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5 10:21:03

가이즈카 멘디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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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前 축구선수
라 리가 앰배서더
파일:Gaizka Mendieta.jpg
이름 가이즈카 멘디에타
Gaizka Mendieta
본명 가이스카 멘디에타 사발라
Gaizka Mendieta Zabala
출생 1974년 3월 27일([age(1974-03-27)]세) /
스페인 바스크 지방 빌바오
국적 스페인 파일:스페인 국기.png
신체 181cm
직업 축구선수(윙어 / 은퇴)
소속 선수 CD 카스테욘 (1991~1992)
발렌시아 CF (1992~2001)
SS 라치오 (2001~2004)
FC 바르셀로나 (2002~2003, 임대)
미들즈브러 FC (2003~2004, 임대)
미들즈브러 FC (2004~2008)
국가대표 40경기 8골(스페인 / 1999~2002)

1. 소개2. 선수 경력
2.1. 어린 시절2.2. 발렌시아 시절 : 박쥐군단의 영웅2.3. 라치오 시절 : 희대의 먹튀2.4. 미들즈브러 시절
3. 은퇴 후 삶4. 수상
4.1. 클럽4.2. 개인

1. 소개

가이즈카 멘디에타는 스페인의 前 축구 선수이며 현재는 DJ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90년대 발렌시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최고의 윙어였다. 왕성한 활동량과 탁월한 개인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래서 그가 라치오로 이적했을 때만 해도 식자들은 그가 세리에A를 부흥시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어찌 알았겠는가. 라리가 최고의 윙어가 희대의 먹튀로 전락할 줄이야! 그는 라치오에서 그야말로 아무것도 못하는 선수로 전락했다.

플레이의 특징은 페널티 킥을 정말 잘 찬다. 특히, 몸과 발이 따로 노는 페이크 슛이 압권이다.

이름때문에 한때 국내에서 버스를 타면 '맨 뒤에 타'는 선수라는 개드립이 있었다. 뒤 나 탈래 드립도 있다. 뒷칸이요? 실제로 차구차구 for kakao에서는 라이센스를 못따 이름이 맨뒤에타가 되었다.

2. 선수 경력

2.1. 어린 시절

멘디에타의 아버지 안드레스 멘디에타는 왕년에 지역 클럽인 카스테욘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그는 아들을 일찍부터 축구 유스팀에 포함시켰고 멘디에타는 곧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선보이며 1991년 17살의 나이에 카스테욘과 정식계약을 맺었다. 이후 멘디에타는 카스테욘에서 한 시즌 동안 16경기를 출장했는데, 비록 골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그의 탁월한 기량은 스카우터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1992년, 발렌시아는 멘디에타를 전격 영입했다.

2.2. 발렌시아 시절 : 박쥐군단의 영웅

파일:external/images.performgroup.com/gaizka-mendieta_1m1eueixytpfw1pkyd9ug8cnrx.jpg



멘디에타는 발렌시아에서 레전드급 활약을 펼쳤다. 그가 처음으로 진가를 드러낸 시기는 1997-98 시즌이었다. 그는 30경기에 출전하여 10골을 기록했고 코파 델레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그는 매 시즌 10골 이상을 꽃아넣었고 대단한 활동량과 개인기를 선보이며 리그를 씹어먹었다. 또한 1998년에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달성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대활약하여 발렌시아를 2000년과 2001년 모두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시키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두번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이렇듯 그는 발렌시아에서 대단한 활약을 선보이며 세간의 찬사를 받았다. 2000년에는 2000년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수많은 빅클럽들은 그를 영입하고 싶어했다. 2001년 이탈리아의 축구 클럽 라치오가 4800만 유로를 지불하고 그를 전격 영입했다.

