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Amish미국의 펜실베이니아 주 중부에 존재하는 재침례파(재세례파) 계통의 종교적/문화적 생활 공동체. 1693년 스위스와 알자스에서 야코프 아만(Jakob Ammann)이 전근대 유럽의 종교 박해를 피해 신세계로 이끌고 온 재침례파 계열 신도들의 후손들이다.[1]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아만파(派)'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에도 소수가 있다. 규모와 성격이 다르지만 한국의 청학동마을, 이스라엘의 하레디와 유사하다. 이들은 19세기 산업혁명기 이전의 미국과 유럽 농촌의 생활상을 현대에 이르기까지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 까닭에 역사학자들이 당대 유럽과 미국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독일계 혈통이기 때문에 이들은 평소 독일어에서 파생된 방언을 구사하며, 공동체 밖 외부인들을 잉글리시라고 칭한다.
유타주의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몰몬교)와 많이들 헷갈리지만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신도들은 술, 담배 등을 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생활이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단, 이들의 분파이자 이단인 FLDS는 정말 문명 사회와는 괴리된 삶을 살고 있는 데다 아미시는 양반으로 보일 정도로 닫힌 사회 특유의 온갖 문제 행위와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으로 악명이 높다.
2. 특징
사진에 나온 아이들은 맨발이다. 실제로 근대에도 유럽과 미국 농민들, 특히 아이들 중에는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대를 배경으로 한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에서도 허클베리 핀의 행색을 묘사할 때 '여름에 가장 먼저 맨발이 되고, 겨울에 제일 늦게 신을 신는다.'는 언급이 있다. 신발이 현대처럼 튼튼하지 않아 아껴 신어야 하고 밭에서 신을 벗고 일하는 게 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화되었다고 해도 호주나 에티오피아처럼 맨발로 다니는 걸 선호하는 경우도 엄연히 있다.[2]
이들은 21세기에도 펜실베이니아 독일어[3]라는 특유의 근세 독일어 방언을 쓰고 현대 문명을 거부하며 이동할 때는 마차(馬車)로, 식사는 전통 화로로 조리하는 등 고전적인 생활상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펜실베이니아 독일어는 집안이나 예배드릴 때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그냥 영어 혹은 자신들이 사는 나라의 언어를 쓴다. 다만 이들이 웬만하면 고립된 생활을 할 것이라는 통념과는 다르게 많은 아미시들이 신문과 잡지, 책 같은 인쇄매체는 사서 보기 때문에[4] TV나 라디오,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실시간으로 정보를 접하지는 않더라도 사회현상 파악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는 한다.
펜실베이니아 중부에서 차를 몰고 다니다 보면 마차 전용 도로 표지판이 있고 길가에는 엄숙한 정장을 입고 수염을 길게 기른 아저씨들이 마차를 몰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이 아미시 교도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기와 내연기관을 되도록 안 쓰고 결혼하면 콧수염만 면도하고 턱수염을 기르며 버클 달린 벨트를 차지 않는 대신 멜빵으로 바지를 고정시킨다. 이들이 콧수염과 버클 달린 벨트를 거부하는 이유는 유럽에서 이들을 탄압하던 군인들의 상징이 큰 버클 달린 벨트와 콧수염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애어른 할 것 없이 바가지머리를 하며[5] 결혼하기 전에는 깔끔하게 면도를 하다가 결혼한 뒤부터는 턱수염을 기른다. 물론 미혼이더라도 35~40살쯤 되면 그냥 기르기도 한다.
