 장악한 이후, 북한에서 자유사회주의를 포함한 자유주의 활동을 하거나 지지의사를 밝힌다면 정치범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21세기에 이르러 이북 지역에서 탄압받은 자유주의자들은 타국에서 2019년 자유조선 임시정부를 세웠다. 아무래도 북한 당국에 의해 신변위협이 있는지라 정부 청사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체성을 가지지 않고, 이북 지역의 국가 정체성을 가진다.
3. 정당
3.1. 광복 이전
3.2. 광복 이후 이북 지역
4. 인물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인물은 기술하지 않는다.4.1. 광복 이전
- 허균 - 사실상 한반도 최초의 인본주의적 자유주의자로,[10]아래의 인물들과는 달리 명나라의 탁오 이지의 사상과 유교, 불교, 도교, 천주교 등 다양한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했다. 이이화는 허균을 "인간을 사랑한 사람이다. 차별 없는 세상, 약자가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라고 평가했다. # 평범한 백성이라도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불합리한 현실과 맞설 수 있다고 말했으며, 고귀한 집안이든, 미천한 집안이든, 출신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인재가 되어서 재능을 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남녀간의 정욕은 하늘이 준 것이고, 윤리와 기강을 분별하는 일은 성인의 가르침이다. 하늘은 성인보다 높으니, 차리리 성인의 가르침을 어길지언정 하늘이 준 본성을 거스를 수는 없다."라고 말하면서 조선 시대에 성해방을 주장, 당시 사대부들에게 이단으로 몰렸다.
- 나혜석 - 자유주의 페미니스트
- 서재필 - 반공주의자로, 미국식 자유주의자에 가까웠다. 다만 일제시대를 기점으로 한국인으로써의 정체성보다 미국인으로써의 정체성이 더 강했었는지라 다소 애매하다.
- 안창호 - 사회민주주의적/공화주의적 자유주의자에 가까웠다.
이승만의 경우 조선 말기에는 개화당, 독립협회에 가담하는 등 급진개화파 청년이었기에 자유주의/보수주의 개념이 서구에서조차 시대에 따라 상대적임을 감안했을 때, 최소한 이 시기에는 자유주의자였다고 볼 수 있다.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써 집권한 이후부터는 권위주의적 우파, (근대적,반공적)보수주의성향을 보였기 때문에 자유주의자라고 볼 수 없다.
4.2. 광복 이후 이북 지역
한국전쟁 시기 납북되어 북한에 있게 된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조선 관련 인물들은 ☆ 표시.- 리 월로스키☆ - 엄밀히 따지면 미국 시민권자이긴 하지만 자유조선 관련 인물로, 당적이 민주당이다.
- 반디 - 북한의 반체제 작가. 북한판 솔제니친이라고 불린다.[11]
- 안재홍◇
- 에이드리언 홍 창☆
- 이기홍☆
- 조만식
- 조소앙◇
- 크리스토퍼 안☆
5. 사건
1945년 이후 남한에서의 사건들의 경우 대한민국의 자유주의 문서 참조.- 갑신정변 (1884년)[12]
- 독립협회/독립신문 창설 (1896년 ~ 1899년)
- 3.1 운동 (1919년)[13] - 3.1운동은 우드로 윌슨의 자유주의 이상으로 탄생한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았고, 사회주의와 큰 연관성이 없었다. 그러나 이후 일어난 6.10 만세 운동은 사회주의/공산주의자들도 상당 부분 주도해서 자유주의에 포함시키기 애매하다.[14]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 1948년)
- 광복 (1945년)
- 8월 종파사건 (1956년) - 김일성이 숙청한게 자유주의라는건 당연히 아니고, 북한 역사에서 유일무이하게 공개적으로 김일성을 비판하고 김일성의 권력에 도전했던 사건이었다.
- 자유조선 설립 (2019년)
6. 같이 보기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자유조선 임시정부까지 모두 포함.[2] 이로 인해 영어 위키백과의 Korea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한국으로 등재되어 있으나,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조선'을 의미하는 朝鮮,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도 마찬가지로 朝鮮으로 등재되어 있다.[3] 자유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건 민권(자유권)이지 독립이 아니었을 것이므로, 크게 이상하지는 않다. 지지받는 것과는 별개로.[4] 해방 직후의 좌우구도는 보수화된 2020년대 현재 남한의 좌우구도와 달랐으며, 공산주의 세력의 영향 때문에 '중도'(중도우파~중도좌파)세력의 기준점이 좌경적이었다. 따라서 해방 직후의 '자유주의'는 범우파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해방 직후 좌우합작운동을 주도했던 이들 중 여운형같은 중도좌파들은 사회민주주의,민주사회주의자들에 가까웠던 반면에 조만식, 안재홍, 김규식같은 자유주의자들은 중도우파에 가까웠다.(다만 이들은 온건 보수주의자라고 여겨지기도 한다.)[5] 어디까지나 해방 직후 시기의 기준이다. 이후 여러 정치적 격변과 지형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2020년대 현재 대한민국 정치 상황에서 자유주의자들은 상대적으로 범좌파에 가까워져, 완전한 중도라고 보기는 어렵다.[6] 정확히는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지향했다는 의미이다. 언론의 자유와 다당제 민주선거가 보장되는 체제 말이다. 조선민주당의 강령 자체는 남한의 보수정당인 한국민주당보다도 더 보수적이었다.[7] 다만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전에는 이념 구분히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구분은 어렵다. 오늘날의 자유주의(liberal)에 그나마 가까운 정당만 기술한다. 자세한 계보는 틀:한국의 정부수립 이전 정당을 참조하라.[8] 안창호의 조직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성향을 보였다.[9] 이후 성향은 뒤섞여버린지라 불분명하며, 계보를 타고 내려간 후계 정당들(대한독립촉성국민회→자유당이나 한국민주당)은 보수주의 정당에 가깝다.[10] 허균 이전에도 허균과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주장한 사람은 있었겠지만 개화기 시기 외국에서 자유주의가 들어오기 전에 한반도에서 자유주의와 가장 근접한 사상을 주장한 사람은 허균이 처음이다.[11] 다만 솔제니친은 러시아의 자유주의자가 아니라 러시아의 보수주의자였다.[12] 출처: 동양에서의 자유주의 수용. 기초문화자료센터. 2000-06-11.[13] 출처: "3·1 운동, 성·종교·직업 구분없어…민주주의 일대 전환". 연합뉴스 2018-11-05[14] 출처: 공산당이 했다? 우리가 몰랐던 6.10 만세운동의 의미. 오마이뉴스. 2019-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