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2 19:22:30

아르센 벵거/아스날 FC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아르센 벵거

1. 재임 시절
1.1. 부임과 무패 우승의 신화 (1996~2006)1.2. 화려했던 10년 후 찾아온 긴축재정과 기나긴 무관 (2006~2013)1.3. 빅 네임 영입, 무관을 끊어내다1.4. 2015-16 시즌: 11년만의 준우승1.5. 과학이 깨지다, 그의 마지막
1.5.1. 2016-17 시즌: 회광반조와 천천히 몰락하는 말년1.5.2. 2017-18 시즌1.5.3. 긴 아스날 FC에서의 여정, 막을 내리다
2. 사임 이후3.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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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임 시절

1.1. 부임과 무패 우승의 신화 (1996~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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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9월 22일 아스날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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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sene Who?[1]

벵거의 부임 이전의 아스날은 조지 그레엄의 비리, 선수들의 태업과 라커룸 내 불화가 만연했으며 경기가 끝나면 술과 담배를 피우며 과거의 영광에 도취하였고 보드진도 매일 와인과 담배를 피우며 하루를 때웠다고 한다. 또한 아스날의 구장이였던 하이버리 스타디움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인해 1900년대 중반까지도 대부분의 공간이 사용 불가였으며 이적 시장이 열리면 매년 이적료 신기록을 갈아치워 잉글랜드의 은행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즉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는 그런 구단이었던 것이다.

1989년 2월, 당시 벵거는 프랑스 리그가 잠시 휴식기를 맞자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잉글랜드로 와서 아스날의 칵테일 라운지에서 축구를 관람하고 있었다. 당시 아스날의 부회장이였던 데이비드 딘은 이사회실에 있었고 그의 아내는 칵테일 라운지에 있었는데, 별안간 딘의 아내가 딘을 불러내어 AS 모나코 FC의 감독이 칵테일 라운지에 있으니 가서 대화를 해 보라고 귀띔하였다. 그래서 딘은 프렌치 코트를 입고 안경을 쓰고 칵테일을 마시던 벵거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딘은 그 날 밤 특별한 일이 없다는 벵거에게 자신의 친구인 밴드 마말레이드의 드러머가 주최하는 홈 파티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고, 벵거는 그러겠다고 대답하였다.

파티에서 딘은 벵거와 뷔페를 먹으며 대화를 나눴고 제스쳐 게임을 하였다. 벵거는 게임이 끝난 후 셰익스피어의 희극 중 하나를 연기하였는데, 영어를 잘 못 하던 벵거였음에도 딘은 그의 고상함에 매료되었고 그 날 밤 딘은 아르센과 아스날은 운명이 아닐까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아스날 팬들에게도 재미없는 축구를 한다며 비난당하던 조지 그레엄은 경질당하게 되고, 딘은 차기 감독으로 벵거를 추천했는데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딘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벵거를 감독으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아스날의 회장이었던 힐우드는 벵거와 레스토랑에서 벵거가 생각하는 구단의 비전과 벵거의 구상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힐우드는 그가 굉장한 구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드센 선수들과 개판이었던 팀 내 분위기를 외국인 감독이 관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음을 느꼈고, 무엇보다 다른 이사회 위원들도 프랑스 감독을 선임할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 브루스 리오치라는 감독을 선임해버렸다.

그런데 리오치는 그가 영입했던 데니스 베르캄프, 그리고 마틴 키언과 같은 선수들을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선수들에게 놀림감이 되어 제대로 된 감독 대접을 받지 못했다. 선수들은 정말 사소한 그의 실수나 생김새를 가지고도 비꼬며 조롱했고 이후 그는 구단과의 이적료 의견차도 생겨버려 경질되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아스날은 결국 도박을 거는 셈 치며 벵거를 차기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당시에는 인터넷 보급 초창기인지라 정보 접근경로가 적은 탓에 잉글랜드는 외국인 감독의 비중이 굉장히 적었고, 프랑스 축구 등을 아는 골수 축구전문가를 빼곤 외국인 감독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분위기가 강했다. 당연히 벵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구단 선수들은 아르센이 누구냐며 궁금해 했고, 잉글랜드의 언론들은 헤드라인으로 'Arsene who?' 라는 문구를 내세웠을 정도. 얼마나 사람들이 벵거에 대해 몰랐냐면 아르센 벵거보다 '아르센 누구?' 라는 문구가 더 유명할 정도였다. 벵거의 회상에 따르면 부임 후 지하철을 타고 경기장으로 향했는데 아무도 자신을 못 알아봤다고 한다.

수뇌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벵거는 그동안 구상해 온 철학을 바탕으로 팀을 완벽히 개혁했다. 매일 경기가 끝난 후 술과 담배를 하고 경기장으로 이동하며 초콜렛과 사탕을 입에 달고 다니던 선수들의 습관과 식단 체계를 바꿨다. 또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도입하였으며 이는 나중에 영국 축구 전체에 잔잔한 혁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과정은 잔잔했지만 그 결과는 글자 그대로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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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애덤스와 함께 리그 우승을 자축하는 벵거

사실 벵거와 선수단과의 인연은 많이 알려져 있는 블랙번 로버스전이 처음이 아니다. UEFA 컵에서 아스날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경기 당시 하프타임이 되자 벵거가 라커룸으로 가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린 것이 벵거와 선수단과의 첫 만남이며, 그날 아스날은 6:4로 패배하게 된다. 이후에도 벵거는 종종 라커룸으로 가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토니 애덤스는 처음에는 그런 벵거가 아니꼬웠다고 회상했다. 감독으로 선임이 되기 전부터 라커룸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에 아니꼬움을 느끼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또한 나고야와의 계약이 해지되기 이전부터 그는 아스날의 이적에 비공식적으로 영향을 끼쳤는데, 파트리크 비에라가 그의 비공식적 작품이다.

