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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기본 정보 | 팀 컬러 | 선수단 | 스타 플레이어 | 등번호 | 유니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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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결번 | ||||
일반 정보 | }}} | 1999 | ||
35 장종훈 | 21 송진우 | 23 정민철 | 52 김태균 | ||||
구단 역사 | 암흑기(5886899678) | 역대 트레이드 | 사건 사고 | 상대 전적 | ||||
경기장 | 1군 대전 베이스볼 드림파크 · 청주종합경기장 야구장 | 2군 서산전용연습구장 이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 |||
지역 연고 학교 | 북일고등학교 | 대전제일고등학교 | 공주고등학교 | 한국K-POP고등학교 | 대전고등학교 | 세광고등학교 | 천안상업고등학교 | 청주고등학교 | 강원고등학교 | 원주고등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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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 행복수비 | 한나쌩 · 한상바 클럽 | 김고추정이 | 변노유 | 살려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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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화 이글스의 팀 컬러를 설명하는 문서.2. 플레이 스타일
팀 성적은 시대에 따라 큰 변화를 겪었지만 큰 줄기는 수비보다는 타격, 뎁스보다는 스타 플레이어 위주의 팀 플레이 스타일을 선호한다.과거에는 거포 위주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내세운 공격 야구가 전통의 팀 컬러였다. 용병과 토종 프랜차이즈가 적절하게 배치된 한화의 클린업은 2010년 정도를 제외하면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별명이 붙은 이유는 빙그레 시절 모기업인 한화그룹이 화약을 생산하는 기업이었고 창단 초기 시절부터 중장거리 타자들로 포진된 막강한 타선을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빙그레 이글스 시절은 잠실을 제외한 전 구장이 대전 한밭 야구장과 거의 비슷한 크기였다. 대부분의 팀들이 비슷한 조건에서 경기를 하고 있을 때부터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니 1980년대의 이글스가 얼마나 타선이 강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빙그레 시절에는 중장거리 위주의 타자들로만 구성되어있지 않고 소총과 대포가 적절하게 섞인 균형이 잘 잡혀있던 타선이었다. 테이블 세터진에서 이정훈과 이강돈이 밥상을 차려주고 중심타선에서 장종훈과 유승안이 대포를 터뜨렸고 강정길 등도 핵타선에 힘을 거들었다.
그러던 게 빙그레 말기부터 조금씩 조금씩 바뀌더니 결국 김인식 체제 하에서는 완벽한 뻥 타선을 핵심으로 한 타선이 되어버렸다(...). 암흑기가 시작된 2010년 이후로도 최진행, 송광민, 김태완 등 거포 자원은 꼭 갖춰놓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타선의 비중이 높은 팀인지라 투수진은 약한 편이라는 이미지도 있지만, 사실 이상군, 한희민, 한용덕,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 이상목, 문동환, 류현진 등 리그 수위급 투수들이 존재했던 팀이며 빙그레 시절에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선발진을 가진 팀이었다. 다만 이 시절에도 불펜은 약했으며 그 몇몇 에이스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혹사가 극심했다.
2008년 이후 지속되는 리빌딩의 딜레마에 빠진 한화 |
결국 김성근 영입이라는 초강수[1]를 두게 되었으나, 김성근 영입 이후로도 6, 7, 8위를 하며 비밀번호를 연장하고, 투수의 팔들도 신명나게 으스러졌다.[2] 투수 혹사가 어느 정도 줄어들면서 강팀이 되나 싶었지만, 타자들의 노쇠화가 한꺼번에 오면서 타격 침체기가 지속되고 있다.
한용덕 감독 부임 이후 가을야구에 진출하게 되면서 기나긴 암흑기를 탈출하는 듯 보였으나 바로 다음해 9위를 기록하면서 다시 부진의 늪에 빠졌고, 한용덕 감독의 자진사퇴 이후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을 구단 역대 최초 외국인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전체적인 팀 리빌딩을 선언했으나, 재임 2년동안 최하위를 기록했고 3년 차에는 9위를 기록하던 중 수베로 감독이 전격 경질되면서 감독 잔혹사 및 한화 이글스의 암흑기가 이어져오고 있다.
2023년 5월 11일 최원호 2군 감독이 한화 이글스 제13대 감독으로 선임됐으며 이듬해에는 팀의 간판스타 류현진의 복귀와 외부 자원 안치홍을 영입하면서 구단에서도 "Rebuilding Is Over"(리빌딩은 끝났다)라는 문구를 공개적으로 내세우는 등 리빌딩보다는 성적을 내려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시즌 초반 반짝 활약 이후 급격한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으며 결국 5월 26일 최원호 감독이 전격 경질되면서 한화 이글스는 김성근, 한용덕, 수베로에 이어 4연속으로 감독이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 하고 중도 퇴진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2.1. 스타 플레이어 의존
한화의 가장 큰 특징은 뛰어난 스타플레이어와 프랜차이즈 스타 대비 떨어지는 뎁스이다. 20세기 잘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경향은 아주 꾸준하다. 한화는 레전드급 선수들이 손에 꼽을 정도로 많은 구단이나 2000년대 말 암흑기에 빠지기 전만 한정해도 강팀으로 불리기는 충분할지언정 우승 기록이 한 번에 불과한데 그 이유는 엄청난 레전드와 스타플레이어의 숫자 대비 아쉬운 뎁스 때문이다.1987년 부터 이상군, 한희민, 송진우, 한용덕 등의 해태 못지 않을 강력한 투수진과, 장종훈, 이강돈, 이정훈, 강정길 등의 타자진으로 구성된 강력한 조합으로 2010년대의 NC 다이노스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송진우는 크보 역사상 유일한 200승 투수이며, 장종훈은 이만수의 뒤를 잇는 홈런왕으로 활약했다. 이후 합류하는 구대성과 정민철까지 포함하면 엄청나다 할 수 있겠다. 한화 이글스로 바뀌고 21세기가 지난 이후에도 류현진이라는 스타급 플레이어의 덕으로 2006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저력을 지녔다. 외국인 선수들만 해도 제이 데이비스, 댄 로마이어, 펠릭스 피에, 윌린 로사리오 등의 강력한 타자용병들이 포진했다.
그 결과 한때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고 부를 정도로 공격력이 수위급이 되었고 투수들은 유달리 강력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특성은 유달리 작았던 홈구장, 타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훈련, 거포 중심의 드래프트 등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한화 팬들 사이에서는 농담삼아, 한화에 투수 레전드가 많은 것은 이 구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괴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농담까지 있다.
문제는 이러한 스타 플레이어에게 지나칠 정도로 의존한 탓에 스타 플레이어와 그렇지 못한 선수간의 양극화가 심하다는 점이다. 이렇기에 스타 플레이어 부재 시 정말로 허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타 선수들이 은퇴, 해외 진출 등으로 단번에 실종된 반면 그동안 양극화의 후유증으로 대체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탓에 몰락하고 말았다. 2000년대 중반에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가장 적은 선수를 지명한다거나, 2군 구장도 없는데다가 선수단 군 문제 관리마저 소홀히 하는 등 선수 육성에서 허점을 드러냈고, 그 동안에는 타 팀에서 방출된 선수인 정원석, 강동우 등을 주워다 땜빵하는 식으로 버텼지만 노장 특성 상 잠깐 활약하고 은퇴하는 경우가 많아 결국 한계에 달하며 문제점이 한꺼번에 터지며 몰락한 것이다.
또한 스타 플레이어의 포지션을 이어받은 선수는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리는데, 김별명이 좋은 예시다. 차세대 프랜차이즈 스타로 점쳐지고 있는 정은원, 노시환, 문동주는 과연 어떠할지..
2.2. 우수한 외국인 타자 스카우트, 외국인 투수 잔혹사
1998년에 외국인 용병 제도가 도입된 이후 역대 한국에서 활동한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많은 홈런을 친 댄 로마이어, 외국인 선수중 가장 많은 안타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한 제이 데이비스[3], 나중에는 부진했지만 한때 '슈퍼맨' 으로까지 불렸던 덕 클락, KBO 역사상 단 세번 뿐인 4연타석 홈런의 주인공 윌린 로사리오, '크루즈 미사일' 제이콥 크루즈 같은 한국 리그에서 맹활약했던 용병들이 한화 이글스에서 활동하였다. 물론 그 잘 뽑는다는 타자 용병도 항상 잘 뽑는 것은 아니어서 박찬호와 한솥밥 먹었다고 언플을 날린 마이크 부시나 KBO 리그 최초의 용병 포수라는 기록만 세우고 간 엔젤 페냐, 기마자세 타격폼으로 인상을 남겼지만 타격 부진으로 퇴출된 로베르토 메히아, 2009년 빅터 디아즈, 2021년 라이온 힐리, T 세리머니만 남기고 퇴출된 나이저 모건, 삼진율 50%라는 역대급 성적을 찍고 퇴출된 브라이언 오그레디 같은 흑역사도 존재한다. [4]반면 투수 용병 뽑는 실력은 영 별로여서 2001년 후반에 잠깐 활약한 브랜든 리스는 후반기 7승이 고작이다. 두산전 완봉승을 거두며 두각을 보였지만 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김태균의 알까기에 힘입어 0.1이닝만에 7실점하며 탈락의 빌미를 제공하며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여담으로 이 해에만 한화에서 시즌 중 퇴출된 외국인 투수만 4명[5]이다. 한화가 이 해에 외국인 선수를 하도 바꿔서 2002년부터 시즌 중 외국인 선수 교체 횟수 제한 규정이 생겼다.
