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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관
그의 감독 스타일에 대해서는 2015년 6월 1일. 야구병법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1.1. '과감함'
김경문의 스타일은 흔히 '빅볼'로 정의되지만, 실제 경기 운영에서는 스몰볼의 영역인 도루나 작전 사용, 그리고 불펜 야구 등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김경문은 빅볼과 스몰볼의 분류를 떠나 '과감한 야구'를 중요시하며, 이 점이 '빅볼'에서는 강공책과 과감한 타격으로 나오는 장타의 빈도 상승으로, '스몰볼'에서는 많은 도루 시도와 리스크를 지더라도 과감하게 '한 베이스 더 가는 야구'로 이어진다. 따라서 김경문은 그것이 어느 방향이든간에 적극적인 플레이를 선수에게 주문하는 스타일에 더 가까우며, 단순히 빅볼을 추구한다고 하기에는 거리가 있다. 단 김경문이 선수생활 은퇴 후 메이저리그 지역인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만큼 스몰볼보다는 빅볼 스타일이 더 부각되는 면도 사실이다.또한 김경문은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는 당장 부진하더라도 계속해서 믿어주면서 과감한 플레이를 유지하라는 시그널을 보낸다. 이러한 방식으로 김경문은 많은 유망주들을 효과적으로 키워내며 좋은 성과를 내며 명성을 쌓아왔고, 이승엽을 끝까지 믿어 결국 결과를 만들어내며 베이징 올림픽의 우승을 이끌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의 야구'가 '고집'과 '집착'으로 이어져 팀의 성적이 하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었고, 이 점은 김경문이 한국시리즈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 원인 중 하나로도 지목된다. 또한 불펜의 경우 오히려 과도한 기용으로 특정 선수들에게 과부하가 걸려 성적이 추락하는 부작용도 여러 차례 나타났다.
2. 상세
2.1. 야수를 잘 만들어내는 화수분 야구
강병철, 백인천 등과 함께 야수 육성의 대명사로 불리며, 화수분 야구라는 표현이 김경문으로부터 시작되었을 정도로 야수 육성은 정평이 나 있다. 대체로 이름없는 선수 몇 명을 엄청나게 밀어주는 경향이 있으며, 그 선수가 삽질을 하면 달의 남자라 불리며 김경문 감독과 함께 죽어라 까인다.[1] 그러나 달의 남자들이 포텐셜 폭발로 스타플레이어가 되면 이 칭호는 사라지고 이때까지 까던 팬들도 '이 선수는 될 줄 알았다' 면서 애널서킹을 해댄다. 이렇게 갑툭튀하는 선수들이 김경문 하에서는 굉장히 많이 나온다. 두산에서 그렇게 키워낸 선수가 육성선수로 들어온 손시헌과 김현수였고, 상무에서 제대하자마자 현대 유니콘스서 방출당한 후 손시헌의 추천으로 입단한 선린상고 동기 이종욱, 그 외에는 고영민, 이성열, 이원석 등이다. 물론 유재웅처럼 끝까지 터지지 않고 떠난 선수들도 많다.팀 내 파워 게임과 세력 조율에도 매우 뛰어나서 나이가 든 선수들의 경우, 자신의 실력을 충분히 내보일 수 있도록 상당기간 기회를 부여한 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냉정하게 정리한다. 이 경우 떨어진 성적이 확실한 근거가 되므로 팬들도 지지를 보낸다. 대표적인 예가 안경현. 그리하여 서른 전후의 선수들에게는 문차일드에 속하는 것이 굉장한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성공해서 자리잡은 예는 두산에서는 임재철, NC에서는 모창민이 있다. 반대로 실패한 예는 문희성, 이승준, 정원석, 유재웅[2] 등이 있다. 김종호 같은 경우는 둘 다 해당되는 케이스인데, 김경문 감독이 발탁을 했고 주전으로 성장시켰다가 젊은 선수들이 올라오고 실력이 떨어지자마자 리빌딩 명목으로 2017 시즌 이후 가차없이 선수단에서 정리했다.
간단히 말해서, 강병철 감독과 그의 숱한 강병철의 양아들들을 생각하면 된다. 다만 기대주 타자들을 잘 발굴해 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대개 다음 감독 좋은 일만 해주는 강병철 감독과는 달리 재임 내에 이 선수들이 터진다는 점이 다르다. 아마도 감독 부임 이후 성적도 좋았고 자리가 계속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그런 차이가 발생한 듯하다.
NC 시절에도 이 장점은 그대로 적용되어 삼성에서 무명이었던 김종호를 수준급 리드오프로 만들었고, 투수로서 생명이 끝난 나성범을 중심 타자로 키우는 데 성공했다. 2번이나 방출됐고 NC에서도 신고선수로 입단한 이상호를 준수한 내야 유틸리티로 잘썼다.
2013년 당시에는 신생팀이다 보니 경험이나 수비력, 두께에선 아쉬움이 많은 NC 야수진이지만 베테랑 이호준의 뒷받침과 나성범과 모창민, 권희동 등으로 이뤄진 젊은 중심 타선의 화력은 수준급이라는 평가였다. 2014년에도 박민우가 신인왕을 수상했고 2015년에는 모창민의 부진과 권희동의 입대 공백 등을 최재원이나 김성욱, 김준완 등 기동력 있는 야수들을 육성해서 메웠다.
2016년에도 상술한 김성욱과 김준완을 적극 기용하면서 한국시리즈까지 올렸고 2017년에도 주전들의 줄부상 와중에도 모창민과 권희동, 이상호가 커리어하이를 찍으면서 야수진 강화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팀 케미스트리 관리에 있어서는 비교적 높게 평가받는 편이었다. 흑역사도 있기는 하지만 놀기 좋고 사고치기 쉬운 서울 연고 구단인 두산에서 전반적인 팀 관리는 잘한 것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3] 지방 구단인 NC에서는 더더욱 잡음이 적다. 일설에는 두산 시절에는 보이는 이미지보다 훨씬 엄했는데[4] 시행착오를 겪고 새 팀에서는 젊은 선수들을 상대로 보다 부드러운 이미지로 변신했다는 썰도 있었다. 아무래도 NC는 신생팀이고 선수들도 두산에 비해 경험이 없을 수밖에 없으니 이런 방법을 쓰는 듯하다.
하지만 2016년에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고 여기에 NC가 세게 연루되면서 그냥 과거의 범죄두 드립과 맞물려 팀케미 쪽으로는 웬만해서 호평을 못듣게 될 것으로 보인다, 승부조작이 확정된 이태양과 이민호의 외도 및 폭행 의혹, 거기다가 외국인 선수였던 테임즈의 음주운전까지 걸렸다. 이쯤되면 신인 육성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호평은 고사하고 거의 폭락해버린 상황. 허나 엄연히 성인인 프로야구 선수의 사생활 문제를 무작정 감독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이러한 특성 때문인지 두산이나 NC 모두 매년 팀 페이롤은 성적에 비해 중하위권을 맴도는 경우가 많다. 김성근 감독과는 대조되는 부분. 다만 두산이 창단 이래 외부 FA를 세 번밖에 잡지 않았을 정도로 돈을 안 쓰는 구단이라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5]
2.2. 투수 육성 및 기용에 대한 비판
야수 육성이 KBO 리그를 통틀어서 손에 꼽을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과 달리, 투수 육성은 21세기 KBO를 통틀어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평가가 좋지 않다. 이상군이나 정현욱처럼 코칭만으로 투수를 폐급으로 만들지만 않을 뿐,[6] 감독으로서 투수 기용 방식에 문제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똑같은 방식의 김성근은 최소한 김광현 같은 스타를 발굴해내는 등 투수 보는 눈이라도 있건만[7], 김경문은 그마저도 없다.김경문은 투수 유망주들이 있어도 선발로 쓰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고 불펜 돌려막기로 팀 전력을 구성하는데, 전술한 야수 육성 능력으로 인해 타선은 수준급 이상으로 올라와도 투수진, 특히 선발이 아주 취약해지고 이로 인해 시즌을 채울수록 불펜진의 과부하가 극한까지 올라가게 되며 결국 가을야구에서도 투수진의 부진으로 털리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이전까지는 그저 단기전에만 약한 가을역적 취급을 받아왔으나 애초에 김경문의 투수 운용 스타일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봐야 맞다.[8][9]
2.2.1. 두산 시절
2007년을 끝으로 200이닝이 가능했던 다니엘 리오스가 떠나자 선발야구에서 손을 놓고 불펜야구로 전환해 버렸는데, 그 결과 2011년 두산을 떠날 때까지 외국인을 제외하고는[10] 두산에서 제대로 된 선발 투수를 단 한 명도 키워내지 못했다. 2008년부터 김선우가 해가 지날수록 성적이 나아지는 경향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그조차도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었으며, 애초에 메이저리그에서 뛰다 국내로 복귀한 선수라 김경문이 키운 것도 아니다. 홍상삼이 싹을 좀 틔울 듯했지만 2010년에 혹독한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고 김진욱 감독 취임 후 불펜에서 포텐이 터지며 불펜 체질임이 드러났다. 노경은은 김경문 시절 애물단지 취급받았다가 김진욱 감독 시기에 부활하고, 노경은도 김진욱을 스승처럼 따르고 있다.[11]그렇다고 계투 육성은 잘 했냐면 더더욱 아니다. 단적인 예로 임태훈의 통산 기록을 보자.
