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20 13:16:07

한화 이글스/트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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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 한화 이글스/2019년 | 스토브리그 | 시범경기 | 3~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2019 시즌 주요인물 한용덕 감독 | 이성열 주장 | 박종훈 단장
구단 기본 정보 한화그룹 | 한화 이글스 | 한화 이글스/2군 | 빙그레 이글스
구단 역사 정보 구단 역사 | 1999년 한국시리즈 | 역대 트레이드 | 사건·사고 | 암흑기
구단 주요 정보 팀 컬러 | 선수단 | 등번호 | 유니폼 | 한화 이글스 갤러리 | 팀 응원가 | 선수 응원가 | 응원단장 | 육성응원 | 구단 공식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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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의 주요 선수 트레이드를 정리해 놓은 문서.

1. 1994년2. 1995년3. 1998년4. 1999년5. 2000년6. 2003년7. 2004년8. 2008년9. 2009년10. 2010년11. 2011년12. 2013년13. 2014년14. 2015년15. 2017년16. 2018년

1. 1994년

1994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이정훈, 장정순 정경훈, 정영규 삼성
올드 한화팬들 앞에서 절대로 말을 꺼내면 안될 최악의 트레이드. 당연히 이 트레이드를 주도 및 실행한 사람은 이글스의 금지어이다. 당시 한화팬들은 이정훈 트레이드 안 된다라고 트레이드에 반대한 팬들도 있었다.

2. 1995년

1995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김상국 박은진 현대

3. 1998년

1998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정영규 동봉철 LG
1998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노장진 최익성, 박태순 삼성
1998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동봉철, 이민호 임창식 쌍방울

4. 1999년

1999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전상렬, 홍원기 김경원 두산

당시 한화는 이영우, 송지만, 제이 데이비스에 외야 백업으로 최익성을 트레이드 해오면서 자리가 없던 전상렬백재호, 임수민, 강석천에 밀려 역시 자리가 없던 홍원기를 내주고 송진우, 정민철, 이상목을 제외하면 터무니 없이 약했던 선발진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두산베어스 투수이자 신인시절 1점대 마무리였다가 진필중에 밀린 김경원을 데려온다. 이 결과는 결국 두산에게 쾌재를 부르게 했는데, 김경원은 몇년도 안가서 구위 저하로 별 활약 없이 은퇴하게 되고 전상렬은 두산에서 주전과 백업을 오고가며 두산 외야진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홍원기는 김민호의 은퇴시기가 가까워지며 주전 유격수를 지키다 손시헌의 등장으로 현대로 트레이드 되고도 백업 내야수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후 현대에서 은퇴한다.

5. 2000년

2000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최익성 송유석, 신국환 LG

최익성은 이후로도 보상선수 및 트레이드로 여러 팀을 전전하며 자신에게 꼬리표처럼 붙는 단어인 '저니맨'을 얻게 되었다. 또한 최익성은 이 트레이드 이후엔 FA인 홍현우의 보상선수로 기아로 이적하게 되었는데 LG에 FA로 들어온 홍현우는 KBO리그 FA 역사에 남을 먹튀라... 한화 입장에선 송유석은 선수 말기를 한화에서 보냈으나 성적은 썩 좋지 않았고 방출을 겪고 말았으며, 신국환 역시 내야 백업으로는 거론되고 자주 기회를 얻었으나 딱히 좋은 성적이 아니었고 이 트레이드 2년 뒤 역시 방출. 2:1 트레이드가 무색한 LG의 상황도, 많이 써먹지도 못한 한화의 상황도 좋지 않긴 매한가지.

6. 2003년

2003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채상병 문동환 두산

최고의 트레이드

희대의 트레이드이기도 한데. 정수근 보상 선수로 두산은 문동환을 지명, 투수가 필요했던 한화는 포수가 급했던 두산에 채상병을 제안해서 두산이 승낙,문동환이 한화로 오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한화가 젊은 포수 주고 퇴물투수 데려왔다고 말이 많았다. 유승안이 작심하고 4승15패라는 영 좋지 않은 성적 찍으면서도 풀타임 소화 시켰고 그 결실은 2005년 10승 9패 방어율 3점대. 2006년 16승9패 방어율 3점대 초반을 찍으면서 맺게 되었다. 채상병도 홍성흔이 돌아올 때까지 쏠쏠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윈윈이었던 트레이드.

