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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쌀밥 요리. 스페인식 볶음밥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조리법을 보면 지은 밥을 가지고 기름에 볶는 과정은 전혀 없고 철판밥이나 돌솥밥과 유사하게 생쌀을 넣고 볶은 재료와 육수를 넣어 끓여서 짓는 음식이다.[2]
쌀 재배가 활성화된 발렌시아 지방에서 먹던 향토음식이었지만 일찍이 스페인 각지로 퍼져나가면서 다양한 변종이 생겼고 지금은 대표적인 스페인 요리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음식점은 물론이고 동네 바 같은 곳에서도 점심식사용 메뉴(타파스)로 만들어 팔 정도다. 아시아의 밥맛과는 좀 다르지만 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서 한국인들은 대부분 잘 먹을 수 있다. 피자헛에서도 판매한다.
해외에 가장 많이 알려진 스페인 요리지만 정작 현지인들이 생각보다 자주 찾는 음식은 아니다. 밥을 이용한 요리라는 것도 그렇고 국외와 국내의 위상 차이를 봤을 때 한국으로 치면 딱 비빔밥과 비슷한 포지션이라고 볼 수 있다. 해외에서는 비빔밥이 마치 한국 요리를 대표하고 한국인들이 매일같이 즐겨 찾는 음식인 것처럼 소개되어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국밥이나 삼겹살, 찌개류의 입지나 접근성보다 못 미치는 메뉴가 비빔밥이다. 파에야나 비빔밥이 현지에서 인기가 없다는 게 아니라 해외에 알려진 것에 비하면 정작 현지인들이 일상적으로 그렇게 자주 찾는 음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2. 역사
본래 이베리아 반도가 이슬람을 믿는 무어인들의 통치를 받던 알 안달루스 때 무어인들이 즐겨 먹던 이슬람식 쌀 요리인 플라우(Pilav, 필라프)를 현지식으로 변형한 음식이다. 당시 사용한 조리기구를 '파에야'라고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했는데 대략 한국의 "돌솥밥"과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쌀이 자라는 환경으로는 발렌시아가 최적이었기 때문에[3] 발렌시아의 파에야가 원조로 취급받는다. 발렌시아의 이웃 도시인 바르셀로나에서도 많이 만들고 판다.굳이 말하면 아랍 요리 혹은 이란 요리에서 나온 음식이기 때문에 쌀에 껍질콩 및 잠두콩, 닭이나 토끼고기, 이따금 식용 달팽이 정도만 넣어서 만들어 먹었으며 사순절 기간이나 점심 때 새참으로도 널리 먹었다. 아랍에서 기원한 향신료인 사프란을 첨가하는지라 밥알이 노랗게 물든 것이 특징이다.[4]
다만 사프란이 워낙 비싼 탓에[5] 스페인 현지에서도 사프란 대신 강황이나 안나토 등의 대체품을 쓰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카레 가루를 쓰기도 한다. 역전 야매요리에서도 카레 가루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양 조절에 실패하면 카레 향이 세져서 제 맛이 나지 않으니 적당히 색이 날 정도만 써야 한다. 이와 비슷한 유럽 음식으로는 사프란 향만을 극대로 쓴 이탈리아 요리의 리소토 밀라네제(Risotto Milanese) 정도이다. 다만 항목을 참조하면 알 수 있듯이 리소토는 생쌀을 버터나 올리브유에 볶은 뒤에야 육수를 부어서 익힌다.
하지만 해외에 많이 알려진 파에야는 해산물을 듬뿍 사용한 파에야 데 마리스코(paella de marisco)다. 비교적 소박한 발렌시아풍 파에야가 어업이 흥하던 카탈루냐 같은 이웃 지방에 유입되면서 자생했는데 고기 대신 새우나 가재, 홍합, 바지락, 아귀, 오징어 등을 사용하며 채소 종류도 녹색, 흰색 채소를 쓰는 발렌시아식과 달리 피망/파프리카, 양파, 마늘, 당근, 브로콜리 등을 듬뿍 사용하기 때문에 색감이 훨씬 강렬하고 맛도 자극적인 편이다.
