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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한국시리즈/4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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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박스 스코어
2.1. 경기 라인업
3. 경기 요약
3.1.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3.2. 귀신에 홀린 삼성, 불바다가 된 잠실
4. 원인
4.1. 투수진 붕괴4.2. 두산 선수들의 투혼4.3. 달구벌의 저주4.4. 삼성 선수들의 졸전
5. 진기록6. 후폭풍7. 4차전 이후8. 시리즈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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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1년 10월 25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일어난 삼성 라이온즈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4차전 경기. 두산의 V3을 결정지은 경기이자 KBO 한국시리즈 관련 대기록이 쏟아져나왔던 경기다.

나무위키에서 가장 처음으로 작성된 대첩이자 두 번째 한국시리즈 대첩이며[1], 가장 오래된 포스트시즌 대첩이다. 참고로 작성 순서로 첫 한국시리즈 대첩은 2012년 한국시리즈/3차전이고 가장 오래된 대첩은 롯데 자이언츠/1995년/6월/28일이다.

2. 박스 스코어

한국시리즈 4차전, 10.25(목),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30,500명 (매진)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삼성 갈베스 0 8 0 0 0 0 2 0 1 11 15
두산 2 1 12 2 1 0 0 0 - 18 19
중계방송사: 파일:SBS 로고.svg | 캐스터: 김정일 | 해설: 박노준[타사중계4]
양팀 주요기록
결승타 정수근(3회 1사 2, 3루서 좌익수 앞 안타)
승리투수 차명주
패전투수 김진웅
홈런 타이론 우즈(1회 2점), 김동주(3회 4점), 안경현(3회 1점)
심판 오석환 / 조종규 / 임채섭 / 김호인 / 허운 / 나광남
시구자 전인화[3]

2.1. 경기 라인업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타순 선수명 포지션 타순 선수명 포지션
1 정수근 CF 1 박한이 RF
2 장원진 LF 2 김종훈 LF
3 우즈 1B 3 이승엽 1B
4 심재학 DH 4 마해영 DH
5 김동주 3B 5 마르티네스 CF
6 안경현 2B 6 김한수 3B
7 홍성흔 C 7 정경배 2B
8 전상렬 RF 8 김동수 C
9 김호 SS 9 김태균 SS
SP SP 갈베스

3. 경기 요약


3.1.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

양 팀 모두 1차전 선발이었던 (두산)과 갈베스(삼성)를 선발로 기용했다.

1회말 타이론 우즈의 2점 홈런으로 두산이 초반 기선제압하는 듯했다. 그러나 2회초 삼성은 이승엽의 2루타를 포함해 7안타에 몸에 맞는 공 2개, 상대 실책 2개 등으로 2회에만 8점을 내면서 단숨에 치고 나갔다. 또한 포스트시즌 한 이닝 최다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찬스 뒤 위기라는 말이 있듯이, 2회말 두산은 무사 만루의 기회를 잡지만 1사 후 정수근의 1타점 적시타 이후 장원진이 병살타를 쳐 버렸다. 결국 무사만루에서 단 1점을 내는 데 그쳤다. 삼성은 무사 만루의 위기를 잘 넘어갔고, 경기 초반이지만 분위기가 삼성에 넘어온 이상 삼성의 4차전 승리는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2회말이 아니었다.

3.2. 귀신에 홀린 삼성, 불바다가 된 잠실

타이론 우즈부터 시작된 두산 타선은 대반격을 시작했다. 우즈와 심재학의 연속볼넷, 김동주의 안타가 겹치며 무사 만루를 만들었고, 안경현이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내 8대 4가 된다. 위기임을 직감한 삼성은 갈베스를 강판시키고 당시 전천후 투수로 활약하던 김진웅을 구원투수로 투입했지만, 홍성흔의 2타점 적시타를 맞고 8대 6, 전상렬의 1타점 적시타로 7대 8, 그리고 정수근의 2타점 역전 안타[4]9대 8이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장원진의 1타점 안타가 또 나왔고, 점수는 10대 8이 됐다.

