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38:28

홍명보/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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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K리그 드래프트 파동
2.1. LA 갤럭시 이적 관련 태업
3. 잦은 항명 및 태업 의혹4. 대표팀 코치 특혜 논란5. 브라질 월드컵 관련
5.1. K리그 선수 비하 발언
6. 러시아 월드컵 해설 위원 평가
6.1. 비판 의견6.2. 옹호 의견 및 재평가
7. 아마노 준 저격8. 국가대표팀 감독 재부임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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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인 홍명보의 비판점 및 논란을 정리한 문서.

2. K리그 드래프트 파동

홍명보는 이미 고려대 시절 1990 월드컵에 출전하면서 대표팀의 차후 10년을 책임질 핵심 선수로 떠올랐다. 이에 드래프트 판에 나올 경우 모든 팀의 관심이 집중될 대어였으나 홍명보는 황선홍과 더불어 선수 본인이 가고 싶은 팀에 입단할 수 없다는 점과 계약금과 연봉이 타 종목에 비해 낮게 책정되었다며 드래프트 거부 선언을 했다. 그리고 포항제철이 꼼수를 부려 산하 아마추어팀에 황선홍과 홍명보를 입단시킨 후 포항제철 소속 선수로 맞아들였다. 이는 격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동시에 아마추어팀 입단에서 3년이 지날 때까지 경기에 나올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황선홍과 홍명보를 포항이 해외 유학을 보내기로 발표하며 일반 팬들에게까지 파문이 확산되었다. 이후 황선홍은 해외 유학을 떠났고 홍명보는 상무에 입대한다.

그러나 여론과 타 구단의 반발을 이기지 못한 포항은 홍명보의 상무 전역 후 드래프트 시장에 내놓게 되었고 홍명보는 유공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나 홍명보는 이미 포항에게서 1억을 상회하는 돈을 받았기에 유공으로 가는 건 포항제철의 책임자들에게 있어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포항은 기존 포항 선수와 더불어 그해 드래프트 1, 2순위자들과 유공의 홍명보를 1:3 트레이드하며 홍명보를 데려오게 된다.

2.1. LA 갤럭시 이적 관련 태업

포항은 재입단한 지 6개월 남짓밖에 안 됐고 2002 월드컵 대표팀 4강 주역인 홍명보로 포항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싶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적은 생각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홍명보는 LA출신 재미교포 아내와 자녀 교육 때문에 포항 몰래 LA 갤럭시 간의 개인 협상을 끝마쳤다.[1] 포항은 뭔 소리냐는 반응으로 해왔 던 대로 홍명보의 이적 의사를 일축했으나 홍명보는 이에 백태클 퇴장으로 대표되는 태업으로 응수했으며[2], 장외에서는 언플 및 개인 팬클럽 등의 활발한 활동으로 대승적 차원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구단이 졸렬한 것처럼 보이게 압박했다. 결국 포항은 이적료로 100만 달러를 요구했는데 LA 갤럭시에서는 20만 달러밖에 주지 못한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결국 홍명보 본인이 파기 위약금을 물고 자유계약으로 이적했다. 나이를 감안해도 바로 6개월 전 월드컵에서 브론즈볼을 수상한 선수에게 20만 달러가 적당한 이적료는 아니었다.

