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이가이 Lee Gai | |
본명 | 이경희[1] |
출생 | 1968년 7월 19일 ([age(1968-07-19)]세)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2cm[2], 41kg |
가족 | 남편, 장녀, 차녀 |
학력 | 서울홍릉초등학교 (졸업) 동대문여자중학교 (졸업) 안양예술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 / 학사) |
경력 | 그룹 세또래 멤버 (1988년 ~ 1989년) |
여성 듀오 탐탐 멤버 (1991년 ~ 1992년) | |
솔로 가수 (1993년 ~ 1994년) | |
베이비복스 2집 (1998년 ~ 1999년) | |
포지션[3] | 서브보컬[4] |
데뷔 | 1988년 세또래 {{{#!wiki style="background-color: #fff; display: inline-block; margin: 5px 0px;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4px; border-style: solid; border-width: 1px; border-color: #769ed3" [[#s-6.1| 그대를 사랑해 ]](데뷔일로부터 [dday(1988-06-01)]일, [age(1988-06-01)]주년) |
1991년 탐탐 {{{#!wiki style="background-color: #fff; display: inline-block; margin: 5px 0px;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4px; border-style: solid; border-width: 1px; border-color: #ffed81" [[#s-6.3| 얘기하지 그랬어 ]](데뷔일로부터 [dday(1991-04-01)]일, [age(1991-04-01)]주년) | |
1993년 {{{#!wiki style="background-color: #fff; display: inline-block; margin: 5px 0px;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4px; border-style: solid; border-width: 1px; border-color: #8e736d" [[#s-6.4| 날 잊었을 그대에게 ]](데뷔일로부터 [dday(1993-03-01)]일, [age(1993-03-01)]주년) | |
1998년 베이비복스 {{{#!wiki style="background-color: #FFFFFF; display: inline-block; margin: 5px 0px;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4px; border-style: solid; border-width: 1px; border-color: #f5c9ca" (데뷔일로부터 [dday(1998-09-15)]일, [age(1998-09-15)]주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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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가수. 1세대 아이돌 그룹 베이비복스의 前 멤버로 알려져있으며 당시에는 1978년생으로 활동했다.베이비복스 이전에도 이미 걸그룹 활동을 했으며, 1980년대의 한국 가요계의 시조격 걸그룹인 세또래에서 활동했었다. 데뷔만 무려 4번 했는데, 그러다보니 연예계 고무줄 나이에 대해 논할 때 주로 오르내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2. 데뷔 전
어릴 때 꽤 부잣집 딸로 태어나 예쁜 구두도 신고 부족한 것 없는 삶을 살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안 좋은 일이 닥쳐 가세가 기울고 있던 찰나에, 세또래로 데뷔할 기회가 와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3. 활동
3.1. 데뷔와 세또래 시절 (1988~1989)
하지만 당시 가요시장에 걸그룹이 활동하기 어려웠던 시기였던지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김완선이 밝힌 바로, 당시 세또래가 소방차와 합동무대 이후 세또래의 안티들에 의해 밴이 전파되는 사고가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참고로 김완선도 비슷한 사건을 겪었다. 이후 1989년 2집 '요리조리 이리저리'를 발매했다.
방송 출연도 많이 했었고 회사의 푸시 역시 나쁘지 않았으나, 가수로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이들의 등장은 꽤나 강렬해서 세또래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결국 2집 활동을 끝으로 멤버 김정임이 "이대로는 못 견딘다"며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그룹도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3.2. 여성 댄스 듀오 탐탐 시절 (1991~1992)
3.3. 솔로 가수 이지수로 데뷔하다 (1993~1994)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코너인 미스 토토에서 공개한 주민등록증 사진. 세또래 시절에 쓰던 방송용 나이의 연장선으로 1969년 2월 20일생으로 활동했다. |
3.4. 베이비복스 활동 시절 (1998~1999)
1998년 베이비복스가 2집으로 컴백할 당시의 소개 영상. 1:24부터 피아노를 치는 분홍색 잠옷을 입은 사람이 이가이. |
1997년 말 베이비복스의 1집의 실패로 먼저 탈퇴했던 차유미[7]의 자리에 간미연이 합류한 후 정시운과 정현전마저 탈퇴해버리고 빈자리에 이가이라는 예명으로 심은진과 함께 새 멤버로 합류하였다. 당시 윤등룡 대표는 2집 앨범을 걸밴드 컨셉으로 구상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보컬과 키보드를 맡을 멤버가 필요했는데, 가수 활동 경력이 있는 이가이는 이에 걸맞은 멤버였다.[8] 당시 솔로 앨범까지 냈었고 작곡도 할 줄 알았던 멤버였고, 음색도 예쁘고 가창력도 좋았다. 지금으로 치면 올라운더였던 것.
