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1 11:17:35

이희성(1966)

이희성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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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51번
신완근(1988) 이희성(1989~1995) 팀 해체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51번
팀 창단 이희성(1996) 최만호(1997~200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0번
이종두(1989~1996) 이희성(1997) 김훈(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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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희성
생년월일 1966년 5월 2일
출신지 전라북도 익산시
학력 원광대학교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9년 신고선수 입단 (태평양)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1989~1995)
현대 유니콘스(1996)
삼성 라이온즈(1997)

1. 소개2. 현역 시절3. 트리비아4. 기타

1. 소개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 등번호는 태평양, 현대 시절엔 51번이었다. 별명이 '이희성 장군'이었다고 한다. 이 사람? 눈썹이 굉장히 짙은 점이 인상적이다.

2. 현역 시절

1991년부터 1993년까지 태평양 돌핀스의 주전 외야수였다. 1991년에는 LG 트윈스로 이적한 김일권을 대신하여 주전 중견수로 활약하였다. 개막전인 잠실 LG전에 출장해서 3루타를 기록하고 1타점, 1득점까지 함으로 좋은 출발을 알리는 듯했으나 팀은 패배하였다. 1군 119경기에 출장하였고 타율이 0.229였다.(...)[1] 407타수 93안타 48사사구를[2] 기록했는데, 테이블세터로써 약간 아쉬운 편이었다. 하지만, 그 해 24도루(1991시즌 6위)를 기록하고 3홈런,3루타 7개(1991시즌 6위)를 기록하는 등 물빠따(...)였고 정명원, 최창호, 박정현, 박은진을 주축으로한 짠물 야구의 투수진으로 먹고 살았던 태평양이 1991시즌 5위를 기록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나름 테이블세터 역할을 수행하였다.

1992시즌에 100경기를 나왔으나 전 해에 비해 도루 수가 줄었다. 부상으로 고생한 탓이 컸다.(61안타 1홈런 10도루) 이 해에는 또다른 테이블세터인 여태구[3]가 이희성을 대신하여 테이블세터에서 하드캐리하였다.

1993년은 114경기에 출장하여 1번 타자로써 임무를 수행하였다. 시즌 성적은 0.231 389타수 90안타 2홈런 19도루 33사사구[4]였다. 타율이 여전히 낮은 점은 아쉬웠지만, 도루부문 순위 10위를 기록하면서 분전을 하였으나 팀이 1993시즌에는 너무나도 허약하여 역부족이었다. 이 해 부상선수가 속출하여 전력이 크게 하락된 태평양 돌핀스는 0.310의 낮은 승률로 압도적인 꼴찌를 기록하고 만다...

1994시즌에도 레귤러 멤버로 활약하려 하였으나, 부상으로 인하여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었다. 그래도 1994년 한국시리즈에 출전멤버에 이름을 올리고 3차전에 1번타자로 선발출장을 하였으며, 4차전에 대타로 출장하여 볼넷으로 출루하는 근성을 보였다.

1995시즌부터는 김인호와의 주전경쟁에서 밀려 현대 시절까지 주전과 백업을 오가는 플래툰 신세를 지다가[5] 1996년 시즌 후 자칭 푸른 피가 흐른다는 내야수 강기웅을 상대로 투수 최광훈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되었다. 하지만 강기웅이 현대 이적을 거부하여 1997 시즌 전 임의탈퇴 공시되었고, 삼성에서도 이희성은 몇 경기밖에 나오지 않았고 최광훈은 결국 1군에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 이 트레이드는 양쪽 구단에게 전혀 소득이 없었던 트레이드였다. 1997년 1군 13경기에만 출장하고 시즌 후 현역 은퇴를 선언하여 선수 생활의 커리어를 마무리지었다.

3. 트리비아

여담이지만, 도루수가 많지는 않았어도 주루 센스가 훌륭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는 1996년 한국시리즈 2차전 해태 타이거즈와의 광주 원정 경기에서 대수비로 들어갔다가 11회초에 해태 투수 김정수의 공에 번트를 댔는데 이 번트 타구가 절묘하게도 3루 방향으로 투수와 포수 사이에 떨어져 체공 시간이 긴점을 이용하여 1루에 선착하였다. 이후 도루로 2루까지 간 다음, 바뀐 투수 이강철의 보크를 유도하여 3루로 들어간다. 타자 권준헌의 유격수 기습안타때 득점하여 현대 유니콘스가 2:1로 승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키쿠사카 코쵸? 이 한국시리즈 2차전의 승리는 인천 연고팀의 첫 한국시리즈 승리이기도 하다.

4. 기타

마구마구에서는 이다성이라는 이름으로 선수카드가 등록되어있다. 91, 93이다성 카드는 스페셜 등급인데 홈런을 많이 쳐낸 선수는 아니었지만 레벨업 유형이 컨택트형이 아닌 파워형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레벨업과 타운훈련을 충실히 해준다면 파워 상은 가뿐히 만들어 낼 수 있다. 원래 스피드도 빠른지라 게임상에서 어느 정도로 호타준족의 선수로 활용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고인물이 가득한 마구마구에서 이다성 선수카드를 주전으로 쓰는 것은 무리이고 대주자로의 활용은 나쁘지 않다.


[1] 그래도 제한된 출루 기회에서 베이스에 대한 집념으로 도루를 24회나 하는 건 정말 대단한 거다. 비슷한 사례로 1987년 태평양의 전신인 청보 핀토스에서 활약한 이해창은 타율이 0.232밖에 되지 않으나, 무려 54도루를 기록하는 위엄을 선보였다.[2] 45볼넷, 몸에 맞는 공 3회[3] 1964년 12월 10일생. 동산고-인하대 출신이며, 1992시즌 0.290 114경기 100안타 9홈런 13도루 기록.[4] 29볼넷, 몸에 맞는 공 4회[5] 1996년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상대투수가 김기덕일때 장광호의 타석때 대타로 나섰다가 당시 쌍방울의 감독이었던 김성근이 곧장 조규제로 교체하자 배트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김상국으로 다시 교체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