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interpretations of quantum mechanics양자역학의 해석이란 말그대로 양자역학을 특정 관점에서 이해하고 설명을 시도한 것이다.
2. 등장배경과 목적
양자역학은 미시세계 현상에 관하여 완벽에 가까운 예측을 자랑한다. 즉, 경험적으로 적합하다(empirically adequate). 그런데 고전역학 등 기존의 물리학 이론과 달리, 양자역학에선 수식이 실제 세계에 대하여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연산자의 비-고유벡터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이는 '고유 상태들의 중첩'으로 해석되지만, 비-고유벡터는 측정 전까지는 물리적 속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일부 물리학자들은 이런 양자역학의 여러 수수께끼 같은 면모를 더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가령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등도 이 문제에 대해 계속 고민했었다.(EPR 역설, 슈뢰딩거의 고양이 등 참조) 특히 이런 수수께끼 같은 면모는 상대성 이론 등 거시세계에 적용되는 이론과의 정합성을 고려할 때 심화된다.[1] 비직관적인 양자역학을 적절한 해석을 통해 직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양자역학의 해석 문제라 한다. 따라서 이는 물리학의 영역보단 철학의 영역에 가깝다. 철학이라는것 자체가 이미 존재하는 현실세계의 현상을 우리 인간들이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가장 정확하고 가감없이 이해할수 있을지에 대한 사고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2]
그러나 양자역학의 해석을 통한 직관적인 이해가 물리학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기에, 양자역학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편리한지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해석에 포함되는 대표적인 주제들의 예시는 다음과 같으며, 다양한 '해석'들은 각 주제에 관한 나름의 대답을 제시한다:
- 양자적 중첩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물리적 상태인가?: 슈뢰딩거의 고양이 참조.
- '측정 문제': '측정'이란 대체 무엇인가? '측정' 행위 자체에도 슈뢰딩거 방정식이 일관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가? 측정 기구와 파동함수는 어떤 상호작용을 하여 확률을 만들어내는가?
- 양자역학은 반드시 결정론에 어긋나는가?: 예를 들어 드브로이-봄 해석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3]
- 특수 상대성 이론 등 다른 물리학 이론과 충돌하는 면모는 없는가?: EPR 역설 참조.
양자역학에 의하면 미시세계는 시간에 따라 유니터리하게 변화하는 계이며 수학적으로도 잘 정의된다. 하지만 이를 우리가 보고 있는 거시세계와 연관시키려 들 때 애매하고 불명확한 부분이 생긴다. 이 같은 모호성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양자역학에 해석을 가미하는데, 예를 들어 관측에 의해 상태가 결정된다는 코펜하겐 해석에 대하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누군가 달을 보고 있을 때만 달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던졌다고 한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는 말도 이 양자역학의 해석에 대한 논쟁 와중에 나온 말이다. 표준적인 양자역학/교재는 코펜하겐 해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3. 역사
흑체복사, 광전효과 등의 현상에 대한 연구로부터 직접적으로 촉발된 양자 현상에 관한 연구는 수소 원자 모형과 관련된 닐스 보어의 연구를 통해 큰 진전을 이뤘다. 그리고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 에르빈 슈뢰딩거의 파동역학 발견을 통해 관련 연구는 '양자역학'이라는 형태로 체계적인 결실을 이루었고, 불확정성 원리 발견은 그 쐐기를 박았다.이런 일련의 과학적 발견에 대하여 1920년대 말 닐스 보어의 코펜하겐 연구소를 중심으로 고안된 설명은 훗날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코펜하겐 해석은 이후 물리학계의 주류 해석이 되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등 양자역학 발견에 기여하면서도 코펜하겐 해석에 대해서는 끝내 동의하지 않는 물리학자들도 있었다.