그래선지 도리어 카탈루냐의 해물 파에야가 그냥 파에야고 기존 발렌시아식이 '파에야 발렌시아나'처럼 파에야가 파에야로 불리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발렌시아 사람들은 자기네 식이 아닌 파에야를 파에야가 아니라 아로스 데 마리스코(arroz de marisco)처럼 그냥 '해산물 쌀밥'으로 치부할 정도다.[6] 샴페인과 스파클링 와인의 구분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사실 파에야 데 마리스코가 널리 알려진 이유는 원조 파에야에 들어가는 재료가 국가에 따라 생소하거나 거부감을 보일 수 있는 것들이 많아 그렇기도 하다. 당장 한국에서도 발렌시아식 파에야를 제대로 재현하기는 어렵다.
한창 잘 나가던 시절 스페인이 거느리던 식민지였던 남아메리카(페루, 에콰도르, 파라과이, 볼리비아 등)와 멕시코, 미국 남부, 카리브 지역(쿠바, 도미니카 외), 일부 북아프리카, 필리핀 지역에도 널리 퍼졌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도 쌀 혹은 토종 작물을 사용한 파에야와 유사한 음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만 명칭은 파에야가 아닌 경우도 많다.
적도 기니 역시 과거 스페인의 식민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이 시기를 통해 파에야가 전해졌으며, 주로 닭고기로 만든 파에야를 많이 먹는다.
3. 조리
파에야에는 장립종(인디카), 단립종(자포니카) 모두 사용되며 스페인 본토에서는 '봄바'라고 불리는 단립종으로 만든 것을 제대로 된 파에야로 보지만[7] 처음부터 생쌀을 넣고 볶는지라 식감은 오히려 장립종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찰진 볶음밥 맛을 기대하고 한 입 먹었다가 꼬들꼬들함을 넘어 심이 씹히는 서걱서걱한 식감[8] 때문에 식겁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맛은 (가장 잘 나가는 해물 파에야를 기준으로) 대체적으로 횟집에서 파는 매운탕(전혀 맵지 않은 것)을 다 먹고 난 다음 꼬들꼬들한 밥을 살짝 볶아먹는 듯한 느낌이다.파에야 발렌시아나를 만드는 법을 담은 영상. 만드는 방법 자체는 간단하지만 밑준비 단계에서 손이 많이 가는 요리다.
여러 명이 먹기 전에는 밥에 자기가 먹을 양만큼 숟가락으로 선을 긋기도 한다고 한다.
4. 식당 요리
이 요리의 특성상 1인분을 만드는 게 거의 불가능하므로 접시에 덜어주는 형태가 아닌 이상 1인분 주문이 불가능한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혼자 먹으러 가는 경우 식사량이 많지 않으면 주문하기 좀 난감한 요리이기도 하다. 해결책이라면 테이크아웃 파에야를 이용하든지[9], 뷔페식으로 운영되는 식당을 찾아가든지, 아니면 그냥 2인분 시켜서 먹고 남은 걸 싸달라고 하면 그만이다. 스페인에서는 2인분에 25~50유로 정도다. 별도로 주문해야 하는 음료까지 감안한다면 배낭여행자가 부담 없이 찾을 만한 메뉴는 아니다.사실 현지 식당들은 점심 및 저녁용으로 한꺼번에 대량으로 만들어 놓고 팔기 때문에 1인분이라도 충분히 주문할 수 있다. 다만 스페인이 관광지로 개발된 후 메뉴에는 파에야가 있어도 Paellador, Paellero 같이 외부 회사 공장에서 나온 재료만 합쳐 파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아무래도 보급형이라 맛이 떨어지니 주의를 요한다.
한국에서도 이태원동이나 몇몇 곳에 있는 스페인 전문 레스토랑에서 스페인 현지인 주방장이 만들어 파는 경우가 있는데 값은 2015년 기준으로 2만원이 넘고 홀로 먹기에는 양이 많다. 가급적 여럿이 가서 시켜먹는게 이득이다. 김가네에도 빠에아새우볶음밥이라는 메뉴가 있다.
한때는 코스트코에서 사먹을 수 있었으나 언제부턴가 종적을 감췄다. 예전에 애슐리 클래식에서도 유러피안 스타일의 파에야라고 나온 적이 있었다가 사라졌다.
5. 종류
- 파에야 발렌시아나(paella valenciana)
표준 파에야로 주재료로 토끼고기, 달팽이, 잠두콩, 껍질콩, 마늘, 양파가 들어간다. 재료 특성상 달팽이는 제외되는 경우가 있고 토끼고기 대신 닭고기를 넣는 경우가 있다.토끼 대신 닭닭고기를 넣는다면 육수도 양파와 닭으로 낸 후 그 닭을 그대로 요리에 사용한다.
