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7 22:09:34

디에고 포를란

디에고 포를란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라리가 심볼(2016~2023).svg
2004-05 ·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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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 ·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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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FIFA 월드컵 골든볼
베스트팀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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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포를란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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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75A4EC 0%, #8BB9F4 20%, #8BB9F4 80%, #75A4EC)"<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BB9F4> 파일: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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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32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212329>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디에고 고딘 161회 2005.10.26 2022.11.29
2 루이스 수아레스 143회 2007.2.7 2024.9.7
3 에딘손 카바니 136회 2008.2.6 2022.12.2
4 페르난도 무슬레라 133회 2009.10.10 2022.6.11
5 막시 페레이라 125회 2005.10.26 2018.6.7
6 마르틴 카세레스 116회 2007.9.12 2022.11.24
7 디에고 포를란 112회 2002.3.27 2014.6.28
8 크리스티안 로드리게스 110회 2003.10.14 2018.7.6
}}}}}}}}}}}}}}} ||
파일:라리가 EA SPORTS 로고.svg
라리가 EA SPORTS 앰버서더
파일:Diego Forlán.jpg
<colbgcolor=#fff,#191919><colcolor=#ff4b44> 이름 디에고 포를란
Diego Forlán
본명 디에고 마르틴 포를란 코라소
Diego Martín Forlán Corazzo
출생 1979년 5월 19일 ([age(1979-05-19)]세)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국적
[[우루과이|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우루과이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80cm / 체중 75kg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1]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fff,#191919><colcolor=#ff4b44> 선수 CA 페냐롤 (1990~1991 / 유스)
다누비오 FC (1991~1994 / 유스)
CA 인데펜디엔테 (1994~1997 / 유스)
CA 인데펜디엔테 (1998~200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2~2004)
비야레알 CF (2004~200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7~2011)
인테르나치오날레 (2011~2012)
SC 인테르나시오나우 (2012~2013)
세레소 오사카 (2014~2015)
CA 페냐롤 (2015~2016)
뭄바이 시티 FC (2016)
킷치 SC (2018)
감독 CA 페냐롤 (2020)
CA 아테나스 (2021)
국가대표 112경기 36골[2] (우루과이 / 2002~2014)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5.3. 통산 기록
6. 포를란에 대한 말, 말, 말7. 여담

[clearfix]

1. 개요

우루과이축구인.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디에고 포를란/클럽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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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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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국가대표 경력

2002 한일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당시 우루과이의 간판 공격수는 알바로 레코바, 다리오 실바였기 때문에 큰 활약은 안 했지만 세네갈 전에 출전하여 만회골을 하나 넣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우루과이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했다. 5골을 터트리는 기염을 보이며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골든볼의 주인공에 등극했다. 준우승국도 아닌 4위 국가에서 골든볼 수상자가 나오기는 포를란이 역대 최초다. 잘 감기지도 않고 반발력은 쓸데없이 심하다고 온갖 욕을 다먹었던 자블라니를 누구보다 완벽하게 다뤄내며 팬들에게 '자블라니 마스터'라는 칭호도 얻었다.

개최국 남아공을 상대로 골키퍼 키를 훅 넘기는 독수리슛으로 간지나는 첫 골을 터뜨렸고 PK마저 구석으로 꽂아 넣으면서 남아공을 무너뜨렸다. 16강 한국전에서는 집중 견제에 시달려 도움 하나 기록을 했으나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3] 8강 가나전에서는 프리킥 골을 터뜨렸고 4강에서도 네덜란드를 상대로 중거리슛을 차 넣었으나 패배했다.
파일:MGperjf.gif
파일:diegowonder.gif
독일 전에서 터뜨린 원더 골
3·4위전에서 나온 다섯 번째 골은 독일 수비진들을 모두 벙찌게 만든 발리슛이었다. 이렇게 포를란은 대회 5골을 기록, 그것도 대단한 골들이었다. 골든볼을 수상하였다. 후반 종료 직전 얻어낸 프리킥이 골대에 맞는 바람에 아쉽게 득점왕이 될 수 있는 기회는 놓쳤다.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활약에 감동한 우루과이 축구협회에서 그의 업적을 기려 앞으로 우루과이 리그 득점왕 타이틀 별명을 디에고 포를란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2011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에서 파라과이에게 두 골을 넣는 미친 활약을 펼치면서 우루과이의 코파 최다 우승을 달성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노쇠화로 인하여 별다른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수아레스가 부상이나 징계로 나오지 못할 때만 출전하였는데, 조별리그 1차전에서는 조 꼴찌 유력후보였던 코스타리카한테 탈탈 털리고, 16강 콜롬비아 전에서도 뭐 해보지도 못하고 조기에 교체당했다. 그리고 팀도 2:0으로 지고 탈락했다.