20세기 중반 코펜하겐 해석은 "양자역학"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며 공고한 위상을 갖게 되었고, 여타 '해석'의 문제는 도외시되었다. 위대한 학자라 하더라도 이러한 문제를 꺼내면, 커리어상으로 매장당할 위험이 있었다. 광전효과 연구를 통해 양자역학의 토대를 닦기도 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EPR 역설을 제시하는 등 코펜하겐 해석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말년에 물리학계에서 고립되었고, 다세계 해석을 제시한 휴 에버렛은 커리어에 큰 손해를 입고 펜타곤에서 전략과 게임 이론등을 다루게 되었고, 양자 결어긋남 개념 연구를 주도한 디터 제(Dieter Zeh)는 지도교수였던 한스 옌센(Hans Jensen)과의 관계가 심각하게 틀어졌고, CERN에서 일하던 존 벨은 아예 동료들이 눈치 못채게 몰래 연구를 해야만 했다.
드브로이-봄 이론을 제시한 데이비드 봄도 이리저리 떠돌긴 했으나 이는 봄이 공산주의를 지지해 매카시즘에 휩쓸렸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봄은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브라질로, 나중에는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러다 헝가리 혁명 이후로 공산주의 지지를 철회한다.
만약 봄을 반박할 수 없다면, [최소한] 그를 무시해야 한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길 바랍니다.
If we cannot disprove Bohm, then we must agree to ignore him.
로버트 오펜하이머, 프린스턴 대학교 세미나에서 데이비드 봄의 논문을 읽고 *
이러한 풍조가 널리 퍼진 것의 원인으로는 여러 역사적 후보들이 지목된다.If we cannot disprove Bohm, then we must agree to ignore him.
로버트 오펜하이머, 프린스턴 대학교 세미나에서 데이비드 봄의 논문을 읽고 *
- MIT의 데이빗 카이저는 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양자역학의 주요 교과서, 커리큘럼 그리고 미국 물리학과 대학원 시험들에서 공통적으로 '철학적', '정성적' 주제들이 상당한 비중으로 다뤄졌으나, 그 이후에는 이러한 주제들이 급속하게 사라졌음에 주목하였다. 카이저는 2차 대전 이후 급격히 늘어난 물리학과 수업의 수강 인원과 양자역학 수업에서 '철학적' 주제가 다뤄지는 비중에 음의 상관관계가 성립함을 밝히며, 군사 및 산업계 등에서 필요한 물리학 전공자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과정에서 '철학적' 주제는 자연스레 밀려났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5]
- 엔리코 페르미, 리처드 파인만 등은 이런 흐름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물리학자들이었으며, 이러한 흐름은 곧 양자역학의 해석을 진지한 물리학이라기보다는 유사과학으로 여기는 풍조를 낳았다.
- 존 폰 노이만의 1932년에 증명 했다고 알려진 '숨은 변수 가설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명제는 양자역학의 해석에 대한 연구 시도를 위축시켰으며, 그에 맞서 그레테 헤르만(Grete Hermann)이 1933년에 발표한 반박이나 존 벨이 1966년에 제시한 반박Rev. Mod. Phys. 38 447은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6]
하지만 1982년 알랭 아스페의 실험에서 벨의 부등식이 어긋나는 것이 실험적으로 확인되면서부터(이 실험 결과는 주류 학설과 부합한다) 양자역학의 해석에 관한 논의가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부터 양자 정보 이론(quantum information theory)이 크게 발전하게 되면서, 학계에서 다른 해석들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물리학과 과학철학(그중에서도 물리학의 철학) 간의 협업도 더욱 많이 진행되고 있다.
3.1. 결 어긋남
decoherence양자역학의 해석에 속하는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미시계는 그렇다고 쳐도 거시계는 왜 고전역학을 따르는 것으로 보이는가?'이다. 결어긋남(decoherence)은 1970년대에 디터 제(Dieter Zeh)가 처음으로 제안하여 이후 보이치에흐 주렉(Wojciech Zurek)을 비롯한 여러 물리학자들의 후속 연구 및 실험적 검증을 통해 발전된 하나의 대답이다.