여자들은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단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카락은 기르며 롤빵 모양으로 만들거나 머리띠로 감은 후 보닛을 쓴다. 미혼이라면 모자가 흰색이고 드레스 색이 밝다. 날씨가 추워지면 양모 망토를 입는다. 20대 초반쯤 되면 결혼하는데 보통 결혼식은 가을에 추수가 끝난 후 열리며 사회의 누군가가 항상 결혼하기 때문에 1년 내내 결혼식이 열리는 마을도 있다. 신부는 새 옷을 입기는 하지만 흰색 웨딩 드레스는 사치스럽기 때문에 결혼 드레스가 흰색이 아닌 경우가 많고 장식도 소박하다. 단색 드레스는 결혼했다면 짙은 것으로 바꿔서 입는다. 일부 종파에서는 여성들이 원래 쓰고 있던 흰색 모자를 검은색 모자로 바꾸면서 유부녀가 되었음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하객들은 보통 평소와 같은 복장을 한다. 링크
그래도 21세기에는 당연히 트랙터 같은 농기구는 사용하고 먼 친척을 만나러 갈때 차나 철도를 이용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워낙 많이 낳아서 그런지 한 가족이 마차에 타기 버거워서 택시를 타기도 한다. 그리고 종교를 딱히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고 재침례파 교리 자체가 성인이 되어 자유의지로 교회에 출석하여 세례받은 자만 교인으로 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심하게 종교 교육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워낙 촌동네에 농사를 짓고 사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지라 중2 과정까지 아미시나 재세례파 커뮤니티 스쿨[6]에 보내거나 가정에서 중학교 2학년(8학년) 과정까지만 공부시키고 고등 교육을 시키지 않는데 이에 대해 1972년에 교육당국이 아미시 부모들과 고등 교육 강제에 관련해서 연방 대법원까지 소송이 진행된 적이 있다. 당시 종교의 자유와 교육받을 권리 중 어느 것이 중요한가를 두고 상당히 치열한 법정 공방이 진행되었는데 대법원에서는 종교의 자유와 문화적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애초에 미국은 홈스쿨링이 합법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독일처럼 의무교육을 받지 못하게 하는 부모가 처벌받는 나라였으면 불가능했다.
술이나 도박 따위가 아니라면 커뮤니티에서 사진처럼 바깥세상 놀이인 소프트볼을 즐기기도 한다. 마을 대항 달리기 대회, 수확 축제, 어린이들이 엄마 손잡고 아빠 목에 타고 지역축제 등도 열린다.
워낙 물의 없고 자기들끼리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미국에서 이미지는 좋은 편이다. 힘들다는 농사를 기계 없이 동물이나 사람 힘으로만 짓기 때문에 훌륭하고 정직한 농부라는 이미지가 있으며 폐쇄적인 구석진 곳에서만 살기를 고집하지도 않는다. 단지 전기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어 시골에서 살 뿐이다. 다른 동네 사람들과 교류도 잘 하는 편이며 자신들이 지은 농산물을 다른 동네 사람들에게 팔기도 한다. 아미시 공동체에 가면 간혹 가다 전선이 이어진 집이 한두 채 정도 있는데 보통 이런 집은 그 지역에 사는 아미시 기독교인이 아닌 그냥 평범한 사람이 사는 집이다. 아미시만 사는 공동체라는 것도 딱히 없다. 그냥 평범한 동네에 아만파 기독교인들이 많이 사는 것일 뿐이다. 단지 아미시들이 사는 동네는 타인들이 살기엔 기반시설이 부족하고 불편해서 잘 섞여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미시가 아닌 타인을 English라고 부른다. 전세계에서 가장 아미시 비중이 높은 곳은 오하이오주 홈스 카운티로 인구의 48%(2020년 기준)가 아미시다.
이들은 성경 교리에 따라 피임을 잘 하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전근대식으로 농사 짓는 것이 사람 손을 많이 타기 때문에 자연스레 다산을 선호하게 되다 보니 인구증가율은 평균적으로 연 3% 안밖으로 매우 높으며[7] 일부 집단은 매년 5%에 달하기도 한다. 관련 기사[8] 1738년 당시 아미시 집단은 3천여 명 수준이었는데 19세기에 미국의 산업화 등의 이유로 정체되었다가 20세기에 의료환경이 상대적으로 개선되어 매년 3%~4%씩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1920년에 5000명이었던 것이 1944년에 1만 3천명, 1968년에는 3만 9천명, 1984년에는 8만 4천명, 2000년에는 17만 명, 2010년에는 25만 명, 2020년 35만명 순으로 증가했다. 100년 동안 인구가 70배 이상 늘었다는 이야기다.[9] 게다가 이 통계에는 18세 미만 미성년자들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인구는 통계상 인구의 두 배에 달한다. 숫자가 작아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추세대로라면 2020년에는 35만 명[10], 2050년에는 90만 명이다. 기사 심지어 출산율이 6.5로 하레디(3.3~7.9), 무슬림(3.1),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인(3)들 보다도 높고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높은 나라인 니제르, 차드와 비슷한 수준이다. 오죽하면 펜실베이니아의 아미시 공동체와 유타 주의 모르몬교 공동체 한 번 갔다 오면 미국에 21세기에도 백인들이 무지하게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정도다.