2010년이야 5월부터 선발로 전환했다고 쳐도, 2007년은 순수 계투로 100이닝을 먹은 것이다.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는 2015년 권혁과 비교해 보면 된다. 권혁은 78경기에 나와 112이닝을 소화했는데, 경기당 이닝 수를 계산해보면 권혁보다도 임태훈이 더 높다. 게다가 2007년도는 1시즌에 126경기로 현재 144경기 체제에 비해 열 경기 이상 적다. 여기에 임태훈은 포스트시즌에서 12와 3분의 2이닝을 추가로 등판했기 때문에 총 이닝은 권혁을 넘는다.[12]
이뿐만이 아니라 10년 이상의 경험치가 축적된 권혁과 달리 2007년 당시 임태훈은 중고 신인도 아니고 고등학교 막 졸업하자마자 입단한 1년차 신인이었다. 갓 입단한 신인들, 특히 투수들에게는 더 확실한 관리가 필요하다. 프로경험이 부족한 것은 말이 필요없고, 특히 임태훈은 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입단했는데, 사실상 고등학교에서 거의 에이스급 활약을 펼친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고교에서 에이스급 투수들은 엄청난 혹사를 당하기에, 1~2년차 신인 투수들에겐 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남성들의 경우 스무 살이 넘어서까지도 신체적 성장이 계속되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이때 몸 관리에 치명타를 맞으면 이는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도 엄청난 피해를 준다. 당장 임태훈보다 딱 1년 전에 1차 지명으로 프로 입단해서 무작정 굴렀던 한기주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생각해보자.[13] 당장 2007년 정규시즌 당시에도 임태훈의 혹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을 정도.
심지어 임태훈은 시즌 내내 불펜으로 구르고, 포스트시즌에서도 계속 핵심 계투로 뛰다가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리오스를 3일 휴식만 시키고 4차전에 등판시키는 승부수가 실패하며[14] 궁지에 몰린 김경문이 남은 선발이 없다는 이유로 이미 5차전에 구원등판해서 패전투수가 되었던 임태훈을 한국시리즈 6차전에 선발로 등판시키는 역대급 혹사를 저질렀다. 이미 이것만으로도 2015년 살려조 뺨치는 악질 혹사다.[15]
또한 선발로 뛴 2010년을 제외하면 임태훈은 3년 동안 4600구 가까이를 던졌는데, KBO 역사상 고졸 신인이 데뷔하자마자 계투로만 이렇게까지 갈려나간 사례는 없다.[16] 결국 임태훈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2011년부터 비실대다 초라하게 은퇴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송지선 사건이 없었어도 진작에 퍼졌을 선수[17]였던 것. 오죽하면 임태훈이 감독 멱살 잡아도 할 말 없을 거란 이야기가 나왔을까?
임태훈은 데뷔년도인 2007년에 무려 100이닝 가량을 던졌고 2008, 2009년에도 90이닝 가량을 투구했다. 선발이었다면 오히려 이닝 못 먹는다고 까였겠지만 문제는 계투로서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결국 09년도 말부터 허리통증 때문에 퍼지기 시작했고, 2010년 초에 결국 탈이 나 부랴부랴 선발 전환시켰다가[18] 결국 그 해의 홈런공장장으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허리 부상은 선수 본인의 책임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애초에 임태훈의 부상은 3년간 김경문이 불펜으로만 미친 듯이 갈아먹고 재활조차 허락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터진, 한마디로 예견된 대참사였던 것이다.
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2010년 기록은 개막 후에야 선발로 급선회된 것임에도 전반기만 보면 선발로서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다. 즉 임태훈 역시 충분히 선발로 키울 수 있었다는 뜻이다. 불미스러운 일로 야구판에서 사라진 게 아니었다면 류현진 이후 씨가 마르다시피 한 KBO에서 손에 꼽히는 대형 신인 투수가 선발이나 철저한 관리 속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한 감독의 욕심 때문에 혹사당하고 사라진 대표사례로 가장 먼저 꼽혔을 것이다.
이재우는 2008, 2009년 선발과 불펜을 넘나드는 활약 이후 2010년 선발로 전환했다가 시즌 초에 인대가 끊어져 결국 재수술까지 가는 끝에 2013년이 되어서야 롱릴리프 정도로 뛸 수 있었고, 고창성은 아마추어 시절의 혹사 때문에[19] 1년을 통째로 쉬고 왔음에도 2년을 내리 신나게 굴리다가 아시안게임조차 퍼진 상태로 나가게 되었고, 그렇게 2011년부터 급격히 망가져 등판 자체를 못 할 정도로 2016년까지 비실대기만 하다가 방출당하고 말았다.
이용찬은 몸에 맞지 않는 마무리를[20] 맡겼다가 제대로 된 변화구 하나 없이 작대기 직구에만 의존하는 양아세이브 컬렉터로 만들고 말았다. 11년도에 선발 전환을 통해서 2012년도 성공의 초석을 닦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변화구 하나 똑바로 못 가르쳐서 그 부족했던 선발자원을 고작 불안한 마무리로 써왔다는 이야기다. 2016년의 두산은 선발 자원보다 불펜 자원이 훨씬 부족함에도 당장 다음 시즌부터 선발로 준비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히 많이 나올 정도로 이 선수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팀 내 다른 선발들처럼 몸이 늦게 풀리는 타입이었고 경기 운영 능력 또한 좋으며 선발로 나왔을 때의 투구 내용이나 안정감도 불펜으로 나왔을 때보다 훨씬 좋은, 즉 선발 투수로 뛸 때 기량이 극대화되는 선수다. 17시즌 이용찬의 불펜행을 지지한 팬들도 정재훈의 어깨 부상과 윤명준의 입대 등으로 인해 두산의 현 시점 불펜 상황이 심각해서 그런 의견을 내는 것이지, 두산 불펜진이 리그 평균 수준만 보장되었어도 선발행을 지지했을 거라는 전제를 꼭 깔아둔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선발난이 심각한 KBO 리그에서 선발진을 니퍼트 유희관 보우덴 장원준 이용찬으로 구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특히 이용찬의 경우는 불펜으로 1군 데뷔를 시킨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2009년은 이용찬을 불펜으로 데뷔시켜도 될 정도로 두산의 선발 자원이 많았냐면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08시즌 10승 투수가 순수 불펜으로 뛰었던 임태훈 하나밖에 없었을만큼 선발 자원 하나하나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이용찬에게 선발 한 자리를 고정시키는 편이 차라리 나았을 정도. 김태형 감독 또한 투수 운용에 관련해서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이것만큼은 잘 했다고 인정받는 것이 바로 불펜진이 여전히 불안함에도 선발 가능성을 보여준 함덕주에게 5선발로서 기회를 주고 기어코 대성공시킨 것이다. "어차피 4선발까지는 확정이고 그냥 잘 하는 선수 돌아왔으니 원래 하던 불펜으로 가라"고 한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우덴이 어깨 부상으로 인해 2017년 전반기 선수단에서 이탈했고, 함덕주의 선발 전환이 없었다면 정말 투수진이 무너질 수도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이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함덕주는 2013년에 입단하여 2014시즌부터 1군에서 통할 가능성을 보여줬고, 이에 부응하듯 2015시즌에 필승조로 포텐이 터졌다가 급격한 이닝수 증가로 인해 다음 해인 2016시즌에 안식년을 가졌으며, 1년을 쉬고 나서 복귀한 2017시즌에 5선발로 시작해 제대로 터졌다.[21] 즉 단계별로 차근차근 성장해온 선수로 그에게만큼은 가득염 전 투수코치와 함께 김태형 감독의 공이 크다. 2016년에 함덕주의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자 회복될 때까지 공도 잡지 말라 지시했고, 다른 선발진들의 투구수가 너무 많은 게 아니냐며 논란이 되어도 선발 첫 해인 함덕주에게만큼은 투구수를 철저히 지켜줬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김태형 감독이 농반진반으로 "우리 덕주는 내가 키웠지!" 라고 말하면서 다니는데 이를 부정하는 두산 팬은 한 명도 없다. 함덕주 바로 다음 차례로는, 이용찬처럼 아마추어 시절부터 천생 선발 체질이라고 평가받은 이영하를 선발 투수로 전환시켜 풀타임 선발투수 1년차 시즌에 바로 국가대표 A팀으로 발탁될만큼 대성공을 거뒀다.
심지어 김경문은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홍상삼을 선발로서 1군에 데뷔시켰다. 선발 투수의 첫 번째 덕목은 등판한 경기에서 최대한 많은 이닝을 먹는 것이고, 이걸 1년에 25~30번씩 하려면 당연히 경기 운영 능력, 체력 등과 더불어 멘탈이며 집중력까지 좋아야 하는데, 두산 팬이라면 홍상삼은 멘탈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으면서 산만하기까지 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쯤 되면 자팀 투수의 성향을 전혀 분석하지 못했거나, 어떤 성향의 투수를 선발로 써야 하는지 그 자체를 몰랐다고 봐야 한다. 2000년대 후반, 5선발은 커녕 로테이션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지조차 의심될 정도로 허구한 날 몇 개씩 구멍나있던 선발진에 이용찬, 아니면 임태훈, 이 두 명이 아니더라도 가능성이 보이는 젊은 투수들을 스프링캠프 때부터 경쟁시켜서 그 중 좋은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을 선발 투수 자리에 박아서 키웠다면 선수의 기량도 극대화되면서 투수진 전력도 확실히 안정될 수 있었다.