결맞음(coherence)과 결어긋남(decoherence, 결풀림)이라는 개념은 이중 슬릿 실험에서 유래했다. 이중 슬릿 실험에서 파동의 상쇄, 보강 형태를 만드는 원인은 파동들의 규칙적인 결맞음이다. 슬릿들에서 나오는 파동들 사이의 결맞음이 깨지고 흐트러진 상태가 되어 간섭무늬가 나타나지 않게 된 상태가 결어긋남이다. 결어긋남 이론에 따르면 미시계는 결맞음 상태에서 중첩 상태로 존재하다가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결어긋남 상태로 돌입하고, 이 순간 고전 물리학적 서술이 가능한 거시계가 된다.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고양이는 스스로 거대한 거시계인 데다가 계속해서 주변 공기 등과 상호작용하고 있으므로 고전적 서술이 가능해진다.
결어긋남에 따르면 신비주의적으로 서술되기까지 했던 측정 또한 다른 물질과의 상호작용의 일부로 볼 수 있다. 기존의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경험적 논증을 엄격하게 적용해서 관측이라는 용어를 실험대상과 관측 장비와의 상호작용에 국한했다면, 결 어긋남 이론에서는 실험 중에 연구자의 실수로 관측하려는 물질이 아무 상관 없는 공기 입자와 부딪혀도 그것이 관측이자 상호작용이라고 보며[7] 실제로 안톤 차일링거의 최근 실험에서는 인간 관측자 없이도 결어긋남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8]
안톤 차일링거의 풀러렌 연구는 결 어긋남 개념과 관련된 실험적 검증과 연관된다. 이 실험은 여러가지를 시사하는데, 고전적인 관측자 없이 계의 상호작용만으로 양자역학에서의 중첩 상태에서의 미시 - 거시 전환이 발생한다는 것을 검증했으며, 또한 그 전환이 어느 수준에서 발생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진공 농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결맞음이 깨지는 순간을 어느 정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풀러렌은 충분히 거시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첩이 가능한 것을 보임으로써 미시계와 거시계의 경계에 대해서도 실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이기도 했다.
결어긋남 연구는 양자역학의 해석 관련 연구가 발전하는 주요한 전기를 마련했고, 여러 해석들 각각마다 이론적 발전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테면 다세계 해석의 경우 결어긋남은 곧 '세계의 분리'를 정의하는 방식을 제공하였으며, 코펜하겐 해석의 경우 거시계와 미시계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결어긋남 관련 연구는 어느 한 해석을 결정적으로 지지한다기보다는, 공통의 발전을 이루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결어긋남은 [다세계 해석 및 코펜하겐 해석] 양 해석 모두에서 쓰임새를 갖는다: 에버렛의 다세계 해석에서는 분기(branch)의 정의를 제공하지만, 또 한편으로 보어의 관점에서는 [양자 영역과 고전 영역 간의] 중요한 구분을 묘사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부터 끌어낼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정보 및 그 전달이 양자 세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Zurek원문]
보이치에흐 주렉(Wojciech Zurek). "Decoherence and the transition from quantum to classical -- REVISITED" (arXiv)
보이치에흐 주렉(Wojciech Zurek). "Decoherence and the transition from quantum to classical -- REVISITED" (arXiv)
4. 코펜하겐 해석
물리학계의 주류 학설이며, 대다수 교과서에서 이 코펜하겐 해석을 바탕으로 양자역학을 설명한다. 코펜하겐 해석 참조. 다만 해당 문서에서도 설명되듯이,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명칭에 대한 모두가 동의하는 합의된 정의는 없으며 곧 중의적으로 쓰이고는 한다. 이를테면 "코펜하겐 해석"이란 말은 다음과 같은 상이한 입장들을 가리키는데 혼용되고는 한다:- "닥치고 계산이나 해라!": 양자역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식의 '의미'를 헤아리는 것은 무의미하며, 그저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얻고 공학적으로 써먹을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입장. '과학적 도구주의'의 한 사례로 분류될 수 있다.
- 닐스 보어 본인의 철학적 입장: 2차 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말은 곧 도구주의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되었으나, 닐스 보어 본인은 '상보성' 개념 등에 대하여 도구주의와는 판이한 입장을 제시한 바 있다 #.
이하 내용은 중첩의 해석에 대해 기본적인 코펜하겐 해석의 관점을 유지하거나, 혹은 그에 큰 영향을 받아 전개되는 이론들이다.
