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입자물리 연구소 Organisation Européenne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 |
<colbgcolor=#3b61a8><colcolor=#fff> 이명 | CERN (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
설립일 | 1954년 9월 29일 |
소재지 | [[스위스| ]][[틀:국기| ]][[틀:국기| ]] 제네바 주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오베르뉴론알프 |
형태 | 국가연립연구소 |
분과 | 입자물리학 가속기물리학 전자공학 컴퓨터공학 재료과학 |
직원 수 | 약 11,000명,(2019), |
예산 | 14억 CHF (한화 2조 1552억원) |
주소 | CERN, Esplanade des Particules 1 Organisation Européenne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
링크 |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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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Organisation Européenne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약칭 CERN은 제네바 근교 스위스-프랑스 국경에 위치한 유럽의 입자물리학 연구소이다. 약칭은 구명인 '유럽 합동 원자핵 연구소(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에서 유래했는데, 개칭 후에도 더이상 두문자를 풀지 않고 이전 약칭인 CERN을 쓴다.CERN에서는 주로 지하의 거대한 입자 가속기를 포함한 고도의 과학장비를 이용해서 여러가지 실험과 관찰을 진행한다. 소장은 2022년 현재 파비올라 자노티(최초의 여성 소장) 박사이며 이 연구소에 세계 최강의 입자 가속기이자 인류사상 최대의 과학 실험 시설인 LHC를 비롯하여 많은 물리학 실험시설 및 관련 부속시설들이 위치해 있다. 최첨단 기술이 몰려있는 곳으로, CERN에서는 유럽 국가 뿐만 아니라 유럽 밖의 다양한 국가의 과학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연구 인력 제공 뿐만 아니라 펀딩, 부품 제작 및 조달[1]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국제적 관계와 펀딩 규모에 따라 회원국, 준회원국, 옵저버(observer), 그리고 단순 참여 국가로 실험 참여 국가들을 분류할 수 있으며, 그 수가 실로 어마어마하다.[2]
유럽연합에서 운영하는 것이지만, 유럽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도 실험에 참여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경우, 현재 비회원국의 지위로 이 연구소의 실험에 참가하고 있으며, 140여 명의 대한민국 과학자들이 이 연구소의 각종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CERN 연구에서 국제 발표 기준으로 미국, 독일, 이탈리아, CERN에 이어 다섯번째로 활발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이에 CERN에서는 한국을 준회원국으로 승격시키고 이에 맞는 연구비 기여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추가적인 연구비 부담 때문에 비회원국으로 만족하는 상황이다. 정부로부터 추가적인 연구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준회원국이 되어 더 많은 연구비 기여를 강요 받으면 자칫 연구원들의 활동에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적 위상과 CERN 내 한국 과학자의 기여를 생각하면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준회원국으로 한국의 지위가 올라가면, CERN 관련 사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고, 한국 과학자들의 위상이 높아진다.
2. 명칭
두문자어 CERN은 알파벳을 개별로 읽는 경우는 거의 없고, 영어로는 일반적으로 '선([sɜːɹn])'이라고 읽는다. 국가에 따라 '세른'이라고 읽는 경우도 있다. 실제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일하는 한국과학자들도 세른이라고 자주 부른다.# 영미권에서 학위를 받은 교수 혹은 포닥, 대학원생들은 선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본토 발음으로 들으면 "선"도 "세른"도 아닌 독특한 무언가를 듣게 될 것이다. 프랑스 북부에서는 R을 '흐' 비슷하게 읽는다.[3] 프랑스어 발음을 굳이 표기하자면 세-흔느에 가깝다.일본에서는 '세른'으로 많이 읽힌다. CERN의 일본 위키피디아에도 サーン(선)과 セルン(세른) 두 가지 읽기 방식이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프랑스 발음에 준거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실제로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프랑스 발음을 /sɛʁn/이라 표기하고 있으며, /ʁ/을 ら행으로 옮기는 관례에 따르면 얼추 맞다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체른이라고 읽는다.
3. 역사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4]이 대두된 이후 원자 내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이때 이 분야의 연구를 위한 국제 단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서한은 물론 당시 발달하기 시작한 교통망을 통해 직접 움직이는 것까지 동원하여 유럽 단위로 교류하였다. 그 유명한 솔베이 회의는 이러한 움직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비록 세계 대전이 이러한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물리학자들이 가진 국제적 단위의 협력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특히 미국에서 유례 없는 대규모로 벌어진 초대형 물리학 연구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과 그 결과물인 원자폭탄, 그리고 두 차례의 격발은 더할 나위 없는 충격을 가져다 주었으며 원자 내부에 대한 지식을 평화로운 목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는 주장과 더불어 원자 내부 물리학에 대한 국제적인 공조가 더욱 절실해진 상황이 되었다. 이미 심각해질 정도로 이루어진 미국으로의 두뇌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한 건 물론이다.이에 공감대를 느낀 건 여러 유럽 국가들의 지도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드 브로이의 공이 컸는데, 무려 공작 작위를 가진 귀족인만큼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드 브로이가 1949년에 이에 대한 건의를 내는 것으로[5] 그 화두가 던져졌다. 마침내 1951년 유럽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국제 회의에서 유럽 핵물리 연구위원회(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의 창설이 건의되어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원어명은 프랑스어이며 상술했듯이 이 명칭의 두문자가 바로 CERN이다. 이때에는 아직 핵물리와 입자물리가 분화되지 않아서 연구소 명칭에 핵물리가 들어가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53년에 12개 국가의 참여를 포함한 최종적인 형태가 정해지게 되었으며, 1954년에 공식적으로 창설되기에 이른다. 그 해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첫 삽을 뜨게 되었다. 스위스가 중립국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갈등에 휘말릴 염려가 적다고 예상되고 제네바가 초대 회원국 12개국 내에서 중앙 근처에 위치한 국제도시이기 따문에 부지로 선정된 것이었다. 이듬해인 1955년, 펠릭스 블로흐가 첫 소장으로 임명되었다.[6] CERN의 장대한 역사의 시작인 것이다.
