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00:16:23

이명박 정부/평가/부정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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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나로호 3차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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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치에 대한 평가
2.1. 인사 실패2.2. 불통 권위주의2.3. 정보통신부과학기술부 해체의 여파
2.3.1. 북한디도스 사이버공격 대응 혼선2.3.2. ICT 경쟁력 약화와 미래성장동력 대비 부족2.3.3. 우주개발 예산 삭감
2.4. 대통령기록물 유출 ★2.5. 여론조작2.6.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2.7. 민간인 사찰2.8. 4대강 정비 사업 반대파 탄압2.9.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2.10. 국가정보원 대북공작금 유용 사건2.11. 비리 정치인, 측근, 특별 사면2.12. 국정원의 전직 대통령 탄압 방조, 묵인
2.12.1. 국정원의 김대중 노벨평화상 취소 공작2.12.2. 데이비드슨 프로젝트2.12.3. 연어 프로젝트
2.13. 부정부패
3. 사회·문화에 대한 평가4. 안보·국방에 대한 평가
4.1. 구제역으로 인한 피해4.2. 학군사관 정원 폭증으로 인한 차후 인사적체 악화 야기4.3. 북한의 군사도발 대처 미흡4.4. 기강해이4.5. 방산비리4.6. 군 인권 후퇴
5. 외교에 대한 평가6. 경제에 대한 평가
6.1. 물가 불안정6.2. 2008년의 외환보유고 낭비와 환율 정책 실패
6.2.1. 키코 사태
6.3. 막대한 정부부채
6.3.1. 공기업 부실화 초래
6.4. 막대한 가계부채6.5. 노동탄압과 친재벌 정책
6.5.1. 노조 파괴 공작6.5.2. 부자 감세
6.6. 보편적 복지 축소6.7. 정경유착6.8. 대우조선 부실사태 관련

1. 개요

이하 항목 중 범죄 혐의로 사법적 판단(유죄ㆍ무죄)을 받았거나 판단 중인 사안은 ★로 별도 표시.

2. 정치에 대한 평가

2.1. 인사 실패

회전문 인사[1], 강부자(강남 땅부자), 고소영(고려대 + 소망교회 + 영남출신) 등의 코드인사를 한다는 비판이 크게 일었다.

이 대통령이 임명한 이들 중에는 드라마에서 자기를 모델로 한 캐릭터를 맡았다고 뽑고나니 정작 기자들을 향해 찍지 마, XX, 성질이 뻗쳐서.라고 말하거나 학부모에게 종북주의자들에게 선동을 당했다는 발언을 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747 공약을 기획하고 고환율 정책으로 경제난을 초래한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조현오 전 경찰청장[2], 부산저축은행 비리로 사임한 은진수[3] 감사원 감사위원 등이 나쁜 쪽으로 유명하다.

또한 양승태대법원장도 대법원장 시절 권위주의적 운영과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국민들의 사법불신에 매우 큰 기여를 했으며, 이명박 바로 다음 정부인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사법농단에까지 연루되며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했다.

국정원장 원세훈은 턱에 염증이 생겼다는 이유로 군대를 면제받았고, 정보기관에서 단 한 번도 근무한 적이 없는 사람인데도 국정원장으로 임명되었다.[4] 그리고 그는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국가정보원을 정권의 안위를 위한 수족으로 변질시켰다.[5]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 MBC 사장이 된 김재철의 경우 MBC을 정권의 나팔로 전락시키며 MBC 암흑기의 시작을 열었고, 보도국과 시사제작국 등에 압력을 넣어 정권에 불리한 보도나 시사프로그램의 방영을 막았다. 정귄이 바뀌었음에도 김재철의 유산은 사장이 세 번이나 바뀌는 와중에도 유지되었다. 이 김재철 밑에서 보도국장이나 보도본부장을 지냈던 인물로는 전영배, 권재홍이 있었고, 김재철이 물러난 이후에 보도국장 자리에 오른 김장겸, 이진숙은 더욱 이 기조를 강화시켰으며, 김장겸은 아예 사장직에 오르기까지 했다. 이들은 MBC 뉴스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보도본부를 망친 만악의 근원으로 유명하다. 같은 시기에 한국방송공사의 사장을 지낸 김인규도 악명은 높았지만 김재철에 비하면 그나마 악평이 적은 편이다.

최시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어처구니없는 심사 기준으로 국민들의 반감을 사는 현재의 방통위를 만든 원흉으로 지목받는다. 최시중 위원장 시절 성인 사이트 차단이 크게 증가하여 국민들 사이에서 성인이 성인 사이트를 볼 수 없다는 비판과, 국가가 개인의 행복과 자유권을 제한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논란이 일었다.

이때 보수 성향의 언론인 조선일보조차 이명박 정부의 인사 행태를 "인사를 잘못해도 어떻게 이토록 잘못할 수 있느냐.", "감탄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사람에게 주는 노벨인사상이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받아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인사가 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들고, 화나게 하고, 짜증나게 만드는 데 있어서 거의 '예술'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고 보기 때문." 이라고 지적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근거로 "첫째, 이 대통령은 인사로 만들어지는 전체 그림을 볼 줄 모른다면서 첫 비서진을 단 두 개 지역 출신만으로 구성한 것이 그 사례", "둘째, 왜 하필 그 사람을 골랐느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 대통령이 헌법기관인 감사원장에 자신의 비서 출신을 앉히려 했던 것은 명분을 짓밟는 것이었다고 했다", "셋째, 이 대통령은 사람을 볼 줄 모른다는 것이다. 예컨대 딴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만은 안 된다는 바로 그 사람을 고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명박은 '인사를 잘못한다', '할 줄 모른다'라는 평가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고 혹평했다.#[6]

후술하겠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민간과 공직을 막론하고 불법, 비리 행위가 급증했다는 비판이 있는데 그 이유로는 이명박 정부가 고위 공직자들의 불법과 탈법 전력에 유난히 관대했던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우선, 이명박 정부 들어서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 수준이 하락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예를 들면, 위장전입·병역면제·투기·탈세가 이명박 정부 고위 공직자들의 4대 필수과목이라는 말이 있다는 사실이 많은 언론에서 공통적으로 거론되었다. 야당 역시 이명박 정부의 부패 실태를 집중 공격하였다.##### 더욱 큰 문제점은 이명박 본인도 기관지 확장증으로 인해 군대를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1년 1월 27일에는 박지원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가 박한철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두고 4대 필수과목 미이수자, 군필자라며 칭찬하는 등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7] 참고로 총리/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노무현 정부 때리기 위한 목적으로 한나라당이 참여정부 시절에 도입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본인부터 장관에 이르기까지 위장 전입, 악성 부동산 투기, 석연찮은 병역면제와 관련이 없는 경우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는데도 불구하고 집권층 고위인사들이 보란 듯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실이 한국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서 불법행위 급증으로 나타났다는 분석이 있다. 이전 정부였던 노무현 정부는 위장 전입 문제 하나로 떨어지는 후보자들이 꽤 많았는데, 이명박 정부는 아예 위장 전입은 기본으로 깔고 가더니, 군부지를 사놓거나 전관예우, 정경유착, 병역비리도 모자라 군납비리까지 줄줄이 사탕으로 나옴에도 불구하고 임명 직전까지 갔다가 탈락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2.2. 불통 권위주의

전임 대통령이던 노무현이 활발한 소통으로 유명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이명박은 대통령으로서 국민과의 소통을 중요시하지 않고 독단적 의사결정을 한다는 비판이 임기 초부터 제기되었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불통이 처음으로 문제된 것은 초대 내각 인선 문제다.

당시 내정자들이 특정 집단 위주[8]에 편중되었으며# 땅 투기 등 수많은 의혹을 가졌단 점이 결격사유로 꼽혔는데,# 당선인 이명박은 비판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무대응으로 일관하였다.# 특히 여러 의혹과 반대를 무릅쓰고 앉힌 인사들은 박근혜 정부까지 큰 문제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최시중 방통위 위원장, 김성호 국정원장이 있다.#1 #2

이명박 정부의 불통은 2008년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본격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광우병 파동이 일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과 국정 운영 문제로 여론이 크게 악화되자, 이 대통령은 두 차례의 대국민 사과를 했는데#1#2, 이후에도 한미 FTA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과의 대화와 여론 수렴은 뒷전으로 한 채 일방적으로 한쪽의 입장만을 전달하고 사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첫 번째 사과 이후에도 시위에 배후 세력의 음모가 있다는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고,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대화보다 경찰의 물리력을 동원한 진압에 주력하여 집회의 합법성 논란 더불어 과잉 진압 논란이 일어났다. 또한 소통을 강조한 두 번째 사과 후 일주일 만에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수입 고시를 강행하여#, 조치의 정당성이나 현실적 문제와 별개로 소통 부재란 비판을 받았다. 촛불 집회 과정에서 보인 일방적인 대응과 문제투성이인 소통 방식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다.# 특히, 2008년 6월 10일 계획된 대규모 시위를 막기 위해 경찰이 광화문 사거리에 설치했던 이른바 명박산성은 정부와 국민 사이의 불통과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는 평이 있다.#[9]

당시의 불통 문제에 대하여 언론과 시민사회에서는 정부가 '귀를 막고 듣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는가하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정책을 충분히 '홍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는 인식의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둘 다 맞을 것이다.#1#2

물론 당시 유행하던 광우병 괴담은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이란 평가가 중론이나 정부의 대응 방식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며, 이후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고 미디어법 개정, 미네르바 구속 사건 등과 함께 이명박 정부가 소통 부재 차원을 넘어 언론을 통제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2 이는 이명박 정부/부정적 평가/사회와 문화 문서의 언론장악 문단을 참고하기 바란다.

윤여준 한나라당 전 국회의원은 MB 정부의 가장 큰 문제가 소통 실패에 있다고 지적하였으며# MBC가 2009년 6월 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80% 가량이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이 부족하다"는 데에 동의했다.#

2011년 보수언론인 조선일보조차도 사설에서 "별 희한한 국민 소통을 다 보겠다", "이 정부 3년 내내 제대로 된 기자회견은 한 번도 없었던 셈이다"라고 이명박 정부의 권위주의를 비판하였다.##2#3 여기서 주된 비판의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3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공식적인 신년 기자회견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기자회견 대신 방송3사와 함께 하는 신년 대담을 처음부터 끝까지 청와대가 기획, 제작하여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점이 있다. 조선일보의 사설을 구체적으로 보면 '3년 동안 기자회견이라고 이름 붙인 행사를 20여 차례 가졌지만, 의례적인 회견이거나, 정부 치적에 관한 것'이었고, '그나마 질문조차도 주제를 한정시키거나, 그 틀에서 벗어나면 질문을 받지 않거나 듣지 않은 걸로 해 버렸다'고 비판했다. 전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각각 150회 이상 기자회견을 했고, 이명박 대통령이 '친구'라 부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만 해도 2010년에만 27차례 기자회견을 했음을 들어 소통이 없는 기자회견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3년 동안 벌어진 예산안 날치기 역시 이명박 정부의 권위주의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2010년 김무성 원내대표의 "이것이 정의다" 발언에 무색하게 사회약자 계층에 대한 예산들이 전액 삭감되고 3년간 1조에 달하는 형님예산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으로 불교계에서 난리가 나 고흥길 정책위원장이 결국 사퇴하였다. 뿐만 아니라 김성회 한나라당 의원의 강기정 민주당 의원 폭행[10]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전화로 치하했다는 게 밝혀져 더욱 논란이 되었다.

2.3. 정보통신부과학기술부 해체의 여파

이명박 정부는 출범시 작은 정부을 지향하며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를 해체했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각 산업에 스며들게 해 모든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몇가지 문제점이 대두되었다. 뒤이은 박근혜 정부는 ICT와 과학기술 업무를 일원화 하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로 부활시켰다.

