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09:54:20

1974년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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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1978년엔 한큐 브레이브스의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플레이오프가 개최되지 않았다. 2007년부터는 클라이맥스 시리즈로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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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롯데 리그우승 1974.jpg
1974년 퍼시픽리그 우승
롯데 오리온즈
플레이오프 MVP 무라타 쵸지

1. 개요2. 일정 및 결과
2.1. 1차전2.2. 2차전2.3. 3차전2.4. 타이틀 시상
3. 기타

1. 개요

파일:한큐 브레이브스 레드 심볼.svg 파일:롯데 오리온즈 심볼.svg
한큐 브레이브스 롯데 오리온즈
전기 : 36승 23패 6무 (.610, 우승) 전기 : 31승 27패 7무 (.534, 2위)
후기 : 33승 28패 4무 (.541, 3위) 후기 : 38승 23패 4무 (.623, 우승)
종합 : 69승 51패 10무 (.575, 2위) 종합 : 69승 50패 11무 (.580, 1위)

1974년 10월 5일부터 10월 9일까지 개최된 제2회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 전기 우승팀 한큐 브레이브스와 후기 우승팀 롯데 오리온즈가 맞붙어 롯데가 3연승으로 한큐를 꺾고 4년 만에 통산 4번째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미야기 구장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포스트시즌[1] 경기이며, 롯데는 이 해가 롯데 오리온즈로써의 마지막 우승이 되었다.[2]

2. 일정 및 결과

경기 날짜 경기장 원정팀 점수 홈팀
1차전 10월 5일(토)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롯데 오리온즈 3 2 한큐 브레이브스
2차전 10월 6일(일) 롯데 오리온즈 8 3 한큐 브레이브스
3차전 10월 9일(수)[3] 미야기 구장 한큐 브레이브스 0 4 롯데 오리온즈
우승 : 롯데 오리온즈

2.1. 1차전

1974.10.5(토)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관객 수: 20,000명)
<rowcolor=#ec1c24>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롯데 키타루 마사아키 1 1 0 1 0 0 0 0 0 3 8 0
한큐 아다치 미츠히로 0 0 0 1 0 0 1 0 0 2 9 0

승리투수 :
롯데
미즈타니 노리히로(1승) : 3.2이닝 3탈삼진 4피안타 1사사구 1실점(1자책)
패전투수 :
한큐
아다치 미츠히로(1패) : 5이닝 0탈삼진 7피안타 2사사구 3실점(3자책)
세이브 :
롯데
무라타 쵸지(1S) : 1.1이닝 2탈삼진 무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
홈런
롯데
없음
한큐
없음

롯데가 1회 초부터 토쿠츠 타카히로의 우익수 앞 적시타로 선제점을 따낸 데 이어 2회 초, 4회 초에 아리토 미치요의 적시타로 3점 리드를 잡고, 4회 말부터 적시타를 맞은 키타루를 조기강판시키고 계투 작전에 나섰다. 한큐는 4회 말 나가이케 토쿠지, 7회 말 후쿠모토 유타카의 적시타로 점수차를 1점까지 좁히며 반격에 나섰으나 8회 말에 도중 등판한 무라타 쵸지에게 틀어막히며 결국 롯데가 플레이오프 첫 승을 가져갔다.

2.2. 2차전

1974.10.6(일)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관객 수: 32,000명)
<rowcolor=#ec1c24>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롯데 카네다 토메히로 5 0 1 1 0 0 1 0 0 8 10 0
한큐 미즈타니 타카시 0 0 0 1 0 0 2 0 0 3 7 0

승리투수 :
롯데
카네다 토메히로(1승) : 6.1이닝 4탈삼진 6피안타 1피홈런 무사사구 3실점(3자책)
패전투수 :
한큐
미즈타니 타카시(1패) : 1이닝 1탈삼진 6피안타 무사사구 5실점(5자책)
홈런
롯데
야마자키 히로유키 1호 (3회 초, 1점)
한큐
나가이케 토쿠지 1호 (4회 말, 1점)