2015년 3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3. 지도자 경력

3.1. CA 페냐롤

2019년 12월 20일 CA 페냐롤에서 포를란을 총감독으로 영입하겠다고 발표했다. 2020년 1월 1일 취임했으나 코로나 19의 여파로 3경기밖에 치르지 못하고 리그가 중단되었다. 중단된 시점 기준으로 페냐롤은 리그 8위였다. 전 시즌인 2019시즌을 리그 우승한 페냐롤이었다. 리그 재개 이후 부진을 면치 못하며 8개월 만에 경질 당하였고 패냐롤은 2020 시즌 리그는 4위로 끝냈다. 다만, 포를란이 감독으로 갓 들여온 터라 기회를 주자는 의견도 있었다. 페냐롤은 2016시즌은 리그 14위[4]를 거두며 강등당했다가 1시즌만에 승격하던 모습을 보이고 있을 정도로 부침이 있는 팀이다.

4. 플레이 스타일

포를란은 분명 스트라이커이긴 하나, 고전적이지 않은 변칙적인 유형의 스트라이커였다. 최전방의 중앙이 아닌, 측면 후방에 치우쳐 왕성한 활동량을 가져갔기에 타겟맨으로 분류하기는 어려우며, 좋은 체격과 바디 밸런스, 괜찮은 주력을 지니고 있긴 하나 이를 살려 상대의 뒷공간을 파고드는 라인 브레이커는 또 아니었다. 포를란은 오히려 상대 수비를 앞에 두고 일정 거리를 두고 드리블을 치는 플레이를 더 즐겼다. 어느 정도 발재간이 있어서 수비수 한 둘쯤은 달고 드리블을 할 수 있었고, 탈압박 능력이 없는 편은 아니나 우리가 기대하는 남미스타일의 화려한 드리블러는 아니다. 패스도 곧잘 찔러넣어 주고 연계도 잘 했지만 올리비에 지루카림 벤제마처럼 좁은 박스 안에서의 연계에 정말 뛰어난 스타일도 아니었다.

포를란의 진짜 무서운 점이자 최고의 장점은 바로 슈팅 능력이다. 슈팅의 세기는 물론이고 정확도, 타이밍 등 슈팅과 관련한 능력에 있어서는 가히 당대 최고의 선수였다. 위치와 거리를 가리지 않고, 어느 타이밍이든 골대를 타격할 수 있는 선수가 바로 포를란이었다. 심지어 포를란의 슈팅은 구질도 다양했는데, 발등에 얹히는 무회전슛은 물론이고 파포스트를 노리며 때리는 감아차기, 발리슛까지 수준급으로 구사할 수 있었다. 포를란이 상대진영에서 볼을 잡으면 골대와의 거리가 얼마가 되든 그 순간 수비진과 골키퍼는 긴장을 해야만 했다. 심지어 오른발잡이에도 불구하고 왼발 슈팅 역시 정확도가 엄청났다. 바로 이 특장점 덕분에 포를란은 피치치를 두 번이나 들어올릴 수 있었다.

때문에 포를란이 중앙/전방 지향적인 움직임을 보여준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다른 공격수에 비해 측면/후방 지향적인 움직임을 보여준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축구계는 2010년대 초중반에 비해 압박이 좀 덜했던 것도 있지만 수비수들이 밀집한 페널티 박스 안 쪽이 아니라 약간 압박이 느슨한 박스 바깥, 중앙 쪽에서 중거리를 호시탐탐 노렸던 것. 실제로 중거리슛으로 골을 많이 넣었던 선수였다.

