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0-16 14:20:33

하프스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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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스 왕조
الحفصيون
al-Ḥafṣiyūn | Hafsid dynasty
파일:Tunis_Hafsid_flag.svg.png
국기
<nopad> 파일:Hafsid1400.png
1200년 하프스 왕조의 영토
1229 ~ 1574
성립 이전 멸망 이후
무와히드 왕조 오스만 제국
<colbgcolor=#A58361><colcolor=#fff> 위치 북아프리카
수도 튀니스
국가원수 술탄
정치체제 군주제
주요 술탄 아부 자카리야
무함마드 6세
국교 이슬람 수니파
언어 아랍어, 베르베르어
종족 튀니지인, 아랍인 등
현재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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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역사
2.1. 건국과 성장2.2. 일시적인 전성기, 그리고 뒤따르는 분열2.3. 재통일과 마린 왕조의 침공2.4. 부흥기2.5. 쇠퇴와 멸망
3. 사회4. 여담

1. 소개

무와히드 왕조가 멸망한 이후에 마그레브 동부를 다스린 베르베르계 왕조.

2. 역사

2.1. 건국과 성장

하프스 왕조의 지배층들은 자신들이 제2대 정통 칼리파 우마르의 후손임을 천명했으나, 오늘날 여러 사료들을 교차검증하여 분석한 결과 이들은 모로코 지역에서 기원한 토착 베르베르족임이 확인되었다. 하프스 가문의 시조는 아부 하프스 우마르 이븐 아히야(Abu Hafs Umar ibn Yahya)라는 사람이었는데, 12세기경 같은 마스무다 부족 출신이었던 이븐 투마르트의 급진적인 사상에 감명받아 그가 이끄는 무와히둔 운동에 투신하여 무와히드 왕조의 성립을 지켜보았으며, 이후 10인 위원회[1]에서 활동하면서 무와히드 왕조의 고위층으로서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

1207년, 무와히드 왕조의 제4대 칼리파 무함마드 앗 나시르는 무라비트 잔당(바누 가니야)으로부터 막 탈환한 튀니스 일대를 아부 하프스의 아들이었던 무함마드 이븐 아부 하프스(Muhammad bin Abu Hafs)에게 맡겨, 그를 이프리키야의 총독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1221년까지 이 지역을 통치하다가 사망했는데, 그의 사후 현지 족장들은 무함마드의 아들 압드 알 라흐만을 차기 이프리키야 총독으로 선출하였으나 당시 무와히드 칼리파였던 유수프 2세 알 무스탄시르는 이를 거절하고 대신 자신의 친척을 임시 총독으로 봉하였다.

다만 무와히드 왕조는 본국인 모로코에서 한창 벌어진 내전으로 인해 튀니스 일대에 제대로 신경을 쓸 수 없었고, 이 틈에 압드 알 라흐만의 아들 아부 자카리야(Abu Zakariya)는 무와히드 총독을 축출한 뒤 스스로를 "튀니스의 총독"으로 칭했다. 이후 혼란을 어느정도 수습한 무와히드 칼리파 알 아딜은 본래 하프스 가문의 이프리키야 총독 역임이 1229년까지였음을 들며 그에게 물러날 것을 종용하였으나 아부 자카리야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알 아딜 사후 무와히드 왕조는 더욱 쇠퇴하였고, 특히 1229년 그의 형제로서 칼리파위에 올랐던 이드리스 알 마문이 기존 고위층들을 학살하고 왕조의 창시자 이븐 투마르트의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함으로서 무와히드 왕조는 창건 이래로 이어지던 핵심적인 지지 기반 및 명분(정체성) 등을 모조리 상실하게 되었다. 또한 많은 지역 총독들이 이에 반발하여 독립을 선언하며 무와히드 왕조의 국력은 급속하게 약화되었다. 기회를 포착한 아부 자카리야는 그해에 정식으로 무와히드 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하고, 처음에는 금요예배(쿠트바)에서 자신을 아미르로 선언했으나 1236년부터는 스스로를 아미르 알 무미닌, 즉 칼리파로 언급하였다. 이는 무와히드 칼리파의 권위에 정식으로 도전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1230년부터 아부 자카리야는 콩스탕틴베자이아 등 이프리키야의 주요 거점들을 무력으로 장악함으로서 자신의 권력기반을 탄탄히 하였으며, 계속해서 약탈 공격을 감행하던 바누 가니야의 지도자 아히야 이븐 가니야를 격퇴하여 비로소 이프리키야의 확고한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1235년 알제를 점령한 이후에는 각지의 유력 족장들과 제후들이 그에게 복속하며 신생 하프스 왕조의 영토는 곧 마그레브 대부분을 아우르게 되었다. 또한 아부 자카리야는 레콩키스타를 피해 도망쳐오는 알안달루스의 무슬림들이 이프리키야에 정착하는 것을 장려하여, 이들의 선진적인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이려 시도하였으며, 무와히드 왕조의 군대에 맞서 알안달루스 출신의 군대를 설립하기도 했다.