얼마 후인 1957년, CERN의 첫 가속기인 싱크로사이클로트론(Synchrocyclotron; SC)이 완공되었고 가동을 시작하였다. 이 가속기는 양성자를 600 MeV까지 가속시킬 수 있었으며 당시 발견된 다양한 소립자들의 성질들을 규명하는 임무를 맡았다.[7] 특히 파이온과 뮤온의 성질을 관찰하는 것에 주요 임무들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싱크로사이클로트론의 임무 중 입자물리 파트는 얼마 안 있어 죄다 빠지게 되는데, 바로 양성자 싱크로트론(Proton Synchrotron; PS)이 바로 얼마 후인 1959년에 가동을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PS는 SC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에너지인 28 GeV까지 양성자를 가속시킨다.[8] 이를 통하여 더 무거운 중입자(baryon)들의 성질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가속기만 발전한 것은 아니다. 가속을 시켜 잘 충돌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 충돌 결과도 잘 관찰해야 한다. PS까지만 해도 거품 상자를 이용하여 이를 수행하였는데, 준비 과정이며 자료 수집이며 많은 것에 손이 많이 갔다. 그 당시에는 거품 상자 안에서 나타난 궤적을 사진으로 찍은 다음, 그 궤적을 손으로 잘 이어, 즉 수작업으로 그려 충돌 결과를 관찰해야 했다.[9] 그보다 더 큰 문제로, 거품 상자로는 고속의 반응을 잡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의 검출기가 필요했는데, 조지 차르팍(Georges Charpak)이 1968년에 개발한 와이어 검출기(wire detector)가 바로 그것이었다. 수많은 전선들이 평행하게 그리고 촘촘하게 양 끝을 가로지르는 검출기 내부에 고압의 가스를 채워 넣고 고전압을 걸어준 다음 그 안에서 입자를 충돌시키면 생성된 입자들이 궤적을 따라 가스를 건드려 스파크를 만들고, 이때 생긴 스파크가 전선을 건드려 전기 신호를 만들 것이다.[10] 이렇게 얻어진 3D 신호들을 분석하면 입자들의 궤적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거품 상자보다 훨씬 더 편리하고 효과적으로 입자들을 검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다양한 검출기들이 개발되었지만 그 어떤 것이든, 심지어 지금 LHC에 포함된 검출기들 역시 이 와이어 상자 검출기를 효시로 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11] 참고로 이 획기적인 전환에 대한 공로로 차르팍은 노벨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1971년, CERN은 PS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SPS(Super Proton Synchrotron) 건설을 승인하였고, 1976년에 완공되었다. SPS는 둘레 7 km에 달하는 당시 최대 사이즈의 가속기었으며 6.3 km인 페르미랩의 테바트론(Tevatron)보다 조금 더 컸다.[12] 하지만 가속기의 한계로 페르미랩이 이미 1970년대에 도달한 500 GeV 양성자 가속(즉, 충돌 시 에너지 1 TeV)에는 다소 못 미치는 400 GeV 가속이 한계였다.[13] 그럼에도 입자물리 실험에 큰 족적을 남기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는 에너지로[14], 아래에 설명되었듯이 W 보존과 Z 보존이 1983년 바로 이 가속기로부터 얻어진 충돌로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CERN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거대한 프로젝트인 LEP(Large Electron-Positron collider)를 수행하였다. W 보존과 Z 보존의 발견은 표준모형이 맞다는 강력한 증거로 여겨졌고, 이제 이 표준모형이 가진 여러 면들, 특히 표준모형의 수많은 파라미터들, 그 중에서도 W, Z 보존의 질량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를 위해 양성자-(반)양성자 충돌 대신 전자-양전자 충돌을 일으키는 가속기를 개발하기로 하였고, 그렇게 해서 지어진 것이 바로 LEP이다. 이전의 가속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둘레 27 km 짜리 거대한 가속기가 지어졌다. 이 사이즈로부터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만 LEP가 쓰던 터널을 그대로 쓴 게 바로 LHC이다. 즉, LEP는 LHC의 전신인 것이다. 다만 질량이 8~90 GeV에 달하는 W, Z 보존을 생성하기 위한 에너지를 전자-양전자 충돌로 얻기 위해서는 SPS보다 훨씬 더 큰 가속기가 필요했다. 입자의 질량이 가벼울수록 제동복사로 인하여 잃는 에너지가 더 크다. 사실 SPS의 400 GeV까지 가속시킬 필요는 없더라도 W, Z 보존을 전자-양전자 충돌로부터 다량으로 얻기 위한 에너지는 상당히 컸으며, 실제 LEP의 충돌 시 에너지는 209 GeV에 달하였다. 같은 사이즈인 LHC의 충돌 시 최대 에너지인 14 TeV에 비하면 상당히 작긴 하다. 하지만 양성자의 그 복잡한 내부구조로 인해 너무 많은 불확정성을 가진 양성자-(반)양성자 충돌에 비하여[15] 그런 거 없는 전자-양전자 충돌은 물리적으로 엄청나게 깔끔한 결과를 내놓기 때문에 이를 통한 정밀 실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16] SPS와 후신인 LHC가 이루어낸 거창한 발견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표준모형을 정밀하게 더 잘 이해하는 것 또한 무척 중요한 일이다. 주변 역의 기차표까지 동원해 가며 실험을 했다는 게 바로 이 LEP 이야기이다. 그렇게까지 하여 LEP는 1989년에 가동을 시작한 후 W와 Z 보존의 질량을 포함한 다양한 물리량들을 엄청난 정밀도로 측정하였다.
잠시 막간으로 이야기할 만한 중요한 사건이 하나 생겼는데, 바로 월드 와이드 웹의 탄생이다. 1990년에 팀 버너스리가 처음 발표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저 두 문서들을 참고하자.
LEP가 어느 정도 운영을 한 후, 당초 계획대로 LHC 건설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2000년에 LEP는 완전히 운영을 중지하였고 바로 분해 작업에 들어갔다. 이렇게 분해되고 남은 자리에 양성자-양성자 충돌기인 LHC가 설치되었다. LHC에 대한 설명 역시 해당 문서를 참고하도록 하자. 그리고 2012년, LHC의 두 범용 검출기인 ATLAS와 CMS의 연구진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바에 따르면 두 검출기로부터 표준모형의 마지막 남은 미발견 입자인 힉스 입자가 결국 발견되었다. 그 후로도 LHC는 계속 가동되었으며 지금은 업그레이드를 위하여 가동을 중지한 상태이다.[17]
4. 전현직 유명 연구원
노벨상 수상자와 울프상같은 그외 수상자들이 많이 거쳐갔다. 등재기준은 노벨상, 울프상 수상자 혹은 CERN 소속으로 게재한 논문의 피인용수가 1000이상 되는 학자를 기준으로 했다.이름 | 분야 | 업적 | 재직기간 |
헤라르뒤스 엇호프트 | 입자이론 | 최소 뺄셈 방식 | 7/1973 – 5/1974 |
5. 둘러보기
CERN의 상징인 글로브(Globe of Science and Innovation)와 조형물(sculpture)이다. 조형물의 이름은 '측정불가능을 거닐다'로, 과학사 상 가장 유명한 문구들과 공식들이 시간 순서 대로 써져 있다. 고대 이집트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는데, 따라 가다 보면 피타고라스 정리는 물론 근의 공식, 뉴턴의 운동법칙, 푸리에 변환, 맥스웰 방정식, 주기율표, 아인슈타인 방정식, 슈뢰딩거 방정식을 거쳐 최후에는 표준 모형과 힉스 매커니즘이 등장한다. 이 상징물들은 방문객들을 위한 것으로 CERN의 메인 단지인 메랑 사이트(Meyrin site)[18]와 (18호선 트램을 포함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흥미롭도록 입자물리에 대한 내용들을 전시해 놓고 있고 메인 단지 입구 쪽에 있는 리셉션(reception)에도 전시관과 기념품샵이 있다.
