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08 23:44:25

칰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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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발생 원인3. 칰무원 리스트4. 칰무원으로 까였지만 논란이 있는 인물들5. 재평가받은 인물6. 김성근이 오면서 흩어진 칰무원들7. 그 이후

1. 개요

이글스에서 활동했던 선수들 중 은퇴하여 코치가 된 인물들을 무능하다며 비하하는 표현이다. 한화 이글스 구단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 왔으며, 한화의 암흑기를 불러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되었다. 2015년 김성근 체제로 전환하면서 드디어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는 듯 했으나 실제론 전혀 아니었다.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는 해결하지 못했고, 살려조를 비롯한 선수 혹사 및 현장의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새로이 발생하였다. 반면 타 팀으로 쫒겨난 칰무원들이 몇 명 빼고는 의외로 호평받고 있다.

반면 나가서도 답이 없는 사람도 있어서 칰무원으로 싸잡혀 비난하는 것은 비합리적이었던 것으로 판명이 났다. 정작 팀을 거쳐갔던 김응용 사단, 김성근 사단 코치들도 전반적으로 무능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1] 김성근 체제가 막을 내린 2017년 현재 레전드 출신 코치들을 '칰무원'이라고 싸잡아서 까는 한화팬들은 거의 없고, 간혹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타팀팬들이 비꼬기 목적으로 칰무원이란 표현을 쓰곤 한다.

2. 발생 원인

명선수가 꼭 명지도자가 되는 건 아니며 그 이유도 다양하다.

한화 이글스는 전통적으로 레전드에 대한 대우가 타 팀과 달리 굉장히 좋은 편이며, 이는 한화그룹의 사훈인 '신용과 의리'를 따르는 모습으로 팬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레전드 대우는 굉장히 부작용도 커서 한화에서 프랜차이즈 역할을 했거나 어느 정도 활약을 한 선수는 연수도 없이 요직에 꽂아버리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를 이름하여 칰무원이라 부른다.

실제로 한화 레전드 출신 중 한화 시절 코치로 확실한 성과를 보여줬다고 평가받는 인물은 한용덕이 거의 유일하다. 그렇다면 한화 레전드들은 코치로서의 능력이 없는가? 송진우한용덕 등을 보면, 적어도 한화 레전드들의 자기 관리 능력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다. 이러한 모습이 제대로 전수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소리. 결국, 전술하였듯이 제대로 된 연수조차 없는 조직 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 타격코치로서는 성과를 냈으나 수비코치로 옮겨서 망한 강석천의 사례처럼, 맞지 않는 옷을 입어서 문제가 된 사례도 있다. 2014년 11월 한 전직 코치의 인터뷰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나치게 끈끈한 관계 때문에 코치 대 선수가 아닌 선배 대 후배로 이어지면서 훈련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3. 칰무원 리스트

3.1. 이상군


한화그룹의 창업주인 김종희 회장이 천안북일고등학교 야구부를 만들던 시절에 거액을 주고 영입한 투수였다. 김종희 회장이 1981년 별세하자 관을 운구한 인물 중 하나이며, 現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전통적 술동생이다.

그는 현역 시절 통산 100승을 거둔 명투수였지만, 2001년 5월에 은퇴하고, 1년을 공치고서 2003년 이광환 감독을 따라가서 LG 트윈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하여 성과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그를 데려온 이광환이 2군 감독으로 물러나고, 해임되자 2006년에 LG에서 한화로 돌아오게된다. 그 뒤로는 유원상, 양승진 등의 유망주를 2군에서 박살내고 있었고, 김인식 감독이 류현진 기용문제와 최동원 투수코치의 건강문제 때문에, 기존의 1군 투수코치이던 최동원, 한용덕을 2군으로 내리면서 1군에서 콜업되었다.

1군 코치로서는 이상군 항목에 있듯이 능력이 최악이었으며, 2012년은 스카우터로 근무했다. 코칭스탭만 아니면 괜찮겠지... 라는 한화 팬들의 헛된 희망 말도 있었지만, 혹시나가 역시나. 이 시기에 송신영을 데려왔다가 FA먹튀가 되어 떠나보내기도 했었고, 용병으로 뽑은 브라이언 배스션 헨는 처참하게 망했다.

2013년부터 2군 코치를 맡았으며, 지금은 육성군 총괄로 내려갔다.

