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9:05:52

야마사키 류조

야마사키 류조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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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0000><tablebgcolor=#ff0000> 파일:히로시마 도요 카프 엠블럼.svg히로시마 도요 카프
역대 1라운드 지명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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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folding [ 쇼와 시대 ]
{{{#555555,#aaaaaa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
1965년 ~ 1988년
1965년 1966년 1차 1966년 2차 1967년 1968년
사노 마키오(1)
(佐野真樹夫)
스야마 세이지
(須山成二)
니시모토 아키카즈
(西本明和)
이노우에 히로아키
(井上弘昭)
야마모토 코지
(山本浩二)
1969년 1970년 1971년 1972년 1973년
치바 츠요시
(千葉剛)
사에키 카즈시
(佐伯和司)
미치하라 히로유키
(道原裕幸)
이케가야 코지로
(池谷公二郎)
키노시타 토미오
(木下富雄)
1974년 1975년 1976년 1977년 1978년
도조노 키요시
(堂園喜義)
키타벳푸 마나부
(北別府学)
야마사키 류조
(山崎隆造)
타나바 시게후미
(田辺繁文)
키다 이사무(6)
(木田勇)
1979년 1980년 1981년 1982년 1983년
카타오카 미츠히로
(片岡光宏)
카와구치 카즈히사(1)
(川口和久)
츠다 츠네미
(津田恒実)
니시다 신지(1)
(西田真二)
카와바타 쥰(2)
(川端順)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스기모토 마사시(1)
(杉本正志)
나가도미 히로시
(長冨浩志)
쿠리타 사토시(1)
(栗田聡)
카와시마 켄(2)
(川島堅)
노무라 켄지로
(野村謙二郎)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헤이세이 시대 ]
{{{#555555,#aaaaaa
1989년 ~ 201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사사오카 신지
(佐々岡真司)
세토 테루노부(1)
(瀬戸輝信)
마치다 코지로(1)
(町田公二郎)
사토 타케시(1)
(佐藤剛)
야마네 마사히토
(山根雅仁)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야마우치 야스유키(3)
(山内泰幸)
하세가와 마사유키
(長谷川昌幸)
사와자키 토시카즈(3)
(澤﨑俊和)
엔도 류지(3)
(遠藤竜志)
히가시데 아키히로
(東出輝裕)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카와우치 타카야(2)
(河内貴哉)
요코마츠 토시카즈
(横松寿一)
오타케 칸
(大竹寛)
나가카와 카츠히로(3)
(永川勝浩)
시라하마 유타
(白濱裕太)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사토 츠요시
(佐藤剛士)
스즈키 마사미츠(1)(4)
(鈴木将光)
마에다 켄타(4)
(前田健太)
아베 토모히로(1)(4)
(安部友裕)
이와모토 타카히로
(岩本貴裕)
- 미야자키 미치토(3)(5)
(宮﨑充登)
시노다 쥰페이(1)(5)
(篠田純平)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이마무라 타케루
(今村猛)
후쿠이 유야(1)
(福井優也)
노무라 유스케
(野村祐輔)
타카하시 히로키(1)
(髙橋大樹)
오세라 다이치(2)
(大瀬良大地)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노마 타카요시(1)
(野間峻祥)
오카다 아키타케
(岡田明丈)
카토 타쿠야(1)
(加藤拓也)
나카무라 쇼세이(2)
(中村奨成)
코조노 카이토(2)
(小園海斗)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레이와 시대 ]
{{{#555555,#aaaaaa
2019년 ~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모리시타 마사토
(森下暢仁)
쿠리바야시 료지
(栗林良吏)
쿠로하라 타쿠미(1)
(黒原拓未)
사이토 유타
(斉藤優汰)
츠네히로 하야토(2)
(常廣羽也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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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즈레 1라운더: 첫 지명에서 중복 지명된 선수의 교섭권 획득에 실패했을 때 차순위로 선택한 선수.
(2) 중복 지명 추첨 성공.
(3) 역지명, 희망 입단 범위: 1993년부터 2006년까지 존재한 제도로, 선수를 확정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4) 고교생 드래프트, (5) 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 2005년~2007년의 3년간은 고교 선수와, 대학&사회인 야구에서 뛰었던 선수의 지명이 분리되어 있었다.
(6) 지명 후 미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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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히로시마 도요 카프 엠블럼.sv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1979 1980 1984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1984-1985, 1987-1988 센트럴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1984-1985 센트럴 리그 외야수 부문 베스트나인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1991 센트럴 리그 3루수 부문 베스트나인
반스 로우
(주니치 드래곤즈)
야마사키 류조
(히로시마 도요 카프)
잭 하웰
(야쿠르트 스왈로즈)