아스날 감독에 부임한 벵거는 선수단과 미팅을 가졌는데, 몇몇 선수들은 그의 프랑스 발음이 섞인 영어를 가지고 형사 클루조같다며 그의 말투를 따라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는 15분 동안 선수단의 체계를 모두 바꾸겠다고 이야기했다. 연설 막바지가 되자 몇몇 선수들은 대놓고 그를 비웃었으며 샌님같이 생긴 벵거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고 연설이 끝난 후 선수들은 자리를 빠져나오며 서로 벵거에 대해 물었다.

벵거는 그날 이후 다른 감독들과 다르게 선수들에게 구체적으로 날마다 다른 훈련을 지시했고, 스톱워치나 마네킹을 이용한 전술 훈련, 패스 훈련과 근육 스트레칭, 그리고 플라이오메트릭 기법을 도입하였다. 이전 감독들의 방법이였던 니들끼리 해라 방식에 길들여졌던 선수들은 그의 훈련 방식에 걱정을 하기도 했다. 물론 이 걱정은 일주일 만에 사라지게 되는데, 선수들은 그의 훈련 방식의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 것을 보고 재미를 느꼈다. 그들은 벵거가 오기 전부터 훈련을 하고 있는가 하면 그의 훈련 방법을 섬세하고 간결하고 강렬하다며 칭찬을 하기도 했다. 당시 잉글랜드의 선수들은 이런 방법의 훈련법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몇몇 선수들은 계속해서 그의 훈련 방식에 불만을 표했으며, 특히 애덤스는 그에게 가서 제대로 된 피트니스를 받기에는 훈련량이 부족하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자 벵거는 후반기의 우리 팀은 강해질 것이라며 매번 그들을 돌려보냈다고 한다.

선수단에게 영양사를 데려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교육을 하기도 했고 크로아틴 보충제를 이용하기도 했다. 벵거는 보충제를 먹는 선수단의 반응을 세세히 관찰했는데, 마크 휴즈가 크로아틴 보충제로 인해 살이 오르자 그에게 보충제를 그만 먹으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또한 위에서도 서술되어 있듯이 벵거는 선수들의 식체계를 완전히 바꿔놨는데, 어느 날 벵거가 라커룸으로 들어가 지시를 내리려고 했는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자 코치에게 왜 선수들의 상태가 이렇냐고 묻자 코치는 초콜렛을 안 먹어서 배고파하고 있어서 그랬다고 한다.

그는 매일 마사지를 지시하기도 했는데, 매일 거친 잉글랜드식 훈련만 받던 선수들은 매일 마사지를 받게 되자 굉장히 좋아하였다고 한다. 기본으로 한 시간씩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벵거는 자신을 증명하는 데 재미를 느꼈으며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성공한 외국인 감독이 한 명도 없어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아무도 모르고 자신의 능력에 의문을 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회상한다.

벵거의 데뷔는 1996년 10월 12일 블랙번 로버스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이뤄졌는데, 경기 전 벵거는 선수단에게 요가를 지시했다. 당시에는 헤드에 걸릴만한 뉴스거리였으나, 스티브 볼드는 훗날 요가가 자신의 커리어를 2년 늘려주었다며 회상하기도 했다. 아스날은 이날 2:0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점차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끝내는 리그 3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주위의 우려를 조금씩 불식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7-98 시즌에는 후반기 8경기 연속 무실점과 리그 10연승을 기록하며 FA컵과 리그를 동시에 우승했는데, 이것은 아스날 역사상 두 번째 더블이었고, 퍼거슨의 맨유가 독주하던 영국 축구계에 처음으로 라이벌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후 벵거는 다시 한 번 날아올랐다. 연달아 준우승을 기록한 1998-99시즌부터의 세 시즌은 단순히 암흑기라 치부할 수 없었다. 티에리 앙리로베르 피레스, 프레디 융베리 등을 비롯한 주축 선수들을 헐값에 영입하며 팀의 리빌딩을 완벽히 해냈고, 1998-99 시즌 트레블을 기록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게 최종전 끝에 준우승을 했지만 당시 리그 레코드였던 2경기 당 1골도 안 먹히는 수준인 리그 17실점만 허용[2]하는 짠물 수비를 보였고, 비록 승부차기 끝에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2000년에는 UEFA 컵에서 결승에 올랐다.[3] 2000-01 시즌은 초반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후반으로 갈 수록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 크리를 맞고 리그는 맨유에게 올드 트래포드에서 1:6으로 대패하며 준우승에 그쳤고, FA 컵 결승은 리버풀에 역전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챔스에서는 8강에 진출했으나 8강전에서 엑토르 쿠페르가 이끄는 발렌시아 CF에 원정골로 탈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3시즌은 운이 없어 준우승들에 그쳤을 뿐이지 전체적으로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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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01-02 시즌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보다 득점도 적고 실점도 많았지만 안정된 경기력으로 착실히 승리를 거두며 다시 한 번 더블을 기록한다. 또한 리그 전 경기에서 득점을 하는 진기록을 세웠으며, 14경기 연속 승리를 거두며 리그 최다연승 기록도 갈아치우게 된다. 또한 다음 시즌까지 기록을 이어가며 55경기 연속득점을 기록하며 팀 최다연속 득점 기록도 세우게 된다. 거기다가 우승을 확정지은 경기가 엄청난 라이벌리를 형성하던 알렉스 퍼거슨이 이끄는 맨유의 홈인 올드 트래포드 원정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특히 리그 4연패를 위해 뤼트 판니스텔로이, 후안 베론, 파비앵 바르테즈, 로랑 블랑 등을 막대한 돈을 써서 데려온 맨유와 달리 솔 캠벨을 자유계약으로 낚아채오고 시우비뉴의 부재를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를 데려왔으며 이후 맨유와 리버풀, 리즈를 시즌 내내 압도하며 차지한 우승이었기에 벵거 감독의 팀은 더 큰 찬사를 받았다. 2002-03 시즌은 엄청나게 치고 올라오며 리그 우승을 확정짓나 싶더니, 막판에 볼튼 원더러스리즈 유나이티드 FC에게 내리 발목을 잡히며[4] 간발의 차로 퍼거슨의 맨유에게 또 다시 우승을 내줬다. 그러나 FA컵에서는 분전하여 다시 우승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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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거 커리어의 정점인 2003-04 시즌 프리미어 리그 무패 우승

그리고 2003-04 시즌에는 벵거와 아스날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이 찾아오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리그 무패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이뤄낸 것이다.[5][6] 현재 아스날 서포터들은 다시 이 시절을 재현하기를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다.

