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9-04 10:27:37

칠거지악


1. 개요2. 사유3. 삼불거


七去之惡

1. 개요

조선시대의 악습. 남편 혹은 시가(媤家)가 아내를 내칠 수 있는 7가지 근거를 말한다. 칠거지악을 저지른 처를 내치지 않은 경우에는 남편이 곤장 80대 형에 처해지게 되니, 강제력이 있는 법률이었다. 혼인을 가문과의 연계를 염두하고 개인의 권리 특히 여성의 권리를 경시했던 시대상을 반영한다. 다만 '삼불거'라 하여 칠거지악에 해당해도 쫒아낼 수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

현대 시점에서 봐도 몇 가지는 이혼사유로 타당해 보이겠지만, 여성이 이혼당하는 사유로만 기능하였을 뿐 같은 잘못을 남성이 저질러도 혼인관계 상의 불이익은 전혀 없었으며 그런 경우에도 여성에게 이혼이나 재혼은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확실히 남녀차별적인 악습이다.

다만 아래 사유 중 몇몇은 칠거지악에 따른 규율과는 별도로 남녀 상관없이 다른 법률에 의해서도 처벌 받았다. 이것은 칠거지악의 남녀차별성과는 별개의 문제로 행위 자체가 범죄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악습이긴 하나 완전히 융통성이 없을 정도는 아니라서, 삼불거라 하여 여성 쪽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도 있기는 하였다. 삼불거 이전에는 당연히 가정에서 남성의 힘이 막강했지만, 삼불거까지만 참고 견뎌낸다면 그때부터는 여성쪽에서 간통같은 큰 죄만 저지르지 않으면 전세역전. 물론 칠거지악보다 삼불거에 해당되기가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보면 확실히 남자에게 유리한 성차별적 관습이었던 것은 맞다.

이름이 비슷한 7대 죄악과는 관련이 없다. 이혼에 이르는 7가지 죄악이다.

2. 사유

☆자는 삼불거 상태라도 내칠 수 있는 조항.

1. 시부모를 잘 섬기지 못하는 것: 명목은 윗사람을 잘 섬기는 것이지만, 당시의 시집살이(집안일, 농사일 등을 포함한)는 가전 같은 문명의 혜택이 전혀 없는 중노동이었다. 이를 잘 하지 못한다거나, 고부갈등이 있으면 며느리의 죄로 간주했다. 물론 진짜로 여자 쪽이 악독해서 시부모를 괴롭게 한 경우도 있을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노인학대 방지나 노인의 복지후생 개념을 포함하고 있긴 하나, 다소 일방적이라는 점에서 보면 시대적인 한계에 가까운 조목.

2.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 대를 잇는 게 중요한 특성상 당연시 되었다. 근대까지도 이런 이유로 소박맞는 여성들이 은근히 많았고, 그래도 이후부터는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사유로는 재판상 이혼을 할 수 없게 되었다.[1] 조선 후기에는 질투와 같이 허영이나 사치로 대체하는 곳도 있었으나, 형법대전에선 그냥 빼버리고 오출사불거가 된다. 다만 칠거지악 중 하나긴 해도 사실 이걸 이유로 본처를 내쫒고 후처를 맞이하는 것보다 가까운 친척의 아들을 양자로 맞이하여 가문의 대를 잇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집안의 갈등을 줄이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에 수월하였기 때문이다. 대체로 번듯한 집안에서는 딸을 으로 시집보낼 일도 없거니와 씨받이 등으로 인해 많이 왜곡된 개념이지만, 당시의 양반들의 첩은 대부분 눈이 맞아 데리고 사는 여자였지 대를 이으려고 들이는 경우가 아니었다. 서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생각해보자. 또한 일반 서민들의 가정에는 첩을 들이는 것보다 조카 등을 양자로 들이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덜 부담스러웠기도 했다.[2] 당연하지만 임신시 자녀의 성별을 선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거기에 불임은 남성 측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자들의 책임만 추궁받았기에 부당할 수밖에 없는 조목이다. 당시엔 그런 걸 몰랐긴 했지만.

3. 간통☆: 여성이 저지른 간통은 이혼사유였지만, 남성의 간통은 이혼사유가 아니었다. 혼인관계와는 별개로 간통행위 자체는 조선시대의 법률[3]에 의하면 남녀 모두 처벌을 받았지만, 중종 이후로는 아예 양반가문에서 여자가 간통을 벌인 경우 족보에 그 사실을 기록하여 친자의 출세에 영향이 가게 함으로써 여자의 간통을 가중처벌하였다. 강간 등 일방적인 성범죄는 더욱 강력하게 처벌해서, 상대가 비록 기녀라 하여도 동의가 없었다면 강간으로 보았으며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거의 죽을 정도로 처벌했다.[4]