7. 2004년

2004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송지만 권준헌 현대

황금 독수리라 불렸던 국대급 외야수 송지만과 당시 타자에서 투수로 전환 후 주가를 올렸던 권준헌과의 트레이드. 당시 송지만은 프런트와의 마찰이 심했고 그 이듬해에 송지만과 이영우 둘 다 FA였기 때문에 한화 프런트는 과감히 한 명을 포기해야 했다. 최고 38홈런을 치는 등 파워가 상당했고 교타력을 제외한 전체적인 면에서 이영우보다 나았으나 우타였던 점, 당시 부상을 안고 있었고 프런트 및 코치진과 불화가 있었던 점, 그리고 50홈런을 치는 괴물들이 있었기 때문에(...) 1번을 쳤던 이영우를 선택. 송지만을 트레이드를 한다. 당시에도 논란이 심했지만 2005~2007년 한화가 잘나가면서 묻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이 이후 한화 외야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송지만 거르고 남긴 이영우는 병역비리가 걸렸고... 결국은 부상후유증으로 망했어요......

8. 2008년

2008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심광호 이여상 삼성

현재윤의 부상으로 진갑용을 받쳐줄 마땅한 백업포수가 없던 삼성에 김인식 감독이 먼저 심광호를 제시했다고 한다. 당시 삼성 2군 유망주 중 촉망받던 이여상을 데리고 오며 괜찮은 트레이드로 평가되었으나 이여상은 결국 터지지 않고 2차 드래프트에서 롯데로 갔다. 심광호 역시 백업으로 뛰었지만 별 활약은 못했고 결국 2년만에 방출되어 LG로 가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2008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신종길 강동우 KIA

2008년 시즌 종료 이후 단행된 트레이드. 최연소 사이클링 히트도 치면서 기대를 받았던 신종길이었지만 생각보다 성장해주지 못하고 방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한화의 제이 데이비스 이후의 중견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저니맨 생활을 하고 있던 강동우와 트레이드되었다. 김인식 감독은 또 유망주 내주고 노장 얻어온다며 까였다. 그러나 강동우가 한화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며 세계 최고령 1번타자로 활약하는 사이 신종길은 기아팬들의 미움을 받으며 계륵취급을 받고 있다가 2013년에야 겨우 포텐을 터트렸다. 2012년 까지는 한화가 압승인 트레이드였지만 2013년부터의 신종길의 활약과 강동우의 은퇴로 균형이 맞아들어간 모양새.

9. 2009년

2009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김창훈, 조규수 이대수 두산

한대화 감독이 리빌딩의 일환으로 추진한 트레이드. 김민재의 은퇴와 함께 공백이 되어버린 한화의 유격수 자리를 채우기 위해 단행되었다. 이대수도 좋은 수비에 비해 빈약한 타격으로 1.5군감 정도의 평가를 들었지만 조규수와 김창훈[1]은 정말이지 못 써먹을 수준이었다. 사실상 두산에 자리가 없는 이대수의 앞길을 터줌과 동시에 정말로 선수가 없는 암흑기 한화[2]에 대해 두산과 김경문 감독이 선심성으로 응한 트레이드라고 볼수 있겠다.

한화로 온 이대수는 기대한 롤 이상으로 타격에 눈을 떠서 2011년에는 전에는 꿈도 못 꾸던 3할의 타율을 기록하며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2013년 시즌 후에 FA대박까지 터트리고 14시즌 SK로 트레이드 되며[3] 전과 전혀 달라진 위상으로 친정팀에 돌아갔다. 빛이 보이지 않던 한화의 내야를 그나마 풍요롭게 해 준 트레이드.

한편 조규수는 얼마안가 은퇴했고 김창훈은 좌완 사이드암 계투라는 희귀함으로 조금 더 버텼지만 결국 2014년에 방출되었다.

10. 2010년

2010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마정길 + 3억원 [4] 마일영 넥센

시즌 개막 직전 단행된 일명 마-마 트레이드.

