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4 11:35:15

트란실바니아

루마니아와 몰도바의 역사 (Istoria României şi Moldov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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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란실바니아의 문장.

역사적으로 트란실바니아의 세 거주민족인 헝가리 귀족계층 [1](독수리), 세케이인(헝가리계 민족, 해와 달), 독일인(7개의 붉은 성)을 상징한다.
1. 개요2. 상징3. 지형
3.1. 트란실바니아 고원 영역
3.1.1. 도시3.1.2. 트란실바니아 평원
3.2. 바나트 지방
3.2.1. 도시
3.3. 크리사나 지방3.4. 마라무레스 지방
4. 도시
4.1. 독일인들이 정착한 일곱도시4.2. 현재의 주요도시들
5. 역사
5.1. 다키아 왕국 시대5.2. 로마 속주 시대5.3. 불가리아 제국 시대5.4. 헝가리 왕국 영토 시대5.5. 트란실바니아 자치 공국 영토 시대5.6. 합스부르크 영토: 1688 ~ 18675.7. 이중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내의 헝가리 왕국 영토: 1867 ~ 19205.8. 2차 세계대전시기5.9. 이후
6. 기타

루마니아어: Transilvania[2]
헝가리어 : Erdély[3]
독일어 : Siebenbürgen[4]
영어: Transylvania

1. 개요

Ultra Silvam(숲 너머 땅)

루마니아 북서부, 중부 지방을 통틀어 일컫는 역사적 지명. 위의 지도의 오렌지색 + 반 오렌지색 부분이다. 즉, 나라 이름이 아닌 특정 지방의 명칭을 의미한다.

오렌지색 부분은 작은 의미의 트란실바니아의 영역, 반오렌지색은 작은 영역의 트란실바니아 외에 헝가리 왕국으로부터 루마니아가 할양받은 영토로써 1차 대전이후 루마니아가 헝가리 왕국으로부터 확보한 영토 전체를 큰 의미에서 그냥 트란실바니아라고 퉁쳐서 부르기도 한다.[5][6]
현재 루마니아는 트란실바니아, 왈라키아, 몰다비아, 이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이 중 트란실바니아는 현재 루마니아의 중서부를 이루는 영역이다. 남부의 왈라키아(Wallachia)와는 카르파티아 산맥을 경계로 남북으로 마주하고 있는 평원 지대이다. 서쪽으로는 헝가리와 접하고 있으며 범위를 넓게 포함하면 북동부 쪽으로는 우크라이나측 부코비나와 접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접하고 있지는 않으나 역시 루마니아의 강역이었던 몰도바와 상당히 가깝다.

이곳은 900년 가까이 헝가리 왕국의 영토였던 곳으로, 12세기부터 헝가리는 동방식민운동의 일환으로 트란실바니아 남동쪽 카르파티아 산맥 일대에 독일인들을 정착시켰다. 이 독일인들은 루마니아어로 '색슨족'이라는 뜻에서 사시(Sași)라고 불렸다. 이들이 바로 트란실바니아 독일인으로 이후 수백년 동안 트란실바니아의 지배 계급으로 존재하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절반 가량이 독일로 이주했고 남아있던 사람들도 민주화 이후 대부분 독일로 이민을 떠나[7], 현재 극소수만이 트란실바니아에 남아 살아가고 있다.[8][9]

참고로 2017년 현재 루마니아 대통령 클라우스 이오한니스(Klaus Iohannis)가 트린실바니아 독일인이다.