2.3. 라치오 시절 : 희대의 먹튀

파일:external/sport365.hu/gaizka_mendieta.jpg

그가 라치오에 처음 입단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가 라리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세리에 A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선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는 월드 클래스에서 아무 것도 못하는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는 리그 20경기, 유럽 대회 7경기에 출전했지만 단 한 개의 골과 어시스트도 기록하지 못했다. 무릎 부상을 입기도 했고 피지컬이 그리 중시되지 않는 스페인에서 피지컬이 중시되는 이탈리아로 가는 바람에 적응을 실패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그의 갑작스런 몰락을 모두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현재도 그가 이탈리아에서 참혹한 실패를 맞이한 것에 대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무튼 4800만 유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라치오에 입단한 그는 전혀 몸값을 해주지 못했고 라치오는 그 많은 돈을 다 주지 못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되어 몇몇 선수들을 발렌시아에 공짜로 넘겨주는 대가로 일부 금액을 면제받아야 했다.[1] 이로 인해 라치오의 전력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현재도 라치오는 멘디에타 영입으로 인한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후 멘디에타는 2002-03 시즌에 바르셀로나로 임대 이적하여 리그 33경기 4골, 유럽 대회 13경기 2골을 기록하는 등 총 47경기 6골을 기록했는데 여러모로 발렌시아에서의 전성기 때와는 너무도 격차가 심했기에 사람들은 왕년의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의 몰락을 가슴아파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반론을 하자면 멘디에타가 비록 기대만큼의 활약을 해주진 못했지만 멘디에타의 부진이 라치오의 몰락을 가져왔느냐 하는것이다. 오히려 그 화살은 라치오의 프런트에 돌려야 한다. 애초에 라치오는 방만한 경영으로 2000년부터 서서히 재정이 악화되어 위기에 쳐해있었고 멘디에타가 영입당시엔 파벨 네드베드를 유벤투스로 후안 베론을 맨체스터로 그리고 1년뒤인 2002년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 알렉산드로 네스타를 AC밀란으로 원치 않은 이적을 시켜야 했을만큼 라치오의 재정은 최악이었다. 게다가 그 당시엔 선수들에게 주급으로 지급할 현금도 없어서 미지불 상태였었다. 그리고 위에 언급 되어 있는 만큼 라치오는 멘디에타 이적료를 분할로 지급하다 재정이 부족해 지급을 하지 못하고 팀 내 선수들을 대신 트레이드 시키는 방향으로 이적을 마무리 지었을 정도.

그런 상황에서 고액연봉자를 정리하고 선수를 내보내어 자금을 확보하거나 기타 비용을 줄이는 등 어떻게든 극복방안을 생각 하지 않고 오히려 무리하게 선수를 영입하다가 휘청거리게 만든 라치오의 경영진이 잘못이지 그걸 멘디에타에게 뒤집어 씌우는건 말이 안될뿐더러 비겁한 짓이다.

2.4. 미들즈브러 시절

2003-04 시즌, 멘디에타는 미들즈브러로 임대 이적하여 31경기에 출전하여 어느 정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후 미들즈브러는 2004년 여름에 그를 자유계약으로 영입하여 주전 윙어로 기용했다. 그러나 그는 미들즈브러에서의 생활 내내 무릎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도 그는 간간히 나올 때마다 어느 정도 활약을 보여줬고 2008년 5월 13일에 은퇴를 선언했다. 미들즈브러의 멘디에타가 보여준 가장 유명한 활약상은 아무래도 2005-06 시즌 혼자 두 골을 쓸어담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4-1로 침몰시킨 사건일 것이다.

3. 은퇴 후 삶




그는 은퇴 후 가족들과 함께 미들즈브러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간간히 축구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2009년부터 DJ로서의 활동도 행하고 있다.

2017년 여름 바르셀로나와 맨유 출신들의 레전드 매치에 바르사 소속으로 참여하며 오랜만에 필드에 모습을 비췄다.

4. 수상

4.1. 클럽


1. 발렌시아

유로파 인터토토 컵 우승 : 1998년

코파 델 레이 우승 : 1998-99 시즌

슈퍼 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 1999년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 2000년, 2001년

2. 미들즈브러

리그 컵 우승 : 2003-04 시즌

4.2. 개인


UEFA Club Football Awards: Best Midfielder 1999–2000, 2000–01

ESM Team of the Year: 2000–01


[1] 이 때 발렌시아로 넘어간 선수가 스테파노 피오레, 베르나르도 코라디였는데 다행히(?) 이들도 모두 이탈리아 국가대표 경험까지 있는 수준 높은 선수였음에도 발렌시아에서 모두 먹튀가 되어 라치오는 결과적으로 복수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