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버질 아블로 Virgil Abloh | |
출생 | 1980년 9월 30일 |
미국 일리노이 락포드 | |
사망 | 2021년 11월 28일 (향년 41세) |
미국 일리노이 시카고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8cm (6' 2") |
학력 | 보이란 카톨릭 하이 스쿨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토목공학 / B.Sc.)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건축학 / M.Arch.) |
주요경력 | 영국 왕립예술대학 (객원 교수 / 2021년) 루이 비통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 2018년-2021년) Off-White (CEO / 2013년-2021년) Pyrex Vision (2012년) DONDA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2010년) |
배우자 | 섀넌 아블로 (2009-2021년) |
자녀 | 그레이 아블로 로우 아블로 |
SNS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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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 기업인, DJ.오프화이트를 설립했으며, 루이비통 남성복 컬렉션의 아티스틱 디렉터 자리를 맡았다.
2. 생애
1980년 9월 30일, 일리노이 락포드의 가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재봉사로 일했고, 아버지는 페인트 회사를 경영했다. 보이란 가톨릭 고등학교를 1998년에 졸업했다. 2002년에는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토목공학 학사 학위를 수여받았다.이후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 건축학 석사 과정으로 입학했는데,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하여 2003년 완공된 IIT 맥코믹 트리뷴 캠퍼스 센터 건물이 본인에게 건축을 넘어선 패션 등 여러 창작 활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1] 또한 당시 바우하우스와 미스 반 데어 로에 등의 영향도 받았다고 한다.
2006년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 건축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티셔츠를 디자인하고 자신의 블로그 'THE BRILLIANCE'에 패션과 디자인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시카고에 위치한 한 인쇄소에서 자신의 디자인을 작업하던 중 칸예 웨스트의 매니저인 Don C를 통해 그를 소개받게 된다. 2006년 칸예의 첫 번째 브랜드로 출범할 예정이었던 파스텔에 제작자로 참여했다.
2009년부터 칸예와 함께 이탈리아의 유명 패션 하우스인 펜디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이탈리아에 위치한 펜디의 지사에 배치된 두 사람의 협력 관계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해 말, 아블로와 칸예 웨스트의 동반자인 Don C는 시카고에 RSVP 갤러리라는 패션 부티크를 열었다.
2010년 칸예 웨스트는 버질 아블로를 자신이 직접 설립한 창작 기획사 돈다(DOND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또한 매튜 윌리엄스, 헤론 프레스턴, 저스틴 손더스와 함께 빈트릴이라는 브랜드를 출범시켰다.[2] 이들은 전부 칸예를 통해 인연을 맺었고, 함께 모여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고 파티를 즐기다가 합심하여 프로젝트성으로 결성되었다. 훗날 선보이는 파이렉스 비전과 마찬가지로 저가의 기성품에 프린팅을 더해 재가공하는 방식으로 시작했으며 DJ와 여러 셀럽들을 통해 SNS를 중심으로 바이럴 마케팅을 펼쳤다.[3]
2011년, 칸예와 JAY-Z의 합작 앨범 Watch The Throne의 아트 디렉터를 맡았으며, 해당 앨범이 그래미에 노미네이션되며 본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2년에 아블로는 자신의 첫 번째 브랜드인 파이렉스 비전[4]을 출범했다. 폴로 랄프 로렌의 생산이 중단된 럭비 라인 데드스탁을 싸게 들여와 스크린 프린트 디자인을 입혀 고가에 되파는 방식 등을 쓰며 브랜드를 전개했다. 럭비복 요소가 짙은 이 브랜드는 초창기부터 셀럽들의 막강한 지원사격을 받으며 짧았지만 임팩트 있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명성을 점차 쌓아 나갔으며 이후 버질 아블로는 상업적 기업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닌 일종의 예술적 실험을 의도한 것이었기 때문에 1년 후 파이렉스 비전을 폐쇄한다.[5]
2.1. 오프화이트 설립 이후
2013년 럭셔리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오프화이트를 설립하며 커리어를 이어갔다. 오프화이트의 로고는 영국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벤 켈리'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한다. 브랜드를 론칭하는 동안, 그는 뉴가드그룹(NGG, New Guard Group)의 도움을 받았으며, 프란체스코 라가치[6], 헤론 프레스톤, 마르셀로 불론 등과 같은 많은 디자이너와 브랜드들도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버질 아블로의 브랜드는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하여 중국, 일본 ,미국으로 점차 확장되었고 그의 의류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을 얻는 데 성공한다. 오프화이트의 의류 라인은 인용 부호("), 케이블 타이, 대문자 및 바리케이드 테이프의 사용을 통해 식별할 수 있으며 바로 이것들이 브랜드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하다.2014년에는 오프화이트의 첫 여성복 라인을 론칭해 파리 패션위크에서 컬렉션을 선보였다. 같은 해 오프화이트는 LVMH 프라이즈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으나, 아쉽게도 대상과 특별상은 각각 Marques'Almeida와 자크뮈스가 차지했다.