게다가 30억과 금민철을 내놓고 데려온 이현승은 선발인지 계투인지 갈팡질팡하다 결국 이도저도 안 되는 상태가 돼서 제대로 등판도 못 해본 채 입대했다가 제대 후 15시즌에서야 마무리를 맡으면서 국가대표 A팀에도 승선하는 등 포텐이 터졌고, 노경은은 온갖 트러블 끝에 김진욱 감독 시절에서나 만개한다. 당시에는 김경문의 한계라기보다는 두산 자원의 한계로만 여기는 경향이 강했는데,[22] 김진욱 체제에서 선발진이 매우 크게 안정되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이러한 김경문이 안 좋은 쪽으로 재평가가 일어난 것이다.[23]
김경문의 투수육성과 운영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틀에서 이뤄진 것이다. 리오스-니퍼트 공백기의 두산과 니퍼트 이후의 두산을 보면 투수운용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다른 투수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이혜천이 2003년 83경기, 2004년 79경기라는 과한 스윙맨 기용으로 인해 망가졌으며[24] 같은 해에 차명주는 77경기를 출장함으로 인해 망가졌다.[25] 정성훈은 2004년 79경기라는 과한 스윙맨 기용으로 인해 망가졌으며,[26] 김성배 또한 2005년에 72경기, 2006년에는 61경기에 기용하여 망가뜨렸고[27] 2007년에는 그 유명한 임태훈만 혹사를 시킨 게 아니라 금민철도 53경기를 넘김으로써 혹사를 시켰으며, 결국 금민철은 넥센에 이적하고 나서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아야만 했다.
그의 혹사 기록의 절정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이루어졌는데, 팀의 마무리 이용찬이 불미스러운 일로 이탈한 상황에서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모두 최종전까지 치르는 혈투를 치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창성은 그 10경기를 모두 출장하는 전대미문의 혹사를 당하게 된다. 김성근조차도 단기간에 한 투수를 이렇게까지 갈아넣은 적은 없다! 그 경기들을 실시간으로 직접 본 팬들에 의하면, 너무나도 선수가 안타까운 상황이었고, 계속 이러다간 팀도 장기적으로 아작날 것이 뻔히 보이는 나머지 차라리 여기서 가을야구를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팬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 누구보다도 팀의 좋은 성적을 제일 원하는 팬들마저 조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으니 이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불 보듯 뻔하다고 할 수 있다.[28]
2009년 64경기 74이닝 ERA 1.95, 5승 2패 16홀드 1세이브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이용찬과 신인왕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유망한 사이드암 투수는 그 혹사 이후 예전의 폼을 되찾지 못했고, 2010년 82이닝 ERA 3.62 22홀드, 2011년 50.2이닝 ERA 4.44 14홀드를 마지막으로, 당당한 1군 필승 셋업맨에서 9월 확대 엔트리 이후에나 간간히 얼굴을 비추는 2군급 투수로 전락해버렸다. 심지어 김경문 감독은 두산에서 재활에 매진하던 그를 2차 드래프트 때 다시 NC로 끌고 가버렸고, 결국 2016년 시즌 이후 방출이라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 야만없이지만 대졸에 국가대표 경력도 있는 그가 과도한 혹사 없이 적당히 관리받으면서 계투로 야구 인생을 유지했다면 바로 다음 해의 시즌이 끝나고 8년차 FA 자격을 얻게 되었을텐데, 그가 거품이 부글부글한 현재의 FA 시장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을지 생각해보자.
그 외 자세한 스탯은 여기로.
2010 시즌 목표가 우승이라며 초반 1위를 노리려다 임태훈, 이재우, 고창성, 홍상삼 등 핵심 투수들이 연달아 무너지며 자멸한 것은 김경문식 불펜야구의 절정이라 부를 만하다. 김경문 감독의 입장에서는 김선우/켈빈 히메네스/이현승의 이닝이터 트리오, 그리고 하위선발에 레스 왈론드를 배치, 5선발 자리에서 경쟁을 시켜 보면서 튀어나오는 선수에게 꾸준한 기회를 줄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2011년에도 4월 내내 1위를 목표로 중간계투를 빡세게 돌리는 버릇은 그대로였다. 당시 임태훈은 5년째 당한 혹사로 인해 허리가 나가 이미 정상이 아니었고, 고창성도 3년여의 혹사로 맛이 갔으며, 이미 혹사로 건초염을 앓고서 한참 쉬다 돌아온 정재훈마저 순식간에 맛이 가기 직전까지 몰렸다.
과거에 보좌했던 투수혹사의 달인 김인식 감독과 마찬가지로 김경문 역시 투수혹사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선동열과 함께 선발 자원도 거진 불펜에 때려박는 걸로 악명높았으며, 선발을 못 믿어서 일찌감치 핵심불펜 투수를 투입하다보니 투수진이 일찍 소모되고, 그 틈을 메우려다 보니 선발수업을 받아야 할 유망주들을 계속 불펜에 제물처럼 투입하여 소모되는 악순환을 반복해왔다. 그럼에도 두산 감독 당시에는 생각보다 덜 까였는데, 지금에 비해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활성화가 덜 된 점도 컸으며, 베이징 올림픽으로 유입된 라이트 야구팬들이 그를 옹호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후임인 김진욱이 까이다가 뒤늦게 재평가받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기록으로 보면 분명히 김진욱이 김경문보다 장기적으로 팀에 더 도움이 되는 야구를 했지만, 김경문은 한때나마 찬양받고 김진욱은 단기전의 미숙함으로 비판받았다. 하지만 2014 시즌을 거치며 김진욱이 재평가받고, 2015 시즌 김태형 감독 체제에서 두산이 우승을 하면서 김경문에 대한 재비판이 매우 커졌다.
물론 이에 대해 실드를 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 근거로는 2군에서 유망주를 키워야 할 투수코치들이 역할을 못해주었다는 것. 김경문 감독은 어디까지나 팀의 종합적인 관리를 추구하는 입장이어야 하고, 1차적으로 투수 육성에 있어서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투수코치 아니냐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은, 이미 1군에 붙어 있었던 이재우, 김선우, 김상현, 이혜천, 김명제, 이승학, 정재훈에다 2007년 이후 2군에서 콜업된 수준급 투수들만 해도 임태훈, 고창성, 홍상삼, 이용찬, 노경은, 금민철이며, 거기에다 히어로즈에서 트레이드해 온 이현승까지 친다면 투수가 없다느니 코치가 잘못이니 하는 타령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능력치로만 보면 당시 리그에서 두산의 투수진은 최고 수준이었다. 단지 믿을만한 선발이 없었을 뿐. 오히려 15시즌의 투수진이야말로 선발진 외엔 더 처참한 수준이었다. 두산의 2015년 포스트시즌을 투수 세 명이 끌고 갔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당연히 투수코치들이 역할을 못했다는 건 씨알도 안 먹히는 이야기로, 두산에는 당시에 김진욱 등이 투수코치로 있었음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29]
김진욱도 감독 시절 종잡을 수 없는 야구관 및 극단적인 수비지향적인 야구와 더불어 단기전의 미숙함으로 비판받았지만, 이미 김경문이 소모식 불펜야구로 투수진을 완전히 초토화시켜버린 극악의 환경에서 관리야구로 선수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현재 두산의 선발야구 시스템과 투수들의 불펜 체계화 시스템을 자리잡게 하여 부임 2년동안 모두 가을야구에 진출하고 2년차에 기어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하였으며, 심지어는 두산 팬들의 금지어인 송일수조차도 김진욱이 정립한 투수 시스템 자체를 엎어버리진 못했다. 그 후 김태형이 이 시스템을 잘 이어받고 팀을 더욱 개선한 다음 단일 팀 최초 한국시리즈 7회 연속 진출의 전무후무한 기록과 3회 우승의 대기록을 달성하며 두산의 투수진을 황폐화시키고 책임감 없이 도망치듯 떠난 김경문에 대한 비판여론은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믿고 데려온 선발감들이 한결같이 3이닝만 넘어가면 비실거리니 계투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는 반론도 있다. 오죽하면 선발이 5이닝만 넘겨도 퀄리티 스타트에 비유하여 돡리티 스타트라고 팬들이 환호하기까지 했을까.[30] 당시 리얼타임으로 보았다면 김경문 감독이 리오스의 빈자리를 메꾸려고 별별 실험과 고민 끝에 KILL 라인을 정립한 것을 알 수 있다. 두산 투수들이 홍상삼처럼 다 계투 체질이었던 것도 아니지만, 암튼 이닝 길게 갈 선수가 하나도 없었다. 그 후 노경은과 이용찬이 김진욱 감독에 의해 선발진에 성공적으로 자리잡기까지 또 수년이 더 필요했다.
차라리 외국인 선수 탓을 하면 이해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약물 의혹의 리오스만 해도 2007년에 혹사의 수준을 넘어 엄청난 등판을 했던 걸 생각하면 투수기용에 관한 한 김경문은 까여도 할 말이 없지 않느냐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오히려 15시즌의 두산은 외국인 선수들이 단체로 드르렁하는 와중에도 꾸역꾸역 토종 선수들로 선발 로테이션을 돌리고 타순을 채워나가면서 정규시즌 3위를 기록했고, 포스트시즌에서는 그 드러누워있던 외국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난 1명의 외국인 선수만을 쓰고 14년만에 업셋 우승을 달성했다.