2007년에 한화 외국인 선수 역사상 최다승인 11승을 거둔 세드릭 바워스, 2008년부터 두 시즌 간 활약하며 외국인 선수 중 두번째로 많은 세이브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6] 브래드 토마스를 제외하면 한 해 반짝하고 망해버린 레닌 피코타라든가, 빅토르 디아스의 대체 용병으로 왔으나 특색 없는 실력으로 입지를 잡지 못하고 사라진 에릭 연지 등 두각을 나타낸 선수가 별로 없다.
특히 2010년대에는 데니 바티스타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투수 용병을 뽑지 못하고 있다. 0승 11패 투수 호세 카페얀과 대전 관광객 브라이언 배스, 그리고 션 헨과 에릭 서캠프 같은 망작들만 뽑고 있는 실정.[7][8]
2010년 시즌에 새로 영입한 호세 카페얀과 훌리오 데폴라는 브래드 토마스나 덕 클락과 마찬가지로 인성이 좋다는 '소식' 과는 달리 인성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망했어요.[9] 카페얀이 퇴출된 이후 새로 들어온 용병 프랜시슬리 부에노도 마찬가지.
2011년 시즌에는 2010년 시즌 9월 들어 1점대 방어율을 보여주며 호투하는 모습을 보여준 데폴라와 재계약하고 마무리 투수 오넬리 페레즈를 영입했으나 둘 다 망했어요. 결국 대체용병으로 외야수 카림 가르시아를 영입하였고 그의 맹활약으로 5위 싸움을 치열하게 전개하여 이미 4강권에서 멀어진 시즌 후반기에도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2012년 시즌에는 2011년 시즌 대체 용병으로 영입되어 마무리 투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데니 바티스타와 재계약하고 선발투수 브라이언 배스를 새로 영입하였으나 배스는 희대의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팀 성적은 초반부터 꼴찌로 추락, 한화의 외국인 투수 잔혹사에 한 줄 더 추가하게 되었다. 여기에 배스의 대체용병으로 영입한 션 헨까지도 영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결국 퇴출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바티스타는 불안불안했던 마무리에서 원투펀치급 선발로 전환에 성공했다는 게 위안거리.
2013년 시즌에는 선발로 전환한 바티스타에 추가로 대나 이브랜드를 영입했으나 팀이 암흑기를 탔던 터라 둘 다 성적이 영 좋지 못했다.[10] 결국 시즌이 끝난 후 둘 모두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4년 시즌을 앞두고 용병 보유 확대와 타자 의무 고용 규정이 생기면서 펠릭스 피에를 영입했다. 과거 메이저리그에서도 수준급 유망주였던 그가 제이 데이비스급의 활약을 보여줄 것인지가 한화 팬들 사이에서 관심사를 불러일으켰다. 확실히 기대가 헛되지는 않았는지 시즌 초부터 한화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으며 거기에 더해 순둥이들이 가득한 한화 덕아웃에서 적극적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활력을 불어넣으며 팬들로부터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투수 용병 잔혹사를 의식해 미치 탈보트, 쉐인 유먼과 같은 타 팀에서 검증된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둘 모두 기대만큼의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11][12] 결국 부상으로 유먼을 퇴출한 후 70만달러를 투자해 뉴욕 양키스 소속의 에스밀 로저스를 영입하는 초강수를 두게 되었다. 그후 로저스는 반짝 활약으로 일본 쪽의 주목을 받았지만 2016년에도 한화에 눌러앉기로 했다.
2016년에 연장계약을 한 에스밀 로저스는 본인의 과도한 쇼맨십 성향[13]과 훈련 등이 겹쳐 결국 부상으로 수술을 위해 중간에 퇴출됐고, 싼값에 일본에서 데려온 마에스트리는 역시 싼값에 사온 것을 증명하듯 망했다(...). 마에스트리의 대체 용병으로는 카스티요를 영입, 육성형 용병으로 나름 괜찮게 평가 받았지만 로저스처럼 분석당한 것인지 데뷔전 무난히 승리를 거둔 롯데에 크게 털리는 등 부진했고, 에스밀 로저스의 대체용병인 에릭 서캠프[14]와 는 서산 캠프
2017년에 새로 계약한 알렉시 오간도와 카를로스 비야누에바도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투수용병 잔혹사를 이어갔다. 그 와중에도 비야누에바는 여러차례 부상으로 빠지고도 꾸역꾸역 6이닝씩은 안정적으로 먹고, 구단과 유망주들과 소통[16]하면서, 오간도는 한화 역대 외인 3번째 10승에 성공하면서 팬들에게 인상깊은 모습을 보였지만, 도합 150만 달러를 초과하는 연봉을 받고도 규정 이닝 돌파에는 실패하여 돈값을 했다기에는 애매한 활약을 했다. 게다가 비야누에바는 은퇴 후 여러 진로들을 고심했다는 기사가 있을 정도로 고질적 인팔꿈치 통증이 있고, 오간도는 후반기 투구 내용이 크게 나빠지는 등 재계약에 의문을 남기는 요소가 있다. 하지만 타자용병으로 데려온 윌린 로사리오는 4월의 슬럼프를 벗어난 이후 정말 오랜만에[17] 30홈런-100타점을 기록하며 한화 타자용병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로사리오가 2017년을 끝으로 팀을 떠나 한신으로 이적하며 안그래도 약팀인 한화는 졸지에 타격 8관왕을 눈뜨고 잃어버리는 대참사를 당하고 말았다. 다만 일본 내 여러 구단들이 대놓고 머니 게임을 벌였고, 본인도 일본 리그 내지는 메이저 복귀를 우선하고 있었으니 재정 합리화와 리빌딩을 선언한 구단이 잡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대부분이라 이 사태에 한화 팬들은 의외로 덤덤한 편이었다.
2018년을 앞두고 한화는 1루수 골든글러브급이었던 로사리오의 대체자로[18] 외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제라드 호잉을 영입했다. 펠릭스 피에만큼 활약해주길 바라는 팬들이 많지만, 볼삼비가 워낙 별로인 선수인지라 장민석 시즌2(...)가 될 수도 있다며 걱정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투수로는 카스티요에 이어 쫄지 않고 속구를 던지지만 막장 제구를 자랑하는 이글스 역사상 최연소 외인 우완 키버스 샘슨과 큰 키와 준수한 견제로 주목받은 좌완 제이슨 휠러를 매우 싼 값에 영입해 '외인도 리빌딩하냐'는 평을 듣고 있다. 이를 통해 전체적인 선수단 연봉을 30억 이상 아꼈다도 한다. 정규 시즌이 시작되자 호잉은 기대 이상으로 크게 활약하여 영웅 대접을 받았고 3할-30홈런-100타점에 2루타 1위로 히트 상품이 됐다. 그러나 샘슨은 탈삼진왕+한화 역대 외인 최다승인 13승을 거두긴 했으나 제구 기복이 심한 데다가 이닝 소화력이 크게 떨어졌고 휠러는 결정구 부족이 발목을 잡으며 넥센에게만 승리하고 5무원만 하다가 결국 퇴출되었다. 대체용병인 데이비드 헤일 역시 단조로운 패턴으로 인해서 준플레이오프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샘슨과 헤일 모두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이 해에도 한화는 투수 용병 잔혹사를 끊어내는데 실패했다.
2019년을 앞두고 한화는 워릭 서폴드와 채드 벨을 영입했다. 그러나 서폴드와 채드벨도 기복이 심한 투구를 보이면서 투수 용병 잔혹사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였으나[19] 9월 17일 구단 역사상 최초로 외인 동반 10승을 달성하면서 잔혹사를 끊었다. 하지만 7위 싸움조차 진작에 물 건너 갔는데도 외국인 투수들을 나오기만 하면 100구씩 던지게 만든 한용덕 감독 탓에 2020 시즌 두 투수 모두 부진에 빠졌다. 채드 벨의 시즌 합류가 늦은 가운데 서폴드는 개막전 완봉승으로 시작했고 초반에는 제몫을 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구위가 떨어져 방어율이 치솟았다. 결국 시즌 말 서폴드를 구위 하락으로 인한 휴식으로, 채드벨은 팔꿈치와 어깨 부상으로 이탈해버렸다. 3년차 계약은 둘 다 힘들 것으로 보였으며 결국 채드 벨은 중도 퇴출, 서폴드는 10승은 겨우 달성했지만 재계약은 실패하였다. 그리고 2018년 한화 최고의 타자였던 호잉은 2019년 약점이 노출되며 타격 성적이 하락하고[20] 발목 피로골절로 시즌을 조기 마감했지만 구단에서는 이만한 선수가 없다며 2020년에도 3번째 시즌을 보내게 됐다. 그러나 2020년 시즌 초 부상으로 이탈하더니 2할대도 못치며 부진했고 결국 냉혹한 프로세계의 현실 속에서 퇴출당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자가격리를 무릅쓰고 브랜든 반즈를 대체영입했다. 데뷔 후 2달 동안 실전 감각 부족과 리그 적응 문제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시즌 막바지 암울한 타격의 해결사로 떠올랐고 어린 선수들의 멘토 역할을 해주면서 100패와 리그 역대 최다패 기록을 막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많은 나이가 리빌딩 기조의 팀에 걸림돌이 되어 결국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2021년을 앞두고 채드 벨, 서폴드, 반즈와 재계약을 하지 않으며 투수 닉 킹험, 라이언 카펜터와 내야수 라이온 힐리를 신규 영입했다. 외국인 선수를 3명 다 교체했을 뿐만 아니라 감독도 외국인인 카를로스 수베로로, 코칭스태프도 외국인 코치들을 데려왔다. 대체로 외국인 타자를 잘 뽑는 팀인 한화였지만, 2021년에는 새 외인타자 힐리가 끝없는 타격 부진 끝에 한 시즌도 못 버티고 7월 4일 시즌 중에 웨이버 공시되면서 지난 시즌 호잉의 부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외국인 타자 농사에 실패하고 말았다. 한편 대체 외국인 타자로는 수베로 감독과 메이저리그에서 함께 한 경험이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 에르난 페레즈가 영입되었다. 킹험은 나오는 경기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21] SK 와이번스 시절부터 악명높았던 유리몸 속성이 한화에서도 발동되면서 1달 정도 로테이션에서 빠졌고, 카펜터는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등판하면서 탈삼진 순위권에 드는 뛰어난 구위를 보여주고 있지만 볼넷 또한 순위권에 드는 불안정한 제구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22] 2021년 시즌 중반 현재까지의 킹험, 카펜터의 모습은 리그 전체적으로 보면 최상급의 외국인 투수라고 볼 수 없지만, 지금까지 한화의 외인 투수 잔혹사를 생각해 보면 그럭저럭 제 몫은 해주고 있다.