2016년 도쿄 아오야마에서 자신의 첫 컨셉트 스토어를 열게 된다.[7] 이후 밀라노에서는 오프화이트 브랜드로서 첫 번째 가구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는데 철망으로된 의자, 벤치, 테이블 등 가죽 쿠션과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상단이 특징이었다.
2017년에는 나이키와의 협업을 통해 나이키 신발의 상징적인 10가지 실루엣 제품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해내며 "The Ten(더 텐)" 컬렉션을 출시했다. 각각의 실루엣에는 브랜드의 트레이드 마크인 케이블 타이로 장식을 했다. 한정적인 출시로 인해 스니커 마켓은 초토화가 될 지경이었고 스니커 마니아들은 더욱더 많은 것을 갈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2. 루이 비통 남성복 디렉터
2018년 3월 25일, 버질 아블로는 루이 비통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자리에 임명되었다. 기존 디렉터였던 킴 존스는 같은 LVMH 내 디올 맨으로 보직을 옮겼다. ‘패션 브랜드의 남성복 라인을 이끈 아프리카계 최초의 인물’과 ‘프랑스의 주요 패션 하우스 지휘봉을 잡고 있는 몇 안 되는 흑인 디자이너 중 한 명’이자 ’흑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하위 문화인 스트리트 패션을 패션 트렌드의 한 축으로 끌어올린 디자이너‘ 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파리 팔레 루아얄에서 루이비통을 위한 2018 남성 패션위크의 첫 번째 컬렉션을 선보였다. 리아나가 쇼가 시작되기 전에 처음으로 아블로의 의류를 착용한 첫 번째 인물이었으며, 플레이보이 카티, 스티브 레이시, A$AP Nast, 데브 하인스, 키드 커디, 셱 웨스와 같은 저명한 인물들이 런웨이 무대를 걸었다. 스케이트보더들을 상당수 기용하기도 했다. 쇼 마무리 직후, 칸예 웨스트와 포옹을 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 장면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8]
이후 아블로는 나이키와 협업해 2018 US 오픈 기간 내내 세레나 윌리엄스가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된 오리지널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2018년 6월 5일에는 LVMH 포트폴리오 내 브랜드인 리모와와의 특별 협업을 진행해 한정판 여행가방을 공개했다.
2019년 2월 루이 비통 컬렉션에서 120만원 상당의 무선이어폰[9], 스마트 워치와 무지갯빛을 강조한 가방 등을 선보이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460만원짜리 PVC 소재 여행가방이나 44만원짜리 초록 장갑 등을 선보이며 이목을 또 집중시켰다.
2019년 3월, 아블로는 이케아와 손잡고 러그, 탁자, 의자 등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가구를 제작했다. 같은 해 미국 패션의 진흥을 도모하는 CFDA(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에 버질 아블로가 이사회에 선임되었다.