또한 이 시기는 맨유와의 라이벌 의식이 최고조로 달할 때이기도 했다. 선수부터 시작해 두 팀의 감독까지 설전이 오가고 경기장 내에서 치열하게 싸웠다.[7] 2004-05 시즌에는 맨유와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통산 10번째 FA컵 우승을 달성하였다. 이 때 벵거는 플라미니, 로빈 반 페르시, 알무니아 등을 영입하며 다가올 시즌을 준비했다. 그렇게 시즌 초반 아스날은 지난 시즌 무패 우승의 기세를 이어가며 무서운 상승세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아스날은 블랙번 로버스 전에서 43경기 무패를 달성하며 기존의 리그 연속 무패기록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이 기록은 2004년 10월 24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에 의해 멈추게 되며 49경기 연속 무패로 기록을 마감한다. 리그에서는 맨유에 0:2로 패하며 무패행진이 종료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8승 1무를 기록하며 1위를 달렸으나, 맨유에게 패하고 주제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첼시 FC가 계속 치고 올라와 29승 8무 1패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2위로 우승컵을 놓쳤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16강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에게 홈에서 1:0으로 승리하였으나, 원정에서 1:3으로 패하며 일찍 탈락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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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 시즌 FC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

시즌 종료 후 레알 마드리드 CF로의 이적설이 끊임없었던 파트리크 비에라가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를 들고싶다는 이유로 유벤투스로 이적한다. 팀의 주장이자 엔진을 내보냈지만, 그 공백을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완벽히 메꾸었다. 리그에서는 다소 부진한 끝에 마지막 경기에서 겨우 4위를 차지했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가며 조별리그를 5승 1무로 마무리하고,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 CF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티에리 앙리의 결승골로 승리하며 8강전에 진출했다. 공교롭게도 아스날의 상대는 비에라가 이적한 카펠로 감독의 유벤투스 FC. 유벤투스 원정을 0:0으로 마무리한 아스날은 파브레가스가 평점 10점을 찍는 대활약 끝에 유벤투스를 홈에서 2:0으로 꺾는다. 4강에서는 마누엘 페예그리니가 이끌던 돌풍의 팀 비야레알 CF를 만나 마티유 플라미니,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필리페 센데로스와 같은 젊은 선수들의 활약 속에 비야레알마저 꺾고 결승전에 오른다.

하지만 FC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에서는 옌스 레만이 퇴장당하며 주도권이 바르셀로나에게 넘어갔고, 그런 악재 속에서도 솔 캠벨이 선취골을 넣고 전반을 마쳤지만 교체 투입된 헨릭 라르손의 활약에 의해 마지막 15분을 버티지 못하고 역전당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8]

1.2. 화려했던 10년 후 찾아온 긴축재정과 기나긴 무관 (2006~2013)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이후 계속된 부침이 이어진다. 레전드 데니스 베르캄프의 은퇴, 새로이 팀을 이끌어주길 기대한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의 향수병에 이은 방출, 그리고 티에리 앙리, 파트리크 비에이라, 로베르 피레스 등 무패 우승의 멤버들의 이적이 이어지면서 위기를 맞게 된다. 세스크 파브레가스, 마티유 플라미니, 알렉산드르 흘렙, 토마스 로시츠키 등이 자리를 메꿔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첼시 인수가 몰고 온 잉글랜드 축구 환경의 변화가 아스날에겐 뼈아프게 다가왔다. 유럽 축구, 그 중에서도 EPL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전세계가 소비하는 콘텐츠가 되자 이를 노리고 전 세계의 자본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다. EPL은 이제 전세계 갑부들의 머니게임의 무대가 돼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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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레이트 스타디움 공사장에서의 벵거

부임 이후부터 벵거의 가장 큰 관심은 아스날을 세계적인 명문으로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서 잉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구장이던 하이버리를 벗어나 체계적이고 꾸준한 수익 모델을 찾는 것이었다. 그 일환으로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짓게 되는데, 구장을 짓기 시작하던 시기와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프리미어 리그 유입 시기가 겹치게 된다. 오일머니를 앞세운 스펜딩을 하는 첼시 FC, 그리고 잉글랜드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비롯한 라이벌들에게 파워게임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고, 구장 건립으로, 그것도 땅값이 높기로 악명높은 런던의 한복판에 구장을 건립해 장기간 긴축재정을 해야 하는 아스날에게는 치명타나 다름없었다.

사실 이 시기의 벵거는 아스날을 떠나고 싶어했다. 벵거는 프랑스 국가대표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파리 생제르망,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감독이라면 욕심이 날만한 곳에서 제의가 왔었다. 또, 당시 아스날 내부에는 보드진간의 불화가 있었고 데이비드 딘이 아스날을 떠나는 일도 있었다. 벵거는 클럽과 딘, 둘 중 누구와의 의리를 지킬지 결정해야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었는데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벵거에게 딘은 그가 클럽에 남아야만 한다고 얘기를 했고[9] 클럽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강했던 아르센 벵거는 자기가 추진했던 프로젝트를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결국 아스날과의 계약을 연장했다.[10]

게다가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구단주와 맨체스터 시티 FC의 등장을 기점으로 유럽 축구판에 미칠 듯한 오일머니가 들어오면서 선수들의 몸값과 주급이 엄청나게 폭등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10m 파운드 미만이면 주전, 로테이션급, 10m~20m 파운드면 핵심 선수 급을 사올 수 있었고[11] 스타 플레이어를 잡기 위해선 10에서 15만 파운드의 주급이면 충분했지만[12], 이제는 핵심 선수를 사기 위해서는 30m 파운드는 기본으로 깔고 시작해야 하며 스타에게 20만 파운드의 주급은 기본이다. 긴축 재정으로 인해 머니 파워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아스날은 점점 우승에서 멀어져갔고 또한 전통강호 리버풀의 부활, 에버튼, 아스톤 빌라, 토트넘 홋스퍼 FC 등 중위권 클럽들의 약진으로 세리에 A 전성기의 7공주 시절처럼 프리미어 리그가 상향 평준화된다. 실제로 이 기간동안 아스날이 3위에 그쳤던 시즌들도 97-98시즌 우승을 달성할 때의 승점보다 많은 승점을 획득하기도 했다.