이때 묘한 언플로 마치 포항은 홍명보를 공짜로 J리그에서 데려왔는데 돈장사한다고 욕먹었으나, 기실 홍명보의 이적에 공식 이적료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당시 가시와와 홍명보의 남은 계약기간 동안 홍명보가 받을 수 있는 연봉이 100만달러였고 포항이 이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이적이 발생했던 것이다. 즉 단 반시즌만 뛴 홍명보를 포항이 20만달러에 보내주면 포항은 자기 맘대로 이적 안 시켜준다고 태업질을 일삼으며 여론을 조종해 팀을 뒤흔든 선수를 6개월 동안 쓰기 위해 17억 [3] 이라는 당시에는 거대한 비용을 지불했어야 하는 꼴이 된 것이다.[4] 결국 포항과 홍명보가 협상하였는데 포항측에선 위약금으로 위에서 언급한 이유를 들어 100만 달러를 제시했지만 홍명보 측에서는 홍명보가 포항에서 받은 계약금+6개월치 연봉 63만달러와 LA측에서 제시한 이적료 20만 달러를 합쳐 위약금을 83만달러로 조정을 요청하여 포항이 이를 받아드려 갈등이 마무리 될수 있었다. 이적료 20만달러 외에 나머지 63만달러는 홍명보가 자부담 하게 되었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는 위약금만 물면 언제든지 자유계약 신분이 되어 이적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점이다.

여튼 이 사건으로 포항에서 홍명보에 대한 평가가 급락하게 되고 지금도 이 사건을 시작으로 훗날 지도자로 포항의 숙명의 라이벌인 울산 현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포항과의 관계는 더 나빠졌다.

황선홍도 도피성으로 J리그 가면서 이미지가 안 좋아졌던 시절도 있긴 했지만[5] 적어도 이런 식으로 깽판을 치면서 가지는 않았다. 은퇴 이후에도 포항에 애정을 보여주며 감독까지 된 황선홍과는 달리 되려 포항이 울산 다음으로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서울 구단에 관심을 더 많이 보여주면서 스스로 이미지 악화에 일조했다. 자서전에서도 자신은 포항의 레전드는 아니고, 가시와 레이솔의 레전드는 될 수 있겠다고 쓴 바 있다.[6]

이 때 뭔가 저주라도 받은 건지 포항은 홍명보에 이어 줄줄이 더 맞게 된다. 김동현-박주영-오범석-황희찬까지 였다.[7]

3. 잦은 항명 및 태업 의혹

과거 하나회를 본뜬 사조직 '열하나회'의 멤버로서 대표팀내 영향력을 행사하며 가입하지 않는 선수에겐 불이익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며, 이를 보도한 기자들이 있었다. 다만 '열하나회'에 대해선 다른 설도 존재한다. 열하나회는 애당초 유소년 축구를 지원하고 축구선수들의 친목을 도모하는 평범한 모임이며[8] 하나회를 모델로 만든 것이 아니라 베스트 일레븐의 모임이라는 의미에서 열하나+회라고 했다는 것이고, 하나회와 연결 지은 건 1996년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의 부진에 뿔이 난 몇몇 언론의 왜곡이라는 것이다.[9]

아무튼 열하나회가 크게 문제가 된 건 1995년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에서 준결승 잠비아전을 앞두고 술집에서 술을 먹은 음주파동과 1996년 아시안컵에서의 부진 특히 8강 이란전에서 전반까지 2:1로 멀쩡히 앞서가다가 후반에 탈탈 털리면서 2:6으로 참패한 식스투 참사 때문이었다. 당시 이 두 사건에 대해 홍명보가 열하나회를 주축으로 하여 박종환 당시 대표팀 감독을 무시하고 고의로 태업을 벌였단 의혹을 받았다. 다만 박종환 감독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지휘 방식에 불만을 품고 벌인 일이라는 설과 식스투 참사에 한정해 그저 체력이 떨어져서 털렸다는 설도 있다. 특히 식스투 참사가 일어난 1996년 아시안컵의 경우 당시 홍명보와 스리백을 구성한 두 수비수 중 허기태는 비록 열하나회 회원 가입은 늦었지만 홍명보의 고대 1년 선배이고 이영진은 대구대 졸업반까지 듣보잡 취급 당하다가 일화 입단 이 후 주전 수비수에서 국가대표로 초고속 승진해 박종환의 양아들로 통하던 선수였기 때문에 홍명보가 태업을 선동했다는 주장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애당초 히딩크 이전 한국 대표팀은 토너먼트에 맞는 체계적인 체력 트레이닝 없이 우리는 체력이 강하다는 막연한 인식속에 구 일본군식 정신론만 내세웠고 당시 한국대표팀은 시즌 직후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기에[10] 그냥 후반전에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졌을 가능성이 사실 가장 높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대표팀에서 사조직에 관한 구설이 흘러나온 것과 특히 음주파동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크게 비판 받아 마땅한 부분이다.