팬들은 이상군 코치의 해임을 기다리고 있지만, 스스로 나가는 게 아닌 이상 잘릴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애초에 아무리 능력이 없다고 해도 한화그룹의 전대 회장이 직접 손을 써서 데려왔고 현 회장의 술친구인 동시에 전대 회장의 장례식에서 관을 운구한 4명 중 1인일 정도로 오너 일가와의 친분이 각별한 인사가 쉽게 잘릴 리 만무하다. 팬들도 차라리 사람은 좋으니 현 자리에서 만족하고, 1군 요직에만 앉는 일이 없기만 바라는 상황. 어떤 의미에서는 그래도 참 대단한 게, 이 정도로 팀 내에서 입지가 있는 인물이 깽판을 치면 팀은 솔직히 나가리난다. 사람 하나는 좋으신 분이라는 게 전반적인 평가. 제발 거기 가만히만 계세요. ㅠㅠ

그러다가 1군 불펜코치로 올라와서 1군을 지키는 상황이 이어지던 와중, 김성근의 경질로 졸지에 감독대행 자리를 맡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행보로 봤을 때 이 사람의 능력에 대해서 많은 의문 부호가 붙는 게 사실이지만, 감독대행직 수락 이후 인터뷰에서 한화 팬들이 바라 마지않던, 권혁, 송창식 등을 이길 때에만 쓰는 것을 천명하는 등의 발언을 하여 일단은 좋은 점수를 얻은 상태이다. 투수교체 타이밍을 잘 모르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최소한 중계를 키면 무조건 송창식이 나오는 모습은 없고, 지고 있을 때 추격조를, 이기고 있을 때 필승조를 쓰면서 박상언, 김재영 등 신인들에게도 믿고 경기를 맡기는 등 나름 잘 해주고 있다.

필승조를 아끼는 투수운영으로 인해 역전패가 좀 많은 것이 흠이었지만, 주전 선수들이 대거 이탈하고 용병 투수 중 누구도 규정이닝도 못채울 정도로 돈값을 못해주는 가운데서도 2년 넘게 전권을 휘두르던 그가 경질당할 당시의 순위보다는 높은 8위로 시즌을 마쳤다. 심지어는 승률도 더 좋다. 무능의 대명사 칰무원 최고봉을 앉혀놔도 야신보다 낫다 카더라 사실 이 사람 한명만 봐도 '칰무원 무능론'이 반박가능하다.

3.2. 조경택

배터리 코치인 조경택은 현역시절에 뛰어난 선수도 아니었고 공수주 모두 수준이하였다. 그런데 2003시즌 끝나고 은퇴하여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한화 이글스 한 팀에서 꿋꿋히 버티면서 배터리 코치를 하였다.

이 시기에 뽑은 포수만 봐도, 박노민, 김기남, 정범모, 최연오, 이희근 등이 있었지만 모두 폭망했고 결국 40을 바라보는 신경현마스크를 쓰는 일이 생기고 만다.[2]

결과적으로 보면 코치경력 10년동안 제대로 키운 포수가 단 한명도 없었고, 이로 인해 신경현 은퇴 이후 더 답이 없어지는 결과를 닣았다. 노무라 카츠야 감독이 길러낸 시마 모토히로를 보라. 같은 이글스인데 차이가 난다. 거긴 그냥 이글스가 아니라 "황금"이글스다. 같은 이글스가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4시즌 끝나고 이 사람이 잘린 것이다. 결국 두산 2군 코치로 갔다. 다만 배터리 코치가 아니라 재활 코치...코치진이 1군에는 강인권, 2군에는 김진수가 있다보니....다 제쳐두고 감독부터가 이미 포수 마스터이기도 하고... 그리고 두산은 우승했다 18년에 강인권이 한화로 옮겼음에도 조인성에게 밀리며 2군코치로 시작.

3.3. 강석천

강석천은 2003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고 2005년부터 코치를 하였다.

사실 강석천은 타격코치로서는 그나마 괜찮다는 평을 받았지만,[3] 2013~2014시즌에 수비코치로서는 최악이라는 평을 받았다. 실제로 2013~2014년에 한화는 특유의 답이 없는 수비로 제대로 골머리를 앓았고 이 시기에 한 일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2014년에는 펠릭스 피에와 덕아웃에서 언쟁을 벌이는 실망스러운 모습도 보였다.