W와 Z 보손 발견의 주역을 맡았던 검출기. 옛날 SPS에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 지금은 해체되어 리셉션 야외 전시장에 진열되어 있는 중이다. 외형이 마치 우주선 같이 생겼다.[19] 그 외에도 입자물리 역사에서 한 가닥 했던 검출기와 작은 가속기들 중 다수를 여기에서 볼 수 있다. 한편 리셉션의 실내 전시관에는 현재 운영 중인 LHC의 4대 검출기(ATLAS, CMS, ALICE, LHCb)를 위한 전시장도 있다.
특별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다. 리셉션 곳곳에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는데, CERN ID 카드가 없으면 못 들어간다. 이렇게 외부인이 별도의 절차[20] 없이 그냥 들어갈 수 있는 곳은 CERN 전체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CERN의 메랑 사이트 전경이다. 하단에 글로브가 보이는데, 글로브 옆을 지나는 긴 도로 왼쪽 편에 있는 단지 전체가 메랑 사이트이다. 한편 글로브 오른쪽에도 작은 단지 하나가 보이는데, 바로 여기가 LHC의 ATLAS 검출기가 있는 곳이다. 물론 본체는 지하 깊숙한 곳에 묻혀 있으며 위로 보이는 건물들은 부속 건물이다. 저 안에 LHC는 없다. LHC는 바로 옆 ATLAS 부지 밑을 지나 반대쪽으로 크게 돈다. LHC의 가속기와 검출기는 지하 깊숙히 묻혀 있어서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 LHC 위에는 별다른 시설이 없고 심지어 일반 부지에 지나지 않는다. 지하철을 연상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
매우 많은 건물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배치도 정돈되어 있지 않아서 방문자는 십중팔구 헤매기 십상이다.[21] 순수 물리학의 최첨단을 연구하는 곳 치고는 생긴 모습이 공단 같이 생겼다. 몇몇 곳에서 묘사한 모습과는 무척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이곳은 실험물리를 하는 곳이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실험장비를 만들고 굴리는 곳이니까 공장 같아 보일 수 밖에 없다. 또 7~80년 대에 지어져 있는 건물들이 아직도 있다. 심지어 슬레이트 지붕을 쓰는 건물도 많다.[22]
그래도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은 꽤나 멋있게 지어 놨다. 대표적으로 R1 (메인 빌딩: 500동), R2 (504동), 그리고 40동(ATLAS, CMS 빌딩). 여기서 R은 레스토랑(Restaurant). 즉, 식당을 말한다. 대외적으로도 R1과 40동의 사진들이 많이 쓰인다. 특히 R1 앞에는 입자물리학 덕후라면 한 번 쯤 봤을 파란 파이프가 있고 40동에는 ATLAS와 CMS의 리셉션(reception)이 있다. 그런 점들 때문인지 밥 시간이 아닌 데도 R1에 상주하며 커피 한 잔과 노트북을 끼고 앉아 일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한편 이들 건물에서는 공짜는 아니지만 제법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커피를 즉각 공급받아 빨수 있다. 무인 커피 머신도 많이 구비되어 있는데, 식당에도 모자라 곳곳에 네스프레소 자판기도 구비되어 있다. 연구에 몰두하는 물리학자들을 무더기로 보고 싶으면 여기도 가 보도록 하자.
CERN의 메랑 사이트를 주로 설명했는데, 물론 다른 사이트도 있다. 그 중 하나로 옆 동네에 프레세방 사이트(Prevessin site)가 있다. 메랑 사이트가 메인이고 더 크지만 여기에서도 중요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R3(세번째 레스토랑)은 이 단지에 있는데 한 번 들러보는 것도 좋다. 프레세방 사이트에서는 주로 검출기 조립과 검사가 이루어 진다. SPS을 이용한 테스트빔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랑 사이트에 비하면 프레세방 사이트는 훨씬 더 공장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공장이기도 하고. 여기서도 한국 연구자들이 열심히 검출기를 만들고 있다. 참고로 메랑 사이트의 대부분은 스위스에 있는데 반해 프레세방 사이트는 프랑스에 있다. 그래서 여기는 스위스 프랑이 아닌 유로를 쓴다는 걸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ATLAS 단지도 있고, 다른 세 개의 검출기(CMS, ALICE, LHCb)들 각각의 단지들도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다만 그 외에도 유럽은 물론 세계 각지의 연구소 및 대학에서 CERN과 협력 관계를 가지고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중에 있다. 한국의 KCMS와 KoALICE가 그 예이고, 이들 산하에도 수많은 대학들이 있다.
5.1. 방문하기
일반 방문객이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들어가기 위한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CERN에서 제공하는 가이드와 함께 다니는 것이고, 두번째는 CERN 연구진에게 부탁해서 visitor card를 받는 것이다.- 전자는 CERN 연구진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할 필요가 없는 단순 투어(tour)이다. 개인 혹은 소수 (~11명) 관람은 최소 3~15일 전에 신청해야 하며, 더 많은 사람들의 단체 투어라면 이를 위한 추가 옵션에 따라 신청해야 한다. 물론 영어를 할 줄 알아야 신청부터 가이드 받는 것까지 문제 없이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 두번째 방법은 물론 방문객이 개인적으로 아는 CERN 연구진을 필요로 하며, 이 방법으로 방문하게 되면 정해진 가이드가 딱히 없는 대신 상대적으로 더욱 자유로운 투어를 가질 수 있다. 이를 위해 CERN 연구진은 이 링크에 접속해서 방문객을 위한 방문 신청을 해야 한다. 신청은 발급 받기 48시간 전에 해야 한다는 점과 신청한 연구진이 최소한 입장 전까진 방문자와 동행해야 한다는 점을 방문객과 연구진은 유의해야 한다. 상기했듯이 방문객은 입장 후에 가이드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나, 내친 김에 연구진의 가이드를 부탁하고 같이 투어를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만약 연구진이 한국인이거나 한국어에 유창하다면 한국어로 가이드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덤이다.