2022년은 다시 한 번 팀컬러가 발동했다. 이번엔 닉 킹험은 Again 2020, 라이언 카펜터는 더 빨리 드러누우며 가뜩이나 빈약한 선발을 가진 한화를 회생 불가 수준의 재앙으로 빠뜨렸다. 대체 용병으로 온 예프리 라미레즈는 초반만 반짝하다 배팅볼 투수로 전락해 버치 스미스 교체, 펠릭스 페냐는 그래도 좀 잘 하나 싶었다가 타구에 맞아 코뼈가 부러지는 안타까운 부상을 당했지만, 수준급의 볼을 가지고 있었기에 재계약에 성공했다. 마이크 터크먼은 팀 내 war 1위를 기록하며 제 몫은 다했으나 클러치 상황에서의 약점과 파워가 약간 아쉬웠다. 재계약이 충분히 가능한 성적이였으나, 계약 금액에 이견 차가 컸고 이에 프런트가 장타력을 갖춘 브라이언 오그레디로 선회하며 재계약은 실패.
그러나 2023년… 대망의 스미스와 오그레디가 역대급으로 멸망한 데다 페냐도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며 타자 투수 둘 다 망하는 줄 알았으나… 페냐의 4월 부진은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이었고, 5월달 팀의 1선발로 뛰며 시즌 11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역사상 최악의 투수 스미스는 한 경기 뛰고 부상으로 방출된 데다 떠나며 한국을 비하하는 행보를 보이는 등 최악의 모습을 보였고 오그레디는 삼진율이 50%를 넘는 부진을 기록하며 실력만으로 역대 최악의 외국인 타자를 향해가는 중이다. 스미스 대체 외인 투수 온 산체스는 버릇이 읽혀 난타를 맞던 시기를 제외하면 준수한 피칭을 보여주고 있다.
3. 센터라인 부실
스타 플레이어에게 의존하는 팀 컬러는 한화를 창단 원년부터 지금까지 수비가 약한 팀으로 만들었다. 통상적으로 수비가 중요한 포지션에서는 화려한 스타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빙그레가 창단된 시점에서는 공격이 좋아야만 스타급 야수 대접을 받고 살던 시기였는데, 이러한 마인드를 지금까지 고수한 탓에 수비가 중요한 포지션에 대한 투자가 상당히 미비했다. 그 결과 2010년대에 이르러서 하위권 팀으로 전락하게 된다.야수진 수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센터라인을 정말정말 지지리도 못키운다. 그래서 그냥 수비만 되는 2할 주전 타자와 5푼(...) 백업 타자를 둔 그 상태로 쭉 가거나 외부 영입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하다.
여기에 2013년 시즌부터 홈 구장의 외야까지 넓히면서 고질적인 수비 불안이 더욱 심해졌다. 사실 2015년 시즌 김성근호를 팬들이 기대했던 것도 이러한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항상 기본기인 수비를 강조해온 감독이었기에 가장 수비가 약한 팀을 조련하여 약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2015년의 수비는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으나 권용관, 송주호 등 수비형 야수들을 주로 기용한 덕이었다는 시각이 많으며 김 감독이 중용한 양아들들이 과도한 주전 기용 끝에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2016년 오버 트레이닝의 부작용이 폭발하며 투수들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2017년엔 쌓이고 쌓인 훈련의 부작용이 대폭발하며 외인 투수들이 골골대는 와중에 베테랑 야수들마저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릴레이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서산으로 실려갔고, 전임 감독의 자진 사퇴 후 대행으로 팀을 이끈 이상군의 지휘 하에 훈련량은 줄었으나 팀은 1.5군 수준의 전력으로 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실책은 뒤에서 4위, 수비율은 롯데에 이어 2위이니 놀라울 따름.
그나마 포수의 경우 2017년 트레이드로 온 최재훈의 주전 도약과 2018년 백업 및 키버스 샘슨의 전담포수로 활약하며 1군에 자리잡은 지성준, 2군 주전 포수 김창혁, 현재 군복무 중인 박상언, 그리고 강인권 배터리코치 등의 요인으로 공 받는 거라면 안정적인 라인업을 구축했다. 다들 타자로서 공격력이 평균 이하라서 문제지. 2020년에는 지성준이 롯데로 트레이드되었지만 2차드래프트로 온 이해창이 백업포수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포수는 한화의 처참한 야수 상황 중 가장 계산이 서는 전력이 되었다.
3.1. 유격수
유격수로는 80년대 후반부터 90년까지 장종훈이 기용되었는데, 애초에 공격력만 보고 기용한 거지 수비 범위든 안정도든 현격히 떨어졌다. 그 외의 선수들은 수비가 그냥저냥 수준까지는 되었지만, 대신 공격력이 완전 사망. 특히 장종훈과 김민재 사이를 메꾸었던 유격수 허준은 아마추어 시절에는 이종범과 비견될 정도였으나, 프로 입단 후 타격이 사망하였다. 당시 물방망이의 대명사로 타율도 파워도 최악. 해설위원들이 1년에 홈런 1개 칠까말까한 선수라고 놀릴 정도였다.1997년 데뷔한 백재호가 허준을 백업으로 밀어내고 2년 연속 두자리수 홈런(16, 13)을 치면서 공갈포지만 나름 펀치력 있는 유격수로 자리잡난 싶었지만 백재호는 2002년 10홈런을 겨우 채운걸 제외하면 다시는 두자리수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다. 1999년부터 공격력을 볼것도 없어지고 수비는 중간정도에 어깨도 약했지만 그런 백재호를 대체할 선수가 없어 장기간 유격수 자리를 지켰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는 이범호가 유격수와 3루수를 번갈아 가며 맡았다. 이범호 개인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유격수 이범호는 2004시즌 실책 30개에서 알 수 있듯 형편없었다. 오죽하면 3루 보낸 백재호를 도로 유격수로 돌렸을까.
한화 역사상 가장 안정적인 유격수로 꼽히는 선수는 2006년 FA로 이적한 김민재이다. 그런데 당시 김민재는 2번째 FA였고, 나이가 34세로 유격수 치고는 노장 축에 속했으며 코치직 보장이라는 조건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넘는 선수가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사실. 백업 한상훈은 풀타임 .250도 버거운 수비 전용 선수였다. 김민재가 은퇴한 이후에는 타 팀에서 백업하다가 온 이대수가 골든글러브를 타기도 했지만, 그 이대수마저 SK로 이적한 2014년부터는 한상훈, 권용관, 강경학, 하주석으로 돌려막다 17시즌 하주석이 확고부동한 주전이 되었지만 18시즌 타격이 한상훈 수준이라 해결되려면 멀었다. 19시즌엔 2군 캠프로 밀려났다가 하주석의 십자인대 파열로 뜬금없이 주전이 된 오선진이 분투했으나 백업 없는 야수 혹사로 햄스트링 부상이 도졌고 이후 종아리 부상 재활 후 강경학이 복귀했지만, 썩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 20시즌엔 하주석, 오선진이 시즌 초 2할 후반을 기대하게 만들었으나 동반 부상으로 이탈하고, 박한결은 기본기가 없는 수준 이하의 경기력만 보여주고, 강경학도 또 어딘가 깨져서(...) 3루 노시환이 유격수를 보는 불상사가 터졌다. 그나마 송광민이 6월 초 2군으로 가면서 신예들이 대거 올라왔지만 큰 기대는 안 되는 게 사실.
21시즌에는 기대받던 박정현이 시즌 초반 많은 기회를 받았으나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지만 아직 어린 선수이고 재능이 있는 선수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기회를 받을 예정이다. 그리고 수 년째 타격부진, 부상 등으로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던 하주석은 2021시즌 들어 드디어 타격에서 한 층 상승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에 1군에 잠깐 올라와서 지옥같은 수비를 보여주고 서산으로 내려갔던 조한민이 2021시즌 들어 안정된 수비능력과 [23] 2루타, 홈런을 양산하는 상당한 펀치력을 보여주면서 한화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하주석이 22시즌 퇴보하고 설상가상으로 음주운전으로 70경기 징계를 받으며 민심을 잃었고, 23시즌 유격수 자리는 다시 공석이 되었으나 FA로 오선진을 복귀시켰다. 그리고 이도윤이 공격, 수비에서 스텝업을 하며 한화 팬들의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24시즌 징계에서 돌아온 하주석과 이도윤이 주전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최강야구출신 내야 유틸리티 신인 황영묵이 공수양면에서 임팩트를 남기고 있다.