사이드암 불펜 투수였던 마정길과 좀 부진했지만 그럭저럭 했던 마일영의 트레이드. 당시 한화의 경우 선발로도 활약했던 마일영이 불펜으로 괜찮게 활약할 것이라고 기대를 했으나 현실은... 2011년시즌 중 3개월 정도만 잘하고 나머지 버로우 반면 마정길은 2009년 한화의 불펜을 떠맡았던 것처럼 변함없이 넥센 불펜을 이끌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한화의 대실패. 마정길은 2016년까지도 넥센 불펜의 마당쇠 역할을 해 주었지만, 마일영은 2013년경 부터는 거의 1군에서 보기 힘들었고 주로 2군을 전전하다 2015년에 좌완 사이드암으로 투구폼을 바꾸려던 시도도 실패하며 선수 생활을 끝마쳤다.
2010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안영명, 박성호, 김다원 장성호, 김경언, 이동현 KIA

2010시즌 중반에 전격 단행된 트레이드. 양 팀간에 논란이 많은 트레이드이다. 대체적으로 기아쪽이 더 호평이었으나 13시즌에 들어서면서 악평받던 한화 쪽도 호평으로 돌아서고 있는 트레이드로, 2015년 시점에서는 한화의 압승으로 결론이 났다.(단, 장성호의 활약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다.)

이 틀드의 결과는 사실 장성호가 시즌말미까지 기대치만큼 해주진 못했지만 11~12시즌 초중반에 타선에서 쏠쏠했으며 김태완이 돌아오기 전까지 잘 막아줬고 옛날만큼의 타율은 나오진 않지만 김태균, 김태완이 부재한 상황에서 선구안들이 다들 이상한(...) 한화타자들 중에서 출루율이 가장 좋아 어쨌든 나갔다는 점에서 그나마 점수를 줄 수 있다고 하겠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범호 보상 선수로 안영명을 데려오고(...) 기아로 갔던 나머지 두 선수들이 제 몫을 못해주고, 이 트레이드의 진 주인공 김경언은 기대이상의 활약을 해주는 시점에서 이미 기아 FAIL(...) 최종적으로 김경언은 KIA에서였으면 꿈도 못 꿨을 FA 계약까지 맺고 갓경언으로 숭배되며 한화의 주축 타자로 거듭난 데다, 장성호송창현을 데려오기까지 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그래도 유일한 생존자 김다원이 14시즌부터 희망을 봤다는 것이 기아로서는 위안거리다.

안영명이 1년도 안 되어 한화로 리턴했고, 박성호 또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다 2015년 트레이드로 안영명을 쫓아 다시 한화에 둥지를 틀었다는 점 또한 상당히 이채롭다. 결국 KIA에 남겨진 건 김다원 뿐...이었으나 김다원도 결국은 방출당했다.

이동현이 실패한 게 유일하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11. 2011년

2011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유원상, 양승진 김광수 LG

역시 시즌 중반에 단행된 트레이드다. 당시 대다수 한화팬들은 유원상이 간 것에는 별 문제삼지 않았다(...) 하필 [email protected]가 추가되지 않고 김광수 데려온 것에 대해만 문제 삼았을 뿐. 유원상이 2012년 각성하고 WBC에 승선하면서 엘지 쪽으로 승리가 기울었으나 유원상한테 쌓인게 많았던(...) 치킨한화팬들은 기적이라며 놀라워하기만 했다

반면 김광수는 탈쥐효과라는 말이 무색하게 엄청난 부진을 겪으며 김광수소폭탄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닉네임을 획득한다. 송신영이 FA로 넘어와 NC로 가기 전까지 분식회계를 했던 장본인. 한화로 오면 탈쥐효과는 사라진다? 결국 유원상이 준수한 불펜으로 성장한 데다 군면제까지 받게 된 반면,그 이후 지금은... 김광수는 2014년부터 전력외 선수가 되어 2015년 KIA 타이거즈로 팔려가며 이 트레이드는 대실패로 귀결되었다. 더군다나 한화시절 내내 김광숯이라고 까이던 김광수가 기아에서 프로입단 16년만에 포텐이 터졌으나.....2017시즌 종료 후 방출, 그러나 LG,KIA 두 팀 모두 유원상과 김광수를 한 두 해정도 쏠쏠하게 잘 활용하였으니 결과적으론 한화만 안습해졌다.