열하나회가 홍명보와 연결되어 아직도 이야기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1996년 이전에도 이후에도 홍명보는 감독과 유독 불화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6년 이전에는 비쇼베츠 감독과의 불화가 대표적으로 꼽히는데, 올림픽 대표팀에 와일드카드로서 합류가 유력시됐으나 불발되고 만 것이 감독의 출장명령을 대놓고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비쇼베츠 감독이 한국 문화에 매우 잘 적응하지는 못했던 점, 그리고 당시 윤정환을 중심으로 팀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그 불화의 원인이 아니었나 추측되곤 한다.

이후에는 1998 프랑스 월드컵 감독 차범근[11][12], 2002 월드컵 감독인 히딩크와도 당시 크게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차범근 전 감독의 경우 프랑스 월드컵에서 대량 실점 후 현장에서 경질이 되었고 당시 승부 조작을 한 것이 아닌가 라는 카더라 통신이 돌았었는데 파리 월드컵 이후 귀국한 홍명보가 인터뷰에서 당당히 승부 조작이 있었던거 같다 라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월드컵 4강 신화 직후, 본인 실수로 시작하자마자 골 먹고 진 3,4위전 패배 책임을 고 유상철, 히딩크에게 돌리며 유체이탈 비판하던 인터뷰는 안 좋은 쪽으로 유명하다. 딕 아드보카트는 아드보카트 감독님이라고 부르는데 히딩크는 히딩크 감독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롤모델은 아드보카트라고 자주 얘기해왔다. 다만 아드보카트를 만난 건 선수를 은퇴하고 코치가 된 이후였다. 그런데 후술할 내용에 의하면, 히딩크와는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히딩크가 감독을 맡던 안지 마하치칼라 팀에 가서 코치 연수를 받았던 것을 보면 나쁜 관계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13]

4. 대표팀 코치 특혜 논란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아드보카트호가 출범하면서 홍명보가 아드보카트호 코치로 내정되었다는 기사가 돌았다. 허나 당시 대한축구협회 정관에 따르면 대표팀 코치는 1급 지도자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코치가 가능했는데 당시 홍명보는 2급 지도자 자격증만 있어 홍명보에 대한 특혜가 있었다.

이후 18년뒤인 2024년 9월 24일에 열린 2024년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질의에서도 이 사건이 언급되었다. 조계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홍명보에게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불공정한 절차 및 특혜를 지적하면서 해당 사건을 예시로 들었는데, 이에 대해 홍명보는 당시 감독으로부터 코치를 제발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이에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맡았다고 변명했다. 홍명보 특유의 자의가 아닌 타의를 유독 강조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아주 전형적인 화법. 본인이 지도자 규정을 몰랐을 리 만무하고, 원리원칙과 룰을 철저하게 따랐다면 코치직을 완강하게 거절했을 것이니 말도 안되는 변명이다. 또한 질문에 대해 면피는 하였으나 본인이 존경했다던 아드보카트를 팔아버린 꼴이 되었다.

