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4:45:17

마티유 플라미니

파일:log333o.svg
GF Biochemical CEO
파일:Mathieu Flamini.jpg
<colbgcolor=#013ADF> 이름 마티외 플라미니
Mathieu Flamini
본명 마티외 피에르 플라미니
Mathieu Pierre Flamini
출생 1984년 3월 7일 ([age(1984-03-07)]세)
프랑스 마르세유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 68kg
직업 축구선수(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풀백 / 은퇴)
CEO
소속 <colbgcolor=#013ADF> 선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03~2004)
아스날 FC (2004~2008)
AC 밀란 (2008~2013)
아스날 FC (2013~2016)
크리스탈 팰리스 FC (2016~2017)
헤타페 CF (2018~2019)
CEO GF Biochemicals 공동 CEO (2008~ )
국가대표 3경기 (프랑스 / 2007~2008)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2.3. 플레이 스타일
3. 축구 이외의 삶, CEO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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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국적의 前 축구 선수.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마티유 플라미니/클럽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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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국가대표 경력

2007년 11월 16일 모로코와의 친선경기에서 교체로 투입되며 A매치에 데뷔하였다.

2.3. 플레이 스타일

주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며 양측 풀백도 소화 가능. 하지만 본인은 풀백으로 뛰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벵거의 만류에도 아스날을 떠난 AC밀란으로 이적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자신이 풀백으로 기용되었던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어서였을 정도니.

플라미니의 가장 큰 장점이자 유일한 장점은 바로 활동량이었다. 중앙 미드필더로서 활동량이 장점이라고 서술되는 선수들은 차고 넘치게 많고 엄밀히 말해 그 포지션에선 기본적인 소양 중 하나이기에, 활동량이 장점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다소 상투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플라미니는 정말로 활동량이 많은 선수였다. 요컨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아 보이는 수준으로 잘 한 것이다.

흔히 활동량의 대명사격인 선수들을 볼 때, 매우 부지런하면서도 알짜배기로 영리한 움직임들만을 가져가는 선수들의 활동량은 대략 11km~12km였다. 그리고 플라미니는 보통 13km씩 뛰어다녔다. 물론 거의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에 불순물없이 의미와 효율성이 있었던 다른선수들의 움직임에 비해, 플라미니는 그저 뛰고 또 뛰었을 뿐이다.

그는 발이 빠르다거나 몸싸움이 뛰어나다거나 하는 신체적인 능력은 평범했으나, 그와 별개로 태도에서부터 나오는 '기동력', 소위 말해 '빨빨거리는 태도'가 뛰어났다. 또한 가투소 못지 않은 터프가이였으며, 경기 중에서도 내내 잔소리하고 고함치고 중얼중얼 욕을 달고 살았는데 그게 동료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축구는 전쟁이라는 격언처럼, 매우 진지한 태도로 자신이 전쟁터에 있는 군인인 것처럼 생사를 걸고 싸우는 듯이 격렬했다. 다만 가투소와는 다르게 수비적으로는 그렇게 거친 스킬을 보여주진 않았으며 오히려 무색무취했다. 재밌게도 훗날 이 둘은 AC 밀란에서 함께 뛰게 된다.

또한 그는 선입견과는 달리 빅리그 팀들인 아스날 FCAC 밀란에서 자리 잡을 정도의 기본기는 갖추고 있었으며, 중거리 슛 골들도 기록하는 등 의외로 전성기 당시엔 안정감이 있었다. 30세 전후로 말년이 되어서야 신체능력과 체력이 떨어지면서부터 가진 밑천이 드러나자 잔실수가 늘어났다. 그의 경기 중 거의 모든 흥망성쇠는 체력과 활동량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 그 활동량과 싸움꾼 같은 투지, 자기 몸을 갈아 넣다시피하는 헌신성을 가지고서 아스날 FC에서 뛰었는데 20살의 나이 때부터 이미 패트릭 비에이라, 질베르투 실바, 에두 가스파르 등을 대체하며 경기 출전 기회를 얻어 갔다.