한편 알안달루스 그라나다 토후국의 아미르였던 이븐 알 아흐마르는 북쪽의 기독교 세력에 맞서고자 하프스 왕조에게 복속 요청을 해왔다. 이를 수락한 아부 자카리야는 1238년에 발렌시아의 무슬림들을 위해 함대를 파견하기도 하는 등 알안달루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왕국을 옛 무와히드 왕조처럼 마그레브 전역을 다스리는 대제국으로 만드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1242년, 아부 자카리야는 알제리 서부의 자얀 왕조를 침공해 그 수도 틀렘센을 점령했고, 나아가 시질마사와 세우타 지역의 제후들을 복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만 당시 자얀조 군주 야그무라센 이븐 자얀은 그와의 대결을 의도적으로 피한 채로 계속해서 후퇴하며 군대의 소모를 유도하였다. 결국 아부 자카리야는 이듬해에 회군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내치와 외치 모두에 신경을 쓰던 아부 자카리야는 7년 뒤인 1249년에 사망하였다.

2.2. 일시적인 전성기, 그리고 뒤따르는 분열

아부 자카리야 사후, 그의 아들 무함마드 1세는 부왕의 유지를 이어받아 이프리키야의 권력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는 것에 집중했다. 그의 치세에 튀니스베자이아, 콩스탕틴 등 여러 항구도시들의 개발이 이루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유럽 국가들과의 해상 무역 확대를 시도하면서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 이라크의 아바스 왕조가 몽골군의 말발굽에 짓밟힌 것은 하프스 왕조에게 있어 대단히 호재였다. 마그레브 서부의 마린 왕조는 1258년에, 메카의 샤리프 아부 누메이다는 1259년에 하프스 칼리파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게 복속하였다.

1270년에는 프랑스의 '성왕' 루이 9세가 이끄는 제8차 십자군이 쳐들어왔으나 이프리키야 일대의 무더위와 보급 부족으로 인해 십자군은 난항을 겪었고, 설상가상으로 이질로 추정되는 전염병까지 군중에 돌아 루이 9세마저 병사하였다. 덕분에 무함마드는 이를 손쉽게 격퇴할 수 있었고,[2] 그해 11월 프랑스 국왕 필리프 3세, 시칠리아 국왕 카를루 1세, 나바라의 티발트 1세와 튀니스 조약을 맺어 십자군을 물러가게 했다. 이 시기의 하프스 왕조는 잠시지만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와 함께 당대 이슬람 세계의 주요 패권국 가운데 하나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서쪽의 나스르 왕조마린 왕조, 자얀 왕조는 물론이거니와 트리폴리타니아 일대의 여러 베두인계 부족들, 그리고 아라비아 반도 서부의 제후들도 하프스 왕조에게 복속의 의사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277년 무함마드 1세가 사망한 이후, 하프스 왕조는 왕위를 두고 일어난 형제들의 내분으로 인해 튀니스, 베자이아, 콩스탕틴 등의 세 분파로 나뉘어졌다. 또한 아라곤 왕국, 시칠리아 왕국 등의 외세들은 이러한 내분을 더욱 조장하여 하프스 왕조의 약화를 기대하였다. 무함마드 1세 사후의 13세기 후반 내내 하프스 왕조는 여러 부침과 내분을 겪었고, 여기에 자연재해까지 겹쳐 국력은 나날이 쇠퇴하였다.