5. 브라질 월드컵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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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K리그 선수 비하 발언

"우리나라에 A급 선수들이 있는데, 이 선수들은 유럽에 나가면 거의 B급대 선수들이 있고요. 우리 K리그에 있는 선수들은 그 밑에 있는데, 과연 잘하는 선수가 유럽에 나가서 경기를 하지 못하고, 지금 그 선수들보다 조금 수준이 떨어지는 선수가 경기를 하고 있을 때 과연 이거를 어떻게 선수 구성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었고…."
홍명보는 감독이 될 때 활동 리그와 관계 없이 소속팀에서 꾸준히 뛰는 선수를 기용하겠다는 원칙을 스스로 세웠다. 그러나 그가 선발한 월드컵 선수단 중에는 박주영, 윤석영, 지동원 등 이 원칙과 맞지 않는 일부 유럽파들이 있었고 대회에서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자 논란이 되었다. 따라서 브라질 월드컵을 치른 후 이에 대한 이유를 묻자 A급(유럽 리그)에 속해있지만 뛰지 못하는 선수를 B급이라고 지칭하더니 K리거들은 그보다 못한 급이라고 발언하여 파문이 일어났다.

선수들의 객관적 실력 면에 있어서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더 나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K리그의 선수들과 팬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는 표현이었다. 그나마 대표팀 내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 중에는 이근호, 김신욱과 같은 K리거들도 있었는데 그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발언이었다. 심지어 홍명보 본인의 선수 경력도 유럽에서 뛰어본 적이 없고 선수 경력 대부분을 K리그에서 보낸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B급 미만 선수였다고 자아비판한 셈이다.

그리고 2021년부터는 본인이 B급 미만이라고 깎아내렸던 K리그 팀인 울산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물론 취임 시점까지 이 발언에 대한 해명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때문에 울산의 팬들은 속이 뒤집어지고 있으며, 타 K리그 팀의 팬들도 "B급 미만 선수들로 뭘 하려나"하며 비아냥 중. 홍명보 감독님, 'B급 발언' 해명하셨나요?
"(해당 발언이) 사임하는 자리에서 나온 것 같은데, K리그를 비하할만한 여유와 이유가 없었다. 나의 발언이 K리그 팬들에게 상처를 줬다.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나는 K리그를 통해 프로에 데뷔했다. 지금까지 아시아를 선도하는 리그를 비하하거나 깎아내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축구인으로서 K리그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갖고 있다. 당시 발언으로 실망하셨을 팬들에게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 울산 감독으로 어떤 진심을 갖고 있는지 보여드리겠다."
2021년 1월 7일에 울산 감독 취임식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해명과 함께 속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팬들의 여론은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였다.#

이후 울산을 맡으면서 리그 2연패를 달성하는 등의 기여로 해당 논란을 종식시키나 싶었지만, 국가대표 감독으로 재선임되는 과정에서 다시 팀과 리그에 존중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 비판을 받고 있다.

6. 러시아 월드컵 해설 위원 평가

2018년 7월 5일 열린 대한축구협회 기자 간담회에서 한 발언이 논란이 되었는데, 주 요지는 "해설위원들이 첫 월드컵부터 계속 월드컵에서 성공만 해본 사람들이라 선수들이 못하는 것에 대해 공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감독이 되어) 현장 경험을 하고 오면 더 좋은 해설이 될 것 같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이 들리기에 따라서는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당시 한국 지상파 방송사 해설위원인 안정환, 이영표, 박지성에게 "감독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또한 "2002년의 성공은 그동안 실패했던 선배들이 힘을 모여서 된 것이고, 세 해설위원은 그것을 토대로 첫 월드컵부터 성공을 경험하고 그걸 바탕으로 이후에도 계속 월드컵에서 성공만 했다" 라며 월드컵 기간 중 해설위원들의 지적 및 개선 요구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말을 남겨 각 언론 및 네티즌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홍명보 KFA 전무의 뼈있는 조언 "방송 3사 해설위원, 현장 어려움을 경험해야 한다"

