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22:41:46

치바 롯데 마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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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ccccc,#323232><colcolor=#20272c,#d3dade> 모기업 정보 파일:롯데(일본) 로고.svg 롯데홀딩스 | 롯데그룹 산하 스포츠단
일본시리즈 우승
★★★★
1950 · 1974 · 2005 · 2010
리그 우승
(5회)
1950 · 1960 · 1970 · 1974 · 2005
퍼시픽리그 전·후기 우승
(4회)
1974후기 · 1977후기 · 1980전기 · 1981전기
클라이맥스 시리즈 2007 · 2010 · 2013 · 2015 · 2016 · 2020 · 2021 · 2023 · 2024
시즌별 요약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현역 선수 경력 이시카와 아유무/선수 경력 · 사사키 로키/선수 경력 · 사와무라 히로카즈/선수 경력 · 마스다 나오야/선수경력
오기노 타카시/선수 경력
핵심 인물 구단주 신동빈구단주 대행 다마즈카 겐이치| 감독 요시이 마사토2군 감독 사부로
선수회장 나카무라 쇼고 | 주장 나카무라 쇼고
경기장 1군 ZOZO 마린 스타디움2군 롯데 우라와 구장
홈 중계 채널 파일:닛테레뉴스24 로고.jpg
구단 상세 역사선수단 및 등번호역대 선수 | 유니폼 | 응원가 | 집시 롯데 | 10.19 | 칠석의 비극 | 도시락의 저주
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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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치바 롯데 마린즈
Chiba Lotte Marines
[ruby(千葉, ruby=ちば)]ロッテマリーンズ
구단 법인명 ㈜치바롯데마린즈
(株式会社千葉ロッテマリーンズ)
창단 1949년 9월 21일([age(1949-09-21)]주년)
연고지 치바현 치바시
연고지 변천 도쿄도 (1950~1973)
도쿄도, 미야기현[1] (1974~1977)
가나가와현 (1978~1991)
치바현 (1992~ )
구단명 변천 마이니치 오리온즈 (1950~1957)
마이니치다이에이 오리온즈[2] (1958~1963)
도쿄 오리온즈 (1964~1968)
롯데 오리온즈 (1969~1991)
치바 롯데 마린즈 (1992~ )
홈구장 변천 고라쿠엔 구장 (1950~1962)
도쿄 스타디움 (1962~1972)
공식 홈구장 없음[3] (1973~1977)
가와사키 구장 (1978~1991)
ZOZO 마린 스타디움 (1992~ )
2군 구장 롯데 우라와 구장 (1989~ )
모기업 마이니치 신문 (1950~1963)
다이에이 (1958~1970)
롯데 (1971~ )[4][5]
구단주 신동빈
구단주 대행 다마즈카 겐이치 (玉塚元一)[6]
감독 21 요시이 마사토 (吉井理人)
주장 8 나카무라 쇼고 (中村 奨吾)
키트 스폰서 파일:미즈노 로고.svg
마스코트 파일:치바 롯데 마린즈 로고.svg
마 군[7], 린 짱, 즈 짱
구단기 파일:치바 롯데 마린즈 구단기.svg
역대
한국인 선수
백인천 (1977~1980)
장훈[8] (1980~1981)
이승엽 (2004~2005)
김태균 (2010~2011)
이대은 (2015~2016)
역대
한국인 코치
김성근 (2005[9], 2006[10])
홈경기 중계 채널(CS) 파일:닛테레뉴스24 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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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시리즈 우승 (4회)
1950, 1974, 2005, 2010
퍼시픽 리그 우승 (5회)
1950, 1960, 1970, 1974, 2005
전, 후기 리그 우승 (4회)
1974 전기, 1977 후기, 1980 전기, 1981 전기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1회)
2010
플레이오프 우승 (2회)
1974, 2005
교류전 우승 (2회)
2005, 2006
아시아 시리즈 우승 (1회)
2005
한일 클럽 챔피언십 우승 (1회)
2010
포스트시즌 진출 (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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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맥스 시리즈 2007년, 2010년, 2013년, 2015년, 2016년, 2020년, 2021년, 2023년, 2024년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 1974년, 1977년, 1980년, 1981년,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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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구단 역사 및 시즌별 성적3. 홈구장 - ZOZO 마린 스타디움4. 마스코트5. 서포터즈6. 응원가7. 관중 수 추이8. 특징
8.1. 구단 안팎의 권력 다툼
9. 선수단10. 역대 선수11. 역대 감독12. 준영구 결번13. 역대 성적14. 둘러보기1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소속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치바현 치바시. 모기업은 롯데홀딩스이다.[11]

대한민국의 프로야구단인 롯데 자이언츠와 한 형제로, 구단주도 창업주 신격호로 같았다.[12] 하지만 구단주가 야구단만 챙길 수는 없으니 구단주 대행을 신격호의 차남 신동빈 씨가 맡고 있었는데, 현재 신동빈은 신격호 창업주의 별세로 한국 롯데를 이을 후계자가 된 상황이라서 부자가 쌍으로 구단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문제다.[13][14] 이 때문에 하단에 "구단 내부도 더러운 권력싸움"으로 시작되는 내용이 있을 정도이다.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신격호와 신동빈의 사이가 벌어진 지금은 야구단의 책임소재가 더욱 더 애매해진 상황이다. 신동빈 한국 롯데 회장은 2018년 2월 23일 치바 롯데의 이사직을 제외한 치바 롯데의 지위에서 물러났다. 롯데 자이언츠의 형제팀이라는 사실 때문에,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마린즈를 '본캐', 자이언츠를 '부캐'라고 칭한다.

대한민국에서는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법 때문에 '지'바 롯데 마린즈라고 표기하고 있다. 또한 일본 프로야구팀의 지역명 표기를 잘 안하는 한국 언론[15]에서도 이 팀과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는 지역명을 잘 말해주고 있다. 혹시라도 롯데 자이언츠와 헷갈릴까봐 구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매년 비시즌 기간에 롯데 자이언츠와 치바 롯데가 연습경기를 치렀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는데, 기사 표제에 롯데 자이언츠는 그냥 '롯데', 치바 롯데 마린즈는 '치바 롯데'라고 약칭을 표기하기도 한다(예1, 예2 등이 있다).

중국어 표기는 롯데그룹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롯데그룹의 롯데는 樂天(乐天)으로 쓰고 있지만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때문에(라쿠텐이 한자로 樂天[16]) 혼동을 피하고자 羅德(罗德)[17][18]로 표기한다. 참고로 중화권에서는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도 치바 롯데처럼 羅德(罗德)으로 강제 개명하는 경우가 있다.[19]

물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창단되기 전에는 치바 롯데 마린즈를 樂天(乐天)으로 표기했었고, 현재도 중국어권에서 종종 쓰이는 듯하다. 중화권에서는 예전 중국어 표기대로라면 롯데그룹이 같은 이름(樂天)을 가진 프로야구단을 무려 네 개(한국에 1개, 일본에 2개, 대만에 1개)를 거느리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고, 바꾼 표기대로라면 치바 롯데는 다른 기업 산하의 구단이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라쿠텐 몽키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가 롯데그룹 산하의 형제 구단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다른 팀 팬들이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깔 때 흔히 ‘롯데노 파쿠리(ロッテのパクリ, 뜻은 롯데 베낀거)’라고 하는데 이 롯데가 치바 롯데 마린즈다. 하술되겠지만 요미우리 응원단이 롯데의 특징적인 응원법을 따라서 도입 했기 때문이다.[20]

2. 구단 역사 및 시즌별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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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홈구장 - ZOZO 마린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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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일본프로야구 12팀 중 유일하게 고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제2홈구장이 없다. 2020년 기준 토야마와 미토에서 경기를 치르는데 토야마의 경우는 여러 구단이 돌아가면서 경기를 하는 구장이라 제2홈구장이라 할 수 없고, 미토는 해당 구장에서 28년 만에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것이고[21], 롯데가 이바라키에서 경기를 한 것이 61년 만이기 때문에 롯데가 앞으로 매년 꾸준히 경기를 여는 것이 아닌 이상 제2홈구장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듯. 그나마 코로나 19로 인해 토야마와 미토 경기가 모두 취소되면서 말짱 꽝이 됐다.

예전에는 이시카와현립구장에서 25년간[22] 꾸준히 롯데 홈경기를 해 왔으나 2005년 이후로는 주최하지 않고 있다.

4. 마스코트

파일:치바 롯데 마린즈 심볼.svg 치바 롯데 마린즈의 마스코트
파일:치바 롯데 마린즈 마스코트.svg
마 군, 린 짱, 즈 짱

롯데 자이언츠 마스코트도 로고이름만 바꾼 해당 마스코트를 쓰고 있다. 프런트가 해명하기를 먼 친척이라고.

한국 사람들이 롯데 구단 마스코트를 보고 오리+갈매기라고 해서 오갈이라고 하듯, 일본에서도 오갈이 비슷하게 취급하고 있다. 이 이유 때문에 2021년 hololive와 퍼시픽 리그가 콜라보레이션을 할 때 오리로 유명한 오오조라 스바루가 마린즈 타이업 버튜버 중 한 명으로 지정되었다.[23]

참고로 마 군, 린 짱, 즈 짱의 앞글자를 따면 마린즈가 된다.

한편으로 2017년 가마우지 마스코트 쿨이 은퇴했고, 2021년에는 그 문제의 삼단변신 초롱아귀 마스코트 나조 노 사카나도 은퇴했기에 2024년 현재 치바 롯데 마린즈의 마스코트는 마린즈 3인조이다.