2.3.1. 북한디도스 사이버공격 대응 혼선

이명박 정부 당시 정부기관, 금융기관, 포털사이트 등에 대한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정부 대처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정부 출범시 정보통신부를 해체하면서 정보보호·사이버 안보 관련 기능도 각 부처로 분산된바 있는데, 위기상황 대응시 부처간 혼란이 야기되면서 해체된 정보통신부가 담당하던 컨트롤타워 기능의 부재가 문제점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 # # #

2009년 7월 7일부터 9일까지 3차에 걸쳐 청와대, 국방부 등의 정부기관과 은행, 언론사, 정당, 포털사이트 등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공격('7.7 디도스 공격')이 있었다. 7월 10일부터는 악성코드로 인한 하드디스크 포맷도 진행되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디도스 공격에 사용된 인터넷 주소가 북한 체신청이 사용해온 것‘이라며 북한을 공격의 배후로 추정했다.# 공격 대응시 유관 기관들간에 혼선을 빚으며 과거 정보통신부가 담당했던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문제로 지적되었다.# 또한 정보 보안 위험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의 정보보호 관리 인력과 예산의 삭감이 지적되기도 했다. 사이버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인력은 과거 정통부 때 1국 3과 33명이었으나, 1과(방송통신위원회 네트워크안전기획과) 9명으로 축소된 뒤, 다시 1팀(방통위 네트워크정보보호팀) 7명으로 줄었다는 것과, 정보보호 인프라 강화를 위한 예산은 63억원(2005년)에서 29억원(2009년)으로 절반 이상 축소됐다는 것이다. 대응기관 중 하나인 방통위 관계자도 “인터넷 이용량이 많아지면서 보안 위험수위가 높아진 반면 이에 따른 대응수준은 약화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한바 있으며#, 각 부처 담당자들 또한 기관 간 정보공유가 이뤄지지 않아 대응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보안 컨트롤타워를 어느 부처에서 운용하느냐를 두고서는 서로 입장이 달라 갈등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현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한바 있으며#, 여당 소속이었던 김문수 전 의원도 "이명박 정부 들어 정보통신부가 해체되면서 위기 상황을 관리할 헤드쿼터가 없어졌다. 정통부를 부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는 것에 정부는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1년에도 3월 3일부터 사흘 동안 사이버공격('3.3 디도스 공격')이 있었는데, 정부가 공격을 파악하고도 제때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국가 사이버위협 대응체계가 삼원화(국가정보원,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되어 대응하도록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 민간보안업체들이 공격을 예상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정부에 종용했음에도 3개 조직의 입장이 하나로 모이지 않는 바람에 더 지체됐다고 한다. 심지어 민간 보안업체들이 보도자료를 배포하려는 것을 정부가 말린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보안업계 한 관계자는 "국정원 조직의 특성상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 정부에서는 한국정보보호진흥원(현 한국인터넷진흥원)과 국정원에 신고가 접수되면 정보통신부가 이 정보를 취합해 즉각 대응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속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어서 2011년 4월 12일에는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가 있었다. 18일 만인 4월 30일에 정상화되었지만 공격으로 많은 데이터 파일이 삭제되었고 일부 거래내역은 복구에 실패하였다. 이 때는 디도스 공격이 아닌 북한 정찰총국이 만든 악성코드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1년 현대캐피탈 해킹사태,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사건, 농협 사태 등으로 그제서야 정부는 금융사에 대한 보안 요구사항을 의무화하는 법규를 추가하기로 조치하였다.[11]

이후 정부는 2011년 8월 국가정보원을 중심으로 국방부, 행정안전부, 방송통신위원회, 지식경제부 등을 포함한 15개 부처가 유기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내용의 '국가 사이버안보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협력계획 없이 말로만 그쳤다는 평가와#, 정보기관으로서의 성격이 강할 뿐 사이버테러에 대응하는 협업체제를 갖춘 것이 아니라는 평가가 있었으며, 청와대에 사이버안보보좌관을 신설하겠다는 논의도 유야무야됐다. 이에 대해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은 “컨트롤타워에 예산집행 권한도 부여해야 실제로 기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보안업계 대표는 "국가정보원이 안보이는 곳에서 상황 발생시 회의를 주재하는 정도로는 제대로된 콘트롤타워의 역할이 아니며, 국가 사이버위기 대책을 총괄, 조정하고 사이버전쟁이나 위협적인 공격이 발생할 시 전면에서 지휘해야 한다. 국가 사이버보안관련 예산과 보안정책, 인력·조직 운영 및 양성, R&D 투자 등을 총괄하고 부처별 역할과 소관업무를 부여하고 조정할 수 있는 권한과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며 마스터플랜에 그간 중요하게 지적됐던 보안인력 양성과 연구개발(R&D), 예산 투자 계획까지 실효성을 담보할 계획이 빠졌음을 지적했다.#

2.3.2. ICT 경쟁력 약화와 미래성장동력 대비 부족

한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휴대폰 및 정보통신(ICT)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된 것과# 아이폰으로 상징되는 스마트폰의 등장과 글로벌 ICT 생태계가 크게 변동하는데 대해 정보통신기술 업무 분산으로 정부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 정부의 미래성장동력 대비 부족과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정통부, 과기부 부활 여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배경을 보면 2007년 1세대 아이폰 등장, 2008년 7월 애플이 ‘3G 아이폰’을 출시하자 3일 만에 100만대가 팔릴 정도로 반응이 컸으며, 이어 2009년 11월 KT가 국내에 아이폰을 도입하자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스마트폰이 세계적인 트렌드로 급부상하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국내 제조사들은 그때부터 발 빠르게 대응해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이미 모바일 시장의 주도권이 플랫폼 업체인 구글, 애플에 넘어간 뒤였다. 또한 선진국보다 2년 늦게 형성된 스마트폰 생태계는 관련 산업의 발전 역시 뒤처지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안철수 당시 KAIST 석좌교수는 “한국은 대기업이 계속 대기업으로서 혜택을 누리고, 새로운 기업은 불이익을 받는 구조, 시장이 투명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구조인 데다 산업지원 인프라도 허약하기 때문에 정통부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IT 분야가 각 부처로 흡수되면서 우선순위가 뒤처졌다”며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전반적으로 IT쪽 경쟁력이 떨어지게 됐다”#, “IT융합이 정통부 폐지의 주요 논리였는데 정작 3년이 지난 지금 융합정책을 제대로 책임지고 집행한 곳이 어디냐”#, "2007년 아이폰 출시부터 지금까지 '잃어버린 3년'이다.", "플랫폼 구축 등 다양한 선제적 대응을 위해 컨트롤타워 복원이 필요하다. 정통부와 같은 부처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위원회 형태도 있겠지만, 위원회에서 내린 결론이 해당 부처로 이관되면서 원래 내용과 다르게 해석돼 시행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과거 조직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단점을 줄인 새로운 형태의 정통부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인사인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장도 “정통부 기능을 방통위, 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로 나누면서 분야마다 마찰이 생기고 있다”며 “IT의 경우 정말 일으키기 어려운데 그런 헌신의 노력이 우리 대에 와서 잘못된, 조금은 사려깊지 못한 부작용을 남긴 데 대해 아쉬움을 느낀다”고 말한바 있다.#

정통부 부활 논란에 대해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은 "미국에 정통부가 있어서 애플이 생겨났느냐", "예전에 경제기획원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했었는데 정통부를 부활하자는 것은 이 경제기획원을 다시 만들자는 말과 다름없다"며 "지금은 정부의 규제를 어떻게 완화해 시장 기능을 촉진하느냐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정작 애플사는 미국 정부의 중소기업 기술혁신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 자금을 지원받았으며, 터치스크린 화면, 음성인식서비스 등 정부가 지원한 기술 덕분에 애플의 스마트폰 등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 #

미래 성장동력 대비 부족과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2010년 1월 김효석 당시 민주당 의원은 "세계 휴대전화 시장은 삼성이 20% 이상을 장악했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점유율이 3%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애플사(社)는 태블릿PC(아이패드)까지 출시하고 있는데, 국내 업체는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IT경쟁력이 3위(2007년)에서 19위(2009년)로 떨어졌다", "IT, 바이오 산업 등 미래에 먹고 살 일들을 준비해야 한다"고 비판했으며, 같은당 우상호 당시 대변인은 "최고의 일자리 정책은 산업을 키우는 것이고 그래서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IT산업을 키운 것"이라며 "그러나 이 정권은 집권 2년이 지나도록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얘기는 없고 4대강에만 돈을 풀고 있다"고 비판했다.# # 손학규 의원 또한 같은 맥락으로 비판에 가세한바 있다.# 이어 정용길 충남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과학정책은 실패로 끝났다”며 “정부조직을 개편해 과학기술부를 설립해야 한다.”,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 수준은 경제규모를 고려하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지만, 문제는 미래의 먹거리로 전환할 수 있는 R&D 관리와 이의 사업화가 매우 중요하지만 이 부분이 미흡하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나라가 ICT 인프라나 하드웨어 제조에서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나 규모가 크고 부가가치가 높은 콘텐츠나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존재감은 미약하므로 미래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서는 창조산업 중심으로 경제구조를 전환해야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분산된 ICT 거버넌스(행정)로는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지적과 함께 주무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합편성채널 선정 등 정치적 이슈에 휘말려 합의제 기관(위원회)이라는 한계 때문에 정치와 무관한 정책기능까지 차질을 빚어 방송, 미디어의 산업적인 발전이 가로막혔다는 지적도 있었다.# #

다만 조사기관에 따라서는 이와 다른 지표도 존재한다. 국제연합(UN) 산하 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산출한 "ICT 발전지수"에서는 2010~2013년 기준으로 1위를 기록한 바가 있다. # 또한 이명박 정부 들어 하락했던 EIU의 지표는 인적자원, 연구개발 등 물량지표 덕분에 좋은 지표를 기록했던 것이었고 IT 경쟁력 하락 이전에도 시장환경이 이미 경쟁력을 잃고 있던 상황이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

하지만 ITU의 평가 기준은 "IT 산업" 분야가 아닌 "인구 100명당 초고속 인터넷 가입건수", "인터넷 대역폭", "인터넷 이용자 비율" 등 인터넷 통신망 분야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ITU의 "ICT 발전지수"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발표됐는데 우리나라가 항상 1~2위를 차지했다. # 반면 위에서 언급된 EIU의 "IT 경쟁력 지수"는 국가별(66개국) IT산업의 경쟁력을 조사해 발표하는 지수로 전반적 기업 환경, IT 인프라, 인적자본, 법적 환경, R&D 환경, 정부지원 등을 종합 평가하는데, 3위(2007)에서 8위(2008), 16위(2009)로 하락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평가 주체·방식이 제각각인 이 같은 조사결과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대부분의 조사에서 우리나라 IT 경쟁력 순위가 하락하는 것은 그만큼 국내 IT 산업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는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국책연구원 고위 관계자는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를 한꺼번에 없앤 후유증이 IT산업과 연구개발분야 전반에 걸쳐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관련 업무가 교육인적자원부와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으로 나눠지면서 선호하는 분야는 밥그릇 싸움만 요란하고, 중요하지만 빛 보기 힘든 분야는 모두에게서 외면당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

2.3.3. 우주개발 예산 삭감

진보 정권이 우주개발에 소홀했다? 팩트체크 해보니

대한민국 정부의 우주개발 예산은 김대중 정부 시기 나로우주센터, 한국형 발사체(나로호) 등을 추진하면서 2001년 들어 1000억원 대를 돌파했으며,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6년 들어서는 3000억원대를 돌파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우주개발 예산이 감소했고 정부 말기인 2012년에는 2000억원대 초반대로 추락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 들어 다시 급증하기 시작해 2016년에는 7000억원대를 돌파했다.

2.4. 대통령기록물 유출 ★

다급한 MB "압수물 대통령기록관에 넘겨야"…법위반 자인
청계재단 압수수색하자 쏟아진 대통령기록물…MB "착오"
다스 창고에서 '대통령 기록물'…검찰 "유출 수사 검토"
영포빌딩 '국정원 문건' 수백건…검찰, 직접조사 계획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가조작에 관련되었다고 의심되는 다스와 BBK 수사에 압력을 넣고, 그 과정에서 대통령기록물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위반한 것이다. 2018년 1월 25일 다스의 서울 사무실이 있는 영포빌딩에 대한 검찰 압수수색에서 청와대 문건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는데, 다스의 상황을 청와대에 일일이 보고하는 문건과 함께 대통령 기록물에 해당하는 문건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 기록물들의 원본이 대통령기록관에 남아 있는지가 관건인데, 만일 대통령기록관에도 남아있지 않은 원본을 숨겨 보관해온 게 확인될 경우 이명박의 혐의 사실이 더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12]#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 측은 "(이 전 대통령 퇴임 당시) 청와대에서 이삿짐을 정리, 분류하는 과정에서 착오로 대통령 개인의 짐에 포함돼 이송됐다"며, 검찰이 영창 범위를 초과한 잘못된 압수물을 압수수색했기에 대통령기록물을 반납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 혐의를 추가 수사하려고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받은 상태라, 기록물법 위반 혐의를 피하기 위한 물타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영포빌딩의 청와대 문건들이 국가위기관리센터와 국정원, 민정수석실 등에서 생산해 이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거나 대통령실에서 접수한 문건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 큰 파문이 일어나고 있다.# 더 무서운 사실은 기밀로 가득한 이런 청와대 문건 내용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에 어느 규모의 파장을 불러올지 알 수 없다는 것.

특히 발견된 문건들 중 국정원의 보고 문건이 정치공작에 관련된 것들을 포함해 최소한 수백 건인 것으로 확인이 됐다. # 이게 매우 심각한 사안인것이, 현재 국정원·국군 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전 대통령이 이러한 정치공작에 관여한 정황이 담긴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13]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된 후의 보도에 따르면, 영포빌딩에 유출된 청와대 문건은 무려 3,395개에 달한다. # 이는 박근혜가 최순실과 공모해 유출한 청와대 문건 47개의 72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이 전 대통령 재판에서 영포빌딩에서 발견된 법원행정처가 언급되고 '좌파 판사' 한직 배정, 재판 속행 압박 등 사법부에 개입해야 한다는 방안을 담은 국정원 문건이 나오면서, MB정부 사법농단 의혹이 일고 있다. 이명박은 이 문건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 다만 추가 보도가 없는 것을 보면 국정원이 직접적으로 재판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페이퍼플랜 수준에 그쳤을 가능성이 100%다. 어쩌면 이명박 본인도 해당 문건 내용이 자기가 생각해도 도를 넘는다고 생각해 이행을 거부하게 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14]

KBS가 단독 입수한 일부 문건 내용에 따르면, 경찰청 정보국이 정부 지원금으로 대통령 숙원 사업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를 압박해야 한다는 내용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과 직원들을 정치 성향으로 분류하고 평가해 청와대에 보고한 정황이 담겨있다고 한다. ##2

1심 재판부는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배했다면서 이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의 공소를 기각했다.