따라서 포를란을 상대하는 팀들은 포를란이 슛팅을 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 라인을 높여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포를란이 전성기를 보낸 비야레알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는 이것에 대한 공략법이 또 존재했다. 비야레알에서는 후안 로만 리켈메의 존재가 그 공략법이었다. 상대팀 입장에서는 리켈메를 대처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기에 포를란에게 압박을 할 수도, 할 이유도 없었던 것. 포를란을 압박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서 비야 레알을 상대하며 리켈메를 놔둔다는 선택지를 가져갈 순 없는 것이다.

반대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포를란을 압박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수비수들이 올라오면 세르히오 아구에로시망 사브로자가 이를 응징했다. 국가대표에서는 루이스 수아레스가 이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월드컵에서 보여주었듯이 포를란은 스트라이커치고 나쁘지 않은 이 처진 지역에서의 판단 능력이나 시야를 지니고 있어, 아틀레티코에서는 아구에로와 시망, 대표팀에서는 수아레스 등 침투해 들어가는 다른 공격수들과 좋은 연계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이런 플레이가 돋보였다는 것이지 포를란이 박스 안 플레이를 못한 것은 아니다. 박스 안쪽의 포를란도 당연히 무서운 존재였다. 특히 박스 안쪽에서는 칩 킥, 방향만 바꾸는 원 터치 슛 등 한 박자 빠른 슈팅이 두려운 스트라이커였다. 한 템포 빠른 타이밍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심리를 잘 읽고 허를 찌르는 게 아주 능수능란했다. 그래서 칩슛도 자주 구사했었다. 킥 자체도 굉장히 정확하고, 흘러나온 볼을 처리하는 데에도 강점이 있었다. 헤딩도 자주 하진 않았지만 괜찮은 신체 조건과 특유의 슈팅 감각을 바탕으로 기회만 오면 멋진 헤딩 원더골을 넣었다.

무섭도록 차분한 멘탈도 강점. 리그에서나 월드컵에서나 승부차기까지 가는 승부에는 항상 첫 키커를 맡는다. 무표정하게 나가서 무표정하게 골을 넣고 들어온다. 페널티킥을 찰 때에는 골키퍼와 심리전을 일절 안 하는 스타일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남아공 골키퍼가 페널티 킥 직전 도발을 했지만 신경도 쓰지 않으며 골대 상단에 전력으로 공을 차 꽂아 넣었다.[5]

이렇듯 포를란은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선수이나, 단점도 있었다. 우선, 포를란은 느리지 않다 뿐이지 빠른 주력을 보유한 선수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바로 슈팅이 가능한 문전에서 한 둘의 수비를 제칠 때를 제외하면, 포를란의 드리블은 속도가 동반되지 않아 파괴력이 없었다. 동갑내기 공격수이자 자주 비교되는 디에고 밀리토가 빠른 스피드를 통해 상대 수비의 빈 공간을 잘 찾아내는 점과는 매우 대조되는 부분.

또 몸싸움에 능하진 않아서 정석적인 스트라이커들에 비해 스트라이커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플레이, 박스 안쪽에서 볼을 키핑하면서 버티다가 슈팅 기회를 만들거나 팀원에게 연계를 하는 등의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볼 키핑이 나쁜 건 아니지만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고 탈압박 능력 역시 마찬가지었다. 그래서 포를란 본인도 박스 안 쪽에서는 흘러나온 공 넣기, 압박이 채 붙기 전에 타이밍 빠른 슈팅을 주로 시도했고 실제로 이것만으로도 위력적이긴 했으나, 박스 안의 압박을 견디면서 활약하기를 꺼린다는 약점을 완전히 지우긴 힘들었다.