5. 서포터즈

가와사키 시대와 마린 스타디움 시대를 나누는 또 한 가지 특징은 바로 팬들의 성향. 가와사키 시대는 팬들이 적었기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마린 스타디움으로 넘어오면서 열성팬들이 늘어남과 동시에 매너는 최악으로 변하게 된다. 롯데 팬은 그 수에 비해 결속력이 강하다는 인상이 있고 2000년대 초반에는 구장에서 쓰레기를 솔선수범해 줍는 등 좋은 매너로 지역에서 표창을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반면 이러한 결속력은 (주로 상대 팀에 대해)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매너 나쁜 팬이라고 하면 한신이나 주니치를 먼저 떠올리지만, 한신, 주니치는 롯데보다 팬 수가 많아서 눈에 띄는 것이고 찌질함과 패악질의 순도에 있어서는 롯데를 따라갈 수가 없다고 한다.
2007년. 시즌 개막전 응원.
2009년. 치바 롯데 서포터즈의 리즈시절. 숫자부터가 어마어마하다. 바비 발렌타인 감독의 깃발이 보인다.[24]
2013년 5월 1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전. 응원가가 싹 물갈이 된 이후의 응원.
2013년 6월 8일. 1회에 나온 퍼포먼스.
전투종족 소굴 한 복판도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 치바 롯데 팬들한테는 한신이 우습거든

롯데의 악질적인 팬의 특징은 대부분이 마린 스타디움 시대와 함께한 2, 30대라는 데 있다. 한신의 경우 대부분이 술 취한 아저씨라는 이미지이지만, 롯데의 경우는 잘 결집된 유럽축구나 J리그의 훌리건에 가깝다. 특히 지바 팬덤이 생겨나게 된 1990년대 초중반이 J리그 창설 초기로 울트라 닛폰을 위시한 축구 서포터 그룹이 성장하던 시기이기도 해서, 다른 팀[25]의 응원이 트럼펫, 플라스틱 메가폰/배트 등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일본 야구의 응원인 데 반해 마린즈 팬들은 축구, 그중에서도 J리그 서포터들에게 깊게 영향을 준 이탈리아의 '울트라스'식의 응원문화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였다. 이들은 응원 단장이 아니라 콜리더가 확성기를 들고 응원을 지휘하고, 플라스틱 메가폰/배트 대신에 박수를 이용하고, 응원가 자체도 일본 야구 특유의 '4소절의 응원가 - 2소절의 응원 구호'로 이어지는 응원가가 아닌 축구의 응원가에 가까운 4소절 내지 8소절의 응원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다른 구단에서 '시야 방해' 라는 명목으로 터부시되는 개인 깃발과 게이트기(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정사각형의 깃발) 등이 종종 이용되며[26] 반데이라(남미 축구 문화에서 파생된, 관중석을 세로로 길게 덮는 천)가 이용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타 구단과는 응원 문화가 크게 다른 편.[27]

다만 2009년을 전후하면서 아래 서술할 구단 내부 권력 싸움(...)의 여파로 막장이 된 분위기에서 기존의 응원을 주도하던 외야 응원단[28][29]강도 높은 프런트 디스를 벌임과 함께, 타팀 팬들과 충돌을 빚는 등 폭주하는 일들이 벌어지며 결국 시즌 종료 뒤 해산하게 된다.[30] 그 뒤 응원단이 전면적으로 물갈이[31]되었고, 기존의 응원가들이 대대적으로 교체되는 등의 홍역을 치르었다.[32]2010년에 롯데가 극적으로 우승한 뒤로는 매너 문제는 상대적으로 잦아든 듯. 오히려 그 해 일본프로야구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을 뽑는 쇼리키 마쓰타로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결국 같은 팀의 니시무라 노리후미 감독이 수상했지만, 좋은 지도력을 보인 감독이나 팀 리더급 선수가 주로 받는 상이니만큼 팬들이 후보로 거론되었다는 것부터가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어쨌든 일본 야구계에서도 열성적인 응원을 하는 것으로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유명하다. 단, 현재 들어서는 바비 발렌타인이나 그 이전 시절보다 응원 포스나 열기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롯데 팬덤내나 타 구단에서도 자주나온다. 2009년 니시오카 사건[33]으로 무기한 출입금지 당하고 해체한뒤 현재 사회인 야구단 "도쿄 메츠"의 응원단, 후원자로 있는 MVP의 복귀를 바라는 롯데팬들도 있었지만[34] 2009년 니시오카 사건에 대해 MVP는 2017년 지금까지 사과 한번 없고 오히려 자신들이 그렇게 응원하던 팀과 연고지를 버리고 도쿄 메츠란 팀으로 가는 짓거리를 저지르니 거기에 대한 배신감도 겹쳐 그들을 거부하는 팬들도 많다. 여러모로 MVP는 일본 야구 응원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지만 그만큼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집단.

2016년에는 MVP 응원가가 몇몇 부활해 후쿠우라와 사부로등 선수응원가와 스킨헤드러닝, 엘리제 등이 쓰였지만, 전반기가 끝날즈음해서 암묵적으로 쓰이지않다가 올스타 이후로 완전히 쓰이지 않게 되었다.[35] 당시 공식적인 발표에서는 "응원만을 위해 야구장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해 MVP의 잔당들과 모종의 사건이 있었음을 암시하며 옛날응원가를 다시 쓰지않게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팬들이 스킨헤드러닝등 옛날 응원가를 다시 부르지 못하는것을 아쉬워 하긴 했지만, 대부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이며 수긍을 하였다. 이런 반응들로 보면 MVP가 아직도 팬들사이에서 좋은 이미지는 아닌듯하다.

또 대만 프로야구의 라미고 몽키스와 구단간 교류로 비시즌 경기를 치르는데 이 과정에서 치바 롯데 서포터즈의 응원 문화와 응원곡이 대만으로 전파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위의 영상에서 고시엔 구장에서 서포터들이 부르는 "We Are" 챈트의 경우 라미고 몽키스 역시 사용하고 있다.[36]

현재 서포터즈 이름은 Team 26. 특이한 점은 팬클럽이 6개의 등급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이 때 주니어 회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린이용이며 프리미엄 골드 회원은 연간 티켓을 사는 등의 소수에게만 허용되어 있으므로 일반인들에게는 사실상 골드, 레귤러, 캐주얼 레귤러, 마린즈 총 4개의 선택권이 존재한다. 이 중 골드 회원은 10만원이 넘는 돈을 내는 대신 기념품과 티켓을 많이 주며 이벤트와 티켓 판매에서 최우선권을 얻는다. 레귤러와 캐주얼 레귤러는 그냥 일반회원인데 캐주얼 레귤러는 기념품이 없는 대신에 만원이 싸다.[37] 마린즈는 무료회원이다. 물론 무료회원은 포인트가 쌓이는 것 빼고는 혜택이 전혀 없다. 사실상 거의 명예회원. 회원카드도 구장에서 직접 가입하지 않는 이상 안 나온다. 하지만 주 거주지가 한국이라 일본에 자주 못 가는 팬들은 사실상 유료회원 돼 봤자 헤택도 없고 애로사항만 크다. 그 외에도 여러 마린즈 팬 소모임이 있다. 개중에는 외국인을 받아주는 소모임도 있으니 잘 찾아보자.[38] 참고로 이런 소모임 중에서는 MVP 출신들이 모인 소모임도 있으며, MVP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은 미야기와 오사카라고 한다.

응원 열기는 옆 나라의 자매팀처럼 과격하고 엄청나지만, 인기 자체는 일본에서 꼴찌를 두고 오릭스 버팔로즈와 경쟁하는 수준(...). 2017년 기준 저 두 팀이 가장 인기있는 지역은 아예 없다.[39]입장권 예매하는 것도 매우 쉽다. 그런데 2018년 조사에서는 치바에서 쿄진을 꺾고 인기팀 1위를 기록했으며[40], 시가 현은 한신이, 나가노 현은 쿄진이 1위를 차지하면서 뒤바뀌었다.오릭스는 언제나 그랬듯이 인기있는 지역이 없다[41] 참고로 도쿄돔 쓰던 닛폰햄이 야쿠르트보다도 인기가 없다고 푸대접 받았는데, 롯데는 그 닛폰햄보다도 관중동원을 못 했다(...).

여담으로 입장권 예매가 매우 쉬운 편이지만 특정 경기에서의 화력은 인기팀 못지않다보니 이런 특정 경기에는 응원석 예매도 쉽지 않다. 팬클럽 선예매로 들어간 사람이 응원석을 못 가는 일도 일어난다![42] 보통 이런 특정 경기는 개막전이나 특별 행사[43], 그리고 한신 코시엔 구장 원정, 마지막으로 제3구장 경기이다.[44][45] 물론 이런 경기도 내야석은 며칠 후에 천천히 매진되거나 아예 자리가 남는 수준이다. 단 예외도 있었다. 바로 후쿠우라 카즈야 은퇴 경기. 이날만큼은 팬클럽 선예매일에 사람들이 하도 많이 몰려 서버가 뻗어버리는 바람에(...) 응원석은 일단 팬클럽 선예매 때 서버가 뻗어버리는 와중에도 조금씩 조금씩 표가 나가서 다 팔려버렸고, 결국 구단 측에서 일반 예매 때 남은 소수의 자리는 선착순이 아니라 추첨 판매로 판다고 공지해버렸다. 비인기팀인데다가 일본시리즈도 거의 못 나가다 보니 이렇게 예매가 몰리는 일은 굉장히 드문 케이스.

