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0 11:48:04

마이클 에시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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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에시엔의 기타 정보
{{{#!folding ▼
연도별 전 세계 축구 이적료 1위
2004
디디에 드록바
(3850만 유로)
2005
마이클 에시엔
(3800만 유로)
2006
안드리 솁첸코
(4330만 유로)

}}} ||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0002071524_002_20170314140014235.jpg
마이클 코조 에시엔[1]
(Michael Kojo Essien)
생년월일 1982년 12월 3일
국적 파일:가나 국기.png 가나
신체 조건 178cm, 85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2]
주로 쓰는 발 오른발
소속팀 SC 바스티아 (2000~2003)
올랭피크 리옹 (2003~2005)
첼시 FC (2005~2014)
레알 마드리드 (2012~2013, 임대)
AC 밀란 (2014~2015)
파나티나이코스 FC (2015~2016)
페르십 반둥 (2017~2018)
국가대표
(2002~2014)
58경기 9골

1. 소개
1.1. 이름의 발음 문제
2. 클럽
2.1. 첼시 FC2.2. 레알 마드리드(임대)2.3. 첼시 복귀2.4. AC 밀란2.5. 파나티나이코스 FC2.6. 페르십 반둥2.7. 전남 드래곤즈 이적?
3. 플레이 스타일4. 기타

1. 소개



가나의 축구선수.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이다. 필드 위의 들소라는 별명으로 한국에 유명하다. 최고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중 한명이었다. 샘 오취리의 출신으로 알려진 아칸족 출신이기도 하다.[3]

로만의 오일머니로 당대 유망한 선수들을 열심히 사 모아서 푸른 보석함이라고 불리우던 첼시에서도 가장 빛나는 보석으로 손꼽히던 선수이다.

1.1. 이름의 발음 문제

영어를 사용하는 가나 출신인데도, 데뷔를 프랑스에서 한 탓인지 프랑스식 발음인 '미카엘 에시앙'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비영어권 사람의 이름을 알파벳만 보고 미국영어 발음을 하는 한국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 아예 '미셸 에시앙'이라고 왜 안 부르나 생각하는데, 실제 리그앙에서 에시엔을 불렀을 때 이름을 들어보면 '미카엘 에시앙'이라고 한다. 물론 이는 프랑스에서만 이상하게도 스펠링이 Michael이 아니라 Mickael이기 때문. 출처

프랑스의 바스티아에서 데뷔하여 리옹을 거친 에시엔을 프랑스에서 에시엔이라고 불러줄리는 만무했고, 그 당시 간간히 올라오던 리그앙의 중계 하이라이트를 들어보면 '에시앙'이라고 한다. 아마도 여러 미디어에서 들려오는 발음 혹은 에시엔 본인의 인터뷰[4]를 보고 국적에 관계없이 프랑스어가 제1언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지금도 프랑스에서 에시엔이라고 불러줄 가능성은 전무하다.

사실 뭐 박지성도 네덜란드에서는 위송파르크, 석현준은 부르기 힘들다고 그냥 쑥이라고 하고 뭐 다들 지 멋대로 자기네들 나라 입맛에 맞게 부르는데 굳이 우리나라만 고쳐써야 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본인은 에시엔이라고 하든 에시앙이라고 하든 다 알아먹을 테니까.

2. 클럽

2.1. 첼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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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첼시의 대체불가 중원의 핵심

2005/06 시즌에 올랭피크 리옹을 떠나 첼시 FC로 이적했다. 첼시의 주전 자리에 있던 티아구 멘데스는 에시엔이 첼시로 이적해 오자마자 올랭피크 리옹으로 떠났다. 차라리 트레이드를 했다면 어땠을까. 당시 에시엔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으나, 에시엔은 뛰어난 피지컬과 일대일 마크 능력을 보여주며 첼시의 주전 자리를 꿰찼다.