12. 2013년

2013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장성호 송창현+(@) 롯데

김태균,최진행을 제외한 한화 야수 중에서 가장 값어치 있던 장성호김태완이 복귀하자 트레이드 자원으로 내놓았다. 수준급 1루수가 급했던 롯데가 송창현[email protected][5]을 제시했으나 한화는 호구스럽게쿨하게 송창현만 받고 끝냈다. 그런데 송창현이 13년 시즌 말미에 싹수를 보여주었고 장성호는 기대만큼 해주지 못하면서 2013시즌은 일단 한화가 득을 본 트레이드라 하겠다. 그리고 장성호가 5경기뛰고 롯데측과의 불화로 방출되면서 한화가 이익을 봤다. 다만 송창현도 이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부상과 부진, 재활을 거쳐 뒤늦게 군경팀에서 군복무를 마친 상황이라 체감상 큰 성공이라 하긴 어렵다.
2013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이상훈 길태곤 삼성

한화는 군면제 좌타 외야 유망주를 트레이드 자원으로 내놓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데려온 상대는 이제 막 포수에서 투수로 포지션 전환한 길태곤이었는데 이상훈이 2군에서 좋은 성적을 내주고 한화에서 귀한 군필/면제자원이라는 점에서 많은 우려를 샀다. 아마도 김응룡 감독이 떡대를 좋아한다는 점이 가장 크고 둘째로 이상훈의 피지컬을 보건데 한계가 있을 거라 판단된 게 아닌가 싶다.

길태곤과 이상훈의 방출로 둘 다 실패로 귀결되었다.

13. 2014년

2014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이대수, 김강석 조인성 SK

한화로서는 윈윈을 기대할수도 있는 트레이드. 일단 나이가 40을 바라보는 포수를 그냥 무작정 선수로만 데려왔을 가능성은 없고 한화 신인 포수들(김민수, 정범모)의 성장을 위해 2~3년 정도 플래툰 형식 혹은 차후 코치를 맡아서 투수리드를 가르치라는 의미 같다. 칰무원 조경택 짤린다 멘토 역할을 할 현역 베테랑 포수가 없던 한화라서 김민수와 정범모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미운털이 박혔는지 어차피 쓰지 않던 고연봉자 이대수를 치우고 취약 포지션 포수를 보강한 것도 의미가 있다. 다만 조인성과 신경현 코치는 동갑이다. 현재 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는 신경현과의 공존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신경현은 2군 코치였던 관계로 1군의 조인성과 공존하는 시간이 거의 없어 큰 문제는 없었다.

2014년말 현재로선 한화 쪽이 대성공한 트레이드. 조인성은 기대대로 젊은 포수들의 멘토링을 충실히 해 정범모의 가시적인 성장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후반기 팀내 주요전력이 되어 좋은 활약을 펼쳤다. 반면 이대수는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 머물렀으며, 김강석은 반전의 계기를 아직 찾지 못했다. 김응용 감독의 유일하다시피 한 유산으로 평가받는 트레이드.

더군다나 김강석이 2015시즌 끝나고 방출되면서 SK가 손해를 본 것이 맞다고 확인되었다. 이대수가 15년 9월에 나름 괜찮게 해 줬지만 조인성에 비해서 활약이 없다는게 문제.
2014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현금 5억 5천만원 정현석 삼성

한화가 전 삼성 투수 배영수를 FA 영입하면서 삼성은 보상선수로 정현석을 택했는데, 정현석은 위암 초기 진단을 받아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상태였다. 한화는 삼성의 정현석 지명의사를 듣고 정현석의 상태를 삼성에 전달했으나 삼성은 그대로 정현석을 영입했는데, 며칠 후 문제가 된 것. 당초 배영수의 당시 연봉(5억 5천만원)의 200%와 정현석을 한화로부터 받게 된 삼성이었으나, 두 구단의 협의하에 한화가 배영수의 연봉의 300%의 보상만을 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행정적으로는 12월 14일 정현석은 삼성 선수가 되었기에, 이 절차는 현금 트레이드의 형태로 진행되어 정현석은 이틀만에 고향팀으로 돌아온 셈이 되었다.