4.1. 양자 베이즈주의(QBism)
Quamtum Bayesianism (QBism)양자역학에서 나타나는 확률을 베이즈주의 확률론에서 말하는 확률, 즉 개인의 주관적인 믿음의 정도 혹은 정보와 같은 것으로 보는 해석. 2002년 논문 "Quantum probabilities as Bayesian probabilities (Phys. Rev. A 65, 022305)"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QBism에 따를 경우, 전통적인 코펜하겐 해석의 한계점은 '측정 주체'의 문제를 어물쩍 넘어가거나 슬그머니 고전역학에 도로 의지해버린다는 점에 있다. 반면에 QBist들은 이런 고전역학의 잔재를 아예 일소하고, 주관적 확률론에 입각한 보다 과감한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 이런 코펜하겐 해석의 한계점을 극복한다고 주장한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특히나 하이젠베르크와 파이얼스의 설명에 의거할 경우) 양자 상태란 "우리의 앎"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건 꽤나 QBism 냄새가 풍기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존 벨의 유명한 반론에 부딪힌다: 그래서 누구의 앎이라고? 뭐에 관한 앎인데? [이 반론을 해결하기 위해] QBism에서는 "앎"을 "믿음"으로 교체한다.[Mermin원문]
N. David Mermin. "Why QBism is not the Copenhagen interpretation and what John Bell might have thought of it (arXiv:1409.2454)"
N. David Mermin. "Why QBism is not the Copenhagen interpretation and what John Bell might have thought of it (arXiv:1409.2454)"
4.2. 어설프게 보기(coarse-grain measurement)
아직 정확한 용어 번역이 없으며, 조악하게 보기라고도 한다. 주류 해석은 아니며 최근 등장한 여러 해석 중 하나.Brukner와 Kofler가 제안한 것으로, 아직 만들어진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해석이지만 상호작용하지 않는 계의 상태에 대해 다른 관점을 취하는 해석이다. 이 해석은 계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고전적 거시계가 등장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상호작용이 없는 거시계 - 이를테면 슈뢰딩거의 고양이 - 는 어떻게 서술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단순히 비실재적이라고 기술할 것인가?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측정방식의 정밀함에 대한 것인데,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양자적 현상을 접하지 못하는 이유는 고전적 시스템을 관측하는 기술이 정밀하지 못하고 조악하기 때문에 양자 역학적인 거시계(?)를 충분히 정확하게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관측의 '정밀하지 못함'을 가지고 슈뢰딩거 방정식이 뉴턴 방정식으로 전환되는 것을 보이기도 했다.
이 관점은 이후 논박당하기도 했는데, 한국의 정현석 박사에 의하면 조악한 측정방식으로도 거시계에서의 양자역학적 효과를 볼 수 있으며 고로 이는 측정의 정밀함과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는 벨 부등식과 관련된 실험인데, 연구진은 거시적으로 인지할 수 있지만 양자역학적으로 얽혀 있는 두 개의 열적 상태를 멀리 떨어져 있는 관찰자에 보내고 각 관찰자는 열적 상태를 결정하기 위하여 호모다인 측정을 하는데, 여기에서 빔 스플리터로 인한 분해능 저하를 동반한 조악한 측정을 수행할때에도 벨 부등식이 위반될 수 있음을 보였다.