위 절차를 밟아도 갈 수 없는 곳은 많다. 우선 개인 사무실은 당연히 못 들어간다. 또 핵 및 입자물리를 다루는 연구소이다보니 곳곳에 방사능 주의 딱지가 붙어 있는 곳들이 많고, 이런 곳은 CERN ID 카드 있는 사람도 추가적인 절차를 밟지 않으면 못 들어가는 곳이다. CERN 메랑 사이트는 그렇다 쳐도 ATLAS, CMS, ALICE, LHCb 같은 4대 검출기라든가 LHC 파이프가 있는 지하는 못 들어간다. 4대 검출기 외부 시설, 즉 지상 건물 등도 따로 신청하지 않으면 CERN ID 카드 있는 사람도 들어가기가 어렵다. 지상 시설에 어떻게 갈 수 있다 해도 지하는 LHC가 가동 중이면 아예 못 들어간다. 방사능 천지이기 때문이다. 가동 중지 상태라고 해도 짧게 (2~4주) 점검 하고 다시 돌리기 바쁘기 때문에 보수 인원을 제외하면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다만 그 지하에 들어갈 수 있는 기간이 있는데, 바로 long-shutdown (LS) 기간이다. 예를 들어 2018년도 가동을 마지막으로 Run II 가동이 종료되고 두번째 LS가 시작되었는데, 그 기간이 2019년 1월~2020년 12월 마지막 날까지이다. 그리고 이 LS 기간 동안에는 특별히 정비 인원 말고도 다른 연구진은 물론 일반인도 지하로 내려가서 구경할 수 있다.물론, 따로 신청을 해야 내려갈 수 있다. 심지어 연구진도 일반인처럼 신청해야 갈 수 있다. 어느 검출기이든 1주 전에 신청해야 한다.
ATLAS
CMS
ALICE
LHCb
하지만 그마저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해 리셉션을 포함한 모든 시설로의 출입이 전면통제된 상황이라 입장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2020년 안에 통제가 풀릴지도 미지수인데 2021년에 재가동이 예정되어 있으니 검출기 방문은 사실상 다음 LS 기간이 오기 전까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5.2. 몇 가지 팁
한편 장래 진로로 CERN에서 입자물리를 연구하고 싶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CERN과 협력하는 연구소 혹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해외 유수의 대학으로 들어가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한국의 대학교 중 KCMS와 KoALICE와 일하는 연구실이 있는 학교로 들어가 대학원에 가도 된다. 주의할 점은 해당 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한다고 CERN 소속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소속은 여전히 해당 대학교. 그리고 엄연히 CERN에 소속된 박사/교수/엔지니어가 따로 존재한다. CERN에 직속으로 소속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로 입자물리 전공자 혹은 관련 분야에서 연구를 지속해야 기회가 생긴다.[23]CERN 실험 결과로 나오는 논문들에 이름을 싣는 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위 authorship이라는 걸 받으면 이름이 실린다. 이 authorship은 소속 연구실에서 서비스 워크(service work)를 하고 어느 정도 인정을 받으면 얻을 수 있다. 서비스워크는 보통 검출기가 받은 데이터를 고치든가 검출기의 성능향상을 한다든가 등등의 일들을 말한다.[24] 그렇게 일을 하면 해당 검출기의 collaboration에 이름이 올라가게 된다. 예를 들어 CMS와 같이 일하는 실험실에서 CMS 서비스워크를 잘 수행하면 CMS Collaboration에 이름이 올라가게 되고, CMS Collaboration 이름[25]으로 나오는 논문들에 본인의 이름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명이 The (검출기 이름) Collaboration이라고 되어 있는 논문을 보면 맨 뒤 스무 페이지 가량이 authorship을 받은 사람들의 이름으로 도배가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입자물리에 로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CERN에 직접 소속되지는 않더라도 이런 논문에 이름을 싣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 될 것이다. 최근 들어 참여 연구진이 늘어난데다 많은 영역들이 자동화되어 가면서 authorship 받는 게 더 어려워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기회는 크다.
입자실험물리를 연구하는 곳이나 이론물리분과(Theory Division)이 존재하나 주의할점은 이분과도 IAS, IHES처럼 현대수학을 끌어다 쓴 입자이론물리[26]를 심도 있게는 다루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양자장론 커리큘럼에서 표준모형, 양자색역학에 핵심적인 이론, 즉 즉, 1930-70년대 초반의 이론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그 너머의 실험에 필요한 계산 이론이나 수리물리적 공리들은 잘 안 다룬다.[27] 예를 들어 초끈이론이 멋있어 보여 입자물리에 들어가려고 하는 학생이 입자실험물리 연구실에 들어가서 끈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선배들 포닥들 교수들이 끈이론을 대놓고 비웃는 걸 보고[28] 충격먹을 수 있다.
방문하고 싶은 사람들 혹은 이곳에 연구목적으로 머물 사람들을 위한 몇 가지 팁을 소개한다. 스위스, 그 중에서도 특히 제네바의 물가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이는 CERN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그나마 좀 더 싸긴 하니까 예외라고 칠 수도 있겠지만. 더군다나 이곳은 스위스 프랑만 취급하기 때문에[29] 굉장히 불편하다. 물론 스위스에만 잠깐 있다가 갈 생각이면 덜 골치가 아프겠지만, 스위스만 여행하는 게 아니라든가 오랫동안 머물 예정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선 숙소는 CERN 호스텔에서 묵는 게 아니면 상제니(Saint-Genis)나 페르니-볼테흐(Ferney-Voltaire[30])에 있는 곳으로 잡는 게 좋다. 찾아 보면 알겠지만 이 두 곳은 스위스가 아니라 프랑스에 있는 지역들이다. 불과 국경 하나 차이로 제네바의 살인적인 물가와 동떨어진 지역이다. 게다가 솅겐 협정 덕분에 스위스-프랑스 국경 넘나드는 건 전혀 문제가 안 된다.[31] 실제로도 출장 나온 연구원들은 이 두 지역에 숙소를 잡고 생계를 이어가곤 한다. 물론 밥을 포함한 생필품은 근처 대형 마트에서 주로 해결한다. 참고로 보통 '까르푸'로 가는데, 두 지역 다 보유하고 있다. 잠깐 온 여행객들도 제네바 숙소가 너무 부담스러우면 이 두 곳 중 하나에 숙소를 잡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지역들은 그냥 시골이라서 뭐가 없다. 그래서 이 지역들 안에서 생필품 이상의 것들을 사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다. 다행히 제네바로 갈 필요는 없는데, 차 타고 멀지 않은 곳에 또아히(Thoiry)라는 동네로 가면 더 큰 쇼핑몰(Val Thoiry)이 있다. 68번 버스를 타고 쭉 가도 된다. 단, 가끔 상제니 종점 버스인 경우가 있으니 행선지를 잘 보고 타야 한다.