중거리 슛, 원터치 슈팅, 흘러나온 공 넣기도 모두 과감하고 도박적인 공격 수단이었기에 필연적으로 포를란은 기복이 꽤 심한 선수였다. 일반적으로 스트라이커에게 기대하는 라인 브레이킹이나 박스 안에서의 원터치 슈팅 및 헤더로 넙죽넙죽 골을 받아먹는 것이 강점이 아니었기에 일관성이 다소 떨어졌다. 그러나 마치 야구나 농구 선수를 평가하는 것과 같이 '퐁당퐁당 징크스가 매우 심했다', '기복왕이었다' 등의 표현을 포를란에게 붙인다면, 포를란 본인은 억울할 수 있을 것이다. 맨유 때의 활약은 저조했으니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전성기인 비야 레알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의 7시즌을 보면 20골 아래의 골을 기록한 시즌이 2005-06 시즌과 2010-11 시즌 뿐이기 때문이다. 2010-11 시즌부터 포를란의 노쇠화와 침체기가 시작됐다는 걸 감안하면 전성기의 포를란은 생각보다는 꾸준한 선수였다. 다만 동시대 경쟁을 하던 에투나 비야에 비해 기복이 심했던 것은 사실이고, 터진 시즌의 극단적인 화력과 침체한 시즌의 모습이 확연히 대비되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박스 안쪽에서의 전형적인 공격수 역할을 원한 맨유에서는 다소 부진한 감이 있다. 맨유에 워낙 짧게 있기도 했고, 당시 맨유는 공격을 대체로 강력한 윙에 의지하는 경기가 많았다. 맨유의 작전이 이뿐인 건 당연히 아니지만, 이런 경기에서 스트라이커는 당연히 윙이 주는 패스를 잘 받아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박스 안에서 수비와 경합하고 그를 이겨내야 하는데 이런 역할은 포를란과 잘 맞지 않았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퍼거슨은 자서전에서 전형적인 포처였다며 반 니스텔루이에게 아쉬움을 표한 부분도 있을 정도로 공수가 딱딱 분리되고 포지션이 분업화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그래서 포를란의 다재다능함을 보고 영입을 했을 터이고, 퍼거슨은 포를란에게 전형적인 공격수 역할을 바랬다기보다는 위에서 말했듯 프리롤 크랙으로 성장해주길 바랬을 것이다. 허나 말했듯이 드리블의 파괴력과 볼 키핑, 몸싸움이 부족한 포를란은 이런 역할로 성장할 수가 없었고[6] 그렇다면 공격수로서 결국 박스 안에서 마무리를 짓는 역할로 성장해야 할텐데, 이는 포를란과 안 맞는 옷인데다가 그 역할은 이미 반 니스텔루이가 잘 해주고 있었으니 성장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스타일과 남이공 월드컵에서의 모습을 생각하면 약간 처진 위치로 갔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데, 앞서 말한 드리블과 볼 키핑이 부족한지라 오하려 2선으로 간다면 더욱 애매해지는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 포를란에게 들어가는 압박을 분산시켜줄 수 없는, 요컨데 자신을 받쳐주는 동료가 없는 팀에서는 활약을 잘 못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상대적으로 레벨이 낮은 프로 리그에 갔을 때, 전성기 이름을 떨쳤던 것이 비해 활약을 못한 감이 있다.[7]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통산 기록

시즌소속팀소속리그리그득점FA컵[8]득점대륙대회득점
1998/99 인디펜디엔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 2 - - 2 2
1999/00 인디펜디엔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4 7 - - 3 4
2000/01 인디펜디엔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6 18 - - 6 2
2001/02 인디펜디엔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18 12 - - 5 1
2001/0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13 4 2 1 5 1
2002/0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25 6 2+5[9] 0+2 13 1
2003/0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24 4 2+1 1+1 4 2
2004/0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1 1 4 1 1 2
2004/05 비야레알 라리가 38 25 1 0 1 0
2005/06 비야레알 라리가 32 22 2 0 13 3
2006/07 비야레알 라리가 36 19 4 1 2 1
2007/08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리가 36 16 6 1 11 6
2008/09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리가 33 32 3 1 9 2
2009/10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리가 33 18 6 3 17 7
2010/1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리가 32 13 3 1 6 1
2011/12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세리에 A 18 2 0 0 2 0
2012 인테르나시오나우 세리에 A 19 7 0 0 0 0
2013 인테르나시오나우 세리에 A 15 5 4 3 0 0
2014 세레소 오사카 J 리그 26 7 6 0 6 2
2015 세레소 오사카 J 리그 디비전 2 5 1 0 0 - -
2015/16 CA 페냐롤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0 8 0+1 0 3 0
2016 뭄바이 시티 인도 슈퍼 리그 11 6 0+1 0 - -
2018 킷치 SC 홍콩 프리미어 리그 7 8 2 1 5 0