14. 2015년

2015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양훈 이성열, 허도환 넥센
금지어의 유일한 업적으로 재평가 될 트레이드[6]
2015.4.8일 오후 3시 경 갑작스럽게 발표된 트레이드. 수비가 되는 포수와 좌타 거포를 원했던 한화와 선발 투수가 부족한 넥센이 카드가 단번에 맞추어져 이루어졌다.
그리고 양훈은 넥센가서 이지풍 트레이너의 코칭을 통해 선발로 부활하나 싶었지만 다음 해 폭망한다. 허도환칰금님차일목에 밀려 나가리, 이성열은 그놈의 선풍기 스윙 때문에 대타로만 나오다가 약쟁이의 시즌아웃으로 간간히 선발 출장 중이다. 2017 시즌, 이성열은 7년만의 20홈런을 기록하고 허도환은 정범모와 더불어 최재훈의 백업으로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양훈은 끝끝내 부활을 못하고 방출되었지만 허도환은 2차 드래프트로 한화에게 2억(...)을 안겨주고 SK로 떠나며 한화의 승리.
2015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유창식, 김광수, 오준혁, 노수광 임준섭, 박성호, 이종환 KIA

5월 6일[7] 오전 9시경 갑자기 발표된 대형 트레이드. 한화팬들의 애증의 대상 유창식이 고향팀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1군 좌완 불펜이나 선발 투수로 활용가능한 임준섭을 데려왔다. 한화팬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로 나오고 있는데, 유창식의 포텐셜을 아쉬워하거나 전체 1라운더 유창식을 스물일곱 살 미필 투수로 바꾸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앓던 이를 뺀 홀가분함을 이야기하는 팬들도 있다. 한편 유창식과 함께 이동하게 된 김광수에 대해선 전력외 자원이어서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지만, 타격 재능을 인정받던 오준혁과 매우 성실한 준족 외야수로 알려진 노수광에 대해서는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다. 받아온 선수들 역시 이종환은 이미 트레이드해 온 이성열과 중복으로 여겨질 수 있는 자원이며, 박성호야 원래 한화에서 왔으니 한화팬들이 뻔히 알고 있는 선수라는 점에서, 다소간 밑지는 장사를 했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이 트레이드는 불펜진의 과부하를 우려하던 김성근 감독이 먼저 제안하여 성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6년 현재 시점에서 임준섭은 사이버투수로 전락했고, 박성호는 부상, 이종환은 똑딱이 신세에 머물면서 한화가 이득을 본 부분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 기아 입장에서도 메인 카드인 유창식은 여전히 불이나 지르면서 아직까지는 소득이 없다. 그런데 의외로 덤으로 준거나 마찬가지인 방화신기였던 김광수가 35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호 성적을 거두고, 오준혁, 노수광이 1군과 2군을 오가며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한화의 손해쪽으로 분위기가 굳어지는 중이다.

16시즌 들어 이 트레이드는 과거 LG-KIA의 트레이드를 연상시키는 조공 트레이드가 되어버렸다. 15시즌이 플루크 시즌이라고 믿었던 김광수는 어느새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방어율 3점대를 유지하는 리그상위권 셋업맨이 되어버렸고, 타격 주루 포텐은 있지만 아직 터지지 않았고 수비에 큰 문제가 있다던 노수광과 오준혁은 기아의 1번과 2번을 번갈아가며 차지해 오준혁-김호령-노수광으로 이어지는 20대 초반의 외야수들은 KIA의 외야 리빌딩을 한방에 끝내버렸다. 물론 메인 카드였던 유창식은 결국 고향 팀에서 포텐을 터트리는 데 실패하고 이후 승부조작 경력 그리고 성범죄가 발각되어 흑역사가 되면서 기아 입장에서는 옥의 티가 되었지만...

반면 임준섭은 부상으로 인한 재활과 군입대로 최소 2년에서 3년동안 1군에 올라올 수 없고, 박성호는 방출, 이종환은 간혹 대타요원으로 기용 되지만 2할대 초반의 타율을 보여줌으로써 한화의 현재와 미래를 몽땅 쓸어다가 KIA에게 바친 꼴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KIA는 노수광을 트레이드 자원으로 활용하여 포수 김민식을 데려와 포수난을 해결하였고 SK도 노수광으로 테이블새터를 보강했던지라 한화팬들 입장에서는 더욱 더 피눈물이 나는 트레이드가 되어버렸다.

15. 2017년

2016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신성현 최재훈 두산
2003년 트레이드 이후 가장 득을 보게 된 트레이드
그들미래를 팔아버렸다며 단장을 욕 했지만 오히려 트레이드 한 방에 몇 년간 안방을 책임져줄 미래를 획득.