사실 베이비복스에 합류하게 된 비하인드가 있는데, 원래 이희정은 "내 나이가 이렇게 적지 않은데, 어떻게 저 어린 친구들과 함께하냐?"며 반대했으나 소속사 DR뮤직 대표 윤등룡은 "절대 안 들킨다. 들킬 시 책임지겠다."고 회유했고[9], 세또래가 잘되지 않고 이 뒤의 탐탐과 자신의 솔로 앨범도 망하면서 사실상 수입이 거의 없었던 상황에 아버지의 병원비도 내야했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일단 합류했으며, 활동명도 이가이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합류 당시 그녀의 나이는 30살로[10] 무려 10살을 줄인 20살(1978년생)으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외모와는 별개로 올드한 분위기 때문에 활동 초반 '야야야'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부터 색안경을 쓰고, 방송에서조차도 색안경을 쓰고 무대에 서는 모습이 많았다.[11][12]
'야야야' 활동 후반쯤부터 색안경에서 선글라스로 바뀌고, 후속곡 'Change' 활동부터는 비니를 쓰고 활동을 시작했는데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야야야' 때에 비해 급격히 격렬해진 안무를 겨우겨우 따라가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보여 그녀의 부족한 춤 실력과 나이에 대한 의심이 점점 도마 위로 올라오게 된 것. '야야야' 활동 시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안무를 잘 따라갔으나, 'Change' 첫 방송부터 안무를 완전히 잊어버려 무대를 망쳐버릴 뻔한 것이다. 지금이야 카라의 박규리라든가, (여자)아이들의 우기처럼 안무 틀려도 그대로 추는 멤버도 많고 이러한 실수들이 인터넷 밈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아직 이때는 "아이돌도 나름 프로 가수인데 안무를 잊어버리는 것이 말이 되냐?"는 인식이 많았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심각하게 떨어지는 춤 실력과 안무 실수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다. 그 후의 'Change' 무대들을 보면 안무를 안 틀린 무대를 찾는 게 힘들 정도로 계속해서 실수를 해 그녀에 대한 팬들의 의심은 점점 커져만 가고, 그렇게 말도 많았던 베이비복스 2집 활동이 마무리되어 갔다. 그래도 2집 활동 후반기 영상을 보면 안 틀리고 곧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야야야'때 썼던 색안경하고 비니 덕분에 이질감이 없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것들이 나이 들어보이게 한다는 것이 주된 평이다.[13] 맨얼굴로 출연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춤이야 그렇다 쳐도 그럭저럭 자연스러웠다고 한다. 사실 다른 멤버들은 완전 맨얼굴인데, 혼자 비니를 썼으니 더 눈에 띄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가이는 이미 세또래 시절부터 큰 부상을 여러번 입었던 터라, 나이 이전에 춤을 역동적으로 추는 것이 무리인 상황이었다. [14] 백덤블링까지 할 정도로 춤 실력이 뛰어났으나 연이은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마지막 활동이 된 1998년 SBS 가요대전 여자 신인상 수상소감 |
3.5. 나이 탄로 사건 및 베이비복스 탈퇴, 그리고 잠적
2집 활동이 끝난 후 1999년 1월, 그녀의 실제 나이가 들통나고 말았다.그녀의 등장 시점부터 의심하고 있던 한 팬이 세또래 멤버 이희정과 생일, 학력, 생김새 등을 대조해 여러가지가 이가이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가이가 실제 나이를 속이고 연예 활동을 하고 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및 AFC U-20 축구 선수권 대회 무렵 모 지상파 방송에서 자신보다 11살이나 어린 1979년생인 축구선수 이동국, 김은중[15]에게 오빠라고 부르며 애교부리는 모습까지 포착되었던 것. 당시에 유무선 초고속 인터넷, 스마트폰, SNS는 고사하고 국민PC를 통한 컴퓨터 보급화 이전이여서 컴퓨터가 없는 집이 여전히 많아 정보를 쉽게 알아내기 어려웠지만, 심지어 당시 알려진 1978년생이었어도 부자연스러운 것이, 그래도 이동국보다 1살 많아진다. 만일 같이 소집된 1977년생 김남일, 1978년생[16] 고종수에게 그랬다면 얼추 맞게는 할 수 있었겠지만. 물론 그래도 김남일이 이가이보다 9살이나 어렸기에 나중에 들켰어도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이가이가 당시 얼마나 나이가 많은 편이었냐면, 1968년생 황선홍 및 빠른 1969년생 홍명보과 동갑, 1969년생 신태용보다 1살 연상이었다.