가공할 체력을 바탕으로한 무시무시한 활동량, 빼어난 수비력, 수준급의 슈팅으로 중원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중원 장악력 또한 대단해서 첼시의 피지컬 축구의 핵심이었다. 중미부터 센터백까지 소화 가능한 멀티플레이 능력을 갖춘 현역 최고의 꾸르소레로 세계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들이 포진한 첼시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었다.

2018년 현재의 첼시에서 보자면 은골로 캉테가 에시앙과 비슷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데, 당시 프랭크 램파드의 공백은 많이 아쉽긴 해도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한 반면, 에시엔이 빠지면 첼시의 중원은 초토화된다.[5] 실제로 스콜라리 시절(08/09 시즌 전반기) 첼시의 엄청난 부진은 에시엔의 장기부상도 한몫 했다.

보통 허리를 책임지지만 수비수들이 줄부상으로 실려나갈 때는 센터백도 보고 풀백도 보지만, 대체로 결과는 참담하다. 에시엔이 센터백으로 나온 06-07 시즌의 리버풀전은 2:0 완패였고, 이 경기는 머리뼈 부상으로 힘든 재활과정을 거친 골키퍼 페트르 체흐의 복귀전(...)이었다.

램파드-에시엔-마케렐레의 황금 미들진에 미하엘 발락이 가세하자 첼시 미드필드는 과포화 상태가 되었다. 처음에는 꾸역꾸역 이 넷을 다 쓰는 다이아몬드 시스템을 돌렸지만 그러자니 윙포워드들의 자리가 줄어들어 다시 4-3-3으로 회귀한다. 게다가 06-07 시즌부터 수비진의 줄부상이 이어지다보니 넷 중 가장 멀티능력이 뛰어난 에시엔이 수비쪽으로 땜빵을 서는 일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다. 06-07 시즌에는 발락이 램파드의 조력자 역할을 잘 하지 못 했고 부상으로 인해 조기 시즌 아웃을 당해 다시 미드필더로 굳혀졌지만 07-08시즌에는 발락이 부상 복귀한 후 램파드-발락의 조화가 호흡을 맞춰가며 상당한 위력을 보이자 에시엔은 그대로 07-08 시즌 당시 포백에서 가장 불안정한 오른쪽 풀백으로 굳어진 것이다.[6]

첼시가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만났을 당시 오른쪽 풀백이 에시엔이었다. 그때 호날두는 왼쪽 돌파만 죽어라 했고 전반전에는 에시엔이 거기에 무진장 털렸다. 애슐리 콜을 피하는 방법 물론 호날두를 막을 풀백이 전세계에 얼마나 있겠냐만, 상대가 호날두가 아니더라도 에시엔은 전문 수비수가 아닌 만큼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첼시는 후반전에 조 콜미하엘 발락의 수비가담을 늘리면서 호날두를 어느정도 틀어막는 데 성공했고, 에시엔을 중원 싸움에 가담하게 하여 그 덕에 동점골이 나긴 했다.[7]

다만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에시엔의 수비력이 좋기는 하지만 전문 수비수급은 아니라는 것이다. 에시엔은 기본적으로 우월한 피지컬과 흑인 특유의 쫄깃함을 매우 잘 살려 중원을 초토화시키고 넓은 활동량으로 공수 양면을 모두 지원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비록 뚫리기는 했어도 제 몫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08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클로드 마켈렐레파리 생제르맹 FC로 떠난 후에는 발락, 램파드와 함께 중원을 형성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시즌 전반기에는 장기 부상으로 인해 출전이 거의 없다시피하여[8] 후반기부터 제대로 뛰기 시작한다. 2008-09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이 조합은 이 시즌 트레블팀인 바르셀로나를 경기 내내 압도했으며 에시엔은 이 경기에서 선제골까지 넣었다. 그놈의 오브레보 때문에