6. 응원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치바 롯데 마린즈/응원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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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중 수 추이

연도별 총 관중 일일 평균
2009년 1,465,189명 20,350명
2010년 1,546,105명 21,474명
2011년 1,332,815명 18,511명
2012년 1,239,168명 17,211명
2013년 1,260,439명 17,506명
2014년 1,223,915명 16,999명
2015년 1,322,004명 18,620명
2016년 1,526,932명 21,207명
2017년 1,450,164명 20,425명
2018년 1,665,133명 23,126명
2019년 1,665,891명 23,463명
2020년 389,995명 6,500명
2021년 633,453명 8,798명
2022년 1,468,622명 20,685명
2023년 1,803,994명 25,055명

관중 수에서 양대리그 통틀어 꼴찌였지만 세대, 계층을 가리지 않는 적극적인 마케팅 끝에 2018년 마침내 오릭스를 제치는데 성공한다. 그래도 여전히 양대 리그 중에서 라쿠텐, 세이부 등과 더불어 관중 수 하위권에 속한다.

8. 특징

원래 팀 컬러는 근성있는 플레이가 특징인 팀. 특히 9월 이후의 성적이 압도적으로 좋아서 가을의 롯데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한국의 봄데와는 정반대 또 상대팀이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일 경우 어지간해서는 지지 않는 끈끈한 야구를 구사하는 덕분에 퍼시픽리그의 대표적인 고춧가루 부대로 기억에 남았고, 승률 5할도 못 넘겨 쩔쩔매는 팀 치고는 상대적으로 컬트적인 인기가 있었다.[46] 대표적인 예가 1988년 10월 19일, 10.19라고 불리는 킨테츠 버팔로즈의 리그 우승을 저지한 시즌 마지막 더블헤더 경기나, 다음해 세이부-오릭스-킨테츠의 퍼리그 우승 3파전에서 오릭스를 떨어트린 10월 13일 경기 등에서 고춧가루 부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성적은 4위가 제자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21세기 들어와서는 좀 강해진 편. 더 무시무시한 사실은 이 팀은 2016년 시즌 종료 기준으로 B클래스 횟수(39회)가 A클래스(28회)보다 많은데 통산 승률이 5할이 넘는다. 5할에서 70승을 더한 정도. 도대체 얼마나 벌어놓은거야?

그리고 잘 안 알려져 있지만 2004년 재개편 이전 NPB 12구단 중 가장 늦게 최하위를 한 팀이다. 1983년 창단 33년 만의 구단 사상 최초로 최하위를 찍었다(...).[47]롯데 오리온즈 시대의 유일한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1974년 이후[48] 단 한 번도 승률 1위에 오른 적 없다. 전후기리그 플옵 시절인 1977, 1980, 1981년 플옵진출 당시엔 승률 1위 달성에 실패했고, 현재까지 마지막 리그 우승인 2005년은 페넌트 승률이 2위였고, 2010년이야...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이었던 오치아이 히로미츠가 이 팀에서 처음 선수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도끼투구법(マサカリ投法)으로 유명한 '일요일의 남자' 무라타 쵸지, 일본프로야구의 선인(仙人) 에노모토 키하치, 미스터 롯데 아리토 미치요 등이 유명하다.

이 팀에서 활약했던 유명 선수는 일본프로야구에서 몇 안되는 언더스로 투수인 와타나베 슌스케,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활약하기도 한 이구치 타다히토 등이 있으며, 이승엽도 2004~2005년에 선수생활을 했었다. 2010~2011 시즌에 김태균이 선수생활을 했다.

구단주가 한국계인지라 한국인 혹은 한국계 선수와 인연이 각별한 구단이다. 장훈 옹의 선수생활 마지막 팀이자 일본프로야구 유일무이의 통산 3000안타를 기록한 팀이었고, 백인천도 일본 시절 말년 이 팀에서 몇년간 뛰었다. 카네다 마사이치는 이 팀 감독으로, 동생 카네다 토메히로는 에이스 투수로 1974년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롯데에서 18년 간 뛰며 1970년대 강타선을 이끌었던 '미스터 롯데' 아리토 미치요(본명 김유세), 현역으로는 니시오카 츠요시 등이 이 구단을 빛낸 한국계 선수. 응원단도 한국에서 레이지본 등에서 밴드 활동을 한 진 토시오씨가 오랜 기간 응원단장을 맡으면서 한국 노래를 많이 사용했는데, 2005년의 경우 이승엽을 포함한 주전라인업 선수 중 4명이 한국노래를 응원가로 썼을정도. 직접 들어보자. 이마에, 후쿠우라, 이승엽, 사토자키의 응원에 주목할 것. 후쿠우라 응원가 전에 부르는 히트콜도 두산의 응원과 흡사하다.[49] 노라조의 해피송도 자주 쓰이는 응원가 중 하나다. 2010년을 전후한 대부분 응원가들의 원곡이 정리되어 있는 페이지. 그리고 2014-15 오프시즌 때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하던 이대은을 영입하여 한국선수와의 인연을 잇고 있다.

2010년 시즌, 동방 프로젝트BGMU.N. 오웬은 그녀인가?가 응원곡으로 등장했다. 충공깽. 신주는 뭐하나요 빨리 로열티 안 받고 하지만 이 응원가가 대타, 대수비 요원인 코베 타쿠미 선수의 응원가다보니 실제로 1년간 이 응원가를 부른 횟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이...또한 2010년에는 아이돌 마스터キラメキラリ도 응원가로 썼다.# 이것으로 일본 갈매기 응원단 어딘가에 오덕군자가 계심을 알 수 있다. 아래에 나와있듯 생각보다 한국과 가까운 사람이다 안타 쳤을 때 나오는 곡 중 하나이며, 이게 계기가 되었는지 반다이 남코 게임즈와 정식으로 콜라보레이션하여 타카츠키 야요이가 2017년도 응원 아이돌로 매치업되기도 했다.

롯데는 1992년에 이름과 연고지가 바뀌면서 여러가지 의미에서 큰 변화를 맞게 된다[50].(오리온즈, 마린즈로 나누기보다는 구장 이름으로 나누는게 일반적) 가와사키 구장 시대에는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의 팀이었...다라기보다는 워낙 인기가 없어서 아무도 신경을 안 썼기 때문에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었다고 보는 편이었다. 오히려 부진한 성적과 얌전한 선수들보다는 퇴장을 일삼는 감독이나, 한산한 구장에서 마작을 친다던가, 나가시소멘을 먹는다던가(...)[51][52]는 등 기행을 일삼던 관중들 때문에 여러모로 특이한 의미로서나 주목을 받는 팀이었다가, 치바로 연고이전 하면서부터 더러운 이미지로 가득찬 구단이 되어버렸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제기된 약물문제가 있다. 당시 롯데 선수들이 암페타민계열의 약물인 그리니(통칭:환경운동가)를 복용했다고 주간 아사히가 기사를 냈고 구단은 반박은 했으나 끝내 고소는 하지 않아, 뒤가 구려서 그렇다는 말이 많았다. 실제로 2006년에 오릭스, 요미우리 출신의 노무라 타카히토가 약물소지로 걸리면서 증언한 덕분에 팬들도 거의 사실로 인정하는 분위기.[53] 이게 큰 스캔들로 번지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마침 비슷한 시기에 터져나온 다이에사인 훔치기(그것도 팬까지 한패가 된...)덕분에 물타기되었고, 어차피 그 기간 동안 위에서 서술했듯 팀 성적은 개판이었기에 다른 팀 팬들도 크게 문제삼지는 않았다.(...)

약물 이외에도 12개 구단 중 가장 더티한 플레이로도 유명했다. 2009년 4월 세이부전에서 하야카와 다이스케가 포수를 향해 배트를 던진 악질적인 플레이는 많은 지탄을 받았다.[54] 이 외에도 볼 숨기기나 2006년에 이승엽의 홈런을 날려먹은 주루플레이 어필, 글러브 집어던지기[55], 스파이크 날 세우기, 상대팀 포수 메치기[56] 등 주옥같은 플레이가 많다.

여담으로는 '도시락의 저주'가 있다(...). 팀에서 선수들의 이름을 딴 도시락을 만들면 해당 선수의 선수생명이 꼬인다는 저주이다. 최신판으로는 김태균 김치버거가 있을듯 출처 이 글이 올라온 뒤에도 자신의 이름을 딴 먹거리가 출시된 선수들의 커리어는 계속해서 꼬였다. 채드 허프만은 그 전까지 약 4개월동안 4홈런을 쳤는데허프만 덮밥이 나온 뒤로 1년 반 동안 0홈런이라는 졸전을 보이고 방출, 이대은 역시 이대은 덮밥이 나오기 전까지 4개월동안 8승을 올렸는데 덮밥이 나온 후 1년 반동안 꼴랑 1승을 올렸고 알프레도 데스파이네는 데스파이네 덮밥이 나온 해에는 잘했으나 그 다음 시즌을 말아먹었다.데스파이네는 근데 다음다음 시즌에 재기에 성공해서 120억 받고 소뱅으로 간게 함정 2019년 현재도 자신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자신의 이름을 붙인 음식을 발매한 히라사와 타이가나카무라 쇼고가 작년에 비해 엄청난 부진에 빠져있다. 사실 2019년 기준으로는 억지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주전급인 선수들이 죄다 자기 이름을 걸고 음식을 내기 때문에.물론 팀 꼬라지를 보면 주전 전원이 부진한 것처럼 보이지만

2013년, 가까운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사이타마 vs 치바 라이벌 시리즈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두 팀은 원래 서로 발목 잡는 구단으로 라이벌 역사가 깊은 편이다. 고춧가루 부대 때가 딱 세이부 황금기다 보니 아무리 세이부가 최강자라 해도 '롯데를 죽여야 결승 간다'는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황금기가 끝나도, 6강 클라이맥스 시리즈엔 사이타마 세이부와 치바 롯데가 세트로 올라갔다 떨어졌다 하고 있다. 오죽하면 치바 롯데 응원가 중에 세이부를 이기자고 하는 응원가가 있을 정도다.