어떻게든 불을 끄기 위해 삼성은 김진웅을 강판시키고, 박동희를 투입한다. 박동희는 1992년 한국시리즈 MVP에 오른 적 있을 정도로 롯데 시절에는 큰 경기에 강한 선수로 유명했다.[5] 그리고 우즈가 투수 앞 땅볼을 때렸지만, 박동희가 놓치면서 분위기가 급속히 바뀐다.

그리고 심재학이 볼넷으로 출루하고, 만루 상황에서 김동주만루 홈런을 때려버린다. 1982년 한국시리즈 6차전 김유동의 만루홈런 이후 한국시리즈에서의 두 번째 만루홈런이었다. 점수는 무려 14대 8. 게다가 안경현은 박동희의 초구를 강타, 백투백 홈런을 만들고 만다. 점수는 15대 8로 벌어졌다. 바로 직전에 김동주의 만루홈런이 강렬해 해설진의 정신이 팔렸고, 다음 타자 안경현이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초구를 통타했기 때문에 중계 카메라에 안경현의 홈런은 잡히지도 못 했다. 위 영상을 봐도 해설진들이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중계 카메라가 급히 잠실 담장을 비춘다. 3회 한 회에만 16명의 타자가 12점을 올렸다. 2회초에 삼성이 경신한 포스트시즌 한 이닝 최다 득점 신기록을 불과 30분 만에 다시 경신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시리즈 최다 점수차 역전승, 한국시리즈 팀 최다 타점 및 득점, 한국시리즈 최초 선발 전원 안타 및 득점 등 한국시리즈 관련 기록도 다시 썼다.

경기 시작한지 2시간이나 지나서야 두산의 3회말 공격이 끝났다. 갈베스부터 김진웅, 박동희 등 삼성 투수들이 줄줄이 털리면서 분을 삭이지 못한 김응용 감독도 잠시 벤치를 뜨기도 했다.[6] 보통같으면 감독이 괜히 화풀이한다고 까지만 이 날은 삼성팬들도 일심동체로 멘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두산이 4, 5회도 득점하여 8:18이 되었고 삼성은 3점을 냈지만 이미 경기는 넘어갔다. 최종 스코어는 18대 11.

4. 원인

4.1. 투수진 붕괴

"양팀 투수들이 모두 지친 모양이었다. 때리기만 하면 안타가 됐다."
- 김인식
"한국시리즈를 많이 해봤지만 10점 뽑고도 지기는 처음이다. 5점만 줘도 지는게 시리즈다. 투수들이 10점 이상씩 주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 김응용[7]

2001년 10월 25일자 스포츠투데이에 실린 김인식 감독과 김응용 감독의 인터뷰. 이 말대로 삼성 두산 할것없이 양팀 투수들은 떡이 되도록 얻어 맞았다. 그나마 두산은 어쨌든 이겼고, 연이은 경기로 피곤하니까 그랬다고 변명이라도 하겠는데, 푹 쉬면서 한국시리즈를 준비한 삼성은.(...)

이런 전설적인 패배의 원인 중 하나는 가뜩이나 한 성깔 하는 성격이었던 외국인 에이스 발비노 갈베스다. 시즌 중 합류해 괴물같은 포스를 보였으나 정작 시즌 막판 고국으로 돌아간 뒤 잠적해버리는 등 팀의 불안요소로 떠올랐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한국으로 데리고 왔지만 몸을 만들지 못했던 탓인지 1차전에서도 조기 강판되었고 4차전에서 핵폭발을 해버렸다. 태업논란이 유명해서 그렇지, 김응용 감독의 말에 의하면 갈베스는 시즌 후반기부터 부상을 안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갈베스가 입국거부 사태를 터뜨리면서 묻힌 것이다.