3.2. 2루수
2루수는 한술 더 뜨는 것이, 팀 역사를 통틀어 봐도 수준급 2루수라고 할 수 있는 게 FA 정근우가 처음이다. 이번에도 외부 영입. 그나마 이전까지는 전대영이나 강병철이 키워놓고 간 백재호, 임수민 정도가 사람 취급받는 수준이지만, 전대영은 1루수 겸업을 맡는 경우가 많았고, 백재호는 초창기엔 임수민과 키스톤을 이뤄 유격수로 주로 나왔고 강석천이 노쇠화한 후엔 3루수도 보다 이범호가 너무 유격수 수비가 안되니 다시 유격수 보는 등 전문 2루수가 아니었다. 유일하게 전문 2루수라 할만했던 임수민은 군 복무 후 몸이 불어 수비 범위가 좁아지며 사실상 2루수 커리어가 끝장났다.임수민이 은퇴한 이후에는 수비는 준수하지만 통산 WAR 4.48에 불과한 한상훈과 타 팀 방출생 출신인 정원석으로 겨우겨우 떼우다가 그 정원석도 불의의 부상으로 은퇴. 결국 2013년 시즌 이후 FA로 정근우를 영입하고 나서야 2루수 문제가 해결되었다. 즉, 역대 이글스의 키스톤 콤비는 공격력만 있어서 수비를 아예 포기하거나, 아니면 수비만 되는 백업 선수 수준의 선수들로 자리를 메꾸는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한화의 암흑기였다지만, 2014년 정근우-한상훈의 키스톤은 사실 한화 팬들 입장에서는 역대 최고로 꼽히는 키스톤 콤비였다.
2014년에 정근우를 FA로 영입한 이후에는 한동안 2루수에 대한 걱정은 없었지만, FA 당시 정근우의 나이는 만 32세. 즉 몇 년 내로 정근우의 노쇠화가 올 것이 뻔했고 실제로 17시즌 이후 수비, 주루 면에서의 노쇠화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어째저째 17시즌 종료 이후의 FA에서 정근우를 한화에 다시 눌러앉히는 데 성공하긴 했는데, 막상 시즌에 돌입하자 수비 면에서 심각한 수준의 구멍으로 전락하면서[24] 2군으로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18시즌 중반 지명타자/1루수로 복귀하고 나서야 다시 활약할 수 있었고, 이후 좌익수, 중견수, 1루수 등을 오가며 2루 수비를 완전히 포기했다. 타격은 여전했지만, 애매한 포지션 문제가 발목을 잡으면서 결국 19시즌 후 2차 드래프트로 홀연히 LG로 떠나버렸다.
강경학이 2군에서 돌아와 아름다운 한달을 기록했고 한용덕 감독이 1군 스프링캠프까지 데려갈 정도로 기대를 받던 2000년생 신인 정은원이 강경학이 올라오기 이전 한달 가량을 버텨주어 공백을 최소화시키는데는 성공했다. 다만 둘 다 한시즌 내내 잘하는 선수들이 아니라 반짝이에 그쳐서 멀었다. 정은원, 강경학 등 젊은 선수들이 활약하기 위해서는 야수코치들과 육성팀의 역할이 중요하다.
19시즌 들어서는 정은원 혼자서 2루 소년가장 역할을 하다가 구시대적인 쓸놈쓸 야수 운용으로 완전히 퍼져버리면서 감독을 비난하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20시즌 들어서는 손목에 두른 테이프가 계속 두꺼워졌는데 손목 통증이 심해진 탓이었고, 감독이 사퇴하고 나서야 겨우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21시즌에는 정은원이 컨택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고 선구안이 개안하면서 리그 2루수 중에서 최고 수준의 페이스를 보여주더니 이글스 순혈 최초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2시즌은 약간 후퇴했지만, 여전히 정상급 2루수 성적을 기록하면서 2루수로 고통받았던 한화는 향후 몇년간 2루수 걱정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2023시즌 정은원이 트레이닝 방향성 문제로 처참한 커리어로우 시즌을 보냈고 결국 후반기 주전 자리를 신인 문현빈에게 내주고 말았다. 또한 2024 시즌 FA로 안치홍이 한화에 입단하면서 든든한 2루수 자원들이 생겼다.
강경학은 KIA로 트레이드된 후 은퇴하였다.
3.3. 중견수
중견수는 이정훈이 몰락한 후 한동안 무주공산이었다가 외국인 선수 제도가 시행된 뒤로는 공수겸장의 외인타자 제이 데이비스에게 장기간 의존(99~2002, 2004~2006)하면서 그 뒷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바람에 2007년에는 별명이 장님이었던 고동진과 내플 많이 쳐서 별명이 조로켓이었던 조원우로, 2008년에는 외국인 타자 덕 클락이 메우고 이후 30대 중반에 접어든 강동우를 트레이드 하고 김경언, 추승우같은 코너 외야수들이 강제로 중견수 알바를 하게 되었다. 감독이었던 김인식은 젊은 선수를 키워서 신남연의 뒤를 잇는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당시 팬들이 차세대 중견수감으로 기회를 줘서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선수가 김동영인데 김인식은 전성기 지난지 한참 된 조원우를 쓰면 썼지 김동영에게 한 시즌 20타수도 허용치 않았고 결국 2군에서 썩다 방출되었다. 이 당시 김동영과 연경흠, 내야수지만 키가 크고 수비력이 떨어져 외야수 전업하는게 낫다고 점쳐지던 송광민까지를 한화의 차세대 외야진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고동진, 추승우, 윤재국같은 공수에서 특출날거 없는 노장만 주야장천 쓰는 바람에 송광민 제외하곤 다 썩어가다 사라졌다. 이 문제는 2014년 이용규와 펠릭스 피에를 영입해 겨우 해결되었으나[25] 이용규가 떠난 이후에 어떻게 될 진 아무도 모른다. 2017년 중견수로 기회를 많이 받은 양성우는 극강의 타고투저인 그 시즌에 wRC+ 91.6, WAR 0.6 찍었다. 타격에선 리그 평균도 못 되었고 전체적으로도 백업 수준에 불과했다는 뜻. 어느 정도 눈야구는 되었지만, 공수주 모두 애매한 탓에 점차 밀려나다가 2020 시즌 후 방출되고 말았다.
이 포지션은 센터라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데 하주석, 정은원, 강경학 같이 부족하나마 키워볼만한 선수들이 나타난 유격, 2루와 달리 18시즌까지 1군에서 두각을 드러낸 자원이 없다. 그나마 이동훈 정도인데 겨우 50타석 출전해서 대체자원이라 하기도 민망하고 타격이 전혀 안된다.
2019년 한용덕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 팀의 공격력 극대화를 위해 정근우를 1번 중견수로,[26] 이용규를 9번 "주전" 좌익수로 베스트 라인업을 꾸리려 하였으나 이용규와의 불화 이후 개막 직전 트레이드 요구로 인해 이용규가 무기한 활동정지를 받는 초유의 사태가 터지면서 정근우가 중견수를 보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결국 정근우는 정근우대로 고생하다 수비 중 손목 부상, 타격감 저하, 햄스트링 부상 등의 악재가 겹쳐 다시 1루수로 돌아갔고, 우익수 수비에 최적화된 호잉이 중견수와 우익수를 오가며 혹사당해 부진에 빠지며 포지션 전체에 헬게이트가 열리고 말았다. 김태균과 함께 1루 수비와 지명타자를 맡으면서 타선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이성열도 이용규의 이탈로 인해 결국 외야 글러브를 다시 끼게 되었다. 시즌 초만 해도 이유를 밝히지 않고 전무후무한 트레이드 요구 후 지각출근까지 하고 징계까지 받은 이용규를 비판하는 의견이 대세였지만 이후 아슬아슬하게 중위권만 유지하다 7월 이후 꼴지로 추락하면서 감독을 비난하는 의견이 더 커진 상황이다. 아무리 강상원의 입대, 외야 유망주들의 햄스트링 줄부상 등으로 외야진에 문제가 생겼다지만 이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고 1군 1~2할 타자로 나좌수를 찍는 것 역시 감독이 책임질 부분이기 때문. 2020년에도 1년 쉬고 수비 불안이 심각해졌지만 3할은 치는 이용규 하나 못 밀어내는게 한화 외야진의 현주소다. 노수광이 5년 만에 트레이드로 복귀했지만 활약상이 시원치는 않다.
그리고 그 이용규마저 리빌딩 기조의 팀 방향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출되었고, 정수빈의 FA 영입마저 실패하면서 2021년 한화에 검증된 외야수는 똑딱이인 정진호와 노수광만 남게 됐다. 2021시즌 주장을 맡게 된 노수광은 2017, 18년 좋았던 폼을 되찾을 것으로 팬들과 구단에게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부상으로 인해 개막전에 합류하지 못했고, 뒤늦게 합류했으나 타격, 수비 모두 영 좋지 않은 모습만 보여주더니 주장을 하주석에게 위임하고 서산으로 내려가버렸다. 정진호는 야수 war보다 투수 war이 더 높을 정도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방출된 이용규는 키움에서 상당한 활약을 하고 있다. 한편 두산에 잔류한 정수빈은 먹튀를 하고 있다. 만일 정수빈이 영입되었으면 더 암담했을지도 모를 일.