2. 상징

트란실바니아 지역은 중세시대 이후부터 여러 독립 군주와 국가의 지배를 받아왔고, 다양한 문장과 깃발이 사용 되었다. 합스부르크가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위 문장을 트란실바니아의 군주로써 자신의 문장으로 채택하면서, 오늘날까지 사실상 공식적인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헝가리왕국과 루마니아왕국 그리고 오늘날 루마니아 공화국의 국가 문장의 일부로 삽입되어 사용 중이다.
검은 독수리는 트란실바니아 영역.[10]을 상징한다. 문장 상단의 독수리는 트란실바니아 지역에서 사용된 여러 문장과 상징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는데, 폴란드의 국가 상징인 백 독수리의 현지화버전으로 보기도 한다.[11] 해와 달은 트란실바니아의 헝가리계 민족인 세케이족(Székelys)이 정착한 지역, 통칭 세케이랜드의 상징이다. 그리고 아래의 일곱 개의 탑은 13세기 트란실바니아로 이주한 독일인들이 대거 정착한 일곱 개의 도시[12]를 뜻하며 트란실바니아 독일인을 가리킨다. 문장을 이루는 세가지 상징물은 중세 시대 '세 민족의 연합'[13]을 이룬 헝가리 귀족(독수리), 세케이인(해와 달), 독일계(7개의 성)를 상징한다. 피지배 민족이자,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다수인 루마니아계의 상징은 배제 되었는데, 이를 반박하여, 상단의 독수리는 왈라키아의 독수리 문장을 차용하여 루마니아계를 의미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왈라키아 독수리 문장을 차용했다는 견해는, 이 문장의 정식으로 도입하고 사용한 마리아 테레지아, 그리고 그 이후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군주들이 지속적으로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부코비나, 왈라키아, 몰도바 등 루마니아계 거주 영지를 탈취하여 확장하려 노력했었고, 트란실바니아 대공국의 방위를 위해 세케이인 외에도 함께 루마니아계 연대도 창설되었음을 들어, 문장 상단의 독수리가 당시 합스부르크 통치하에 있던 루마니아계 주민을 상징했다고 본다. 현재 트란실바니아를 점유하고 있는 루마니아에서는 이 견해가 지지를 받고 있다.
오늘날 트란실바니아의 문장은 트란실바니아의 주요 민족인 루마니아계, 헝가리계(세케이인), 독일인을 상징한다로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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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란실바니아 지방의 삼색기

한편 트란실바니아 지역 문장의 배경색인 파란색-빨간색-노란색(황금색)을 활용하여 청-적-황의 삼색기가 지역 축제나 집회등에서 사용됐다. 문장은 없이그리기 귀찮아서 삼색기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배색이 루마니아의 삼색기와 유사했고, 이에 따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기 헝가리 왕국 내 루마니아계 주민들이 훼이크용으로 독립운동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3. 지형

3.1. 트란실바니아 고원 영역

중앙의 평균해발 300 ~ 500m 정도가 지속되는 고원. 무레강(Mureș), 솜즈강(Someș), 크리스강(Criș), 올트강(Olt)이 흐른다.

3.1.1. 도시

3.1.2. 트란실바니아 평원

3.2. 바나트 지방

바나트 지방은 옛 헝가리 왕국의 남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북부의 무레슈 강과 서부의 티서 강 남부는 다뉴브 강으로 둘러쌓여있고 동부는 트란실바니아와 접하고 있는 정방형의 지역이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오스만으로부터 가장 최후에 수복한 헝가리왕국의 영토로써, 가장 마지막까지 전쟁터가 되었기 때문에[14] 황폐화되어 버려진 인구 공백지가 많았다. 이곳을 수복한 오스트리아는 제국 곳곳에서 이주민을 정착시켰다.[15] 바나트 지방의 주요 구성민족은 루마니아계와 오스만을 피해 다뉴브강을 건너 이주해온 세르비아계, 그리고 독일계와 헝가리계가 거주했었다.[16] 1차 대전 종전 직전, 프랑스군[17]과 함께 세르비아군이 바나트 전역을 점령했고, 곧 이어서 누가 바나트를 차지할 것인 지를 두고 루마니아와 세르비아[18]간의 갈등이 격화될 조짐을 보였다. 바나트를 선점한 유고슬라비아는 바나트 전역을 합병하려 했고, 바나트의 루마니아계가 세르비아계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이에 반발한 루마니아 역시 바나트 전체를 요구했다. 이에 프랑스가 중재에 나서 루마니아와 유고슬라비아간에 바나트를 분할했다. 세르비아계가 주류인 서부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합류해 오늘날 보이보디나 자치주의 동부를 이루고 있고, 바나트의 중심 도시인 티미쇼아라를 포함한 동부는 루마니아 왕국에 합류했다.
바나트와 트란실바니아는 서로 별개의 지역사를 가지고 있고[19] 바나트라는 지방의 정체성과 존재감은 꽤 큰편이다.[20] 일례로 바나트의 상징은 사자인데 루마니아의 국가 문장에는 트란실바니아와 별도로 바나트의 문장이 포함되어 있다.