6. 업적
6.1. W, Z 보존의 발견
CERN은 입자물리 분야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업적들을 남겼고 지금도 계속 남기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 업적을 꼽으라고 하면 힉스 보존의 발견과 더불어 W, Z 보존의 발견을 꼽을 수 있겠다. W, Z 보존은 약력을 매개하는 입자로, 질량이 각각 80.4 GeV, 91.2 GeV에 이르는 매우 무거운 입자들이다.[32][33] 이 무시무시한 질량은 사실 약력이 왜 '약한가'에 대한 결정적인 이유이다. 반응 중간에 생성되는 입자의 질량이 반응 전체의 총 에너지에서 많이 벗어나 있으면 벗어나 있을 수록 그 반응이 일어날 확률, 혹은 그 반응의 세기가 급격히 작아지는데, 약력 반응인 원자핵의 베타 붕괴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이들 보존들의 질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기 때문에 약력이 약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거꾸로 말하자면, 만약 W, Z 보존의 질량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한 점에 집중시키면 약한 상호작용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 질량 주변에서만 세기가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것은 어떤 피크(peak) 혹은 공명(resonance)이 생긴다는 것인데, 보통 이런 피크를 입자물리학자들은 해당 입자가 생긴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그러한 피크를 봤다는 것은 그 피크에 해당하는 어떤 입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게 W/Z 보존을 찾은 것이다.
특히 W 보존과 Z 보존의 발견은 입자 발견 외에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데, 바로 표준 모형의 결정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표준 모형, 그 중에서도 양-밀스 장 이론과 힉스 매커니즘이 맞다면 약력의 매개 입자가 아주 무거운 입자이어야 하며 W/Z 보존이 바로 그 예견된 입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입자들이 발견됐기 때문에 후술하게 될 힉스 입자 발견이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 입자들은 LHC의 할아버지 격인 SPS에서 발견되었다. 카를로 루비아와 시몬 반 데르 미어에 의하여 실험이 진행되어 1983년에 둘 다 몇 달을 간격으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듬 해에 이 두 사람에게 노벨 물리학상이 돌아갔다. 노벨상이 보통 오랫동안 진행이 된 실험에 돌아간다는 걸 생각하면 꽤나 이례적으로, 그만큼 이 발견이 엄청나다는 것을 의미한다.[34]
6.2. 월드 와이드 웹
세계 최초의 웹 페이지 |
사실 CERN이 대중에게 유명해진 데는 입자물리학보단 컴퓨터 과학쪽이 크다. 1989년 CERN에 근무하던 영국인 물리학자 팀 버너스 리와 동료들은 여러 연구 자료를 쉽게 검색하기 위해서 프로토콜과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이것이 월드 와이드 웹이다.[35]
그때 팀 버너스 리는 스티브 잡스가 세운 NeXT사의 컴퓨터로 웹서버를 돌렸는데,[36] 이 때문에 NeXT 컴퓨터는 세계 최초의 웹서버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지금도 그리드 컴퓨팅과 컴퓨터과학 관련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대표적으론 LHC@HOME이란 프로젝트. 최초의 웹서버로 돌린 페이지는 http://info.cern.ch이고, 전문은 여기있다.
WWW를 개발하고 수많은 토의를 한 끝에, 문서 한장으로 WWW를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어놓았으며, 이로 인해 WWW는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되어 갔다. WWW가 전 세계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보면 특허료 같은 거 안 받고[37] 저렇게 풀어놓은 게 얼마나 대인군자스러운 일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LHC가 한번 가동하는데 뱉어버리는 내용이 엄청나다보니, 데이터양이 엄청나게 많을수 밖에 없고, 덤으로 Mikrotik의 고객리스트에 올라있기도 하다. 또한 컴퓨터 센터만으로도 4.5 MW는 기본이라는 듯. 일단 LHC 탐지장치에서 1초동안에 전송하는 데이터양은 다음과 같다.
- ALICE: 4 GB/s (납-납 가동시)
- ATLAS: 800 MB/s ~ 1 GB/s
- CMS: 600 MB/s
- LHCb: 750 MB/s
6.3. 힉스 입자
힉스 입자는 힉스 메커니즘에 의해 각각의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고 남은 입자로 힉스 이론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는 입자이다. 그 덕분에 질량을 부여해주는 입자로 오해받지만 힉스 이론을 증명하는 증거 입자일 뿐이다. 양자 역학의 표준 모델의 계산 결과 이론상으로 그 존재가 확인되었지만 실제로 검출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실험으로 존재가 확인된 적은 없었다. 95년 탑 쿼크가 발견된 이후 남은 표준모델의 최후의 미확인 입자. 사실 LHC도 힉스 입자를 발견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봐도 될 정도로 큰 떡밥.2011년 12월 13일, 힉스 보손이 진짜 존재한다는 흔적을 찾았다고 전세계에 발표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붉은 선 4개가 그 후보 중 하나.[38]2012년 7월 4일, 힉스 입자의 기존 예측 질량인 126GeV와 굉장히 가까운 125.3GeV의 질량을 가지는 새로운 입자를 발견했다는 발표를 했다. 기사
그리고 2013년 3월 14일 CERN은 2012년 실험 당시에 발견한 입자가 힉스 입자가 맞다고 공식 발표하였다.[39]
7. 소동
7.1. 초광속 입자 발견 소동
CERN에서 발표를 한 뒤 입자물리계에서는 관련 논문이 미친듯이 쏟아지고 있다. 실험 내용에 대한 반박 논문, 재반박 논문, 실험이 맞다는 가정 하에서 물리 법칙에 대한 논문, 등등등... 관심 있으면 arXiv를 찾아보자. 이에 대한 한 예시로 2011년 10월 12일 이 관측 결과가 CERN 측의 실수라고 주장하는 논문이 나왔다. 거리 관측을 담당하는 위성과의 대조를 통해 중성미자가 빛보다 빨리 닿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인데, 지구의 자전 속도와 GPS 위성의 속도 차이로 인한 시간 보정을 계산에 넣지 못한 것. 이러한 관측자와 레퍼런스 사이의 상대성을 고려하지 못한 실수였다는 결론이 내려진 듯 했다. 관련 기사그러나 2011년 11월 18일 CERN의 2차 실험에서도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가 검출되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What? 해당 링크는 상대성 이론 오류를 보정한 것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으니 보정이 됐는지 안 됐는지는 모른다.