미국 바깥의 경우 캐나다에서는 1992년 2295명에서 2022년 6325명으로 30년 사이 3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2010년까지만 하더라도 온타리오주에만 살던 것을 넘어 타지로도 확장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출산율이 평균 2명대를 기록하는 원주민보다 인구 증가율이 높은 백인 집단으로 손꼽힌다. 2010년까지만 해도 아미시 인구가 없었던 남미의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에서도 10년 만인 2020년에 160명, 50명으로 늘었다.
공동체 안에서만 결혼해서 자식을 낳는 경향이 있다. 다만 아미시 마을 자체가 한국으로 치면 집성촌 비슷하게 몇 씨족만 모여 사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현대문명에 길들여진 타지 사람들이 적응하기 쉽지도 않으니 동유럽계 유대인만큼이나 유전병에 취약한 편이라고 한다. 물론 이들도 이를 막기 위해 타 주의 아미시 공동체와 혼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기 공동체 아니면 이웃 공동체와의 혼인을 더 선호한다.
피임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대가족이 많다. 분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자녀가 평균 5명~10명 정도다. 임신 사실을 알기 위해 병원에 가긴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산전 관리를 잘 받지 않는다. 임신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금기이고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기 때문인지 남편과 조산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는 문화가 있으며 당연히 베이비샤워(baby shower)는 열지 않는다. 링크, 링크 2, 링크 3 주위 사람들은 임산부의 배가 커지는 걸로 사람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링크 그나마 진보적인 일부 분파에서는 임산부의 친구 한두 명에게 말하기는 한다. 링크 커뮤니티 내에 미혼모가 있는 걸 금기로 여긴다. 분만을 할 때는 조산사나 다른 여성, 그리고 남편만 곁에 있는 경우가 많다.
성인은 사회 내 누군가가 항상 임신이나 분만 중이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12] 임신 중에도 집안일을 쉬지 않고 심지어 진통 중에도 더 이상 일을 못 할 때까지 계속하는데 후술하듯이 아기를 낳은 후에는 일종의 가정부를 고용한다. 출산 예정일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유도분만은 거의 하지 않아서 자폐아 비율이 미국 평균에 비해 낮다는 학설도 있다.[13] 임산부가 알몸으로 아기를 낳지는 않으며 진통이 시작되면 흰 드레스를 입는데 다리 사이에는 접근할 수 있지만 나머지 부위는 감싸고 임산부의 배 쪽에 구멍이 있어 출생 직후 아기를 배 위에 접촉을 할 수 있게 생겼다.
사이언톨로지교와 마찬가지로 진통부터 시작해서 아기를 낳는 동안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보통 여느 임산부와 마찬가지로 침대에서 아기를 낳지만 조산사에 따라 달라서 어떤 사람은 손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엎드리는 자세로 낳기도 한다. 링크 아기에게 모유수유를 한다. 링크.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어머니와 시어머니, 남편이 산모를 돌봐주고 집에 아미시 이웃의 젊은 여성(maid)이 주당 15달러를 받고 그곳에서 4주~6주 정도 잠깐 살며 집안일을 해주는 문화가 있다. 링크, 링크 2 그래서인지 산후우울증이 별로 없다. 링크 노산이 많기 때문인지 쌍둥이도 많다. 링크
아기를 낳을 때 가정분만[14]이나 분만 센터[15]를 이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단, 이들도 임산부와 아이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고위험 산모라면 병원에 가서 심지어 제왕절개도 받고 다른 곳에서 낳다가 문제가 있으면 병원에 이송되는 걸 거부하지는 않는다. 물론 제왕절개율은 약 2%로 매우 낮다. 아미시 내에는 조산사가 존재하지만 의사는 재세례파에서 8학년(중학교 2학년) 이상의 교육을 받는 것을 금지하다 보니 커뮤니티 내에서 면허를 따기 어려워서 그런지 잘 없어서 분만 센터에는 외부에서 온 의료 관계자들이 있을 수 있다. 링크 문제는 그나마 분만 센터를 이용하면 최소한이라도 의료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급하면 근처의 병원에 이송될 수 있지만 가정분만을 할 때는 조산사나 둘라(doula)[16]도 아닌 산과적 전문 지식은 없지만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17](catcher)이 분만을 돕다가[18] 사고를 내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기사