2.5. 여론조작

검찰, 'MB국정원 여론조작' 추명호 전 국장 긴급체포
MB정부 국정원 직원 "포털에 댓글달고 월 1,200만원 받았다"
국정원·군·경찰 동원 ‘여론 조작’…MB에 매일 보고
MB 국정원의 민낯…여론 조작의 끝은 어디?
MB 기무사 ‘선거 개입’ 시도…“좌파들이 정권 못 잡게”
MB 靑 “기무 활동 놀라워”…‘여론 조작’ 도움 요청
MB 靑, ‘인터넷 여론 조작팀’ 직접 운영
"이명박 정부 국군사이버사 '위안부'까지 댓글 공작"
'그것이 알고 싶다' 이명박 정면 겨냥… 국정원 여론조작, BBK 투자 의혹 제보 요청 관심 폭주
“원세훈 국정원, 다음 포털 토론방 아고라를 직원 글로 여론조작”
국정원 여론조작 ‘이명박 지시/묵인’ 63%
MB청와대 여론 조작, 최초 확인 …“대통령 관심 글 사이버 활동 中”
‘국정원 돈으로 정치 개입’ 박승춘 전 보훈처장 기소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경찰#, 국군사이버사령부#, 국군기무사령부#, 국가보훈처#1#2 등 여러 국가기관은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물론, 주요 사회·정치적 사안에 개입하여 이클린연대 등의 시민단체와 합작하여 여론을 조작해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이러한 사실은 2012년 12월 대선 직전 선관위 관계자들과 민주통합당 의원들의 문제제기로 수면에 드러났으며, 그 결과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에서 검찰의 수사 결과로 그 민낯이 파헤쳐졌다. 이 사건은 해외 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프리덤 하우스가 한국의 정치적 자유를 한 등급 강등시켰을 정도로 외국에서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야당과 단체에 종북좌파란 낙인을 찍어 흑백선전을 펼쳤으며(좌익효수, '국정원 여직원 김하영' 등) 당시 국정원장으로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적극 주도한 원세훈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MB 역시 대통령 부정선거의 최종 책임자로 거론됐다.[15] 실제로 이 대통령은 국정원의 전방위 여론조작에서 활약한 심리전단을 대대적으로 개편, 확충시켜 심리정보국을 설립했기에 행정수반이었던 이 대통령은 국정원의 여론조작에 대해서 어떠한 형태로든 책임을 질 운명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정부, 또는 국회차원에서 여론조작 사건과 이 전 대통령 사이의 관계를 진상규명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이명박 정부 시기 국정원의 다른 권위주의적 행각들이 이명박의 직접적인 지시, 개입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반면,[16] 이 사건은 확실히 이명박 본인이 직접 개입한 일이다. 2018년 9월 17일,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정원·사이버사·경찰 댓글공작과 관련해 '전 정부적으로 하라'고 직접 지시한 육성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2

2.5.1.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특히 정부기관을 동원해 댓글부대를 운영하며 여론조작을 펼쳤는데, 대통령 직속 국가기관인 국가정보원, 국군사이버사령부, 국군기무사령부가 총동원 되어 댓글로 여론조작을 벌인 사실이 드러나 상당한 파장이 일었다.

'지논파일' 국정원 前직원 소환불응·잠적 끝에 결국 체포
검찰, MB국정원 돈상납 추가포착…총선 여론조사 사용 정황
검찰, '군 댓글수사 축소 의혹' 백낙종 전 육군소장 소환조사

2.5.2. 민간인 댓글 부대 운영


경찰, 군 사이버사 ‘누리꾼 블랙리스트’ 레드펜 협조 정황

이명박 정부 시절에서는 군 사이버사령부와 국가정보원이 여론조작을 진행하며 이른바 '민간인 댓글부대'를 운용하였다. 민간인 댓글부대는 국민세금으로 운영되었으며 이명박 정부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활동했다. 2017년 4월 JTBC에서는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민간인 여론조작 부대 '알파팀'을 운영한 정황을 보도하였다. 건당 수만원을 받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던 알파팀 일부 조직원들은 팀이 해체된 뒤에도 최근까지 가짜뉴스를 퍼트려 온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가짜뉴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이 '알파팀' 운영에 당시 국정원은 물론 청와대까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

2017년 8월 3일 국가정보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가 3일 '댓글 사건'과 관련,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5월~2012년 12월간 α(알파)팀 등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 '외곽팀'을 운영한 사실을 확인했다. 사이버 외곽팀은 대부분 별도 직업을 가진 예비역 군인·회사원·주부·학생·자영업자 등 보수·친여 성향 인물들로 그 규모는 30개팀 3,500명에 달했으며 인건비만 매달 2억 5천만원, 총 수십억원이 쓰였다. 국정원은 "사이버 외곽팀의 운영 목적은 4대 포털(네이버·다음·네이트·야후)과 트위터에 친정부 성향의 글을 올려 국정 지지여론을 확대하고, 사이버공간의 정부 비판 글들을 '종북세력의 국정방해' 책동으로 규정해 반정부 여론을 제압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TF에 따르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취임 이후 심리전단은 2009년 5월 다음 포털 커뮤니티 '아고라' 대응 외곽팀 9개팀을 신설하고 2009년 11월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라 지속적으로 확대, 2011년 1월에는 α팀 등 24개의 외곽팀을 운영했으며 2011년 8월에는 24개팀을 사이버 대응 업무 효율성 제고를 목적으로 아고라 담당 14개팀, 4대 포털(네이버·다음·네이트·야후) 담당 10개팀으로 재편했다. 2011년 3월에는 트위터 외곽팀 4개를 신설했고, 2012년 4월에는 6개팀으로 확대해 운영했다.

2.5.3. 선관위 공격 사건

한나라당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과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디도스 테러를 가해 검찰 수사를 받았다. ##2#3

이 사건에는 한나라당 공성진, 정두언 의원 비서, 청와대 행정관, 박희태 국회의장 비서 등이 관여했다. 검찰은 단독 범행이라 결론지었으나, 청와대와 경찰청장의 전화 내용이 폭로되는 등 여러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다.

“청와대 지시로 디도스 금전거래 덮었다”
조현오 "청와대 전화 있었지만 외압 아니다"
"선관위 디도스 공격, 여당 수뇌부가 조직적으로 지시했다"

2.5.4. 관제시위 지원

'관제시위' 추선희 불구속기소…국정원법위반·공갈 혐의(종합)

어버이연합 등의 보수단체에 자금을 지원해서 정권에 유리한 여론 조작을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러한 관행은 박근혜 정부까지 계속되었다.

다만, 어버이연합의 경우는 보수단체 중 친박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어버이연합보다는 친이 성향이 강한 서정갑국민행동본부를 훨씬 많이 지원했던 것으로 보인다.[17]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주도로 국정원이 2010년부터 삼성그룹SK그룹 같은 대기업들과, 전국경제인연합에 요구해 보수단체를 지원하도록 한 것이 확인되었다. 실제로 이를 통해 2010~2011년까지 보수단체에 총합 68억 원을 지원했다고 한다.[18] #1 #2

2.6.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박근혜정부 시기 무죄 확정된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이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일어났다. 당시 국정원과 검찰 및 MB정부의 사법기관은 허위증거를 제작하고 탈북자 유우성 및 유우성의 여동생 유가려를 위협하여 허위자백을 하게 함으로써 두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었다.

2.7. 민간인 사찰

파일:external/img.khan.co.kr/khan_UWIkyQ.jpg
연예인 김제동의 불법사찰 문건

'MB정부 불법사찰 무마' 장석명 영장 재청구…"증거인멸 확인"
[인터뷰] '사찰 폭로' 장진수 "'VIP 지시로 특별관리팀 있다' 들어"
[단독] MB 靑, 현대차에 '불법사찰 입막음' 채용 압박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폐지된,[19] 과거 군사정권의 충실한 파수견 역할을 한 국군기무사령부의 사령관과 대통령관의 정기적인 독대가 2008년 부활한 것을 시작으로 2009년 여름 기무사 수사관의 민간인 불법사찰이 폭로되었다. 김제동 등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진보 성향을 가진 연예인들 또한 사찰 대상에 포함되었으며 모든 보고서는 이명박에게 전달되었고, 이명박은 밤을 새워 사찰 보고서를 읽을 정도로 사찰 보고서를 좋아했다고 한다. #

민간인 사찰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검찰, 국세청, 경찰 자료를 취합해 국정원에 전달하면 국정원이 이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민정수석실이 요구할 때마다 전달하고 업데이트 하는 방식으로 관리됐다. #

사찰내용이 기록된 캠코더와 수첩 등 증거자료까지 나와서 소송이 시작되자 2011년 1월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하도록 법원판결이 나왔다. 결국 이명박 본인이 직접 김제동에게 사과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 #2 #3 법원, ‘기무사 민간인 사찰’ 국가 책임 인정 그외에 2011년 10월에 와서도 조선대학교 교수의 이메일을 해킹하다 걸렸고, 이 때문에 기무사의 불법행각이 문제가 되고 있다.

기무사뿐만 아니라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도 유명하다. 2008년 대한민국의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사찰한 사건으로, MBC PD수첩에 보도되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게 되었는데 사찰 대상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포함돼 있었다. 미국 뉴욕 타임즈는 민간인 사찰을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에 빗대었다. # #2 뉴욕타임즈 기사

2017년 현재 국정원 적폐청산 TF 조사과정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의 국가정보원국군사이버사령부에서 저지른 불법사찰이 폭로되었다. 당시 국정원이 언론장악과 여론통제를 위해 라디오 시사프로그램과 언론인 등을 사찰한 사실이 드러났고 # 사이버사령부에서 유명인사 33인[20] SNS 동향을 사찰해 청와대에 보고한것으로 밝혀졌다.#2

그리고 위에 언급된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사찰 사건은 2018년 현재 국정원 특활비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가 개입해 특활비가 사찰 사건 폭로 입막음용으로 쓰였다는 의혹이 커지면서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 만약 이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국가기관 특수활동비가 정부 차원의 불법행각을 덮기 위해 초법적으로 남용되었다는 결론이 나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파장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당시 경찰 수사팀장이 MB 국무총리실에서 전방위 수사 압박을 강요했다고 진술했다. #

2020년 11월 12일 곽노현 전 교육감 등이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 취소소송에서 대법원의 정보공개 판결 이후 38명에 대한 사찰 정보가 공개되었다. #

2.8. 4대강 정비 사업 반대파 탄압


'4대강' 반대 민간인도 사찰…전방위 '댓글 공세'
"그동안 의혹은 많이 제기됐었는데요. 국정원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학자들을 사찰하고 치밀하게 불이익을 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노조를 와해하는 데에도 댓글 공작이 있었습니다. 국정원이 정말 여러 일을 했습니다." - MBC

4대강 사업에 반대해 국정원의 사찰 대상이 됐던 민간인은 30여 명으로 확인됐다. 주로 반대 의견을 피력했던 학자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찰 방식은 단순한 동향 파악에 그치지 않았는데 교수들의 외부 활동 내역을 일일이 들여다보면서 외부 연구 용역심사에서 탈락하게 만들었다. 또 교수 평가에 부정적인 의견을 담도록 해 대학의 교수 평가에 관여함은 물론 교수들로 하여금 압박을 느끼도록 했다.

4대강 사업에 의혹을 표하거나 반대, 비판한 방송은 가차없이 방영중단, 프로그램 폐지를 내렸다. KBS의 환경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환경스페셜'은 이 때 밉보이는 바람에 폐지되었다.[21]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대기업에 국정원이 우회적으로 지원을 한 사실도 감찰 결과 확인됐다. 국정원 댓글 작업은 4대강 사업에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4대강과 관련해선 '사업이 효과적이다', '해외에서의 평가가 긍정적이다' 등 찬양과 미화 일색의 게시물만 3천 건이 넘게 확인됐다.[22] 모두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 ID로 작성되거나 공유된 것들이다.