갈베스가 일으킨 대화재를 끄기 위해 삼성은 김진웅을 내보냈지만, 젊은 에이스가 될 것이라 믿고 있던 김진웅은 그해 잦은 등판으로 지쳐 있었고, 결정적으로 큰 경기에 상당히 약한 소문난 새가슴이었다. 내보내는 투수마다 두들겨 맞는 꼴을 본 삼성팬들은 절망에 빠졌으며, 우즈가 친 투수앞 땅볼을 놓치는 박동희를 보고는 뒷목을 부여잡았다. 그 뒤에 곧바로 만루홈런에 백투백 홈런까지 허용하면서 삼성팬들은 그야말로 아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삼성은 저주받았다는 삼성팬들의 울부짖음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4.2. 두산 선수들의 투혼

2점 차이로 앞서가다 2회초에 삼성의 대반격으로 8점을 내준 시점에서 승패는 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2회말에 무사만루의 찬스를 잡고도 1점밖에 못 냈으니 더 그렇다.

그러나 두산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2회에 8점이나 빼앗기고 한국시리즈 한 이닝 최다득점 신기록의 희생양이 된 데다 거기다가 2회말에 기껏 만든 무사 만루를 날려먹기까지 했으니 사기가 떨어질 법도 한데, 그런 거 없고 미라클 두산만 있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두산 선수들의 투혼이야말로 대역전승의 요인이 아닐 수 없다. 해냈다 해냈어

비슷한 경기로 2000년에 벌어진 5월 7일 경기가 있다. 이 경기에서 두산은 9회 초까지 5:10으로 뒤진 상태에서 투아웃에 주자도 없는 상황에서 역전승했다(...).

4.3. 달구벌의 저주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껄끄러운 OB 베어스와 한국시리즈를 치르기 싫다는 이유로 롯데에게 후기리그 우승을 시켜주는 져주기 시합을 했다가 최동원에게 싸대기를 맞고 우승을 놓친 전과가 있다. 이후 삼성은 한국시리즈에 올라가기만 하면 무조건 패배하는 징크스에 시달렸는데, 이를 달구벌의 저주라 한다. 이 기간동안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만 12연패를 당하는 창피한 기록을 세웠고, 이 저주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팀의 우수한 선수와 감독들을 돈으로 긁어모아 결론적으로는 천적이나 다름 없던 김응용을 거액을 주고 모셔왔을 정도였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4차전에서 처참한 패배를 당하자, 삼성 팬들과 언론은 이 저주를 다시금 상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동아일보의 관전평 제목이 귀신에 홀린 삼성이겠는가. 물론 저주 따위가 패배의 원인은 아니겠지만, 8:3에서 8:15로 역전당하면 누구나 귀신에 홀린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4.4. 삼성 선수들의 졸전

결국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고, 삼성 선수들은 두산 선수들에게 크게 뒤져 있었다. 선발이면서 몸관리도 못하고 밀어내기 볼넷을 내준 갈베스, 새가슴으로 샌드백처럼 얻어맞은 김진웅[8], 투수 앞 땅볼을 놓치고 만루홈런을 얻어맞은 박동희는 모두 삼성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었다. 두산 선수들이 연이은 경기로 녹초가 된 데다 부상에 시달리는데도, 그런 선수들을 이겨내지 못한 삼성 선수들의 실패야말로 가장 중요한 패인이다. 아무리 야구공이 둥글다지만, 만반의 준비를 마친 1위팀 선수들이 녹초가 된 3위팀 선수들을 당해내지 못했으니 변명거리도 없다.

