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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르키예어 Saltuklu Beyliği1079 ~ 1202년간 튀르키예 동부를 지배한 튀르크계 왕조. 셀주크 제국의 쇠퇴와 룸 술탄국의 통일 사이에 아나톨리아 반도에 할거했던 여러 튀르크 토후국들 중 하나이다. 6번째 군주인 멜리케 마마 하툰은 이슬람 역사상 몇 안되는 여왕 중 한명이다. 살투크 조는 동남쪽의 아흐라트 후국과 친교를 맺었으나 동쪽의 샤다드 왕조나 조지아 왕국과는 대립과 동맹을 반복하였다. 그러다 1202년, 룸 셀주크의 쉴레이만샤 2세에게 멸망당하였다.
2. 역사
마마 하툰이 테르칸에 건설한 카라반사라이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술탄 알프 아르슬란의 부하인 살투크 1세가 에르주룸 일대를 하사받은 것이 시초였다. 1077-79년에 동로마 제국이 에르주룸을 점령하였는데, 살투크는 이를 회복하고 베이를 칭하였다. 그의 후계자 알리 때부터는 사실상 독립국이었다. 알리의 아들인 살투크 2세는 자신의 딸에게 청혼한 샤다드 왕조의 아미르 파크르 앗 딘의 요청을 거절하였다. 파크르는 조지아 왕국의 데메트리오스 1세와 공모한 후 살투크 2세를 아니로 초청, 매복하고 있던 조지아 군대에 넘겨주었다. 포로가 된 살투크 2세는 다시는 조지아와 싸우지 않겠다는 다짐 후에 풀려났다. (1154년)
다만 같은 무슬림 군주에 대한 복수로 그리스도교 세력과 동맹한 파크르 앗 딘은 악화된 여론으로 폐위되었고 동생 파즐 5세가 즉위하였다. 하지만 파즐은 조지아의 공격에 수도 아니를 상실하고 추방되었다. (1161년) 이에 경각심을 느낀 인근의 무슬림 군주들은 아제르바이잔의 아타베그 (엘디귀즈 왕조)를 중심으로 연합하여 반격하였다. 살투크 2세도 그 일원이었으나 조지아 군대와 마주하자 약속대로 퇴각하였다. 그럼에도 아니는 2년간의 공성전 끝에 함락되었고 파즐 5세의 동생 샤한샤가 엘디귀즈 조에 의해 옹립되었다. (1164년)
이후 조지아와 엘디귀즈 왕조 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영토를 확장한 살투크 2세는 1168년에 사망하였고 아들 나시룻딘 무함마드가 즉위하였다. 1174년, 조지아의 숙적이던 샴스 앗딘 엘뒤기즈가 사망하자 조지아 국왕 기오르기 3세는 재차 아니를 정복, 샤다드 왕조를 축출하였다. 이후 조지아 군대는 살투크 왕조도 공격하여 에르주룸까지 함락한 후 귀환하였다. 쇠퇴기의 와중에 나시룻딘이 사망하였고 여동생인 멜리케 마마 하툰이 즉위하였다. (1191년) 그녀는 에르주룸과 에르진잔 사이에 위치한 테르칸에 신도시를 세웠는데, 현재까지도 카라반사라이, 모스크, 하맘, 영묘 등이 남아있다.[1]
9년간 재위한 마마 하툰은 친위 세력 확대를 위해 맘루크 (용병) 대장과의 결혼을 추진하다가 귀족 (베이)들에게 폐위되었다. (1200년) 이후 옹립된 그녀의 아들 알라웃딘 무함마드는 1202년, 조지아 원정을 위해 에르주름을 지나던 룸 술탄국의 쉴레이만샤 2세에 의해 사로잡혀 감금되었다. 이로써 살투크 왕조는 멸망하고 에르주름 일대는 룸 셀주크 조의 영토가 되었다.
[1] 최근까지도 테르칸은 마마하툰으로 불렸고 현지에선 그리 불리기도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