김경문이 투수 육성, 발굴에 일가견이 있었다고 써 있었지만, 그의 행적을 보면 그는 그냥 투수들을 있는대로 갈아 넣었을 뿐이다. 그것이 때마침 두산의 두꺼운 뎁스와 연결되어서 수많은 투수들이 갈려 나갔음에도 보충할 선수들이 이천 팜을 통해 계속 보충될 수 있었을 뿐이고, 결국 팀을 한계까지 갈아넣는 무대포식 폭주기관차 운용이 한계에 이르자 그는 그대로 도망쳐버렸다.[31] 혹사 문제는 김성근이나 선동열, 김인식 등 KBO 리그에서 자유로운 감독이 없지만, 그것이 김경문을 실드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모든 혹사는 당연히 비난받아야 한다.[32] 야수진 운용이나 육성은 투수에 비해서 훨씬 낫긴 하지만, 그 유명한 두산의 화수분을 잘 받아먹은 결과일 뿐이다. 당장 그 전임인 김인식 감독 시절에도 정수근, 심정수, 김동주, 홍성흔 등 젊은 야수들이 상당히 많았고, 트레이드된 심정수를 제외한 나머지가 주축이 되어서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김경문과 그 밑에서 활약하던 주전들이 팀을 하나둘씩 떠난 뒤에도 두산의 야수 화수분은 여전히 건재하다.
즉 김경문은 투수 육성에 전혀 일가견이 없고, 대체 선수를 키워내는 능력마저 사실상 전무함에도 투수를 초년차부터 있는 대로 굴려왔고[33] 그 결과 완전히 두산 투수진을 멸망에 이르게 만든 인간 백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NC팬들 중에는 두산 시절에만 그랬던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하지만, 어디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NC에 가서도 그 버릇은 그대로여서 2015시즌 최금강을 시즌 중에 너무 굴린 나머지 플레이오프에선 써보지도 못했고, 나성범을 투수로 기용하는 짓까지 벌여야만 했다.[34][35] 마무리 선발 중간 오가면서 혹사당하는 이민호의 기용이 마치 예전 임태훈을 굴리던 방법과 너무 유사해 보인다. [36]
여기에 김경문 감독은 두산 베어스의 좌완 잔혹사를 끊어내긴커녕 더 심화시켜 버렸다. 이는 김진욱 시절 유희관이 자리잡으며 안정되기 시작했고, 김태형 감독이 부임한 15시즌에는 장원준[37], 이현승, 진야곱[38], 허준혁, 이현호, 함덕주 등이 우수수 쏟아지면서야 끊어낼 수 있었다.[39]
2.2.2. NC 시절
특정 불펜 투수에 대한 과도한 기용이 있었지만, 퀵후크를 남발하며 여러 불펜을 동시에 혹사하거나 선발감 유망주를 모조리 불펜으로 갈아넣어 불펜 붕괴가 일어난 경우는 없었다. 좌우놀이+타자 퀵후크로 살려조에게 타자를 맡기는 등의 짓도 없다. 다만 이쪽도 김성근마냥 투수와 타자의 보직파괴라는 짓을 하긴 했다. 그것도 포스트시즌에서!2014년까지 NC는 신생팀 메리트로 외국인 선수를 한 명 더 기용할 수 있었고, 이 중 찰리 쉬렉과 에릭 해커가 이닝 이팅을 확실하게 해줬으며, 국내파 중에서는 이재학이 호투하면서 선발진은 괜찮아졌지만 지속적인 불펜 불안이 심해지면서 한동안 이재학을 마무리로 돌리기도 했다. 그나마 곧 다시 선발로 복귀시키고 노장 손민한을 마당쇠로 기용하며 두산 시절보다는 선발에 무게를 두고 있다. 2014년이 지나면 외국인 선수+1 메리트가 없어질 것이고 불펜에서 마당쇠 역할을 해주는 손민한의 선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사이 팀을 얼마나 정비해서 NC의 투수진을 꾸려나가냐에 따라 향후 감독으로서의 역량이 결정될 듯 하다. 일단 5월 초를 기준으로 보면 원종현과 홍성용이 불펜에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상당히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2014년까지는 선발진이 안정되어 있었고 이닝도 많이 먹었기 때문에 크게 불펜 혹사라고 여길 만한 기록도 없었으며[40][41] 2015년에는 5선발로 손민한을 투입하여 최고령+역대 최초 40대 10승 투수로 민한신으로 부활시켰다. 5선발인 이민호의 경기만 아니라면 롱릴리프가 거의 필요없는 수준이었던 덕분에 혹사를 부를만한 상황이 딱히 일어나지 않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두산 시절보다는 선발진에 좀 더 무게를 두려는 것 같았다.
불펜진의 경우 김진성이 부상으로 빠지고 원종현마저 대장암으로 스프링캠프 중 빠지자 임창민을 마무리로 돌려서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42] 이외에 구창모와 유격수 출신의 박준영이라는 신예가 등장한데다 대장암을 이기고 복귀한 원종현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두산 시절의 '젊은 유망주는 곧 불펜으로 가서 팔이 갈린다'는 평가와 사뭇 다른 모습처럼 보였다.
허나 2017년, 순수 구원이닝만 따졌을 때 김진성이 89.2이닝, 원종현 80이닝, 이민호 78.1이닝, 임창민 66이닝으로 두산 시절을 뛰어넘는 미친 혹사를 저질렀다. 특히나 김진성은 한미 합산 구원이닝 1위를 기록했고, 임창민은 붙박이 마무리가 66이닝을 소화한데다 원종현은 암 수술을 받고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80이닝 넘게 굴리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투수운용을 했다. 물론 1차 원인은 에릭 해커를 제외한 NC 선발진들이 전부 부진했던 것이 컸으나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선수들의 구속이 모두 140km 초반대에 형성되고 제구도 불안해져서, 과연 내년 시즌에 정상적으로 불펜진이 가동될 수 있을지에 의구심이 들 정도다. 김경문 감독 본인도 2016년 후반기부터 장현식과 구창모 등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선발 기회를 주면서 어떻게든지 로테이션에 정착을 시켰고, 정수민이나 이형범같이 2군 선발들에게 기회를 주고는 있으나 그 성과가 아직까지는 미진하다.
그 결과, 시즌 막바지에 투수진이 몰락하면서 6경기 연속 10실점 이상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한때 12경기차를 유지하던 롯데 자이언츠에게 0.5경기 차로 밀리면서 팀 전체가 삐걱거렸다. 특히 후반기 롯데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조원우감독이 박세웅을 휴식, 김원중을 시즌 초 10일 로테이션 휴식, 손승락을 61경기 62이닝 등 투수관리에 아주 철저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실상 2년차 초보감독만도 못한 투수 운용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난을 듣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팀은 공동 1위에서 4위로 추락했고, 김진성은 89.2이닝을 소화한 후유증으로 정규시즌 잇따라 무너지다 가을야구에서도 한 번 무너졌다.[43] 2016 시즌 155km/h에 육박하는 공을 던지다 혹사 여파로 가을야구에서 145km/h 주변에 패스트볼 구속이 형성되던 (암 투병 후 복귀도 얼마 안 되었던) 원종현도 2010 시즌 고창성의 재림을 보기라도 하듯 와일드카드부터 준PO 5차전까지 전 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다행히 7연투까지 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믿었던 에릭 해커가 무너지고 제프 맨쉽이 아예 불펜으로 강등되는 등 선발진이 무너진 플레이오프에선 선발이 강하고 불펜이 취약하다는 평이 있던 두산의 선발진을 무너뜨리고도 김진성, 원종현, 임창민, 이민호 등이 필승조들이 모조리 무너져 패전조 수준으로 전락. 지는 경기마다 두 자릿수 득점을 상대에 퍼주며 혹사의 대가를 이자의 이자까지 혹독하게 지불하고 1승 후 3연패로 3년 연속 두산에 밀려 우승이 좌절되고 말았다.
거기다 구창모, 장현식 등 선발자원들 중에서도 버두치 리스트에 올라와있는 선수들이 많은 만큼, 2018 시즌에 투수진을 추스르지 못하고 또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운용을 계속한다면 그 김성근에 필적하는 혹사의 아이콘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NC는 2차 드래프트에서 롱 릴리프 자원을 집중적으로 뽑았다.
2018년, 결국 기존의 필승조는 붕괴되었다. 김진성, 원종현은 부진에 빠졌으며[44] 임창민은 팔꿈치 수술로 시즌 아웃. 두산 감독으로 있던 마지막 해보다도 마운드 붕괴가 더 빨리 다가왔고, 그 결과 삼성에게까지 밀리며 꼴지로 추락했다. 심지어는 새로운 외국인 하나는 이닝 소화력이 떨어지고 하나는 컨디션 난조로 휴식차 2군에 가있는 상황에 에이스 장현식마저 감감 무소식임에도 2군에도 쓸만한 자원이 없는지 이틀 휴식 후 선발, 퓨처스에서의 많은 투구후 콜업되어 3연투 후 이틀 휴식 후 선발이라는 선발을 단지 첫번째 투수로만 여기는 듯한 투수 운용까지 나타나고 있다.[45] 이전부터 김경문을 비판해오던 팬들은 "이제 두산 말년 때처럼 또 도망가야지?"라고 비웃는 중.
5월 20일 1회부터 얻어맞던 이재학을 2회 첫 타자 출루 후 곧바로 강판시키고 노성호, 강윤구, 최금강 등을 줄줄이 올렸으나 강윤구를 고작 한 타자만 잡고 내리더니 원래 잘 던지는 타입이 아니던 투수들은 길게 끌고 갖고 결국 김진성이 남은 2이닝을 책임지다 11실점을 기록하는 최악의 경기를 하게끔 만들었다. 물론 전날 3이닝을 던진 원종현, 2연투째던 배재환, 마무리 이민호 등을 지고 있는 가운데 또 쓸 수 없었다는 변명거리가 있긴 하지만 많은 야구팬들은 온갖 시련을 다 겪고도 팀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던 다른 팀 선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5월 22일 경기 전 인터뷰에서 팀 사정상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으나, 애초에 그런 상황을 누가 만들었는지 생각해보면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자진사퇴를 빙자한 경질 엔딩.