3.4. 투수
한희민, 이상군, 송진우, 한용덕, 정민철, 이상목, 류현진 등등 에이스들의 면면만 보면 강해보이지만 그 외 선수들을 보면 의문부호가 붙었다. 특급 투수 3~4명이 투수진 하드캐리하는 구도가 대대로 이어져 왔다. 초창기엔 이상군과 한희민이 모든 부담을 짊어지고 어마어마하게 혹사당했고 1990년대 초중반에는 송진우-정민철-한용덕에 불펜 구대성. 1990년대 후반에는 송진우-정민철-이상목에 불펜 구대성이었다. 유일한 우승을 일궈낸 1999년에도 5선발 로테이션이 갖춰지지 않아 4선발은 하향세가 뚜렸했던 과거의 에이스 한용덕이 때우고, 5선발은 아예 없었다. 송진우, 정민철, 이상목에 구대성으로 3경기 확실하게 잡고 나머지는 버리는 전략을 사용했다.김인식 시기 반짝 전성기때도 문동환-류현진에 불펜 구대성이었다. 2006년 한국시리즈 때는 이 3명으로 시리즈 운영하려 들다가 알아서 가져다 바쳤다. 이 시리즈는 명승부로 포장되었는데 김인식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역시 은퇴를 앞두고 있던 지연규와 김해님이 상상 이상으로 잘해줘 나온 착시효과일 뿐 투수운영은 처참했다. 유승안이 재활시켜 둔 문동환은 심각한 혹사로 이 해를 마지막으로 몰락했고 정병희와 윤규진은 이미 김인식이 갈아마셨고[27] 2006년엔 제대로 나오지도 못했으며 안영명이 그들 대타로 갈려나갔다. 권준헌과 송창식은 재활을 충분히 하지 않고 당겨쓰기로 킬했다.
2007년에도 매한가지라 문동환이 혹사로 망가진 상황에서 류현진-정민철-세드릭 바워스-비-비로 때웠다. 저 3명 말고는 선발투수가 없었지만 류현진이 211이닝, 정민철이 155.1 이닝, 세드릭이 158.1 이닝을 먹어주며 어찌어찌 가을야구를 할 수 있었다. 오랜 혹사 후유증과 노쇠화에 신음하던 정민철이 이해 회광반조를 보여주지 않았다면, 우천 순연의 득을 보지 못했더라면 도대체 어떻게 시즌을 꾸려갔으련지. 팔꿈치 수술경력이 있는 고졸투수 류현진은 데뷔하자마자 2년 이상 200이닝을 초과해 던지며 혹사당했고 중간에선 안영명과
구대성을 제외하면 계투진/마무리도 대대로 약했는데, 선발 자원이었던 송진우와 이상군이 마무리 투수를 병행할 정도였다. 역대 KBO 리그 사상 시즌 다승왕과 구원왕을 동시에 석권한 선수는 단 세 명인데, 그 중 두 명(송진우, 구대성)이 한화 이글스 소속이라는 점이 이러한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선수들이 모두 은퇴한 이후에는 브래드 토마스나 데니 바티스타 등 외인으로 마무리를 기용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믿음을 심어주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구대성과 외인 투수 이후부터는 정해진 마무리 없이 송창식, 김혁민, 윤규진 등 집단으로 돌려막고 있는 실정. 결국 2014년 말 FA로 풀린 권혁을 영입하고, 1년 후인 2015년 말에는 FA 정우람을 무려 84억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마무리 자리를 보강했으나 2016년 정우람은 무려 블론세이브를 8개나 기록하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3이닝 세이브, 2이닝 승리투수를 그렇게 시켜댔으니 아무리 고무팔이라도 안퍼질리가...[28]
특히 투수 운용의 폭을 넓혀줄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는 한희민 이후 별다른 두각을 드러낸 선수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으며, 그나마 마정길, 정민혁, 정재원, 허유강 정도가 초토화된 불펜에서 눈도장을 찍기도 했지만 이 또한 혹사나 본인의 멘탈 문제 등으로 지속적인 활약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17시즌 한때 1회 5할의 피안타율을 자랑했으나 후반기 5연속 QS를 보여준 선발 김재영이 그나마 기대되는 자원...이었으나 체력 문제와 고관절 부상으로 18시즌 후반기부터 제대로 퍼져버렸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문제를 해결하러 갔으나 이후 어떻게 돌아올지 의문. 20시즌에 들어온 대졸 사이드암 투수 강재민이 리그 최상급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불펜 에이스로 자리잡았고 정우람의 뒤를 이을 차기 클로저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대대로 혹사가 정말 심했다. 80~90년대에 너도나도 그랬으니 그렇다쳐도 유승안, 김인식, 한대화, 김응용, 김성근 다섯 감독의 혹사를 전부 겪어본 송창식[29]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남들이 혹사를 지양하기 시작한 2010년대까지도 계속 투수 백정질을 했다.
18시즌 시작 이후 권혁, 송창식, 박정진, 심수창 등 그간 무리했던 투수들이 일제히 1군에서 이탈하면서 모두들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평균자책점과 FIP 간의 지독한 괴리에도 우주의 기운이 모여 반짝 했으나 19시즌 원래대로 돌아가 공인구 변경으로 투고타저가 온 와중에 한화는 불펜들이 모조리 망가지면서 팀은 선발도 불펜도 없이 외국인 투수 둘과 마무리 투수만 잘 던지는 최악의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19시즌 꼴찌팀 롯데보다 더 많은 15명의 국내 투수들에게 선발 기회를 주었으나 단 한 명도 로테이션에 안착하지 못했다.
결국 20시즌에는 선발, 불펜 가릴 것 없이 초토화되어 버렸다. 수베로 체제에서 선발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해주는 김민우가 성장했지만, 용병투수 둘이 한꺼번에 부상으로 드러눕는 대참사가 터지자 도저히 구멍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결국 그나마 버텨주는 불펜진들이 갈려나갔다. 물론 당연히 김성근 체제 시절보단 양반이지만… 그래도 23시즌에는 선발진에서 남지민, 문동주 등 잠재적으로 좋아질 가능성이 높은 유망주, 장민재, 이태양[30] 등 스윙맨, 확실히 선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김민우 등을 준비시키며 선발 뎁스를 늘렸다. 그러나 김민우가 부진과 함께 부상이라는 불운이 겹치며 시즌아웃이 되었다. 다행인 것은 문동주가 KBO 토종 투수 최초로 160km의 구속을 찍고, 작년과 비교했을 때 엄청난 성장을 보여주며 선발 로테이션에 안착했다.
4. 고령화구단
4.1. 개관
FA 영입이 굉장히 적었던 구단으로 외부 영입은 2013년 이용규, 정근우 이전까지 2006년 김민재 영입, 2012년 송신영 영입으로 단 두 건뿐이었으며, 그나마 김민재의 영입은 은퇴 후 코치직을 맡기겠다는 조건으로 한 것이라 선수로서 영입한 것이라기보다는 코치로서의 선고용에 가까워 FA라 치지 않는 시선이 강하다.[31] 그러다가 2010년대 초반에 FA, 트레이드를 통해 베테랑 선수를 데려오면서 팀의 연령대가 증가했고, 1990년대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이 2000년대에 하나 둘씩 은퇴하는데도 유망주를 육성해 리빌딩할 생각을 못하고 베테랑 선수 위주로 경기를 하게 되면서 팀의 노쇠화를 불러왔다.[32]팀의 첫 외부 FA 주인공인 김민재는 한화의 내야진의 안정에 투입되었으며 구성이 엉망이라 돌글러브라고 비웃음 당하던 한화 내야진이 눈에 띄게 안정되었다. 평론가들은 팀의 실익과 팬들의 환호를 동시에 얻은 아주 드문 성공적인 FA라고 평가한다. 사직구장에서 한화와 롯데의 경기가 열리는 날엔 가끔 약주하신 아재들이 '김민재는 롯데 거' 를 외치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다.
김민재의 FA영입, 강동우 영입, 2010년에는 이대수와 정원석 영입을 보면 대부분 나이가 많은 방출생이나 퇴물급 선수인 탓에 1, 2년 깜짝 활약해주고 조용히 방출당하거나 은퇴하는 편이 많은 편이다. 두산에서 방출된 선수인 정원석의 경우에는 2010년 시즌 자신의 커리어 최초로 규정타석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1년 시즌에는 이대수가 유격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올드팬들 중에선 외부 영입이나 트레이드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고 다른 팀 출신 선수는 조금만 못해도 까내리는 사람 또한 많다.
그러다가 점차 비밀번호를 찍고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한화는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얻은 돈과 구단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FA선수를 영입하기 시작했다.
2013년 11월 17일, FA 정근우를 70억원(계약금 35억원, 연봉 7억원, 옵션 7억원), 이용규를 67억원(계약금 32억원, 연봉 7억원, 옵션 7억원)으로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작년에 돈은 있는데 FA를 놓쳤던 과거 때문인지 역대 FA 사상 각각 2위와 3위에 달하는 돈을 써서 FA를 기어코 붙잡았다.
2014년 6월에도 노인 수집증은 못 고쳤는지 이대수, 김강석을 주고 조인성을 사왔다. 다만 이 경우는 이대수도 충분히 나이가 많은 고액연봉자 선수이고 한화의 고질적인 포수난을 극복시키기 위한 트레이드이니 섣불리 판단하면 안된다.[33] 또한 2015년 2차 드래프트에서도 장민석, 차일목, 송신영 등 노장들만 죽어라 픽했고, 두산에서 코치 제안을 받았으나 거부한뒤 팀과의 상호간 합의후 방출된 이재우를 영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는 감독들도 백전노장을 좋아한다. 김인식 감독(2005~2009)에 이어 김응용 감독(2013~2014)과 김성근 감독(2015~ ) 등 10년째 감독 선임 때마다 현역 최고령 감독을 고집한다. [34]
설상가상으로 권용관, 장민석을 영입하면서 야수진 고령화가 더 심각해졌다.