4월 17일 한화 이글스 내야수 신성현과 두산 베어스 포수 최재훈과 전격적인 1:1트레이드가 이루워졌다. 트레이드 이전 당시 한화 포수진은 나이가 기본 30 초반에 타율, 수비도 안 좋아서 조인성-차일목-허도환-정범모를 통틀어 암타스틱4라고 불릴정도로 암울한 상황이었고 두산은 현 삼성 라이온즈 3루수인 이원석이 FA로 가버리고 나서 3루수 새 얼굴들을 기용했으나 내야진의 구멍이 되버리면서 3루수 즉시 전력감을 원하던 상태였다. 이때 한화 이글스 단장 박종훈 단장이 먼저 최재훈을 요구하자 이에 두산 김태룡 단장은 신성현을 요구하였다. 이해관계가 맞은 두 단장이 흔쾌히 승락하면서 트레이드가 이뤄졌다. 하지만 트레이드 이후 몇 일간 한화 갤러리와 한화 팬카페 및 한화 팬카페를 위장한 노리타 팬카페[8][9]에서 논쟁이 이뤄졌는데 노리타들의 주장은 "신성현은 한화의 차기 거포이자 기존 포지션 3루는 물론이고 유격수, 1루수도 대수비도 가능한 유틸리티 자원 야수였다."라고 주장하고 더 나아가서는 박병호에 버금가는 호구 트레이드 라면서 말도 안되는 논리로 박종훈 단장을 까고 있다.[10] 사실 이것도 양호한거고 좀 더 광신적인 노리타들은 김성근의 수제자 신성현을 얻음으로서 두산이 주전 야수들을 일시에 긴장시키는 효과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상적인 한화 팬들은 답도 없는 포수진 라인업을 보면서 한숨만 쉬던 중 실력이 보장된 두산산 20대 포수가 왔다는 점에 기뻐하였으나 신성현은 김성근의 양아들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성실한 노력파였기 때문에 아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20대 군필 포수를 영입하려면 이정도 대가는 치뤄야한다는 것이 일반적 반응이고 최재훈은 13년도 양의지가 부상이었긴 했지만 주전 포수 마스크를 쓰고 가을야구 경험도 있는등 양의지의 공백을 어느 정도 덜어줬을 정도로 실력 있는 포수이다. 그래서 야구 전문가들도 최재훈 만큼 수비도 보장되있는 포수를 영입하려면 트레이드 카드로 수준급 투수 정도로 꽤 비싸게 치뤄야하는데 박종훈 단장이 출혈을 신성현 한명으로 최소화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최종 시즌 성적은 최재훈이 이적 후 포수의 평균 타율이라 할 수있는 2할 5푼 타율을 넘어선 2할 5푼 7리의 타율로 하위타선에 힘을 넣어주고 이번시즌 조인성의 13경기동안 적립한 2개의 도루저지를 벌써 넘은것은 물론이고 투수진들도 최재훈의 볼배합에 만족하는 반응이다. 실제로 배영수도 최재훈이 미친 애인줄 알았다 라고 할 정도로 공격적인 볼배합으로 만족감을 드러냈고 오간도도 최재훈과 처음 합을 맞췄을때도 웃음을 만개하면서 만족함을 보였다. 하지만 햄스트링 부상이 발목을 잡게되면서 27일간 공백기간을 가지게되면서 유리몸이지만 적당히 관리하면 좋은 포수라는 평가가 덧붙여졌다. 반면 노리타들이 박병호급+두산가서 바로 주전먹을 선수라고 칭하던 신성현은 두산 이적 후 첫 타석에서 삼성의 호수비로 안타가 묻힌것도 있지만 하지만 현재 타율이 1할 6푼 4리에다가 두산으로 이적 후 17타석 3안타로 부진하다가 4월 26일날 다시 살아나는 조짐이 보인다고 하나 다시 부진하면서 2군으로 내려가게되고 그 이후로 깜짝 1군 콜업하면서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끝없는 부진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한화는 몇 년간 안방을 책임져 줄 젊은 포수를 얻었으니 완전 득을 본 트레이드로 점쳐지고 있다.[11]

덧붙이자면 18시즌 한화는 최재훈이 완전히 자리를 잡은 가운데 한용덕 감독과 박종훈 단장이 의기투합해 입스 증세가 있긴 했으나 군필[12] 유망주로 평가받던 지성준을 백업 포수로 정한 뒤 정범모를 트레이드로 정리하면서까지 경험치를 먹였고, 결국 최재훈-지성준 2포수 체제를 확립하며 포수진에 대한 걱정을 완전히 지워버렸다.[13] 더군다나 LG에서 방출된 김창혁을 영입해 입대한 박상언의 공백도 메웠고, 18시즌 후 플레잉코치 룰을 맡을 김종민을 데려오고, 육성선수로 여러 포수들을 영입하며 돈 수십억 안쓰고 리빌딩을 진행하고 있다. 선수 없다며???