2.3. 재통일과 마린 왕조의 침공

1318년, 베자이아의 아미르이자 아부 자카리야의 증손자였던 아부 야히야 아부 바르크 2세가 튀니스와 콩스탕틴을 장악하며 왕조는 약 40년만에 다시금 통일되었다. 하지만 이미 자얀 왕조와 마린 왕조는 하프스 왕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특히 후자는 명군 아불 하산 알리(1331~1348) 치세에 본격적으로 전성기에 접어들며 성장한 국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에 아부 야히야는 그에게 딸을 시집보내어 결혼 동맹을 맺었고, 호전적인 자얀 왕조에 맞서 양국 간의 교류에도 신경을 기울였다.

1346년 10월 아부 야히야는 사위 알리에게 자신이 후계자로 정한 어린 아들 아불 압바스 아흐마드의 후견을 맡기고 사망한다. 그러자 다른 아들 우마르가 재상 이븐 타프라긴의 지지 하에 칼리파를 칭하며 반발하며 다시금 내전이 터졌다. 아흐마드는 튀니스를 장악했지만 곧 우마르에게 살해되었고, 후자는 다른 형제들 역시 숙청하였다. 이미 1337년 틀렘센을 함락시키며 마그레브 서부를 정복한 바 있던 아불 하산 알리는 튀니스 내부의 지원 요청을 받자 1347년 봄, 찬탈자를 몰아낸다는 명분 아래 진격하였다. 우마르는 튀니스를 버리고 도주하다가 8월 마린 군에 붙잡혀 처형되었고, 다음달 알리는 튀니스에 무혈입성하였다. 이로써 무와히드 왕조의 멸망 이래로 삼분되어 있던 마그레브는 약 한 세기 반만에 통일되었다.

다만 마린 조는 이 지역의 베두인 부족들을 회유하는 데 실패했고, 지나친 중앙 집권화 시도는 1348년 4월 전면적인 베두인 반란으로 이어졌다. 이를 진압하려던 마린 군대는 카이로우안 부근에서 패배하였다. 이 틈을 타 틀렘센 총독이던 아불 하산 알리의 아들 아부 이난 파리스가 수도 페스로 돌아가 술탄을 칭하면서 마린 군의 후방이 위험해졌다. 설상가상으로 흑사병까지 창궐하자 아불 하산 알리는 1349년 다시 본국으로 회군하였다. 그렇게 마린조가 후퇴하자 베자이아 총독이던 아미르 알 파들이 칼리파 알 무타와킬로 추대되었으나, 실권자였던 재상 이븐 타프라긴이 1350년 7월 그를 암살하고 다른 동생 이브라힘 2세를 칼리파로 등극시켰다.

1357년, 마린조의 혼란기를 종식시킨 아부 이난 파리스가 '아미르 알 무미닌'을 칭하며 다시금 하프스 왕조를 침공해왔고, 콩스탕틴, 안나바, 베자이아, 가베스 등이 잇달아 함락되었다. 그해 말 수도 튀니스가 함락되며 마그레브는 다시금 마린조에 의해 통일되었다. 그러나 그 역시 오래지 않아 여러 문제들로 인해 본국으로 회군해야 했고, 11월 말부터는 병을 얻어 모로코 본국에서 와병하였다. 그렇게 되자 마린조의 영향력은 콩스탕틴을 포함한 마그레브 중동부까지만 미치게 되었다. 이후 아부 이난 파리스가 내분으로 암살당하자 하프스 왕조는 다시금 독립할 수 있었다.

2.4. 부흥기

마린 조의 위협이 끝난 이후인 1370년, 콩스탕틴 아미르 아불 압바스 아흐마드 2세가 튀니스를 정복하며 하프스 왕조는 다시금 통일되었다. 그는 남쪽에서 계속해서 습격해오는 베두인들을 물리치고, 경작지의 확대와 농촌 지역으로의 인구 정착을 장려하여 농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세수를 높이고자 시도하였다. 이러한 정책들이 성과를 거두어, 그의 치세에 하프스 왕조는 오랜만의 평화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3] 한편 그의 치세에는 바르바리 해적으로 인해 유럽 국가들과의 사이가 불안정해졌다. 1383년, 아라곤 군대가 제르바를 점령했고 1390년에는 해적들의 본거지였던 알 마흐디야가 프랑스 국왕 루이 2세와 잉글랜드 기사단, 제노바 군대의 공격을 받는 일까지 있었다. 다만 이들은 도시의 함락에는 실패했다.