2016년 시즌이 되자 리그 내 고령자로는 열 손가락에 드는 사람 중 두 사람이 이 팀 소속이다. 조인성, 박정진[35]. 조인성과 박정진은 연대 선후배이며 리그 최고령 배터리다.
심지어 2013년 FA로 영입한 이용규가 팀 야수진의 막내(1985년생)가 된다.# 참고로 2016년 기준 1985년생이면 어지간한 팀에서는 주장까지도 할 수 있는 나이다.[36] 직전 시즌인 2015년에는 역시 1985년생인 박석민이 삼성 주장을 역임했었고 한술 더떠서 2016년시즌에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89년생인 서건창이 주장인 것을 감안한다면 신인 육성의 어려움을 겪는 이글스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 KBO FA 제도에서는 9시즌을 소화해야 FA 자격이 주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여기에 문제를 하나 더 적자면, 한화가 2009년 이후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자 이를 해결하자는 이유로 외부 FA 영입을 많이 한 팀이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타 팀에 보상선수로 한화에서 키우던 영건 선수들을 많이 빼앗겼다는 것이다. 그 트레이드 과정에서도 노장을 영입하고 반대급부로 유망주를 타 팀에 많이 넘기면서 유망주 관리가 잘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 것. 그 중에서 수혜를 많이 입었던 팀이 2012년 이래로 한화와 함께 하위권을 형성했던 KIA 타이거즈. 2009년 노장 강동우를 받고 넘긴 신종길은 트레이드 당시에는 터지지 않았지만 2012~2013년부터 조금씩 기량이 향상되면서 주전선수가 되었고, 2010년에 KIA로 트레이드된 김다원, 2013년 FA 시장에 이용규의 보상선수였던 한승택, 2014년 송은범의 보상선수였던 임기영, 여기에 2015년 트레이드 때에는 2군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우던 노수광, 오준혁과 함께 좌완 기대주였던
KIA 뿐만 아니라 삼성 라이온즈도 권혁의 보상선수로 데려온 선수가 신인 대졸 픽 포수 김민수였으며, 롯데 자이언츠도 심수창의 보상선수로 고졸 픽 투수 박한길을 지명했고, 군복무에 합의하고 방출된 최영환을 데리고 갔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적극적인 FA 영입으로 인해 그 반대로 팀에서 키울 유망주를 타 팀에 빼앗기거나 넘겨준다는 점은 장기적으로 또 다시 평균 연령 증가라는 악순환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잦은 FA 영입으로 2016년 한화 1군의 평균 연봉은 KBO 10개 구단 중 1위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한화 유망주들을 타 팀에게 많이 빼앗기는 빌미가 되었다. 성적이 안 좋아 리빌딩을 해야 할 팀이 구단의 우승에 대한 욕심으로 지나친 투자가 되었다고 허구연 해설가가 에둘러 비판했다.[37]
2017년 들어 도무지 답이 없는 전임 감독 견제를 위해 두산 2군 감독, NC 다이노스 프런트 시절 좋은 평가를 받던 박종훈을 단장으로 데려왔고, 서서히 페이롤을 줄여나가는 동시에 외부영입도 자제하는 분위기를 갖춰가고 있다. 일단 18시즌 새 감독부터 다시 FA 영입에 나서면 팀이 좋지 않던 예전 모습으로 복귀할 것이라며 모든 외부 영입을 거절했다고 하니 이 성과가 나타나길 한화 팬들은 기도해보자. 일단 박종훈 휘하의 프런트는 김성근 감독의 퇴진 이후 더 이상 활용 가치가 없는 여러 노장 선수들을 방출한 것을 시작으로
4.2. 원인
장종훈과 송진우 노선이 만들어낸 '한 번 뽑은 선수를 오랫동안 기용한다'란 방침을 고수하고 있으며 주력으로 사용하는 선수가 대부분 고연령층이어서 노인정이란 별명을 얻었다. 노인정 고정 멤버는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한화 구단주이자 회장인 김승연이 인재들을 한 가족으로 보고 사용하는 방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침에 따라서 레전드의 대우도 좋아 송진우, 장종훈, 구대성, 정민철선수를 데뷔에서 은퇴까지 한화에서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위에서 언급된 선수 3명이 팀의 영구결번이고 그 수가 현 프로야구 팀 중 가장 많다. 한화의 특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또한 선수 은퇴식을 봐도 상당히 후한 대접을 하고 있어 레전드급 선수에 대한 대우가 나쁜 LG 트윈스나 두산 베어스[40] 팬들은 한화의 반만이라도 흉내 내 달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41] 일례로 과거 선수협 파동시 박충식이 삼성에서 해태로 징계성 트레이드[42] 된 사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화는 송진우를 트레이드 하지 않았다.[43] 또한 한화에서 뛰었던 선수인 진정필[44]이 백혈병 판정을 받자 수술비를 지원해 주기도 했으며 심지어 2011년 최동원 전 2군 감독의 별세 때에는 한화에서 선수생활을 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4년간 코치로 연을 맺었던 점을 고려하여 한화그룹 임직원이 상을 당한 경우에 준해서 지원을 해주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다.
비단 노장 선수 대우를 넘어서 2012년부터는 고등학교/대학교 졸업식에 참가하지 못하는 신인 선수들을 위해 스프링 캠프에서 자체적으로 졸업식까지 열어주고 있으며 부상으로 일찍 선수 생활을 접게 된 연경흠에게 육성군 스카우터 직책을 마련해줬고 2013년 시즌을 끝으로 결별하게 된 외국인 선수인 데니 바티스타, 대나 이브랜드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등의 의리 넘치는 모습을 보이면서 타 팀 팬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 노선을 이어가고 있는 선수들은 '한화의 매력남', '꽃범호' 란 별명을 가진 이범호와 성 뒤에 아무 말이나 붙이면 무조건 다 별명이 되는 '김별명' 김태균, 데뷔 후 꾸준히 성장하며 국내 최고급 투수로 자리매김한 류현진이 있다. 이범호와 김태균이 FA 선언을 하자 무려 130억에 가까운 돈을 퍼부어서 돈을 안 쓰는 인색한 구단이라는 평가를 한 방에 뒤집었다. 그러나 돈을 퍼붓기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둘 다 일본으로 가버렸으니(...).[45]
그러나, 이러한 레전드 대우는 굉장히 부작용도 커서 한화에서 프랜차이즈 역할을 했거나 어느 정도 활약을 한 선수는 연수도 없이 요직에 꽂아버리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름하야 칰무원. 대표적인 사례가 상군매직 이상군으로 투수 코치로 있으며 젊은 선수들의 투구폼을 망가뜨렸고 스카우터로 있으면서 브라이언 배스나 션 헨을 데려오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는 한화그룹 특유의 의리 경영이 이글스에도 영향이 있으며 특히나 김승연 회장이 야구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구단의 중요 일의 경우는 비서실 직통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서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다.[46]
또한 정민철, 김민재 등 선수 때는 실적을 올렸을 지 몰라도 코치로서는 무능력자들을 별다른 연수도 안 보내고 코치직에 꽂아 선수육성과 성적 모두 말아먹는 참사를 일으켰다.[47]
4.3. KBO 최고령 팀에서 가장 젊은 팀으로 바뀐 2021년
2020년 한화 이글스는 강도 높은 리빌딩을 위해 이용규 방출, 김태균 은퇴를 시작으로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정리했고, 그 결과 2021년은 KBO 리그에서 가장 젊어진 팀이 되었다. KBO 리그에서 평균 연령이 25세인 유일한 팀으로 바뀌었다. '28.5→25.8' 최고령이었던 한화, 가장 젊은 팀으로 변신. [48]그러나 정민철 체제의 문제점은 극단적 베테랑 부재로, 젊은 선수들의 기량 상승을 이끌어줄 스승격인 베테랑이 없다보니 젊은 선수들이 별다른 노력 없이 바로 주전을 먹으며 팀이 그대로 쇠퇴해버렸다. 구단에서도 이런 극단적인 리빌딩의 문제점을 인식했는지 2023 FA에서는 채은성을, 2024년에는 안치홍, 김강민을 영입하며 팀 성적과 더불어 어린 선수들의 멘토 역할을 해줄수 있는 베테랑들을 수집하고 있다.