본인이 흑인이면서 정작 같은 흑인은 안쓴다는 비판이 있었으나, 21 F/W 컬렉션은 흑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쇼로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영상설명
2.3. 사망
2021년 11월 28일,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사인은 2년 간 투병해왔던 희귀성 심장 혈관 육종(심장암). #1 #2 #3 사망 전까지 투병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않고, 다음 컬렉션들과 아이템들을 연구하고, 활발한 활동[10]을 했던 점이 많은 사람들을 인상 깊고, 안타깝게 하였다. 그가 맡던 루이비통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자리는 퍼렐 윌리엄스가 2023년 2월 14일부로 그의 뒤를 잇게 되었다.3. 예술 활동
칸예 웨스트의 앨범 커버를 디자인하던 중에 만난 일본인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와 함께 2010년부터 가깝게 지내왔다.아블로는 일본 도쿄에 있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카이카이 키키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시카고 현대미술관에서 그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기도 했었다. 2018년, 아블로와 무라카미는 런던의 가고시안 갤러리와 베벌리힐스에서도 일련의 전시회를 함께 했다.
버질 아블로의 첫 단독 미술 전시회는 2019년 시카고의 현대 미술관에서 열렸다. 이 전시회의 이름은 "Virgil Abloh: Figures of Speech"로 버질 아블로가 미술, 디자인, 음악 분야에 남긴 발자취들을 회고한다.
4. 음악 활동
버질의 음악에 대한 관심은 10대부터 디제잉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내내 하우스 파티에서 DJ를 했다. A-Trak[11], Benji B, Gilles Peterson과 같은 DJ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12] 세월이 흐르면서 아블로는 DJ로서도 인정을 받아 국제적인 쇼를 시작했다. 2018년 1월, 독일의 유명 DJ이자 프로듀서인 Boys Noize와 함께 첫 싱글 'Orvnge'를 발매했다.5. 비판 및 논란
먼저 흑인들의 전유물과 같은 하위문화로 여겨지던 스트리트 패션을 전 세계 패션 트렌드의 한 축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버질이 업계에 가져다준 파급력은 인정해야할 부분이다. 그러나 재창작에만 열중하여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하다는 의견, 지나치게 상업적이다는 의견이 주된 비판거리다.실제로 그의 유명한 디자인 중 그의 오리지널리티가 엿보이는 작품은 별로 없으며, 파이렉스, 더텐 협업, 루이비통 포스같이 기존의 제품을 해체 후 재창조한 것들이 대다수다. 파이렉스는 낡은 옷에다가 로고 프린팅을 한 게 전부라서 오리지널리티를 따지기에는 민망하고, 화살표 로고는 글래스고 공항의 주의 표지판#을 옷에 그대로 옮긴 것이다. 결국 그의 오리지널리티는 따옴표 안에 텍스트로 물건의 성격을 적어놓은 것만이 남는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거 하나만 밀었던 원툴 디자이너가 된다.
대표적으로 라프 시몬스는 "버질을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사람에게 영감을 얻는 것에 반해 버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라고 언급했다.
이케아와의 협업 의자, 입생로랑을 베낀 듯한 루이비통 체인 조끼, ALYX의 롤러코스터 버클이 연상되는 벨트, 에어 조던 시리즈를 베낀 듯한 루이비통 신발 등 다양한 표절 논란에 휩쌓였던 바 있다.
품질 논란도 끊이질 않는다. 핫한 명품 중에서 품질 좋은 거 찾기가 힘들어진 시대지만 오프화이트는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분명 방금 산 옷인데 실밥이 뜯어져있거나 원단이 저급이거나 하는 등 고가의 명품임에도 불구하고 품질에 굉장히 큰 문제가 있다. "FOR ALL"과 같이 시즌별로 내는 저가형 제품들은 정말 눈물나는 퀄리티를 자랑한다.
또한, 유명인과의 친목질로 핫해졌다는 비판을 가장 피할 수 없었던 디자이너다. 패션업계가 인맥이 곧 능력인 건 맞지만 버질 아블로는 셀럽들과 친해진 후 자기 옷을 입혀서 유명해지는 방식만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버질 아블로는 업계에 크나큰 족적을 남겼으며, 디자인의 해체 후 재창조라는 측면에서는 유래없이 성공한 디자이너가 맞으나 그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요리사로 비유하자면 남의 요리를 약간씩 재료의 변형을 줘서 만드는 것은 득도에 가까울 정도로 잘 했지만, 자기만의 독창적인 요리를 만드는 건 부족한 요리사라고 할 수 있다.