04-05시즌부터 주로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짝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는데, 갖고 있는 무기나 장단점이 완전히 상극이었기에 둘을 붙여 놓으면 유달리 그 시너지가 엄청 났던 것이다. 당시 아스날은 늘 4-4-2에 2미들 체제였는데, 속히 말해 플라미니는 볼 찰 줄 모르고, 파브레가스는 보디가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플라미니는 포지션 개념에 있어선 다소 특이한 케이스였는데, 그 어떤 규격과 역할에도 포함시키기 애매한 선수였으며, 엄밀히 말해 '왜 이런 선수가 이렇게 높은 수준의 리그에서 뛸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던질 정도로 자질을 의심케 하는 선수였다. 그는 전성기일 때도 흡사 '초보자'같을 때가 있었다. 그는 흔히 수비적인 영역의 선수 취급을 받았지만 본질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적은 없으며, 단독으로 볼란테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더더욱 없었다. 그것이 아스날 FC 시절 4-5-1 체제에선 그가 배척받았던 이유였다. 또한 본질적으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도 아니었다. 공격 진영에서 할 줄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프리미어리그 동시대의 클로드 마켈렐레 같은 홀딩 미드필더도 아니고,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같은 볼 위닝 미드필더도 아니었으며, 마이클 에시엔같은 박스 투 박스 유형도 아니었다. 똑똑하지도 않고, 피지컬도 평범하고, 공수에 있어서 모든 기술들은 그저 그랬음에도 딱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커버력이었다. 그는 역할이 분명히 정해진 3미들 체제에선 쓸모가 없는 선수였으나 놀랍게도 2미들 체제에서 그를 기용하면 3미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해주는 초인적인 커버력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걸 어떤 식으로 제공했느냐하면 포지셔닝에 대한 감각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으나 경기를 읽는 집중력은 좋았기 때문에 자신의 편과 상대 편이 언제 볼을 잃는지, 즉 언제 서로의 공수가 전환이 되는지를 잘 파악했다. 공수가 전환이 되는 시점에 최대한 부지런히 자신의 후방과 상대 진영을 구간 반복하듯이 계속 왔다 갔다 하며 매 순간 아군에게 수적 우위를 조금이라도 제공하는 노력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것은 흡사 인터벌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이 그의 말도 안되는 활동량의 정체였다.[1]

수비 스킬이 특출난 것은 아니었으나 아군이 수비로 전환될 때 전방에서 압박하려고 서 있기 보단 먼저 수비 지역으로 내려 가서 수비 숫자를 늘리며 지연 움직임을 가져가고, 공격으로 전환되고 볼이 상대 지역으로 넘어갈 땐 패스 루트에 참여하기 보다는 몸은 상하 좌우를 안가리고 이 사람 저 사람 옆에서 더미 움직임을 가져가 주면서도, 태도 자체는 계속 빨빨거리며 안절부절한 채로 '이쪽으로 넘어오기만 해 봐.'하며 상대를 속히 말해 담가버릴 태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경기 데이터 상으로 그의 발자취는 분명 전방위적으로 찍혀 있지만 공수 밸런스가 갖춰진 능동적이고 계획된 움직임이 아닌 그저 본능적인 움직임이며, 주로 자신의 앞에 있던 유약하지만 창조적인 선수들이 자유롭게 피치 위를 유랑하도록 애스코트해주는 보디가드 역할을 자처했던 것이다.

전성기였던 아스날 시절엔 지표상으론 이 선수가 특별한 선수라고 보기 힘들었음에도, 젊고 창의적인 미드필더들을 중심으로 개편해가던 그들의 당시 경기 정신에 있어선 꼭 필요했던 타입의 선수였다. 질베르투 실바는 부지런한 선수이긴 했으나 플라미니처럼 그렇게 다면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는 선수가 아니었고, 플라미니처럼 완고하게 체력이나 활동량만을 내세우기엔 그는 너무 똑똑했다. 그는 '보디가드' 유형의 선수라기 보단 스스로 중원에서 거목처럼 단단히 중심을 잡아주는 묵직한 타입이었다. 따라서 그가 출전할 때 파브레가스는 너무 높이 올라가지 않고 라인을 맞췄으며, 필요에 따라선 아예 홀딩 미드필더로 기용되는 선수였다. 다른 모든 선수들도 사정이 비슷했다. 파브레가스가 중심이 된 팀이었기에 오로지 파브레가스와의 궁합이 얼마나 더 잘 맞느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라사나 디아라는 그 출중한 기량을 가지고도 플라미니에게 밀려 중용 받지 못하고 토사구팽 당했는데, 그는 갖고 있는 능력이 워낙 많고 대부분의 능력에 있어서 플라미니보다 몇 단계 위인 선수였다. 그럼에도 중원에서 주도적으로 뛰어야만 하는 선수였기에 포츠머스 FC로 이적했고,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인 끝에 무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된다. 아부 디아비는 애초에 수비적으로 부족했으며, 데닐손은 전체적으로 아스날에서 뛸 기량이 없는 선수였고, 알렉스 송은 수비 능력이 좋고 점차 성장하면서 좋은 선수가 되어 갔으나 다소 중구난방으로 방향성이 없이 성장하면서 이상한 스타일을 갖게 된다.