현재 추가 대조 검토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중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이 문제는 좀 더 기다려야 결말이 나올 것 같다. 아마 페르미 연구소에서도 검증 실험을 할 것이니 2012년 안에는 결말이 날 것이다.
초광속 중성미자의 추가 보완 실험은 2011년 12월 초까지 계속될 예정이고 새로운 실험이 아닌 기존의 실험을 보완하는 형태지 실험체계를 재검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기사
결국 느슨하게 조여진 케이블때문에 60나노초의 오차가 생긴 것으로 결론이 났다. 결국 CERN의 관측실수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여전히 건재하다.
사실 CERN은 입자를 보내주기만 한 것이고[40] 실험은 이탈리아 국립핵물리학 그랑사소 연구소(INFN Grand Sasso)에서 했다.
7.2. 새로운 입자?
2015년 말, CERN에서 데이터 분석 결과 하나의 새로운 입자일지도 모르는 입자가 발견되었다. 이 입자는 철원자의 15배의 질량을 가진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정도면 정말 무거운 수준이다. 몇몇학자는 이 입자가 중력자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내놓는 등[41] 5개월 동안 300건의 넘는 엄청난 양의 추측하는 논문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 입자가 왜 이렇게 큰 이슈 된건가? 힉스는 예측이라도 했지만 이 입자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입자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다시 실험한뒤, 원래는 16년 6월 즈음 공식발표를 하려했으나 담비가 변압기를 뜯어내는 바람에 지연되어 8월로 연기되었다. 결국 새로운 입자는 통계적인 오류일 뿐이라고 판명되었다.사실 입자실험물리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그다지 반향을 이끌지 않았다. 이 신호는 3 sigma 정도[42]로 추산되었는데 이 정도는 통계적으로 얼마든지 묻힐 수 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결국 예상대로 더 많은 데이터에 묻혀 버린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7.3. 기타 소동
힉스 입자 발표 발표가 나온 직후, 병림픽이 벌어졌다. 그것도 힉스 입자의 존재 여부 등 학술적인 토론이 아니라, 당시 발표 슬라이드에 사용된 글꼴이 윈도에 기본 탑재된 코믹 샌즈(Comic Sans)였는데, 이걸 두고 '이런 역사적인 발표에 이따위 개떡같은 글꼴을 써먹냐?'란 비난이 나오면서 이에 대한 키배가 벌어진 것. 영미권에서 Comic Sans체가 한국의 굴림체와 비슷한 위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다. 그리고 2014년 만우절, CERN은 홈페이지의 서체를 코믹 샌즈로 바꾸는 장난을 쳤다.8. 기타
2010년 11월 18일, 반물질 원자를 0.127초 동안 유지시켰다고 보도되었다. 그리고 2011년 6월 6일에는 반물질 원자를 무려 1000초 동안 유지시키는데 성공했다.CERN 소속 관계자들이 레딧에 스레드를 만들고 일반인들의 질문을 받았는데. 그 중 누군가가 물은 '타임머신 연구는?'이라는 질문에 "그건 SERN에게 맡겼다"는 답을 해 오덕 팬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링크의 첫 답변을 참고.
CERN의 로고는 이 연구소 안의 SPS라는 양성자 가속기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1973년 세계 최초로 터치스크린을 개발했으나 당시 비용 문제로 상용화는 못했다.
2022년, 연구소 역사 최초로 큐브위성을 밴 앨런대에 올렸다.
Proton의 첫 출발지기도 하다.
9. 창작물에서의 CERN
-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 CERN이 만든 반물질로 폭탄을 만든다는 설정이 있어 CERN이라는 연구소에 대해 알게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진위 여부를 헷갈려한 사람들 때문인지,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천사와 악마 관련 페이지를 내걸기도 했다. 현재는 페이지가 삭제되고 글로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도 접속이 안된다. 참고로 소설 속에선 마치 미래 도시 마냥 CERN 시설을 묘사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실제와는 차이가 많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메랑 사이트에 실제로 들어가면 처음 보이는 리셉션 건물과 방문객들을 위해 마련된 전시관, 그리고 몇 안 되는 새 건물들을 제외하면 공장 단지 같은 느낌이다. 그나마 미래적인 느낌이 나는 요소는 거대한 네스프레소 자판기 정도 뿐. 덧붙여서, CERN 연구진들이 종교에 대해 엄청난 반감을 가지는 것처럼 묘사되는데, 사실과는 차이가 있다. 엄연히 종교를 가진 과학자들도 있고 내부에 종교 클럽도 있다. 당연히 가톨릭 사제들이 수난 받는 모습을 보며 조롱하고 기뻐하는 인격파탄자들은 없다.[43]
- 슈타인즈 게이트에 등장하는 조직 SERN의 모티브이다.
- SUPER LOVERS의 하루코가 여기 소속이라고 한다.
- 전파교사에서는 CERM이란 이름으로 등장하였다.
- 로드 엘멜로이 2세의 사건부에서는 마안에 대해 설명하며 CERN 앞에 세워진 나타라자 상을 오컬트적 측면에서 분석한다. 시바신이 지닌 마하칼라(거대한 허무)의 측면은 블랙홀과 개념적으로 매우 유사하기에, 소립자의 움직임을 나타라자의 춤에 씌운다는 것은 블랙홀을 시바의 마안으로 취급하고 그 내부의 미시적인 마력의 움직임을 찾아내는 셈이라고 한다. 타입문 월드의 CERN은 칼데아처럼 마술 관련 지식도 받아들인 곳일지도.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그냥 CERN과 인도 간의 협약이 맺어진 기념으로 인도 정부가 선물해 준 것 정도 밖에 안 되는 동상이다.