이 외에도 SBS 비교체험 극과 극 한양대학교 기숙사 제2생활관 편에서도 진행자 남희석한테 오빠라고 부르기도 하였다.아무튼 이 문제 때문에 PC통신에 "이가이가 나이를 속이고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것 같다."는 장문의 게시글까지 여러 커뮤니티에 올라오면서 그녀의 정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결국 PC통신으로 시작해 신문 보도로 나오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DR뮤직은 결국 PC통신 팬클럽에 사과문을 올리고 공식 입장을 밝힌다. "이가이는 1988년 데뷔한 세또래 멤버였던 이희정이 맞으며, 실제 출생년도인 1968년생에서 10살을 낮춘 1978년생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시인한다. 소속사는 "맏언니로서 팀을 이끌 리더 역할을 할 멤버가 필요했고, 아버지의 병간호로 인한 병원비를 벌기 위해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이가이는 연예계에서 완전히 은퇴했다.[17] 이후 그녀보다 16살 어린 당시 중3이었던 윤은혜가 합류했고 논란에도 불구하고 줄줄이 히트곡을 내고 승승장구하면서, 결국 이 사건은 베이비복스 팬들에게조차 거의 잊혀진 사실로 남게 되었다.
4. 근황
2019년 아는 형님에 이희진이 출연했을 때 희철이 "맨처음에 누님 계셨었는데. 세또래 누님인가?"라고 언급하자 이희진은 "2집 때. 야야야 때. 세또래 언니 있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녀의 나이를 물어보자 이상민이 "어우 나이 많으셨지."라고 얘기했다. #2021년 이십세기 힛-트쏭에서 주영훈이 밝히기를 당시 2집 후속곡 'Change'를 녹음하던 중 이가이가 그를 오빠라고 불렀는데 얼굴을 보고 과거 세또래로 활동했던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어 의아해했으나 본인은 이를 부정했다고 한다. #
몇몇 방송에서 알음알음 이름만 언급되고 한동안 알려지지 않다가 2022년에 들어서야 근황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본인이 이가이의 지인이라고 주장한 사람의 댓글로 근황과 뒷이야기가 밝혀졌다.[18]
탈퇴 이후, 3년간 눈만 뜨고 숨만 쉬는 상태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은둔생활을 했다. 이 때 심장병까지 얻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좋은 남자를 만나서 딸을 2명 낳고 잘 사나 했는데,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고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도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슬픔을 견뎌보고자 등산을 하며 어떻게든 버티다가 산악회에서 현 남편을 만나 재혼해 무탈하게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너무 많은 일을 겪어 몸도 마음도 많이 다쳐서 현재는 걷기도 힘들어 하고 연예계 활동 당시보다 살도 쪘다고 하며, 식당에 주 2회 정도 나가면서 아르바이트로 용돈 정도 벌어 쓰고 있다는 근황이 유튜브 댓글을 통해 전해졌다.
- [ 지인 댓글 펼치기 · 접기 ]
- ||<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FFF,#191919><tablewidth=500><nopad>||
지인이 올린 근황 댓글. 현재는 삭제되었다.
베이비복스 데뷔부터 퇴출까지 본인의 의지는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는데, 베이비복스에 본인 욕심으로 들어가 그룹 망친 거라고 오해받는 게 너무나도 괴로웠고 그 기억이 한이 되었으며, 과거 네이버 지식IN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부산에서 바를 운영했다느니 뉴질랜드에서 한국프로골퍼의 아내로 산다느니 그런 얘기들은 전부 루머고[19] 위에서 말했듯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으며, 너무 힘들었던 연예계 생활 때문에 남들에게 기억되기 보다는 차라리 조용히 잊혀져 평범한 주부로 살고싶다는 근황을 남기며 연예계 활동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뜻을 비쳤다.
여담으로, 삭제되었지만 추가로 댓글을 작성한 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베이비복스 탈퇴 당시 나머지 멤버들이 울고 불고 난리났고 팀 분위기가 얼어붙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다른 멤버들 중 가장 언니인 김이지도 이제 갓 성인이 되는 나이였고 안 그래도 살벌했던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연예계 생활에서 어린 멤버들끼리 버티기는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20] 이런 멤버들에게 연예계 경력이 매우 긴 베테랑이자 든든한 큰언니가 버팀목이 되어 줬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해당 지인은 엠넷이 업로드한 클립 영상에도 방송국이 멋대로 이런 영상을 제작하고 당사자에게 2차 가해를 하냐며 분노했고 탈퇴의 진실을 알리는 댓글을 작성하였지만 삭제되었다.
이후 2025년 1월 6일, 위에서 언급되었던 유튜브 채널인 사랑방선물의 ‘베이비복스의 평행세계’라는 영상의 댓글을 통해 본인이 최초로 근황을 직접 알렸다. 현재는 개명하여 이경희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으며 자신을 아직까지도 기억을 해 주어서 고맙다고 전했다. 또한 과거에 본인의 나이를 속인 것과 지인이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멋대로 이야기를 하고 다녀 채널의 주인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점에 대해서 사과한다고 전했다.
여담으로, 해당 댓글에는 세또래 시절에 관한 질문이 올라왔었고 세또래 멤버들끼리 불화가 있었다고 답변하였다.