3.2.1. 도시

  • 티미쇼아라

3.3. 크리사나 지방

3.4. 마라무레스 지방

트란실바니아 북부에 접해있던 헝가리 왕국의 주 마러머로스 주를 1차 대전 이후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가 남북으로 분할하여 루테니아계 주민이 다수 거주하던 북부지역은 우크라이나의 자카르파티야 오블라스트의 일부가 되었고(북 마라무레쉬) 루마니아계가 다수 거주하던 남부지역은 루마니아령 마라무레스로 편입되었다. 조용한 산동네라 별로 존재감이 없다.

4. 도시

4.1. 독일인들이 정착한 일곱도시

  • 비스트리츠(Bistritz)·비스트리차(Bistrița),
  • 헤르만슈타트(Hermannstadt)·시비우(Sibiu),
  • 클라우젠부르크(Klausenburg)·클루지나포카(Cluj-Napoca),
  • 크론슈타트(Kronstadt)·브라쇼브(Brașov),
  • 메디아슈(Mediasch)·메디아슈(Mediaș),
  • 뮐바흐(Mühlbach)·세베슈(Sebeș),
  • 셰스부르크(Schässburg)·시기쇼아라(Sighișoara).

트란실바니아 작센인은 트란실바니아의 변경을 수비하기 위해 12세기 경부터 헝가리 국왕으로부터 초청받아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오늘날의 작센 뿐 아니라, 신성로마제국 전지역 심지어는 오늘날 프랑스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란실바니아에 이주한 독일계는 주로 '작센 법전'을 따랐기 때문에 트란실바니아의 다른 민족들은 트란실바니아의 독일계를 퉁쳐서 트란실바니아 '작센'이라 불렀다. 중세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700년 가까이 독일본국으로부터 고립된 지역에서 다른 민족들의 영향을 받으며 거주한 결과 트란실바니아 작센인들은 독특한 문화,방언과 함께 작센인이라는 독자적인 정체성이 형성 되었다.
트란실바니아는 여러 이민족이 거쳐갔는데 쿠만인,몽골인,불가리아,왈라키아인,튀르크인등이 트란실바니아를 침공했었다. 한줌 밖에 안되는 독일인이 전멸 안하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은게 용할지경이다 이주한 독일인 중에는 광부나 상공업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았고 자연히 독일인 이주지역은 도시화된 거주지를 형성했다. 하도 이민족의 침략에 시달리자 트란실바니아 독일인은 7개의 주요 도시를 비롯해서 정착지를 요새화하기 시작했다.
7개 주요 도시 중에 특이한 사례는 오늘날 루마니아 최대의 기계공업 도시인 브라쇼브(크론슈타트)인데, 브라쇼브를 건설한 이들이 다름아니라 그 유명한 튜튼 기사단이다.[21] 헌데 튜튼 기사단은 트란실바니아에 정착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교황청의 사주를 받고 쿠데타를 일으키려다가 사전 발각되서 추방 당한다. 추방 당한 뒤 이주하여 개척한 곳이 폴란드 왕국의 동프로이센. 다만 기사단과 같이 따라왔던 농민 등 민간인들은 브라쇼브에 계속 남는 것을 허락 받았고 2차대전 전까지는 브라쇼브에는 시민의 1/3 가량인 대략2-3만이 독일계였다.
한편, 독일인들이 건설한 요새시설은 주로 정착지 중심에 위치한 교회를 요새화하는 경우가 많았다.정착지 전체를 벽으로 두를 만큼의 돈이 없어서.. 이러한 요새시설은 오늘날 트란실바니아에 300개가 존재하고 이중 150개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1993년에는 7개의 요새시설이 "트란실바니아의 요새화된 교회와 마을"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

4.2. 현재의 주요도시들

5. 역사

1075년 트란실바니아란 지명이 역사책에 처음 등장하였다. 중부 유럽, 발칸 반도 역사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지역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헝가리인과 루마니아인이 서로 각축을 벌이던 지역으로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의 영토에 포함되었다가 독립되었다가 했는데, 근대 이후에는 크게 바로 옆의 헝가리, 유럽의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왕가 그리고 이슬람 쪽의 오스만투르크. 이렇게 세가지 세력이 중요원인이었다.