결국 조경택과 같이 2014시즌 끝나고 잘려서 두산에 갔다. 1루코치를 하다 강동우에게 밀려나 수비코치를 한다 그냥 전형도 코치가 수비 같이하면 안돼? 여러가지로 선수시절 뇌수비하던 3루수에게 수비코치를 맡긴건 실책이었다. 이미 공필성의 예도 있고... 근데 공필성도 16년 두산으로 입성 실제로 보면 주루 코치 시절에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고, 타격 코치 시절에는 심지어 석천 매직이란 말까지 들은 바가 있었다. 대체 왜 수비 코치를 맡긴 건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 그런데 정작 두산은 15시즌 최소실책 3위....그리고 우승[4]

2016년 들어 두산 야수진이 우수한 수비력을 보이며 선두를 질주하자 강석천 역시 재평가받았다. 특히 덕아웃에서 선수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호수비에 아낌없는 칭찬을 보내주는 모습이 화면에 자주 잡히면서 인품 면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피에와 싸우던 시절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 이런 이유로 두산에 몸담던 시절 두산팬들의 평가는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보직이 바뀌어 타격코치를 볼 때도 최소한 욕은 안 먹었다. 2018년부터는 공필성, 이강철에 이은 두산의 퓨쳐스 감독으로 시즌을 시작한다.

4. 칰무원으로 까였지만 논란이 있는 인물들

4.1. 정민철

투수 교체와 불펜 투수 혹사 문제로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다만 일부 코어 팬들에게선 "그래도 한화 코치진 중에서 정민철은 괜찮은 편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많긴 하였다. 실제로 투수 코치로서의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아, 김성근 체제 출범 하에서 이상군, 장종훈과 함께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레전드 출신 코치가 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해설위원으로 변신

코치로서 크게 관여하기보다는 멘토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편. 특히 2010년 당시 고뇌와 자괴감에 빠져있던 박정진에게 네가 정말 던지고 싶은 투구폼으로 던져라라는 조언과 신뢰를 보내줘서 2010년 그의 각성을 이끌어내 한화 이글스의 불펜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또 유원상에게 슬로커브를 전수시켰고, 2011년 선발 위주의 긴 이닝 교체를 주도하면서 양훈이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태양의 멘토와도 같은 역할을 맡으며 선발자원으로 키워냈다.

실제로 김성근 감독 또한 그를 인정하여 같이 가려고 하였고, 해설 위원 전향 이후로도 해설 능력을 보면 야구를 보는 눈 또한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정민철 나가고 나서 들어온 정민태는 이름이 비슷해서 들어왔냐고 죽자고 까이고 있다. 한용덕, 장종훈과 함께 한화 팬이 돌아오길 바라는 몇 안 되는 코치. 다만 보여준 모습에서 아직까지 칰무원이냐 아니냐가 좀 갈리는 경향이 있다. 칰무원의 문제를 짚었던 인터뷰의 주인공으로 유력시되고 있다.

본인의 말로는 김응용 감독 시절, 직언을 하지 못하고 그냥 하라고 하는 대로만 했다고 밝혔다. 해설위원 시절에는 2년차에도 변함없던 의 투수운용을 강하게 비판했고, 이상군 대행 시절 그나마 합리적인 투수운용은 칭찬하는 것으로 보아 기본적인 혹사에 대한 경계는 하는 듯. 생각이 바뀐건지도? 차기 감독 후보군 중 한 명.

4.2. 장종훈

타격 코치 시절 김태균, 이범호의 상승세와 더불어 김태균에 가려 있던 유망주 김태완을 지명타자에 안착시켜 클락-김태균-이범호-김태완의 클린업 쿼텟이라는 공포의 타선을 선보여 '종훈매직'이라고 칭송받았다. 하지만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클락이 거짓말처럼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타선 전체의 침체가 오면서 미완의 매직으로 끝났다. 2012년에도 팀 성적이 워낙 바닥인 탓에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송광민을 안정적으로 라인업에 안착시키고 이양기 등 2군에서 묵혀두기만 했던 선수들을 재발굴하면서 차기 시즌을 대비하였다. 김성근 체제 하에서 수많은 칰무원 코치들이 야인이 되는 과정에서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코치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러나 12월 7일 롯데 자이언츠 타격 코치로 발탁되면서 결국 한화를 떠났다.[5]

다만 파워툴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만 교타자 육성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고, 실제로 선수들 상당수가 선풍기 스윙으로 변하였다.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강석천으로 교체된 후 극적인 공격력 향상이 나타나면서 더 까임권을 얻기도. 그러나 특유의 연습생 근성으로 롯데 시절에는 교타자 육성을 위해 노력한다고. 다만 결과는 그리 좋지는 않았다. 어쨌든 롯데에서는 말이 왔다갔다 하기는 해도 그럭저럭 괜찮은 코치로 인정받는 편. 특히 강민호의 대각성에는 장종훈 코치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는게 평.