6. 포를란에 대한 말, 말, 말

당신과 함께한 모든 시간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대표팀은 물론 그라운드 안팎에서 엄청난 동료였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의 역사와 우루과이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줘 고마웠다. 당신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도 고맙다. 포를란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선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다. 나의 우상과 플레이할 수 있던 건 꿈만 같은 일이었다. 당신은 우루과이의 전설이다.
포를란과 함께 뛴 경험은 내 커리어 중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는 골을 정말 잘 넣었고 항상 팀을 위해서 뛰는 선수였다.
- 루이스 수아레스
포를란은 5골을 기록하며 우루과이를 40년 만에 4강에 올려놓았다. 포를란은 우루과이의 정신적 지주였고 공격의 핵심이었다.
- FIFA, 2010 남아공 월드컵 골든볼 수상자 선정 배경에 대한 설명
탁월한 위치 선정 능력과 화려한 개인기, 양발을 이용한 정교하고 강한 슈팅 능력 등 공격수로서 완벽한 기량을 보여준 포를란을 높이 평가해 골든볼 수상자로 확정했다.
- FIFA 기술위원회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고 있는 스트라이커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함께 뛸 때부터 포를란이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현재 포를란은 최고의 컨디션과 감각을 지니고 있다.
- 데이비드 베컴, 2010 남아공 월드컵 베스트 11을 선정하며
나는 다비드 비야와 디에고 포를란 같은 선수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두 선수 모두 대단한 기량을 가지고 있으며, 그 둘을 놓고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다.
- 플로렌티노 페레스, 갈락티코스 2기 영입을 앞두고 Antena 3와의 인터뷰에서
아틀레티코에는 정말 좋은 선수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홈 구장에서 치러지는 경기이니만큼 반드시 승리를 거두고 싶다.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특히 아틀레티코의 디에고 포를란은 정말 위협적인 선수다. 그는 강하고 빠른 슈팅을 구사할 수 있는 선수이기에 그를 잘 막아야 할 것이다.
- 메수트 외질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포를란의 활약은 환상적이었다. 그가 자랑스러웠다. 그를 헐값에 판건 우리 스스로도 비난 받아 마땅한 실책이었다. 그는 맨유에서 영웅이 될수도 있었다. 그는 훌륭한 프로다.
- 알렉스 퍼거슨
포를란은 절대로 자유롭게 놔둬서는 안되는 선수다. 경기 내내 지켜보면서 막아야 할 것이다. 브라질 감독 시절부터 포를란을 주목해왔다. 그는 브라질을 상대로 곧잘 골을 넣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스페인 리그의 정상급 골잡이로 성장했다. 절정에 올라있기 때문에 우리팀은 그를 90분 내내 집중 방어해야 한다.
-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남아공과 우루과이의 맞대결을 앞두고서

7. 여담

  • 바스크계로 알려져 있다.
  • 축구 웹툰 작가 칼카나마가 사랑하는 선수로 사실상 웹툰의 마스코트. 예명은 표능란. 비야보다도 많이 출현하는 듯하다. 사실 개그 캐릭터 된 이유는 얼마 전까지 과거 보여주던 골 넣는 머신 급의 활약에서 벗어나, 똥볼을 차며 팀을 패배의 나락으로 이끌던 경기가 종종 있었기 때문. 칼카나마 웹툰에서도 '내가 부진하니까 작가가 계속 나를 개그 캐릭터로 내보내지'라는 식으로 말했다. 최근 활약과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보면 이제 지금처럼 개그 캐릭터 화 될일은 적을 지도.
  • 아르헨티나 레전드 디에고 마라도나와의 기묘한 인연이 있다. 디에고 포를란의 아버지인 파블로 포를란은 마라도나와 친구였다. 디에고 포를란은 어릴 적 테니스 유망주였는데, 그의 누나 알레한드라 포를란이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자 거액의 수술비를 가족이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친구였던 마라도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누나가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이에 감명 받은 포를란은 그 길로 축구선수로 전향했다. 인데펜디엔테에 있던 그를 맨유에 입단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도 마라도나였다. 현재 그의 누나는 교통안전 비영리 재단을 만들었고, 본인이 누나의 재단 행사에서 연사로 나선 적도 있다. 사실 완전히 테니스만 하다가 축구 선수로 전향한 것은 아니고, 대표팀 동료 디에고 고딘이 수영과 축구를 병행한 것처럼 축구와 테니스를 병행하고 진로를 고민하다가 테니스 쪽으로 조금씩 쏠리고 있을 때 마라도나의 도움이 결정적으로 그를 감동시켜 축구로 전향했다. 그래도 여전히 테니스를 좋아해서 친해지는 사람들마다 붙들고 테니스를 가르치려 드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 맨유에서 뛰던 시절 골을 성공시키고 상의를 벗는 세레모니를 했는데 경기가 재개 될때까지 유니폼을 착용하지 못해 그냥 손에 쥔채로 잠시 뛴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나이키 선수용 유니폼은 언더셔츠가 심하게 유연하여 착용이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이다.[10]
  • 앞서 플레이 스타일에서 처진 공격수를 선호한다고 말했듯이 커리어에 공격형 미드필더를 소화한 경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역시 주요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7.1. WAGs