16. 2018년

2018년
팀명 트레이드 선수 트레이드 선수 팀명
한화 정범모 윤호솔 NC

3월 20일 한화 이글스의 정범모와 NC 다이노스의 윤호솔의 맞트레이드가 성사됐다. 그동안 한화 이글스 팬들은 정범모를 팔아서 다른 팀 유망주라도 얻어오자 라는 의견을 많이 했던만큼 쌍수들고 환영하고 있으며 정범모를 내주고 한때 NC 다이노스와 6억이라는 계약을 맺으며 입단했던 윤호솔을 받아왔다는 점에 더욱 놀라고 있다.

현재 트레이드 배경을 추측하면 NC 다이노스는 주전 안방마님 김태군의 군 입대 이후 박광열 외에 1군에 경험 많은 포수가 없는 만큼 포수에 허덕이고 있었고 한화도 한화대로 마운드 전력이 매우 약함에 허덕이고 있었다. NC는 6억에 입단했지만 부상으로 제 값을 못한 윤호솔을 내주고 한화도 리빌딩을 천명했기에 정범모를 내준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 2018 시즌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2018년 8월 11일 윤호솔이 자신의 지인으로부터 체크카드와 통장을 빌려주면 매일 90만원이 들어온다는 말에 혹해 빌려줘버리는 바람에 그 많던 계약금은 어디간거야... 전자거래 금융법 위반으로 참가활동 자격을 정지당하게 되었고 정범모는 1군과 2군을 오가며 아직도 뛰고 있다. 아직 정확한 윤호솔의 처벌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패턴으로 한화의 손해라고 보는 것이 맞는 편.

그리고 KBO로부터는 2개월 자격 정지 + 사회봉사 80시간, 한화 구단 자체 징계는 사회봉사 120시간이 나오면서 총 2개월 자격정지 + 사회봉사 200시간의 징계를 받게 되었으나 엠스플 측이 내놓은 기사에 따르면 KBO측에서 한화 구단의 요청도 없는 것은 물론 상벌 위원회에서 정식 제재를 내기 전에 임시로 '참가활동정지'라는 규약에도 해당되지 않는 엉터리 제재해버렸다는 기사가 나왔다. 원래 한화 구단에서 자체징계를 내리고 상벌위원회를 통해 징계 결정 이후 KBO가 공식 보도를 하는 것인데 KBO가 먼저 상벌위원회를 거치지도 않고 참가활동정지라는 제재를 내버려서 이후 한화 구단 자체징계를 내린 이상한 케이스가 생겨버렸다. 게다가 '참가활동정지'는 정식 제재가 아닌 임시 제재라는 문제점도 있어서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이니 다시 정식으로 상벌위원회를 열어서 재심의로 들어가게 되버렸다. 아무리 재활이 잘 되었다 한들 19시즌 초반은 보기 힘들 수도 있다.

우습게도 18시즌 이후 FA 최대어라 불리던 양의지는 한화도 롯데도 아닌 NC로 가버렸고, 졸지에 정범모는 김태군과 함께 백백업 신세가 되어버렸다. (...) 왜 데려갔냐