Q. 근황올림픽에 한 번 나와주셔도 좋을 거 같은데요? 세또래 시절 담화도 들어보고 싶네요.
\A. 세또래 때는 많이 싸웠어요. 다들 어리기도 하고 더 이뻐 보이려고 샘도 나고 군무하다가 부딪치면 또 싸우고 울고불고 네 잘났네 내 잘났네 그러고 어느 날은 먹는 거 가지고도 싸우고 그랬어요. 지금 와서 보면 웃기지만 그때는 뭐가 그리 밉고 서운했는지 많이 싸웠네요.
또한 1월 7일 ‘다 네게 보여줄게’ 라는 영상의 댓글에선 베이비복스 합류의 비하인드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원래는 베이비복스가 아닌 4인조 여자판 룰라의 멤버로서 재데뷔를 할 예정이였다고 한다.[21] 그러나 자신의 부상으로 인해 그룹 데뷔가 무산되자 밴드의 객원 보컬로 활동하려 했으나 소속사 사장이 베이비복스로 합류를 시켰다고 한다. 소속사 사장의 자기만 믿으라는 회유에 넘어가 무턱대고 그룹에 합류를 하게 되었으나 결국 금세 걸려버리게 된 것이었다. 또한 당시 부상 후유증으로 연습을 조금만 해도 염증이 생기는 등 어려움을 겪을 때 김이지[22]가 자신을 잘 챙겨주고[23] 이가이의 탈퇴 당시에 매우 슬퍼하며 나중에도 연락하며 지내자고 약속했으나 자신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 현재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2024 KBS 가요대축제 무대에서 베이비복스 멤버들이 다시 재결성을 하여 멋지게 공연 무대를 펼친 것에 대해서는 너무 보기 좋았고 예뻤다고 언급했다.\A. 세또래 때는 많이 싸웠어요. 다들 어리기도 하고 더 이뻐 보이려고 샘도 나고 군무하다가 부딪치면 또 싸우고 울고불고 네 잘났네 내 잘났네 그러고 어느 날은 먹는 거 가지고도 싸우고 그랬어요. 지금 와서 보면 웃기지만 그때는 뭐가 그리 밉고 서운했는지 많이 싸웠네요.
5. 평가
한편으론 초창기 아이돌 문화의 희생양이라고도 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은 막 아이돌 가수들이 태동하던 시기여서 팬층의 연령대가 어린 10대, 못해도 20대 초반이다 보니까 아이돌들도 그와 비슷한 연령대인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밖에 갈 수 밖에 없었고, 20대 중반 이상은 드물었다. 그런 풍토 속에서 가요계에서 이미 1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이렇다할 실적이 없었던 이가이는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 자의든 타의든 나이를 속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 비록 실패의 연속이긴 했으나 꽤 오랫동안 가수 활동을 했던 경력들이 발목을 잡아 쓸쓸하게 은퇴해야했던 비운의 여가수라고 할 수 있겠다.원조 베이비복스와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음색이 워낙 탁월해 후임 서브보컬인 윤은혜는 물론이며 심지어 메인보컬인 간미연보다 뛰어났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외에도 최연장자로서 인품도 훌륭해 탈퇴 이후 나머지 멤버들인 김이지, 이희진, 심은진, 간미연은 "힘든 트레이닝 시절부터 어린 멤버들이 믿고 따르던 멤버가 맏언니 이가이였다."라고 밝힌 적이 있어 '팀에 남아있었다면 간미연이 후배 가수인 디바[24]와 선배 가수인 DJ DOC의 이하늘한테 억울하게 욕을 먹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그리워하는 팬들도 있다.[25]
다만 무조건적으로 아이돌 문화의 희생양이라고 하기엔 아이돌 자체가 10대~20대 초반이랑 비슷한 또래로서 10대~20대 초반의 문화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하는 포지션이므로 굳이 30대의 나이에 10대 후반~20대 초반이 모인 아이돌 그룹에 나이를 속이면서까지 들어간 것 자체가 잘못 됐다고 볼 수 있다. 아이돌 그룹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가수의 한 분야일 뿐 아이돌 그룹이 전부는 아니므로 30대라고 해서 가수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굳이 30대에 나이를 속이고 어린 친구들 사이에 끼어들었다는 사실에 대중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장에 1968년생이면 김완선, 엄정화, 윤종신, 박준형보다도 1살 많고 김건모, 신해철, 탁재훈, 윤상과 동갑이다.[26] 차이가 있다면 앞에 언급된 이들은 대부분 10대나 20대 시절부터 꾸준히 활동하여 인기와 인지도, 팬층을 탄탄히 쌓은 상태였고 이가이의 경우 그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20대로 나이를 낮추어 다시 활동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베이비복스 2집 활동 컨셉은 어리고 귀여운 이미지를 어필했다는 게 문제였다. 멤버 소개 영상만 봐도 어린 나이라서 소화 가능한 귀여움과 애교를 적극 내세우며 팬들에게 어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이가이도 양갈래머리 등 소녀 이미지를 한껏 강조했었는데, 당시 이가이가 다른 멤버들에 비해 그다지 두드러지거나 인기있는 멤버가 아니었고, 오히려 춤을 자주 틀리며 전체적인 안무를 망치는 등의 행위로 다른 멤버 팬들에게 따갑게 눈총을 받고 있던 상태에서 나이를 속인 사실이 들통난 것이니 과도하게 질타를 당한 면이 있다.