1988년생 아르헨티나 출신 모델 사이라 나라와 약혼한 사이였다. 그녀는 의부증도 엄청 강하고 질투도 엄청 세며, 포를란에 대한 독점욕이 강했다고 한다. 2011년 6월 16일, 결혼식이 취소되면서 스캔들이 튀어 나왔다. 포를란의 약혼녀가 포를란이 바람피는 현장을 목격했는데, 상대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는 것. 당시 우루과이 축구팬들이 둘로 갈라져 다투기까지 할 정도였지만 사실은 결혼 취소에 분노한 약혼녀가 포를란에게 한국 돈으로 3억원을 요구하며 돈을 주지 않으면 게이설을 퍼트리겠다고 협박한 것이라고 한다. 포를란은 그저 내버려 두었고 찌라시 잡지사에서 덥석 떡밥을 물어 포를란 게이설을 만들어낸 것으로 최종 확인되었다.

사이라 나라는 원래 미녀가 많은 축구선수 WAGs 중에서도 눈에 띄는 얼굴과 몸매의 소유자여서 축구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WAGs였는데, 이 사건 및 언니 완다 나라의 병크가 줄줄이 터진 이후로는 축구팬들에게 정신나간 여자 취급을 받고 있다. 사이라는 이후로 승마선수 야콥 폰 플레센과 결혼해 2명의 자녀를 낳고 조용히 살고 있다.

그리고 포를란은 2013년 우루과이의 파스 카르도소라는 여성과 결혼해 2016년 2월 장남 Martín, 2017년 5월에 장녀 Luz, 2019년 2월에 차남 César, 2021년 3월에 삼남 José를 낳았다.


[1]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출전한 경험이 적지 않다.[2] 대표팀 역대 출장 7위, 역대 득점 3위.[3] 나중에 인터뷰에서 한국전 경기는 가장 어려웠고 너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김정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 바 있다.[4] 1부 리그 팀이 16개이니 최하위권 성적이다.[5] 스티븐 피에나르에 따르면 골키퍼가 자기에게 말하길 포를란의 페널티킥은 남아공 리그에서의 페널티킥과는 차원이 달랐다고 한다.[6] 이것이 조금 더 뒤에 활약한 루니 및 테베스와의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저 둘은 키가 작아서 그렇지 몸싸움으로 어디 가서 밀리질 않았으며 테크닉도 매우 뛰어났다.[7] 이는 같은 포지션의 동갑 나이대의 선수였던 디에고 밀리토도 겪은 문제였다. 밀리토도 노쇠화로 인해 다시 아르헨티나 무대로 복귀하였지만 리그에서 한 자리수의 골을 기록할 정도였다.[8] FA컵 + 기타 컵대회[9] FA컵 + 리그컵[10] 2002 한일 월드컵에선 이비차 올리치가 골을 성공시키고 역시 상의를 벗었는데 1분이 넘도록 착용을 못해 결국 가위로 언더셔츠를 자르고 착용했을 정도. 물론 선수들도 언더셔츠에 대한 불만이 폭증했고, 바로 다음해 킷부터 언더셔츠를 없앴다. 맨유같은 경우는 동일 디자인인데 언더셔츠가 있는 버젼이 있고 없는 버젼이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