이후 플라미니는 AC 밀란으로 이적하면서 플레이스타일이 조금 더 다듬어지긴 하였으나, 플레이에 있어서 다소간 방향성을 상실했으며, 그 자랑하던 활동량이 구체적으로 어떤 순간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무미건조해졌다. 물론 젠나로 가투소의 노쇠화와 잦은 부상으로 인해 그의 역할을 직접적으로 계승하고 대체하는 의미는 있었으나, 자유롭고 동선이 정해지지 않은 축구를 하던 아스날 FC와 다르게 좀 더 전술적인 AC 밀란에선 모두가 특정 지역을 배분 받는 전술적인 경기 속에서 플라미니는 오히려 수갑을 찬 것과 같은 모습으로 영향력이 떨어져 갔다. 아스날에서의 일당백이 AC 밀란에선 그저 머릿수 이상의 선수가 아니었고, 수비적으로는 더 똑똑하게 수비하던 마시모 암브로시니라던지, 같이 뛰진 못했지만 정석적인 이탈리안 박스 투 박스 움직임을 보여주어 왔던 크리스티안 브로키의 발자취도 있었다. 이후 무난한 활약을 보이며 밀란 생활을 하다가 말년이 되었을 쯤 다시 아스날 FC로 돌아 왔을 때, 그는 평범하디 평범한 선수가 되어 있었다. 그 이후 은퇴할 때까지 두 번 다시 전성기적 활동량을 낼 수 없었다.

그는 다분히 본능적으로 플레이하는 선수였으며 축구 선수로서 오히려 재능이 부족한 편이었고, 최첨단의 고도화 된 전술적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는 선수였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발 담그고 성장한 아르센 벵거아스날 FC는 선수들을 믿어주고 함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팀이었으나, 시대의 첨단을 달리는 고도의 훈련에는 집착하지 않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러한 팀에 있었다면 빛을 보기 힘들었을 유형의 선수였다. 또한 중앙 미드필더로서 쓰임새가 매우 불안정하고 확실하지 않은 선수였으나, 그는 축구 선수로서 매우 강한 투쟁심과 멘탈리티를 갖고 팀에 없어선 안 될 에너지와 헌신을 제공했다. 그 에너지가 육안으로 보이고 마음으로 전해질 정도로 강렬했던 선수로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3. 축구 이외의 삶, CEO

2015년 11월 중순쯤,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축구선수로서의 플라미니가 아닌, 한 거대 기업의 공동 창업자 플라미니의 삶도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8년 경, 플라미니가 아스날에서 AC 밀란으로 이적하던 해에 파스칼 그라나타와 함께 GF Biochemical[2]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창업할 당시에 굉장히 많은 자금이 들어갔기에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난 7년 간 꾸준한 성장을 거쳐 현재는 400여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이 기업은 고갈되어 가는 석유를 대체할 자원으로 유기산의 일종인 Levulinic acid(레불린 산)을 이용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높은 가치를 가진 기업으로 촉망받고 있다. 이 시장의 잠재적 성장 가능성은 약 200억 파운드 (약 36조원) 에 달한다고 한다. #

4. 여담

  • 아스날 선배인 솔 캠벨과 마찬가지로 소속팀에 이적료를 가져다 준 적이 한번도 없다. 항상 FA로 이적했다.
  • 국내에서는 플라미니라서 '민희'라고도 불렸다.
  • 아버지가 이탈리아인이다. 어머니는 프랑스인.

[1] 재밌게도 이것은 풀백에게 가장 중요한 소양 중 하나인데, 재밌게도 플라미니는 한동안 오른발잡이임에도 왼쪽 풀백 자리를 땜빵으로 뛰면서 높른 평가를 받았다. 본인은 풀백을 보는 것을 끔찍하게도 싫어하면서도 놀라운 재능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사람들은 그가 애초에 축구선수로서 포지션 진로를 잘못 잡은 게 아니냐는 의아함을 드러냈다. 따라서 플라미니를 볼 때 마치 '중원에서 뛰는 풀백' 같은 움직임이 있던 것이다. 현재의 인버티드 풀백과도 같은 그것이었다. 물론 칸셀루처럼 플레이메이킹은 되지 않았지만.[2] G는 Granata의 G, F는 Flamini의 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