세이부가 라이벌로 인지도가 있지만 라쿠텐과도 무시못할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다. 롯데가 미야기 구장을 홈으로 쓰던 시절 센다이 팬들의 응원을 업고 일본시리즈를 우승한 적 있는데 응원해준 센다이 팬들을 내다버리다시피한 행보를 보이며 센다이의 야구팬들은 롯데에 대한 정이 완전이 없어지고 롯데 안티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들이 상당수 라쿠텐 팬으로 흡수되면서 자연스레 라이벌리 형성. 게다가 라쿠텐에게 창단 첫 시즌부터 26:0이라는 라쿠텐에게 안겨줘서 더더욱.

센트럴리그와의 교류전을 맞이해서 구단에서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57] 기념 광고를 내는데, 센트럴리그 6개 구단에 대한 디스의 수준이 대단하다.참고. 2018년에는 대놓고 한신전에서 33-4를 언급할 정도이다.(...)[58] 아쉽게도 2020년 이후로는 만들지 않고 있다.

나루세 요시히사FA 보상선수로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마스코트를 지명했다.

그리고 센트럴리그한신 타이거스와 함께 일본시리즈 우승을 홈구장에서 맛본 적이 1번도 없다. 긴테츠는 우승 자체가 없고 해체됐으니 제외 기록을 보면.
우승 연도 일본시리즈 우승 결정전이 열렸던 구장
1950년 오사카 구장[59][60]
1974년 나고야 구장
2005년 한신 고시엔 구장
2010년 나고야 돔

참고로 주니치를 제외하면[61], 4번 다 동일본팀이 아닌 상대로 이겼다. 50년에는 쇼치쿠 (교토), 74년과 2010년에는 주니치(나고야), 2005년에 한신(니시노미야). 웃긴건 반대로 동일본팀을 상대한 일본시리즈는 패배했다는 점이 있다.[62]. 일단 롯데는 현재 홈구장인 치바 마린 스타디움에서 일본시리즈 우승 확정팀을 배출해낸 적이 없다.

팀 타력이 약하다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어서, 홈런타자와 유난히 인연이 없는 팀이기도 하다. 홈구장에 홈런 라군을 세우기 전 삼성 소속으로 마지막으로 한 시즌 30홈런을 때린 타자는 2005년의 이승엽이었으며[63], 일본인 30홈런 타자는 1986년의 오치아이 히로미츠를 마지막으로 30년이 넘도록 단 한 명도 배출한 적이 없다. 마이니치-다이마이 시절까지 합쳐, 팀 역사를 통틀어 일본인 30홈런 타자는 벳토 카오루. 야마우치 카즈히로, 오치아이 히로미츠 단 3명뿐이다. 일본인 좌타자 한 시즌 최다 홈런은 2008년 오마츠 쇼이츠가 기록한 24홈런(...)에 불과하다. 소프트뱅크로 이적하자마자 홈런왕이 된 알프레도 데스파이네의 사례를 볼 때 역풍이 불고 파울그라운드가 드넓은 홈구장 마린 스타디움의 환경이나, 희소한 파워히터를 사들이거나 오래 붙잡기 어려운 스몰마켓 팀이라는 약점이 뼈아픈 부분. 그러나 1군 거포와는 인연이 없는 대신 아오마츠 케이요, 코베 타쿠미, 이노우에 세이야, 키요타 이쿠히로[64] 같은 2군 본즈들은 줄기차게 배출한 것을 보면 육성 환경에도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한국으로 치면 LG 트윈스와 비슷하다. 그런데 LG 트윈스도 이거보다는 홈런 잘 친다...

심지어 팀 홈런 1위는 롯데 오리온즈 초창기인 1971년(...)을 마지막으로 48년 동안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극악의 홈런 때문에 10홈런만 칠 수 있어도 클린업에 들어갈 수 있다(...). 다음은 마지막 30홈런 타자가 등장한 2005년부터 다시 나타난 2019년까지의 치바 롯데의 선수별 홈런 기록이다.
시즌 팀내 홈런 1위 기타 10홈런을 넘긴 타자
2019 브랜든 레어드(32홈런) 이노우에 세이야(24홈런, 2위)
나카무라 쇼고(17홈런, 3위)
스즈키 다이치(15홈런, 4위)
오기노 타카시(10홈런, 5위)
키요타 이쿠히로(10홈런, 5위)
2018 이노우에 세이야(24홈런)[65] 없음[66]
2017 윌리 모 페냐(15홈런) 스즈키 다이치(11홈런, 2위)
지미 파레디스(10홈런, 3위)
2016 알프레도 데스파이네(24홈런) 야마이코 나바로(10홈런, 2위)[67]
2015 알프레도 데스파이네(18홈런) 루이스 크루즈(16홈런, 2위)
키요타 이쿠히로(15홈런, 3위)
2014 루이스 크루즈(16홈런) 알프레도 데스파이네(12홈런, 2위)
이마에 토시아키(10홈런, 3위)
이구치 타다히토(10홈런, 3위)
2013 이구치 타다히토(23홈런)[68] 크레이그 브라젤(11홈런, 2위)
이마에 토시아키(10홈런, 3위)
2012 이구치 타다히토(11홈런) 없음(...)[69]
2011 이구치 타다히토(9홈런) 없음(...)1위도 9홈런인데 있겠어?[70]
2010[71] 김태균(21홈런) 오오무라 사부로(19홈런, 2위)
이구치 타다히토(17홈런, 3위)
오마츠 쇼이츠(16홈런, 4위)
후쿠우라 카즈야(13홈런, 5위)
니시오카 츠요시(11홈런, 6위)
이마에 토시아키(10홈런, 7위)
사토자키 토모야(10홈런, 7위)
2009 오오무라 사부로(22홈런) 오마츠 쇼이츠(19홈런, 2위)
이구치 타다히토(19홈런, 2위)
니시오카 츠요시(14홈런, 4위)
사토자키 토모야(10홈런, 5위)
2008 오마츠 쇼이츠(24홈런)[72] 사토자키 토모야(15홈런, 2위)
니시오카 츠요시(13홈런, 3위)
이마에 토시아키(12홈런, 4위)
하시모토 타스쿠[73](11홈런, 5위)
호세 오티즈[74](11홈런, 5위)
2007 훌리오 줄레타(15홈런)[75] 사토자키 토모야(14홈런, 2위)
베니 아그바야니[76](13홈런, 3위)
아오노 타케시(10홈런, 4위)
2006 베니 아그바야니(17홈런)
사토자키 토모야(17홈런)[77]
발렌티노 파스쿠치[78](13홈런, 3위)
2005 이승엽(30홈런) 맷 프랑코[79](21홈런, 2위)]
오오무라 사부로(14홈런, 3위)
베니 아그바야니(13홈런, 4위)
사토자키 토모야(10홈런, 5위)

참고로 이 13년 동안의 팀내 1위 홈런타자의 홈런 갯수의 평균을 내 보면 반올림해서 19개이다. 좀 더 자세히 들어가면 공인구가 바뀌기 전에는 반올림해서 22홈런, 바뀐 이후에는 17홈런. 일본인 타자로만 한정하면 13년 전체 평균 15홈런, 공인구 바뀌기 전에는 18홈런, 바뀐 이후에는 12홈런(...).

2018시즌 현재는 대타 위주로 나오면서 100타수도 못 나오고 7홈런을 친 맷 도밍게스와 시즌이 45%정도 지난 상황에서 56경기 10홈런을 친 이노우에 세이야 정도는 20홈런에 도전해 볼 만 하다. 특히 프로 첫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이노우에가 20홈런을 달성한다면 5년만에 등장한 토종 20홈런 타자이자 공인구 변경 이후 2번째로 20홈런을 친 토종 타자가 된다. 결국 도밍게스는 팀에서 기회를 거의 주지 않는 바람에 7홈런에서 더이상 홈런을 추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노우에는 9월 8일 시즌 20호 홈런을 치면서 5년만에 롯데에 토종 20홈런 타자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노우에는 2019년 8월 22일 시즌 20호 홈런을 치면서 2년 연속 20홈런을 넘겼다. 이 기록은 1990년대 후반(...)에 하츠시바 키요시가 기록한 이후 거의 20년만이라고...

2019년에는 두 자릿수 홈런을 친 타자가 6명이고 30홈런 타자가 14년만에 나왔지만 펜스를 당긴 것 때문에 피홈런도 퍼시픽리그 1위를 찍어버렸다(...).

여담으로 일본프로야구 구단중에서 팬 서비스가 가장 좋기로 유명한 구단이라 한다. 그 이유는 팬 서비스가 연봉고과에 반영되기 때문. 비슷한 예로 도호쿠 라쿠텐 이글스도 재계약시 팬 서비스를 어느 정도 참조한다고 하긴 하지만 치바 롯데는... 물론 팬 서비스만 좋다고 연봉을 올려주는 것은 아니고 프로답게 성적에 플러스로 팬 서비스 현황을 보아 좀더 줄지 말지를 정한다고 한다.