5.1. 다키아 왕국 시대

독립세력 다키아인 등장.

처음으로 이 지역에 나타난 정착세력은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 300여년간 존속했던 '다키아 왕국'이다. 이들은 매우 강력하고 규율이 잡힌 군대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로마에 위협이 됐고, 급기야 로마 황제들로 하여금 이 지역에 원정을 기획하게 만든다.

결국, 로마 제국과 다뉴브 강 하류 북부의 패권을 둘러싸고 도미티아누스 시절과 트라야누스 시절에 두 번 전쟁을 치렀고 로마역사상 최대규모 원정이었던 트라야누스와의 다키아 전쟁에서 패해 멸망했다.

최후의 왕은 데케발루스.[24]

5.2. 로마 속주 시대

다키아인의 로마화.

이로써 다키아 왕국은 완전히 멸망했고, 로마는 이 지역에 다키아 속주를 설치하고 트라야누스는 초대 총독에 카이우스 디오를 임명한다.

트라야누스가 다키아 전쟁을 통해 다키아를 멸망시킨 것은 일종의 순망치한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나마 게르만족을 견제해주던 다키아를 완전히 멸망시켜서 로마 동부의 핵심지역인 발칸 반도 쪽이 게르만족에게 직접 노출되었고, 견제세력이 없는 게르만족만 성장시켜줘서 로마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금은광이 있다는 것이 장점이긴 했지만 위치가 교두보 수준이고 경계선도 그냥 산맥 아니면 평지인지라 적의 침략을 막는 게 힘들어 비용이 더 들었다.

183년 콤모두스 황제 시절에 다시 이 지역에서 전쟁이 발발하는데, 다키아족의 독립운동인지, 아니면 게르만족같은 야만족의 침략인지 자세한 정황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편 다키아 주변의 게르만족인 고트족은 계속 다키아 속주를 파상적으로 공격했고, 로마는 이에 견딜 수가 없어서 275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결국 다키아 속주를 포기하고 이 지역에 주둔하던 군단의 기지를 다뉴브강 남쪽으로 옮겼다.

이후 33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 지역을 일시적으로 수복하지만 얼마안가 다시 상실한다. 이후 이 지역은 중세로 넘어가며 루마니아가 된다.

5.3. 불가리아 제국 시대

로마화된 다키아인 + 투르크인 지배.

오늘날의 캅카스 북부, 볼가 강 유역, 우크라이나 일대에 거주하던 튀르크계 유목 국가인 '불가르'가 발칸반도 동북부로 남하해 불가르족의 나라를 건국한 것이 불가리아 제국의 시초이다. 681년,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정식으로 인정 받았다.

불가리아 제1제국은 9세기 초반에는 영토를 크게 확장하여 오늘날의 루마니아, 헝가리, 아드리아해 연안까지 불가리아의 영토로 편입했고, 이 과정에서 트란실바니아도 불가리아 제1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시메온 1세(Симеон I, 재위 893 ~ 927)때는 차르의 칭호를 사용했고, 동로마 제국펠로폰네소스 반도까지 밀어 붙여 그리스 전체를 차지할 뻔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가리아 제국은 시메온 1세 사후 10세기부터 내정이 혼란스러워지고 동쪽에서 유입된 유목민 마자르족, 키예프 공국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침략을 받기 시작해 1014년 클레이디온 전투에서 동로마 제국 황제 바실리오스 2세가 이끄는 동로마군에게 기록적인 패배를 당한 후, 1018년 멸망하게되며, 트란실바니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된다.

5.4. 헝가리 왕국 영토 시대

로마화된 다키아인 + 투르크인 + 마자르인 지배.

