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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Erich Maria Remarque
파일:220px-Bundesarchiv_Bild_183-R04034,_Erich_Maria_Remarque_(cropped).jpg
원명 에리히 파울 레마르크
Erich Paul Remark[1]
출생 1898년 6월 22일
독일 제국 베스트팔렌 오스나브뤼크
사망 1970년 9월 25일 (향년 72세)
스위스 로카르노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 무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가족 이름 (관계)
학력 초등학교 (졸업·중퇴)
중학교 (졸업·중퇴)
고등학교 (졸업·중퇴)
대학교 단과대학 (학과1·학과2[복수전공] / 재학·학사·중퇴)
종교 종교
직업 소설가
소속 소속
서명
파일:빈 가로 이미지.svg

1. 개요2. 생애3.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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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소설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소재로 많은 명작을 남겼다.

2. 생애

1898년 6월 22일 독일 서부 베스트팔렌주의 오스나브뤼크에서 태어났다. 14살 때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및 프리드리히 니체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철학서를 탐독했다.

1916년 뮌스턴 사범학교에 재학하던 중 징집되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서부전선에서 부상을 입고 야전병원에 수용되었다가 회복 후 보병연대로 배치되었으나 1주일 후 종전을 맞이했다.

종전 후 귀향해 임시직 교사로 근무했지만 얼마 안 가 그만두고 자신의 유년기를 추념하는 데뷔작인《꿈의 다락방》을 출간했다. 그 후 편집인과 기자 등을 전전하다가 1928년《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신문에 연재하고 이듬해 출간했다. 1930년에는 속편인《귀로》를 발표했으며, 역시 이듬해에 출간했다.

반전주의 작가로서 나치와 잦은 충돌 끝에 1931년 스위스로 망명했고, 나치는 1933년 집권한 후 그의 작품을 분서 목록에 올려 공개적으로 불태웠다.

여동생 엘프리데 레마르크(Elfriede Remark)는 나치 집권 후에도 평범한 재단사로 일하며 독일에 남아있었다. 그러나 1943년 반전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는 죄로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었고, 에리히 레마르크의 여동생이라는 연좌제까지 적용되어 악명높은 나치 판사인 롤란트 프라이슬러[3]에게 사형을 선고받아 같은 해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오빠 에리히 레마르크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여동생 엘프리데의 비극적인 죽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한다. 1952년작 소설《생명의 불꽃》(Der Funke Leben)은 여동생 엘프리데에게 헌정한 작품이었다.

에리히는 망명 작가로 스위스에서 거주하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39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1947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으나 이듬해 스위스로 돌아왔다.

1925년에 결혼한 첫 번째 아내는 일제 유타 잠보나라는 배우였는데, 불화 때문에 1930년에 이혼했지만 1933년에 함께 스위스로 도피하거나, 그녀가 나치 독일에 송환되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해 1938년에 재혼해주는 등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다. 그녀와는 합의하에 1957년 이혼했다. 이 외에도 1930년대에 마를레네 디트리히, 헤디 라마르, 돌로레스 델 리오 등의 배우들과 교제했다. 1958년 에리히는 미국 여배우인 폴렛 고다드와 재혼했다.[4]

1970년 스위스의 로카르노에서 72세로 사망했다.

에리히 레마르크의 작품은 전쟁에 대한 묘사나 전쟁 중의 군인들이 겪는 내면 및 외면의 심리묘사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충격을 주는 힘이 대단하다. 또한 대부분 우울하거나 건조한 문체가 특징이다.

소련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말한 것으로 잘 알려진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는 사실 레마르크가 한 말이었다.

3. 대표작

국내 번역작은 ★ 표시. 절판본은 * 표시.

1960년대 정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일부 작품들이 실리면서 알려졌고, 1980년대 범조사에서 레마르크의 대표작들을 모아 자칭 전집을 낸적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에 성창출판사에서 재간했는데 박환덕, 송영택, 강두식, 홍경호 등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독일어 번역계의 원로들이 참여했다. 2020년 시점에 새 번역이 없는《귀로》, 《생명의 불꽃》, 《검은 오벨리스크》는 이 전집본에 포함된 이후 재간되지 않았다.

《하늘은 은총을 베풀지 않는다》는 1999년 《하늘은 아무도 특별히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김훈이 소설가로 명성을 높이기 이전 호구지책으로 한 번역이었다. 김훈은 영문과 출신이라 중역이 확실하며 그 스스로
"성취감은 전혀 없고 지긋지긋했다. 내가 했지만 번역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라고 밝힌 바 있다. 소설가로서의 공력이 있어 문장 자체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으나, 의역이 많고 엄밀하지 못한 번역이다.

《약속의 땅》은 1998년도에 2권으로 나뉘어 번역되었는데, 번역자는 활동이 많진 않았으나 독일어 전공자였다.

* Die Traumbude. Ein Künstlerroman 꿈의 다락방 (1920) - 16세부터 쓰기 시작한 데뷔작
* Gam (1924)
* Station am Horizont (1928) - 스포츠 잡지 연재작
* Im Westen nichts Neues 서부 전선 이상 없다 (1929)★
* Der Weg zurück 귀로 (1931)★*
* Drei Kameraden 세 사람의 전우 (1936)
* Liebe deinen Nächsten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 (1941)★
* Arc de Triomphe 개선문 (1946)★
* Der Funke Leben 생명의 불꽃 (1952)★*
* Zeit zu leben und Zeit zu sterben 사랑할 때와 죽을 때 (1954)★
* Der schwarze Obelisk 검은 오벨리스크 (1957)★*
* Der Himmel kennt keine Günstlinge 하늘은 은총을 베풀지 않는다 (1961)★*
* Die Nacht von Lissabon 리스본의 밤 (1964)★
* Das gelobte Land 약속의 땅 (1970)★*
* Schatten im Paradies 그늘진 낙원 (1971)★ (유작)


[1] 1924년부터 필명으로 자주 쓰던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Remarque)로 개명했다. 미들네임인 '마리아'는 어머니의 미들네임에서 따왔다.[복수전공] [3] 1944년 8월 히틀러 암살사건의 가담자들에게 냉혈한 사형판결을 때린 바로 그 인물이다. 1945년 2월 연합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4] 본래 찰리 채플린의 아내였고, 채플린과 결혼하기 전에도 채플린의 영화에 같이 출연하기도 했지만 이혼했다. 다만 이혼 이후에도 채플린과의 사이가 나빠지진 않아서 가끔씩 채플린을 만나기도 했고, 채플린의 장례식에도 참석했다. 이 사람이 바로 <모던 타임즈>의 여주인공인 떠돌이 소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