2020년 현재도 파워히터 문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용병타자 브랜든 레어드레오니스 마틴, 국내 선수는 이노우에 세이야 한 명에게 의존하는 상황. 그나마도 레어드는 부상으로 시즌의 대부분을 날렸고 이노우에는 후반기에 극심한 부진에 빠지면서 15홈런도 치지 못했다. 유일하게 20홈런을 넘긴 마틴도 시즌을 2주 정도 남겨두고 시즌아웃. 또한 작년에 17홈런을 친 나카무라 쇼고는 컨택에 집중한 것인지 홈런이 반토막이 났고, 2017년 1라운더인 거포 유망주 야스다 히사노리는 풀 시즌을 뛰면서 겨우 6홈런 쳤다(...). 결국 오늘도 롯데의 타격코치들은 까이는 상황. 다만 롯데의 투수코치 쪽은 1군 코치인 요시이 마사토는 그렇게 좋은 평을 못 듣지만[80], 2군 투수코치인 카와고에 히데타카[81], 오노 신고, 오토나리 켄지는 고졸 하위픽 투수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호평을 받고 있다.[82]

2010년대 들어서는 국가대표랑도 인연이 많이 없는 편. 2017년 WBC 대표로 이시카와 아유무가 선정된 이후 올림픽/WBC/프리미어 대표가 6년간 안 나오다가[83] 2023년 WBC에서 사사키 로키가 승선하면서 드디어 오랜만에 국대를 배출해냈다. 그러나 야수의 경우 2013년 WBC에 발탁된 카쿠나카 카츠야가 마지막 롯데 소속 국대 승선자이다.

8.1. 구단 안팎의 권력 다툼

구단 내부의 권력싸움 역시 유명하다. 구단의 보스인 신동빈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지라 사장인 세토야마 류조[84]를 중심으로 한 수뇌파와, 감독인 바비 발렌타인을 중심으로 한 현장파의 대립이 심하였다. 상술됐듯 발렌타인 1차 취임기(1995) 때 단장인 히로오카 타츠로와 파워게임을 벌이고 모양새 안 좋게 떠난 바 있는데, 이후 2차 취임기(2004~2009) 후반기 즈음에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야 말았다. 200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발렌타인이 초노 히사요시를 강행지명한 것[85]을 계기로 그동안 쌓여있던 수뇌파의 불만이 폭발, 주간지에 발렌타인의 비리[86]를 죄다 까발리면서 발렌타인이 2009년까지만 감독직을 맡게 되면서 사태는 끝을 맺었다.[87] 그리고 이 사실을 메이저리그 팬덤에서도 알고 있는지 2012 시즌을 앞두고 봑빠들이 발렌타인이 건수 하나 터뜨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88]

2015년 이후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으로 신격호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매각설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성적이나 흥행이 그다지 좋은 것도 아니고, 수 년간 적자를 떠안아온 구단이지만 신격호 회장의 야구에 대한 의지가 워낙 확고해서 계속 유지해왔는데 신격호가 왕자의 난으로 물러나면서 야구단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 아예 익명의 일본 재계 관계자를 인용해 신격호 본인의 야구단 유지에 대한 의지가 왕자의 난을 부른 지배구조의 취약성의 원인이었다는 논조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단 2016년 말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 이후에는 신동빈 회장이 매각설을 부인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2017년 성적 보면 당장 해체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데 2018년 2월 28일에는 최순실 게이트뇌물죄로 연루되어 유죄판결을 받은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치바 롯데의 대표이사 대행직에서도 물러난다는 기사가 나왔다.#

9.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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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역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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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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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 현재
초대
유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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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52)
2대
와카바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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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3대
벳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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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1959)
4대
니시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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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5대
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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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1962)
6대
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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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1965)
7대
다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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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8대
토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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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9대
노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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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1971)
10대
오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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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1972)
11대
카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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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1978)
12대
야마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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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981)
13대
야마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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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3)
14대
이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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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1986)
15대
아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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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989)
16대
카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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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1)
17대
야기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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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994)
18대
발렌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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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19대
에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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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20대
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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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998)
21대
야마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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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03)
22대
발렌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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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009)
23대
니시무라
파일:일본 국기.svg
(2010~2012)
24대
이토
파일:일본 국기.svg
(2013~2017)
25대
이구치
파일:일본 국기.svg
(2018~2022)
26대
요시이
파일:일본 국기.svg
(2023~ )
27대 28대 29대 30대
* 21대 감독인 야마모토 코지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레전드인 야마모토 코지와는 이름의 한자가 다른 동명이인이다.
}}}}}}}}}}}}}}} ||

  • 유아사 요시오 (1950~1952)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이자 최초의 일본시리즈 우승팀의 영광을 안겨준 감독, 그러나 1952년 "헤이와다이 사건"[89]을 일으켜 해임당했다.
  • 카네다 마사이치 (1973 - 1978, 1990 - 1991)
    한국명 김경홍. 선수로서는 뛰지 않았으나 감독으로서 장기 집권을 했다. 1974년 일본시리즈 우승 감독이며, 거친 항의로 통산 퇴장도 8회나 당했다. 그러나 1991년 코이케 히데오 강행지명으로 해임되었다.
  • 이나오 카즈히사 (1984 - 1986)
    니시테쓰 라이온즈의 전설적인 에이스. 평범함을 거부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오치아이 히로미츠의 프로 초창기 시절 온갖 비판의 화살을 막아내며 오치아이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할 수 있도록 후원자 역할을 해서 오치아이의 기량이 만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27살의 나이에 데뷔한 늦깎이 신인이 일본프로야구의 레전드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남들이 타격폼이 괴상하다고 지적할 때에도 억지로 수정하려 하기 보다는 본인이 뜻을 펼 수 있도록 배려해준 이나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웬만해서는 야구계의 선배들에게조차 별다른 존경심을 표시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해온 오치아이조차 이나오만큼은 프로에서의 스승으로서 진심으로 존경을 했으며 이나오의 퇴임이 주니치 드래곤즈로의 트레이드를 요청하게 된 가장 큰 계기였다. 또한 1995년에 롯데가 10년만에 A클래스에 들어가기 전까지 1984~1985년 2년 연속 2위를 기록하며 롯데 오리온즈 시대의 마지막 A클래스로 팀을 이끈 감독이기도 했다. 그러나 1986년 4위를 기록하며 물러났다.
  • 바비 발렌타인 (1995, 2004 - 2009)
    33-4 당시 감독.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우승 감독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감독 1기 시절인 1995년에는 히로오카 타츠로 GM과의 갈등이 너무 심해 1년만에 팀을 떠났으나 감독 2기 시절에는 신동빈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2005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일궈냈다.
  • 니시무라 노리후미 (2010 - 2012)
    롯데 오리온즈 시절 1번타자로 활약하던 스위치히터이자 프랜차이즈 외야수였다. 코치로도 꽤 오래 활동했고, 감독이 된 이후에는 일본시리즈 우승과 퍼시픽리그 최하위를 모두 기록하는 등 절반의 성공과 실패를 거두었다.
  • 이토 츠토무 (2013 - 2017)
    2010년대 중반에 롯데가 최강팀은 아녀도 A클래스 정도는 여러번 들어가게 만든 공신. 그러나 2017 시즌을 홀라당 말아먹으면서[90]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전 감독인 니시무라나 후임 감독 이구치와는 달리 선수시절에는 롯데와 인연이 없었으나 감독으로 큰 공을 세운 케이스. 여담으로 원래 계약기간 자체는 2018년에도 이어질 예정이었는데, 이토가 2018년까지 연임했다면 김정후가 롯데에 용병으로 입단할 수 있었다.[91]
  • 이구치 타다히토 (2018~2022)
    카리스마형 구단운영을 했으나 가을야구에서의 단기전 운영 능력에서 한계를 보였다. 사사키 로키를 데려왔다.

12. 준영구 결번

  • No.26 마린즈 팬: 25인 로스터(지배하선수)에 이은 26번째 멤버를 의미한다.[92] 2005년부터 결번 처리.