홍명보의 말대로 세 선수들이 2002 한일 월드컵에서의 성공 이후 국가대표에서 계속 성공적인 결과를 낸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14] 오히려 2002 한일 월드컵의 성과로 높아진 국민들의 눈높이 때문에 대표팀 경기력이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을 때 욕을 먹었고 그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도 했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첫 승의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결국 1승 1무 1패로 예선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고 당시에도 16강 진출 실패라며 성공이 아닌 실패라 언급되었다. 또 원정 사상 첫 승을 거두는 성과에 대해서도 그 1승의 상대가 3패를 당한 토고라며 폄하되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원정 사상 최초로 16강 진출(최종순위 월드컵 15위)을 달성했지만 높아질대로 높아진 기대치에 16강 진출이 당연하게 생각되어 큰 환호를 받지도 못했다. 오히려 8강 진출 실패라며 염기훈이나 이동국, 허정무 감독 등이 큰 비판을 받았다. 지금에서야 다시 1990년대로 돌아가 16강 진출이 원래 어려운 것이다란 인식 하에 평가받지만 2006 독일 월드컵, 2010 남아공 월드컵 때의 16강 진출은 전 대회 4강 팀으로서 당연히 달성해야 할 목표였다. 그러나 이는 FC 코리아가 먼저 반성해야할 문제이며 2002년 이전에는 승리 자체가 없었으니 홍명보 입장에서 매번 승리를 거둔 이후 월드컵들은 성공이라 볼 수 있었다.

홍명보 감독의 발언과는 별개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의 해설진이 실망스러운 해설을 보여준 건 사실이기는 하다. 이영표는 2014년 때의 일침갑, 초롱도사는 온데간데없고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 같은 이상한 염불이나 외우고 있었고, 안정환은 2014년에도 해설 면에서 좋은 평을 못 들었는데 2018년에도 해설가로서 성장한 점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박지성은 아예 해설이 너무 재미가 없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15] 문제는 이런 세간의 해설진 평가에도 홍명보의 해당 발언 이후 여론이 바뀌어 홍명보가 욕먹었던 것. 여담으로 홍명보의 이 발언 이후 안정환은 간접적으로나마 선배한테 한 소리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해설하는 내내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이었다.

6.1. 비판 의견

홍명보는 과거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당시 월드컵 감독의 자격으로 MBC를 찾아 안정환과 송종국에게 "해설은 너희 생각대로 하면 된다. 좋은 얘기만 하면 안되고 쓴 소리도 해라. 쓴 소리를 듣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건 바로 너희 역할"이라고 조언한 바가 있어, 4년 만에 자신의 말을 180도 뒤집고 후배들에게 일침을 놓게 되어 다시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신태용호가 해설진한테 팩트, 노팩트 거르고 맹목적으로 여러 매체에서 두들겨 맞는 걸 보고 4년 전의 자신이 생각나 안타까워 제대로 알고 비판하라고 나름의 쉴드를 쳐주기 위한 의도로 보이지만, 국가대표팀을 향한 제대로 된 변호를 해주는 것이 아닌 너희들이 뭘 아냐는 식으로 비칠 수 있는 공격적인 발언을 해버리니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었다.

이미 안정환, 박지성, 이영표는 2000년대 한국 축구를 10년 가까이 이끌어갔다. 오히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높아진 기대치로 많은 부담감 속에서도 어느 정도 국민 기대치에 부응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에 이어서 반드시 지도자나 행정가가 되어 계속해서 한국 축구를 위해 뭔가를 할 필요는 없다.