그리고 포켓몬고 체육관이다[44]실제로 동상 앞에 관련 내용이 써져 있다. 인도는 유럽이 아니지만 인도 뿐만 아니라 비유럽권의 수많은 국가들이 CERN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CERN을 지원하는 중이다. 대한민국도 그 중 하나며 중국과 일본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CERN 앞에 있는 동상도 아니고 어디 구석(40동과 39동 사이[45])에 있다. - 2019년 프랑스 영화 미립자들에서는 실제 CERN이 있는 지역을 배경으로 입자가속기가 작동하면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들을 성장물과 섞어서 다루고 있다.
-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평행 우주에서는 입자가속기 실험의 영향으로 아이들이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 닥터 후에서는 외계인이 만든 지구 종말 시뮬레이션 속 세계 속에서 등장한다. 바티칸의 비밀 도서관에 숨겨져있던 이 세계가 시뮬레이션이었다는 사실이 적힌 금서, '진리'를 읽은 교황청의 사람들과 그 내용을 전달받아 알게 된 CERN의 연구원들 모두 진실을 알고 집단자살해 시뮬레이션 세계를 떠나게 된다.
9.1. 관련 문서
[1] 단순한 부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속기 및 검출기의 핵심 부품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는 차후에 있을 LHC의 대대적인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새로 설치될 검출기의 코어 부분을 제작하고 있다. LHC 문서 참조.[2] 그래서 CERN의 공용어는 다름아닌 'Broken English'라는 유명한 농담이 있다.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모여서 유창하지 않은 영어를 사용하지만 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3] 비슷하게 CERN 본진이 위치한 메헝(Meryin) 사이트도 이름을 처음 들으면 뭔 소리인가 하고 갸웃하곤 한다. 물론 그런 거 없이 그냥 메랑이라고 읽는 사람들도 많지만.[4] 원자 내부 쯤으로 가면 상대론적 효과가 두드러지기 시작하고, 입자물리부터는 아예 상대론적 양자역학으로만 거의 기술되니, 빠질 수 없는 요소인 것이 맞다. 멀리 안 가더라도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중요한 에너지원 중 하나인 원자력이 다름 아닌 핵물리에서 나타나는 상대론적 효과에 많이 의존한다는 사실을 상기하자.[5] 출처[6] 출처[7] 입자물리학/역사 문서를 보면 이 당시의 혼란 상을 짐작할 수 있다.[8] 이때 재밌는 일화가 있다. 사실 당시 소련은 듀브나에 건설된 Synchrophasotron을 운영 중이었고 이 가속기는 이미 10 GeV까지의 가속을 해낼 수 있었다. 하루는 당시 CERN 소장인 존 아담스(John Adams)가 듀브나로부터 온 보드카 한 병을 받았는데, 그 안에는 당시 세계 최고 기록인 10 GeV 가속을 넘겨야 이 병을 비울 수 있다는 주문이 담겨 있었다. 이 에피소드의 출처이기도 한 이 페이지를 보면 존 아담스가 그 병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PS가 완공되고 일단 24 GeV까지 가속시키는 데에 성공하자, CERN은 그 보드카를 비워 버리고 증거 사진을 병 속에다 넣은 다음, 듀브나로 보냈다고 한다.[9] 그러한 수작업은 의외로 여성 직원들이 많이 했다고 한다. 당시 CERN 과학자들은 이 여성 연구원들과 많이들 결혼했다고 한다.[10] 쉽게 생각해, 가이거 계수기와 원리는 똑같은데, 좀 더 커지고 그게 수백 배의 입력 채널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면 된다.[11] 칼로리미터(calorimeter)는 신호를 생성하는 원리가 제법 다르긴 하지만 그럼에도 와이어 상자의 자손으로 어찌저찌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12] 참고로 SPS의 커다란 규모는 조금 더 다른 차원의 제어 시스템을 요구했는데, 이에 Frank Beck와 Bent Stumpe가 세계 최초의 터치스크린을 개발하여 SPS의 제어 시스템에 탑재시켰다. 다만 당시에는 그 외에 다른 용도로 써먹을 생각을 못해서 SPS에 쓰는 것까지만 하고 말았다.[13] 현재에는 450 GeV까지 가속하여 운영 중이다.[14] 거기다 1981년에 이루어진 양성자-반양성자 충돌기로의 전환도 한몫했다.[15] 딸랑 쿼크 세 개만 있지 않냐고 할 수 있겠지만, 양성자 내부를 지배하는 강한 상호작용은 현 인류의 지식으로 아직 다루기가 너무 힘든 존재이다. 양성자 문서를 보면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런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완전히 단순하지 않은 내부 구조는 기본적으로 충돌 결과물의 총 운동량 중 빔 방향의 운동량 성분을 알 수 없도록 만든다. 양성자-(반)양성자 충돌이 일어나면 이들 두 입자 전부가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일부만 반응에 참여하는데, 문제는 이때 양성자의 에너지 중 얼마만큼이 쓰이는지 전혀 알 수 없거니와 매 충돌마다 다르며, 심지어 두 양성자가 내놓는 지분이 같을 이유도 없고 실제로 같지도 않다는 것에 있다. 그래도 빔 방향에 수직한 성분만으로라도 어떻게 잘 측정할 수 있긴 하지만, 포기하는 게 꽤 많다.[16] 현재 논의되는 차세대 대형 가속기들 역시 LEP와 LHC처럼 먼저 전자-양전자 충돌 실험부터 한 다음, 이를 양성자-(반)양성자 충돌 실험으로 전환하여 운용한다는 것을 기본 계획으로 깔고 있다. 그리고 LEP처럼 전자-양전자 충돌 실험은 현재 알려진 입자물리의 성질들을 정밀측정하는 것에 주 목적을 두고 있다. 특히 아직까지 직접적인 측정이 되지 않은 힉스 입자의 주요 파라미터들을 직접,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이 목표이다.[17] 원래 2021년에 재가동을 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계획이 미루어졌다.[18] 프랑스어로 된 지명으로, 실제 현지 발음으로는 '메헝'에 가깝다.[19] 혼동이 잦은지 검출기 앞에 있는 안내문에도 "이건 우주선이 아닙니다"라고 적혀있다.[20] 이에 관하여는 후술한다.[21] 건물 번호 배치가 특이해서 건물 번호를 불러도 바로 아는 건물이 아니면 알 수도 없다. 그래서 이런게 있다. CERN Map, CERN Map Application (Google Play)[22] 대한민국에서는 KCMS와 KoALICE라는 이름의 두 사업이 CERN과 협력을 하고 있는데, 이 두 사업을 통해 파견된 인원들을 위한 사무실 건물(587, 588동)이 있는데 이 건물들이 1986년도에 지어진 슬레이트 지붕이다. 바로 앞에 있는 Proton Syncrotron 건물 모양도 딱 공장처럼 생겼다.[23] 꼭 학위를 요하지는 않는다. 박사 학위는 없지만 검출기 제작 쪽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맡은 연구원들도 있다. 