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대니얼 디포 Daniel Defo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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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대니얼 포 Daniel Foe |
| 출생 | 1660년 9월 13일 |
| 잉글랜드 왕국 런던 | |
| 사망 | 1731년 4월 24일 (향년 70세) |
| 잉글랜드 왕국 런던 | |
| 국적 | |
| 직업 | 소설가, 언론인 |
| 종교 | 장로교 |
| 가족 | 제임스 포 (아버지) 앨리스 마쉬 (어머니) 배우자 메리 터플리 |
1. 개요
잉글랜드의 소설가, 언론인. <로빈슨 크루소>를 쓴 걸로 유명하다.2. 생애
23세에 린넨 도매상으로 일한 것을 시작으로 한동안 정육업, 담배, 목재, 포도주 등의 운송 및 수출입 교역업에 투자하며 사업가로서의 인생을 살았으나 31세에 파산하여 감옥에 잠시 투옥되었다. 이후 벽돌과 타일 제조업, 노예 무역업 등에 종사했으며, 이때 새로 즉위한 윌리엄 3세와 안면을 트게 되었다.1697년 최초의 주요 저술 『사업론』을 펴내면서 자신에게 글 쓰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인정받은 디포는 이후 언론인으로 변신하여 윌리엄 3세를 옹호하는데 앞장서게 된다. 윌리엄 3세가 외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영국 국민들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하자 디포는 운문집 『진정한 순종 영국인』을 발표하여 이를 정면에서 풍자하면서 윌리엄 3세를 변호하기도 했다.
1702년, 윌리엄 3세가 사망하고 앤 여왕이 즉위하자 디포는 비국교도인 자신이 종교적인 탄압을 받을 것을 우려하여 먼저 선수를 쳐서 비국교도를 박멸하자는 주장을 담은 『비국교도 처리의 지름길』(1702)을 펴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고위 성직자를 모독했다는 죄로 도리어 디포는 감옥에 다시 투옥되었다.
이처럼 언론인으로서의 디포는 정권이 바뀔 때 마다 항상 정권에 대해 우호적인 글을 쓰며 정권에 아첨하는 언론인으로 유명했다.
감옥에서 나온 이후 디포는 감옥에서 동료 죄수들과 대화를 나눈 경험을 바탕으로 격일간지 <리뷰>를 창간하여 1709년 잡지가 폐간되기 전까지 잡지의 주필로서 활동했다. 특히, 디포는 잡지의 지면을 통해 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주식시장에 관한 기사와 사설을 빈번하게 작성하였다.
이후 1719년, 60세의 나이에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발간하였고 소설이 대히트를 거두자 디포는 작가로 전업하여 1731년 70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까지 인기있는 작가로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성공과는 별개로 디포의 말년은 비참했다. 왜냐하면 젊은 시절부터 상업과 자본에 대해 관심을 가지던 디포가 남해거품사건에 연루되어 전재산을 날리고 파산했기 때문이다. 말년에 소설 집필에만 몰두한 것도 당장 돈이 필요해서였다.
3. 작품
- 로빈슨 크루소
- 선장 싱글턴의 모험
- 세계 신항해
- 흑사병 연도의 일지
- 자크 대령
- 행운의 여인 록새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