국정원 뿐만이 아니라 기무사까지 동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

2.9.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

“MB, 국정원 특활비 받았다” 검찰 정황 포착
檢 "MB가 국정원 뇌물 주범"…김백준은 방조범 구속기소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상납사건이 이명박 정부에서도 벌어진 일이었다는 구체적인 정황들이 나왔다. 일단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이 특수활동비를 빼돌려서 강남 한복판의 안전가옥을 호화롭게 꾸미고 퇴임 후에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노후생활을 보내기 위한 자금을 마련한 정황[23]이 드러나면서 검찰이 이명박 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이명박 정부 청와대 소속 인사들이 국정원으로부터 불법적으로 자금을 수수한 정황을 포착해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김진모 전 민정 2 비서관[24], 김희중 전 대통령 제1부속실장의 자택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으며 또한 당시 핵심 측근들이 국정원 특활비 5억여 원을 수수한 정황이 드러났다. 결국 이명박 정부 당시 민정2비서관을 지냈던 김진모가 구속되었고 1월 17일 자정에 이명박의 최측근인 김백준까지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이후 계속된 검찰 조사에서 이명박이 대통령 시절 국정원의 특활비 1억 원을 김희중 전 부속실장을 통해 받았다는 진술을 검찰이 확보하기에 이르렀으며 국정원 특활비의 일부가 달러로 환전돼 이명박의 미국 순방 직전 청와대 쪽에 전달된 정황이 확인됐다. 거기에 검찰 조사과정에서 국정원 특활비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수석 및 장관에게 전달됐다는 김백준 전 기획관의 진술이 나왔다. 이로 인해 이명박이 사건의 공범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또한 SBS 단독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이 이명박 정부에 상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돈 가운데 일부가 당시 민간인 사찰 사건을 폭로했던 사람에게 입막음용으로 건네진 정황이 포착되었고, 사건 관련자들의 입막음용으로 의심되는 돈의 일부가 국정원 특활비에서 빠져나간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에 검찰은 이러한 특활비가 흘러간 과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2.10. 국가정보원 대북공작금 유용 사건

국가정보원 대북공작금 유용 사건 참고

2.11. 비리 정치인, 측근, 특별 사면

MB, 특사 강행…‘비리측근’ 최시중·천신일 포함 55명
비리 사면·측근 훈장, MB의 마지막 잔치
박 당선인, 특사에 부패사범 포함 우려 표명
“朴당선인, 부패-비리사범 특사 포함에 크게 우려”
MB 특별사면 논란 가열, “박근혜, MB 측근·친인척 사면 제동 걸어야”

뇌물 수수등의 비리가 있는 정치인, 이명박 본인의 측근들에 대해 사면을 단행하여 논란이 되었다.

심지어 같은 정당의 대통령 당선인이었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측에서도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통해 "이번 특별사면에 부정부패자와 비리사범이 포함된 것에 대해 박 당선인은 큰 우려를 표시했다"며 "이번 특사강행 조치는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대통령 권한을 넘어선 것으로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아예 친인척 특별 사면조차도 검토해서 새누리당에서 공개 반대를 하였다. 당시 검토된 대상은 이상득 새누리도 “이상득 특사 안돼”정치권 전체가 비판 한목소리 결국 진영논리를 초월한 거센 반발에 밀려서 끝내 사면은 불발되었다.

2.12. 국정원의 전직 대통령 탄압 방조, 묵인

'DJ·盧 뒷조사' 최종흡·김승연 구속…MB국정원 수사도 탄력

이명박 정부 시절 대북공작금으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음해 정보를 수집한 최종흡 전 국정원 3차장과 김승연 전 대북공작국장이 구속되는 등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인사들에 대한 표적수사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수사는 사실에 근거한 정보 없이 해외에서 떠도는 풍문성 비위정보를 수집·생산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가동하였고, 대북공작금 10억여 원을 사용했는데도 혐의를 찾지 못해 큰 문제가 되었다.

결국 단순히 소문만 가지고 수사를 하여 행정력, 세금 낭비를 했다는 것이며, 정적 탄압용이란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25] 게다가 후에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뒷공작을 벌였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이는 국정원이 정권 비호를 위해 전직 대통령 두 명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함한 것이라 인간적으로도 못할 짓이다. 이 부분 때문에 민주당계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지지층은 당연히 이명박에게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으며 이명박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특히 민주평화당은 DJ 직계들이라 DJ를 건드렸기 때문에 분노한 것이다.

다만 이명박이 검찰한테 노무현을 수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것과[26] 후술할 사건들이 원세훈에게 보고된, 한마디로 원세훈이 직접적으로 지시하지 않은 사건이었다는 것과 전직 대통령 음해에 이명박 본인이 연루되었다는 후속 보도가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전직 대통령 음해는 진짜로 국정원 직원들의 과잉충성에서 비롯된 독단적인 행동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물론 부하의 과잉충성이라 해도 대통령이 국가 통수권자이자 상관으로서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지만.[27][28]

2.12.1. 국정원의 김대중 노벨평화상 취소 공작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은 원세훈 국정원장 재임시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뒤 노벨평화상을 취소시키기 위해 2010년 3월 한 보수단체와 공모하여 보수단체 간부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취소되어야 합니다'라는 내용의 영문 청원서[29]를 보내는 것을 돕는 등 노벨상 취소 공작 계획을 세우는 것은 물론 노벨위원회 메일 주소도 알리는 등 실행 과정도 국정원이 관여했으며, 그 과정에서 국정원 예산이 집행된 사실도 드러났다. 특히 노벨상 취소 공작 계획이 원세훈 원장에게 보고된 사실까지 확인되었다.# # #

또한 '라프토 인권상' 취소 청원 공작도 계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개된 심리전단 보안등급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노벨평화상을 취소시키려면 이에 앞서 받은 권위있는 인권상인 라프토상을 취소시키는 '단계적인 공작'이 필요하다"면서 "자유주의진보연합 간부를 통해 노르웨이의 라프토상 시상단체에 서한을 보내겠다"는 계획을 당시 원세훈 원장 등 수뇌부에 보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MB 핵심 측근인 김효재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취소를 생각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국정원 직원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노벨평화상 취소에 대해 언급을 했을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정권 차원에서 그럴 수가 있나”며 정권 차원에서는 추진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 하지만 이에 대해 기자가 묻자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이종찬) 글쎄요, 저는 믿고 싶습니다. 정권차원에서 안했으리라고 믿는데 그러면 국정원 직원이 혼자 생각하고 그런 것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겼을까요? (기자) 누군가 지시했을 것이다? (이종찬)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합니까?"라면서 "'너희들이 마음대로 권력행사 해라' 하는 것은 김형욱 시대에는 그런 것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또한 2009년에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서울현충원 앞에서 벌인 김대중 부관참시 퍼포먼스의 배후에 국가정보원이 있었다고 밝혀졌다. 특히 이때 원세훈 전 원장이 이끌던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요원 A씨가 어버이연합 간부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 현충원 안장 반대 시위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국정원 A씨는 시위 요청 사실이 있었다고 진술했지만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국정원의 요청으로 퍼포먼스를 한것은 아니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실로 밝혀진다면 전 세계 웃음거리가 될 내용"이라며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종찬 前국정원장은 "원세훈 원장이 정치에 개입한 것은 무엇이라고 해도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지원[30] 국민의당 의원은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일"이라며 비난했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노벨 평화상 수상은 국격을 높이는 국가적 영광이다. 국익을 손상한 이명박 정부를 개탄한다"고 말했으며, 우원식 원내대표는 "일종의 반역행위를 한 것"이라고 평가하는 등의 여러 발언이 나왔다.# # # # #

여담으로 김영삼 정부도 김영삼의 노벨평화상 수여를 위해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여 반대를 위한 공작을 펼쳤다는 의혹이 있다. # 그야말로 역사가 반복된 셈.

2.12.2. 데이비드슨 프로젝트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해외 비자금 의혹을 캐기 위해 가동한 비밀 프로젝트 '데이비드슨'의 진행 과정에서 미국 국세청 직원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네며 불법 로비[31]를 한 정황이 검찰의 수사 결과 드러났다.

당시 이현동 전 국세청장은 국정원으로부터 공작금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받았으며, 이 전 청장이 국세청 직원들에게 공작금을 건네고 김 전 대통령의 해외 비자금을 찾으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국세청 직원들이 관련 정보를 알아보려고 미 국세청 공무원에게 뇌물까지 먹였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한편 '데이비드슨 프로젝트'는 2년 넘게 지속됐지만,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된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 #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뒷조사에 나랏돈을 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가정보원 전직 간부들이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2.12.3. 연어 프로젝트

일명 '연어 프로젝트'는 노 전 대통령의 해외 비리를 증언해 줄 관계자를 국내로 송환하겠다는 취지로 이름이 지어졌다. 2010년 '노 전 대통령이 미국의 한 카지노 전직 마케팅 디렉터에게 비자금 13억 원을 전달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시점으로, 국정원은 이 역시 뒷조사했지만 근거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

2.13. 부정부패


우상호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후보(당시)가 올린 이명박 정권의 부패 정리 영상.
"우리 정부는 도덕적으로 가장 완벽한 정권이다."
2011년 9월 30일 오전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에서[32]

부정부패는 현 시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비판받는 가장 중대한 요인으로 꼽히며, 특히 이명박 정부는 역대 정부 중 민간과 공직사회에서의 비리가 급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4대강 정비 사업자원외교 과정에서의 측근, 실세, 기업 비리였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국정 사업들은 임기 종료 이후 시민사회에서 '국고를 낭비한 실패작'으로 비판받았으며 대한민국의 부패한 관행이 나아지기는커녕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특히 2011년 국정감사 기간 중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민주당 최규식 의원이 행정안전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주민등록법 위반자는 2006년 180명에서 2010년 422명으로 2.5배 늘었으며, 위장전입으로 적발된 경우는 2006년 29명에서 2010년 101명으로 3.5배 증가하였다. 병역기피도 급증한 것으로 나와 병무청이 민주당 안규백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징병검사 또는 입영을 기피한 ‘무단기피’가 2008년 231명에서 2010년 426명으로 84.4% 증가한 것으로 돼 있다. 또 국적 변경을 통해 병역이 면제된 경우도 2008년 2,750명에서 2010년 4,174명으로 51.7% 늘었다.[33]

공무원들의 비리 또한 급증하였는데, 국민권익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건수는 2008년 764명에서 2009년 1,089명, 2010년 1,436명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면서 3년간 모두 3,289건을 기록했다. 참여정부 때인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간 총 2,294명보다 43.4%가 늘어난 셈이다. 위반 내용도 금품·향응 수수가 43.3%를 차지했다. 게다가 행정안전부가 중앙공무원을 제외하고 집계한 2010년 뇌물수수와 공금횡령 등의 부패로 파면·해임 등의 징계를 받은 자치단체 공무원만 2,960명이었다는 점을 보면 드러나지 않은 강령위반 사례는 위의 3,289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34][35]

2.13.1. 친인척·측근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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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비리로 인해 구속되거나 집행유예,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가회동 아주머니’ 소환… 檢, 김윤옥 여사 정조준
검찰, ‘국정원 특활비 수수’ 김윤옥 여사 소환 가능성
MB 친형 이상득, 구급차 타고 檢출석… 김윤옥 여사도 조사받나

이명박 정부의 친인척 비리는 다른 정부들과 비교를 해보아도 가히 심각하다. 이명박이 대선후보 시절 정치자금 조달과 대통령 당선 이후 자원외교를 지휘한 이상득은 보좌관이 돈 세탁을 했단 의혹을 사며 뇌물 혐의로 보좌진이 대거 구속된 가운데 불출마 선언으로 상황을 무마하려 했지만, 솔로몬·미래저축은행 등으로부터 7억 6,000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면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친형으로서 구속되고, 포스코 비리와도 연관되기도 하였다. 또한 이상득 의원은 선산이 있는 남이천 IC에 특혜 허가를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총리실 민간인 사찰의 최종 배후라는 의혹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상득 의원의 아들인 이지형은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의 한국 대표를 맡아, 자원외교 과정에서 1조 8,000억의 나랏돈을 메릴린치에 투자해 막대한 손실을 일으킨 혐의를 받고 있으며, 인천공항 민간 매각설의 핵심으로 불리며 각종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2012년 "조세회피지역"인 싱가포르로 이민을 떠났다. 이 외에 이명박 대통령의 사촌형이 4대강 건설 사업권을 미끼로 건설업자로부터 3억 원을 챙겼다고 사기 혐의로 피소되었으며, 조카인 정모 씨는 위조 계약서로 분양권을 주겠다며 2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또한 이명박 형제들 중 장남인 이상은 다스 회장의 사위인 씨모텍의 경영지배인 정종화 대표는 주가조직 및 수백억 원대 횡령 혐의를 받았다.[36]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의 형부인 황태섭은 금융 비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제일저축은행의 고문으로 재직하며 고액의 고문료를 받았는데 그가 고문으로 있던 제일저축은행은 각종 로비 의혹을 받았으며, 끝내는 불법 대출로 영업이 정지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김윤옥의 형부인 신기옥 대한적십자 경북지사 회장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 인사 로비 자리에서 이른바 ‘충성주’를 마셨다는 의혹을 받았으며, 김경준 기획 입국설의 근거로 지목된 BBK 가짜 편지의 실제 배후라는 의혹도 있다.