아미시 인구가 늘다 보니 원래 아미시가 없던 지역에 아미시들이 이주해 오는 경우가 있는데 출산율이 높고 열심히 일해 돈 벌어서 허투루 낭비하지도 않다 보니 일단 들어오면 그 동네에 잘 적응하는 경우가 많다. 원체 이미지가 좋은 사람들이다 보니 기존 거주민들이 싫어하지도 않고 도리어 아미시가 동네를 깔끔하게 만든다고 집값이 오른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19]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아미시 인구가 계속 늘어날 경우 해당 지역의 개발이나 발전 원동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마냥 좋은 시선만으로 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미시 공동체 대부분이 농업 등에 종사하므로 재산세 및 토지세를 납부하긴 하지만 대신 소비력이 일반인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지라 많은 인구 수에 비해 세수 확보가 어렵다. 미국 시골은 핸드폰 및 인터넷을 위해 높은 송신탑을 세워야 하는데 아미시 인구가 많은 지역은 전력과 통신 인프라 공급을 할 요인이 대폭 감소하므로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름은 보통 서양인처럼 성경에 나오는 등장인물에서 따 오지만 아미시가 아닌 이들과는 달리 거의 성경에 나오는 이름만 쓰기 때문에 마을에 동명이인이 매우 많으며 미들네임은 아이의 부모의 이름을 써서 이름이 같은 사람이 많더라도 구분을 할 수 있게 한다.
럼스프링가(Rumspringa)라는 성인식이 있는데 14-16세의 청소년기부터 길게는 20대 초반까지 공동체에 남을지 외부에 나가서 살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시기 동안 젊은이들은 부모나 교회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고 도시에서 다양한 세속적인 경험을 한다. 아미시의 교리는 교회에 대한 헌신 서약이 자유로운 선택임을 강조하는데 럼스프링가는 세속적인 삶에 대한 포기가 자발적인 것임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럼스프링가 기간이 끝나고 헌신 서약을 하고 나면 공동체는 일탈의 정도가 심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멀리한다. 이 경우 가족들도 일탈자와의 접촉을 거부하도록 요구받는다. 그러나 럼스프링가 기간 동안에는 일탈의 정도가 아무리 심한 젊은이들과의 접촉도 가족 내 문제로 간주된다. 일탈자들은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며 실제로 많은 이들이 돌아오는데 일탈을 온전히 고백하고 공동체의 관례를 존중하며 따르겠다고 서약해야 한다. 이를 주제로 다큐멘터리, 리얼리티쇼도 나왔다.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같은 가전제품의 보급이 안 이루어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유럽 요리 문화를 보존하는 경향이 있으며 햄과 소시지, 콘비프, 피클, 자우어크라우트 같은 보존식품의 비중이 높다고 한다. 물론 이들도 마냥 전통요리만 고수하는 것은 아니고 경우에 따라 최신 요리(?)와 외국 요리들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3. 분파
아미시도 재침례파 계열의 분파이고 재침례파는 특정 종교집단의 권위에 반발하여 나온 운동이기 때문에 500여 개 커뮤니티로 나눠져 있어서 18세기 생활을 하는 구역도 있고 적어도 프로판 가스로 취사 난방을 하거나 자가 전력으로 냉장고나 전등을 쓰는 것을 허락하는 보수 집단도 있다. 이들 중에 원리주의자들은 사회보장 기금, 한마디로 연금 수령이나 여러 복지 등도 거부하지만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의 암몬파 원리주의자들을 빼면[20] 미국의 원리주의 암몬파들은 나름 시민 정신에 입각해 내지 않아도 될 여러 복지 관련 세금을 스스로 납부하고 있다. 이들도 원리주의자와 개혁파가 갈려서 강제 면도 사건 같은 반 종교적 강력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한다.보수 암몬파들은 원리주의에서 지켜야 하는 것들 중에 몇 개를 간편하게 바꾼 사람들이다. 이들은 프로판 가스 냉장고나 전등을 사용하고, 예배도 영어로 드리며 자신의 아이들을 집에서 교육시키지 않고 공동체 학교에 보내고 병원도 필요할 때 가며 시민의 권리인 여러 복지혜택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현대 문명에 대해 각 분파마다 행동이 갈리는 이유는 18세기 시절 형성된 커뮤니티 질서, 전통과 현대의 생활상이 충돌하기 때문이며 공동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다. 이들은 더 멀리 이동하거나 통신할 수 있으면 자신들의 공동체가 순식간에 공중분해된다고 믿는다. 가끔씩 내부적으로 어떤 현대문명을 받아들일지 말지 격렬한 논쟁을 벌여 입장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자동차를 금지했던 어느 공동체에서 격렬하고도 지루한 논쟁 끝에 자동차 사용을 허가하자 1주일 내로 거의 모든 가정에서 차를 한 대씩 갖추었다는 일화도 있다.
