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루테니아(Ruthenia)는 라틴어로 중세 루스 지역과 동슬라브족이 살던 지역을 지칭하던 용어이다. 본래는 키예프 루스의 영토를 가리켰으나 후에 루테니아인들이 사는 지명이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 동유럽에 위치하는 역사적 지명을 의미하기도 한다.키예프 루스가 1240년에 몽골의 침략으로 붕괴하자 중세 리투아니아 대공국에서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일대의 땅을 몽골로부터 다시
한편 리투아니아의 지배를 받지 않은 동슬라브족은 모스크바 대공국을 중심으로 1480년에 몽골의 속국 신세에서 벗어나 하나의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통일되었는데 수세기 동안 동방 정교회 신앙을 굳건히 지켜온 이들은 서유럽과 가톨릭에 매우 적대적이었고 자신들을 가리킬 때 1721년부터 라틴어 '루테니아' 대신 그리스어 '로시아(Ῥωσσία)'에서 온 러시아(Россия)란 단어를 주로 쓰게 되었다.
이후 '루테니아', '루테니아인'은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그 뒤를 이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배를 받게된 중세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북부, 러시아 서부 등과 그 일대에 사는 동슬라브인을 다룰 때에 쓰게 된다. 과거 슬로바키아 북동부의 자카르파탸[2] 일대의 주민들도 루테니아인이라고 불리었다. 슬로바키아와 체코의 동슬라브계 루신어를 쓰는 소수민족 루신인은 바로 자카르파티아 일대의 루테니아인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2. 적루테니아(Червона Русь)
오늘날의 르비우를 중심으로 한 갈리치아, 볼히니아, 포돌리아를 포함하는 우크라이나 서부 일대와 폴란드 동남부 일대를 말한다.2.1. 루테니아 왕국
키예프 루스가 몽골의 침략으로 멸망하고 헝가리 왕국과 폴란드 왕국마저 몽골군이 약탈하자 위기 의식을 느낀 교황이 과거 키예프 루스의 구성국 중 하나였던 갈리치아-볼히니아 공국의 다닐로에게 왕위를 수여하면서, 몽골인으로부터 동유럽을 지켜줄 것을 부탁한다. 이로써 적 루테니아의 갈리치아-볼히니아 공국은 이른바 러시아(루스) 왕국이라는 뜻의 루테니아 왕국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그러냐 가톨릭에 대한 적 루테니아 주민들의 적대감과, 루테니아 왕국과 킵차크 칸국 몽골인들 간의 국력 차이로 인해, 교황과 루테니아 왕국이 힘을 합쳐 몽골인들을 몰아낸다는 계획은 유명무실화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우크라이나/역사 항목 참조.
3. 백루테니아(Белая Русь)
민스크, 비텝스크, 폴로츠크를 포함한 벨라루스 중부, 동부 일대. 벨라루스 국명의 기원이 되는 지명이다. 라틴어로는 루테니아 알바(Ruthenia Alba)라고 지칭했다.4. 흑루테니아(Чорная Русь)
1044년 야로슬라프 1세 현공의 지휘 아래 슬라브인들과 발트인들이 함께 건설한 나바흐루다크를 중심으로 한 벨라루스 서부 일대.5. 카르파티아 루테니아(Карпатьска Русь)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자카르파탸 지역과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사이의 카르파티아산맥 일대, 슬로바키아에서 루신어를 사용하는 소수 민족 루신인들이 이들의 후손 일파이다. 서기 8세기에서 9세기 무렵 동슬라브족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였으나 9세기 말 마자르족이 이 지역을 장악했다. 갈리치아-볼히니아에 해당하는 적 루테니아 사회가 주로 폴란드의 영향을 받는 것과 비슷하게 카르파티아 루테니아인들은 헝가리 왕국의 영향을 받았다. 척박한 산지였던 이 지역은 12세기 무렵 왈라키아인들이 대규모로 이민와서 이곳의 루테니아인들과 함께 산지를 개간했는데, 이러한 연유로 우크라이나 자카르파탸 주에는 현재도 약간의 루마니아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자카르파탸 지역 사회는 헝가리 왕국에 이어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헝가리, 독일계 지주와 루마니아계, 우크라이나계 농노로 양분되었다. 지주들은 주로 가톨릭을, 농노들은 주로 정교회를 믿었으나 동유럽 내에서 정교회와 가톨릭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와중에 대부분의 정교회 신자들이 정교회식 전례를 유지하지만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는 동방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우크라이나 역사서에는 헝가리, 독일계 지주들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권위를 등에 업고 계속 지주로써의 기득권을 유지하며 루신인 농노들을 착취하고 일방적으로 차별했다는 서술이 나오지만, 헝가리에서는 현지 농노들이 반란을 일으켜 지주들을 살해할 때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방치했다는 원망을 담은 서술이 실려있다. 물론 우크라이나인과 헝가리인의 인종적 구분이 명확한 것은 아니었고, 우크라이나계 주민 중 군공을 세우거나 사회적으로 출세한 경우는 보통 폴란드인[3]으로 동화, 루마니아계 주민 중 잘 나가는 경우는 상당수가 헝가리인으로 동화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 역사를 민족주의적 관점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해당 민족 구분은 종교[4]와 언어[5]에 따른 사회 계급의 구분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멸망 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 귀속된 자치주가 되었으며 붕괴 후 혼란기에 렘코-루신 인민 공화국, 훗술 공화국 등의 독립 시도를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멸망 이후 카르파티아 우크라이나로 독립을 재시도하였다가 헝가리 왕국에 점령당하여 사라지고 그 후 소련 치하의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병합되어 현 우크라이나로 이어졌으며 카르파티아의 루신인들은 정치-민족적 집단으로서 힘을 상실하여 우크라이나에 동화되기 시작해 소수민족으로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