영광의 시절 수많은 슈퍼스타를 보유하던 클럽인 아스날은 이 시기, 긴축재정을 하기 시작한 에미레이츠 이후부터 살아남기 위하여 젊고 재능있는 선수를 키우는 데에 주력한다. 그래서 일명 유치원화가 심해졌다. 주장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중심으로 토마스 로시츠키, 마티유 플라미니,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로빈 반 페르시로 대표되는 새로운 벵거의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선전[13]을 거두나 막판에 항상 미끄러지며 우승에는 번번히 실패했다.

특히나 이 시기 벵거의 아스날에게 가장 아쉬웠던 시즌은 2007-08 시즌이었다. 로시츠키, 플라미니, 흘렙, 파브레가스가 이끄는 '황금 4중주' 로 불리는 미드필드 라인은 아름다운 패스플레이로 상대를 떨쳐냈고, 아스날은 3월 9일까지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2월 22일 버밍엄 시티 원정경기에서 스트라이커 에두아르도 다 실바가 부상으로 시즌아웃되며 3월부터 4월초까지 연이은 무승행진 끝에 3위로 추락하게 되었고, 결국 다시 반등하지 못하며 1위 맨유와 승점 4점, 2위 첼시와 승점 2점차로 3위에 그친다. 만약 에두아르도가 불의의 부상을 당하지만 않았더라면 정말로 우승할 수 있었던 시즌이었다.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AC 밀란을 격파했으나 8강에서 리버풀 FC를 상대로 1차전 홈에서 1-1로 무승부를 기록한 뒤 2차전에서 경기 막판 2-2 동점으로 준결승 진출을 눈앞에 두고도 집중력 부족으로 2실점하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08-09 시즌에는 플라미니와 흘렙, 질베르투가 한꺼번에 이적하고 로시츠키는 개점 휴업하며 아데바요르는 시즌 내내 이적설이 불거지고 주장이었던 갈라스는 부적절한 행동으로 주장직을 박탈당하는 어수선한 상황 속에 리그에서 기복이 심한 행보로 4위권에서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다행히 겨울 이적시장에서 영입한 '러시아 특급' 안드레이 아르샤빈의 맹활약으로 후반기 챔스로이드를 발동하며 아스톤 빌라의 DTD를 틈타 안정적으로 4위 탈환에 성공했고 FA컵과 챔피언스리그는 각각 준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FA컵은 천적 드록바의 맹활약에 첼시에게 1-2로 역전패를 당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호날두와 루니, 박지성에게 완전히 농락당하면서 맨유에 합계 1-4로 완패, 끝내 무관으로 마치고 말았다.

그렇게 5시즌 째 무관의 시절을 보내게 되었고, 우승이 아닌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하는 것에 전념하며 팀을 운영하면서 슬슬 서포터와 언론들도 인내심의 한계를 보이면서 비판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벵거는 레알 마드리드의 오퍼를 거절하면서 다시 아스날과 계약을 체결했다.

09-10 시즌 다시 아데바요르, 콜로 투레 등 주축 선수를 이적시키면서, 큰 비판에 시달리며 몰락의 우려를 샀지만 화끈한 공격 축구를 통해 우려를 불식시키며 리그 순위 2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리그 3위로 시즌을 마쳤다. 주포인 반 페르시는 중초반에 시즌아웃되었고, 세스크의 백업요원인 아론 램지는 스토크 시티전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했다.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시즌 내내 잔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역시 탈락했다. 8강에서 FC 바르셀로나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1차전에서는 바르셀로나에게 70분 동안 고전하다가 바르셀로나가 체력 고갈로 방전되자 월콧을 투입, 20분동안 2골을 넣으며 극적인 동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2차전에서는 뒤집지는 못했다. 제 아무리 메시라도 경험해보지 못한 수비에 막힐 것이라며 호언장담하던 벤트너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선제골을 넣으나, 그 때부터 메시의 매직쇼가 발동한 덕분에 아스날은 4:1로 대패를 당했다.

10-11 시즌도 첼시의 몰락과 빅4의 붕괴 와중에서도 리그에서 꾸준히 순항하며 리그 선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바싹 추격했다. 이후 칼링컵 결승 진출, FA컵 8강 진출, 챔스 16강 1차전에서 철천지 원수 바르셀로나를 만나 2 : 1로 작년의 패배를 설욕하며 역전승을 거두어 우승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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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링컵 결승에서는 버밍엄 시티 FC에게 2:1로 충격패를 당하면서 우승에 실패하더니, 캄 노우에서 벌어진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은 스코어 3:1, 슈팅 수 0이라는 기록적인 참패를 당하면서 합산 스코어 3:4로 또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리고 FA컵 8강에서도 1.5군이 나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2:0으로 패하며 2주일도 안되는 동안 3번의 토너먼트에서 모조리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리그에서도 항상 그렇듯 페이스가 떨어지고 4등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1.3. 빅 네임 영입, 무관을 끊어내다

2013-14 시즌 전 별다른 영입이 없던 벵거는 당시 구단 최고 이적료로 레알 마드리드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플레이메이커 메수트 외질을 5,000만 유로에 영입하며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도모한다. 시즌 전반기 까지 리그 선두를 달리던 아스날은 아론 램지 등의 부상으로 선두에서 미끄러졌다. 거기다가 2014년 3월 22일에 펼쳐진 첼시와의 경기는 아르센 벵거가 아스날 감독으로서 치르는 1,000번째 경기였고, 상대가 주제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첼시라서 굉장히 의미있는 경기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처참하게 깨졌다. 그것도 0:6으로 져버렸다.[14]