5. 진기록

  • 두산 최다 점수차 역전승 (4점 → 6점)[9]
  • 두산 팀 최다 득점 (14점 → 18점)
  • 양팀 최다 득점 (20점 → 29점)
  • 두산 최다 타점 (14타점 → 16타점)
  • 양팀 최다 타점 (17타점 → 25타점)
  • 양팀 최다 안타 신기록 (30안타 → 34안타)
  • 두산 선발 타자 전원 득점 (최초), 안타 (역대 3번째)
  • 두산 1이닝 최다 득점 (8점 → 12점)
  • 두산 1이닝 최다 타석 (13타석 → 15타석)
  • 두산 우즈 포스트시즌 최다 홈런 (12개), 한국시리즈 최다 홈런 (6개)
  • 두산 김동주 한국시리즈 만루 홈런 (역대 두 번째)[10]
  • 두산 김동주-안경현 백투백 홈런 (역대 세 번째)

삼성은 불과 4년 전 1997년 5월 4일, LG 트윈스를 상대로 KBO 사상 역대급 진기록을 만들어냈지만 그 옆집에게 포스트시즌의 역대급 진기록을 내줬다.

6. 후폭풍

삼성팬들은 멘붕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삼성은 저주받았다는 삼성팬들의 절규가 넘쳐났고, 뭘 해도 삼성은 안 된다는 푸념이 이어졌다. 타팀의 알짜배기 선수들을 돈으로 쓸어온다며 '돈성'이라는 비난을 받아가면서도 오로지 우승 한 번 해보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허무하게 물거품이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더군다나 삼성팬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제일 물먹인 김응용까지 데리고 왔는데 그 김응용마저 준우승에 머물렀으니 더 황당했을 것이다. 참고로 김응용도 이전까지 해태에서 9번 치른 한국시리즈에서 전부 우승했으나 여기 삼성에서 처음으로 준우승으로 물러나는 결과를 맞이했다.

야구전문가들도 멘붕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삼성의 압승을 예상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정작 두산이 우승했다. 이 경기 이후 삼성이 우승한다고 장담했던 야구 전문가들은 변명하기에 바빴다. 심지어 이 시기가 한창 김병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2001년 월드 시리즈에 올라가서 야구 팬들의 관심이 메이저리그에 쏠리는 바람에 한국시리즈가 동네 야구 수준으로 떨어져 버려 수준차를 보여준다는 평까지 나오기도 했다. 물론 투수들이 미친듯이 얻어터졌다고 절대로 경기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두산을 응원한 팬들은 크게 기뻐했다. 삼성이 타 팀의 알짜배기 선수들을 돈으로 쓸어간 탓에 많은 야구팬들이 삼성에 대해 불만을 품었고, 그들에게 있어 삼성의 패배는 속이 시원해지는 뉴스였기 때문이다. 두산이 승리한 후 돈 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다는 말이 나온 게 그래서다. 이 경기가 끝나자 마자 '믿음의 야구' 활짝 피운 김인식 감독이라는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을 격찬하는 기사가 올라오기까지 했다.

7. 4차전 이후

4차전 이후 한국시리즈의 승부추도 두산 쪽으로 확연히 기울게 된다. 5차전을 삼성이 간신히 잡긴 했지만, 이미 내준 분위기를 되돌리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삼성은 6차전에서 패배하고, 두산은 V3을 달성했다.

8. 시리즈 이후

결과적으로 업셋의 충격을 입은 삼성은 전력 보강을 실시한다. 이렇게 당해놓고 전력 보강 안 하면 그게 이상한거지

우선 12월 16일, SK 와이번스와 6:2 트레이드를 했다. 김기태, 김동수, 김상진, 김태한, 이용훈, 정경배 등 6명을 보내고 오상민틸슨 브리또에 현금 11억원을 받아온 것. 그리고 12월 21일, FA 양준혁을 데려왔다. 본디 양준혁은 FA 최대어로 평가받았지만 선수협 등의 문제로 불러주는 팀이 없었기 때문에 데려올 수 있었다.[11]

그렇게 칼을 갈은 덕이었을까. 삼성은 이듬해 이마양이라는 역대급 클린업 트리오를 구축하고 마침내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21년의 한을 풀게 된다.