이 연구원들은 검출기 연구에서 필수인력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이 분들이 없었으면 검출기 쪽 연구는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24] 힉스 입자를 찾는 거라든가 SUSY 입자를 찾는 것에 해당하는 일을 소위 분석(analysis)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걸 하려면 지금 받은 데이터에 문제가 없는지, 있다면 어떻게 고쳐야 할지, 예측을 위한 시뮬레이션이 과연 믿을만한 건지, 어딘가 안 맞는 부분이 있는 건지, 안 맞으면 어떻게 고쳐야 할지 전부 다 따져야 한다. 물론 이걸 한두 팀에서 다 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일들을 서비스워크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연구진들에게 적당히 잘 뿌린다. 그러면 authorship에 목마른 세계 각지의 연구원들이 열심히 일해서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을 쓸만하게 다듬어준다. 그러고 나서 힉스 입자를 찾든 암흑 물질을 찾든 SUSY 입자를 찾든 하게 된다.[25] 'CERN Collaboration' 혹은 'LHC Collaboration' 같은 이름은 없다. 보통 검출기 이름을 가지고 실험 이름을 짓게 된다. 그런 이유로 학계에서는 CMS 실험, ALICE 실험이라고 말하지 LHC 실험이라고 잘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The CMS Collaboration, The ALICE Collaboration 같은 이름으로 올라오게 된다.[26] 공리적 양자장론이 있다.[27] 그런 공리들과 계산 이론들은 1970년대 중반부터 정립되기 시작했으니, 따로 논문을 참조해야함에 주의하자.[28] 뭣도 모르는 뉴비가 끈이론을 거들먹거리는 게 우스워서 그러는 게 없진 않겠지만 그보다도 검증 실험 자체가 아예 요원한 끈이론이 실험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론은커녕 소설로 보이기 때문인 탓이 더 크다. 초끈이론 문서의 비판 부분을 참고하자.[29] 어떤 자판기들은 유로도 취급한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액면가에 해당하는 동전을 넣어야 작동한다는 것. 즉, 2 프랑 짜리 물건을 유로 동전으로 뽑고 싶으면 환율에 상관 없이 2 유로를 넣어야 한다. 그런데 보통 원화로는 유로 환율이 더 세다. 따라서 이렇게 하면 당연히 손해다.[30] 그 유명한 볼테르 맞다. 오랫동안 이 곳 페르니에서 살았다고 한다. 동상과 생가가 있으니 기회가 되면 들러 보자.[31] 물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여권은 갖고 다니는 것이 좋다. 아주아주 가끔 불시검문을 하기도 한다. 특히 국경을 넘던 버스 하나를 잡아서 모든 승객들의 ID 카드 혹은 여권을 체크하기도 한다. 그런데 재밌게도 CERN ID 카드 역시 비슷한 효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문관들이 검사하려다가도 CERN ID 카드가 목에 걸려 있으면 그냥 지나간다.[32] 양성자의 질량이 0.938 GeV인 걸 감안하면 거의 4~5주기 원소들의 질량에 육박하는 수준이다.[33] GeV는 에너지 단위라서 GeV/c^2를 쓰는 게 정확할지 모르나, 입자물리 하는 사람들에겐 c=1이라서 별 의미 없을 뿐더러 귀찮기도 해서 그냥 GeV로 쓴다. 그런 이유로 입자물리 하는 사람들에게 운동량의 단위 역시 MeV 혹은 GeV이다.[34] 이만큼 이례적으로 빨리 준 케이스로는 양전닝와 리정다오의 패리티 반전 깨짐 규명 정도 밖에 없다. 힉스 입자 발견과 중력파 발견도 얼핏 이례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들은 관련 실험 자체를 굉장히 오래 한 케이스라 다소 애매하다.[35] 이것 때문에 인터넷의 원조가 아파넷을 만든 미국이냐 월드 와이드 웹을 만든 영국이냐를 놓고 양국 간의 자존심 대결이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다.[36] CERN이 매스매티카를 쓰기 위해 NeXT사의 컴퓨터를 다수 구입했기 때문이다.[37] 오히려 특허료 때문에 영향력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작아질 수도 있었다.[38] 힉스 입자가 없었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선이라는 서술이 있는데, 사실 틀렸다. 예를 들어 Z 보손 두 개가 힉스 입자 없는 다른 프로세스를 통해 동시에 생성되었을 때에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연구에서도 이러한 프로세스들을 전부 고려해서 배경 사건에 넣은 다음 분석한 것이다. 물리학자들이 본 것은 힉스 입자가 없는 프로세스들만 가지고 예측한 사건 분포에 벗어난 충돌 사건들이 (통계적으로 봤을 때 충분히) 많이 생긴 것을 본 것이다.[39] 가장 결정적인 것은 두 광자가 나오는 채널과 두 개의 렙톤 쌍(즉, 총 네 개의 렙톤) 채널 둘 다에서 같은 질량의 peak이 나왔다는 것과 이 입자의 스핀이 0임을 확정한 실험이다.[40] 입자충돌실험을 하면 고에너지 중성미자가 많이 생성되는데, 이걸 들여다 보자는 아이디어로 그랑사소 실험이 이루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의 RENO 실험 같은 것도 (이쪽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온 중성미자를 보는 것이지만) 비슷한 방식의 실험이다.[41] 다만 정말 중력자일 가능성은 없다. 중력의 작용범위가 시공간이 펼쳐진 우주 전역이며, 그 전파속도가 상대성이론에 의거하여 광속인 이상, 반드시 중력자는 룩손(정지질량 0, 이동속도 광속의 입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42] 대략 말하자면 만약 저게 우연으로 인한 것이면 같은 실험을 370번 정도 반복했을 때 우연히 한 번 튀어나올 확률이다.[43] 이 문장은 (원작) 소설에서 묘사된 내용이다. CERN 내 연구진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와중에 TV를 통해 가톨릭 사제들의 수난을 접하자 터져나온 반응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다행히 그런 장면은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다. [46][44] 레이드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모인다. Whatsapp 단체 채팅방도 있다. CERN 내에 있는 체육관 (Matière, Shiva) 의 레이드 소식과 언제 갈지 이야기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Globe 도 체육관이긴 하지만, 주요 업무지구에서 꽤 멀리 있어서 잘 안간다.[45] Square Edoardo AMALDI라고 써진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