많지는 않지만 아미시 공동체에서 완전히 나와 신앙적으로 개종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아미시와 공통점이 많은 다른 재침례파 교단으로 간다고 한다.
현대문명을 되도록 받아들이지 않고 살아간다는 점이 하도 인상적으로 부각되다 보니 대중적으로는 아미시들이 마치 일종의 (역) 화물 신앙처럼 현대 문물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식의 인식이 있기도 한데 위에 언급된 예시들과 같이 대중적으로 생긴 오해일 뿐 아미시들이 현대문명을 멀리하는 이유는 아니다. 아미시들이 현대문명에 대한 자세가 다소 특수한 이유는 의도적으로 본인들의 교통 및 통신 능력을 제한해서 공동체가 붕괴되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지, 현대 문물 자체에 신학적인 의미를 두기 때문은 전혀 아니다.
4. 문제점
이렇게 본다면 종교인처럼 살아가는 이들처럼 보이고 대다수는 평범하게 살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지라 사건사고가 발생하곤 한다. 아미시 공동체의 어두운 면은 이들 안에서 근친상간 및 강간등 성범죄가 일어나지만 공권력이 빈약해서 통제가 잘 안 된다는 점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만 보면 현대 문명과 거리를 두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종교인들이라는 생각만 들고 실질적으로 외부의 인식도 그렇지만 워낙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거부하고 폐쇄적으로 살아가는 전통적 신앙 공동체를 신고되지 않는 이상 굳이 없애 버릴 하등의 이유가 없으니 대대적인 이슈화가 안 되었을 뿐이다.2007년에도 인근의 비-아미시 남자가 아미시 여자를 강간한 뒤 형사 처벌을 받게 되자 아미시 공동체에서 "그를 용서한다."고 했는데 세간에서는 이를 두고 대인배들이라고 칭송했지만 전직 아미시 여자들의 설명에 따르자면 아미시 측에서 용서를 한 것은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겨우 강간 좀 한 것 정도로 이리 호들갑이지?" 라는 논리에서(...) 그리 대뜸 용서한 것이라고 한다. 강간을 마치 단팥빵 하나 훔친 것 마냥 생각한다는 뜻이므로 마냥 좋게 볼수만은 없다.
21세기에도 스위스계 미국인인 아미시 공동체들은 매우 종교적이고 폐쇄적이며 남녀 불문하고 19세기 이후 기술과 공권력을 기피하는 촌락에 살고 있어서 소년들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자기집 여동생, 누나, 누이들 감상을 자랑질마냥 대놓고 공론화하는 일도 있다. 심지어 처벌은 고작해야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2~4주간 없는 사람 취급하는 shunning만 하면 끝이라 또 범죄를 저지르고도 여자가 뭐라고 하면 '이미 우리 공동체는 충분히 종교법상의 벌을 줬는데 개인이 또 과거의 일을 들추는 건 공동체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구박받는다. 피임도구도 없는 낙후된 환경에서 사는 아미시들은 공권력이 빈약한 데다 강력한 처벌은 피하다 보니 저렇게 체벌하는 식으로 대체하는데 처벌 수위가 심하게 약한 데다 감옥에는 안 보내니 처벌받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저런 식으로 해도 처벌이 약하네, 또 하자'면서 또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일단은 자기들끼리 조용히 살고 있으니 역사적으로 오래된 공동체를 외부에서 건드려 뒤집어 놓는 것은 보기에도 안 좋고 구체적인 통계화도 거의 불가능하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전직 아미시 여성들의 회고를 보면 가족 내 강간이 빈번함와 그에 대한 실질적 대응의 부재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21] 2011년에 볼리비아에서도 메노파 공동체 청년들이 소에 쓰는 마취제로 부녀자들을 마취시킨 후 100명 이상 집단 성폭행해서 큰 물의를 빚었는데 이들은 결국 체포되어 징역 25년을 선고받고 감옥으로 갔다.영문 기사 이후 전체적인 볼리비아 메노파 공동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아미시 커뮤니티에서 있었던 것처럼 강간이나 근친상간 등의 문제가 있어서 사회 문제화되었다.슈테른 기사 사실 이런 사건이 여러차례 보도되다 보니 아미시들의 출산율이 높은 이유가 오락거리가 없다보니 섹스로 해결하려는 것이라는 조롱을 사는 경우도 있기도 하다.