{{{#ffffff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도요 카프]] 등번호 23번}}}
시바타 타케시
(1976)
야마사키 류조
(1977-1982)
오오하라 테츠야
(1983)
{{{#ffffff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도요 카프]] 등번호 1번}}}
오쿠보 미치오
(1979-1982)
야마사키 류조
(1983-1993)
마에다 토모노리
(1994-2013)
{{{#ffffff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도요 카프]] 등번호 76번}}}
나카 토시오
(1987-1990)
야마사키 류조
(1994-2011)
쿠라 요시카즈
(2017~)
}}} ||
파일:야마사키 류조.jpg
야마사키 류조
山崎 隆造 | Ryuzou Yamasaki
출생 1958년 4월 15일 ([age(1958-04-15)]세)
일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나카구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학력 소토쿠고등학교(崇徳高等学校)
신체 178cm, 82kg
투타 우투양타
포지션 외야수, 2루수, 3루수
프로입단 1976년 드래프트 1위 (히로시마)
소속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77-1993)
지도자 히로시마 도요 카프 2군 외야수비·주루코치 (1994-1998)
히로시마 도요 카프 2군 감독 (1999-2000)
히로시마 도요 카프 1군 외야수비·주루코치 (2001-2005)
히로시마 도요 카프 2군 감독 (2006-2011)

1. 개요2. 선수 경력3. 연도별 성적

[clearfix]

1. 개요

히로시마시 나카구 출신의 로컬보이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만 선수-코치로 35년을 지내며 3회 우승에 공헌한 원클럽맨 선수.

2. 선수 경력

소토쿠 고교 3학년이던 1976년, 봄 코시엔에 1번 유격수로 출전하여 우승했고, 여름 코시엔에서는 3차전에서 패퇴했다. 같은 해 드래프트에서 고향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1순위로 지명되며 프로에 데뷔했다.

1978년, 코바 타케시 감독의 권유로 타카하시 요시히코에 이어서 스위치 히터로 전향하여 데뷔전을 치렀다. 다만, 타카하시가 주전 유격수로 기용되면서 처음엔 2루수로 뛰었다. 팀이 1979년 일본시리즈1980년 일본시리즈를 우승할 때는 백업으로 주로 출장하며 서서히 출장기회를 늘려갔는데, 1981년 3월 8일 구마모토현 후지사키다이 구장에서 개최된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시범경기에서 타구를 쫓다가 외야 펜스에 부딪혀[1] 오른쪽 무릎이 골절되는 전치 2개월의 부상을 입으며 선수 생명의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얼마나 세게 충돌했는지 펜스에 직격했을 때의 충격음이 벤치까지 들렸을 정도였으며, 슬개골이 보통 골절상처럼 두동강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산산조각 나서 뼛조각을 긁어모아 와이어로 겨우 묶어놓는 전례가 없는 수술까지 하고 나서야 겨우 완치되었을 정도. 이 일로 결국 1981년은 1군 출장 없이 부상 회복에 전념해야 했다.

부상에서 돌아온 1982년에는 2루수외야수로 번갈아 가면서 출장했고, 1983년에는 야마모토 코지를 대신하여 개막전 선발 중견수로 출전하면서 타카하시와 함께 테이블 세터로 활약하였다. 6월 이후에는 중견수 자리를 나가시마 키요유키에게 넘겨주고 우익수로 주로 출장하며 처음으로 규정타석에 도달, 리그 9위의 타율 .305를 기록했다. 이 해부터 3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였고, 1984년에는 26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고 수비에서도 다이아몬드 글러브를 수상한 것은 물론 1984년 일본시리즈 우승에도 크게 공헌하면서 전성기를 보냈다.