사실 시대를 너무 일찍 탄 것일 수도 있다. 2020년대 현재에는 30대 초반은 사실상 20대같이 완전한 청년이었지만, 불과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30대는 중년으로 진입하는 시기로 여겨졌다.[27] 실제로 90년대 당시 30대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면 지금의 30대 연예인들과는 달리 매우 성숙한 스타일과 메이크업을 한 것을 볼 수 있다.[28] 즉, 당시 기준으로는 이가이가 실제 나이에 비해 심하게 나이가 들어보인다고 하기는 어렵다. 단지 여러 요소들 때문에 위화감이 컸었을 뿐이고 20살이나 현재의 30살에 비해서 노안일 뿐이다. 오히려 당시 30대 초반 치고는 동안에 가깝다. 차라리 god의 박준형처럼 그대로 계속 활동하거나, 윤은혜가 새 멤버로 합류하는 대신 본인은 객원멤버로 물러나 팀에 잔류했다면 남들이 욕을 하던지 말던지 식으로 넘어갔을 수 있었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6. 앨범
6.1. 세또래 1집 (1988)
세또래 1집 | |||||
1988. 06. / 한국음반 | |||||
트랙 | 제목 | 작사 | 작곡 | 편곡 | |
<colbgcolor=#ddd,#191919> 1 | 그대를 사랑해 | 03:06 | 이건우 | 김정택 | 김정택 |
2 | 우린 아직 어린가요 | 03:28 | 이건우 | 김정택 | 김정택 |
3 | 어떻게 잊을까 | 03:09 | 이건우 | 김정택 | 김정택 |
4 | 난 잊을 수 있어 (Over And Over)[29] | 03:20 | 한여임 | Poul Chaman[30] | 김정택 |
5 | 그대 여기에 (경음악) | 03:04 | - | 김정택 | 김정택 |
6 | 그대 여기에 | 03:39 | 이수연 | 김정택 | 김정택 |
7 | 그대의 전화 | 03:28 | 임은희 | 김정택 | 김정택 |
8 | 행복해[31] | 03:30 | 조영남 | Mitchell Green and Catlin | 김정택 |
9 | 숙녀처럼[32] | 03:19 | 이건우 | B.SteinBerg | 김정택 |
10 | 건전가요 (너와 내가) | 02:00 | - | - | - |
타이틀곡 '그대를 사랑해'는 전형적인 틴팝 장르의 곡으로 세또래의 데뷔곡.
이 앨범에는 총 3곡의 팝송 커버가 수록되어 있는데, 훗날 원더걸스의 'Tell Me'로 UCC 열풍을 이어갈 수 있게 해 준 Stacy Q의 'Two of Hearts'를 커버한 '행복해', 마돈나를 스타덤에 오르게 해 준 'Like A Virgin'을 커버한 '숙녀처럼', 그리고 마돈나의 'Over And Over'를 커버한 '난 잊을 수 있어'.
동료 가수였던 높은음자리의 여성 보컬 임은희가 '그대의 전화'[33] 작사가로 참여하였다. 프로듀서는 오병화, 편곡 및 음악 프로듀서는 김정택.
6.2. 세또래 2집 (1989)
SAETORAE 2 | |||||
1989. 03. / 한국음반 | |||||
트랙 | 제목 | 작사 | 작곡 | 편곡 | |
<colbgcolor=#ddd,#191919> 1 | 요리 저리 이리 저리 | 02:20 | 이정각 | 김정택 | 김정택 |
2 | 시간이 흐르면 | 03:27 | 안진우 | 안진우 | 안진우 |
3 | 충격이었어 | 03:52 | 송재준 | 송재준 | 송재준 |
4 | 그대 나의 곁으로 | 03:55 | 이정각 | 김정택 | 김정택 |
5 | 생일 축하합니다 | 03:49 | 안진우 | 안진우 | 안진우 |
6 | 이 밤 가득히 | 03:16 | 이정각 | 김정택 | 김정택 |
7 | 어느 날 우연히 | 02:50 | 이정각 | 김정택 | 김정택 |
8 | 떠나는 거리에서 | 04:09 | 이정각 | 김정택 | 김정택 |
9 | 사랑하는 세상 | 02:52 | 안진우 | 안진우 | 안진우 |
10 | 사랑해요 | 02:59 | 이정각 | 김정택 | 김정택 |
6.3. 탐탐 1집 (1991)
For A Wonderful Time With TAM TAM | |||||
1991. 04. / 시티뮤직, 도레미레코드사 | |||||
트랙 | 제목 | 작사 | 작곡 | 편곡 | |
<colbgcolor=#ddd,#191919> 1 | 얘기하지 그랬어 | 03:54 | 김창남 | 김창남 | 유영선 |
2 | 내가 선택한 고독 | 03:41 | 이건우 | 김창남 | 유영선 |
3 | 추워 | 03:36 | 김창남 | 김창남 | 유영선 |
4 | 하지만 | 03:21 | 이지연 | 김창남 | 유영선 |
5 | 얘기하지 그랬어 (반주용) | 03:54 | - | 김창남 | 유영선 |
6 | 난 참 바보야 | 03:40 | 이건우 | 김창남 | 유영선 |
7 | 나의 사랑이야기 | 03:45 | 지평권 | 지평권 | 유영선 |
8 | 그렇게 그렇게 | 03:11 | 김창남 | 허건웅 | 유영선 |