타자 본인의 타격폼에 손을 대지 않고 개성을 존중하면서 타격의 기본적인 문제점(퍼져나간다든가, 팔꿈치가 붙어나오지 않는다든가)만을 찾아내서 교정하는 정도에 그치는 대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멘토 역할을 하면서 타자 본인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스타일. 분야는 다르지만 정민철과 스타일이 비슷하다.

한용덕의 부임 후 친정으로 돌아와서 2018 시즌부터 수석코치/타격코치를 겸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다할 타격 코칭을 하지는 못했으며 팀의 타격은 식물 타선이 되어버린 바람에 2019 시즌부터는 수석코치만 전념하게 되었다.

4.3. 김민재

2010년 은퇴 후 별다른 연수 없이 제발 연수 좀 시켜요!! 한화 이글스의 수비코치, 작전코치, 주루코치 등 요직을 두루 섭렵하며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3루에서 주자에게 냅다 팔을 돌려서 홈에서 주자가 비명횡사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등, 한화 루상횡사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당시 한화 선수들의 수비 능력은.... 당시 한대화, 정민철과 함께 물러나야 할 코치진의 암세포로 찍히기도 했다.

다만 기간 자체가 워낙 짧았고, 두산 베어스[6]로 이적한 이후에는 무난한 코칭 능력을 보여주면서 코치의 문제라기보다는 팀의 문제가 더 크지 않았냐는 평가를 받았다. kt wiz의 코치 부임 이후로도 딱히 악평이 없는 것을 볼 때, 팀의 문제가 정말 크긴 컸던 듯.

그리고 2017년 김민재는 롯데의 수비코치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비록 앤디 번즈의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곤 하지만 롯데는 근 20년만에 최소 실책 1위에 올랐다.

5. 재평가받은 인물

5.1. 송진우

2011~2012 시즌에 대한 평가는 꽤 괜찮았던 편이지만, 2013~2014 시즌을 모조리 말아먹고 돌진우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러나 2군 코치 시절 김혁민, 신주영 (지금 이분들 어디에..) 등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려놓은 공이 있어, 육성 능력은 나쁘지 않은 편이라는 평가. 그러나 조지훈 만큼에서는 최악의 평가. 조지훈의 문제점 중 하나인 슬라이드 스텝을 보완하기 위해서 투구폼을 완전히 바꾸었지만 이후 밸런스가 개발살 나버리면서 공이 배팅볼화 되었다. 구속하락은 당연.

여담이지만 코치로서는 나름 평가가 갈리지만, 해설위원으로서는 특유의 가래끓는 목소리 + 한화편파 + 독특한 언행과 말실수가 엮여서 최악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2018년에는 한용덕 신임 감독의 부름을 받고서 돌아왔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송은범, 안영명들 답이 없었던 베테랑들을 부활시키고, 서균, 박주홍 등 신인 선수들을 발굴해내며 시즌 초 한화의 돌풍에 큰 힘이 되고 있다. 특히 송은범에게 투심을 전수해 그 송은범을 평자 2점대 선수로 만들었다.

송진우의 경우에는 스스로 변화해서 재평가 받은 경우인데 해설을 하면서 안에 있으때 볼 수 없었던 밖에서 본 한화의 문제점을 알게 되고 본인의 잘못을 반성한 결과가 2018년 한화 투수진의 화타로의 귀환이다.

6. 김성근이 오면서 흩어진 칰무원들

결국 자신의 사단을 보유하고 있는 김성근이 오면서 칰무원으로 악명높던 강석천조경택, 송진우, 김기남이 해임되자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이상군은 살아남았다.[7] 한편 한용덕은 김성근 선임이 확정되자 즉시 사표를 제출하였고, 정민철, 장종훈은 기존 한화출신 코치진 중 김성근이 함께 일하길 희망했던 두 명이었지만 본인들이 고사하면서 팀을 떠난 케이스이다.

