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0 14:30:41

노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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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노환수(盧煥秀 / Hwan-soo Noh)
생년월일 1984년 6월 30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학교 부산중앙초 - 부산중 - 부산고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3년 드래프트 2차 3라운드 22번[1]
현대 유니콘스 신고선수 입단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2003~2007)
넥센 히어로즈(2008~2013)
종교 불교

1. 소개2. 선수 시절

1. 소개

넥센 히어로즈에서 뛰었던 좌완투수. 조용훈과 함께 현대 막바지 전천후 불펜이자 김시진의 혹사를 상징하는 투수이다.#

2. 선수 시절

부산고등학교를 졸업[2]하고 2003년 현대 유니콘스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았다. 그러나 계약을 앞두고 어깨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현대는 계약 체결을 보류했고, 결국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입단 이후 팔꿈치 수술도 받았다.

2004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삼성의 왼손 투수들에 대비해 배팅볼을 던져 주기 위해 올라왔는데, 이 때 우연히 김시진 당시 현대 투수코치의 눈에 들어와 그의 조련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담금질을 거쳐 2005년 감격의 데뷔 첫 승을 따낸다. 2005년 성적은 52경기 43.2이닝 ERA 3.92 1승 1패 7홀드.

이후 몇 차례 선발로도 기회를 받았지만, 주 역할은 왼손 셋업맨이었다.[3] 2007년 51경기 26이닝 ERA 3.12 1승 10홀드를 따내면서 그럭저럭 자기 역할을 했지만, 히어로즈로 팀이 재탄생한 이후에는 4.39의 평균자책점에 1승 3패 1세이브 8홀드로 전에 비하면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009 시즌은 전년도에 2번째로 받은 팔꿈치 수술로 인해 1군 1경기에 그치고 완전히 시즌을 날렸다. 결국 2009 시즌 종료와 동시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해서 군 문제를 해결한 후, 2011년 소집 해제됐다. 팀을 떠나 있는 동안에는 틈틈히 사회인 야구 코치도 잠시 맡았던 듯. 2010년에 또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2012 시즌 시작 전에 오윤과 세트로 KIA 최희섭과의 2:1 트레이드 대상으로 거론되었으나 결국 트레이드가 불발되었고, 2012 시즌 내내 2군에 있었다.

계속 재기를 노리며 마무리 캠프, 스프링캠프에도 참가했지만 2013년에도 또 통증이 찾아와 2군 4경기에 그쳤다.

결국 2013 시즌 후 임의탈퇴를 요청했다. 팀을 나와 제대로 재활해 보고 싶다는 게 이유라고. 구단에서도 1년 동안 몸을 제대로 만든 후 돌아오라며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일부 넥센 팬들은 구단의 재활 시스템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 2015년이 지나고 2016년으로 접어든 가운데에서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사실상 재기를 단념한 듯. 현재는 수원시에 있는 한 야구레슨장에서 코치를 하고 있다고 한다.


[1] 원래 2003 신인지명 때 2차 3라운드에 지명된 것이 맞지만 이후 KBO 공식가이드에는 신고선수 입단이라고 나오는 것을 보면 현대에서는 지명권을 포기한 후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듯하다.[2] 동기는 전병두, 1년 후배는 장원준박근홍이 있다. 노환수 포함 모두 좌완투수이며, 전병두와는 초-중-고교 동기이다.[3] 04년 기준 당시 현대 유니콘스에서 좌완 투수는 이상열, 마일영, 오재영(후에 개명해서 오주원), 김민범이 있었고, 그중 원포인트와 좌완 셋업 포지션 전담으로 이상열이 있었으나, 2004 병역비리 파동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2005년부터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하게 된다. 소집해제 후 2007년 다시 팀에 합류하지만 2년 간의 공백기와 어깨 건초염이 겹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마일영 역시 병역비리로 이상열과 같은 기간동안 사이좋게 공익근무로 빠지면서 시즌 아웃. 오재영은 신인왕을 타면서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그 다음해부터 소포모어 징크스와 부상, 훗날 밝혀지는 강직성 척추염이 겹쳐 부진하다가 06년 시즌 종료 후 상무에 입대했기에 좌완이 전무한 상황이였다. 그나마 김민범이 꾸준했지만, 이쪽은 말그대로 좌완 원포인트였기에 위기상황에 내보낼 실력은 못되었다. 즉 노환수의 재발굴은 당시 현대 마운드의 사정을 감안하면 천만다행이였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