9 | 숙녀 | 03:30 | 이건우 | 김창남 | 유영선 |
10 | 울지 마 바보야 | 03:05 | 김창남 | 김창남 | 유영선 |
김정임이 이민을 가는 바람에 세또래의 남은 두 멤버가 소속사를 옮기고 발매한 앨범이자 탐탐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 탐탐이라는 팀 이름과 멤버들의 다른 이름에도 세또래 팬들은 대부분 탐탐의 멤버가 세또래 멤버임을 알았다고 한다. 도시아이들 멤버이자 작곡가와 키보디스트로 활약했던 김창남의 소속사 시티뮤직에서 발매한 만큼 김창남의 프로듀싱이 빛나는 앨범이다. 숙녀 컨셉, 인도 여인 컨셉 등등 다양한 컨셉을 무대에서 소화했지만 별 재미를 못 봤다. 편곡은 유영선이 모두 도맡아했으며, 이지연 3집 수록곡 '하지만'의 리바이벌 곡과 드라마와 영화 음악감독으로 훗날 유명해지는, '창가의 이별'의 신인가수 지평권이 준 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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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이지수 1집 (1993)
날 잊었을 그대에게 | |||||
1993. 03. / DR뮤직, 아세아레코드 | |||||
트랙 | 제목 | 작사 | 작곡 | 편곡 | |
<colbgcolor=#ddd,#191919> 1 | 날 잊었을 그대에게 | 03:38 | 안진우 | 안진우 | 안진우 |
2 | 날 기억해 줘 | 04:14 | 함경문 | 정성헌 | 정성헌 |
3 | 다시 만날꺼야[34] | 03:36 | 함경문 | 정성헌 | 김효국 |
4 | 처음 본 그대 눈물 | 04:07 | 강은경 | 이희정 | 김효국 |
5 | 말해 줄 꺼야[35] | 03:55 | 정성헌 | 정성헌 | 정성헌 |
6 | 너를 사랑해 | 04:17 | 김효국 | 김효국 | 김효국 |
7 | 그대는 두려워하지만 | 03:53 | 강은경 | 이희정 | 김효국 |
8 | 마음의 선물 | 03:50 | 함경문 | 정성헌 | 김효국 |
탐탐의 실패 이후 이지수는 당시 빛과 소금, 김태욱 등의 언더그라운드 가수를 매니지먼트하고 있던 윤등룡에게 픽업되어, DR뮤직[36]에서 솔로 앨범을 2장 발매하게 되었다. 세또래에서의 인연으로 솔로앨범의 타이틀곡을 안진우가 맡아주었으며, 그룹 11월의 키보디스트 김효국과 솔로가수/작곡가로 여러 가수들에게 인정받고 있던 정성헌과 그의 파트너인 작사가 함경문, 그리고 나중에 유명 히트곡 작사가로 유명해지는 작사가 강은경이 곡에 참여하였다.
여기서 두 곡의 자작곡을 선보이며 싱어송라이터의 기질을 뽐냈는데,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특기였던 피아노와 작곡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앨범에 수록하였다.
6.5. 이지수 2집 (1994)
[37] | |||||
너를 보내며... | |||||
1994. 04. / DR뮤직, 아세아레코드 | |||||
트랙 | 제목 | 작사 | 작곡 | 편곡 | |
<colbgcolor=#ddd,#191919> 1 | 너를 보내며 | 04:26 | 강수지 | 박청귀 | 박청귀 |
2 | 이제는 지울래 | - | 장대성 | 이희정 | 박청귀 |
3 | 나는 못 속여 | - | 장대성 | 이희정 | 박청귀 |
4 | 너를 보내며 (연주곡) | 04:26 | - | 박청귀 | 박청귀 |
5 | 너를 사랑해 | 04:17 | 김효국 | 김효국 | 김효국 |
6 | 날 잊었을 그대에게 | 03:38 | 안진우 | 안진우 | 안진우 |
7 | 날 기억해 줘 | 04:14 | 함경문 | 정성헌 | 정성헌 |
8 | 다시 만날 거야 | 03:36 | 함경문 | 정성헌 | 김효국 |
타이틀곡은 '너를 보내며'였고 동료가수 강수지가 오랜 인연으로 작사가로 참여하였다. 강수지는 친한 동료 연예인이 아니면 가사를 잘 안 주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38] 이 앨범에도 역시 이지수의 자작곡 2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훗날 유명 아이돌들의 노래에 예쁜 가사로 인기를 얻은 작사가 장대성[39]의 2작품도 주목할 만 하다. 신곡 모두를 기타리스트 박청귀(아라이)가 편곡하였다. 뒷면의 4곡은 모두 1집에서 발표했던 곡들이었다. 타이틀곡으로는 댄스팀 마이미를 결성해서 짧은 활동을 했다. 특이사항은, 94년 4월 제작된 앨범임에도 심의번호가 9303-3464~3471로 되어있는데 이것의 의미는 2집의 수록곡들이 원래 1집에 수록될 예정이었다가 탈락되고 신곡 4곡으로 앨범을 내긴 뭐해서 기존 곡들을 재탕한 것으로 보인다.