그리고 두산 시절과 마찬가지로 NC에서도 감독 재임 중 좌투수로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매번 엔트리에 좌투수는 하나밖에 없었을 때가 많았으며[46], 포스트시즌에는 구창모를 불펜으로 돌리면서 두 명을 돌리는 식으로 해결했다. 그나마 구창모는 김경문이 짤린 이후인 2019년 데뷔 첫 10승을 기록하면서 뒤늦게 빛을 보았다.
2.2.3. 투수 운용에 관한 결론
각종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김경문 감독이 혹사를 시키는 감독이라는 건 일부 맹목적으로 팀을 지지하는 NC팬들을 제외한 10개 구단 야구팬은 전부 다 인정한다. 물론 프로야구에서는 성적이 중요하고 성적이 좋으면 일정 부분 커버가 되는 것도 맞다. 평생을 불펜야구를 해왔고 SK로 부임 후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서 KBO 전체를 불펜야구 판으로 만들었던 김성근 감독이 그랬고[47] 해태왕조를 이끌던 김응룡 감독이 그랬고 베어스를 2회 우승 시킨 국민감독 소리 듣는 김인식 감독도 마찬가지다.두산 팬들도 김경문 감독이 사령탑이던 시절에는 투타에서 초토화 상태였던 두산 야구를 발야구와 번트 없는 강공야구로 부활시키고 매년 가을야구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부분 진심으로 좋아했었다. 불펜 운영도 왕조라고 불리던 SK 팀에 맞서기 위해 우승을 위해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라고 팬들이 먼저 나서서 김경문 감독을 옹호하던 시절도 있었다.[48] 그랬기에 두산 선발진이 약한건 두산의 한심한 투수자원들, 투수코치 탓이라고 생각했고 그 시절 두산이 불펜야구를 했던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임인 김진욱 감독 체제에서 노경은, 유희관 등이 발굴되면서 선발야구가 이뤄지자 두산 팬들이 김경문의 투수 운용을 (다른 의미에서) 재평가하기 시작했고, 일수강점기를 지나 김태형 감독 체제에 들어서는 선발의 힘을 더더욱 뼈저리게 실감하기 시작하면서[49] 이제 이 평가는 절대 돌이킬 수 없어졌다. 그리고 김진욱은 전임감독 김경문이 투수진을 황폐화시켜버리고 떠난 두산의 감독을 맡아 부임 2년 동안 모두 가을야구 진출과 더불어 2년차에는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기록하였고, 김태형은 단일 팀 최초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의 대기록을 달성하며 3번의 우승의 대기록을 달성하며 5년이 넘는 오랜 시간 두산의 감독을 맡았음에도 무관에 그친 김경문의 지도력에 대해서도 안좋은 의미로 재평가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진성, 최금강, 임창민, 원종현 등의 사례가 예전과는 다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은 핑계나 실드 밖에 안되는 것이고 두산시절만큼 혹사 범주에 들어가는 투수의 수가 적다고 해서 그것이 옹호를 받거나 정당한 행위가 아니다.
2016 시즌만 봐도 암 투병 후에 5/31 복귀한 원종현이 64이닝을 넘게 던지고 있고 시즌 막판 어느정도 순위경쟁이 안정권에 들어간 상황에서도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거나 비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잦은 등판은 계속 됐다.
이런 운영 방법이 꼭 2연투, 3연투, 투구수 제한 같은 뻔한 수치에는 어긋나지 않으니까 혹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정말 선수를 소모품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행동이다.[50][51]
분명히 김경문 감독이 두산에서의 오랜 경험을 통해서 NC에서 팀을 운용할때는 그 전 보단 혹사를 덜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운영을 전혀 하지 않는 감독이라는 식의 이야기는 옳지 않다. 혹사당하는 선수의 규모는 줄었을지 모르지만 특정 선수에 대한 사용 방식은 두산 시절과 비교해도 전체적으로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본인의 평가나 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본인이 변해야 하는 부분이다.
한편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조상우를 4연속 등판으로 100구가 넘는 투구수를 기록하게 만들어 다시 한번 혹사의 위엄을 보여주었다.[52]
2.2.4. 관련 문서
2.3. 감의 야구, 믿음의 야구
대체로 번트보다 강공을 선호하는 감독인데, 기묘한 타이밍에 갑자기 기습 세이프티 번트를 시도한다거나 좌타자 상대로 갑자기 옆구리 투수를 기용하는 등 뜬금없는 작전이나 투수교체를 하곤 한다. 베이징 올림픽 때 좌투수인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좌타자인 김현수를 기용하는 장면[53]에서 성공하는 등 의외의 기용으로 재미를 보고, 작두를 타셨다는 말까지 나왔었다. 성공했을 경우에는 확실히 신의 한 수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일단 과감성만큼은 높이 살 수 있다.그러나 작게 보면 성공적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패배를 많이 남기는 편인데, 포스트시즌 같이 큰 승부에서 유난히 믿는 놈만 믿다가[54] 자멸해 버리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포스트시즌 같은 단기전 승부에선 정규시즌과는 달리 변칙적인 라인업을 낸다던가 시리즈 내내 감이 안좋은 선수에 대한 타순 조정 등은 벤치의 역량임에도 불구하고 정규시즌과 같은 라인업과 감이 안좋은 선수에 대한 믿음을 빙자한 방임[55], 인디언 기우제식의 무지성 기도메타로 특히나 한국시리즈 중요한 순간에 매번 발목이 잡히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56][57]
팬들은 대체로 이해해주는 편이었으나 2011년 감독의 감의 야구가 거의 매 경기 발동하고 대체로 실패하는 상황이 되자 똘끼로 야구한다며 '똘경문'이란 별명이 떠오르고 있다. 그 과감함과 감이 좋은 쪽으로 발현이 된 건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이승엽 정도가 유일하다. 당장 같은 대회에서 부진하던 한기주가 미국전에서 9회 초에 등판해 0이닝 3실점으로 블론을 했음에도 일본전에 또 9회에 기용해 0이닝 1실점으로 블론을 저지를 뻔하게 하는 기용을 보여주는 등, 믿음의 야구의 허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7년에는 교체를 남발한다는 지적이 있다. 경기 초반 승부처에서 이호준 등등 노장들을 대타로 올리고 출루가 성공하면 대주자를 쓴다. 그러고 나서 그 이닝이 끝나면 대수비를 쓰면서 경기를 끝내는 식. 이 방법으로 재미를 봤던 적도 많았지만 후반에 가용 선수가 한정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만일 역전이라도 당하면 다시 이걸 뒤집어야 하는데 주전을 빼고 백업을 넣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 자체를 못한다는 것도 덤.
마이크 소시아하고 닮은 점 중에 가장 부각되는 점이 이거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로, 소시아는 WS 우승이 있다. 투수혹사와 더불어 경기 내적으로 가장 비판받는 부분인데, NC에서 신생팀 대비 우수한 성적으로 다시 평가를 호전시키기는 했지만 NC의 전력이 계속 강해지는 시점에서 계속 고집스런 운영이 지속될 경우 적어도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하지 못한다면 재평가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58]
2.4. 발야구
야수들을 기용할 때 주력을 강조하는 감독이다. 두산 시절인 2006년부터 이 특성이 두드러졌는데 이종욱을 필두로 고영민, 민병헌, 오재원 등등 발이 빠른 선수를 중용하면서 3년 연속 팀 도루 1위를 기록했다. 부임 직전 2003년에 두산의 팀 도루가 59개로 리그 최하위였던 것을 보면 팀 스타일을 완전히 바꿨던 셈. 이 기사를 보면 김인식 감독 아래서 배터리코치를 하던 시절부터 넓은 홈 구장을 쓰는 특성에 반해 팀 내에 발 빠른 선수가 거의 없어서[59]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적이 많아서 자신이 감독이 된 뒤 전체적으로 체질 개선을 시도한 듯 하다. 왕조 시절의 SK 와이번스와 함께 불펜야구와 더불어 발야구로 리그 트렌드를 주도했다.NC 시절에도 김종호를 도루왕에 올리는 등 그 기조는 변하지 않았으며, 이듬해에는 박민우를 50개의 도루로 신인왕에 올렸다. 심지어 2015년에는 NC의 팀 도루가 무려 204개였다. 후술하듯이 날이 갈수록 장타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더 많이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라인업 구성에 있어서 발빠른 선수들을 우선 기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2.5. 강공 위주의 선이 굵은 야구
김성근 감독의 스몰볼 야구와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김성근의 스몰볼 야구는 한점 한점 점수를 내고 철벽 마운드로 그 점수를 지키는, 치밀하게 이기는 야구라면 김경문 감독의 야구는 그와는 정 반대로 한방 한방 크게 점수를 내는 야구이다.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나서서 타격하는 지론을 강조하는 지도잔데, 이는 제리 로이스터랑 비슷한 부분. #두산 시절에는 발빠른 선수 외에도 중장거리 타자[60]를 다수 보유한 것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자신감으로, 득점권에서 번트를 적극적으로 대는 것 보다는 강공 위주로 점수를 내는 것을 선호한다. 한 증거로 2004년에서 2010년까지 희생번트 횟수가 401개로 8개 구단 중 꼴찌였다.
NC에서도 전술했듯이 1군 진입 초창기에는 김종호를 필두로 발야구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리그에 타고투저 현상이 더욱 심화되면서 장타 위주의 야구를 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나 FA로 영입한 이호준이나 박석민 외에도 자체적으로 모창민, 나성범, 권희동 등등 장타력이 있는 타자들을 육성하고 중용한다.