성문화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보수적이다. 외진 시골이나 이슬람 극단주의를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저런 식의 강간해놓고 쉬쉬 덮어 가는 문화는 성문화에 대하여 개방적인 곳이 아니라[22] 저렇게 폐쇄적이고 외부와 소통이 없으며 피해자가 도망갈 곳도 없는 성적으로 작은 사회에 가까운 사회에서 나타난다.
아미시가 알려지면서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고 이것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는데 돈과 이권을 둘러싼 갈등이 그것이다. 특히 비슷한 입장의 다른 메노파 교인들도 관광사업에 뛰어들면서 분파 간의 갈등과 분쟁이 커짐에 따라 메노파 내부에서도 신앙이 훼손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4.1. 아미시 학교 인질 총기 사고
기사2006년 10월 2일 펜실베이니아 주에 위치한 작은 농촌마을 니켈 마인즈의 아미시 공동체 원룸 스쿨[23]에서 오전 수업시간에 픽업 트럭을 몰고 온 남자가 총을 들고 침입해 5명의 학생을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교실에 있던 학생 중 남학생과 학부모 4명[24]을 총으로 위협해 나가게 한 뒤 여학생들만 남도록 했다. 탈출한 이들은 곧바로 마을로 달려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 범인은 6세에서 13세 사이의 여학생 10명을 칠판 앞 교단에 일렬로 세우고 학생들의 발을 서로 묶은 뒤 자기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20년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복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사이 경찰들이 도착해 총을 버리고 자수하라고 교섭하기 시작했으나 범인은 가까이 오면 인질들을 죽이겠다고 말한 뒤 곧바로 여학생들에게 총을 쏘았다. 경찰들은 범인 저격을 위해 여학생들에게 몸을 숙이라고 외치며 범인에게 총격을 시작했고 그 찰나에 범인은 총으로 자살해 버렸다.
여학생 3명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2명은 후송 중 숨을 거두었으며 5명은 병원에 도착해 응급조치를 받았으나 중태에 빠졌다. 불과 며칠 전 콜로라도 주의 고등학교 인질 살해 사건, 위스콘신 주에서 고등학생이 교장에게 총격을 가해 사망케 한 사건에 이어 미국에서 1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세 번째로 일어난 총격 사건이라 파장이 굉장히 컸다.
범인 찰리스 칼 로버츠 4세는 사건 당시 32세로 부인과 세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 아미시 주민은 아니며 아미시 근처 낙농가에서 짠 우유를 수거하는 우유 탱크차의 운전수였는데 평소 수줍음을 타기는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으며 아미시 주민들과 불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고 한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범인은 현장에 아내에게 전하는 유서를 남겼는데 1997년 태어나자마자 숨을 거둔 첫 딸에 대한 일이 9년 동안 범인을 괴롭혀 왔으며 신에게 저주를 받고 있다며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자신이 12살 때 친척 여동생들을 성추행했던 것에 대한 악몽에 시달렸다고도 한다. 유서나 범행 동기를 미루어 볼 때 기본적으로 범인이 거주하는 곳에서 아미시가 가깝고 아미시 마을의 특성상 보안이 취약한 데다 첫 딸이 살아 있었다면 아미시 학교의 여학생들 또래였을 것이란 점 때문에 아미시 학교를 습격한 것으로 보인다.
인질극 당시 여학생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 자기를 쏘라고 말하는 등 용감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5. 패러디
아주 여담이지만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해킹롬 중 이들을 풍자(?)한 슈퍼 아미시 브라더스라는 해킹롬도 존재한다. 마리오가 신사 모자를 쓰며 수염을 기른 아미시 교도 마리오가 되었고 버섯이 아닌 오트밀로 커지며 적들도 바뀌어서 굼바는 자동차가 되었다.위어드 알 얀코빅의 아미시 패러다이스라는 노래가 있다. 쿨리오의 'Gangsta's Paradise'의 패러디다.