6.6. 베이비복스 2집 (1998)
자세한 내용은 Baby V.O.X II 문서 참고하십시오.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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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명 전 이름은 이희정(李熙正, Lee Hee-jung)이다. 유튜브 채널 사랑방선물의 댓글을 통해 현재는 개명하였다고 언급했다. 1991년도 그룹 ‘탐탐’과 1993년도 솔로 활동 당시에는 이지수, 베이비복스 활동 당시에는 익히 알려진 이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2] 베이비복스 활동 당시 프로필 사이즈이며 세또래 활동 당시 프로필에는 멤버 전원이 159cm의 같은 키라고 소개되었다. 연예인들의 신체 사이즈 조작은 지금도 흔히 있는 일이고, 실제 키는 150cm 후반이나 세또래 때 프로필 상의 159cm 정도로 추정된다. 나머지 베이비복스 멤버들이 170cm를 전후하는 장신들인 것을 감안하면 많이 대조된다.[3] 베이비복스 활동 당시 포지션[4] 서브보컬로 활동했지만 2집 야야야, Break it up, Suger baby에서 사실상 메인보컬이라도 봐도 무관하다. 타이틀곡 야야야에서는 개인파트가 한 파트밖에 없었지만 후렴에서 단체로 부르는 파트는 이가이가 리드했다. Break it up에서도 맨앞 부분 후렴 빼고 단체로 부르는 후렴 파트는 이가이가 리드했으며, Suger baby에서는 간미연과 듀엣으로 대부분 파트를 불렀다. 패자부활전과 Change에서는 이희진이 후렴을 불러서 이희진이 메인이 되는 노래인데, 맡은 개인 파트가 다 고음이 있는 파트다. 패자부활전에서는 고음 파트밖에 없었고, Change에서는 노래 최고음이 있는 이희진 1절 파트를 이가이도 2절에 부른다.[5] 세또래로 데뷔하기 이전에 심형래 주연의 우뢰매에서 보미 역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었다.[6] 참고로 이 회사가 후에 베이비복스를 제작한 DR뮤직이다. 2010년대 들어서는 라니아의 소속사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7] 활동 중 발목 부상을 입었는데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등 소속사와 갈등을 빚어 탈퇴, 미국으로 돌아갔다.[8] 그러나 1집의 실패로 걸밴드 컨셉은 결국 무산되고 정반대 노선인 틴팝으로 바꿨다. 당시 등룡기획은 2집마저 실패하면 회사의 존폐 자체가 위기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비록 후발주자 소리를 듣더라도 검증된 방향으로 선회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9] 하지만 들켰을 때 윤등룡은 퇴출이라는 수를 쓰면서 이가이의 뒤통수를 치게 된다. 당시 팬들의 반발이 워낙 심해서 안고 가기도 어려웠을 것이지만 DR뮤직이 이후 소속 연예인의 관리에서 잡음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일단 급하게 퇴출시키고 일단락했을 가능성이 높다.[10] 당시 팀에서 이가이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김이지와도 11살이나 차이난다.[11] 당시 30살인 이희정은 당시의 외모로는 노안은 아니고 오히려 동안에 가까웠지만 10살 속인 20살의 외모라 하기에는 노안이다.[12] 과거 활동 이력을 감추기 위해 썼다는 설도 있으나 혼자 화려한 색안경을 쓰고 있으니 당연히 더 튀어보였고 이게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켜 대중들이 이가이의 얼굴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13] 이는 이미 룰라가 보여줬다. 1집 후속곡 도중에 군대에 끌려간 신정환을 대신해 들어온 채리나는 고작 17살이었는데, 나이 들어보이게 하기 위해 비니와 선글라스, 그것도 레옹에서 레옹이 쓰던 그 선글라스를 씌웠다.[14] 비슷한 사례로 SUPER JUNIOR의 멤버인 희철이 교통사고로 대퇴부부터 발목까지 분쇄골절되는 중상을 입었으며 회복된 후에도 후유증으로 격한 춤을 출 수 없게 되었다.[15] 1998~1999년 당시 이동국과 김은중은 U-20 대표팀의 투탑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기였다.