6.2. 옹호 의견 및 재평가

홍명보의 발언이 세 해설위원과 그 팬들에게는 불편하게 비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일리가 없는 발언은 아니다. 세 선수의 은퇴 이후 행보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들이 축구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자리는 열려있기 때문에 비판을 할 거면 비판만 하기 보단 그 알고 있는 문제들을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볼 수 있다. 이들이 대한축구협회에 들어가면 어떨지는 모르겠으나[16] 협회 또한 좋은 인재를 찾아서 영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매번 축구협회의 물갈이를 외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팬들인데 이 문제에 대해 본인들이 홍명보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당시 안정환은 K리그 홍보대사로 일한 경력은 있었으나 주로 방송인으로서 활동을 했다. 박지성은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이었다고는 하나 현장이 아닌 자택 근무였으며 제대로 활동했는지 여부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이영표 또한 은퇴 이후 특별히 축구인으로서 기여한 것은 없었다. 홍명보는 밖에서 쓴 소리만 하는 이들이 충분히 서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홍명보는 브라질 월드컵 이후 안정환을 코칭스태프로 합류시키려 했으나 결국 사임하면서 무산되었다. 이후 2021년부터 박지성과 이영표는 각자 전북 현대 모터스강원 FC에서 간부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영표는 강원의 대표이사직을 맡은 이후로 감독이나 선수들을 향해 내뱉던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발언이 눈에 띄게 줄었는데,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외부에서 보이던 것 이상으로 현장직의 상당한 난이도를 체감하고 공감대가 형성돠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특히 안정환의 경우는 안정환/해설 경력에서 보이듯 다소 감정적이거나 해설자로서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등 해설위원으로서의 퀄리티가 썩 높지 않았다. 선수 시절의 경험에 기반한 입담과 재미있는 농담 등은 호평을 받았지만, 해설자로서 기본적인 정보 전달 자체가 부정확한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2018년 월드컵에서 실책을 저지른 장현수에 대해서도 이영표박지성 두 해설위원에 비해 다소 감정적인 비판을 쏟아부어 장현수에 대한 전국민적인 비난을 증폭시켰는데, 국가대표 감독을 맡아 본 입장에서 선수의 멘탈을 박살내는 이런 발언들에 대해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해당 부분에 대한 서술은 장현수/국가대표 경력의 러시아 월드컵 문단 참조.

그리고 안정환과 이영표가 현장에 관여하기 시작한 후 P급 자격증 특혜, 승부조작 사면 시도 등으로 논란을 야기하자 홍명보의 발언이 재평가를 받았다. (다만, 홍명보도 P급은 고사하고 C급 라이선스도 없이 국가대표팀 코치 임명 받은 특혜 중의 특혜를 받았기에, 그 또한 2002년 맴버로서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선수들이 혜택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이기에 거스 히딩크라는 전 대회에서 팀을 4강으로 이끈 명장을 데려오고 월드컵의 성공을 위해 K리그를 중단하는 등의 축구협회와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거스 히딩크라는 명장을 만나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실력이 업그레이드되고 월드컵의 성공으로 병역 특례와 함께 여러 선수들의 유럽 진출의 길이 열리는 등 국가적인 혜택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17][18] 이전의 한국 축구는 제대로 된 지원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오직 투혼으로 결과를 바라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혜택을 얻은 만큼 한국 축구에 이바지한 선수들이긴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서 현역 선수와 감독의 사정을 이해하는 역지사지를 해달라고 홍명보가 에둘러 지적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19]