09-10 시즌부터는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과 함께 했는데, 안첼로티 감독은 중앙 미드필더 4명을 두는 다이아몬드 4-4-2 전술을 채용하였다. 이에 따라 데쿠, 램파드, 발락과 중원을 형성,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시즌 후반에 데쿠가 부진하면서 첼시는 다시 4-3-3으로 돌아갔고 다시 형성된 램파드, 발락, 에시엔 조합은 첼시의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10-11 시즌엔... 망했다. 데쿠와 발락은 첼시를 떠났고, 그동안 장점이었던 패스, 활동량, 수비력, 중거리 슈팅 중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며 그야말로 '머릿수 채우러 나온 선수'정도의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같이 망한 미켈은 아예 선발로 나오지도 않았으며, 적응기가 많이 필요해 보였던 하미레스, 한 시즌 공격스텟 최소 20을 찍어주는 램파드도 기어코 시즌 10골 이상은 넣었지만 기량 자체는 하락한 모습을 보인 것을 보면, 사실 당시의 첼시 미드필더 중 제일 준수했던 게 에시엔이었다.

그러나 11-12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십자인대 부상으로 또 한번 6개월을 끊은 뒤 돌아온 에시엔은 옛날의 그 에시엔이 아니라는 듯이 맥없는 플레이, 죽은 스피드, 떨어진 활동량 등을 보여주었다. 각종 축구 커뮤니티에서의 슬픈 별명은 고인 에시엔.[9] 본래 피지컬로 거의 먹고 사는 스타일의 선수였기에 이 부상은 정말 뼈아팠다. 그래도 노련미로 커버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으나 첼시에서는 에시엔이 공백 기간을 겪는 동안 하미레스, 하울 메이렐레스, 오리올 로메우 등의 삼각 조합이 좋은 성적을 보인 탓에 에시엔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후반기를 맡던 로베르토 디 마테오 체제에서는 하미레스가 라이트 윙으로 빠지고 로메우는 에시엔에게 밀렸지만 전술을 4-2-3-1로 바꾸고 메이렐레스의 파트너로 존 오비 미켈이 선택되어 후반기에도 에시엔은 주전 자리를 놓쳤다.

파일:에시앙 챔스 우승.png

그래도 팀은 결국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2. 레알 마드리드(임대)

파일:에시앙 레알.jpg

2012년 여름, 레알 마드리드에서 홀딩 미드필더와 라이트백으로서 쏠쏠한 활약을 해 주던 라사나 디아라가 갑작스럽게 FC 안지 마하치칼라통수이적을 하게 되면서, 스쿼드 운영에 커다란 차질이 생긴 무리뉴 감독은 긴급하게 자신의 애제자 에시엔을 불러들여 1년 임대 계약을 맺는다.

그렇게 12-13 시즌에 마르셀루, 세르히오 라모스 등 수비진 줄부상에 시달린 레알 마드리드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레프트백, 라이트백 가리지 않고 뛰면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시즌 마지막 경기이자 레알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면서 레알과의 짧았던 동행을 마무리하였다.

2.3. 첼시 복귀

13-14 시즌 시작 전 임대를 마치고 첼시로 다시 복귀하였다. 무리뉴 따라서 다시 왔다

로테이션 자원으로 경기에 출장했지만, 선발로 나올 때마다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말 그대로 교체 자원으로서는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을 뿐이다. 덕분에 당시 첼시의 3선은 EPL 상위권 팀들 중 맨유와 더불어 최악을 달렸다. 하긴 레알에서도 로테이션 자원이었으니...

2.4. AC 밀란

파일:external/pbs.twimg.com/Be--eD4CAAIfxPr.jpg
2014년 1월 25일 AC 밀란으로 이적하였다. 한 때 첼시 중원을 오랫동안 책임져 주었던 그의 밀란행에 많은 첼시팬들이 상당히 안타까워 했다. 그리고 밀란팬들은 하고많은 애들 중에서 왜 하필 에시엔이냐면서 갈문어를 욕했다[10] 계약기간은 18개월이었다. 레알에서 돌아온 카카도 밥값을 하게 만든재활공장장 밀란인 만큼 에시엔도 부활할 수 있을지 주목받았다.

하지만 1월 26일 1차 메디컬 테스트에서 무릎이상으로 계약이 파토날 위기에 처했다. 알리 시소코의 전례가 있듯이 이적료를 깎으려는 언플일 수도 있지만 부상경력이 경력이라 당연하다는 의견이 대다수.