이 외에도 김윤옥의 사촌오빠인 김재홍 전 서일대학 이사는 청와대, 대한민국 경찰청, 교육과학기술부가 개입됐다는 이른바 "서일대 홍차 사건"으로 유명하며,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에게 4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거기다가 김윤옥]의 사촌언니인 김옥희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김종원 서울시버스운송조합 이사장[37]에게 30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역시 구속됐고,(#) 18대 총선비례대표 공천 사기를 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살았다. 이외에도 김윤옥의 사돈인 조성래 효성그룹 회장도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재임시절 검찰 수사를 받았다. #2

이러한 친인척 비리 뿐만 아니라 측근 비리도 심각하여, 왕차관으로 불리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38]이 민간인 불법사찰과 파이시티 관련 비리 혐의로 인해 징역 2년에 추징금 1억 9,500만 원을 선고받아 구속됐고,[39] 47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은 2012년 11월 30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추징금 30억 9,400여만 원을 선고받았다. 또한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SLS 중공업 이국철 회장에게 뇌물을 받았고, 2012년 6월 1심 선고에서 징역 3년 6개월 및 벌금 5,300만 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벌금 100만 원, 추징금 1억 1,093만원을 선고받았다.#

최시중 前 방통위 위원장은 2009년 총선 후에 친이계 3명에게 3,500만 원의 금품을 준 것으로 밝혀졌으며[40] 최시중의 아들은 뇌물수수 비리 혐의가 드러났는데, 수사결과에 따르면 최시중의 아들은 자신의 측근인 김학인으로부터 김학인을 EBS 이사에 선임해주는 대가로 2억 원을 받았다고 드러났다. 결국 최시중 위원장은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관련 8억원을 받은 혐의와 "3년간 돈을 받아 MB 대선 때 썼다"면서 2007년 대선 당시에 금품수수를 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하여 구속되었다. 한편 MB의 측근인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CJ 이재현 회장에게 여자연예인 룸살롱을 접대받았고 이 사실은 청와대에도 보고되었지만, 청와대에서도 이 사건을 은폐하여 맹비난을 받기도 했다. #

2008~2009년에 한나라당 대표를 지냈고, 2010~2012년에 18대 국회 후반기 의장을 지낸 친이계 핵심 박희태 의원은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으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며,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은 부산 저축은행 로비 대가로 1억 7,000만 원을 받아 징역 1년 6월에 추징금 7천만 원을 선고받았다. 또한 최영 강원랜드 사장은 일명 "함바 비리" 수수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3년 추징금 4,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강경호 전 코레일 사장[41]은 강원랜드 인사청탁 대가로 5,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5,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명박의 최측근 김희중 청와대 1부속실장도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또한 이국철 게이트로 유명한 SLS조선의 이국철 회장은 2007년 11월까지만 하더라도 무역보험공사로부터 지원이 거절당했는데 정권이 바뀌자 로비를 벌여 2008년 1월에 6억 달러의 선수금 지급을 보증받고 이어 11월에는 보증한도를 12억 달러로 올리는 등 특혜를 받았다. 그러나 이국철 회장의 사업이 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이국철은 이명박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이명박 정부의 핵심인사들은 이를 거부하였고 격분한 이국철 회장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박영준 지식경제부차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임재현 청와대 정책홍보비서관 등이 자신의 로비를 받았다고 폭로하였다. 한편 친이계였던 이은재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이상득 의원이 SLS비리의 몸통으로 거론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2013년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직전에 측근들을 대거 특별사면했다. 이는 당연히 많은 비난을 받았다.#
2.13.1.1.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박영준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 강철원(정치인)등이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 드러나서 징역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까지한 비리 사건.

그와중에 최시중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면까지 단행하여 혹독하게 비판받았다.##

3. 사회·문화에 대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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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보·국방에 대한 평가

4.1. 구제역으로 인한 피해

이명박 재임 4년차였던 2011년 1월 24일 당시에 경남 김해에서 구제역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방역당국에 따르면 구제역이 25일 오전까지 겨우 이틀 동안 소 142,901마리, 돼지 247만 6,451마리 등 262만 5,553마리의 우제류 (=발굽이 2개인 동물)가 매몰 처분됐다. 이는 과거 4차례의 구제역 피해 매몰 규모(2000년 2,216마리, 2002년 160,155마리, 2010년 1월 5,956마리, 2010년 4월 49,874마리)를 모두 합한 것보다 피해 규모가 12배나 큰 것이었고 구제역에 따른 매몰 보상금, 생계안정자금, 가축방역자금 등 재정 지출 피해액은 2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그리고 동원된 인력도 1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4.2. 학군사관 정원 폭증으로 인한 차후 인사적체 악화 야기

전세계에서 학군사관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매우 적으며 그 중에서도 징병제를 하면서 학군사관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 이유는 당연하다. 소위를 너무 많이 선발하면 나중에 그들이 영관급 장교에 도달하게 될 경우 엄청난 진급 경쟁과 이로 인한 심각한 인사적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군대에서는 이것 때문에 장교인사적체를 차단하기 위해 일부러 부사관상사소대장으로 임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알못인 이명박은 학군사관의 정원을 3,000명에서 4,000명으로 대폭 증가시켰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육군3사관학교학사장교의 정원까지 줄였다. 이명박의 무리한 학군사관 정원 증가는 지금 당장은 장교를 정예화시킨다는 효과를 볼 수도 있겠으나 이는 완벽한 임시땜빵으로 2008년에 임관하는 학군 46기가 소령이 되는 2018~2019년 이후부터 장교의 인사적체가 기하급수적으로 심각해질 것이다.

4.3. 북한의 군사도발 대처 미흡

이명박 정부 시절은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전 등으로 급속히 남북관계가 경색된 시기였다.

4.3.1. 북한의 천안함 피격 사건

"내가 배를 만들어 봐서 아는데[42], 파도에도 (배가) 그렇게 부러질 수 있다. 사고 가능성이 있다. 증거 없이 (북한 연계설을) 주장하다가 러시아 등 주변국이 증거를 대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북한의 기뢰 등도 침몰 가능성의 하나일 뿐이지 어느 하나로 몰고 가며 추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로 말해야 한다."
- 4월 1일 남미지역 특사를 맡은 한나라당 의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

천안함의 침몰 이후에도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도발임을 확신하는데 주저했으며 군에서 어뢰로 인한 침몰임을 결론지었지만 지속적으로 받아들어지지 않았다.#

2021년 6월 중앙일보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천안함 피격 사건을 앞두고 군 당국이 북한군의 공격 징후를 사전에 포착했지만 군 지휘부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당시 '수중 침투 관련 징후'를 포착하고 합참의장(이상의 대장)에게 조처를 여러번 요구했지만, 침투 징후를 예하 부대에 전파하지 않았고 적극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 또한 관련 문서에 대해 군 수뇌부가 파기를 지시했다고 전했다.#

4.3.2. 북한의 연평도 포격전

금강산 폐쇄사태의 경우 북한의 우발적 도발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불가항력적인 면이 있으나 정작 2010년 11월 북한이 감행한 연평도 포격의 경우에는 국가정보원에서 사전에 도발 징후를 포착하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에 무능한 대처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했다. 연평도 포격지시를 이미 8월에 감청해놓고 그랬다.

미국조지 W. 부시 행정부를 예로 들어 9.11 테러 당시에도 징후를 예견하였으나 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하는 경우도 있으나, 오히려 9.11 테러, 중동 전쟁 등을 포함하여 부시 행정부의 전반적인 대처는 미국 안에서도 크게 비판받았기 때문에 반론이 되지 못한다. 조지 W. 부시네오콘 문서를 읽어보자.

특히 천안함과 연평도 모두 이명박이 대북공작금을 상납받을 일로 대북 정보력이 약화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

실제로 감사원은 국군의 대응실태를 조사한 뒤 허위보고, 음주근무 등 초기 대응에서의 총체적 문제점이 드러나 합참의장 등 장성급 장교들을 포함해 총 25명에 대해 징계를 요청했으며 이 중 12명은 형사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합참의장, 천안함 당시 '만취'…통제실 이탈까지 그러나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3개월이 넘도록 4명을 입건하는 데만 그쳤으며, 또한 감사원 감사에서 처벌 대상이 아니었던 최원일 함장이 입건 명단에 포함되면서 형평성 문제도 불거졌다. 결국 11월에 발표된 최종 징계안에서 기소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천안함 책임자 처벌 흐지부지

이회창 前 한나라당 대표는 연평도 포격 대응과 관련하여 “초기 대응은 아주 낙제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천안함 폭침 사건이 일어난 뒤에 대통령과 정부는 강력응징을 다짐했습니다. 그래놓고 아무것도 안 한 거예요. 제가 사건이 터지고 나서 연평도에 직접 가서 보고는 기가 막혔습니다. 천안함 폭침 사건 때에는 반격을 못 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연평도 포격전 때에는 즉각 반격해서, 공격원점을 초토화하는 강력 대응을 했더라면 아마 초기에 상당한 사건의 진전이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비판하였을 정도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담화문에서 "이제는 북한 스스로 군사적 모험주의와 핵을 포기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 부분과 관련해 "정말 이명박 정권이 그런 식의 생각을 기조로 해서 대북정책을 해왔다면 그것이 결국 오늘날과 같은 사태를 오게 만든 것"이라고 지적하며 "북한은 스스로 변하는 게 아니고 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분명한 대북정책의 기조가 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도 "천안함 사태 때에도 대통령이 그렇게 얘기했다"며 "하지만 한 번 당하고 46명의 귀중한 생명이 희생당했는데 그후에 전혀 변한 게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2016년에는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에 이어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도 연평도, 천안함 사태 때 대북정책이 다 실패한 것"이라며 "그런데 인정을 안 한다"고 비판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번 사태를 통해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안보에 무능한 정권인가를 똑똑히 보았다"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를 강조하지만 대응할 능력도 갖추지 못한 무능한 정권이다"라고 비판했다.#

보수 정치평론가인 전원책 변호사도 당시 방송에서 정부 대응을 비판했다.

4.4. 기강해이

소위 '노크 귀순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방에 대한 경계태세도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제22사단에서 2009년 민간인 월북사건, 간첩선 은폐사건(JTBC 다큐로드 - 무너진 철책선 참고), 2012년 북한군 귀순 사건(노크 귀순) 등이 발생하여 정권의 안보 능력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4.5. 방산비리

이명박 정부의 방위산업 비리는 제6공화국 정부 중에서 단연 최악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 정부들과는 다르게 모든 무기사업을 청와대가 주관하도록 방위사업청에 지시,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도록 방식을 바꾸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MB정부는 2009년 국방예산에서 전력증강과 직결되는 방위력 개선 부문의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도 방위사업창에 값싼 무기도입을 원했고 결국 각종 비리와 부실 사업이 판치는 원인을 제공하고 만다. 이는 대통령의 행정적 능력이 다소 부족했으며 국가행정을 기업운영과 같이 해선 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특히 성능은 엉터리에 가격은 20배인 통영함 음파탐지기 도입을 강행한 사실이 알려져 관련자들이 사법처리됐고 이후 해상작전헬기 도입 과정에서의 비리, 불량 방탄복 비리 등의 사건 등이 터졌다. MB정부 당시 벌어진 방산비리는 전, 현직 장교들과 사관학교 선후배, 동기들 간의 유착, 수뇌부의 묵인 혹은 동조란 특이점이 있다.

4.6. 군 인권 후퇴

정부 연도 이병 일병 상병 병장
참여정부[43] 2004 29,800 32,400 35,800 39,600
2005 38,800 42,100 46,600 51,500
2006 54,300 58,800 65,000 72,000
2007 66,800 72,300 80,000 88,600
2008 73,500 79,500 88,000 97,500
이명박 정부[44] 2009
2010
2011 78,300 84,700 93,700 103,800
2012 81,700 88,300 97,800 108,300
2013 97,800 105,800 117,000 129,600
박근혜 정부[45] 2014 112,500 121,700 134,600 149,000
2015 129,400 140,000 154,000 171,400
2016 148,800 161,000 178,000 197,100
2017 164,700 177,100 195,800 216,000
문재인 정부[46] 2018 306,100 331,300 366,200 405,700
2019
2020 408,100 441,700 488,200 540,900
2021 459,100 496,900 549,200 608,500
2022 510,100 552,100 610,200 67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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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대한민국 군대의 인권 문제도 제기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강경 안보를 내세웠으나 정작 당시 군인들의 처우는 노무현, 문재인 정부보다 열악했다. 2005년 참여정부는 총기 난사 사건으로 군대 내부의 심각한 병영부조리를 개선할 필요성을 느껴 민·관·군이 참여하는 ‘병영문화개선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대책위는 그해 10월 병사들의 인권을 보장한 군인복무기본법 제정, 인권담당관 신설, 상담관제 도입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으며 국방부는 이 제안에 따라 2007년 2월 병사들의 기본권을 규정한 ‘군인복무기본법’을 발의했다.

그런데 2008년 정권이 교체되자, 군인복무기본법은 대한민국 국회 심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다가 결국 17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이명박 정부는 국방정책의 초점이 사고 예방을 위한 병영생활 개선에서 ‘전투형 군대 육성’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답하였으나, 이렇게 해서 간부들의 갑질, 병사 간 폭행, 수면 부족 등 한국군의 여러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좌절되었다.

군인 월급 인상률은 하락했고,[47][48] 군 자살률은 크게 늘었으며, 저녁점호 재개, 무리한 현역 판정률 증가 등으로 군 인권을 후퇴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본인은 병역면제자임에도 군 문제에 있어 정신력 드립을 치는 등 제대로 된 해결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현역 판정률 증가 결과 부적격 자원들까지 현역병으로 징병되었고 훗날 임 병장 사건, 윤 일병 사건이라는 부작용을 낳는 기폭제가 되었다. 현역 판정률은 임기 말인 2011년 91.5%로 군 창설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고, 쭉 90%대를 우지하다 퇴임 이후 임 병장, 윤 일병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80% 초반대로 줄어든다.