5. 명감독들의 무덤? 감독들의 임기도중 경질 잔혹사
KBO를 이끌었던 노감독들의 마지막 커리어가 한화로 집중되고 그 말로가 상당히 비참하다는 점에서 한화라는 팀 자체가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한화 역대 감독의 우승 횟수를 합하면 무려 21회이다.[49]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시대가 흐르면서 바뀐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노감독들의 특성과 한화라는 팀의 특징, 팀이 처한 현실과 그에 맞는 감독을 선임하지 않고 한국시리즈 우승 등 노감독들의 흘러간 과거와 명성만을 보고 감독으로 선임하는 구단의 잘못된 선택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결과라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현재도 명감독들의 묘지, 명장들의 눈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우선 김인식 감독은 마지막 해 커리어만 나빴지 전체적으로는 최전성기 시절의 김영덕 다음으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감독이다. 05~07년 간의 3년 연속 PS 진출과 한 번의 준우승은 김인식 감독이 단기전에 강하고 송진우, 정민철, 문동환, 구대성이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가운데 혜성과 같이 등장한 류현진이라는 투수가 있어서 가능했다. 거기다 특유의 거포 중심 스타일 야구는 당시 작았던 대전야구장의 특성을 가장 잘 살렸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리빌딩에 무관심했고, 믿음의 야구의 이면에는 인색한 신인 기용과 주축 선수 혹사라는 어두운 면이 있었으며 구단 자체적으로도 몇 년간 드래프트에서 4~6명만을 지명하는 등 신인 수급이 부족했고 2군에 대한 투자도 미약했다. 결국 주축 노장들의 은퇴시기와 맞물리며 투수공동화 현상이 왔고, 그것이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김응용 감독의 경우 화려한 선수진을 바탕으로 하는 선 굵은 야구를 추구한다.[50] 하지만 2013년의 한화는 80~90년대의 해태, 2000년대 초의 삼성과는 달리 그런 선수들과 거리가 있는 리빌딩이 필요한 선수층이었다. 또 주축 에이스 투수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포스팅은 큰 타격이 되었고, 직전 시즌 5선발로 뛰었던 박찬호의 은퇴, 코어 유망주 양훈의 입대,
이후 부임한 김성근 감독은 팬들이 직접 선임한 감독, 팀다운 팀을 만들어주는 감독, 육성과 수비 강화에 자신있는 감독으로 기대를 모았고, 2015 시즌 전반기에는 마리한화 열풍을 일으키면서 그러한 희망을 봤다. 하지만 2010년대의 한화는 2000년대 후반의 SK와는 달리 여전히 팀 전력이 얇고 평균 연령층이 높았고, 여기에 김성근 특유의 팀을 쥐어짜는 방식의 운영 + 김성근 사단을 중심으로 한 전횡[52]이 더해져 2015 시즌 후반기에는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또한 지나친 전권부여는 감독으로 하여금 자신의 철학만을 내세우게 하였고, 그 결과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야구와 독재식 팀 운영을 통해 팬들에게 비판을 받았다.[53] 게다가 이태양의 수술,[54] 미치 탈보트와 셰인 유먼, 배영수와 송은범의 동시부진으로 시즌 초반 구축했던 선발투수진에 균열이 생기고, 임준섭, 윤규진이 부상으로 이탈하자 비상식적으로 불펜을 많이 쓰는 야구를 하게 되면서 최악의 혹사감독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결국 2016 시즌에서도 현실이 되었고, 프런트, 2군과의 갈등을 겪은 끝에 2017년 5월 23일 전격 경질이 발표되면서 김성근 감독과 한화의 만남도 최악의 결말을 맞게 되었다.
결국, 이 명감독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망침과 동시에 만든 비밀번호는 구단의 레전드이자 신임 감독인 한용덕 체제에서 2018년 피타고리안 승률을 씹어먹는 우주의 기운이 모여 '일단'은 끊겼다. 하지만 예상 외의 호성적이 오히려 독이 되면서 2019년 이후 코칭스태프와 에이징 커브가 오던 일부 베테랑들과의 갈등이 폭발, 2020년은 완전히 말아먹고 6월 초반 경질되었다.[56] 계속 연패를 끊지 못하다가 간신히 연패를 끊는다. 구단은 다시 명감독을 선임하려는 유혹을 끊기 힘들것으로 보였으나 시즌 후 대대적인 팀 개편 의지를 보이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인 카를로스 수베로가 선임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하차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리빌딩이라는 특명을 받고 부임한 수베로의 임기 2년차인 2022년, 한화 구단으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며 2020년 95패를 넘어 96패를 하고 3년 연속 10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계약의 마지막 3년차인 2023년 채은성과 이태양, 오선진까지 FA 3명을 사들이며 선수 보강을 했지만 용병 스미스의 부상과 오그레디의 처참한 부진으로 성적을 낼 동력이 없었고 4월을 최하위로 마치게 되었다. 5월 들어 두산과 KT, 삼성을 상대로 5승 1패를 기록하며 최하위에서 탈출, 반등하려던 찰나에 삼성 상대로 위닝시리즈를 거둔 5월 11일 경기 후 수베로 감독은 전격 경질되었다.
'이기는 야구'의 특명을 받고 후임이 된 최원호 감독 역시 1년 뒤 같은 운명을 맞게 되었다. 2024년을 앞두고 안치홍의 영입, 그리고 류현진의 리턴, 1차지명 신인들의 존재 등으로 어마어마한 기대감을 안고 시즌을 시작했고 구단 역시 'Different Us'라는 슬로건으로 윈나우 무브를 걸었다. 한화는 개막 이후 8경기 7승 1패로 1위에 오르며 기대감을 현실로 바꾸는듯 했다. 그러나 이후 성적이 수직 낙하하면서 5월 23일에는 최하위까지 떨어지고 말았고 결국 5월 27일에 최원호 감독 역시 최근 6경기 5승 1패에도 불구하고 수베로의 운명을 따라가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 감독을 지냈고,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과 2020 도쿄 올림팍 대표팀 감독까지 역임했던 김경문이 2024년 6월 3일부로 독수리 군단의 새 사령탑으로 임명되었다. 왕년의 명감독이었던 원로들이 처절히 몰락하고 사실상 지도자 생활의 종지부를 찍은 만큼, 역시 왕년의 명감독 취급을 받았던 김경문도 이들과 같은 운명을 따라갈지, 아니면 다른 결말을 맺게될 지는 이제 지켜봐야 할 듯 하다.[57]
[1] 이는 김응룡의 책임 역시 상당한 편인데, 김응룡은 송창현, 이태양, 임기영, 최영환, 강경학, 이시찬 등 여러 선수들을 직접 영입하거나 육성하려 노력하였고, 2군에 간섭하지 않으며 2군 팜을 다지는 등 누군가는 해야했을 일을 했지만, 임기 중 쉽게 경기를 던져버리거나 창피해서 드라마나 본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등 감독으로서 실망스러운 언행을 보였고, 임기가 끝나고도 아예 한화 감독 시절을 대놓고 없던 일 취급하며 스스로 팀에 애정이 없었음을 드러냈기 때문이다.[2] 이마저도 경질 후 감독대행이던 이상군의 노력이 없었다면 투수진은 신생팀 수준으로 박살났을 것이다.[3] a.k.a. 신남연[4] 다만 모건 같은 경우에는 흑역사가 될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5] 누네스, 에반스, 워렌, 윈스턴[6] 이 기록은 2012년 두산 베어스 소속이었던 스캇 프록터가 35세이브를 기록하면서 뒤로 밀려났다.[7] 다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2000년대까지 외국인 스카우트를 지휘하던 프런트의 이인영 대리가 2010년경 구단에 충언을 하다가 물러나는 사건이 있었다. 박동희가 쓴 관련 기사 스크랩 자료[8] 당시 이인영 대리는 한화 팬들 상당수가 이인영 대리표 용병은 믿는다고 할 정도로 팬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져 있던 인물. 이후 이인영 대리는 유학을 떠났고, 트위터에 올린 팬의 글에 배스와 니퍼트, 프록터, 트래비스, 고든 등과 관련한 글을 남기며 한화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해당 짤[9] 이에 대해서는 투수 코치에서 잘린 뒤 잠시 스카우터로 자리를 옮겼던 이상군의 작품이라는 해석도 있다.[10] 그러나 세부 스탯으로 보면 굉장히 불운한 한 해를 보냈으며 멀쩡한 팀에서 뛰었다면 무난히 8~10승 정돈 해주었을 거라고 보는 평이 많다.[11] 여기에도 비화가 있는데, 18시즌 감독으로 취임한 한용덕이 프런트에서 일할 때 롯데 자이언츠의 에이스 외인 투수 레일리를 추천했으나 현장에서 상큼하게 씹었다고 한다.[12] 다만 탈보트는 세드릭 이후 이글스 사상 2번째(...) 외인 10승을 달성하긴 했다.[13] 공을 꽤 많이 던진 상황에서도 완투를 고집하느라 코치들을 애먹였고, 팔이 아파서 자진 강판된 뒤에도 배트를 마구 휘두르고 구장 내 카트를 타고 다니는 등 재활에 도움이 안 될 짓들을 했다. 전임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은 박종훈 단장마저도 '인성이 별로'라고 했을 정도.[14] LG의 관심을 받았지만 LG는 그 대신 데이비드 허프를 선택했다. 서캠프의 부진으로 가을야구를 향한 동력을 얻지 못한 한화와는 반대로 LG는 허프 효과와 함께 8위에서 4위로 가을야구에 진출하면서 한화를 쓰라리게 했다.[15] 에릭 서캠프야 본인의 애매하게 강점도 약점도 없는 성향과 공인구 부적응이 겹쳐서 망한 것이지만, 카스티요의 경우 9월 태평양 돌핀스마냥 보직없이 굴려지며 망했다는 것이 대부분의 팬들의 진단이다.