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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르키예어 Ramazanoğulları Beyliği영어 Ramadanid Emirate (라마잔 토후국)
중세 말엽 킬리키아 지방을 지배한 튀르크 왕조. 본래 맘루크 왕조가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을 멸한 후 공격을 도운 튀르크 부족에게 영지를 내어준 것이 그 근원이다. 따라서 맘루크 조의 속국이었으나 14세기 말엽 사실상 독립하였고, 맘루크-오스만 국경의 완충 지대로 작용하였다. 1517년 오스만 제국에 복속하였다. 카라만 왕조나 둘카디르 왕조와 달리 오스만 조에 지속적으로 충성하였기에 1608년까지 자치를 누리며 왕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종교적으로는 수피 벡타쉬 종파를 신봉하였고, 250여년간 집권하며 아다나에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2. 역사
아나톨리아에 세워진 여러 토후국들 중 유일하게 라마잔 조 만이 셀주크계 베이국이 아니었다. 라마잔 조의 주체인 유레이르 튀르크 인들은 본래 트란스옥시아나에 거주하다가 몽골의 침공을 피해 서아시아를 횡단하여 맘루크 술탄의 허가 하에 시리아 해안에 정착하였다. 그러다 14세기 중반 일 칸국의 해체와 함께 그의 보호에 의존하던 킬리키아의 아르메니아 왕국이 약화되자 이들은 맘루크 조의 선봉으로써 지속적인 공격에 나섰다. 그중 1352년 라마잔 베이가 이끄는 튀르크멘이 자밀리에 거점을 마련하였다. 이후 라마잔 베이는 카이로를 방문, 술탄 앗 살리흐로부터 킬리키아의 아미르로 봉해졌다. 1359년 맘루크 군이 아다나와 타르수스를 점령하였고, 1375년에는 마침내 시스를 포함한 킬리키아 전역을 정복하였다.맘루크 조는 라마잔 베이에게 킬리키아 지배권을 주기는 했지만 타르수스, 아야스, 사르산디카르, 시스에는 아미르를 파견하고 수비대를 두어 통제의 거점으로 삼았다. 라마잔 조는 남은 도시들 중 아다나를 수도로 삼았고, 타르수스에 이집트 인들이 이주한 것처럼 튀르크멘이 아다나로 유입되었다. 라마잔 베이의 사후 계승한 아들 이브라힘 베이는 카라만 조와 연합하여 맘루크 조의 수위권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였다. 이에 맘루크 조정은 토벌군을 파견하였으나 이브라힘 베이는 벨렌 전투에서 이를 격퇴하고 적군 지휘관 테무르 베이를 사로잡았다. 이에 알레포의 아미르 일보가가 복속할 정도였다. 15세기에는 오스만-맘루크 조의 완충지대였고, 외교적으로 중요하였다. 1516년 셀림 1세가 남하하자 같은 이름의 셀림 베이가 복속하였다. 이후로도 6명의 왕공들이 파샤 (2명) 혹은 베이 (4명)의 칭호를 지니고 아다나 산작을 세습적으로 다스리며 92년간 오스만 제국의 제후국으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