1차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했지만, 2차 테스트에서는 문제 없다는 결과를 받아 이적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만약 이 이적이 취소되었다면, 첼시, 밀란, 에시엔 셋 모두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11]

결론적으로 밀란에서는 실패했고, 2015년 6월 2일, 파나티나이코스 이적을 확정지었다. 계약 기간은 2년으로 알려졌다.AC 밀란은 곧 문타리와 계약해지 하면서 AC 밀란에서의 가나강점기가 끝났다 링크

2.5. 파나티나이코스 FC

2015-16 시즌을 소화했으나, 2016년 11월 자유계약 신분이 되었음이 알려졌다.

2.6. 페르십 반둥

2017년 3월 14일 인도네시아 슈퍼 리그의 팀인 페르십 반둥으로 이적했다. 등번호는 5번을 달았다.

2.7. 전남 드래곤즈 이적?

2018년 1월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K리그 클래식 전남 드래곤즈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루머가 퍼지고 있다. # 만약 이적이 성사된다면 K리그를 거쳐갔던 외국인 선수들 중에서는 가장 이름값이 있는 선수로 남을 확률이 높을 듯. 하지만 루머는 역시 루머일 뿐, 이 선수가 전남에 오는 일은 없었다.

3. 플레이 스타일

위에 언급된 대로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기 전에는 그야말로 만능이었다. 피지컬이 매우 뛰어난 선수여서 활동량이나 몸싸움, 스피드 어느 것에도 딱히 밀리지 않았고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풀백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다.

180이 안되는 키로 밀리지 않고 오히려 180cm 이상의 거구들을 압도해버리는 엄청난 피지컬, 그런 피지컬과 유연성을 동반하며 나오는 쫄깃함, 준수한 패싱력과 볼키핑, 평소 정확도가 좋진 않지만 한번 제대로 걸리면 엄청난 궤적을 그리며 꽂히는 중거리 슛 등이 그의 장점이었다. 특히 에시앙의 체력은 그 중에서도 발군인데, 120분을 엄청 뛰어다니고도 한 게임 바로 더 뛸 수 있다고 말한 일화가 유명하다. 엄청난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하루 12시간 이상의 수면이라고 한다......

사실 그 모든 포지션을 다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위급시에 다용도로 활용가능한 멀티플레이어가 있다는 것은 팀에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슈팅에도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에, 비록 공격쪽 포지션에는 거의 서본 일이 없었지만, 기본적인 피지컬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수준을 충분히 보여줄 만한 선수였다. 실제로 국가대표팀에서는 훨씬 공격적인 역할을 맡으며 플레이 했다.

애초에 첼시는 에시엔을 마켈렐레의 대체자로 데려왔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마켈렐레의 대체자가 아니라 아예 첼시 4-3-3에서 미들 3인 중의 한 명을 맡아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그야말로 박투박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선수였다.

첼시 시절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게 되면 수비에 집중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중앙 미드필더를 보게되면 수비가담에 버금갈 정도로 공격 가담도 활발히 했다. 게다가 중거리 슛이 매우 좋은 선수 중 한명이었다. 그런 이유로 마켈렐레의 대체자로 왔음에도 마켈렐레보다 조금 위에서 같이 뛰는 일이 많았던 것.

다만 십자인대 부상이 모든 선수에게 그렇지만 특히나 치명적이라 수많은 장점을 잃어버리고 그저 그런 미드필더로 전락했다.