11세기 이후부터는, 정확히는 1003년, 헝가리 왕국이슈트반 1세가 이 지방을 차지하여 16세기까지 헝가리의 강역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바로 아래의 왈라키아 지역은 바사라브 1세에 의해 1317년 헝가리 왕국에서 독립해 왈라키아 공국으로 분리된다.

대략 12세기를 전후로 하여 트란실바니아의 방위를 위해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세케이인과 독일계인 트란실바니아 작센인들이 트란실바니아에 정착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14세기 중반, 1000년 이래 헝가리를 통치한 아르파드 왕가의 대가 끊기고 이후 헝가리의 왕위는 앙주가(프랑스 왕가 출신이자 나폴리 왕국의 왕가)의 카로이 로베르트(Károly Róbert)에게 넘어간다. 카로이와 그의 아들 러요시 1세의 재위기(1342-1381)에 헝가리는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러요시는 계속된 정복전쟁으로 방대한 영토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후반기엔 폴란드 왕위까지 겸임하게 됨으로써 일시적으로 헝가리 왕국은 오늘날의 헝가리 전역, 폴란드 대부분, 루마니아의 절반(트란실바니아), 세르비아 북부(베오그라드 포함),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전역, 심지어 오스트리아의 일부까지 지배했으며 신성 로마 황제를 배출하기도 했다.

이후 후녀디 야노시(1407~1456)가 헝가리왕의 섭정으로 트란실바니아의 총독으로 오게되고, 왈라키아 공국용공 블라드 2세[25]을 견제하면서 발칸반도로 영역을 넓혀가던 오스만 투르크와 전쟁을 치른다.

이 시절, 트란실바니아의 후녀디 야노시, 왈라키아 공국블라드 가시공, 몰다비아 공국슈테판 3세는 각각 오스만 제국의 침입에서 합심하여 이를 물리친 것으로 각국에서 영웅적 평가를 받게된다.

후녀디 야노시의 아들로 헝가리 왕위에 오른 마차시 1세 때에는 헝가리 왕국의 힘이 가장 강할 때였다. 그러나 그의 사후 헝가리는 급격히 약해졌다.

5.5. 트란실바니아 자치 공국 영토 시대

1526년 모하치 전투에서 헝가리 왕국오스만 투르크에게 대패한 후, 헝가리 왕국은 세 부분으로 쪼개지고, 이후 동쪽 부분인 '트란실바니아' 지역은 1541년부터 1711년까지, 트란실바니아 공국이란 이름으로 200년 가까이 자치왕국이 된다. 특히 1606년부터 트란실바니아 공국을 다스렸던 '보츠커이 이슈트반(bocskai istván)' 시절 전성기를 누리지만, 이는 라코치 2세때 무리한 확장 정책의 결과로 끝나게 된다.

5.6. 합스부르크 영토: 1688 ~ 1867

1688년 이후, 트란실바니아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토가 되어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될 때까지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5.7. 이중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내의 헝가리 왕국 영토: 1867 ~ 1920

1867년 이중 제국 성립 이후에는 오스트리아 제국 산하의 독립적인 공국에서 헝가리 왕국의 영토로 합병 되었고, 헝가리 인들에게 탄압 받았다. 당시의 헝가리는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이 고조되어 있었기 때문에, 헝가리 내 다른 소수 민족들은 자신들의 안전과 민족의 정체성 유지를 걱정할 정도였다. 이중 제국성립 이후 오스트리아 쪽에 편입된 민족들은 오히려 헝가리에서 보다 더 자유로웠다고 한다.

참고로, 브램 스토커드라큘라는 이 시기(1897년)에 쓰여졌다. [26]

결국 이 지역의 과반수가 루마니아인이었던 관계로 1920년 트리아농 조약 체결 이후, 헝가리에서 분리되어 루마니아 왕국으로 귀속된다.