13. 역대 성적

­ 리그 우승[93]
­ 2위
­ 3위
B클래스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94]
1950 1위/7팀 우승 마이니치 오리온즈 120 81 34 5 .704 일본시리즈 (4-2 vs 쇼치쿠)
1951 3위/7팀 3위 110 54 51 5 .514
1952 2위/7팀 2위 120 75 45 0 .625
1953 5위/7팀 <colbgcolor=#0066b3><colcolor=#ffffff> 5위 120 56 62 2 .475
1954 3위/8팀 3위 140 79 57 4 .581
1955 3위/8팀 3위 142 85 55 2 .607
1956 4위/8팀 4위[95] 154 84 66 4 .558
1957 3위/7팀 3위 132 75 52 5 .587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
1958 4위/6팀 4위 다이마이 오리온즈 130 62 63 5 .496
1959 2위/6팀 2위 136 82 48 6 .631
1960 1위/6팀 우승 133 82 48 3 .631 일본시리즈 (0-4 vs 다이요)
1961 4위/6팀 4위 140 72 66 2 .521
1962 4위/6팀 4위 132 60 70 2 .462
1963 5위/6팀 5위 150 64 85 1 .430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
1964 4위/6팀 4위 도쿄 오리온즈 150 77 68 5 .531
1965 5위/6팀 5위 140 62 74 4 .456
1966 4위/6팀 4위 134 61 69 4 .469
1967 5위/6팀 5위 137 61 69 7 .469
1968 3위/6팀 3위 139 67 63 9 .515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96]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97]
1969 3위/6팀 3위 롯데 오리온즈 130 59 54 7 .561
1970 1위/6팀 우승 130 80 47 3 .630 일본시리즈 (1-4 vs 요미우리)
1971 2위/6팀 2위 130 86 46 4 .635
1972 5위/6팀 5위 130 59 68 3 .465
1973 전기 2위/6팀
후기 2위/6팀
3위[98] 130 70 49 11 .588
1974 전기 2위/6팀
후기 우승/6팀
우승 130 69 50 11 .580 플레이오프 (3-0 vs 한큐)
일본시리즈 (4-2 vs 주니치)
1975 전기 6위/6팀
후기 2위/6팀
4위 130 59 65 6 .476
1976 전기 3위/6팀
후기 3위/6팀
3위 130 63 56 11 .529
1977 전기 5위/6팀
후기 우승/6팀
3위 130 60 57 13 .513 플레이오프 (2-3 vs 한큐)
1978 전기 5위/6팀
후기 3위/6팀
4위 130 53 62 15 .461
1979 전기 4위/6팀
후기 3위/6팀
4위 130 55 63 12 .466
1980 전기 우승/6팀
후기 3위/6팀
2위[99] 130 64 51 15 .557 플레이오프 (0-3 vs 킨테츠)
1981 전기 우승/6팀
후기 3위/6팀
3위 130 63 57 10 .525 플레이오프 (1-1-3 vs 닛폰햄)
1982 전기 6위/6팀
후기 4위/6팀
5위 130 54 69 7 .439
1983 6위/6팀 6위 130 43 76 11 .361
1984 2위/6팀 2위 130 64 51 15 .557
1985 2위/6팀 2위 130 64 60 6 .516
1986 4위/6팀 4위 130 67 64 9 .471
1987 5위/6팀 5위 130 51 65 14 .440
1988 6위/6팀 6위 130 54 74 2 .422
1989 6위/6팀 6위 130 48 74 8 .393
1990 5위/6팀 5위 130 57 71 2 .445
1991 6위/6팀 6위 130 48 77 5 .384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100]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101]
1992 6위/6팀 6위 치바 롯데 마린즈 130 54 74 2 .422
1993 6위/6팀 6위 130 51 77 2 .398
1994 5위/6팀 5위 130 55 73 2 .430
1995 2위/6팀 2위 130 69 58 3 .543
1996 5위/6팀 5위 130 60 67 3 .472
1997 6위/6팀 6위 135 57 76 2 .429
1998 6위/6팀 6위 135 61 71 3 .462
1999 4위/6팀 4위 135 63 70 2 .474
2000 5위/6팀 5위 135 62 67 6 .481
2001 5위/6팀 5위 140 64 74 2 .464
2002 4위/6팀 4위 140 67 72 1 .481
2003 4위/6팀 4위 140 68 69 3 .496
2004 4위/6팀 4위 133 65 65 3 .500
2005 2위/6팀 우승[102] 136 84 49 3 .632 퍼스트 스테이지 (2-0 vs 세이부)
세컨드 스테이지 (3-2 vs 소프트뱅크)
일본시리즈 (4-0 vs 한신)[103]
2006 4위/6팀 4위 136 65 70 1 .481
2007 2위/6팀 2위 144 76 61 7 .555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소프트뱅크)
세컨드 스테이지 (2-3 vs 닛폰햄)
2008 4위/6팀 4위 144 73 70 1 .510
2009 5위/6팀 5위 144 62 77 5 .446
2010 3위/6팀 3위 144 75 67 2 .528 퍼스트 스테이지 (2-0 vs 세이부)
파이널 스테이지 (4-3 vs 소프트뱅크)
일본시리즈 (4-1-2 vs 주니치)
2011 6위/6팀 6위 144 54 79 11 .406
2012 5위/6팀 5위 144 62 67 15 .481
2013 3위/6팀 3위 144 74 68 2 .521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세이부)
파이널 스테이지 (1-4 vs 라쿠텐)
2014 4위/6팀 4위 144 66 76 2 .465
2015 3위/6팀 3위 143 73 69 1 .514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닛폰햄)
파이널 스테이지 (0-4 vs 소프트뱅크)
2016 3위/6팀 3위 143 72 68 3 .514 퍼스트 스테이지 (0-2 vs 소프트뱅크)
2017 6위/6팀 6위 143 54 87 2 .383
2018 5위/6팀 5위 143 59 81 3 .421
2019 4위/6팀 4위 143 69 70 4 .496
2020 2위/6팀 2위 120 60 57 3 .513 파이널 스테이지 (0-3 vs 소프트뱅크)
2021 2위/6팀 2위 143 67 57 19 .540 퍼스트 스테이지 (1-1-0 vs 라쿠텐)
파이널 스테이지 (0-1-3 vs 오릭스)
2022 5위/6팀 5위 143 69 73 1 .486
2023 2위/6팀 2위 143 70 68 5 .507 파이널 스테이지 (0-3 vs 오릭스)
<rowcolor=#000000> NPB 통산 74시즌 리그우승 5회 9980 4803 4778 399 .502 일본시리즈 우승 4회

1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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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관련 문서