5. 외교에 대한 평가

5.1. 자원외교

"광물자원공사가 창립 5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광해관리공단과 통폐합하기로 오늘 결정했습니다. 10년 전, 부채비율 100%를 밑도는 건실한 공기업이었지만, 부채비율 6,900%에 이르더니 지금은 완전한 자본잠식 상태입니다. 그 이유, 역시 자원외교였습니다. 광물공사는 5조 2,000억을 쏟아붓고 5,000억만 회수했습니다." - KBS

이명박 정부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총 69개 사업에 약 26조 984억 원을 투입했으나 정작 회수율은 14.06%, 즉 3조 6,698억 원에 불과하고 2018년 초까지 발생한 영구적으로 회수가 불능한 손실액은 13조 9,000억 원이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정권실세들과 기업인과의 유착 등 온갖 비리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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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박근혜 정부에서 시민단체와 야당, 언론의 문제제기로 공론화된 끝에 감사원은 2015년 1월 2일 자원외교 과정에서 총체적 부실이 있었다면서 "부실한 회사를 고가로 매수하고 공사에 해를 끼친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하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통보했다"고 밝혔다. 성완종 전 경남회장 역시 MB 정부의 자원외교와 관련해 수사를 받자 자살을 선택했다. 상세 내용은 이명박 정부/자원외교 문서를 보자.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자원외교의 실패로 2015년 무려 6,900%(!!!)의 부채를 떠안았다가 2021년 끝내 파산하기에 이른다.

5.2. UAE 원전수주 이면합의

이명박 정부가 감춰둔 희대의 폭탄으로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태영 전 장관의 군사 지원 이면합의 체결을 인정하면서 이면합의 수습설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 사건 하나만으로 이명박 정부 수뇌부 상당수가 구속될 초대형 사건으로 국민과 국회를 속인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이었다면 탄핵까지도 가능한 희대의 사건이라고까지 평가받는다.[49]

이 비밀협약 의혹을 언급한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당시 정부가 여러 중동국가와 맺은 비밀협약이 더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만일 이마저 사실로 드러나면 어마어마한 파장이 일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6. 경제에 대한 평가

"경제, 반드시 살리겠습니다!" - 이명박, 제17대 대선 당시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 제17대 대선 당시 유행어
"아마 내년되면 3,000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실물경제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허망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더 나아가 임기 5년 중에 제대로 되면 5,000까지 올라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주가가 진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정권교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 교체를 하면 주가가 전반적으로 상향조정 될 것입니다." 2007년 12월 14일 여의도 대우증권 본사에서
이명박은 위장 취업, 위장 전입, 선거법 위반, 횡령, 탈세 등 기업인 시절에 온갖 불법을 일삼아 한때 피선거권도 박탈당했다.[50]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그 유명 주가 3,000 주장[51]까지 해가면서 경제를 '반드시 경제만큼은 살리겠다'는 슬로건으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정작 그토록 공언한 친서민 정책, 복지, 경제 성장(747 공약) 약속은 많이 지켜지지 못했다. ##2#3#4

실제로 노무현 정부는 평균 4.7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나 이명박 정부는 평균 3.3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경제에 취약하다고 비판받던 노무현 시기만도 못한 경제성장률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경제 침체는 대침체의 영향이 크긴 했지만 이를 감안해도 자신만만하게 떠들던 747 공약을 지키지 못해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점에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6.1. 물가 불안정

파일:이명박정부_물가불안논란.jpg
통계청 지표-물가 상승률

이명박 정부는 5년 동안 세계경제위기로 인한 서민생활 불안정 개선과 지속적 경제성장을 위한 기반마련을 위하여 서민 물가안정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왔다.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에 대하여 주기적으로 가격과 수급동향을 점검하고, 유통구조 개선, 불공정거래 단속 등을 통한 가격안정 노력을 해왔다. 특히 2008년에는 유가 등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서민생활 부담 완화를 위하여 유류세인하, 유가환급금 지급 등을 시행하였으며, 서민생활과 밀접한 공공요금, 대학등록금 등은 동결 또는 인상 최소화를 유도하였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었으며, 유가급등으로 물가가 4.6%으로 크게 치솟았다. 다행히도 2009년~2010년대는 물가가 2% 후반대로 안정되었다.

그러나 2010년 9월 이후 이상기후, 구제역, 국제유가 상승 등으로 물가가 다시 상승하였다. 특히 2010년 9월에는 소득에서 먹거리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지수인 엥겔 계수가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엥겔지수 상승은 소득대비 먹을거리 지출 비용이 높은 서민이나 빈곤층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게다가 2010년의 살인적인 물가상승은 이상 기온과 태풍 등 각종 악재가 겹쳐 일어난 일지만, 이명박 정부는 대처가 부적절했다는 비판에 직면하였다. 물론 물가상승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는 물가 집중 관리 품목을 지정하여 물가관리에 나섰으나, 오히려 관리 품목들의 물가가 더 많이 오르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특히 아래 서술된 대통령의 "배추가 비싸니 내 식탁에는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김치를 올리라"는 멍청한 발언으로 국민의 원성을 샀다.[52]

사실 MB정부 시절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는 한국은행 총재로 김중수가 취임한 이후로 한국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한 저금리 정책을 펼친 것이 핵심 이유로 꼽힌다.#1#2 이 저금리 정책은 가계부채 폭탄이 현실화되는 데도 일조하였다.# 게다가 김중수는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으로 청와대에 보고가 잦아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한국은행 노조가 결의대회를 갖는 등 반발이 일었다.# IMF는 한국의 경제상황을 우려하며 국내 금리는 4%가 적절하다는 권고안을 내놓았으나, 한국은행은 여전히 2.75%로 저금리 경기부양정책을 고수했다. 이러한 저금리 정책은 원화가치의 절하를 가져와 수출을 촉진시키고, 경기활성화를 유도하지만, 수입축소로 인한 물가 상승 및 가계부채 증가 같은 부작용으로 인해 민생에 타격을 입힐 수도 있는 이면이 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2011년 상반기부터 경제정책의 최우선순위를 물가안정에 두고 서민생활 안정을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2011년 1월부터 7월까지 7개월 연속으로 4%대의 고공행진을 기록하였으며, 이는 2008년 금융위기 기간의 상승률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었다. 물가안정 속에 경기회복 흐름이 지속될 수 있도록 경기상황을 감안하여 거시정책을 유연하게 운영하고, 공급 측면의 물가불안 요인에 대하여는 공공요금 안정과 농산물 수급안정, 할당관세 인하, 불공정거래 단속 등 미시적 대책과 함께 장기적·구조적요인에 대하여 유통구조 개선, 시장경쟁 촉진 등 구조적 개선대책을 병행 추진하였다고 발표했다. 특히 물가안정을 위하여 2011년에만 총 43번의 장·차관 회의를 개최하고, 166건의 안건 논의를 거쳤지만 효과는 없었고 유명무실했다. 결국 유가상승 등 공급 충격, 하방경직적 가격구조 등으로 인하여 높은 수준의 물가 상승률이 지속되었다.

2011년 8월의 전년 동월비 월별 물가상승률은 5.3%를 기록하였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은 "5% 물가가 서민들에게 주는 직접적인 고통과 실질소득의 감소 이런 것은 정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 들어와 2009년부터 금리정책이 실패한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였다.# 실제로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인 김중수 한국은행총재가 취임한 이후 정책의 독립성과 금리정책의 적절성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어 온 만큼 타당하다는 지적이다.

2012년에는 국제원자재 가격 급등세 완화, 정부의 정책적 노력 등으로 2%대로 다시 낮아졌으나, 결과적으로 참여정부 평균 물가 상승률인 2.9%와 비교하면 3.6%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면서 물가를 성공적으로 안정시켰다는 주장이 다소 힘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 사태 이후 글로벌 경제 위기를 고려해보았을 때 단순한 수치 비교를 통한 평가를 할 수 없다. 또한, 앞서 언급한 환율정책으로 수입물가가 상승한 것은 사실이나, 국내 물가 안정과 관리를 위한 경제적·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경제학적 관점에서 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6.2. 2008년의 외환보유고 낭비와 환율 정책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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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 합의사항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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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정부가 환율 적정선을 정하고 무리하게 개입한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환율 정책의 실패로 인해 2008년 초 900원대이던 환율이 단기간에 1,500원에 근접할 정도로 폭등했고, 외환보유고가 몇 달 사이 약 600억 달러나 감소했다.

강만수 장관은 7월 23일 “적정 외환보유고가 얼마인가에 대해서는 통일된 견해가 없다”면서도 “다만 2,100억 달러가 넘으면 적절하다는 의견이 다수”라고 말했다. 이에 외환 당국이 외환보유액의 적정 기준을 설정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시장에서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008년 6월말 외환보유액은 2,581억 달러였는데 강만수의 발언은 2,100억 달러에 이르기까지 달러 매도 개입을 계속할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2008년 7월과 8월의 ‘도시락 폭탄식` 외환시장 개입은 별 성과 없이 외환보유고만 축내는 결과를 낳았다. 300억달러 안팎의 보유고가 환율을 잡는데 투하됐고 이명박 정부 직후인 2008년 3월 2,642억 달러에 달하던 외환보유액은 2008년 10월말 2,122억달러로 급감했다. 2008년 12월에는 2,021억 달러가 됐고 2,000억 달러 선이 위협받았다. 2009년 윤증현 장관이 임명되고 부터는 외환보유고를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장기전에 대비한다는 스탠스로 바뀌었다. #

급기야 일부 외신에 의해 2008년 9월에 한국이 외환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9월 위기설’이 보도됐다. 외신들은 한국 정부의 외환 정책이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직후 환율 정책이 긴 안목 없이 단기적으로 급변하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시장의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6.2.1. 키코 사태

이 같은 정부의 정책적 문제로 대두 되는 것이 바로 KIKO 사태다. 이 사건을 이명박 정부 초기 세계 금융시장 위기에 대한 변동성을 예측하지 못하여, 환율 관리의 어려움이 촉발된 고환율 정책의 큰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어떤 정부도 겪어보지 못한 금융위기을 완벽하게 할 수 없을 뿐더러, 해당 파생상품은 금융위기 이후 벌어진 상황에서 일반적인 관점에서 "결과와는 달리 기업 입장에서도 얼핏 보기에 KIKO는 괜찮은 계약이었다"고 서술되고 있음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

6.3. 막대한 정부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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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후의 경제위기가 기업이나 가계보다 국가와 공공부문 부채가 문제가 되어 발생했다는 교훈에 비추어보면 엄청나게 국가부채를 늘린 점에서 혹평받고 있다. 공공기관 부채 규모는 2007년 말 241조 8,000억 원에서 2009년 310조 6,000억 원으로 최근 5년 간 58.4%나 급증했으며, 2012년 말 493조 원으로 확대돼 연평균 50조 원이 넘게 증가했다. 전임 노무현 대통령과(연평균 13조 6,500억 원)와 후임 박근혜 대통령(연평균 13조 7,500억 원) 시절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는 4대강 정비 사업, 자원외교 등 대규모 국책사업을 계획성 없이 무리하게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국가부채의 경우, 2009년 1,637조 4,000억 원으로 2007년 말과 비교해 291조 9,000억 원(21.7%)이 늘었다.# 물론 참여정부에 비해서 낮은 수치였으나, 공공기관의 부채비율이 가장 높았기에 한국 사회의 공공서비스에 적신호가 켜졌다.#

2011년에는 최초로 대한민국 정부의 채무가 400조를 돌파하였다. 이는 2년새 100조가 증가한 것으로 재정부 관계자는 "OECD 국가들에 비하면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말하였으나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는 점, 증가 속도가 매우 가파랐다는 점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1#2 이명박 정부는 당초 집권 당시 국가채무 300조 원 유지를 목표로 내걸었기 때문에 큰 비판을 받았다.# 그 밖에 급증하는 국가 채무로 인해 정부의 매년 이자로 지출되는 비용이 2006년 11조 4,000억 원에서 2010년 22조 9,000억 원으로 2배가 늘었다.

특히 2007년 571조 2,000억 원이던 국가부채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481조 8,000억 원이나 불어나며 2013년 말 국가부채는 1053조 원을 기록했다. #1#2

한국은행 금융통계에 따르면 일반 정부의 대외부채는 2007년 367억 달러에서 2012년 608억 달러로 241억 달러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에 공기업의 대외 부채는 77억 달러에서 256억 달러로 179억 달러로 증가하였으며, 정부와 공기업의 채무는 총 420억 달러가 증가하였다. 순대외채권의 경우 일반 정부는 2007년 160억 달러 순채무였었고, 2012년은 410억 달러 순채무로, 250억 달러 채무가 늘어났다.