4.3. 관계론적 해석
카를로 로벨리가 주장한 양자역학의 해석이다. 로벨리는 에버렛의 상대적 상태 정식화를 차용하여 양자역학을 해석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로벨리는 에버렛의 방법론을 사용하지만 다세계 해석에 대해선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할 뿐 구체적인 설명능력이 떨어진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관계론적 해석에선 물리적 속성이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간주한다. 양자얽힘을 실험하면 각 관측자가 관측을 할 때 속성이 발현되는 것이며 얽힘으로 인한 상관관계는 제 3자가 두 실험자의 결과를 관측하는 순간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5. 숨은 변수 이론
보통 중첩현상 및 비실재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론들이며, 양자역학이 완전한 이론이 되기 위해서는 숨은 변수가 필요하다는 이론이다. 숨은 변수 이론은 실재성이라는 원칙에 기반하여 양자역학을 해석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숨은 변수 이론, 특히나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의 대표적인 옹호자였으나 수리논리학자 사이먼 코헨이 해당 이론을 반증한 적 있다.이 계열의 가설들은 학계 정설과는 거리가 멀지만 의외로 현재 이론에 기여한 바가 큰데, 다양한 반증 과정에서 양자역학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또한 EPR 역설과 봄이 주장했던 양자 힘 등의 개념은 벨 부등식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양자 얽힘(entanglement)을 실험적으로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명세는 다세계 이론이 챙기고 있지만 실질적인 학술적 기여는 숨은 변수 계열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5.1. 실재성(reality)
현상이 관측자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설명이 현상에 내재해 있다는 개념을 과학철학적 용어로 실재성(reality)이라 부른다. 아인슈타인이 달은 관측자가 있든 없든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 성질이 실재성인 것이다. 코펜하겐 해석에선 양자역학은 확률만으로 설명된다고 주장한다. 즉, 확률이라는 개념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그런 논의에 반대하였다. 실재성이라는 원칙에 따르면 결과는 외부의 환경과 무관하게 미리 정해져 있는 숨은 변수에 의해 결정되어 있고 겉보기에는 확률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서로 얽혀 있는 두 입자에 대한 사고실험인 EPR 역설을 통해 양자역학은 실재성(reality)을 만족하지 못하며 숨은 변수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다시 말해, 숨은 변수 이론은 실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후 벨의 부등식이 발표되고 양자역학의 실재성과 국소성(locality)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드러난다.5.2. 검증
결국 1982년 아스페의 실험을 통해 국소적 실재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된다. 이 실험의 의미는 국소성 혹은 실재성 둘 중 하나에 오류가 있다는 것으로, 다시 말해 비국소적 실재론, 혹은 국소적 비실재론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비국소적 실재론, 다시 말해 비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은 반증되지 않고 있으며, 실험으로 반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단, 충분히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2007년에 비국소적 실재론이 실험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11]비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으로 양자역학을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드브로이-봄 이론이다.
5.3. 드브로이-봄 이론
봄은 양자역학에서의 비국소성은 인정했으되 중첩은 인정할 수가 없었고, 이와 관련 고전적 인과율을 따르는 이론을 만들었다. 봄에 따르면 입자가 파동성을 갖는 것처럼 관측되는 것은, 입자가 이동하기 전에 '파일럿 파(향도(嚮導)파, 길잡이파)'라는 파동을 먼저 쏜 후 그 파동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다만 이 이론의 파일럿 파라는 것을 검증하지는 못했다는 점과, 수학적으로 코펜하겐 해석과 다를 바 없다는 점 등의 문제로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 또한 파일럿 파는 '왜?'라는 추가적인 과제를 발생시키며, 중첩 자체를 부정하는 이론의 경우 입지가 크다고 하기 어렵다.
파일럿 파를 또다른 변수로 본다면 상술한 숨은 변수 이론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숨은 변수 이론 중 모양새가 잡힌 편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후반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으로 나름 유명해진 소칼과 장 브리크몽이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를 까면서 봄의 해석을 홍보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러한 스캔들로 얻은 명성이 과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기는 어려우며 봄의 해석은 비주류라고 할 수 있다.
이 이론을 실험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와 상당한 주목을 받았지만 아직 다른 연구팀들에게서 실험 결과가 재현되지는 않았다. 퀀타매거진에서 이 이야기를 다룬 기사를 내기도 했다.