[1] 정확하게는, 1973년에는 공식 연고지는 도쿄도로 하되 전체 홈경기 중 26경기를 미야기구장에서 하기로 결정되었고, 정식으로 연고지를 미야기현으로 옮긴 것은 1974년부터. 다만 어디까지나 롯데 구단 자체는 기본적으로 도쿄를 공식 연고지로 잡으려 했고, 미야기를 연고지로 삼은 것은 잠정적인 연고지 이전일 뿐이라고 여겼다. 참고로 연고 이전 당시 "우리는 전일본국민에게 사랑받는 구단이 될 꺼다! 우리의 연고는 일본 그 자체다!"란 개드립을 친 바 있다(...). 그런데 혐한들은 "니네들 한국 기업이잖아"라며 깐다 집시 롯데 참고.[2] 약칭은 마이니치와 다이에이를 뒤바꿔 1글자씩 따온 다이마이 오리온즈.[3] 주로 센다이미야기 구장을 사용했으며 미야기 구장 외에도 도쿄메이지진구 야구장, 고라쿠엔 구장 등에서 홈경기를 치렀다. 집시 롯데 문서 참조.[4] 현재는 롯데 내 롯데홀딩스가 관리 중이다.[5] 1969~1970년은 네이밍 스폰서.[6] 롯데홀딩스 대표이사[7] 대표 마스코트, 한국에 있는 팀 아우 갈매기보다는 좀 더 매스미디어에 자주 출현하는 인물이다.[8] 일본식 이름은 하리모토 이사오(張本 勳). 재일교포. NPB 역대 최다 기록인 3085안타 기록 보유자. 이외에도 여러 기록을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9] 타격 코디네이터[10] 1·2군 순회 코치[11] 롯데의 일본법인.[12] 그래서 한국에서는 일본 롯데라고 이 팀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13] 알려진 후계 구도대로는 장남 신동주가 일본 롯데를 맡고 차남 신동빈이 한국 롯데를 맡도록 되어 있다. 근데 기업 규모는 한국 롯데가 일본 롯데의 10배가 넘는다.[14] 신동빈이 롯데 자이언츠도 챙긴 적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의 업적으로는 바비 발렌타인의 친구인 제리 로이스터를 데려온 것이 전해지고 있다.[15] 유독 야구만 심하다. 타 종목의 경우엔 지역명 + 기업명 표기를 한다.[16] 일본에서 쓰이는 신자체로는 楽天이라고 쓴다.[17] 쓸 일은 거의 없겠으나, 이것을 굳이 일본 신자체로 옮긴다면 羅徳이 된다(德에서 心 위에 있는 가로획 하나를 생략). 대체로 중국의 간화자(간체자)가 일본 신자체보다 간략한 경우가 많지만, 가끔은 반대인 경우도 있는데 德(徳) 자도 그 예이다.[18] 중국어 풀네임은 과거에는 千葉樂天海洋/千叶乐天海洋이었다가 현재는 千葉羅德海洋/千叶罗德海洋으로 변경했다.[19] 한때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도 롯데 자이언츠 문서의 표제를 羅德巨人(간체 변환 시 罗德巨人)으로 바꾼 적이 있었으나 현재는 乐天巨人(정체 변환 시 樂天巨人)으로 되돌려졌다.[20] 사실 도입한건 쌍방 합의하에 한 것이지만 얼마 후에 요미우리 쪽에서 자기들이 원조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미운털이 박혔다.[21] 그마저도 롯데의 경기는 없었다.[22] 1981-2005년. 그러나 1996년은 시합 중지가 되어 실질적으론 24년.[23] 다른 한 명은 이름부터가 짐작이 가지 않는가?[24] 이때가 발렌타인 감독 재계약건으로 한참 시끄러울때고 후술할 MVP라는 조직이 앞장서서 발렌타인 재신임운동을 하고있었다.[25] 특히 한 연고지에서 오래 이어진 한신, 주니치, 히로시마.[26] 같은 리그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도 자주 이용한다. 특히나 이 둘이 대결하면 외야석에서 장관을 볼 수 있다.[27] 마린즈 이외에도 요미우리 자이언츠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등의 응원에서도 축구와 유사한 응원 수법이 가미되기도 한다. 다만 어쨌든 마린즈가 원조로 통하다 보니 한신 등 라이벌 팀 팬들이 요미우리 응원을 '롯데 따라쟁이'(ロッテのパクリ)로 비하하기도 할 정도.[28] Marines Victory Productions(약칭 MVP), 치바 롯데 마린즈 외야 응원단 등. 축구와 유사한 롯데 특유의 응원 스타일을 주도했지만, 위에서 서술한 매너 문제와도 관련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일본프로야구에서는 터부시되는 견제 응원을 하다가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말 꼴리건에게 전염되었을수도[29] 우연의 일치이지만, 견제 응원이 문제시되던 시기에 김성근은 치바 롯데에서 코치로 일하고 있었다. SK 와이번스에서 보여준 그의 견제 응원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도?[30] 이들은 2012년에 창단한 일본 사회인야구팀 "도쿄 메츠"의 서포터이자 후원자로 활동을 재개한다.[31] 앞서 이야기한, 레이지본에서 활동했고 2005년까지 롯데 응원단 활동을 하다 구단 직원으로 일하던 진 토시오 씨가 응원단장으로 복귀해 중심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상술한 U.N. 오웬이나 キラメキラリ는 그의 선곡이라고 한다.(...) 진 토시오는 2018년 시즌부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응원단으로 옮겼다. 일본에서 몇 안되는 프로 응원단 일을 하는 사람으로, 2016년부터 진 토시오가 응원단장을 그만둔 후에는 지역별로 응원단이 운영되는 형태로 바뀌었다.(이전에는 응원단은 지역별로 존재했으나 그들을 통솔하는 응원단장은 진 토시오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했었다. 아무래도 진 토시오는 프로 응원단이기 때문에 원정 경기까지 일일이 돌아다니는 것이 가능했던 것 같다.)[32] 이때 롯데 마린스 서포터들이 가장 좋아했던 "우리들의 자랑"이 금지곡이 된다. 단지 MVP가 이 노래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33] MVP에서 발렌타인을 내치려는 프런트를 비판하는 현수막을 외야에 건 적이 있었는데 문제는 그 내용이나 단어선택이 다소 자극적이었다. 그 무렵 니시오카 츠요시는 어린 팬들을 위해서라도 현수막을 거두아달라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MVP의 미움을 사 한동안 MVP의 조롱과 까임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팬들은 니시오카를 옹호했고 이 때문에 MVP와 약간의 마찰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상황.[34] 단지 서포터 주축이 갈려지고 친 구단성향의 서포터 그룹이 응원을 주도하고 있을뿐, 기본성향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35] 예외적으로 사부로의 경우 은퇴경기 한정으로 MVP 시절 응원가가 부활했다. 어차피 사부로의 출전이 많지 않기도 했고...[36] 치바 롯데 마린즈의 서포터즈인 team 26 역시도 라미고 몽키스의 Oh! Lamigo! 응원가를 One Heart Marines 콜로 개사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알프레도 데스파이네의 롯데 시절 응원가는 라미고 몽키스의 찬스테마이며, 라미고의 왕보룽 응원가는 치바롯데 팀 응원가로 쓰이고 있다.[37] 무료로 주는 티켓도 등급에 따라 차이가 있는게 골드 이상은 내야 지정석도 입장이 가능한데 레귤러와 캐주얼 레귤러는 내야 자유석과 외야 응원석만 된다.[38] 사실 롯데 응원도 안 하면서 일본 여자를 헌팅하러 오는 한국 남자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한국 남자라고 하면 특히 싫어하는 소모임이 많다고 한다. 특히 김태균이 롯데에서 뛸 때 그게 심했다고...[39] 오릭스의 연고지인 오사카야 두말할 필요 없는 한신국이고, 치바 역시 요미우리의 인기가 가장 높다. 요미우리와 같은 연고로 두고 있는 야쿠르트도쿄에서야 요미우리에 밀리는 건 사실이나, 야쿠르트 창업자의 고향인 나가노현에서 가장 인기 좋은 야구 팀이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역시 본진인 사이타마에서는 교진에 밀리지만, 세이부 회사 자체의 발상지나 다름없는 시가현 내 인기는 No.1이며, 이전 근거지였던 후쿠오카 쪽의 입지도 만만치 않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는 이름답게 아예 홋카이도섬 자체를 지배하는중. 그런데 치바 롯데나 오릭스는 그런 현도 없으니.[40] 그러나 코로나 이후 다시 쿄진이 치바에서 1위팀이 되었다(…). 그래도 홈구장이 위치한 치바시의 경우 여전히 롯데가 제일 인기가 많다.[41] 2018년 조사에 의하면 세이부, 야쿠르트, 오릭스가 어느 지역에서도 인기도 1위를 얻지 못했다. 그 외에 롯데는 치바, DeNA는 카나가와, 닛폰햄은 홋카이도에서만 인기도 1위를 얻었다. 즉 자기네 홈그라운드 바깥 타 지역에서 인기 1위를 차지한 팀은 12팀 중 6팀에 불과하다는 것. 그래도 이게 예전보다 나아진게 아키타현, 오키나와현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가장 자기네 지역에서 가까운 팀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잡히고 있다.(물론 이 극소수는 전부 쿄진팬이다. 즉, 아직도 전국 단위로 쿄진이 인기를 얻던 분위기가 덜 빠진 지역.)[42] 홈 라이트 응원석 한정. 원정팀 응원구역 옆에 붙어있는 래프트 응원석은 팬클럽이라면 개막전같은 인기 경기도 갈 수 있다.[43] 2019년의 경우 후쿠우라 카즈야의 모교 응원단이 방문하는 올포치바데이 경기가 이런 케이스.[44] 코시엔의 경우 원정팀 응원구역이 8개의 구역이 있다. 이 중 적게는 1개부터(라쿠텐) 많게는 6개까지(히로시마) 상대팀 인기도에 따라서 원정 응원석으로 지정하는데 라쿠텐보다도 비인기인 롯데와의 경기에서는 요미우리히로시마처럼 5-6구역을 응원석으로 지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속으로 표가 나간다. 왜 이런지는 의문. 칸사이에 롯데 팬이 많다고 하면 오릭스 버팔로즈 홈구장이 오사카라서 충분히 롯데 경기를 볼 수 있는건데... 혹자는 33:4 때문이라는 말도 한다.[45] 롯데 홈인 제3구장 경기는 도쿄돔밖에 없다. 이 경기는 당연히 응원석이 광속매진인데 뜬금없이 남의 팀 지방구장 원정 응원석도 광속매진시켜버린다! 오미야나 군마같은 홈에서 그나마 가까운 지방구장은 물론 오비히로, 쿠시로 같은 삿포로에서도 한참 떨어진 촌구석 야구장까지 다 매진시켜버리는 수준이다. 왜인지는 불명.특이한 구장 가 보고 싶은건가 참고로 이런 성향 때문에 쿄진, 한신 팬은 어디든 있다면, 롯데 팬은 어디든 간다(...) 는 말이 있다. 팬은 적지만 전국을 원정경기를 보러 다니는 코어팬은 많다는 것.[46] 물론 팀 성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당시 롯데는 비인기 리그였던 퍼시픽리그에서도 손꼽히는 비인기 구단이었고, 아래에 서술하듯 카와사키 구장은 한산한 야구장의 대명사였다.[47] 당시 감독이었던 야마모토 카즈요시가 당연히(?) 짤린건 덤.[48] 이마저도 당시 파리그가 전후기리그 체제로 진행되던 시기였고, 승률은 1위였지만 전기우승을 한큐 브레이브스에게 내주고 후기우승을 한 뒤 PO 우승 - 일본시리즈 우승을 한 것이다.[49] 여담으로 이마에의 응원가 원곡은 이정현의 '와', 후쿠우라의 응원가 원곡은 조용필의 '해변으로 가요', 이승엽의 응원가는 '힘내라 힘', 사토자키의 응원가는 코요테의 '만남'이다.[50] 참고로 당시 팀명을 놓고 치바 시민들을 상대로 공개여론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다른 후보군으로는 매리너스응??와 파라다이스(...). 