기본적으로 이런 빅볼은 선수들의 타격에 대한 믿음 없이는 구사할 수 없는 공격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팀의 득점력 강화나 타자 육성 측면에서는 좋고 실제로도 성과를 거두기는 했으나 이런 선수들의 타격감이 안 좋은 날에는 이러한 스타일이 믿음을 넘은 아집으로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김성욱이 2017 시즌 계속 부진했지만 이종욱이나 김준완 대신 먼저 기회를 줬다. 당연하겠지만 믿고 내보낸 선수가 잘 하면 다행이지만, 그 선수가 득점권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밑도끝도 없이 해당 선수나 팀이 부진하는 이유가 많기 때문이다.
3. 결론
김경문은 21세기판 강병철로 평가받는 리빌딩 전문가이나, 선발진을 도외시하고 젊은 투수들을 갈아마시는 투수 운용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한 장단점이 매우 확실한 감독이다. 강병철은 선발을 갈아마셔서 우승이라도 두 번, 그것도 롯데의 유이한 우승으로 하였으나 김경문은 그것이 불펜이었고 선발진 구성을 다소 소홀히 하였기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다.[61]일단 김경문의 리빌딩 능력은 아주 확실하나, 문제는 이것이 야수진에만 한정되어있다는 것이다. 야수진 면에서는 백인천, 강병철 수준의 역대 최고이나, 투수진 면에서는 윈나우형인 김성근보다도 떨어진다. 비슷한 리빌딩형 감독인 조범현, 양상문의 경우 전자는 육성능력은 물론 안목조차 널을 뛰는 다트 감독이고[62] 후자는 안목은 있으되 육성 능력이 떨어진다.[63] 이에 비해 김경문은 투타 모두 보는 눈은 확실하고 타선 리빌딩은 확실하게 진행한다. 그것도 신구조화에 기동력과 화력을 모두 겸비한 타선에 투수 짜먹기로 수년간 꾸준히 성적이 나온다.[64] 그러나 투수 혹사가 김성근에 버금가기 때문에 페넌트 레이스 1위나 우승은 지금까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으며, 재임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투수진이 붕괴되고 종국에는 이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어 팀은 무너지고 자신은 감독직에서 내려온다.
김경문은 그 특성상 초기에는 타선을 크게 강화시키나 투수진은 제대로 된 육성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계속해서 갈아마시기에 오랫동안 팀에 남아있으면 오히려 해가 되는 유형이다. NC 감독 마지막 해에는 성적에 대한 압박인지 자랑이던 리빌딩도 시원찮았다. 아무튼 지금까지 봤을 때 김경문 감독을 잘 활용하는 방법은 주제 무리뉴마냥 유망주와 재활시설을 충실히 갖춰 놓은 상태에서 3년 정도 맡겨서 리빌딩을 진행하고, 완료되면 그냥 헤어지는 것. 물론 리빌딩조차 못하는 감독이 결코 적지 않으므로, 이것만 보자면 김경문은 준 명장급 인물인 건 사실이다. 실제로 두 번의 감독직 모두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했고, 나가는 과정도 깔끔하지는 못했으나 금세 다시 일자리를 찾은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도쿄올림픽 감독을 맡더니 특유의 나쁜 단기전 능력과 올드스쿨한 투수 운용으로 성적은 물론 주축 선수들에게 큰 무리를 시커 긍정적 평가가 많이 사라졌다. 투수 혹사라는 단점과 부상선수를 뽑고, 직감이라는 작두타기로 중요한 경기를 맥없이 패했다.[65] 대회 시점부터 데이터를 보지도 않는다는 폭로 기사를 경기운영으로 전국에 입증한데다가, 마지막일지 모르는 올림픽 야구에서 실언도 여러 번 했다. 그냥 동메달이나 따자는 인식으로 준비했다고 오해될 "금메달을 따러온 것이 아니다"라는 실언, 당장 일본과의 준결승의 승부처인 동점 수비이닝에서 흔들리는 투수를 교체하지 않은 이유로 "내일 경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는, 한일전에 임하는 한국 체육인으로서 적절한 자세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애초에 질 생각이었냐는 오해를 살 실언을 쏟아냈고, 함께 인터뷰한 선수들이 국민들에게 사과할 동안 저런 실언만했다.
[1] 요새는 이 표현은 화수분 야구를 의미하는 긍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문차일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2] 김경문 실드가 없어지자 2차 드래프트로 풀렸다.[3] 범죄두 드립이 난무하기는 하지만 2천년대 들어 같은 수도권 구단인 LG가 비밀번호 탈출하고도 수시로 팬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지는 것과 비교했을 때는 준수하다. 두산과 마찬가지로 호평을 받던 넥센도 음주운전 사고가 터진 것은 마찬가지다.[4] 전임 김인식 감독시절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수습하고 바꾸는데 꽤 고생했다고 한다.[5] 이마저도 두 번은 자팀 선수가 이적했다 다시 돌아온 케이스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장원준이 유일하다.[6] 둘 다 KBO 역대 최악의 투수코치로 평가받는데, 이상군은 아예 별명 자체가 상군매직이었고 타팀 팬덤에게까지 널리 알려질 정도로 악명높다. 정현욱의 경우 투수들의 구속, 제구, 구위 등 순수 기량을 전부 아마추어 수준으로 퇴화시켰다.[7] 물론 이는 김성근이 선수 시절 투수 출신이었던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8] 비슷한 방식의 김성근도 사실 가을야구 통산 성적은 좋지 못하다. 단지 00년대 후반 김경문을 많이 털어먹은 덕에 커리어만 좋을 뿐. 일각에서는 당시 SK의 전력이 압도적으로 강했고, 진짜로 나오는 투수들마다 잘 던졌을 뿐더러 김광현이라는 슈퍼에이스가 있어서 묻혔을 뿐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냉정히 살펴보면 김광현은 당시 신인에 시즌 성적도 딱히 뛰어나지 않았고, 김성근은 본인 이전까지 투수 타이틀 수상자가 한 명도 없었던 팀에 부임해서 팀 구성원 전체를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것은 물론 본인의 데이터 분석까지 성공하면서 강팀으로 올라섰다. 다른 거 다 제쳐두고 김광현 하나만 보더라도 김경문의 투수 육성 능력은 김성근보다 더 막장이다. 애초에 김성근은 단기적으로 성적을 내는 윈나우형이고 김경문은 리빌딩형이나, 투수진 면에서는 오히려 윈나우 감독인 김성근 쪽이 육성이나 전력 보존등 모두 김경문보다 나을 지경이다. 이 평가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평가인지는 살려조를 보면 알 수 있다.[9] 그리고 김성근이 혹사 및 마구잡이 투수 기용 등으로 말이 많다 할지언정 투수의 건강 및 루틴에 맞춰 적재적소에 기용한 사례도 은근 있는 편인데, 정우람과 함께 SK 벌떼 불펜의 핵이었으며 국제대회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보여줬던 정대현이 대표사례다. 패스트볼, 완급조절, 수싸움이 강점이었으나 내구성이 심각하게 약했던 언더핸드 투수로, 김성근은 정대현을 기용할 때는 다른 투수들보다 매우 신중했으며 10~11 두 시즌 도중 SK의 투수진에 구멍이 생겼을 때도 정대현만은 등판 일정, 투구수, 이닝을 철저하게 지켜서 투수로서의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하게 할 수 있었다. 당장에 김성근 경질 이후 이만수나, 이후 롯데가 정대현을 투입할 운영 당시를 보면 투수 운영에 있어서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확실히 김성근이 김경문보다 몇 수는 위였음을 알 수 있다.[10] 이마저도 켈빈 히메네스를 제외하면 제대로 해 준 선수가 얼마 없다.[11] 두산이 김경문 감독의 소모식 불펜야구로 황폐화된 상황에서 관리야구로 선수들을 보호하며 현재 두산의 선발야구 시스템과 불펜 체계화 시스템을 자리잡게 한 사람이 다름아닌 김진욱 감독이다. 더 가관인 점은, 김진욱은 이미 김경문 시절부터 코치로 있었음에도 코치 활용조차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다.[12] 물론 포스트시즌에서는 선발 등판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매우 유리했던 판세가 엘리미네이션 게임으로 몰리자 계투로만 등판한 선수를 선발로 등판시킨 거고 그나마도 패했다.[13] 참고로 2007년 임태훈 이후 고졸 1년차 투수 신인왕은 2019년 정우영(LG) 이전까지 한 명도 없었다.[14] 사실 이 자체는 무리수로 평가받지 않는다. 포스트시즌 투수 운용은 이런 사례가 흔했기 때문. 결과가 좋지 못했으니 까임거리는 되겠지만, 하필 그 경기에서 타선이 고졸 신인 선발투수한테 안타 하나밖에 못 따내며 틀어막힐 줄 누가 알았겠는가.[15] 80~90년대를 제외할 경우 데뷔 2년차에 포스트시즌 포함해 140이닝 넘게 구른 이동현이 거의 유일하게 능가한다. 특히 이동현은 빠른생일이라 18살에 데뷔했고 데뷔 시즌에 선발 불펜 합쳐져 100이닝을 넘겼던지라 혹사의 퀄리티는 고졸신인 임태훈보다 한수 위다.[16] 굳이 찾자면, 선발, 롱 릴리프, 추격조, 마무리 가라지 않고 3년간 4948구를 뿌린 전병두. 심지어 이마저도 선발로서의 기록이 포함된 것이며, 무엇보다 저 시점의 전병두는 고졸 신인의 입장이 아니다! 다만 김성근의 악질 팬덤이 이에 대해 김성근을 쉴드치는 근거처럼 김성근이 잡기 전부터 이미 인대가 정상이 아니었던 것도 사실이다.[17] 2010년 시즌 두산의 정규시즌 결산 최훈 작가의 카툰에서는 홈런볼을 던지는 임태훈이 묘사되었다. 