5.8. 2차 세계대전시기

한때 헝가리의 호르티 미클로시 정부가 추축국에 접근하여 1940년 8월 제 2차 빈 협정을 체결, 9월에 북부 루마니아를 침공하며 트란실바니아 일부를 회복했지만, 독소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소련이 루마니아로 밀고 들어오자 루마니아가 항복하고는 전향해서 독일과 헝가리에 선전포고를 날리고 소련군과 함께 쳐들어오면서 무효화되었다. 다만 전통적으로 헝가리의 영역이었기에 트란실바니아 지방을 중심으로 헝가리인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공산화 이후 시행된 헝가리인 추방 정책 이후 지금까지도 헝가리인은 루마니아 전체 인구중 약 6.5 퍼센트를 차지하여 최대 소수 인종 그룹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2차대전 후 자국 내 독일인을 추방한 폴란드나 체코슬로바키아와 달리, 루마니아 공산정권은 독일인들을 추방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공산 정권 시절만 해도 30만 명 가량의 독일인이 이 지역에 계속 살았지만[27] 민주화 후에 대부분 독일로 이민을 떠나 지금은 3만 명 남짓만이 남아 있다.

5.9. 이후

동유럽 혁명 당시 루마니아의 혁명을 촉발시킨 '티미쇼아라 사건'이 바로 이곳 트란실바니아 지방의[28] 헝가리인 개신교 성직자 퇴케시 라즐로(Tőkés László) 목사가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정권에 의해 해임당하면서 벌어졌다.

6. 기타

브램 스토커의 걸작 드라큘라의 배경으로 쓰여서 흡혈귀의 고장'이란 이미지가 남아있다. 빅토리아 시대인1897년 출간 당시, 이곳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다. 그러나 드라큘라 백작의 모티브가 되었던 블라드 체페슈는 트란실바니아가 아닌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이었다. 같은 루마니아의 지방이긴 하지만, 왈라키아는 당시 루마니아 왕국의 일부였다.
드라큘라의 인기 덕분인지 영화, 만화, 게임, 소설 등을 가리지 않고 온갖 창작물에서 드라큘라를 모티브로 한 케릭터가 나오면 여지 없이 등장하거나 언급된다. 영화 제목이나 게임 브금으로도 쓰일 정도이니 이쯤되면 소속국가인 루마니아보다도 일개 지역이 더 유명하다(...).