여담으로 당시 신동빈 구단주가 직접 일본 언론을 통해 이를 설명했다#.[51] 2008년에는 닛폰햄 주최 도쿄돔 경기에서 마스코트가 나가시소멘 퍼포먼스를 펼쳤다. 도쿄돔과 가와사키에서 쌍으로 파리날리던(...) 팀들의 자학놀이.(YouTube) 다만 도쿄돔은 외부음식 반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곳인 만큼 구장 주인인 주식회사 도쿄돔에서 허가를 해줬을 가능성이 높다.[52] 비슷한 사례로 같은 퍼시픽 리그 킨테츠 버팔로즈의 홈구장이었던 후지이데라 구장에서 관중들이 스토브를 반입해(...) 고기 파티를 벌였던 적이 있었다. 어어??[53] 이후 80~90년대 롯데-주니치를 거치며 활약한 팀의 OB 아이코 타케시도 은퇴 뒤 여러차례 안드로스텐다이온 등의 약물을 복용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이쪽은 노쇠화 뒤 주니치에서부터 약물복용을 시작했다고 증언했지만.[54] 악동 하야카와는 2010년 시즌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했으나 별달리 활약은 못 하다가 2011년 시즌이 끝난 뒤 은퇴했다. 이 후 2016 시즌부터 친정팀 오릭스 버팔로즈의 2군 외야 수비 주루코치를 맡는다.[55] 보면 알겠지만 이익 본 건 없다. 희귀한 인정 3루타만 줬을 뿐(...).[56] 앞에 언급한 배트 던지는 하야카와다. 사실 저런 포수 메치기는 MLB에선 흔한 풍경이으므로 일본 기준으로 험하긴 해도 완전히 이상한 건 아니다.[57] 과장 아니다. 한국에서 저런 광고 냈다가는 상대팀 팬의 항의를 받을 게 분명하고, 바로 사건사고 문서 직행이다.[58] 앰비그램의 원리를 활용해 六甲를 뒤집으면 33-4로 읽힐 수 있도록 모양을 만들었다.[59] 난카이 호크스의 홈구장. 호크스의 후쿠오카 이전 후 모델하우스 부지 등으로 쓰이게 되었다가(...) 1998년 철거.[60] 당시엔 아직 프랜차이즈가 제도화 되지 않아서 각지의 구장에서 경기를 치렀다. 이 해 일본시리즈는 4승 2패로 우승했는데, 우승 결정전인 6차전은 오리온즈의 홈경기였으나 당시 홈구장으로 쓰던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리지 않고 오사카 구장에서 열렸다.[61] 주니치 드래곤즈는 2군이 서부지방 팀들이 모인 웨스턴리그 소속이지만 아이치는라는 지역을 동서로 구분하면 서일본이 아닌 동일본이다.[62] 60년에 타이요 (카와사키), 70년에 요미우리 (도쿄)[63] 2019년 브랜든 레어드가 8월에 30홈런 달성. 14년만에 30홈런 타자가 나왔다.[64] 키요타는 그나마 15년에 플루크긴 했어도 준수한 중장거리포로 활약해줬다.[65] 5년 만에 일본인 20홈런 타자가 등장했다.[66] 팀 홈런 2위는 8홈런의 카쿠나카 카츠야스즈키 다이치.[67] 일본인 타자 홈런 1위는 카쿠나카 카츠야(8홈런)[68] 3년 연속 팀내 홈런 1위.[69] 이 때 팀내홈런 2위는 네모토 슌이치, 조시 화이트셀, 사토자키 토모야로 3명 다 9홈런을 기록했다.[70] 이 때 팀내홈런 2위는 이마에 토시아키. 8홈런을 쳤다.[71] 이 시즌까지는 일본프로야구가 지금보다 반발력이 강한 공을 써서 지금보다 타고투저가 심했던 것을 감안해야 한다.[72] 최후의 치바롯데 일본인 20홈런 좌타자이자 치바롯데 일본인 좌타자 중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보유자.[73] 백업포수였다. 거포형 포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커리어하이가 11홈런이었다는 것은 사토자키에게 밀려 출전 기회가 적었다는 것. 그래도 2년 15억원으로 FA 이적도 하는 등 나쁘지 않은 선수생활을 보냈다.[74] 롯데에 오기 전엔 오릭스에서 30홈런도 찍은 타자였다(...).[75] 이 선수는 277타수밖에 못 뛰고도 15홈런을 쳤다. 풀 시즌을 뛰었으면 30홈런을 노릴 수도 있었지만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롯데에 오기 전에 이 선수는 소프트뱅크에서 4년 동안 뛰면서 120홈런을 넘게 쳤던 일본 최강의 슬러거였다. 메이저 시절에도 200타석도 못 들어서고 9홈런을 쳤던 장타력을 보유했던 선수였으니.[76] 2004년에 롯데에서 3할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했던 하와이 출신 타자. 그러나 그 시즌은 플루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시즌의 활약이 워낙 괴물같았고, 감독 바비 발렌타인매우 아끼는 선수였기 때문에 무려 6시즌 동안이나 롯데에서 뛰었다.[77] 최후의 팀 홈런 공동1위.[78] 반 시즌만 뛰고도 13홈런을 칠 정도로 장타력은 진퉁이었지만 볼삼비도 1:2로 선풍기 소리를 들었고, 득점권만 되면 긴장했는지 득타율이 1할 3푼이었다. 결국 13홈런 치고도 퇴출. 실제로 13홈런을 쳤는데 타점은 겨우 32타점이었다.[79] 치바롯데 최후의 20홈런 이상 치고도 팀내 홈런 1위를 먹지 못한 선수.[80] 다만 까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는 않고, 이전 재직한 닛폰햄, 소프트뱅크 등에서 실적이 있는 코치이다.[81] 2020년에는 1군 투코로 승격.[82] 그 외에도 코타니 타다카츠 등의 전직 롯데 2군 투수코치 중에서도 명 코치가 있었다. 이 사람은 롯데에서 후타키 코타를 터트리고 쿄진으로 가서 크리스토퍼 메르세데스를 키웠다.[83] MLB-NPB 올스타전이나 친선경기 등에서는 종종 뽑히긴 했지만 이 대회들은 사퇴자가 많아서 제대로 된 1진 팀이라 보기에는 어렵다.[84] 다이에 출신의 경영인으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구단 업무를 맡아 네모토 리쿠오 전무와 함께 호크스의 후쿠오카 정착과 리빌딩을 주도한, 일본프로야구 프론트 업무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하지만 1998년의 다이에 사인 훔치기 스캔들, 경영악화 이후엔 고쿠보 히로키 무상 트레이드로 귀결된 부패 운영 의혹 등에 연루되고, 롯데 구단 사장으로 복귀한 2004년 프로야구 재편문제 때는 후루타 아츠야 선수노조 위원장 등에 맞서 구단 오너들의 입장을 강경하게 대변하는 등 논란의 인물이기도 했다. 2011년 시즌 종료 후 롯데 구단본부장을 그만두고 2012년 오프시즌부터 오릭스 버팔로즈의 구단본부장을 맡았으나 2017년의 부진한 성적을 이유로 시즌 종료 후 사퇴한다.[85] 그러나 거인 일편단심인 초노는 결국 입단을 거부했고 이듬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재지명되어 요미우리의 간판선수가 됐다. 하지만 2018년 시즌 종료 이후, 히로시마 토요 카프에서 마루 요시히로가 FA를 행사하며 거인 유니폼을 입자 보상선수로 선택됐다. 3수까지 불사하며 거인에 그토록 오고 싶어했던 충성도 높은 선수를 내치는 거인의 냉정함을 볼 수 있다.[86] 발렌타인의 고액 연봉과 미국에서 데려온 코치, 통역 등을 중심으로 프론트의 의사를 무시한 독단적인 운영을 했다는 식으로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대비되는 발렌타인의 입장은 주로 일본 야구를 전문으로 다루는 미국인 기자들의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istory, tradition helped to undermine Valentine" - The Japan Times 소속 Robert Whiting 기자의 기사(4부작), 교도통신 Jim Allen 기자의 블로그 포스트. 미-일간 문화적 차이도 엿볼 수 있는 부분.[87] 프런트와 갈등이 심하긴 해도 팬들에게는 애증의 관계이기도 하다. 막장스런 '집시 롯데' 시대 이후 가와사키, 치바 시대까지 질기도록 이어진 암흑기를 청산해 준 (마린즈 팬 측에서는) 명장이기도 하고 2차 취임기 때 포스트시즌 진출 단골팀(특히 2005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만들어 준 감독이기도 하다. 때문에 많은 팬들이 이 조치에 반발하였다.[88] 간단히 설명하자면, 바비 발렌타인과 레드삭스 선수들 간의 불화설이 시즌 내내 나왔다. 바람잘날이 없었던 셈. 자세한 내용은 보스턴 레드삭스/2012년을 참조바람.[89] 1952년 7월 16일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홈구장인 헤이와다이 구장에서의 원정경기 때 4대 9로 뒤지던 마이니치가 우천과 일몰 노게임(당시 헤이와다이 구장은 조명시설이 없었다.)을 노리고 고의적인 경기 지연행위를 벌여 결국 5회초에 노게임 선언이 되자 분노한 니시테츠 팬 수천명이 그라운드에 난입한 사건. 이 때 니시테츠의 오시타 히로시와 노구치 마사아키가 둘이서 함께 팬들의 주먹과 발길질에 피투성이가 되어가면서도 관객들을 저지했고 결국 이날 소동은 3300명의 경찰 기동대가 투입되어 겨우 진정되었다. 이날 관객들의 소란을 저지한 공으로 오시타와 노구치는 연맹 표창을 받은 반면 지연 행위를 조장했던 유아사 요시오 총감독은 해임, 와카바야시 타다시 감독은 2군 감독으로 강등당하는 조치를 받고 벳토 카오루가 선수 겸 감독으로 취임하였다.[90] 특히, 4월 팀 타율이 .186에 머물렀다.[91] 이토 감독이 김정후의 입단 테스트 후에 2017 시즌 전반기를 독립 리그에서 보내면서 실전 경기를 치르는 걸 봐서 후반기에 입단시켜주겠다고 판단 보류 판정을 내렸는데, 이토의 사임이 정해지면서 그대로 무산. 후임 감독 이구치는 2017년 인터뷰에서 이토의 구단 운영을 신랄하게 비판했기 때문에 이토가 영입하려고 한 김정후의 영입도 백지화를 해버렸다.[92] 라쿠텐의 10번도 마찬가지. 축구에서도 11명의 선수에 이은 12번을 팬 번호로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기도 한다.[93]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 엉뚱한 바탕색에 볼드체 나올 수 있다. 이 점 명심[94] 새 각주가 없는 이상 페넌트레이스 1위만 일본시리즈로 진출.[95] 1954~1956년엔 퍼시픽리그가 8팀 체제였기에 4위까지 A클래스였다.[96] 1973~1982년의 전후기리그제의 경우는 플레이오프 우승으로 리그 우승을 확정지을 시 페넌트레이스 순위에 관계없이 1위 결정. 그 이하는 전후기 합산 승률 순위에 따라 결정.[97] 1973년부터 1982년까지는 전후기 우승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 한 팀이 전후기 독점 시 일본시리즈 직행.[98] 실제 순위는 2위였으나, 페넌트레이스 3위였던 난카이(전기 우승)가 플레이오프에서 한큐(후기 우승)를 꺾고 리그 우승을 결정지었고 그 결과 페넌트레이스 1위였던 한큐가 2위로 내려가면서 롯데의 순위가 3위로 하락.[99] 참고로 이해 시즌에 롯데는 1위 킨테츠와 불과 8모 차이로 페넌트레이스 1위 달성이 좌절되었다.(킨테츠 .5573/롯데 .5565) 즉, 반올림 시엔 동률 1위가 될 수 있었다...라고 하지만 저 때 규정상 플레이오프를 이겨야 우승하는 것이니 별 상관 없는 이야기다.[100] 단독 플레이오프 시대일 경우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무조건 1위가 되며, 나머지는 정규시즌 순서로 세운다. 클라이맥스 시리즈는 정규시즌만 반영.[101] A클래스 전원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플레이오프에, 2007년부터는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한다.[102] 페넌트레이스 순위는 2위였으나, 플레이오프 우승으로 리그 우승 결정.[103] 그 전설적인 33-4시리즈.[104] 로고가 상당히 비슷했으나 2020년 밀워키의 로고가 교체되며 상관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