4. 기타

  • 마이클 에시엔은 한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가공할 체력의 원천으로 잠을 꼽았는데, 시간만 남으면 열심히 잔다면서 자신의 체력 유지 비법을 밝혔다. 그리고 자신의 취미 또한 잠자는 것이라고 한다. 거의 11시간 가까이 자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한국 팬 한정 별명으로는 '섹시앙'이 있다.[12] 영국에서는 GBH라는 별명으로 불린다.[13]
  •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직전, 대한민국 대표팀은 가나와 평가전을 가졌다. 이 경기에 에시엔 역시 출전했으며, 가나 대표팀이 3:1로 이겼다. 스코어 그대로 한국 미드필더진이 압살을 당한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에시엔은 골까지 기록했다. 월드컵 이후 다시 한 번 리턴 매치를 했으나 역시 1-3으로 발리면서 가나 스코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1] /ˈmaɪkəl koʊdʒoʊ ɛsjɛn/. Michael은 영어식 이름으로 가나에서는 /ˈmaɪkəl/'마이클'로 발음되며 Kojo와 Essien은 가나 아칸족의 이름과 성으로 각각 /koʊdʒoʊ/'코조', /ɛsjɛn/'에시엔'으로 발음된다. 국내에서는 '미카엘 에시앙'이라는 프랑스어식 이름으로 통용된다. 프랑스에서는 외래어 또는 차용어로 여겨지는 이름에 대해서도 프랑스어식으로 발음하는데, 영어식 이름인 Michael은 프랑스어식 이름인 Michaël, Mickaël, Mikaël과 마찬가지로 /mikaɛl/'미카엘'로 발음된다. 또한 프랑스어에서 ien은 /jɛ̃/'이앵'(모음 뒤에 올 경우 '얭'으로 표기)으로 발음되며 프랑스 북부 지역, 특히 파리에서는 /ɛ̃/'앵'을 /ɑ̃/'앙'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선수의 이름은 프랑스어식 이름도 아니며 프랑스어가 가나의 공용어도 아니기 때문에 선수의 이름에 프랑스어식 표기를 쓸 근거는 없다.[2] 박스 투 박스 유형의 중앙 미드필더 였다. 센터백수비형 미드필더, 풀백으로도 뛰었다.[3] 가나인의 절반 정도가 아칸족이다.[4] 가나는 영어를 쓰지만 에시엔은 불어를 꽤 잘한다. 실제 프랑스 이중국적이기도 하다.[5] 다만 이 것은 09-10 시즌이나 그 전의 이야기이다. 미하엘 발락이나 데쿠의 방출 이후엔 램파드의 대체마저도 어렵고 10-11 시즌 램파드의 부재로 첼시의 중원이 개발살나면서 리그 순위도 동반 추락하였다.그냥 둘 중 한 명이라도 빠지면 망한다는 소리다[6] 기존의 주전이었던 파울루 페레이라는 06-07 시즌부터 잦은 부상에 시달렸고 그 자리를 메꾸러 온 줄리아노 벨레티는 시즌 초반에만 괜찮은 활약을 보이다 금방 활약이 사그러들었다.[7] 아무튼 FM에서는 이를 반영해 현존 선수들 중 가장 많은 영역에 "능숙함" 이상이 뜬다.[8] 그 공백은 존 오비 미켈로 메꾸려 했지만 미켈의 기량은 에시엔과 비교하기엔.....[9] 유명한 축구 게임인 FM 2012에서는 그래서 에시엔이 십자인대 부상을 이기고 돌아오면 그야말로 처참하게 능력치가 깎여나가 있다. 에시엔이 돌아오기 전에 팬들은 이런 FM의 시스템을 비판했지만 막상 에시엔이 돌아오자 그런 말은 사라졌다.[10] 밀란과의 재계약시 권한이 대부분 바르바라에게 넘어갔다.[11] 첼시 입장에서는 고액 주급자이자 잉여 자원인 에시엔을 처분했어야 했고, 밀란은 에시엔의 영입을 위해 노체리노를 웨스트햄으로 임대 이적 시킨 상황이었다. 에시엔도 경기 출전을 위해서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밀란에 이적해야 했다.[12] 이 별명은 국대경기가 끝난 후 상대 선수와 유니폼을 교환하는 장면에서 유래한다. 에시엔이 직접 나서서 상대선수의 유니폼을 벗겨줬는데, 그 모습이 섹시(...)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이러한 별명이 붙었다. 이런것도 있다.[13] 에시엔의 머리가 큰 것을 가지고 놀리는 별명. Great Big H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