[1] 또는 루마니아인[2] trans/sylvania 말 그대로 숲 너머 땅[3] 에르데이, 루마니아어 항목에 자세히 나와있지만, 루마니아어는 근대 이후에 민족성 정립 차원에서 슬라브어 등 다른 언어의 흔적을 없애고, 라틴식, 또는 같은 로망스어 계통인 프랑스식으로 언어 정화 운동을 벌였었고, 트란실바니아라는 명칭은 이때에 생겨났다. 트란실바니아라는 명칭이 도입되어 널리 쓰이기 전에는 루마니아식으론 'ardeal'이라 불렀다[4] '일곱 개의 도시' 라는 뜻, 독일인들이 정착한 일곱 개의 도시에서 유래한 명칭이다.[5] 옛 헝가리 왕국이었다가 루마니아에 넘어간 영토는 거의 10만 ㎢에 달하는데, 남한 면적과 비슷하고 현재의 헝가리보다도 더 넓다.[6] 아무래도 트리아농 조약으로 루마니아가 얻은 영토는 트란실바니아가 핵심이고 나머지는 1+1 같은 느낌이 강하다보니[7] 오스트리아 본토에서 오스트리아 치하 트란실바니아로 이주한 오스트리아인(이들 또한 당연히 독일계)의 후손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오스트리아로 이민을 떠났다.[8] 2차 대전 당시, 소련군이 루마니아와 트란실바니아로 진격해오자 이를 피해 상당수가 후퇴하는 독일군을 따라 피난을 했다.[9] 자국 내 독일인들을 추방한 폴란드나 체코슬로바키아와 달리 추방령은 내려지지 않아서 2차대전 이후로도 꽤 많은 수의 독일계가 냉전시기 루마니아 공산정권 치하에 남아서 거주하고 있었다. 서독정부는 경제적 지원을 조건으로 동구권의 재외동포에 비자를 발급하여 송환시키는 정책을 추진했고, 이에 따라 트란실바니아 독일인은 차우셰스쿠를 피해 도망가면서점진적으로 줄어들었고, 1989년 동구권이 붕괴되자 급격히 감소했다.[10] 후술할 세케이랜드와 독일계가 정착한 도시지역을 이외의 트란실바니아 나머지 영역들[11] 트란실바니아에 인접한 지역인 폴란드나 왈라키아 등에서도 독수리를 상징으로 사용하는데 몇몇 학자들은 트란실바니아의 군주들이 인접 지역의 통치권 주장을 하기 위한 의도로 독수리를 문장으로 채택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실제로도 트란실바니아의 군주중에는 폴란드나 왈라키아 등 인접한 지역의 군주도 겸직하거나 군주직을 노렸던 사례가 꽤 많았다.[12] 비스트리츠(Bistritz)·비스트리차(Bistrița), 헤르만슈타트(Hermannstadt)·시비우(Sibiu), 클라우젠부르크(Klausenburg)·클루지나포카(Cluj-Napoca), 크론슈타트(Kronstadt)·브라쇼브(Brașov), 메디아슈(Mediasch)·메디아슈(Mediaș), 뮐바흐(Mühlbach)·세베슈(Sebeș), 셰스부르크(Schässburg)·시기쇼아라(Sighișoara).[13] 15세기 중반, 농민 운동에 대항하여 트란실바니아의 기득권 계층, 민족인 헝가리 귀족, 세케이인, 트란실바니아 작센인 간의 정치협약 있는 놈들이 다 헤쳐 먹겠다는 소리[14] 사부아 외젠 공이 오스만군을 격파한 젠타전투가 바나트에서 벌어졌다.[15] 전후 재건을 겸사하여 민족 구성을 복잡하게 하여 헝가리의 독립운동을 견제하려했다는 견해도 있다.내가 가지지 못할 바엔 헝가리놈들도 이 땅을 가질 수 없다![16] 그 외에도 바나트 불가리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바키아인, 체코인, 우크라이나인,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등 그야말로 합스부르크 제국 내에서 볼 수 있는 온갖 민족이 죄다 이주해서 뒤섞여 살고 있었고 합스부르크 제국 안의 작은 합스부르크라 불릴만큼 민족구성이 복잡했다.[17] 프랑스 다뉴브군(Army of Danube), 발칸반도에 파견되어 동맹국을 상대로 그리스 왕국 및 세르비아와 루마니아의 잔존병력과 함께 싸웠다.[18] 종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고왕국의 전신이 되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으로 개칭한 상태였다.[19] 전근대 이전에 트란실바니아 공국이 바나트 지방의 일부 또는 전체를 점유하기도 하고, 근현대 들어서는 트란실바니아 출신 루마니아계 인텔리가 바나트에서 민족운동을 이끌기도 하는 등 둘이 인접한 지역이다 보니 영향을 꽤 주고 받기는 했다.[20] 전간기에는 아예 바나트를 독립시켜서 헝가리, 세르비아, 루마니아 중 어디에도 포함 되지 않는 중립 완충국가화 시키자는 의견도 파리강화 회담에서 제기 됐다. 바나트 주민 대부분이 독립국 보다는 루마니아나 세르비아 본국에 합병되는 걸 선호해서 무산 됐지만 아예 독립시키자는 의견이 나올만큼 바나트의 고유의 지역 정체성이 어느정도 갖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1] 쿠만인 등 비 기독교 민족에 대항한 선교활동 십자군전쟁이 명분이었다.[22] 2011년 현재 루마니아 전체로보면 수도 부쿠레슈티에 이은 제2의 도시이다[23] 클루지나포카에 뒤이은 루마니아 제3의 도시[24] 라틴어식 이름이다. 다키아식 이름은 디우르파네우스(Diurpaneus).[25] 블라드 가시공의 아버지[26] 그래서 드라큘라 백작런던으로 이주하려 한건가![27] 전쟁 전의 70만 명에 비해서는 줄어들었다. 2차대전이 끝날 무렵에 많을 수가 독일로 이주했기 때문[28] 정확히 말하자면 맨 위 그림에서 연하게 칠해진 바나트 지방에 속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