6. 다세계 해석
중첩의 확률적 가능성 모두가 실재하며, 매 순간마다 우주가 갈라지고 있다고 보는 해석이다.6.1. 개요
1957년 휴 에버렛 3세(Hugh Everett III)[12]가 제창한 양자역학의 해석 중의 하나. 과거에는 코펜하겐 해석이 절대적 다수였으나, 물리학자 중 다세계 해석의 지지자들이 꽤 늘어났다는 듯 하다.6.2. 설명
다세계 해석은 양자역학의 관측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설이다. 양자역학의 관측에 대한 대표적인 역설인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실제로 양자 레벨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거시적 세계와 연관시켜 표현한 것이다.휴 에버렛(1930~1982) |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관측하는 순간 입자의 파동함수가 '붕괴(collapse)'하여 한 위치에 확정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서 전자의 파동함수가 1광년에 걸쳐 퍼져 있다고 가정하자.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한쪽 끝 지점에서 전자를 관측할 때 순식간에 파동함수가 그 위치로 '오므라들게' 된다. 이러한 파동함수의 붕괴는 국소성의 원리를 위반하며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기술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연속적이고 가역적인 방정식인데 파동함수의 붕괴는 불연속적이고 비가역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반면 다세계 해석에서는 관측 장치를 포함한 계 전체의 파동함수를 고려한다. 이 파동함수는 '붕괴'라는 과정을 따르지 않고 슈뢰딩거 방정식만을 따라서 행동한다. 따라서 관측이 이루어져도 파동함수는 붕괴하지 않게 된다. 다세계 해석에서는 관측이 일어난 뒤의 세계 또한 중첩된 상태로 취급한다. 중첩된 세계들은 서로 다른 관측결과를 가지고 있으며 중첩된 세계들이 결어긋나면서(decohere) 세계가 분리된다. 결어긋난 세계들은 힐베르트 공간상에서 직교하는 상태들로 취급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가 분리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세계 해석을 증명할 수 있는 실험이 제안되었다. 분리되었던 여러개의 세계가 다시 상호작용하는 효과를 포착하면 이것이 다세계 해석의 근거가 된다는 주장이다.[13] 이 방법으로 다세계 해석과 코펜하겐 해석을 실제로 구분할 수 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다세계 해석은 다른 해석들에 비해 상대성 이론과 잘 어울린다는 주장이 있다. 다세계 해석에서 모든 세계는 현실이며 특정한 시공간이 우위를 가지지 않는다. 반면 코펜하겐 해석과 파일럿 파 해석과 같은 다른 해석들은 절대시간과 같은 뉴턴역학적 가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확장시키기 어렵다고도 볼 수 있다. 애초에 휴 에버렛이 다세계 해석을 만든 동기 중 하나는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1980년대부터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다세계 해석을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확장시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6.3. 문제점들
다세계 해석에서 우주의 분리가 지나치게 자주, 무리하게 일어난다는 비판이 있다. 차일링거의 실험에 따르면 관측은 특별한 행위가 아니며 자연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상호작용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들이 각자의 파동함수를 가지고 있고, 다른 입자와 아주 약간이라도 상호작용하는 순간마다 '관측'이 이루어진다. 인간이 이를 거시적인 신호로 변환하는지의 여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상온에서 질소 분자는 초당 약 50억 번 정도 다른 입자와 충돌한다. 여기에 아보가드로 수([math(6.022 \times 10^{23})])를 곱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온다.[14] 다세계 해석에 따르면 이 모든 순간마다 결어긋남이 이루어지고 세계가 분리된다. 물론 절대 안 될 것은 없지만, 입자와 입자가 충돌하는 사소한 사건이 어떻게 우주를 둘로 나눌 수 있는지, 왜 나누어야만 하는지는 아직 그럴 듯한 설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다세계 해석의 옹호론자들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모든 상호작용에서 유니터리성이 유지된다면 또다른 가능성의 우주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설명하곤 한다. 우주가 무한하게 크다면 누벼이은 다중우주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처럼 양자역학이 유니터리성을 보인다면 양자 다중우주도 존재한다고 보는게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또 다세계 해석은 확률이 의미하는 바가 불분명하다는 비판이 있다. 파동함수는 보통 균일하지 않으므로 각 우주마다의 '확률'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이 모두 존재하는 우주라면 '확률이 높은 우주'라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 제기가 있다. 다만, 보기에는 동일하더라도 실제로는 개별적인 경우의 수들이 쌓여서[15] 서로 다른 분포를 이루게 되므로 '확률이 높은 우주' 또한 겉으로 보기에는 동일하지만 개별적인 우주들의 집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세계 해석에서 서로 다른 관측자는 서로 다른 우주에 존재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타인의 경험이 나의 경험과 다를 수 있다는 이러한 다세계 해석의 특성이 유아론에 가깝다는 비판도 일부 존재한다. 다세계 해석의 유아론적 특성을 보여주는 예시로 양자 불멸이 있다. 다세계 해석에서 관측자가 죽음을 관측할 수 없기 때문에 관측자는 자신이 살아있는 세계만 관측하게 된다. 따라서 관측자는 영생한다는 상식과 어긋나는 결론에 다다르고 만다. 다세계 해석에서 관측자가 영생한다는 이러한 역설을 양자 불멸이라 부른다.