6. 미디어
미국 영화에서는 그리 잘 나오지 않는데 가장 유명한 경우라면 트루먼 쇼, 갈리폴리, 죽은 시인의 사회로 유명한 피터 위어가 할리우드로 진출해 미국에서 처음으로 감독한 1985년작 위트니스(Witness)가 있다.미드 밴쉬에서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고향으로 나온다. 메인악역 프록터와 그의 조카 레베카 역시 아미쉬에서 추방 당한 케이스다.
로맨스 코미디 영화인 섹스 드라이브에서도 아미시 공동체가 꽤 비중 있게 나온다. 코미디 영화답게 비현실적인 설정이 재미있는데 소 젖이나 짤 것같은 아미시 남자들이 차를 고치는 데 전문가들이고 아미시 파티라는 것은 헤비메탈 가수가 노래를 부르며 열광하는 아미시 처자들이 가슴을 열어 젖히고 광란의 도가니이며 청순하게 생긴 아미시 소녀는 남자 싸대기를 마구 때리면서 관계를 갖는다(...).
미국의 거의 모든 면을 다루는 심슨 가족 시리즈에서도 아미시는 등장한다. 심슨 가족 시리즈의 시즌 6의 4번째 에피소드인 Itchy&Scratchy Land에서 심슨 가족은 호머 심슨은 아미시 마을의 사람들이 무저항 정신을 가지고 있어서 괴롭혀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흥미를 느껴 모든 것에 아이스크림을 묻히며 다닌다. 심지어 노새에게 아이스크림 콘을 묻히던 호머 심슨은 노새에게는 발로 차이고 만다.
덱스터의 실험실에서도 등장한다.
미국에는 Breaking Amish라는 아미시 청년들을 세상에 접촉하게 하고 그걸 지켜보는 리얼리티쇼도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방송되었다. 다만 방송 자체는 조작논란 등 구설수가 다수 있던 편이었다고 한다.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영화 빌리지에서 나오는 마을도 이와 유사하다.
패밀리 가이에서도 등장한다. 메그가 아미시 출신의 남친과 사귀었는데 피터가 온갖 어그로로 비하 하는 바람에 그것에 열받은 남친의 아버지가 그리핀 가에 낙서를 하고 피터를 도발하자 열받은 피터가 술친구들과 함께 온갖 화기들로 무장하고 아마시 마을에 쳐들어 가지만 오히려 아마시들에게 털린다.
2022년 넷플릭스에 아미시의 성인식인 럼스프링가를 다룬 코미디 영화가 나왔다.
그레이 아나토미에는 아미시 마을에 염증을 느껴 속세로 나와 살던 두 여성 중 한 명이 난치병에 걸려 병원으로 오는 에피소드가 있다.
암호명: 이웃집 아이들의 시즌 6 76화 B파트에서 등장하였다. 2호가 이 곳으로 피난을 오게 되는데, 기계 사용이 금지되는 바람에 기계 금단증세가 온다.(...)
무서운 영화 4편에서 애나 패리스와 레지나 홀이 아미시 구역으로 들어간다.
아미시 청년을 주인공으로 그린 아즈마 카야의 BL 만화 <럼스프링가의 정경>에 아미시들의 풍습과 복식, 세례식이 자세히 나온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아미시 청년 시어도어(시오)가 럼스프링가 기간 동안 마을을 떠나 실패한 뉴욕 브로드웨이의 댄서 오즈왈드(오즈)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럼스프링가를 보낸 후 마을을 영원히 떠나버린 형 때문에 가족을 잃는 것에 트라우마를 가진 아미시 청년, 사랑 때문에 자유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아미시 여성 등의 인물이 깊이 있게 묘사되며 아미시를 잘 그려낸 수작이다. 작중 아미시 인물들이 동성애에 비교적 관대한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 드라마 The Office의 등장인물인 드와이트가 아미시 출신이다.
7. 출신 인물
- 케이트 스톨츠 - 패션 모델
상술한 Breaking Amish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패션 모델 데뷔 후 아미시 공동체에서 탈퇴당했다.