6. 저서
- 2021년 <Abloh-isms>[13], 프린스턴 대학교 Press
- 2021년 <Virgil Abloh. Nike. ICONS>[14], Taschen
- 2019년 <Figures of Speech>[15], Prestel Pub
- 2019년 <A Team with No Sport: Virgil Abloh Pyrex Vision Flip Book>, Prestel Pub
- 2018년 <Insert Complicated Title Here>[16]
- 2018년 <Daniel Arsham>, Rizzoli Electa
7. 기타
- 대한민국의 여러 연예인들과 가까운 관계로 알려져 있다. 런웨이에 송민호를 세우는 한편, 지드래곤과는 각자 만든 의상을 주고받고[17] 2020년에는 나이키 세미나에 참석, 지드래곤이 런칭해 흥행하고 있는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을 팔로잉하는 등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버질은 디자인 외에도 다양한 미술활동에 폭넓은 관심을 가지기로 유명하다. 건축학을 전공했으며, 디제이로도 활동해 자신의 런웨이의 셋을 직접 틀기도 한다. 또 조각과 미술작품에 조예가 대단히 깊다. 가방에 "SCULPTURE"라고 적어 가죽제품을 조각품으로 해석하는 등 그의 독특함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많다.
- 하버드 대학교의 디자인대학원에서 강연을 맡은 적이 있다.
- 머천다이즈 제작을 자주 한다. 자신이 졸업한 대학교의 머천다이즈까지 만들 정도. 대부분 챔피온 무지 의류에 프린팅을 한 것이다. Canary Yellow 웹사이트에서 Figures of Speech와 MCA 미술관 머천다이즈 등의 의류를 비싸지 않은 구할 수 있으며 리셀가도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또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인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와 래퍼 트래비스 스캇의 머천다이즈를 제작해주기도 했다.
- 칸예가 버질을 위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곡 Brothers가 있다. 미발매곡이나 유출되어 현재는 올라와 있는 영상 댓글에 버질을 추모하는 댓글들로 가득하다. #
- 켄드릭 라마가 2022년에 참가한 2023 스프링, 써머 남성복 컬렉션 런웨이 한정으로 버질을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Long Live Vergil(영원하길. 버질)이라는 가사로 샤라웃했다. # 참고로 이 당시 부른 곡은 N95이다.[18]
- 한국 연예계 불가사의로 꼽히는 2010년 카니예 웨스트의 내한 공연후 고깃집 사진에서 카니예와 마주보고 앉아 있는 인물이다. #
- 그가 루이비통에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된 후 1년에 한번은 버질 컬렉션이 출시되었는데, 그의 사후 출시된 마지막 컬렉션에서는 그의 커리어에 날개를 달아주었던[19] 나이키와의 협업 에어포스 1을 출시함으로써 커리어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색상은 47가지로, 각 색상마다 극 소량으로 출시되었으며 이전 크리스찬 디올과 에어조던의 콜라보 제조 공정과 같이[20] 루이비통 측 공장에서 루이비통 가죽으로 생산한 제품이다. 지구상 모든 신발광들이 한번 쯤은 생각했던 모습의 신발을 정품으로 출시했다는 점[21]과 스포츠 브랜드 매출 1위 나이키와 명품 브랜드 매출 1위 루이비통이 만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1] 실제로 특유의 색상과 직선성이 오프화이트 창작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2]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드림팀이 따로 없는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네 명 전부 칸예의 일을 도와주던 무명의 인물들이었다. 버질과 헤론 프레스턴, 저스틴 손더스는 그의 아트 디렉터, 매튜 윌리엄스는 의상 제작자였다.[3] 프로젝트성이었으며 각자 개성이 달랐기 때문에 이들 공동창업자들은 얼마 되지 않아 각자의 길을 갔고, 빈트릴은 2015년 팍선에 매각되며 양산형 스트릿 브랜드로 변모한다.[4] Pyrex Vision. 