2차전에서도 롯데가 1회 초부터 2사 2루에서 야마자키 히로유키의 1타점 적시타를 시작으로 만루에서 아리토 미치요의 1타점 적시타, 무라카미 키미야스의 주자일소 3타점 적시타로 무려 5점을 뽑아내며 한큐의 선발 미즈타니 타카시를 1이닝 만에 넉아웃시켰고, 3, 4회 초에도 야마자키 히로유키의 솔로포를 포함한 적시타 2개로 점수차를 7점까지 벌렸다. 한큐는 4회 말 나가이케 토쿠지의 솔로포, 7회 말 스미토모 타이라, 나카자와 신지의 적시타로 어떻게든 점수를 뽑아냈지만 7회 초 하세가와 카즈오에게 추가 적시타를 맞은 것을 포함해 초반부터 벌려진 점수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결국 롯데가 2연승을 거두며 우승까지 단 1승만을 남겨놓은 채 미야기 구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2.3. 3차전

1974.10.9(수) | 미야기 구장 (관객 수: 20,000명)
<rowcolor=#ec1c24>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한큐 미즈타니 타카시 0 0 0 0 0 0 0 0 0 0 3 2
롯데 카네다 토메히로 0 0 2 0 0 0 0 2 X 4 6 0

승리투수 :
롯데
무라타 쵸지(1승 1S) : 9이닝 4탈삼진 3피안타 2사사구 무실점 완봉승
패전투수 :
한큐
요네다 테츠야(1패) : 2.2이닝 1탈삼진 3피안타 2사사구 2실점(무자책)
홈런
롯데
토쿠츠 타카히로 1호 (8회 말, 2점)
한큐
없음

롯데가 3회 초 한큐 수비진의 실책을 틈타 1사 1, 3루에서 토쿠츠 타카히로의 1타점 땅볼과 짐 르피버의 적시타이어 8회 말 토쿠츠의 2점 홈런을 더해 4점을 뽑아냈다. 선발로 나선 무라타 쵸지는 5회까지 한큐 타자들에게 안타조차 허용하지 않는 투구를 선보이며 완봉을 기록했고, 그렇게 롯데가 3연승으로 한큐를 누르고 4년 만의 퍼시픽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2.4. 타이틀 시상

  • 최우수선수상(MVP)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21155; font-size: 0.8em"
롯데}}} 무라타 쵸지
  • 감투상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0000; font-size: 0.8em"
한큐}}} 나가이케 토쿠지
  • 수위타자상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21155; font-size: 0.8em"
롯데}}} 토쿠츠 타카히로
  • 기능상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21155; font-size: 0.8em"
롯데}}} 아리토 미치요
  • 우수투수상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21155; font-size: 0.8em"
롯데}}} 카네다 토메히로
  • 우수선수상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21155; font-size: 0.8em"
롯데}}} 야마자키 히로유키

3. 기타

  • 다음 해부터 퍼시픽 리그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퍼시픽 리그 최후의 9인 선발 경기이기도 하다.
  • 리그 우승을 달성한 롯데는 뒤이은 일본시리즈에서는 미야기 구장이 아닌 창단 때부터 1962년까지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코라쿠엔 구장에서 홈경기를 개최했다. 당시 미야기 구장의 관중수용량이 2만명 정도여서 일본시리즈 개최 조건 중 하나인 '관중수용량이 3만명 이상인 구장'에 미달했기 때문. 그래서 센다이시 팬들은 일본시리즈를 현지에서 못 보는 것에 아쉬워하면서도 롯데의 선전을 기원했고 그 바램대로 롯데는 24년 만의 일본시리즈 제패를 달성했는데, 문제는 롯데가 시리즈 종료 후 옛 연고지인 토쿄에서만 퍼레이드를 개최하고 센다이시에서는 어떤 기념 행사도 열지 않으면서 센다이의 팬들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실망한 센다이 팬들이 롯데 팬덤에서 이탈했고 이 일은 롯데가 치바에 정착한 지 한참인 현재까지도 토호쿠 팬들이 롯데를 안 좋게 보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자세한 것은 집시 롯데 항목 참고.

[1] 당시 롯데는 이전의 홈구장이었던 토쿄 스타디움이 경영 악화로 폐장되면서 미야기 구장을 임시 본거지로 삼아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홈경기를 개최하는 일명 집시 롯데 시기였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고.[2] 앞서 우승한 1970년엔 명명권 스폰서로만 참가했기에 구단 매입 후의 오리온즈로써는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이기도 하다.[3] 본래 10월 8일에 개최 예정이었으나 우천으로 하루 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