[1] 유럽에 잔존하던 아미시는 1930년대까지 메노나이트 등에 동화가 완료되었다.[2] 호주는 맨발로 걷는 걸 매우 선호해서 공공장소는 물론 공항과 전철역 등지에서도 맨발인 사람들을 볼 수 있다.[3] 영어로는 Pennsylvania Dutch라서 사람들이 펜실베이니아 네덜란드어라고 착각하지만 독일어 방언이다. 미국인들도 어지간히 착각을 많이 하는지 나중에는 Pennsylvania German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4] 그래서 미국의 신문시장이 쇠퇴하고 있는 추세임에도 아미시 신문들은 매년 판매부수를 늘리고 있다고 한다.[5] 아미시에서도 원리주의자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비교적 개혁적인 분파에 속한 남자들은 일반인들처럼 짧은 머리를 한다.[6] 단일 가정에서 홈스쿨링은 선호되지 않는다. 여러 명이 모여서 소규모 그룹 내지 재세례파 학교를 운영한다.[7] 참고로 한국에서 인구증가율이 가장 높았을 때가 1955~1963년인데 당시 한국 인구증가율이 3%대였다.[8] 한편 백인 복음주의자들 집단의 출산율은 미국 평균보다 높지만 어디까지나 인구 대체 수준을 웃도는 수준이지 자식을 축구단 만들 정도로 많이 낳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그래서 미국의 개신교 신자 비율은 매년 1%씩 주는데 숫자가 줄어서가 아니라 가톨릭계 라티노들의 유입이 주된 이유다.[9]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도 비슷한 시기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영유아 사망률이 더 높아 아미시보다는 인구증가율이 낮았다.[10] 2022년 통계로는 37만 3620명을 기록했다. 전해 대비 증가율은 3.3%.[11] 물론 여기는 하레디 무리들처럼 꼴통 짓을 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하레디와 같은 극단적 근본주의는 전투적 포교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아미시는 본인들의 공동체를 더 중시하며 포교나 전도활동에 매우 소극적이다.[12] 단, 아이들은 분만에 참여하지 않는지라 자라서 직접 겪기 전까지는 출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링크[13] 연구에 따르면 일부 자폐증은 옥시토신 결핍과 관련이 있는데 인공 옥시토신(피토신)과 진통 때 사용되는 몇몇 약물이 관련이 있지 않느냐는 설이 있다.[14] 분파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문화가 보수적이고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 병원 비용 문제 때문이다. 미국도 1920년대까지는 병원분만보다는 가정분만이 일반적이었다.[15] 한국의 조산소 비슷한 곳. 보통 병원 근처에 있어서 응급 상황일 때에는 병원에 빨리 이송할 수 있다.[16] 서양에 주로 있는 직업. 조산사를 돕는 조산조무사 비슷한 역할을 한다. 출산 코치라고 하기도 한다. 조산사와는 달리 의학적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출산 과정을 함께하며 임산부의 불안과 두려움을 줄여 심리적 안정을 돕는 경우가 종종 있다.[17] 본래 둘라(doula)의 뜻과 맞다. 이들은 약초에 대한 교육을 받고 쌍둥이 분만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지만 의학적 지식은 없다. 링크[18] 분파마다 다르긴 하지만 조산사 등의 외부인을 거부하는 곳도 있다.[19] 미국은 땅이 넓고 사람들이 주로 교외 지역에 거주하는 생활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20] 이들은 주 정부에게 어느 복지 혜택 등도 받지 않기로 합의한 결과 복지에 들어가는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다.[21] 위의 기사를 읽어 보면 공동체에서는 강간을 토할 정도로 과음하는 것과 비슷한 죄악으로 여긴다고 한다.[22] 오히려 성에 대해 개방적인 곳일수록 매체에서의 성묘사, 성적 농담, 혼전 성관계, 동성애 등에는 너그러워도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나 아동청소년의 성애 문제 등에 대해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성범죄 신고율도 높고 처벌도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인구 천명당 강간 범죄율 국가별 통계#를 보면 상위권에 선진국들도 다수 포진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치안이 엉망이라기보다는 높은 신고율 때문이다. 쉽게 말해 보수적인 곳에서는 피해자가 절대로 밝힐 수 없다며 본인이 감추고 개방적인 곳에서는 여타 폭행 등 범죄처럼 피해자가 저 범죄자 조져주겠다며 신고한다.[23] 교실 하나에 교사 한 명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아미시 학교다.[24] 학부모 참관차 들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