비록 현역 시절 단 1번도 타격 타이틀을 수상하지 못했지만 베스트나인 외야수 부문 2회, 3루수 부문 1회 수상 및 골든글러브 4회 수상을 달성했으며, 선수 생명이 끝날 뻔한 부상을 겪고도 재기하여 1984년에서 1989년까지 6시즌 연속 전 경기 출장[2] 및 통산 도루도 228개를 기록하며 공격, 수비, 주루 모두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1990년부터는 3루수로 출장하였고, 1991년에는 커리어 마지막 3할 타율과 함께 카프의 6번째 센트럴리그 우승을 이끌며 베스트나인에 선정되었다. 이후 1992년부터 하락세를 겪으면서 1993년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이후에는 바로 코치로 전임하여 2군 감독 및 코치, 1군 외야수비·주루코치 등을 역임하며 2011년까지 계속해서 카프에서 뛰었다. 2012년부터는 주고쿠 방송의 해설 및 주고쿠 신문의 야구평론가를 지내고 있으며, 모교인 소토쿠고교 경식야구부 OB회 부회장에 추대되었다.

그가 달던 배번호 1번은 1994년에 마에다 토모노리가 물려받아 은퇴할 때까지 썼다.[3]

3. 연도별 성적

통산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 경기 타석 타점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colbgcolor=#dcdcdc> 1978
1 0 0 0 0 0 0 0 0 0 0 - - - -
1979 24 58 5 8 14 1 0 1 8 4 11 .264 .328 .340 .667
1980 75 189 6 37 40 5 2 0 17 15 27 .252 .343 .308 .651
1982 86 218 14 26 44 1 2 2 14 20 29 .240 .335 .301 .635
1983 107 427 34 51 109 17 5 6 26 39 60 .305 .375 .431 .807
1984 130 576 43 79 158 27 3 6 39 57 59 .319 .393 .422 .815
1985 130 610 46 86 167 23 2 10 35 77 53 .328 .412 .440 .852
1986 130 551 43 63 135 25 2 7 23 40 71 .275 .330 .377 .707
1987 130 568 43 79 143 20 2 12 21 55 72 .294 .366 .417 .782
1988 130 546 47 51 113 17 6 10 14 37 61 .240 .298 .366 .664
1989 130 426 34 45 97 13 1 8 12 36 53 .266 .334 .374 .708
1990 127 474 50 51 118 22 3 7 8 40 61 .294 .361 .415 .776
1991 122 455 50 54 121 19 0 8 9 47 68 .301 .372 .408 .780
1992 111 376 31 32 88 18 0 6 2 36 54 .265 .339 .373 .712
1993 98 271 31 21 57 10 0 5 0 24 43 .236 .302 .339 .641
NPB 통산
(15시즌)
1531 5745 477 683 1404 218 28 88 228 527 722 .284 .355 .393 .747
  • 볼드체는 리그 1위.

[1] 1977년 사노 노리요시카와사키 구장에서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났던 외야 펜스에 부딪혀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는 사고가 터진 후, 각 야구장에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외야 펜스에 고무를 두르게 하는 등 내부 시설들을 전면 개설하라는 권고가 전해졌으나 지방에 있던 몇몇 야구장들은 기존 시설을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었다. 하필 야마사키가 그 운 없는 케이스에 걸려버린 것. 이후에도 1984년 롯데 오리온즈의 타카자와 히데아키가 야마사키와 같은 사고로 슬개골 골절상을 당하는 일들이 터지고 나서야 1988년부터 외야 펜스에 고무를 두르는 것이 의무화되었다.[2] 1983년 10월 16일부터 1990년 4월 28일까지 803경기 연속 출장을 달성했다.[3] 프로 입단 후 1991년까지는 51번, 1992~1993년에는 31번을 사용했다. 스즈키 이치로가 배번을 51번으로 고른 이유는 마에다를 동경해서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