투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메이저리그 기준에서도 손꼽히는 크기인 잠실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투수가 그런 기록을 냈다는 것은 구위가 하락한 투수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최훈작가의 2010시즌 임태훈 묘사[18] 이마저도 선발로서 2010년을 준비시킨 게 아니라 시즌 개막 이후 털리니까 급하게 바꾼 것이다.[19] 특히 그가 나온 학교는 특정 투수를 줄창 돌리기로 악명높았던 경성대학교다.[20] 본인은 그게 아니라고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마무리와는 한참 거리가 먼 체질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통산 기록에서도 선발로서의 ERA나 계투로서의 ERA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고, 세이브 1위 타이틀과 신인왕을 동시에 수상했던 09시즌도 ERA는 4점대였다. 타고투저 시즌임을 감안해도 마무리로서는 낙제점에 가까운 평균자책점이다. 당장 당해 세이브 3위 유동훈의 ERA가 0점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더더욱 초라해보일 수밖에 없는 기록. 사실상 세이브 숫자도 야수진의 수비 능력 덕택에 쌓아올린 셈이며, 결론을 내리면 이용찬은 처음부터 붙박이 선발로 키웠어야 되는 선수였다.[21] 이 또한 그냥 감독이 꽂혀서 무작정 박은 게 아니다. 2017년 스프링캠프에서 여러 젊은 투수들을 시험한 뒤 최종적으로 함덕주와 김명신이 끝까지 5선발 경쟁을 했고, 그 끝에 함덕주가 선택된 것이다. 김명신도 비록 선발 경쟁에서는 밀렸지만, 1년차 신인임에도 패기넘치는 피칭을 보이며 대체 선발로 올라왔을 때도 충분히 가능성을 보였고, 불의의 부상을 당했지만 이를 이겨내고 후반기에 돌아와 불펜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22] 사실 이종욱, 김현수, 손시헌 등의 뛰어난 야수 육성능력에 묻혔다고 보는 게 맞다.[23] 물론 김진욱은 이후에 불펜 육성 실패로 인한 어려움을 겪지만 이는 김경문이 물려주고 간 투수 자산 대부분이 박살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는 16시즌까지 영향을 미쳤다. 16시즌 최강 선발진을 구축하고 압도적인 리그 우승을 달성한 두산의 유일한 약점이 선발이 내려간 직후 나오는 불펜이었다.[24] 결국 이혜천은 선발로 보직을 변경했고, 다행히 관리받게 된다. 이혜천 대신 혹사의 제물로는 2군에서 올라온 김성배가 낙점되었다.[25] 특히 차명주는 2001년에만 84경기에 등판하는 정신나간 혹사 때문에 김경문이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부터 이미 망가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하라는 관리는 안 하고 신나게 굴린 것이다.[26] 결국 정성훈은 군복무 이후에 재기하지 못하고 은퇴했다.[27] 결국 김성배는 군복무 이후, 전형적인 2군 투수로 전락했지만 롯데에서 부활했다.[28] 당장 플레이오프에서 기다리고 있던 삼성조차도 5경기 내내 혈전을 펼친 탓에 한국시리즈에서 무기력하게 스윕당했다는 걸 생각하면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로 두산 투수진의 체력은 바닥나 있었다. 오히려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면 스윕패로 끝났을지라도 고창성은 그 4경기를 모두 등판해야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선수단이 힘을 더 내서 5차전 이상 끌고 갔다면 고창성의 등판횟수는 거기에서도 더 늘어났을 것이다.[29] 당장에 당시 투수코치였던 김진욱이 감독이 되어 유희관과 노경은을 선발로 키워냈다.[30] 정반대 용어로, 선발 야구를 하던 조범현 감독 시절 KIA에서는 8이닝 이상 2실점 이하를 기록하면 갸리티 스타트라고 칭하는 일이 있었다.[31] 2004~2011년에 감독을 맡아 차명주는 04년 1년차에 77경기를 굴리고 망가졌고, 김성배는 05년 감독 2년차에 72경기에 내보내 굴리고 망가져서 롯데로 보냈고, 임태훈은 07년 감독 4년차부터 굴리기 시작해 3년간 개처럼 굴리고, 이재우는 2004년부터 불펜, 셋업, 스윙맨, 선발 가리지않고 굴리다 2010년에 결국 팔꿈치 부상으로 2012년이 돼서야 돌아왔고, 정성훈도 1년차부터 79경기에 내보내는 등 감독 커리어 초년부터 혹사는 일상적이었다.[32] 김성근만 봐도 과거에는 김성길과 김현욱, 신윤호, SK에서는 전병두, 윤길현 등이 있고, 선동열은 권오준, 권혁, 정현욱 등을 족치던 걸로 악명높았다.[33] 속된 표현으로, 싹수가 보이면 무지성으로 불펜에 박아놓고 갈아먹다가 망가지면 다음 희생양을 고르는 것에 가깝다.[34] 물론 나성범은 연세대 시절 대학리그를 씹어먹던 좌완이었지만 그것도 투타를 겸했던 1, 2학년 한정이고 투수에 전념했던 3, 4학년에는 되레 성적이 떨어졌다. 프로 입단 후에는 타자로 전향한지 어느 새 4년차고, 프로 무대에서 투수로 등판한 적 역시 없다. 시즌의 마지막 순간에 나성범을 등판시키겠다고 공언했는데, 이 말을 여기서 지킨 것부터 우리 경기 졌소 하는 꼴이다. 프로생활 내내 타자로 뛰었던 선수를 KBO 올스타전이나 자선야구 같은 이벤트전도 아닌 정식 경기, 그것도 당장에 한국시리즈행이 결판나는 플레이오프 5차전 9회 초, 시즌의 마지막 경기일 수도 있는 경기였는데 그 경기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게 될 수도 있는 마운드에 내보냈다는 건 그 급박한 상황에서 말이 안 되는 행동이다.[35] 게다가 멀쩡히 경기를 뛰고 있던 야수를 뜬금없이 투수로 등판시키는 운용으로 인해 그 경기의 지명타자 롤까지 날려버렸으며, 그로 인해 NC의 막강한 나이테 클린업 중에서 이호준이 9회 말 공격에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투수진이 완전히 바닥난 것도 아니고, 크게 이기거나 크게 지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 9회에 꼴랑 2점 차이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동점을 만들어 연장이라도 가려고 해야 정상인 마당에 이런 짓을 했다는 건 지켜보는 팬들 입장에서는 맥이 탁 풀려버릴 상황이고, 상대팀 입장에서는 거의 능욕당한 수준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실제로 투수교체 당시 두산 측 덕아웃을 비췄을 때 표정들을 자세히 보면 두산 선수들이 단체로 벙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시즌 내내 고생했던 NC의 불펜투수들도 헛수고만 해버린 꼴. 나성범의 투구내용이 나름 좋은 편이었으니 망정이지 혹시라도 그 타이밍에 불이라도 났다면, 만약에 나성범이 9회 초에 1점이라도 내줬는데 9회 말에 2점 따라가고 경기가 끝나기라도 했다면? 김경문은 전례없는 수준으로 개같이 까였을 것이다. 상황을 바꿔 두산 김태형 감독이 플레이오프 5차전 9회에 근소한 차이로 지고 있는데 팬서비스랍시고 뜬금없이 정수빈과 홍성흔을 배터리로 출장시켰다고 생각해보자. 이쯤되면 경질 얘기가 나와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36] 사실 이민호는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팀에서도 어떻게든 선발로 키우려고 했으나 본인이 그 기회를 날려먹은 케이스다. 선발로만 등판하면 부진에 빠지니... 그래서 별명도 이(민호는)불(펜이)딱(이다). 비슷한 예로는 강윤구가 있다.[37] 단, 장원준은 외부 FA 영입이라 경우가 다르다.[38] 이현승과 진야곱은 김경문 시절에도 있었지만, 미미한 활약이었다. 특히 이현승이 10억 군인이라는 조롱거리가 됐던 이유도 영입 초기에는 매우 부진했기 때문이다.[39] 진야곱, 허준혁, 이현호는 더스틴 니퍼트, 이현승, 노경은의 부상과 유네스키 마야, 앤서니 스와잭등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으로 인해 생긴 로테이션의 공백을 메우며 선발 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함덕주는 두산 불펜진에서 희망의 싹을 틔웠으며, 이현승은 시즌 전엔 선발로 예정되었다가 개막 직전에 닥친 부상을 딛고 마무리로 보직을 전환한 후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에서의 철벽과 같은 대활약으로 2015 WBSC 프리미어 12 엔트리에 뽑히며 국가대표 주전 마무리로까지 활약을 펼쳤다.[40] 각각 2013, 2014년에 팀 불펜 내에서 많이 나왔던 임창민 원종현에 대한 말만 있었다. 하지만 원종현은 암으로 2015 시즌을 빠졌고 결국 2015년까지는 혹사당할만한 투구를 한 적이 없었다.[41] 다만 2014년 원종현의 등판 일지를 보면 추격조인지 필승조인지 구분 없이 등판시켜서 긴 이닝을 먹게 하는 일이 잦았다. 특히 올스타 브레이크 전 두산과의 경기에서 비가 내리는 상황에 상황을 가리지 않고 등판시킨 이후 폼이 내려간 뒤 2군에 있다가 암이 있다는 결과를 받은 후 2015년 경기를 뛰지 못한 것을 감안해야 한다.[42] 사실 이때부터 최금강에 대해서는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한화의 살려조 및 넥센의 조상우에 가려져서 그렇지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등판을 많이 했던 편.[43] 1점차 8회에서 솔로 홈런을 맞아 해커의 승리가 날아갔다. 뜬공 유형의 투수가 구속/구위를 잃으니 피홈런이 잦아지는 건 당연한 순서다.