그 뒤 스완지 시티, 맨시티에게 연이어 비기더니만 33차전 에버튼 원정에서 0:3으로 지면서 FA컵에서 4:1로 이긴 에버튼에게 제대로 설욕당했다. 이 패배로 이젠 리그 4강 자리조차 에버튼에게 추격당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권도 물 건너갈 위기에 처했다. 리그 우승은 커녕 리그 4강 자리도 위태롭게 지키고, 리그컵과 챔피언스 리그도 이미 탈락했고 이제 남은 건 FA컵 우승 뿐. 4강에서 2부리그 위건 애슬레틱과 총력을 다해야 할 형편에 처했으며 만약 위건에게 덜미를 잡힌다면 아스날 감독으로 입지가 불투명해진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그리고 벌어진 준결승전에서 양팀은 총력을 다해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서 아스날은 4-2로 이겨 9년 만에 결승으로 진출했다. 여기서 우승한다면 맨유와 더불어 11번째 최다 공동 우승을 쌓게 되며, 벵거 감독이 맡은 뒤로 5번째 우승이다.

맨유의 퍼거슨이 은퇴하고 에버튼의 모예스가 팀을 옮기면서 졸지에 가장 외로운 장수감독이 되었다. 2014년 4월 23일 기준으로 감독생활 6408일을 맞았다. 2위는 뉴캐슬의 파듀인데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다. 파듀, 앨러다이스, 로저스, 램버트, 브루스, 포체티노, 휴즈, 무리뉴, 페예그리니, 마르티네즈, 포옛, 풀리스의 각 팀 재임기간을 합한 것보다 벵거감독의 재임기간이 10일 더 많다. 결국 리그는 4위로 마쳤고, 2014년 5월 18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FA컵에서 헐 시티에게 먼저 2골을 실점하며 위기에 몰렸지만 끝끝내 동점을 만들어내며 연장전에 돌입, 연장 후반에 아론 램지가 결승골을 넣으며 벵거에게 9년 만의 우승컵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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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지긋지긋한 무관을 끊어내다

이후 2014년 5월 30일, 구단과 3년 재계약하여 16-17 시즌까지 아스날을 계속 지휘하게 되었다. 2014-15 시즌에는 알렉시스 산체스FC 바르셀로나로부터 영입하고 프란시스 코클랭의 포텐이 터지면서 FA 컵 2연패와 리그 3위를 이룩했다.

1.4. 2015-16 시즌: 11년만의 준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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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천적을 꺾다

15-16 시즌엔 공인 천적인 주제 무리뉴를 꺾고 FA 커뮤니티 실드 2연패를 이뤄냈다. 이제 무관의 제왕이란 말은 옛 말이 되었다. 한편 15-16 시즌에도 또다시 미끄러질 위기에 처하자 일부 구너 팬들 사이에서는 이제 벵거와 이별하고 새로운 감독을 맞아 변화할 때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듯 했으나 38R까지의 혈전에서 아스톤 빌라올리비에 지루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4:0으로 박살내고 토트넘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 5:1로 완패하며 리그 최종순위 2위로 마무리, 다음 시즌에도 벵거의 아스날을 계속 볼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이 점쳐졌다.

하지만 이 시즌 이후 수많은 아스날 팬들은 빅4가 전부 무너진 상황에서 리그 준우승으로 끝냈다는 것에 실망했고, 벵거의 지도력과 신임 역시 이 시즌 이후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1.5. 과학이 깨지다, 그의 마지막

1.5.1. 2016-17 시즌: 회광반조와 천천히 몰락하는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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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고집과 잘못된 판단으로 추락하다

16-17 시즌 어느 때보다 팬들의 사퇴 압력이 높아지고 있지만 운영진은 벵거에 대한 지지를 보내고 있고 2년 재계약을 제시하였다.

2017년 4월 23일에 홈에서 벌어진 FA컵 준결승전에는 펩 과르디올라 체제의 맨체스터 시티와 접전을 벌였다. 이 때 벵거는 자신의 철학이 담겨 있는 패스 위주의 축구 대신에 포메이션과 이에 맞는 전술로 변화를 주었다. 이러한 변화는 경기를 연장전까지 돌입하게 만들었고 연장 전반전에는 팀 내의 승리 청부사 알렉시스 산체스가 극적인 역전골을 만들어내어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리그 38라운드 에버튼 전에서 결국 5위를 확정지으며 유로파 리그로 나가 떨어졌으며, 이 경기에서 로랑 코시엘니가 정신나간 반칙으로 퇴장당하며 FA로부터 추가 징계까지 받아버려서 FA컵 결승전에는 나갈 수도 없게 되었다. 거기다 결승전 상대가 첼시 FC. 여러모로 벵거의 아스날 사상 최악의 시즌이라 할 수 있었겠지만, 2:1 승리를 거두면서 감독으로서 FA컵 개인 최다 수상을 경신했다.

그 동안 농담삼아 얘기하던 4-16 마저 무너지며, 리그 5위를 기록해 다음 시즌 챔스티켓을 놓쳤다. 챔스에서는 16강 1, 2차전 도합 바이에른 뮌헨에게 10-2라는 굴욕적인 스코어로 탈락했다. 그나마 FA컵에선 첼시를 2-1로 꺾고 최다 우승 기록을 세우면서 체면치레를 했지만, 챔스권 탈락으로 인해 다음 시즌 스쿼드를 안정적으로 꾸릴지 미지수다.