7. 아마노 준 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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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국가대표팀 감독 재부임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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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이야 사문화된 규정이지만 축구계에서 구단과 선수(+대리인)간의 사전 접촉은 절대 불가능이며 이는 피파 선수 이적 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2002년이면 이 규정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던 때였다.[2] 홍명보는 이미 월드컵 이후 K리그에서 출전하는 경기마다 허술한 수비와 거친 플레이로 포항 팬들의 빈축을 사고 있었다. 송종국이 네덜란드 리그 진출을 확정짓고 떠나기 전 부산 팬들 앞에서 가진 마지막 고별전에서 송종국에게 불필요한 거친 태클을 넣어서 9시 뉴스에까지 보도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 월드컵 4강 동료이자 후배인 송종국에게 대체 왜 그랬는지는 미스테리다.[3] 80만달러+계약금 6억+ 6개월치 연봉 1.5억[4] 당시 최고의 미드필더인 루이스 피구의 연봉이 50억 수준이였다.[5] 다만 황선홍은 중국전 상대 골키퍼의 살인 태클에 의한 부상으로 1998 월드컵 출전 자체가 불발된 직후 불운한 부상마저도 또 실수할까 봐 걱정돼서 부상당한 척 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여론에 94년부터 쭉 이어진 비난까지 포함하여 더 이상 한국에서의 선수생활이 힘들 것 같아 도망치듯 일본으로 떠났다고 스스로 언급한 적이 있다. 애당초 일본진출도 입단 테스트를 겸해 6개월에 불과한 굴욕적인 형태의 계약이었다.[6] 다만 자서전에서 포항 구단을 비중있게 언급하고 자신은 "영원한 포항맨"이라 한 부분도 있다.[7] 그나마 오범석은 2020년에 포항으로 다시 돌아와 2021년까지 포항에서 뛰고 은퇴하게 되고, 황희찬의 경우도 비시즌 때마다 포항 홈경기에 직접 찾아오고 포항시에 기부도 하는 등 관계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끝에 지금은 팬들의 여론이 많이 누그러졌다.[8] 홍명보는 창립멤버 11명 중 막내에 가까웠고 창립멤버도 김봉길, 박창현, 이영익 등 대표팀과 거리가 먼 선수가 많았다.[9] 그야 당연히 베스트 일레븐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열하나회라고 만들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지만, 전두환 시절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는 인간들이 하나회에 열자 하나 딱 붙여서 모임을 조직했다는 건 오해와 비판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10] 실제 예선전부터 후반만 가면 체력이 급격히 저하해서 경기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었다.[11] 자서전인 영원한 리베로에는 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 테스트 건이 있었는데 차범근 감독이 그런 형식으로 가서는 성공할 수 없다며 만류해서 기분이 언짢고 서운했다는 이야기와 네덜란드전 참패 후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자 월드컵 출전 후 가장 슬픈 일이었으며 대량 실점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가 동시에 나온다. 이후에도 죄책감을 버리지 못했지만 3년 뒤 한 모임에서 용기를 내어 당시 떠오르던 차두리 이야기를 꺼내며 인사를 건냈더니 차범근이 웃으며 응대해주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12] 그런데 정작 차범근 감독은 98년 월드컵 이후 하석주와 홍명보만 여태까지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하석주는 항목에도 나오지만 자신의 퇴장으로 인해 인생이 고달파지셨다며 죄스런 마음에 그랬다고 눈물로 증언했지만 홍명보는 이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다. 두 입장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종합해보면 1998년 월드컵에서의 경질에 대한 말은 전혀 없었지만 이후 인사 정도는 했다라고 볼 수 있다.[13] 서로 실력은 인정하지만 인간적인 호감은 별로 없는 관계일 가능성이 높다.[14] 안정환은 국가대표로 활약하기 시작한 게 히딩크 부임 후인 20대 중후반부터로 자신의 월드컵을 시작하자마자 성공을 한 것은 아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때는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했기 때문에 기회가 아예 없던 것이다. 안정환의 국가대표 데뷔는 1997년.[15] 그래도 해설의 질 자체는 박지성이 제일 나았다. 안정환 같은 경우는 역으로 재미만 있었다.[16]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수 역량과 감독 역량은 전혀 다른 부분이며 이는 굳이 감독이 아니라 다른 행정직을 맡아도 마찬가지라 볼 수 있다.[17] 다만 이러한 혜택과는 별개로 안정환은 오히려 2002년 월드컵 이후 에이전트의 실책에 의해 커리어가 완전히 꼬이기 시작했다. 자세한 내용은 안정환 문서 참고.[18] 당장 감독으로서 이미 한물 갔다는 황선홍이 선수 시절 명성으로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황선홍의 경우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비판이 많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40년 만의 올림픽 진출 실패로 도로묵이 되었다.[19] 이를테면 해설위원들이 "이러이러한 상황과 결과는 아쉽지만, 어떠한 이유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 는 식으로 현장의 분위기나 고충 등을 곁들여서 시청자들에게 설명했더라면, 국가대표팀이 결과로 비판을 받을 지언정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시청자들도 이해할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해설위원들 중 일부는 전후 사정은 잘라먹은 채 그저 분노하는 하나의 팬과 같은 언행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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