그 이후 2005년 한국시리즈에서 두 팀은 다시 만난다. 이 시리즈의 기억이 남아서 그런지 2005년 당시에는 두산의 우승을 예상한 전문가들의 예상이 많았으나 철벽 불펜과 김재걸의 대활약으로 삼성이 두산을 스윕했다. 삼성 구단 역사상 유일한 스윕 우승.

그리고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두 팀은 또다시 만났다. 이 때는 두산이 4차전까지 이 때처럼 앞섰기 때문에 응답하라 2001이 유력했으나... 이후 5~7차전을 삼성이 가져가면서 삼성은 사상 최초 통합 3연패의 대 업적을 이루고 두산은 2005년 이후에만 무려 네 번이나 준우승을 하며 콩라인에 등극해버렸다. 두산은 결국 김진욱 감독을 경질하고 당시에 2군 감독을 맡고 있었던 송일수를 감독으로 승격시켰지만, 어이없는 전술로 두산팬들의 실망만 안겨주며 2014년에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송일수 감독도 끝내 경질당했고 김태형 감독을 선임했다.

그리고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두 팀은 또또다시 만났다. 삼성이 5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하며 사상 최초 5연속 통합우승을 꿈꾸었으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전력누수가 생겼고, 준플레이오프부터 혈투를 펼쳐 올라온 두산이 Again 2001을 이뤄내며 삼성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역시 싸대기 매치는 어디 안 간다.

18년 후, 2019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3대8로 끌려가던 경기를 뒤집는 매우 흡사한 경기내용이 펼쳐졌다. 그 경기에서 두산은 통산 6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리게 된다.[12]

[1] 사실상 전신인 리그베다 위키 시절에 제일 먼저 작성된 대첩은 2012년 10월 8일 KBO 준플레이오프/2012년/1차전. 경기 직후에 작성되었다.[타사중계4] KBS 제2라디오 전우벽-이용철 / SBS SPORTS 임용수-이효봉[3] 파일:external/blogfiles8.naver.net/%C0%FC%C0%CE%C8%AD%BD%C3%B1%B8_asssagtkim.jpg시구는 당시 SBS의 인기 사극 여인천하문정왕후 역을 그대로 분장하여 엄상궁에게 공을 받고 시구해서 화제가 되었다.[4] 이 적시타가 결승타였다.[5] 하지만 이 해 한국시리즈에서는 노쇠화의 영향인지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이 여파인지 이듬해 7월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한다.[6] 김응용 감독의 악력이 워낙 강해서 이 날 분풀이할 때 복도에 있는 쓰레기통을 찼는데 반대편 복도까지 날아갔다고 한다.[7] 실제로 김응용 감독은 해태 타이거즈 감독 시절 한국시리즈에서 타선이 10점 이상의 득점을 뽑고도 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8] 김진웅은 혹사를 당했다는 점에서 동정의 시선이라도 있지만, 이후 행보를 생각하면 몰락의 전주곡이나 다름이 없었다.[9] 2015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두산이 7점차 역전승으로 경신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10] 한국시리즈 최초 만루홈런도 베어스에서 기록했으며 그 당시에도 상대팀은 삼성이었다. 그 유명한 82년 6차전 김유동의 쐐기 만루홈런이다.[11] 반대로 말하면 만약 여기서 삼성이 우승했을 경우 양준혁은 갈 곳이 없어 사실상 은퇴해야만 했다. 우승을 위해서는 악마와도 손을 잡는것조차 불사했던 구단이었기에 김응룡을 해태에서 데려오고 그 김응룡의 주장으로 양준혁까지 데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12]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의 고배를 마셨던 배영수가 18년의 세월과 함께 먼 길을 돌아 두산의 유니폼을 입고 자신의 손으로 두산의 패권을 직접 가져오며 투수로서 가장 명예로운 은퇴경기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