무엇보다, 벵거가 너무나 늦게 전술 변경을 택한 것이 아쉬웠다. 스리백 전환 후 리그 + FA컵 10경기 9승 1패라는 굉장한 성과를 올렸고, 시즌 내내 욕을 먹던 대부분의 선수들이 살아나는 결과였으니 말이다. 챔스를 나가지 못하게 된 이상 현재의 선수단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아야할 것이다. 특히 팀의 핵심선수인 알렉시스 산체스의 경우 많은 팀에게서 주목을 받고 있는 관계로 산체스를 어떻게 잔류시킬 것인가 혹은 이적하면 그 공백을 누구로 메꿀 것인지가 중요하다.

시즌이 끝나고 나서 결정될 것이라고 여겨지는 큰 계약 중 하나인 벵거 감독의 재계약에 대해서는 FA컵 결승, 스리백 전환 이후에 성적 등으로 부정적에서 다시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이다. 리그의 성적표때문에 강하게 퇴진을 외치던 팬들도 있었지만 FA컵 결승을 기점으로 재계약 해도 되지 않냐는 의견들도 힘을 얻고 있다.

벵거라는 존재가 아스날의 혁신을 막고 있는가는 판단에 따라 다르지만, 적절한 대안 없이 장기집권한 감독이 물러났을 때의 위험성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본 바 있기 때문에 조심하게 접근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FA컵 결승골을 넣은 램지의 경우 인터뷰를 통해 벵거의 잔류를 지지했으며 이는 선수단의 감독에 대한 지지도가 높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언론들도 2년 재계약을 예측하는 상황에서 2017-18 시즌도 아스날이 벵거 감독 체제로 갈 것인지가 주목된다. 결국 2017년 5월 31일, 아스날과의 2년 재계약이 공식 발표되었다.

1.5.2. 2017-18 시즌

하지만 17-18 시즌에도 벵거가 보여주는 모습은 16-17시즌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유로파 리그는 커녕 리그 10위 안에 들 수 있을지 장담 할 수 없는 수준. 명장도 평범한 감독도 아닌 졸장 수준의 전술, 선수단 관리, 언론 플레이, 벵거 특유의 고집 등 박수칠 때 떠나지 않은 감독의 몰락인 셈이다.

프리미어 리그 1라운드 레스터 시티 전에는 무스타피, 메르테자커의 부상, 코시엘니의 징계로 센터백이 롭 홀딩 말고는 없었고, 몬레알, 콜리시냑을 센터백으로 내세웠다. 역습을 즐겨 하는 레스터이니만큼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됐고, 롭 홀딩은 계속된 실수로 3실점 중 2실점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올리비에 지루, 아론 램지의 활약으로 4:3으로 개막전 승리를 해냈다. 수비의 롭 홀딩이 뒷 공간을 활용할 줄 아는 팀에게 취약하다는 걸 보여준 경기었다.

그 다음 라운드인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에서는 아스날 역대 최고 점유율인 77%대 23%라는 거의 8대 2에 가까운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헤세 로드리게스에게 역습 한 방을 허용했고, 기회는 여러 번 나왔지만 결국 득점에 실패하며 0:1 스코어로 패배하고 말았다. 주심 판정에 대해 '운이 없었다'는 매번 나오는 변명은 덤.

그리고 진짜 문제는 그 다음 경기인 리그 3라운드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터졌다. 라카제트 대신 대니 웰벡, 무스타피 대신 롭 홀딩이라는 약팀을 상대할 때나 쓸법한 자원들을 주전으로 내보냈다. 레스터보다 훨씬 강력한 역습 전술을 사용하는 리버풀이 상대인만큼 벵거의 기용이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레스터 시티에게 롭 홀딩이 약점을 노출한건 불과 2주 전이다.

경기가 시작되고 역시나 롭 홀딩은 계속해서 수비 불안, 뒷 공간 노출을 하게되고 전반에만 2:0, 후반에는 4:0 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패배하고 말았다. 심지어 아스날의 유효 슈팅은 0개. 리버풀과의 경기는 한 명의 졸장 수준의 감독이 팀을 어떻게 망쳐놓을 수 있는지 잘 보여 준 경기였다.

홀딩은 계속해서 실수를 저질렀지만 벵거는 교체하지 않았고, 4실점 중 3실점에 직접 관여하며 평점 0점 받을 만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롭 홀딩은 빌드업에 능하지만 수비에서의 실수가 잦은 선수인만큼, 스토크 시티 같은 팀을 상대할 때 좋은 선수다. 이런 홀딩을 리버풀과의 경기에 선발로 내보낸건 벵거의 잘못이다. 그리고 공격진에서 계속해서 기회를 날린 대니 웰벡은 지난 2경기에서도 계속 찬스를 놓치는 모습을 보여준 선수이지만, 벵거는 90분 동안 웰벡을 뛰게했고 오히려 공격진에서 찬스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알렉시스 산체스, 메수트 외질을 교체하는 이해 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선수의 잘못이 아닌 벵거 본인이 100% 혼자 잘못하고, 혼자 망하게 한 경기다.

이렇게 몰락하고 고집만 남은 졸장의 모습을 본 아스날의 레전드이자 벵거의 제자인 티에리 앙리"더 이상 벵거의 아스날을 좋아할 수 없을 것 같다."라는 발언을 할 정도로 벵거의 몰락은 자명한 사실이다.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에 급급한 크뢴케[15] 와 아스날의 보드진, 그리고 본인의 생각을 고집하는 아르센 벵거는 아스날에 독이 될 뿐이다. 팀이 부진하고 비판이 쏟아지지만 늘 그렇듯 "어쩔 수 없었다.", "운이 없었다."는 식의 변명으로만 비판에 대응하고 확실한 변화는 하지 않는다. 지금 벵거와 아스날의 상황은 7년 전 리버풀의 몰락과 똑같은 상황이다.

10월 15일 왓포드 FC와의 경기에서도 위와 똑같은 선수 선택에서의 미스를 보여, 왓포드에게 역전패 당하고 말았다. 메르테사커의 선제골로 여유있게 운영하던 경기였지만 왓포드의 트로이 디니가 투입된 이후 동점골을 실점했고 계속 뒷공간이 공략당하는 위기를 맞았다. 이 때 벵거는 약간의 부상이 있던 로랑 코시엘니를 빼고 위에서부터 쭉 언급된 뒷공간이 약점인 롭 홀딩을 투입했으며 투입 직후 실점, 역전패 하고 말았다.

