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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셰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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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셰비키 멘셰비키 좌파 트루도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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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당시 레프 트로츠키레프 카메네프

1. 개요2. 볼셰비즘화3. 관련 문서

1. 개요

볼셰비키(большевики́, Bolsheviks)는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두 파로 분열될 때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좌익의 다수파를 일컫는 말이며, 1918년 7회 대회에서 당명을 러시아 공산당으로 고친 뒤부터 볼셰비키는 레닌주의자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볼셰비키는 '다수파'라는 뜻의 러시아어이다. 1903년 런던에서 열린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2차 전당대회에서 당규약 문제로 레닌안과 마르토프안이 대립했을 때, 표결에서 다수파였던 레닌파가 스스로를 '볼셰비키(다수파)'라 불렀고 마르토프파를 '멘셰비키(소수파)'라고 이름붙였다.[1] 런던에서 진행된 제 3차 전당대회에서는 맨셰비키가 참가하지 않았다.

1917년 7월 이전까지 볼셰비키는 자신들이 강인함(Tverdost)[2]을 추구하기 때문에 다른 사회민주당원들과 구별된다고 믿는 사람들의 집합체에 불과했다. 그들은 당이 노동자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레닌의 주장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이를 어떻게 달성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없었고 멘셰비키보다 더 조직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이지도 못했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차르 전제정부가 전복되고 자유주의 임시 정부가 구성되었을 때도 볼셰비키 지도층은 정권 장악을 강행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 협력하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었고, 분노한 레닌이 보낸 편지들은 그가 러시아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이라며 무시했다. 그러나 결국 망명처로부터 귀국한 레닌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민중의 지지를 넓혀, 11월 7일 무장봉기를 일으켜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레닌은 이 혁명을 위해 당시 전쟁 중이던 독일에 불리한 조건으로 정전 협상까지 해가면서 총력을 기울였으나, 그 과정에서 당원들을 끊임없이 협박하고 달래야 했다. 권력 장악을 목표로 결집한 무자비한 음모가 집단이라는 볼셰비키의 악명은 사실상 레닌 단 한 사람(혹은 트로츠키까지 포함해서 두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볼셰비키는 소비에트 정권을 출범시키고, 1918년 7회 대회에서 당명을 '러시아 공산당'으로 고쳤다.

2. 볼셰비즘화

볼셰비즘화(Bolshevization)란 1920년대 중반 이후 국제 사회주의 운동이 점차적으로 소련 공산당의 직접적인 지도아래 놓이게 된 과정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전까지는 다양한 경향성의 공산주의자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정통 마르크스[3]의 분석에 따라 소련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기도 했지만, 이후 볼셰비즘화로 소련의 지도 이념과 크렘린의 외교적 정책을 따르고, 러시아 혁명과 소련 성립을 목도하게 된 여러 열강들이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면서 그런 경향성은 거의 궤멸되었다.

특히 1929년 트로츠키의 추방 이후부터는 소련 공산당 내부에선 점차 스탈린의 반대파가 줄어들고 결국 소멸하며 공산주의 운동의 스탈린주의적 획일화를 뜻하는 단어로 변하게 된다.

3. 관련 문서


[1] 볼셰비키와 몐셰비키는 이미 2차 전당대회 이전부터 분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당시 사회민주노동당은 잡지 이스크라를 발간했는데 이스크라의 편집부 내에서 레닌의 의견을 따르는 다수파와 마르토프의 소수파가 대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대립이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의 분화로 연결된다.[2] 자유주의 귀족과 지식인의 고질적인 악덕인 우유부단함, 감상주의, 무능함을 거부하기. 현실적이고 의지가 강하며 목표 지향적이 되기. 가장 엄격한 과학인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하여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사실을 조사하고, 훈련된 논리적 방식으로 결론을 도출하기. 혁명에 대한 사심 없는 헌신과 프롤레타리아의 최종 승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 가지기.[3] 레닌 이전의 주된 마르크스주의의 분파는 민주사회주의였다. 레닌 이후의 주류 마르크스주의는 레닌주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