[16] 박상원 등 어린 투수들에겐 본인의 슬라이더 그립을 알려주거나 글러브를 선물했고, 베테랑 선수들과는 메이저식 멘탈 관리법을 공유하면서, 박종훈과는 선수 노조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예 구단 운영에 관한 의견을 나누며 용병을 추천해주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허나 5월 후반 벤치클리어링에 굳이 난입해 주먹을 휘두르다 손가락 부상으로 6주간 결장하는 등 프로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17] 외인 기준 17년, 한화 선수 기준 14년만이다. 이글스 역사상으로는 장종훈 이후 2번째.[18] 그리고 로사리오는 한신에서 역대급 먹튀를 찍고 방출되었다. 화약수출 No.1[19] 서폴드는 삼성 상대로 배팅볼러가 되어버렸고, 채드벨은 허리 통증으로 2주간 이탈하기도 했다.[20] 비록 클래식 스탯은 2018년에 비해 저조해졌지만, war이나 wRC+ 등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2019시즌이 투고타저 시즌이였던 영향도 있을 듯.[21] LG전 예외. LG 상대로는 등판한 모든 경기에서 좋지 않은 피칭을 보여주고 패전 투수가 되었다.[22] 이 볼넷으로 인해 투구수가 늘어나서 5무원만 하고 내려가는 경기가 상당히 많다.[23] 유격수 뿐만 아니라, 내 외야 모두를 커버하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다.[24] 박종훈 단장이 유독 정근우에 냉정한 모습을 보이며 한화 팬들과 위장 한화 팬 모두의 비난을 받았으나 정근우가 시즌의 반도 가기 전에 8개의 실책을 범하면서 차일피일 계약을 미루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며 재평가를 받았다. 사실 최재훈-신성현 트레이드, 오픈 스탠스 타격폼 등으로 MLB판 장민석으로 평가받던 제라드 호잉의 영입 등 한화 이글스의 프런트로 부임한 이후 많은 우려를 산 그의 결정들은 대체로 옳았다.[25] 이용규는 어깨부상으로 2014시즌에는 수비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14시즌 이용규는 지명타자로 주로 나서고 피에가 주전 중견수로 뛰었다. 피에가 떠난 15시즌부터 이용규가 주전 중견수로 자리잡는다.[26] 정훈, 전준우, 김주찬 등 수비가 심각할 정도로 부진하나 일발장타가 있는 타자들을 외야로 포지션 변경을 시키는 경우는 더러 있었다. 다만 저 셋은 20대 초반이나 30대 초반에야 외야로 나갔지만, 아무리 본인이 좌익수나 우익수보다 편하다한들 30대 후반에 "주전" 중견수로 시즌을 준비하는 건 무리라는 의견이 있었으나 전년도 뽀록 성적으로 인해 감독을 옹호하는 의견이 많았"었"다.[27] 결국 정병희는 재기하지 못한 채 김민재의 보상선수로 떠나버렸고, 윤규진 역시 부상으로 신음하다 더이상 연투가 불가능한 유리몸이 되었다.[28] 17시즌 들어서는 이닝소화와 승리기여도는 되려 내려갔지만 140이 넘기 힘들던 최고구속을 146까지 끌어올린 상태다.[29] 심지어 투수 혹사를 크게 줄인 이상군 감독대행에게마저도 혹사를 당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30] SSG에서 FA로 복귀했다.[31] 그래서인지 이때 당시만 해도 FA로 인한 유망주 유출은 적었다. 그러나 이후에는...[32] 최근에야 서산 야구장을 지어서 선수 육성을 하고 있지만 그 효과를 보려면 몇년은 기다려야 한다는게 야구계의 중론이다.[33] 사실 군입대한 하주석 등 유격수로 써먹을 선수들이 돌아올 예정인지라 입지가 애매했다.[34] 선임 당시 나이는 김인식 감독이 58세, 김응용 감독이 72세, 김성근 감독이 73세이다. 물론 선임 당시를 기준으로 모두 KBO 최고령자들. 의외로 김인식 감독은 나이가 별로 안 많아 보일 수도 있으나 그때는 선동열·김경문·조범현 감독 등 당시 40대의 젊은 감독들이 대세이던 시절이었다. 김응룡과 전임 감독은 현장을 4년 이상 떠나있던 탓에 현대 야구에 적응할 수 있을지 우려스러운 시선들이 있었지만, 회장님의 지시로 영입되었고...[35] 투수 최고령자이자 리그 최고령자는 이 분.[36] 2016년 두산의 주장 김재호와 롯데의 주장 강민호가 1985년생이다.[37] "구단은 사실 그런 전략이 필요해요. 이게 우리 구단들은 그룹에서 하다보니까 매일 우승하려 그래. 힘도 없으면서(웃음). 그러니까 헛돈을 쓰는 경우가 많잖아요."[38] 단순히 어린 선수로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BQ로 불리는 전반적 야구 센스가 탁월한 선수들을 우선적으로 지명했다. 일부 선수의 경우 타 구단이 아쉬워했을 정도의 스틸픽이라는 평도 존재하는 상황. 그 성과가 바로 정은원. 대졸 선수 의무 지명이 도입되면서 전원 고졸 지명은 이제는 불가능하다.[39] 워낙 노안이라... 실제 나이는 류현진보다도 어리다.[40] LG 트윈스 같은 경우는 1994년 우승을 이끌었던 신예 트리오였던 유지현을 배팅볼 투수로 쓰는 수모를 주고 김재현에게 부상 시 구단 책임은 없음을 확인하는 각서를 주는 등 은퇴를 강요했을 정도로 매몰차게 대우를 했다. 이 때문에 떨어져 나간 팬들도 일부 있었을 정도이다.[41] 2012년 시즌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첫 화면에 동영상이 뜨는데 장종훈,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의 모습이 나온다. 현역 선수라고는 신인 박찬호 선수밖에 안 나온다.[42] 엄밀히 말하자면 트레이드가 아닌 FA가 된 이강철의 보상선수로 이적한 것이다[43] 양준혁과 선수협 관련하여 약간 부연한다면 선수협 창립은 1999년 겨울이고 양준혁의 트레이드는 1998년 겨울이므로 양준혁은 선수협 파동 때문에 삼성에서 해태로 보내진 것이 아니다. 다만 프랜차이즈를 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삼성 구단에 실망한 양준혁이 이후 선수협에 적극 참여하게 된 점은 있다.[44] 1989년부터 1995년까지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선수. 은퇴 후 북일고, 대전고 코치를 맡다가 백혈병으로 2003년 6월 30일 별세했다.[45] 단, 실제로 퍼부은 건 아니고 퍼붓겠다고 공언한 것일 뿐이다. 둘 다 일본 간 데다 이범호 복귀도 불발.[46] 그런데 17시즌 단장과 싸우던 감독이 짤린 뒤 감독대행을 맡으면서는 정작 코치 때보다 훨씬 뒷수습을 잘했다. (...) 아예 정식 감독까지 한 번 속는 셈치고 시켜보자는 팬들도 있었으나 본인이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지 거절하고 지역 순회 코치로 보직을 바꿨다고 한다.[47] 송진우는 제외. 송진우는 2018년 송은범을 비롯한 한화 투수들을 살려낸 공로로 재평가받았다.[48] 2021년 한화 이글스에 합류한 외국인 선수 라이언 힐리도 너무 어린 선수들이 많은 것을 보고 그제서야 한화 이글스가 리빌딩 중인 팀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49] 김응용 10회, 김성근 3회, 강병철/김인식/김영덕 2회, 이광환/이희수 1회. 그러나 이들은 한화에서 퇴임 이후 우승은커녕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하지 못한다.[50] 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모습이라면 그렇다. 그러나 해태 타이거즈 시절 모기업의 한계로 리빌딩이 강제로 꾸준했던 이력이 있다.[51] 다만 선술했듯 바티스타와 이브랜드의 세부 스탯은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52] 경기 코칭스태프 이외에 트레이닝 및 재활훈련 체계에도 문제가 생겨 기자의 체험기 결국 홍남일, 강성인 트레이닝코치도 김성근의 경질과 함께 같이 짤렸고 2019년에도 프로야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결국 2018년부터 후지오 요시후미 코치가 1군 트레이닝코치로 부임하면서 문제 해결.[53] 당연하지만 이 과정에서 김성근 신화의 거품이 걷힌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고양 원더스의 외국인 투수 혹사 등 민낯도 그제서야 드러났으니.(정확히는 작게나마 관심이 있었지만 묵살당했던 것이지만) 그러나 한화가 2019년 다시 부진을 보이자 김성근 감독 추종자들이 다시 활개치기 시작하면서 야구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20시즌 팀이 그러한 비난을 상쇄하기는커녕 김성근도 안했던 18연패를 찍으면서 이들의 활동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54] 다행이 2016년에서는 돌아와서 후반기 1선발을 맡아가며 활약했다. 물론 빠른 복귀라 2017년에는 부진했고, 재수술한 후 불펜으로 활약했으나 2018년엔 10년만의 가을야구를 위해 너무나도 많이 던지다 결국 영영 탈이 났다.[55] 다만 한대화도 우승을 목표로 하라는 높으신 분들에 불편해하는 내색을 보인 뒤 환승없는 8호선을 타던 2012년 8월 중 경질당했다. 구단에서 대놓고 수석코치 교체를 강요하는 등 대놓고 감독을 잘라버리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도 이때였다.[56] 사실 이러한 조짐은 2018년 중반 한용덕 감독이 계급장만으론 1군에 못온다고 발언하거나 돌연 주전 3루수를 2군으로 내리는 등 여러 차례 보였다. 시즌 후 FA 선언한 3명에게 단장이 FA 선언하고 시장에 나갔으면 한화 선수는 아니라는 발언까지 나오는 등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으나 호성적에 취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57] 그나마 김영덕의 경우 한국시리즈 준우승만 실컷 했을 뿐 정규시즌 우승을 2번 정도 했고, 언급된 다른 감독들과는 달리 성적도 무척 좋았다. 빙그레 감독 역임 마지막해(1993년)에 가을야구 진출은 실패하고 물러났지만, 그래도 5위는 했고 승률도 정확히 5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