사실 나이에 따른 노쇠화는 어쩔 수 없는 요소다. 선수들의 전성기가 20대 초중반인 것 처럼 감독도 중장년이 전성기고 노년에 접어들면 그때의 기량이 안나오는 감독이 대부분이다. 70넘어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세계 최정상급 감독이었던 알렉스 퍼거슨이나 은퇴 후 위기에 빠진 뮌헨을 살리기 위해 70이 넘은 나이에 돌아온 후 뮌헨을 성공적으로 재구축한 유프 하인케스 같은 케이스는 감독계에서도 굉장히 드문 케이스다. 오트마어 히츠펠트, 파비오 카펠로, 조반니 트라파토니 등 모두 전성기때는 최고의 감독이었지만 말년까지 그 역량을 발휘하진 못했다.

그러나 2017년 후반부터 불안한 경기력이 가속화 됐고 2018년 들어서는 벵거의 의아한 교체 전술마저 악화되어 경기력이 그야말로 널뛰기를 뛰는 수준이 됐다. 아무리 주전이 없다지만 2부 리그에 불과한 노팅엄에게 압도당하며 FA컵에서 광탈했고 강등권 바로 위에서 허덕이던 본머스 원정에서 패하기 까지 했다. 1월 15일 기준으로 리그 4위와의 승점차가 8점으로 늘어나며 사실상 챔스 복귀의 길은 유로파 우승밖에 없어졌다. 물론 유로파만 우승한다면 모든 비난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시즌 소리를 들을 수야 있겠지만, 엉성하기 짝이 없는 현재의 아스날이 과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나폴리, 도르트문트 등을 넘어설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벵거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브리티쉬 코어'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시오 월콧이 18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떠나면서 벵거의 시대가 끝나감을 암시하고 있다. 그나마 아론 램지가 지난 시즌 후반기부턴 잘해주고 있고 잭 윌셔가 마침내 에이스로 올라서기 시작했으나, 키어런 깁스칼 젠킨슨은 완전히 망했고 체임벌린은 포텐이 터지는 기미가 보이자마자 리버풀로 이적해버렸다. 수비진의 홀딩과 체임버스는 선배들의 전례나 현재의 폼을 봤을때 대체 얼마나 경험치를 먹여야 터질지 감도 안잡힌다. 브리티쉬 코어들에게 경험을 쌓게해 주려다 말아먹은 수많은 경기들, 앞으로 던질 경기들을 생각하면 처참한 실패라고 봐도 무방하다.

2018년 3월 초, 이젠 리그 4위와 승점차는 10점차로 이번 시즌도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어려워 보인다. 거기에 덤으로 유로파 리그조차도 16강에서 AC 밀란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와 만나게 되었다. 리그컵에서는 결승에 올라갔으나 맨시티에게 0-3으로 패하며 준우승했고, 며칠 뒤에 가진 맨시티와 리그 28라운드도 또 0-3으로 패했고, 29라운드 브라이튼전도 2-1로 패했다.

게다가 선수들이 벵거에게 신뢰를 잃었고 자신들간의 미팅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나, 보드진마저 벵거의 사임을 바란다는 등의 기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안타깝게도 벵거와 아스날은 새드엔딩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인다.

하지만 이 경기들 이후로는 공식전(유로파 리그, 리그) 5연승을 달리며 분위기를 다시 올리고 있다. 허나 4월 현재 리그 순위 6위, 4위 토트넘과 승점 13점 차로 리그에서 챔스권을 획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벵거가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한다면 벵거 뿐만 아니라 아스날의 미래도 상당히 험난해질 가능성이 높다.

1.5.3.아스날 FC에서의 여정, 막을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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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거의 아스날 22년, MERCI ARSENE

결국 2018년 4월 20일, 벵거가 17-18 시즌을 끝으로 아스날을 떠난다는 소식이 공식 발표되었다.

사임 소식과 함께 올라온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심 및 클럽과의 논의를 계속해온 끝에, 저는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수많은 시간 동안 이 팀에서 일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데 대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헌신을 다하여, 성실하게 이 팀을 감독했습니다.
이 팀을 이처럼 특별하게 만들어 준 선수들, 스태프들, 디렉터들, 그리고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이 팀이 더욱 성공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팬들이 팀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기를 바랍니다.
아스날을 사랑하시는 여러분, 팀의 가치를 지켜주세요.
나의 사랑 아스날 평생 응원하겠다(My love and support for ever)
-아르센 벵거-
사임 발표 이후 치뤄진 유로파리그 4강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1차전 1-1, 2차전에서 1-0으로 패하며 합계 2:1로 4강에서 탈락하였고, 벵거의 아스날 마지막 시즌은 무관으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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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리와의 에미레이츠 마지막 홈경기
6위 결정전이라 볼 수 있는 37R 번리전에서 5-0 대승을 거두며 마지막 아스날 감독으로서 홈경기를 마쳤다.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패하며 원정 징크스는 계속 이어졌으나, 마지막 경기인 허더즈필드전에서 1-0 승리, 아스날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마치며 시즌을 6위로 마무리했다.

