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3 13:35:50

트란실바니아

루마니아와 몰도바의 역사 (Istoria României şi Moldov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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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란실바니아의 문장. 검은 독수리는 왈라키아의 상징, 즉 루마니아인을 가리킨다. 해와 달은 트란실바니아의 헝가리인인 세케이족(Székelys)의 상징, 즉 헝가리인을 가리킨다. 그리고 아래의 일곱 개의 탑은 13세기 트란실바니아로 이주한 독일인들이 대거 정착한 일곱 개의 도시[1]를 뜻하며 트란실바니아 독일인을 가리킨다. 즉 트란실바니아의 주요 민족인 루마니아인, 헝가리인, 독일인을 한 문장 안에 표현한 것이다.
1. 개요2. 지형
2.1. 트란실바니아 고원 영역
2.1.1. 도시2.1.2. 트란실바니아 평원
2.2. 바나트 지방2.3. 크리사나 지방2.4. 마라무레스 지방
3. 역사
3.1. 다키아 왕국 시대3.2. 로마 속주 시대3.3. 불가리아 제국 시대3.4. 헝가리 왕국 영토 시대3.5. 트란실바니아 자치 공국 영토 시대3.6. 합스부르크 영토: 1688 ~ 18673.7. 이중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내의 헝가리 왕국 영토: 1867 ~ 19203.8. 2차 세계대전시기3.9. 이후
4. 주요도시5. 기타

루마니아어: Transilvania
헝가리어 : Erdély
독일어 : Siebenbürgen[2]
영어: Transylvania

1. 개요

Ultra Silvam(숲 너머 땅)

루마니아 북서부, 중부 지방을 통틀어 일컫는 역사적 지명. 나라 이름이 아닌 특정 지방의 명칭을 의미한다.

현재 루마니아는 트란실바니아, 왈라키아, 몰다비아, 이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이 중 트란실바니아는 현재 루마니아의 중서부를 이루는 영역이다. 왈라키아(Wallachia)와는 카르파티아 산맥을 경계로 남북으로 마주하고 있는 평원 지대이다. 서쪽으로는 헝가리와 접하고 있으며 범위를 넓게 포함하면 북동부 쪽으로는 우크라이나측 부코비나와 접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접하고 있지는 않으나 역시 루마니아의 강역이었던 몰도바와 상당히 가깝다.

2. 지형

2.1. 트란실바니아 고원 영역

중앙의 평균해발 300 ~ 500m 정도가 지속되는 고원. 무레강(Mureș), 솜즈강(Someș), 크리스강(Criș), 올트강(Olt)이 흐른다.

2.1.1. 도시

2.1.2. 트란실바니아 평원

2.2. 바나트 지방

2.3. 크리사나 지방

2.4. 마라무레스 지방

3. 역사

1075년 트란실바니아란 지명이 역사책에 처음 등장하였다. 중부 유럽, 발칸 반도 역사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지역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헝가리인과 루마니아인이 서로 각축을 벌이던 지역으로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의 영토에 포함되었다가 독립되었다가 했는데, 근대 이후에는 크게 바로 옆의 헝가리, 유럽의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왕가 그리고 이슬람 쪽의 오스만투르크. 이렇게 세가지 세력이 중요원인이었다.

3.1. 다키아 왕국 시대

독립세력 다키아인 등장.

처음으로 이 지역에 나타난 정착세력은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 300여년간 존속했던 '다키아 왕국'이다. 이들은 매우 강력하고 규율이 잡힌 군대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로마에 위협이 됐고, 급기야 로마 황제들로 하여금 이 지역에 원정을 기획하게 만든다.

결국, 로마제국과 다뉴브 강 하류 북부의 패권을 둘러싸고 도미티아누스 시절과 트라야누스 시절에 두 번 전쟁을 치렀고 로마역사상 최대규모 원정이었던 트라야누스와의 다키아 전쟁에서 패해 멸망했다.

최후의 왕은 데케발루스.[3]

3.2. 로마 속주 시대

다키아인의 로마화.

이로써 다키아 왕국은 완전히 멸망했고, 로마는 이 지역에 다키아 속주를 설치하고 트라야누스는 초대 총독에 카이우스 디오를 임명한다.