4. 질투: 처첩제가 허용된 상황이라 서로 시기하여 생길 불상사를 막기위한 수단이었을 공산이 크다. 조선 말에는 허영이나 사치로 대체하는 곳도 있었고, 형법대전에선 그냥 빼버리고 오출사불거가 된다. 그리고 말이 좋아 "질투를 이유로 아내를 쫓아낼 수 있다"였지, 실제로는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봐줬다. 당장 폐비 윤씨의 사례를 보면, 성종이 투기를 이유로 폐비 윤씨를 내치려고 하자[5] 임사홍이 "예로부터 투기하지 않은 부인은 드물었습니다." 라고 만류했을 정도. 솔직히 남자는 여러 여자들을 끼고 노는데 여자는 남편만 바라봐야 하는 불공평한 상황이니, 양심에 조금 찔렸을 수도

5. 유전병: 사실 자녀들에게도 대물림되는 문제인지라, 신부 측에서도 신랑을 고를 때 이런 조건을 많이 봤다.

6. 말이 많은 것: 말이 많은 건 그 당시의 미덕이 아닌데다가, 말 많은 여자를 천박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7. 도벽☆: 빼도 박도 못하는 절도죄.

보면 알 수 있지만 남편이 맞고 사는 것 자체는 칠거지악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3. 삼불거

三不去

아무리 칠거지악을 범했어도 절대로 내칠 수 없는 경우도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처가가 전멸하여 아내를 내칠 경우 그 아내가 더는 갈 곳이 없을 때: 일종의 인도적인 조치로 보인다. 과거에는 가정이 곧 사회복지적인 역할도 수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

2. 남편 또는 시부모의 3년상을 치렀을 때: 각각 정절 또는 효를 증명했으므로 이에 대해 인정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2번의 경우는 매우 중요시했는데, 1처럼 아예 잃을 게 없다고 막나갈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3처럼 유세 부릴 여지도 없기 때문에 2번의 사유가 있는데 칠거지악으로 내친다고 할 경우에는 간통이나 절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시부모와 남편이 형벌을 받았다. 당연하지만 간통을 저질렀을 경우에는 효 혹은 정절을 증명하는 것처럼 속여서 시댁을 우롱하고 기만했기 때문에 더 큰 처벌을 받았다.

3. 결혼 당시에는 빈천(貧賤)했으나 결혼 이후 집안이 부귀해졌을 때: 집안에 복을 가져다 주었으므로 이를 내치면 화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사실 처가의 세력이 강할 경우 도리어 아내가 시가에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에는 의외로(!) 인도주의적인 면도 있었고, 집안에 헌신하는 사람이 부정을 할 여지도 없다고 판단을 했기에 삼불거에 해당하는 사람이 칠거지악이 있어도 내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주로 아내가 오갈 데가 없는 사람이거나, 힘든 시기에 함께 고생했으면 내치면 안된다는 것이 삼불거의 요지.[6]

조선 고종 때 형법대전에서는 칠거지악에서 아들을 낳지 못한 경우와 질투 규정을 삭제하고, 삼불거에 아들 딸 구별없이 자식이 있으면 처를 내치지 못한다는 규정을 추가하여 오출사불거로 바뀌었다.


[1] 일방 유책으로 이혼할 수 없다는 말이지 합의이혼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다. 자녀양육 또한 결혼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권리의 하나로 보기 때문에 일방의 행복 추구를 위한 의미에서 합의이혼 사유로 일방의 불임은 제시될 수 있다. 또한 결혼 전 불임 사실을 알고도 속였다면 유책 사유가 될 수 있다.[2] 다만 아무리 장손 집에 대가 끊길 상황이라도 생으로 자식을 뺏거나 동생 집의 대를 끊으면서까지 양자를 데려올 순 없었다. 그럴 만한 나이 대의 아이가 친척 내에서 없는 경우나,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자식이 여럿이라도 아들은 하나뿐이라 보낼 수 없는 경우 등이 있었기 때문에, 서민 가정에서는 대를 이을 목적으로 첩을 들이는 경우도 분명히 있었다. 아직도 노인 세대 중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게 남아있는데, 이를 그린 다큐 영화로 "춘희막이"가 있다.[3] 형벌의 기준인 대명률과 간통, 강간을 다스리는 법률인 범간률 기준.[4] 간통과 강간은 대체로 장형 80~100대가 기준이었는데, 일반적으로 성인 남성이라도 곤장 10대 이상이면 생명에 위협이 오는 것으로 본다. 다 맞기 전에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5] 이 위기는 2번 있었는데, 첫 번째 때에는 무산되었지만 2번째 때에는 결국 폐비되었다.[6] 단, 위에 설명한 것처럼 간통과 도벽은 삼불거라 하여도 내쳤다. 그리고 시부모를 해하려한 경우도 마찬가지. 아마 살인 등 더 큰 범죄가 있는데 칠거지악이나 삼불거에서 논하지 않은 이유는 이런 죄는 (남녀불문하고) 다른 법으로 이미 엄중히 처벌하기 때문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