6.4. 다중우주론과 다세계 해석
자세한 내용은 다중우주 문서 참고하십시오.다중우주론은 우리의 우주 외에도 가능한 다른 우주들의 집합을 말하며 다세계 해석에 의한 평행우주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다중우주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다중우주론에서 말하는 다른 종류의 다중우주들은 서로 독립적인 것을 설명하는 이론들이다. 고로 서로 다른 곳에서 다뤄지는 떡밥들이다. 인플레이션 다중우주론이나 끈이론 풍경은 우주 물리학의 떡밥이며, 다세계 해석은 양자역학의 떡밥이다. 이 각각의 이론들은 모두 우주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한 방식인 '가설'이다.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를 풀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서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는 가설들이다.
다세계 해석은 다중우주가 아니라 평행우주 개념과 비교해야 할 것이다.
7. 앙상블 해석
1926년 막스 보른이 파동함수의 의미는 통계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한 데에서 유래한다. 통계역학에서 개별적인 입자의 성질 대신 통계적인 성질이 사용되듯이, 양자역학에서도 파동함수가 하나의 입자 대신 앙상블의 성질을 나타낸다는 입장이다.앙상블 해석은 양자역학에서 확률의 의미를 명확히 하려는 과정에서 발전했다. 확률은 하나의 실험만으로는 계산이 불가능하며 여러 개의 실험을 통해서만 계산이 가능하다. 피에르시몽 라플라스는 확률을 계산하는 실질적인 과정에 주목하여 확률이란 앙상블에서 특정 결과가 나오는 비율이라고 보았다. 라플라스 식의 논리를 적용하여 양자역학의 확률분포 또한 앙상블의 확률이라고 해석하는게 앙상블 해석이다. 우리는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는 어떤 눈이 나올 지 알 수 없으며 여러번의 시행을 통해 각각의 눈이 나올 확률이 1/6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양자역학에 등장하는 확률도 많은 수의 앙상블에서 특정 결과가 나오는 비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앙상블 해석은 양자 역학의 해석에서 큰 쟁점인 관측 문제를 무시하고 통계학의 언어로 양자역학을 기술한다는 특징이 있다. 앙상블 해석은 파동-입자 이중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살아있는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의 중첩상태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앙상블의 개별적인 상태들은 중첩을 겪지 않고 항상 결정론적이며 선형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예로 들면 한 마리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분석하지 말고 여러 동일한 고양이들의 앙상블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통해 통계적인 해석을 얻자는 견해이다. 한편으로 앙상블 해석은 관측의 문제를 무시하기 때문에 자세한 것들은 덮어놓고 일어나는 확률만 보자는 소극적인 해석이라 할 수도 있다. 다른 해석들의 예를 보면 코펜하겐 해석에선 관측이 파동함수를 붕괴시킨다는 등의 고전역학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의 변화를 요구한다.