- 파에야 데 마리스코(paella de marisco)
해산물 파에야. 보통 홍합, 새우, 오징어 3종류가 들어간다. 여기서 해산물 종류가 더 추가될수록 가격이 올라가는 게 일반적이다.
- 파에야 믹스타(paella mixta)
발렌시아나와 마리스코를 섞은 것.
- 먹물 파에야
오징어가 주재료인 파에야. 해산물 파에야의 연장선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간혹가다 새우나 조개를 넣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얘는 오징어 파에야인 만큼 먹물을 넣어서 그런지 색깔이 까매서 맛은 있지만 먹물파스타나 먹물리조토마냥 입안이 전체적으로 다 검은색으로 물든다.
6. 조리기구
원래 파에야를 만드는 팬을 파에야라고 부른다. Paella라는 말 자체가 발렌시아 단어인데 팬(pan)을 나타내는 고대 프랑스어 paelle에서 파생되었으며 라틴어 patella도 유사하다. 가끔 파에야 팬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으나 이는 엄밀히는 잘못된 표현이고, 주로 영미권에서 쓰이는 명칭이다.스페인어로는 paellera라는 표현도 paella와 혼용하기도 하며, 코미디쇼 Ratones Coloraos에서 El Risitas로 유명한 Juan Joya Borja가 자지러지게 웃는 밈의 출처를 보면 제목이 "Las Paelleras"로 적혀 있다.
[1] 영어식으로 '파엘라'(과거의 스페인어 발음은 파엘랴(/paˈeʎa/)에 가까웠다. 요즘은 나이 많은 사람이 아닌 이상 이렇게 발음하지 않는다.)라고 음역되기도 하지만 영미권에서도 파에야는 스페인 요리로 여겨 스페인어 발음대로(ll이 붙으면 반모음이 난다.) 부르므로 그냥 오역이다. 외래어 표기법 상 '파에야'로 표기해야 하지만 실제 발음은 '빠에야'에 가까우며 한국 레스토랑에서도 대부분 빠에야라는 이름으로 판매한다.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 1장 제 4항에 따르면 파열음 표기에는 원칙적으로 된소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해당 언어 내에서 된소리 발음과 거센소리 발음이 음운적으로 명확히 구분되어 이를 차별적으로 기술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된소리 사용을 허용한다. 예를 들어 베트남어 b는 ㅂ, p는 ㅃ, ph는 ㅍ로 표기한다.[2] 물론 식재료로 들어가는 토끼고기와 닭고기 등 육류와 해산물의 영향 때문인지 조리 과정에서 육류와 해산물에서 나오는 기름이 밥에 스며들기는 한다. 이탈리아 요리의 리조토와도 비슷한 부류의 음식으로 여기거나 둘을 동일시하기도 하는데 이탈리아 전통 리조토는 올리브유 또는 기름에 양파 또는 마늘향을 입힌 향유에 생쌀을 그대로 넣어 먼저 볶아내는 과정을 거친 뒤 육수와 와인(선택),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 약간의 버터를 넣어 호화시키는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반면 빠에야는 생쌀을 기름에 볶아내는 과정 없이 처음부터 생쌀, 육수를 넣어 끓여내는 방식으로 만든다.[3] 지중해성 기후 특성상 겨울철 강수량과 온난한 날씨를 이용하여 밭벼를 기른다.[4] 이로 인해 볶음밥이라는 오해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밥이나 쌀을 휘젓거나 볶지 않는다.[5]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로 한때는 금값과 비교됐을 정도였다. 자세한 건 사프란 항목 참조.[6] 생선 육수에 끓인 파에야와 유사한 밥요리인 아로스 데 반다(arroz de banda)에서 가져온 듯하다. 한국 여행자들이 흔히 '먹물 빠에야'라고 부르는 것은 현지에서는 아로스 네그로(arroz negro) 또는 아로스 네그레(arròs negre)라고 불린다.[7] 조선일보 2012년 4월 5일자 "한국 쌀은 파에야 만들기 딱… 육수에 익힐 때 젓지 말아야"[8] 리소토와 마찬가지로 약간 덜 익은 걸 좋아한다.[9] 다만 맛은 현저히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