[16] 다만 고종수는 실제로 1976년~1977년생이라는 말이 있었다.[17] 탈퇴 당시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회견이 있었는지는 어디에도 자료가 확실하게 남아있지 않다.[18] 현재는 삭제되었으나 당시 다른 그룹의 영상에 해당 댓글이 달렸는데, 원래 해당 계정이 '이가이'라는 이름과 프사를 사용해 초기 이가이 관련 각종 희귀 자료들을 업로드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다른 걸그룹의 영상을 올리기도 하였다.[19] 전자는 또 다른 원년 멤버인 정현전이 부산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후자는 또 다른 원년 멤버인 정시운이 뉴질랜드에서 교민 대상으로 K-POP 댄스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게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20] 심지어 베이비복스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로 욕을 먹은 게 한 두번이 아닌데다 간미연만 해도 1999년 3집 활동 당시에 H.O.T.의 멤버인 문희준과 엮였다는 열애설 관련 루머가 났다는 이유로 H.O.T. 팬덤인 Club H.O.T.들에게 간미연 뿐만 아니라 나머지 멤버 전체가 고초를 겪기까지 했으며 공연만 나오면 꺼지라는 말을 듣는 등 온갖 수난을 많이 당했다.[21] 정황상 해당 그룹이 베이비복스 1기의 전신으로 보인다. 실제로 랩 하는 멤버=정시운, 흑인 보컬 하는 멤버=차유미, 본인, 한 명 더=정현전 이렇게 연결이 된다. 부상으로 이가이가 빠지고 이희진과 김이지가 들어와 '한국의 스파이스 걸스' 컨셉으로 바꾼 베이비복스로 데뷔한 것으로 추정된다.[22] '이름 같은 동생 희정이(김이지의 본명 김희정) 이지가'라고 언급했다.[23] 2집 야야야에서 이가이 파트에 김이지가 일부 가사(네가 알고 싶은 나의 모든 것들을)를 코러스로 부르며 어깨동무하는 안무였고, 2집 발매 후 나온 한정판 CD NET CD에 수록된 2집 활동 직전 쇼핑하는 영상에서 김이지가 이가이한테 "언니, 나 이뻐? 내가 안 이쁜가 봐"라고 다소 어리광을 부린 장면이 촬영되었고, 스타다큐에서 촬영한 아침 식사 장면에서 이가이가 "근데 김치가 왜 안 익었을까?"라고 하였을 때 옆에 있던 김이지가 "총각김치가 안 익었어."라고 답하였다. 대기실에서 김이지의 조모가 방문해 손녀의 데뷔 일화를 회상할 때 바로 옆에 이가이가 앉아 경청하고 있었다.[24] 베이비복스는 1997년 7월 데뷔, 디바는 1997년 9월 데뷔로 베이비복스가 근소하게 빠르다.[25] 실제로 2024년 놀던 언니에 출연한 심은진은 디바와의 서열 신경전을 회상할 때 이가이를 우회적으로 언급했는데, 채리나의 데뷔 시기를 논하면서 선배라고 한다면 본인들 역시 이미 가요계에서 대선배였던 세또래 언니가 계셨기 때문에 억울한 면이 있다고 하소연하며 밝히기도 했다. #[26] 다만 당시에는 그들도 30세 전후의 나이여서 50대가 된 지금이랑 이미지 차이가 크다.[27] 그래도 1990년대 후반부터는 30대 초반까지는 젊다고 쳐주는 경우도 있다.[28] 예시로 김소연과 김희선의 1990년대를 보면 굉장히 성숙해보인다. 그 당시 김희선은 20대 초반, 김소연은 10대 후반이었다. 지금은 40대도 젊어보이는 편이다. 1990년대 40대였던 안성기, 유동근, 김영철, 독고영재과 지금 40대인 손석구, 박광재, 소지섭, 이제훈, 지성을 비교해본다면 느낌이 확 다르다.[29] 마돈나의 Over And Over 커버곡[30] Paul Chapman의 오타이다.[31] Stacy Q의 Two of Hearts 커버곡. 해당 곡은 원더걸스의 Tell Me 샘플링으로 한 번 더 유명세를 탔다. 원곡 뿐만 아니라 세또래의 곡마저도.[32] 마돈나의 Like A Virgin 커버곡.[33] 이 곡은 박남정 1집에 '푸른 리본'이라는 곡 제목과 다른 가사로 수록되어 있다[34] 맞춤법으로는 '다시 만날 거야'가 맞다[35] 맞춤법으로는 '말해 줄 거야'가 맞다[36] 당시에는 등룡기획이라는 이름이었다. 당연히 소속사 대표이사인 윤등룡의 이름을 땄다.[37] 1집 앨범의 뒷자켓 사진을 재탕하였다.[38] 앨범을 들어보면 창법이 강수지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39] 대표작으로 쿨의 송인, 젝스키스의 기억해줄래, 커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