아인슈타인이 한때 지지했던 해석이다. 칼 포퍼 또한 앙상블 해석을 옹호했다. 한편 보어는 앙상블 해석이 결정론에 기반한 잘못된 해석이며 양자역학은 고전적인 관점과는 전혀 다른 비결정론적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8. 서울 해석
장회익을 비롯한 한국의 학자들이 제안한 해석이다. 이 새로운 해석에서는 양자역학이 형식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동역학적 특성'으로 정의된 대상을 인식 주체의 영역과 무관하게 서술하는 이론이며, 메타 이론적으로 대상에 대한 '상태' 서술과 그로부터 관측자가 얻을 수 있는 '사건' 서술 사이에 명확한 규칙을 제시하는 동역학 체계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해석을 제안한 학자들은 이 해석이 "대상 이론인 양자역학 자체와, 이에 대한 메타 이론의 해석 규칙을 엄격하게 구별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양자역학의 해석에 대한 문제 대부분을 해결해 가고 있다"[16]고 주장 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장회익의 저서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참고.9. 참고 자료
[1] 미시세계에서와 거시세계에서의 적용되는 규칙들이 원래 다른게 섭리라고 퉁칠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퉁칠경우 대체 원자 몇개부터가 거시적인 존재인건지가 철학적으로 문제가 된다. 일단 안톤 차일링거 교수가 인슐린을 대상으로 이중슬릿 실험에 성공했다고는 알려져있지만, 슈뢰딩거의 사고실험처럼 고양이를 이중슬릿을향해 쏘는(...) 실험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2] 때문에 수식으로만 증명이 되면 그만이지, 왜 그걸 정교화된 어휘로 정의하거나 명명할 필요가 있냐고 주장하는 교수들도 있고, 대중이 알아들을수 있는 형태로 가공하지않으면 학문으로서 완성되지않은거라고 이 문제의 해결에 집착하는 교수도 있다.[3] 파인만의 업적으로 유명한 경로적분은 종종 '파인만이 양자역학을 결정론적으로 기술하는 데 성공했다'라는 애매한 오해를 사기도 한다. 파인만의 유명한 빨간책을 보면, 어차피 우리는 초기조건을 완벽하게 알 수 없으니까 결정론이든 비결정론이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부분이 있다고.[4] Do you have a permanent position?[5] David Kaiser, “Turning physicists into quantum mechanics,” Physics World (May 2007): 28-33 http://web.mit.edu/dikaiser/www/Kaiser.QM.pdf[6] 다만 폰 노이만의 증명은 당초부터 '숨은 변수 가설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보다 훨씬 온건한 명제를 의도한 것이었으며, 다만 이 증명을 후대 물리학계에서 오독한 것이 잘못이라는 입장도 있다. 관련된 논쟁에 대해서는 예시1, 예시2 등등 참조.[7] Brian Greene, 'The Elegant Universe: Superstrings, Hidden Dimensions, and the Quest for the Ultimate Theory', sagebrush education resources, 2000(박병철 옮김, 엘러건트 유니버스)[8] 실험환경의 진공 수치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고전적 관측자의 인위적 개입 없이 결맞음과 결풀림이 발생하는 것을 알아냈다. 다시 말해 단순히 실험 환경의 상호작용 정도를 조절한 것이다.[Zurek원문] Decoherence is of use within the framework of either of the two interpretations: It can supply a definition of the branches in Everett’s Many Worlds Interpretation, but it can also delineate the border that is so central to Bohr’s point of view. And if there is one lesson to be learned from what we already know about such matters, it is that information and its transfer play a key role in the quantum universe.[Mermin원문] Copenhagen, as expounded by Heisenberg and Peierls, holds that quantum states encapsulate “our knowledge”. This has a QBist flavor to it. But it is subject to John Bell’s famous objection: Whose knowledge? Knowledge about what? QBism replaces “knowledge” with “belief”.[11] S. Groblacher, T. Paterek, R. Kaltenbaek, C. Brukner, M. Zukowski, M. Aspelmeyer, & A. Zeilinger, Nature 446, p. 871-875 (2007)[12] 이 사람은 뮤지션 Eels의 아버지기도 하다.[13] Rainer Plaga, “On a possibility to find experimental evidence for the many-worlds interpretation of quantum mechanics,” Foundations of Physics 27, no. 4 (1997): 559–77, https://doi.org/10.1007/bf02550677 (https://arxiv.org/pdf/quant-ph/9510007.pdf)[14] 물론 이것은 극히 일부이다. 광자와 중성미자, 혹은 중력자 등과의 상호작용도 고려해야 한다[15] 예를 들어 동전을 2번 던졌을때 (앞,뒤)와 (뒤,앞)은 서로 다른 경우의 수지만 '앞면 한 번과 뒷면 한 번이 나오는 경우의 수'로 본다면 같은 사건 2건으로 볼 수도 있다[16] (한국물리학회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