[44] 원종현은 2군에서 선발로 등판시키며 선발 전환을 준비 중이라고 했으나 그냥 길게 던져보는 연습을 시킨 거라고 한다.[45] 결국 김건태는 2연속으로 2회도 못마치고 그야말로 미친듯이 얻어맞았다. 최성영이 호투해주고 있긴 하나 오늘만 살고자 하는 루틴 속에서 당장 선수가 잘 던지고 있다고 마냥 좋아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46] 2014년까지는 손정욱, 2015년 이후부터는 임정호. 그나마 두 선수 다 원 포인트 릴리프 역할에만 한정되었다.[47] 김성근이 한화로 복귀하기 전까지의 위상과 성적이 안 나오는데도 투수를 갈아먹는 한화 감독 시절의 위상을 비교해보자[48] 역대 KBO 감독 중에서 우승 커리어 없이 한 팀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감독직을 누가 있는지 생각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사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우승커리어가 없이 준우승 및 가을야구 진출 경험만으로 한 팀의 감독직을 5년 이상 맡는다는 거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현재로서는 우승을 했다 하더라도 이후에 성적이 부진하면 잔여 계약기간이 남아있어도 바로 과감히 경질이 이루어져 버리는 상황에서 더더욱 그렇다.[49] 2015년에는 니퍼트가 시즌의 2/3가량을 날려먹는 상황임에도 믿을 만한 두 선발인 유희관과 장원준을 절대 땡겨쓰지 않으면서 진야곱∙허준혁∙이현호 등의 대체 선발을 기용하며 정규시즌 3위를 달성했고, 포스트시즌에서는 부활한 니퍼트를 필두로 그 개노답 투수진을 데리고 한국시리즈 우승, 그것도 업셋 우승을 달성했다. 2016년에는 KBO 역대급 선발진인 판타스틱4가 4인 동반 15승이라는 미친 활약을 하면서 아주 압도적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 2017년에는 함덕주가 5선발로 가세하면서 부상당한 보우덴의 빈자리를 메웠고, 시즌 초의 8위에서 결국 2위까지 올라가는 저력을 보였다.[50] 이런 언플로 명백한 투수혹사에도 비난을 피해가던게 바로 2014~15시즌의 염경엽 감독이다. 염경엽은 항상 투구수 제한, 휴식 일정 등 자신의 투수운용 원칙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면서 다른 감독들을 은연중에 디스했지만, 그 결과는 수술대에 오른 한현희, 조상우와 제대로 된 선발이 단 한명도 없는 황폐한 투수진이었다. 실제 염경엽은 넥센 감독 4년 동안 포스트시즌에서 밴헤켄 선발 경기를 제외하면 부실한 선발 때문에 대부분 패배했다.[51] 김태형 감독이 2016 시즌 통합우승을 이룬 초보감독이었음에도 시즌 중반까지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던 부분도 두산의 얇은 불펜진을 핑계 삼아 이기는 상황에서의 무조건적인 정재훈, 이현승 투입이었다. 결국 다음해 이현승은 마무리 자리는 물론 필승조에서도 탈락했고, 정재훈은 팔 골절 후 어깨 회전근 파열로 기약없는 재활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2017년에도 이기든 지든 김승회, 마무리 전환 전의 김강률, 이용찬을 거의 애니콜 수준으로 등판시켜 많은 비판을 받았다.[52] 조상우는 후반기에 팔꿈치 부상을 당했는데, 김경문에게 혹사당한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가뜩이나 조상우는 2018년 아시안게임 출전도 억울하게 무산됐었는데 여기서까지 메달 획득에 실패하여 이젠 병역 특례를 받을 길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자신의 그 알량한 고집 때문에 타팀의 시즌 운용까지 망가뜨려버린 것이다.[53] 그 시즌 김현수는 좌투수 상대타율이 우투수 상대타율보다 높았다. 그래서 좌투수를 상대로 대타로 낸 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작전이었다. 높이 평가할 부분은 만약 그 기용이 실패했을 경우 좌투수 상대로 좌타자를 내는 바보같은 기용을 했다며 비난을 퍼부었을 참새들의 입방아를 겁내지 않은 용기. 그런데 김현수는 그 다음해부터 장거리 타자의 스윙으로 타격을 개조하면서 좌투수 상대타율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즉 장타를 치기 위해 히팅포인트를 앞에 두면서 좌투수의 바깥쪽 변화구에 약해지게 된 것이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54] 이성열, 고영민, 이종욱, 김현수 등[55] 특히 중심타자가 슬럼프에 빠질수록 더욱 더 믿음을 핑계로 방치하는 경향이 심하게 도드라진다[56]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2008년의 김현수, 당시 타격왕을 차지했던 김현수는 한국시리즈에 들어오면서 극심한 타격슬럼프에 빠졌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3차전에서 패배를 확정짓는 병살타를 치고 멘탈이 완전히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김경문 감독은 김현수를 끝까지 3번 타순에 고정 시키면서 불과 몇달전 자신이 베이징에서 믿음을 주었던 이승엽이 보여준 기적을 보여주길 기대했지만 당시 김현수는 겨우 만 20세의 프로 3년차였던 어린 선수였고, 결국 5차전에 다시 한번 이번에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어주는 병살타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21타수 1안타, 4푼8리의 타율로 한국시리즈를 마감했고, 김현수 커리어에 가장 큰 상처로 남는 순간이 되었다.[57] 2015년은 특히, 이종욱 덕질이 심했다. 전반기야 그렇다 치지만, 후반기와 포시에선 거의 먹튀에 가까운 성적을 냈으나 , 이호준은 조영훈으로 잘만 교체해놓고, 이종욱은 김성욱, 김준완이라는 훌륭한 대체제가 있는데도 (이호준-조영훈에 비해) 거의 교체를 하지 않았다. 아무리 감독에 의해 검증된 선수라지만, 너무 심한 철밥통 뻘짓을 보여줬는데도 꿋꿋히 교체를 안하며 팬들의 속을 태웠다.[58] 오히려 단기전 능력의 경우 국가대표 감독 경력으로 퉁치는 것이 말이 되고, 단기전 능력이라는 것 자체를 믿지 않는 팬들도 있지만 정규시즌 우승 경력조차 없다는 것은 분명 명장 대우를 받기에는 하나 아쉬운 점.[59] 당시 두산에서 발 빠른 선수는 4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던 정수근이 있었지만 김경문이 막 감독으로 부임한 2003년 11월, FA 자격을 얻어 롯데로 이적했다.[60] 팀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한 김현수, 최준석, 이성열, 고영민이나 열심히 키우려 한 양의지, 김재환 등은 모두 중장거리 타자들이다.[61] 이 문제가 김경문 감독이 가장 비판받는 부분이다. 선수층이 얇은 KBO리그의 구조상 결국 우승을 하려면 어느정도의 희생이 필요한데, 김경문은 갈아먹기만하고 결국 우승은 하지 못했으니 가장 비판받는 점이다.[62] SK 시절에는 어느 정도 안목은 있었으나 육성 능력은 로또, 기아 시절에는 안목과 육성 모두 성과를 내었으나, KT에선 눈뜬 장님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안목조차 형편없었다. 그리고 김진욱 시대로까지 이어진 KT 투수진 붕괴의 핵심 원인제공자. 물론 조범현의 경우 너무나도 선수층이 얇았고 사건 사고가 많이 생겨서 팀의 분위기도 좋지만은 않은 상황인데다가 특히 이 일로 주축 투수가 한동안 경기에 못나오거나 멘탈이 흔들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수준에 치닫아 다른 투수로 메꾸려 했다는 변호가 통하기는한다. 무엇보다 당시 KT는 창단한지 얼마 안되는 신생팀이기도 하여서 성적이 좋지 않아도 시스템구축을 하는 과정이라는 전제하에 이해해주는 분위기다.[63] 당장 2018 드래프트에서 단장으로 초대박을 터뜨린 것을 보면 자체 육성능력이 아주 시궁창이었지 선수 보는 눈은 극도로 좋다.[64] 당장 김경문이 두산, NC의 감독직을 맡았을 당시의 분위기를 보면 두산은 김인식감독 시절 2002년의 부진과, 2003년 최악의 성적을 내면서 당시 두산은 분명 약팀으로 불릴 정도로 좋지 못한 상태였고, NC는 신생구단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독을 맡아 두산에서는 한국시리즈 3회 준우승 및 가을야구는 단골로 나가는 꾸준함을 보여주어 두산이 자랑하는 화수분 야구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정착시켜서 다시 강팀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고, NC에서는 창단 2년만에 가을야구를 진출하여 4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 및 한국시리즈 1회 준우승을 기록하였다.[65] 소위 말하는 믿음의 야구가 먹혔던 것은 베이징 올림픽 단 한 대회에 불과했다. 냉정하게 따졌을 때 대회에서 부진했던 이승엽이 결국 일본전 역전홈런과 쿠바전 결승홈런을 친 건 이승엽이 잘했을 뿐 김경문의 역량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이후로 두산과 NC의 감독 경력 동안 KBO 포스트시즌에서 핵심 선수들의 부진에도 변화 없이 그대로 기용하다가 패배한 전적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이미 현대야구의 트렌드에서 뒤쳐져있던 상태였다. 이미 전조가 보였음에도 베이징 올림픽의 추억보정 때문에 국대 감독이 될 수 있었으나 두 번째 요행은 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