6.3.1. 공기업 부실화 초래


같은 기간에 공기업의 순대외채권은 2007년 77억 달러 순채무에서 2012년 256억 달러, 순채무로 179억 달러 채무가 늘어났다. 일반 정부와 공기업의 채무는 총 429억달러 증가하였다. ##2

게다가 정부에서 추진한 4대강 사업 때문에 아예 한국수자원공사는 파산 직전의 위기에 몰렸다. 당시 수자원공사는 2007년 말에 부채비율이 16%밖에 안 되는 우량 공기업이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부채비율이 급속히 악화되어 2011년 말이 되면 116%로 치솟았다. 이는 수자원공사가 이명박 대통령 공약인 4대강 사업을 정부 대신 떠맡았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막대한 돈이 필요한 4대강 사업을 재정으로 충당할 경우 국가채무가 불어날 것을 우려해 수자원공사에 맡겨 일어난 일이다. #

설상가상으로 자원외교를 담당한 석유자원공사나 광물공사 등의 주요 공기업들 역시 사업 실패로 파산 위기에 몰렸다. ##2#3 특히 부채 1위 LH공사는 2013년에 총부채 138조를 기록했다. #4#5 다만 LH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LH는 언제든지 부채 털어낼 수 있는 공기업이다. 주거복지 때문에 이런 막대한 빚을 지고 있을 뿐.

2011년 기준 한국의 국가부채는 GDP 대비 채무 35%이나 공공기관 빚을 포함하면 70%에 육박하였다. 공무원연금공단이나 예금보험공사 같은 준정부기관의 빛은 2008년만 해도 80조 원대에 머물러 있었지만 2010년에 100조 원대로 불어나고, 2011년에는 124조 9,000억 원으로 전년에 비해 24.0% 급증했다. 같은 해 정부의 감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석탄공사, 여수광양항만공사, 한국전력공사, LH, 한국가스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등 여섯 곳이 재무지표상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

공기업 부채 역시 지속적으로 늘어나 공공기관 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졌으며, 2011년 총 부채는 329조 5,000억 원으로 전체 공공기관 부채의 71%를 차지하였다. 2007년 이후 연평균 증가율도 20.4%로 전체 증가율을 크게 앞섰다. #3

6.4. 막대한 가계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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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국가부채를 팍팍 늘려서 과연 가계부채라도 해결했냐 하면은, 그것도 아니다. 가계부채의 상승률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자영업자들의 대출이 600조에 육박하고, 2004년에는 66% 정도의 비율을 유지한 GDP대비 가계부채율이 2009년에는 86%까지 치솟았으며,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는데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기는커녕, DTI(Debt to Income, 소득 대 부채 비율) 규제를 완화하여 노인과 청년층의 대출가능금액을 대폭 상향시켜 주는 등 경제감각을 상실한 듯한 행보를 보였다.

참여정부 5년 동안 늘어난 가계부채는 213.9조 원이나, 그런데 MB 정부 시절 늘어난 가계부채는 272조 원이 넘는다. 상대적으로 부동산 침체기인데도 더 짧은 시기에 더 많은 가계부채를 늘린 것으로, 부동산 거품을 빼고 가계부채 감소를 유도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무리한 부동산 부양책을 쓰며 거품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를 두고 하우스푸어를 잔뜩 양산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MB 정부 가계부채의 또 다른 특징은 카드사, 증권사, 보험사, 대부업체 등 고금리 악성 대출을 크게 늘렸다는 것에 있다. 참여정부 때는 상대적으로 제1금융권 위주의 저금리 대출 위주로 가계부채가 늘어났으나, 이명박 정부는 지역적으로도 수도권에 국한돼 있던 부채문제를 지방까지 확산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6.5. 노동탄압과 친재벌 정책

노동자 탄압 역시 이명박 정부가 가장 많이 비판받는 면이다.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에 이어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더욱 밀어붙이면서 노동계와 좌파의 큰 비난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는 노사 갈등에서 일방적으로 경영자 편만 들어선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대표적인 예가 쌍용자동차 논란 중 벌어진 쌍용자동차 노조원 평택공장 점거 농성 사건 진압이나 한진중공업 사태가 꼽힌다. 친재벌 정책으로 죄를 지은 재벌 출신 인물을 맹목적으로 사면(2008년 광복절 특사 당시 74명의 기업인이 사면)하기도 하면서 크게 논란을 일으켰다.

게다가, 유성기업 사건에서 이명박 정부의 김황식 총리는 사실무근인 "1인당 연봉 7,000만 원 받는 노동자"란 어이없는 발언을 해 친재벌 성향을 드러냈다. 연봉 7,000만 원은 30년 이상 장기 근속자 등 일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농담이 아니고 진짜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논평에서 "땀 흘려 일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졸지에 파렴치범으로 만든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유성기업 노동자들에게 사과를 했다거나, 방송을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라고 비난하였다.# 지금도 노조파업을 비난하는 이들 중 대부분이 정말 연봉 7,000만 원 받는 노동자가 진짜인 줄 알고, 귀족노조라고 비하하는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는 근거없는 궤변이며 국내 기업 중 연봉 7,000만 원, 또는 그 이상을 받는 노동자는 30년 이상 장기 근속자들뿐이다.

경영악화를 이유로 대규모 정리해고를 실시해 일어난 한진중공업 사태 당시 경찰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외치며 영도조선소를 찾은 7,000여 명의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행진을 저지했고 이에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노회찬진보신당 대표 등 야당의 주요 정치인도 피해를 입었으며, 이 과정에서 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고문,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등 총 50여 명이 연행됐다.

광복절 특사 이전 이명박 대통령은 더 이상의 특별 사면은 없을 것이라 말하였으나, 2년 뒤인 2010년 12월 29일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 역사상 유례 없는 단독 사면을 단행하였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건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삼성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면했다고 해명하였지만, 정작 이건희는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인한 특검 당시 배임, 탈세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에 IOC 위원 자격을 박탈당한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재벌 1위 이건희에 대한 특혜란 비난이 제기됐다. ##2 그리고 이 사건은 삼성 다스 소송비 대납사건으로 그 실체가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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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참여정부의 실패한 비정규직 정책을 고치기는커녕 그대로 이어받아 비정규직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고쳐서 비정규직 비율을 감소세로 돌렸다.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78590.html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477 특히 공공기관의 경우 비정규직이 50%나 증가했다. 결국 노동자에게 불리하고 기업인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 그 이후의 정권들에서 실업난을 야기시킨 주범이 되었으며 이명박으로 인해 취업시장은 비정규직과 계약직이 난립하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 역시 노조 무력화 시도와 더불어 일방적인 임금 삭감, 정원 축소 강요란 비판에 직면하였다. #

6.5.1. 노조 파괴 공작



"제3노총 배후는 원세훈 국정원"…집요한 노조파괴 공작
"경징계가 갑자기 중징계로 바뀌어서 '왜 그랬나 했더니 더이상 버틸 수가 없다' 이렇게 담당 직원이 얘기했습니다." - 양성운 전 국공무원노조 위원장
"(정당한 노조 활동을) 친북, 종북, 좌빨들의 행위로 왜곡시킴으로써 실제로 노동자들을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 진선미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전방위적인 노조 와해 공작을 한 것으로 국정원 내부 감찰결과 드러났다. 제3노총을 조직해 민주노총을 와해시키려는 과정에 국정원이 뒤에서 수억 원의 자금을 댔다. KT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공무원노조위원장의 해고, 그때마다 뒤에 국정원이 있었던 걸로 파악됐다. 감찰보고서에는 또 국정원이 전교조를 상대로 반대시위를 벌이는 단체에 수천만 원을 지원하고 가짜 게시글로 공격까지 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노조원 사찰과 여론조작을 넘어 노조의 선거 및 총회 결의 과정에도 개입한 것도 드러났는데, 한마디로 기업이 할 법한 노조 탄압 수법을 국정원이 그대로 답습한 셈이다. 참고자료 특히 2011년에는 노조조직률이 10% 아래로 떨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6.5.2. 부자 감세

이명박 정부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감세정책은 ‘감세 포퓰리즘’ 및 ‘부자감세’란 지적을 받았다.##2 일반 국민들은 부자(특히 재벌)들을 "정치인과 결탁해 각종 탈법을 저지르는 부패한 범죄자"로 볼 만큼 감정이 좋지 않기에 특히 욕을 먹었다.

논란이 된 감세 정책의 일환으로서 종합부동산세 정책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때 시행된 종부세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하였는데, 종부세 폐지로 인한 세수 감소가 2조 2,000억 원에 달해 재정악화 및 복지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받았다. 특히, 감세 혜택이 대부분 부자들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부동산 불패 신화(집장사) 등 한국의 좋지 않은 투자 관행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으며# 100만 명이 종부세 폐지 반대에 서명하기도 했다.#

반대여론이 어찌나 거셌던지,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광역시에서도 5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반대서명에 참여하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2008년 주거목적 1주택 장기보유자 부과 규정이 위헌이라는 헌재의 판결이 나오면서 종부세는 사실상 무력화됐고, 그 결과 2011년에는 강남의 20억짜리 주택의 종부세가 참여정부 시절 1,200만 원에서 73만 원으로 급감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0년 국세청의 국세감면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국세 감면 비율이 참여정부 때보다 2.2%P 증가했으며 그 혜택이 대기업과 상위 10%에 해당하는 고소득층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에 대해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를 병행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해명하였으나#, 정부 주관 토론회에서 국내 경제학자들이 입을 모아 감세 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등# 감세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는 그 어떠한 학술적 근거도 없다는 것이 경제학계의 중론이다. 게다가 주요 선진국들의 세금 비율도 40~50% 이상으로 20% 수준인 대한민국보다 월등히 높다.# 대한민국에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저자로도 유명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 경제성장이 잘 된다고 하는데 실제 성공한 예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역시 부자 감세를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친이계로 분류되던 정두언 역시 이에 동조하였다.# 한편 전경련은 부자감세 철회와 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에 대해 격렬히 반대하였고# 이 대통령은 여당에서도 나오는 감세 철회 요구를 거부하였으나 2011년 감세 정책을 끝내기로 합의하였다.#

6.6. 보편적 복지 축소

"예산안 졸속 처리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예산도 날아갔습니다." - 신경민 MBC 뉴스데스크 앵커

부자감세, 복지축소로 인해 중산층이 지속적으로 감소를 하였다.# 관련 보고서에 의하면 복지축소에 불구하고 GDP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32%로 증가(전임 정부 27%)하였으며 중산층은 67.1%로 전임 정부(69.3%)로 감소하였다. 더군다나 선별적 복지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같은 자료에서도 빈곤층이 11.7%에서 12.6%로 되려 늘어났다. 보편적 복지축소로 인한 피해는 중산층-빈곤층으로 이전이 되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복지 예산은 꾸준히 증가하였다. 하지만 보편적 부문에만 한정된 자연증가분이었으며, 이명박 본인이 공약한 '친서민 복지 정책', '노약자·장애인·청년 맞춤형 복지'와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 논란은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재조명되었다. ##2#3

또한 복지 정책을 보편적에서 선별적으로 방향을 바꿨으며 부자 감세 정책과 양극화 저지 실패와 함께 보면 보편적 복지를 축소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10월에는 장애아 무상보육 지원금, 보육시설 확충비용, 장애인 차량 지원비, 기초수급생활자 의료비지원, 실직가정 생활안정자금대부사업, 결식아동급식 한시적 지원금이 수억 원에서 수백억 원까지 일부 삭감 혹은 전액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 참여연대는 정부의 저소득층 무상장학금 폐지 및 생활비 지원대상을 수능 등급에 따라 제한한 것을 두고 비판하였다.# 이는 이명박의 공약과도 반대되는 조치라 큰 비난을 받았다.

게다가 2010년 12월 처리된 새해 예산안에선 여당의 날치기 과정에서 영유아 예방접종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으며, 방학 중 결식아동 예산과, 장애인 연금 인상분도 전액 또는 일부 삭감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결식아동 급식지원은 지방정부의 사업이므로 지원 불가능하나 경제위기 여파와 열악한 지자체 재정자립도 등을 감안, 2009~2010 회계연도에 예산을 긴급 편성해 지원해왔다. 그러나 2011년 예산에서 이 부분 예산이 전액 삭감됨에 따라 무산되었다. 대신 정부는 “관련 예산을 국고에서 보조할 수 있도록 법령을 정비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야당 의원들 의견을 받아들였으나 문제는 관련법 정비 일정 등을 감안하면 빨라야 2012년에나 지원이 가능해서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로 인해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결식아동 69만 명 중 지자체가 지원하는 급식지원자는 27만 명으로 40만 명 가량이 굶게 되었다.#1#2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결국, 아이들의 필수예방접종 예산까지 빼앗아 4대강 보 건설에 쏟아 붓고 있다"고 비난한 것에 대해서 이명박 정부는 복지예산이 증가했다고 반박하였다. # 하지만 민주당은 정부가 주장한 복지 예산이 오히려 잘못되었다고 반박하였다. 특히 보건복지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복지 예산 증가액 5조 248억 원 중 노인장기요양보험, 기초노령연금,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대상자 확대에 따른 자연증가분 2조 2,000여억 원과 기초생활급여 2,195억여 원 등 법정 의무지출에 따른 증가분 6,848억 원은 제외돼야 한다"며 "주택관련지출 1조 3,000여억 원 중에서도 취약계층 임대주택 지원금은 미미하고 강남이나 신도시에 조성, 분양하는 보금자리주택 등의 예산이어서 복지예산으로 분류할 수 없다", "복지예산의 실제 증가분은 8049억 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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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예산을 축소하는 행태를 보이는 와중에도 이명박은 정부의 복지 예산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면서 '친서민 복지'에 초점을 맞췄다는 해괴한 변명을 하기도 했다. #

이명박 정부의 복지 예산이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민주당 전현희 대변인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10%대였던 복지예산 증가율이 이명박 정부 들어 8%대로 떨어졌고, 내년도 예산의 경우 6%대로 급감했는데도 정부는 사상 최대 복지예산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며 “4대강 사업으로 줄어든 복지예산을 숨기기 위해 국민 앞에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2

더욱이 복지예산 대부분이 기초노령연금 수급자 증가 등 자연증가분이어서 매년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도 마치 이명박 정부가 복지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처럼 진실을 왜곡했다는 비판도 줄을 이었다. #2#3#4

참고로 이명박에 대한 평가가 날이 갈수록 부정적으로 바뀌는 이유는 이명박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기업인 시절만 해도[53], 성공신화의 인물로 꼽히던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이명박이었다. 현대건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사장까지 올라갔으니까. 그런데 그랬던 인물이, 본인의 어린 시절처럼 가난했던 사람들을 지원해주는 온갖 복지 예산을 다 깎거나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6.7. 정경유착

2010년 12월 29일, 이건희 삼성 회장을 대상으로 유래없던 원포인트 사면을 단행했다. 당연히 당시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던 사면이었지만, 그 배경이 불분명하였다.