그의 사후 아들 아불 파리스 압둘 아지즈 2세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는 쿠란에 입각한 엄격한 이슬람식 철권 통치를 펼쳐 혼란스럽던 내부를 빠르게 안정화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자신에게 반기를 든 토주르, 가프사, 비스크라 등의 도시들을 진압하고 충성스러운 총독을 보내어 마린 조가 차마 이루지 못한 이 지역의 중앙집권화를 완료하였다. 또한 바누 힐랄 등의 베두인 부족들을 남부에 정착시켜 다른 유목민들의 습격을 방어하도록 했다.

이렇게 내치를 마무리한 아불 파리스는 외부로 눈을 돌렸다. 당시는 기존의 패권국이었던 마린 왕조가 흑사병으로 인해 쇠퇴하고, 틀렘센의 자얀 왕조 역시 내분으로 인해 제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동쪽에서는 맘루크 왕조가 쇠퇴하며 트리폴리타니아 일대는 무주공산이 되어 있었다. 이에 아불 파리스는 1401년 리비아 원정을 감행하여 트리폴리까지 나아갔고, 다음해부터는 알제리 원정을 시작하여 1410년경 알제를 점령하였다. 1424년에는 자얀 왕조의 군주 아부 말리크를 물리치고 꼭두각시 군주를 앉혀 자얀 왕조를 거의 속국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저멀리 모로코에까지 개입하여 페스까지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사실상 마그레브를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그의 아들인 우스만이 사망할 때(1488)까지 하프스 왕조의 마그레브 패권은 유지되었다.

2.5. 쇠퇴와 멸망

우스만 사후 즉위한 하프스 칼리파들은 바르바리 해적의 수입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무기 개발과 정치 개혁을 소홀리 하였고, 알제리 해안은 우루지, 하이르 앗 딘 형제에게 점령되었다. 하프스 왕조는 1517년에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오스만 제국에게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다가, 1534년에 결국에는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 되었다. 이듬 해에 합스부르크 세력이 튀니스를 점령하여 스페인-오스트리아의 속국이 되었는데, 오스만 제국측은 1569년에 튀니스를 회복하였다. 돈 후안의 합스부르크 함대는 1573년에 재차 튀니스를 점령하였으나, 1574년에 오스만 제국은 최종적으로 튀니지에 대한 지배를 확립하고 종주권이 오락가락하던 하프스 왕조의 마지막 술탄 무함마드 4세는 스페인과의 내통 혐의로 폐위된 후에 처형됨으로써 하프스 왕조가 멸망하였다.

3. 사회

다른 이슬람 국가들이 '와지르'라는 재상직을 최고직으로 둔 것에 반해 하프스 왕조는 3명의 와지르를 두어 권력을 분산시켰고 시종장인 '하집'이 군주와의 알현을 주관하여 와지르 이상의 권세를 누렸다.[4] 또한 하프스 왕조의 군주는 매주 카디, 무프티를 모아 사법 회의를 열었으며 조정에 아민 알 우마나, 라이스 알 툿자르라고 불리는 상인 대표를 두기도 하였다. 그들은 고위직으로서 각각 장인들, 장거리 무역상들의 이익을 대변하였다. 하프스 왕조가 상업적으로 번성했음을 보여주는 점이다.

4. 여담

기원후 9세기, 크레타 섬 최초의 무슬림 아미르였던 아부 하프스(Abu Hafs Umar)와 성씨는 같지만, 혈통적으로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이 사람은 알안달루스 출신의 해적 겸 난민 지도자였는데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9세기 무렵 크레타 섬을 정복해 3~4세대에 걸쳐 독립 세력을 이루다가 동로마 제국에 의해 토벌 되었고, 마그레브나 아프리카 해안 영토와는 무관한 것.[5] 사실 하프스(الحفص, Hafs)라는 이름(성씨)은 중세 아랍어권에서는 비교적 흔한 인명이었다.


[1] 무와히드 왕조의 최고결정기구.[2] 당시 맘루크 술탄이었던 바이바르스가 군대를 파견하려 했으나 그 전에 물리쳤다.[3] 다만 이는 서쪽의 마린 왕조와 자얀 왕조가 서로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4] 출처: 아랍인의 역사, 앨버트 후리니 p252.[5] 패망 후 그의 후손 아네마스는 로마 황제의 신하가 되었으며 정교회로 개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