트라야누스가 다키아 전쟁을 통해 다키아를 멸망시킨 것은 일종의 순망치한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나마 게르만족을 견제해주던 다키아를 완전히 멸망시켜서 로마 동부의 핵심지역인 발칸 반도 쪽이 게르만족에게 직접 노출되었고, 견제세력이 없는 게르만족만 성장시켜줘서 로마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금은광이 있다는 것이 장점이긴 했지만 위치가 교두보 수준이고 경계선도 그냥 산맥 아니면 평지인지라 적의 침략을 막는 게 힘들어 비용이 더 들었다.

183년 콤모두스 황제 시절에 다시 이 지역에서 전쟁이 발발하는데, 다키아족의 독립운동인지, 아니면 게르만족같은 야만족의 침략인지 자세한 정황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편 다키아 주변의 게르만족인 고트족은 계속 다키아 속주를 파상적으로 공격했고, 로마는 이에 견딜 수가 없어서 275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결국 다키아 속주를 포기하고 이 지역에 주둔하던 군단의 기지를 다뉴브강 남쪽으로 옮겼다.

이후 33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 지역을 일시적으로 수복하지만 얼마안가 다시 상실한다. 이후 이 지역은 중세로 넘어가며 루마니아가 된다.

3.3. 불가리아 제국 시대

로마화된 다키아인 + 투르크인 지배.

오늘날의 캅카스 북부, 볼가 강 유역, 우크라이나 일대에 거주하던 튀르크계 유목 국가인 '불가르'가 발칸반도 동북부로 남하해 불가르족의 나라를 건국한 것이 불가리아 제국의 시초이다. 681년,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정식으로 인정 받았다.

불가리아 제국은 9세기 초반에는 영토를 크게 확장하여 오늘날의 루마니아, 헝가리, 아드리아해 연안까지 불가리아의 영토로 편입했고, 이 과정에서 트란실바니아도 불가리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시메온 1세(Симеон I, 재위 893 ~ 927)때는 차르의 칭호를 사용했고, 동로마 제국을 펠로폰네소스 반도까지 밀어 붙여 그리스 전체를 차지할 뻔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가리아 제국은 시메온 사후 10세기부터 내정이 혼란스러워지고 동쪽에서 유입된 유목민 마자르족, 키예프 공국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침략을 받기 시작해 1014년 클레이디온 전투에서 동로마 제국 황제 바실리오스 2세가 이끄는 동로마군에게 기록적인 패배를 당한 후, 1018년 멸망하게되며, 트란실바니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된다.

3.4. 헝가리 왕국 영토 시대

로마화된 다키아인 + 투르크인 + 마자르인 지배.

11세기 이후부터는 헝가리 왕국이 이 지방을 차지하여 16세기까지 헝가리의 강역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바로 아래의 왈라키아 지역은 바사라브 1세에 의해 1317년 헝가리 왕국에서 독립해 왈라키아 공국으로 분리된다.

이후 14세기 중반, 1000년 이래 헝가리를 통치한 아르파드 왕가의 대가 끊기고 이후 헝가리의 왕위는 앙주가(프랑스 왕가 출신이자 나폴리 왕국의 왕가)의 카로이 로베르트(Károly Róbert)에게 넘어간다. 카로이와 그의 아들 러요시 1세의 재위기(1342-1381)에 헝가리는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러요시는 계속된 정복전쟁으로 방대한 영토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후반기엔 폴란드 왕위까지 겸임하게 됨으로써 일시적으로 헝가리 왕국은 오늘날의 헝가리 전역, 폴란드 대부분, 루마니아의 절반, 세르비아 북부(베오그라드 포함),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전역, 심지어 오스트리아의 일부까지 지배했으며 신성 로마 황제를 배출하기도 했다.

이후 후녀디 야노시(1407~1456)가 헝가리왕의 섭정으로 트란실바니아의 총독으로 오게되고, 왈라키아 공국용공 블라드 2세[4]을 견제하면서 발칸반도로 영역을 넓혀가던 오스만 투르크와 전쟁을 치른다.

이 시절, 트란실바니아의 후녀디 야노시, 왈라키아 공국블라드 가시공, 몰다비아 공국슈테판 3세는 각각 오스만 제국의 침입에서 합심하여 이를 물리친 것으로 각국에서 영웅적 평가를 받게된다.

후녀디 야노시의 아들로 헝가리 왕위에 오른 마차시 1세 때에는 헝가리 왕국의 힘이 가장 강할 때였다. 그러나 그의 사후 헝가리는 급격히 약해졌다.