하지만 2018년, 다스 관련 혐의로 수사하던 검찰이 미국에서 진행된 140억 반환 소송 비용을 삼성이 대신 내줬다는 것을 포착하였다. 다스 실소유주가 이명박이라는 전제하에, 이 돈은 당연히 이명박에게 흘러간 돈이 된다. 그리고 이학수삼성그룹 부회장을 소환하였고, 이건희 사면을 댓가로 소송비용 40억을 지원했다는 진술을 받는다.# 삼성 다스 소송비 대납사건 항목 참조.

2020년 10월 대법원 2부(주심 : 박상옥)에서 상고 기각 판결을 내려 최종적으로 사실임을 사법부가 인정하였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강만수산업은행장의 경우, 지인 김모씨가 운영하는 바이오에탄올 업체가 국책과제 사업자로 선정돼 정부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지식경제부 담당 국장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으며, 지난 2011~2012년 당시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압박해 김씨 업체에 5차례 걸쳐 44억원을 투자하도록 한 혐의도 받았다. 이밖에 고교 동창인 임우근 한성기업 회장으로부터 수년간 대출 관련 편의 대가 및 명절 떡값 등 명목으로 현금을 받은 혐의 등도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 2018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강 전 행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5년2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벌금 5000만원과 추징금 8800만원도 명령했다. 강 전 행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정권 실세로 꼽혔다. # #

6.8. 대우조선 부실사태 관련

2015년 대우조선해양 부실사태 당시 그 동안 숨겨진 수조원의 부실이 이명박 정부 당시 회사 사장으로 임명됐던 남상태, 고재호 전 사장의 임기 중에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대우조선(현 한화오션)의 대주주는 산업은행으로 정부의 영향력이 큰 회사였다. 먼저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남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연임에 성공했다. 남 전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처남이자 김윤옥 여사의 동생인 김재정씨와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으며, 둘은 대구 수창초등학교, 경북중학교 동창이다. 이후 남 전 사장은 세 번째 연임은 실패하고 2012년 자신의 측근으로 알려진 고재호 전 사장에게 사장 자리를 넘겨줬다. #

결국 수사결과 고재호 전 사장은 5조원대 분식회계 사건으로 지난 2017년 대법원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는 등 실형이 확정된 데 이어 2022년 2월에는 850억여원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한다는 1심 선고를 받았다. 남상태 전 사장 역시 회사에 200억원대 손해를 끼치고 수천억원대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 2019년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을 확정받았다. #


[1] 공직에 있던 사람이 퇴직을 하고 자신의 업무와 이해관계에 있던 사기업에 입사하는 행위를 회전문 인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 경력을 이용해서 공직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정경유착의 예시로 꼽힌다.[2] 노무현이 차명계좌를 보유했다는 허위사실 유포로 징역형을 살았고 천안함 희생자 유족들에게 짐승처럼 울부짖는다는 막말을 했다.# 하지만 이명박은 자신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사퇴 요구에도 그를 감쌌고, 이후 조현오는 경찰의 무능한 대응으로 유명한 수원 토막 살인 사건이 터지면서 결국 사퇴하게 된다. 다만 조현오는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악명 높던 전의경들의 내무부조리를 척결했다는 매우 큰 공도 있기에, 단순한 인사실패의 예로 보기는 힘들다.[3] #[4] 원세훈은 행정공무원으로서는 관록이 깊은 인물로, 관선 강남구청장과 서울특별시 행정 1 부시장을 맡은 인물이었기에 행정안전부 장관을 맡았다가 국정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경우였다.[5]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이 원세훈을 국정원장에 임명한 이유는 이재오의 증언에 따르면 "임기 말이 되면 국정원장이 '쓸데 없는 짓'을 할 수도 있으니까, 공무원 출신 데려다 놓으면 공무원이라는 게 자기 몸보신하기 바빠서 쓸데 없는 짓 안할 것"이라고 한다. # 정작 이명박은 청와대 내에서 두 번이나 물러나게 하려는 시도가 있을 정도로 비토 여론이 강했던 원세훈을 계속 비호하며 국정원장 자리를 유지시켜줬다. #[6] 그리고 몇 년 뒤 조선일보는 박근혜 정부의 인사 형태조차 비판하기에 이른다.[7] 박한철 헌법재판관을 칭찬하는 동시에 이명박 정부의 공직자들을 비꼬는 발언이다. 당장 "이 정부는 군대를 안 갔다와야 고위직 후보가 될 수 있다." 라고 발언한 것만 봐도...[8] '고소영', '강부자' 'S라인'[9] 사실 명박산성은 이전 정부인 참여정부 시절에 처음 등장한 바 있다.[10] 다만 이것은 강기정이 먼저 김성회를 폭행하자 강기정이 쌍방폭행을 한 것이었다. 물론 이를 감안해도 김성회의 폭행도 잘못된 것은 마찬가지이지만.[11] 관련 법규에 따르면 IT보안 예산은 전체 IT 예산 대비 7% 이상을 확보하고, IT인력은 총 임직원 수의 5% 이상, IT보안 인력은 IT인력의 5%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금융회사 정보보호 최고책임자(CISO)의 지정도 내년 5월15일부터 의무화 하기로 했다.#[12] 대통령기록물 무단 은닉이나 유출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중범죄다.[13] 결국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은 이명박이 직접 지시한 육성 파일이 확보되었다.[14] 기사에서 언급된 김미화 사문서 위조 혐의는 2010년 극우 언론사인 미디어워치 측에서 고발한 것인데, 2017년 이전 김미화의 사문서 위조에 대해 다룬 비미디어워치 기사는 (네이버 뉴스 기준) 단 밖에 없을 정도로 김미화 사문서 위조 혐의는 진영 상관없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만 인식되었으며, 김미화 재수사는 시도되었다는 말조차 전혀 없게 되었다. # 물론 진보 성향 판사가 한직에 배정되었다는 이야기 역시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명박 시기에는 우리법연구회 창립 회원(다만 탈퇴했다) 출신 유남석이 대법관 후보로 오른 데다가(#) 내곡동 특검으로 채택한 사람이 전라남도 + 민변 +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광범이었을 정도. #[15] 2013년 민주당이 벌인 장외 투쟁 당시 개제된 '부정선거의 최종책임자는 누구입니까?' 설문판에 가장 많은 스티커가 붙은 인물이 이 대통령이다.[16] 물론 이명박이 직접적으로 지시,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국가 통수권자로서 이런 사건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국정원 업무 관행상 모든 진행 과정과 결과물이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명박이 국정원의 다른 행각들을 인지했을 가능성은 높다.[17] 실제로 국민행동본부의 회장 서정갑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때 분향소를 파괴하고 노무현의 영정 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인 바 있다. 다만 국정원의 우익 단체 지원은 2010년부터 시작되었기에 (2009년에 있던) 노무현 분향소 파괴에 국가정보원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18] 박근혜 시기에도 2016년까지 3년간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주도로 보수단체에 68억 원이 지원되었다.[19] 사실 문민정부 시작 직후 폐지되었으나 1년 뒤 다시 부활했다.[20] 2017년 현 시점의 어마어마한 인물들이 한 둘이 아니다. 현직 대한민국 대통령, 청와대 민정수석, 서울시장, 제1야당 대표, 제2야당 대표, 4선 중진의원이 포함되었고 여기에 더해 방송연예계의 거물들까지 사찰대상에 올랐다.[21] 다만 환경스페셜의 폐지 자체는 박근혜 정부 시기에 이루어져서 이명박 정부와 직접적으로 연관성이 있다고 하기에는 애매하다.[22] 반면 민주노총, 전교조, 공무원 노조에 대해선 종북이다, 친북이다 라는 색깔론 낙인 공세를 펴면서 비난 일색의 글을 쏟아냈다.[23] 스탠포드 대학에 200만 달러를 기부한 후에 그 이자는 자신이 쓰려 했다.[24] 김진모는 검찰 내에서 우병우 사단에 속하는 인물이기도 하다.[25] 이 점에 대해서 MB 본인이 워낙 해먹은 게 많으니 '내가 그랬으니 저 사람들도 그럴 거야' 하는 오류에 빠졌다는 냉소적 평이 있다.[26] # 사실 한나라당의 의견도 이명박과 마찬가지였는데, 정두언의 증언에 따르면 이는 "바보가 아닌 이상 (노 전 대통령을) 구속시키면 정치보복에 따른 후폭풍이 뻔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다만 이명박도 노무현이 법원에 가면 유죄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정두언이 후에 이명박에 대한 무근거성 루머를 여럿 유포할 정도로 이명박에게 적대적인 관계로 변한 사람인데도 노무현 수사건에 한해서는 이명박에게 우호적인 주장을 했다는 것을 보면 검찰의 노무현 수사는 진짜로 검찰의 과잉충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27] 국정원 업무 관행상 모든 진행 과정과 결과물이 대통령에게 보고되므로 이명박 본인도 이 프로젝트를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인지했더라면 이를 알고도 원세훈을 제지하지 않은 이명박도 같이 비판받아야 한다. 그리고 지도자의 부하&측근들, 정권 측에서 한 일을 지도자 본인이 한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 아니다.[28] 아이러니하게도 김대중 노벨평화상 취소 공작에 국정원이 근거로 들었던 불법 대북송금 사건 역시 김대중 본인은 개입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초대형 사고를 친 것을 국가 통수권자인 김대중이 욕을 함께 뒤집어쓴 케이스다.[29] 근거로 든 것이 불법 대북송금 사건이었다.[30] 참고로 불법 대북송금 사건으로 수감된 적이 있다.[31] 미국에서는 로비가 합법이지만, 이는 규정된 절차를 밟아야 하고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 경우에 한한 것이다.[32] 이에 대하여 수많은 패러디들이 쏟아졌는데 대표적인 말로 이외수"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말이있다.[33] #[34] #[35] #2[36] 이외에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도 2009년 주가조작 혐의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리됐다.[37] 도원교통(서울) 사장으로,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서 버스 준공영제를 추진할 당시에도 버스운송조합 이사장직을 맡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친밀한 관계이기도 했다.[38] 박영준은 다만 장다사로와 더불어 원래는 이상득이 데리고 있었던 인물이었다.[39] #[40] 미디어법 당시 500만 원 돈봉투와 별개의 돈이다.[41] 이명박이 서울시장을 하던 당시에는 서울메트로 사장을 지냈고, 현재는 다스 사장이 되었다.[42] 실제로 만든 경험이 있다.[43] 병장 기준, 연평균 14,120원, 30.0% 상승[44] 병장 기준, 연평균 6,420원, 6.1% 상승[45] 병장 기준, 연평균 21,600원, 13.7% 상승[46] 병장 기준, 연평균 92,020원, 29.0% 상승[47] 다만 2009년만큼은 대침체의 영향 때문에 군 임금을 동결했다는 것이 참작이 가능하다.[48] 역대 정부 중에서도 김영삼 정부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군 임금 상승률을 기록했다.[49] 의회를 거치지 않고 국민들의 합의 없이 군사협정을 맺은 것은 헌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2023년 조지아에서는 살로메 주라비슈빌리 대통령이 국회 동의 없이 해외순방 나갔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탄핵 직전까지 간 상황이다. #[50] 이후 2000년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새천년민주당 총재인 김대중 대통령이 영수회담을 하여 이명박(1998년 사퇴, 1999년 선거권 박탈), 홍준표(1999년 의원직 상실ㆍ피선거권 박탈) 같은 선거사범의 피선거권을 회복시켜 주었다.[51]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코스피가 3,000이 될 것이라는 주장. 물론 이명박 정부가 끝나고 5년이 되어가도 안 되고 있다. 심지어 임기 중에 1,000선이 무너진 적도 있다.[52] 참고로 당시 한국은 양배추가 배추보다 더 비쌌다. 그래서 원성을 들은 것.[53] 넓게 봐서 서울시장이나 대통령 당선 당시 분위기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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