본인의 디제잉 닉네임이라고 한다.[5] 유리 계량 그릇으로 유명한 파이렉스와의 소송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버질의 디제이명인 파이렉스 비전에서 파이렉스는 파이렉스사 그릇의 단단한 이미지로 인해 이곳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6] 하이엔드 스트릿 브랜드 팜 엔젤스의 설립자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7] 여담으로 당시 스토어에는 방문객들이 무료로 가져갈 수 있었던 정수기에 장착된 오프화이트 브랜드 컵이 있었는데 현재는 값비싸게 되팔리고있다고 한다.[8] 정말 많은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장면인데, 우선 이 둘은 패션 비전공자 유색인종으로서 무시받으면서 밑바닥부터 비주류 스트리트 패션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올라온 끝에 각각 특정 분야의 끝판왕 격의 거물이 되었다. 첫 번째로는 이러한 배경으로 인한 동지애이자 감격스러움이 담겨있다. 또한 칸예는 몇 년 전 루이비통과 이지시즌의 파트너십을 추진했으며 남성복 디렉터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결국 이사회에 의해 무산된 전적이 있다. 이후 본인의 직원이었던 버질이 무려 루이비통의 정식 디렉터로 임명되며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과정에서 다소 관계가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버질 사망 당시까지도 그의 투병 사실을 몰랐으며 장례식 입장을 거부당했을 정도로 관계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였다. 훗날인 2022년, 칸예는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LVMH가 버질을 상대로 엘리트주의와 인종차별을 가하여 그를 망쳤다고 주장한다.[9] 베이스는 마스터 앤 다이나믹의 MW07이다. 마감과 음질에서 혹평을 받고 리셀가가 5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원본인 MW07역시 좋지 못한 평을 받으며 출시 이후 가격이 급하락.[10] 그는 생전 인스타그램에 매일 업무와 DJ 활동에 대한 어마어마한 게시물과 스토리를 업로드했다.[11] 1997년도 턴테이블 DMC 대회 우승자. 당시 최연소인 15세.[12] 이런 영향 때문인지 파이오니아와 콜라보를 통해 DDJ-1000 오프 화이트 에디션을 만들기도 했다.[13] 버질 아블로의 명언들을 총망라한 어록집.[14] 버질 아블로와 나이키의 협업 제품들을 담아낸 책.[15] 미국 시카고 현대미술관(MCA)에서 열린 전시회 도록으로 조금 더 값이 비싼 스페셜 에디션 버전도 함께 출판했다.[16] 직역하면 <여기에 복잡한 제목을 넣을 것>으로 2017년,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에서 개최되었던 강연 내용을 책으로 편찬해내었다.[17] 지드래곤 본인의 다큐멘터리에는 버질 아블로의 친필메모가 새겨진 것으로 보이는 나이키 X 오프화이트 에어조던 1 시카고 협업 모델을 신고 출연했고, 지드래곤은 2019년 발매된 나이키 X 피스마이너스원 에어포스 1 파라노이즈 협업 모델 중 friends & family 버전(지인 증정용 88족 한정)을 버질에게 선물하였다.[18] 루이비통은 흑인 플렉스 문화의 끝판왕 격이라는 인식이 있으며 마크 제이콥스 체제 이후 지나친 상업성으로 비판받고 있다는 점에서 켄드릭 라마가 N95를 루이비통 쇼에서 불렀다는 것이 상당한 아이러니다. N95에는 디자이너 브랜드와 보석, 런웨이 등을 언급하며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미는 데 집착하는 배금주의적 세태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가사가 담겨져 있다.[19] 나이키(컨버스)의 스니커즈 10종을 오프화이트 스타일로 다시 탄생시켰던 ‘THE TEN' 시리즈이다. 이후 명품과 스트리트 브랜드, 명품과 명품 브랜드들이 이전보다 활발하게 협업을 진행하는 현상이 벌어진다.[20] 참고로 루이비통과 크리스찬 디올 모두 LVMH 그룹 산하 브랜드이다.[21] 각종 SNS 패션 컨셉 사진을 유포하는 채널에서는 항상 단골 소재로 활용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