3.5. 트란실바니아 자치 공국 영토 시대

1526년 모하치 전투에서 헝가리 왕국오스만 투르크에게 대패한 후, 헝가리 왕국은 세 부분으로 쪼개지고, 이후 동쪽 부분인 '트란실바니아' 지역은 1541년부터 1711년까지, 트란실바니아 공국이란 이름으로 200년 가까이 자치왕국이 된다. 특히 1606년부터 트란실바니아 공국을 다스렸던 '보츠커이 이슈트반(bocskai istván)' 시절 전성기를 누리지만, 이는 라코치 2세때 무리한 확장 정책의 결과로 끝나게 된다.

3.6. 합스부르크 영토: 1688 ~ 1867

1688년 이후, 트란실바니아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토가 되어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될 때까지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3.7. 이중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내의 헝가리 왕국 영토: 1867 ~ 1920

1867년 이중 제국 성립 이후에는 헝가리 왕국의 영토가 되면서 헝가리 인들에게 탄압 받았다. 당시의 헝가리는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이 고조되어 있었기 때문에, 헝가리 내 다른 소수 민족들은 자신들의 안전과 민족의 정체성 유지를 걱정할 정도였다. 이중 제국성립 이후 오스트리아 쪽에 편입된 민족들은 오히려 헝가리에서 보다 더 자유로웠다고 한다.

참고로, 브램 스토커드라큘라는 이 시기(1897년)에 쓰여졌다. [5]

결국 이 지역의 과반수가 루마니아인이었던 관계로 1920년 트리아농 조약 체결 이후, 헝가리에서 분리되어 루마니아 왕국으로 귀속된다.

3.8. 2차 세계대전시기

한때 헝가리의 호르티 미클로시 정부가 추축국에 접근하여 1940년 8월 제 2차 빈 협정을 체결, 9월에 북부 루마니아를 침공하며 트란실바니아 일부를 회복했지만, 독소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소련이 루마니아로 밀고 들어오자 루마니아가 항복하고는 전향해서 독일과 헝가리에 선전포고를 날리고 소련군과 함께 쳐들어오면서 무효화되었다. 다만 전통적으로 헝가리의 영역이었기에 트란실바니아 지방을 중심으로 헝가리인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공산화 이후 시행된 헝가리인 추방 정책 이후 지금까지도 헝가리인은 루마니아 전체 인구중 약 6.5 퍼센트를 차지하여 최대 소수 인종 그룹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2차대전 후 자국 내 독일인을 추방한 폴란드나 체코슬로바키아와 달리, 루마니아 공산정권은 독일인들을 추방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공산 정권 시절만 해도 30만 명 가량의 독일인이 이 지역에 계속 살았지만[6] 민주화 후에 대부분 독일로 이민을 떠나 지금은 3만 명 남짓만이 남아 있다.

3.9. 이후

동유럽 혁명 당시 루마니아의 혁명을 촉발시킨 '티미쇼아라 사건'이 바로 이곳 트란실바니아 지방의[7] 헝가리인 개신교 성직자 퇴케시 라즐로(Tőkés László) 목사가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정권에 의해 해임당하면서 벌어졌다.

4. 주요도시

5. 기타

브램 스토커의 걸작 드라큘라의 배경으로 쓰여서 흡혈귀의 고장'이란 이미지가 남아있다. 출간 당시에 이곳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다. 그러나 드라큘라 백작의 모티브가 되었던 블라드 체페슈는 트란실바니아가 아닌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이었다. 같은 루마니아의 지방이긴 하지만, 왈라키아는 당시 루마니아 왕국의 일부였다.


[1] 비스트리츠(Bistritz)·비스트리차(Bistrița), 헤르만슈타트(Hermannstadt)·시비우(Sibiu), 클라우젠부르크(Klausenburg)·클루지나포카(Cluj-Napoca), 크론슈타트(Kronstadt)·브라쇼브(Brașov), 메디아슈(Mediasch)·메디아슈(Mediaș), 뮐바흐(Mühlbach)·세베슈(Sebeș), 셰스부르크(Schässburg)·시기쇼아라(Sighișoara).[2] '일곱 개의 도시' 라는 뜻[3] 라틴어식 이름이다. 다키아식 이름은 디우르파네우스(Diurpaneus).[4] 블라드 가시공의 아버지[5] 그래서 드라큘라 백작런던으로 이주하려 한건가![6] 전쟁 전의 70만 명에 비해서는 줄어들었다. 2차대전이 끝날 무렵에 많을 수가 독일로 이주했기 때문[7] 정확히 말하자면 맨 위 그림에서 연하게 칠해진 바나트 지방에 속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