7. 그 이후

송진우KBS N SPORTS의 해설자가 되었다. 해설자로서의 평가는 매우 좋지 않아 2년만 하고 짤렸다. 그리고 2017시즌 후에 한화에 새로이 부임한 한용덕 감독의 부름을 받아 다시 팀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2013년부터 길고 긴 암흑기에 들어간 34억 먹튀 송은범을 부활시키며 긍정적으로 재평가를 받았다.

정민철엠스플의 해설자가 되었다. 선수시절에도 언변이 유창하다고 알려졌고 목소리도 좋은 편이라 송진우와는 달리 방송에 빠르게 적응했으며, 경기분석도 날카로우면서 편파해설도 심하지 않은 편이라 거의 대부분의 팬들로부터 호평을 받는다. 김성근 경질 이후 한화의 차기 감독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장종훈은 잠시 팀동료로 한솥밥을 먹었던 이종운의 부름을 받고 부산으로 가게 되었다. 타격코치를 맡아 타선의 장타력을 향상시켰다는 평을 받으며 평가는 괜찮은 편이다. 송진우와 마찬가지로 한용덕 감독의 부름을 받아 3년만에 친정에 복귀하게 되었고, 이번엔 수석/타격 코치를 맡게 되었다. 다만 호불호가 갈리는 타격지도는 여전히 논란이 되었고, 타격코치를 새로 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팬들에게 모아졌다. 그리고 그 결과 타나베 노리오 전 한화 타격 인스트럭터가 파견 형식으로 타격코치에 선임되면서 수석코치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한용덕은 팀을 떠나기 이전과 이후 모두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성근 부임 이후 두산 베어스로 자리를 옮긴 뒤, 투수코치와 수석코치를 수행한 3년 동안 세 번이나 한화의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다. 2016 시즌 종료 후 김성근 경질설이 파다하던 시기가 첫번째, 2017 시즌 도중 김성근 사임 직후가 두번째, 2017 시즌 후 이상군 감독 대행의 후임 정식감독을 선임하던 때가 세번째이다. 이 시기 두산은 두 번은 포스트시즌 중이었고 한 번은 페넌트레이스 중이었기 때문에 경기외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의 영향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한용덕 본인은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제 역할을 수행하였고, 결국 세 번째로 하마평에 오른 2017 한국시리즈 종료 후에 한화의 정식 감독으로 친정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기어이 비밀번호를 끊어냈다. 그 과정에서 데려온 송진우 투수코치가 재평가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덤. 그런데 장종훈은 왜

강석천, 조경택은 한용덕과 함께 두산 베어스로 행선지를 옮기게 된다. 그리고 2015~17 3년 중 우승 2회, 준우승 1회를 함께 한다. 그러나, 한용덕 감독 복귀 시에 복귀하지 못하고 두산에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의외로 '칰무원'이라고 비난받은 코치들 중에서 한화를 나가서 능력을 인정받은 케이스가 꽤 많다. ‘한화 프랜차이즈 선수 출신 코치 = 무능’이란 도식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이다.


[1] 니시모토 다카시, 쇼다 코우조 등 일본출신 코치들은 논외.[2] 거기에 2013~2014시즌은 유망주인 한승택, 김민수를 데려왔지만 모두 FA보상으로 뺏겼다(...).[3] 장종훈 코치 시절 모조리 선풍기 스윙으로 변해버린 선수들을 교타자와 장타자로 구분하여 가르쳤다. 실제로 당시 코칭스태프 보직 변경 전 27경기에서 팀 타율 2할2푼1리, 경기당 평균 3.0점밖에 못했지만, 보직 변경 후 17경기에서 팀 타율 2할4푼7리, 경기당 평균 4.2득점으로 눈에 띄게 공격력이 향상됐다.[4] 이후 2016년 전지훈련에서 강석천은 나는 행복합니다를 불렀다(...). 심지어 2016년 두산에서는 공필성도 2군 감독을 맡으며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5] 결국 군복무+장종훈의 롯데행으로 김태완은 쩌리가 되었고 방출된다.[6] 두산 입성 당시에는 김민호의 계약실패로 대신 들어온 터라 여론이 굉장히 나빴다.[7]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빙그레/한화 김종희 초대회장이 직접 데려온데다, 장례식 운구까지 했던 역대급 칰무원이라 팀이 해체하지 않는 이상 절대 짤릴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주요 의견이다. 실제로 감히 그깟 감독 나부랭이 김성근도 이상군 코치를 자를 권한따윈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