2. 사임 이후

그 이후 벵거는 4년 7개월 동안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돌아오지 않았다. 구단과 껄끄럽게 헤어진 것도 영향일 것이고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찾아오지 않는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다 2022년 12월 27일, 아스날의 2022년 마지막 홈경기였던 17R 웨스트햄전에서 에미레이츠로 돌아왔다. 현재 아스날을 지휘하고 있는 감독은 벵거가 아스날 시절 지도자로서의 가능성을 진작에 알아봤던 제자 미켈 아르테타였고, 아르테타 또한 벵거의 방문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선수들에게는 비밀로 했다. 하지만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의 카메라가 벵거를 비추고 팬들이 벵거를 연호하는 등 경기 도중에 벵거가 와 있음을 선수들이 눈치챈 것으로 보인다. 경기는 아스날의 3:1 역전승으로 마무리되었고 아르테타 감독, 선수들과 팬들은 오랜만에 경기장을 찾은 벵거에게 승리를 바쳤다.
그가 아주 적절한 순간에 방문해주셨습니다. 오늘 경기는 그가 받을 만한 수준의 경기력이었습니다.
선수들에게는 미리 알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특별한 날이고,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경기장을 보면서 우리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느끼셨을 겁니다. 그는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저는 이제 그를 보러 갈 겁니다. 드레싱 룸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좋겠어요.
- 미켈 아르테타

이후 시간이 흘러 2023년 7월 5일, 아르센 벵거의 동상이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 세워질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동상의 공개일은 8월 3일이다.

3. 기록

통산 22시즌 1235경기 707승 280무 248패 2,298골 승률 57.25%
Premier league - 3회 우승 (1997-98, 2001-02, 2003-04)
잉글리쉬 FA컵 - 7회 우승 (1998, 2002, 2003, 2005, 2014, 2015, 2017)
FA 커뮤니티 실드 - 7회 우승 (1998, 1999, 2002, 2004, 2014, 2015, 2017)
EFL컵 - 3회 준우승 (2006-07, 2010-11, 2017-18)
UEFA 챔피언스 리그 - 1회 준우승 (2005-06)
UEFA 컵(現 UEFA 유로파 리그) - 1회 준우승 (1999-00)
UEFA 챔피언스 리그 20시즌 연속 진출
리그 무패 우승 (2003-04)

[1] 벵거가 부임 이후 하이버리 스타디움에서 아스날 매거진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잡지에는 당시 영국에서 알려지지 않은 벵거를 소개하고 그를 옹호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2] 이 기록은 훗날 2005년 첼시 FC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프리미어리그 최소 실점 기록이었다.[3] 그리고 벵거의 지독한 유럽 무대와의 악연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프리미어 리그 무패 우승을 기록하던 당시에도 챔피언스 리그와는 인연이 없었고, 비에라를 팔고 리빌딩한 2005-06 시즌에도 레만의 퇴장이 겹치는 등 불운 속에서 준우승에 그쳤다.[4] 그 중 리즈와의 경기는 오심으로 얼룩진 경기였는데, 리즈의 두 골이 명백한 핸드볼과 오프사이드 골로 아스날 입장에선 두 골을 오심으로 내리 강탈맞았다.[5] 유럽 4대 리그 최초의 무패 우승은 1991-92 시즌의 AC 밀란이며, 빅리그 3번째 무패 우승은 2011-12 시즌 유벤투스 FC다. 또한 2011-12시즌 유벤투스의 무패 우승은 상당히 드라마틱했는데, 전적이 23승 15무였다. 그래서 이 엄청난 무승부 경기 때문에 무패 우승팀 답지 않게 시즌 막판까지도 우승 경쟁이 치열했다. 말 그대로 무패 준우승을 할 뻔했던 시즌. 참고로 세리에 A에서는 상술한 밀란의 무패 우승 이전에 AC 페루자 칼초가 먼저 무패 준우승을 달성한 진기록이 있다.[6] 참고로 잉글랜드 축구 리그 최초의 무패 우승은 1888-89 시즌의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이며, 1977-78시즌의 노팅엄 포레스트 FC는 42경기 무패 기록을 달성하며 우승했지만 두 시즌에 걸친 무패 행진으로 인해 3패를 기록한 상태로 우승을 했다.[7] 당시 무적 포스의 아스날도 맨유를 제대로 두들기지는 못하였는데, 이것은 두 팀 팬들에게 영원한 떡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후로도 아스날은 맨유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 아스날 팬들은 이 점을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으로 이 시즌 전까지는 아스날이 맨유에 2000-01시즌에 당한 1:6패배 정도를 제외하면 압도적으로 우세했으며, 심지어 맨유가 트레블을 달성한 1998-99 시즌에는 아스날이 맨유를 3:0으로 두들겨패기도 했다.[8]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이 시즌 아스날은 챔피언스 리그 역사에 남는 대기록을 작성하는데, 바로 챔피언스 리그 10경기 연속 무실점(995분)이다. 챔피언스 리그의 수준을 감안했을 때 이 기록을 깨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9] 벵거가 경기장 건설 비용 대출의 담보였다.[10] 훗날 벵거는 아스날을 떠나서 다른 경험과 커리어를 쌓지 않았던 것이 후회된다는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11] 실제로 아스날 클럽 레코드가 17m 파운드의 레예스였다.[12] 애슐리 콜이 아스날을 버린 이유가 10만 파운드 주급을 달라는 요구였고, 당시 잉글랜드에서 10만 파운드를 줄 수 있는 팀은 단 하나, 로만의 첼시였다.[13] 로시츠키-플라미니-파브레가스-흘렙은 황금 4중주라고 불렸다.[14] 이때 그 유명한 대리퇴장 사건이 터졌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의 골대 앞 핸들링을 주심이 봤는데 정작 레드카드를 받은건 체임벌린과 비슷하게 생긴 키어런 깁스였다. 첼시 선수들과 아스날 선수들, 체임벌린은 깁스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체임벌린 본인이 했다고 자백했으나 번복은 없었다. 근데 정작 후에 FA에선 공이 골대쪽을 향하긴했지만 어차피 안들어갈 골이였기에 퇴장감이 아니었을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문제로 축구팬들은 체임벌린이 자백했을때 또 모습이 비슷한 월콧이랑 헷갈려서 "입 닥쳐 월콧"이라 했을거라며 주심의 안면인식 문제를 깠다.[15] 다만 몇년 뒤에 구단의 지분을 모두 매입한 뒤로는 조쉬 크뢴케를 필두로 크뢴케 일가의 헌신적인 지원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고려했을 때, 당시 크뢴케 일가가 본인들의 이익만을 챙기려고 했다기보다는, 좀 더 확실한 투자 타이밍을 잡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