[1] 일단은 두산에 필요한 좌완 불펜투수이긴 했다만......[2] 어느 정도 수준이었냐면 10시즌중 주전 3루수 송광민의 시즌 중 입대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자 손지환을 급하게 영입할 수 밖에 없었다. 선수 지명과 지원을 소홀히 한 프런트와 젊은 선수 육성과 군입대 문제 해결 등에 무관심했던 김인식감독의 시너지가 어우러져 일어난 병맛 사태 실제로 한화의 암흑기의 주요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한대화, 김응룡이 그나마 칭찬받았던 부분 중 하나는 밀려버린 20대 후반 선수들의 군문제와 20대 초반 젊은 유망주들의 군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었다는 점이다.[3] 후술하겠지만 2년 정도는 쏠쏠하게 써먹은 조인성이 이 트레이드로 한화로 이적했다.[4] 실제 넥센에 보낸 금액은 12.5억원이다. 자세한 사항은 KBO 트레이드 이면 계약 파문 문서 참조.[5] 롯데 측은 한화가 [email protected]를 제시할 줄 알았으나 안했다는 것에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6] 이성열의 17년 활약도 좋았으나 18년에는 컨택트까지 좋아지고 개인 최초, 그리고 한화 이글스 토종 좌타 최초 30홈런을 기록하며 중심타선의 핵으로 떠오른 영향이 크다.[7] 공교롭게도 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가 일어난 지 2년 뒤에 있었다.[8] 궁금하면 네이버에 우리는 오렌지군단 카페 매니저의 글을 한번 보면 단장만 까고 댓글에다가도 송광민을 내주면 두산이 덥석 받아드릴텐데 멍청하게 신성현을 줬다고 열폭하면서 주장하는데 두산 프런트가 바보가 아닌 이상 송광민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는 것이 이번시즌 조건만 마치면 송광민은 18년도 FA로 풀린다. 두산 프런트가 미쳤다고 더 많은 유망주를 받을 수 있는 실력있는 포수카드를 FA까지 5개월 남은 야수를 트레이드 하겠는가... 그리고 만약 트레이드 후에 못잡으면 정말 개호구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웃긴건 송광민은 어느덧 나이가 35이라는 실력이 언제 꺾여도 모를 나이이고 사생활 논란이 언젠가 터질 선수 라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트레이드 이후 신성현이 부진한 것을 언급하면 저격글은 하지 말라고하면서 매니저 밑 계급인 스텝이 정지먹인다더라... 거의 공산주의 수준[9] 더더욱 가관인 것은 해당 카페 매니저는 트레이드 성사 초기에는 득보다 실이 많다며 박종훈 단장을 엄청 비판했다. 그리고 트레이드 이후 최재훈이 3할 넘는 타율과 내야진 안정화를 시키고 신성현은 부진을 하자 6월 16일에서 다시 글을 올리면서 "최재훈이 온 것은 환영하지 신성현을 내준 것은 10년을 좌지우지하는 황금내야진 구축에 구멍을 냈다." 라는 어이털리는 주장을 펼치는 중이다.[10] 박병호는 고등학교 때부터 4연타석 홈런을 때려냈을 정도로 장타력 만큼은 모든 구단 스카우터들이 인정하였고 실제로도 고등학교때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입단제의를 했을 정도로 주목도도 높았고 포텐셜도 충분했다. 신성현은 일본에 유학해서 일본 구단이였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을 할 정도였다면 신성현도 포텐력이 있을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신성현은 엄연히 중거리 타자이고 박병호는 전형적인 장거리 타자이다. 실제로 주전을 보장받지 못했을때의 최고 장타율로만 봐도 박병호는 11년도 66경기 5할 2푼 2리의 장타율 신성현은 16년도 89경기 4할 8푼 1리의 장타율이다. 예상론이지만 11시즌 박병호는 23경기 차이인데도 16시즌 신성현 성적과 비교하면 5개씩이나 되는 홈런 차이이고 만약 경기에 더 나섰다면 홈런 격차가 더 벌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11시즌에는 투고타저였음을 더 감안하면 박병호가 얼마나 파워툴이 보장되어있음을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이들은 박종훈이 감독시절 박병호가 트레이드 된 것을 언급하며 박종훈이 박병호 트레이드를 주도 한 것처럼 주작질도 하였다. 사실 박종훈 문서만 봐도 알겠지만, LG 감독 시절 임찬규, 한희 등을 발견해냈고, 트레이드로 최소 손승락 정도의 카드는 받아오자고 프런트에 건의하는 등 선수 보는 눈 하나는 좋았다. 단지 1군 감독 재능이 없었을뿐[11] 그도 그럴 것이 두산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결국은 백업이라 몇몇 한화 팬들은 어떻게든 신성현을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12] 정확히는 수술로 인한 방위 판정[13] 그 덕에 FA로 양의지가 풀렸음에도 '너희 둘을 믿는다'며 양의지 영입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게 아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