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03 18:14:32

황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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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관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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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관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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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리그 클래식 시그니처 문구 로고 없는거.png 신인상
1987년 1988년 1989년
김주성
(대우 로얄즈)
황보관
(유공 코끼리)
고정운
(일화 천마)

198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기근
FW
함현기
FW
신동철
MF
최진한
MF
김상호
MF
황보관
DF
최강희
DF
최태진
DF
손형선
DF
강태식
GK
오연교
199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윤상철
FW
라데
FW
김경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황보관
DF
안익수
DF
유상철
DF
홍명보
DF
허기태
GK
사리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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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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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황보관
皇甫官 | Hwangbo Kwan
출생 1965년 3월 1일 ([age(1965-03-01)]세)/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신체 178cm
직업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유공 코끼리 (1988~1995)[1]
오이타 트리니타 (1995~1997)[2]
감독 오이타 트리니타 (1999/코치)
오이타 트리니타 U-18(2000~2003)
오이타 트리니타 (2004/코치)
오이타 트리니타 (2005)
오이타 트리니타 (2010)
FC 서울 (2011)
국가대표 36경기 10골(대한민국 / 1988~1993)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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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9번(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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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일본 시절3. K리그
3.1. FC 서울 감독 부임3.2. 사임
4. 대한축구협회

1. 소개

축구선수, 현재는 프런트 및 행정가.이자 대한축구협회 적폐세력의 주축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지만, 성은 '황'씨가 아닌 '황보'씨다.(이 성의 본관은 경상북도 영천이다)

현역 시절에는 나름 잘 나갔던 선수였으나, 은퇴 후에는 주로 구단의 프런트 및 행정가로 일하고 있다. 지도자 커리어도 있지만, 프런트 경력이 상대적으로 좀더 나은 편.

대구 출생으로 대구침산초등학교, 계성중학교를 거쳐 계성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축구부가 해체되어 서울체육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서울체육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를 졸업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서울대학교도 1년에 2명씩 체육 특기자를 선발한다.관련기사 주로 수영 선수들이 많이 뽑혔는데 특이하게도 황보관은 축구 선수임에도 이 입학 전형을 통해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유공 코끼리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 같은 해 신인상을 수상받아 두각을 나타내며 국가대표로도 뽑힌다.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당시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1990년 6월 17일 우디네[3]에서 열렸던 예선 2차전 스페인전(戰) 전반 43분에 프리킥 기회를 얻어 최순호의 볼을 받아찼는데, 무려 114km/h의 캐넌 슛을 넣었다. 이후로 황보관 하면 캐논 슛, 캐논 슈터 하면 황보관일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이 때 상대 골키퍼가 바로 FC 바르셀로나의 레전드인 안도니 수비사레타였다. 여담이지만 이 골은 당시 대한민국의 유일한 골이자, 이탈리아 월드컵 때 베스트 골 5에 선정됐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미드필더였고, 선수로는 꽤 성공적이어서 오이타 트리니타에서는 J리그 발족 후 실업 리그에 있던 팀을 J리그로 승격시키는 데 공헌했다.

1994년 유공에 있었을 때 전북 버팔로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K리그 통산 7번째로 20-20 클럽에 가입했다.

2. 일본 시절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일본 J리그오이타 트리니타에 이적하여 선수 생활을 하고 1998년에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보다 프런트에서 좀더 평가가 좋았다. 오이타 트리니타에서 유소년 팀 코치, 수석코치의 커리어를 거치며 승승장구했고, 전임 감독이 지휘봉을 놓자 2005년에 감독으로 승격됐다. 시즌을 1/3 가량 치른 시점에서는 나름대로 중위권으로 순항하고 있었으나, 이후 팀이 12게임 연속 무승이란 극심한 부진에 빠지자 시즌 중 사임했다.

이후 오이타 트리니타의 유소년 육성부장, 부사장, 이사 등 구단의 프런트로 일하며 커리어를 좀더 쌓은 후 2010년에 재차 감독을 맡았으나, 이 때는 오이타가 J2리그로 강등된 후라 주목할 만한 성과는 없었다.

오이타 트리니타는 원래 J2리그에서 시작해서 J리그로 승격한 팀이다. 더구나 승격 이후 줄곧 중하위권을 찍다가 결국 2009년 경영난으로 인해 J리그 사무국에 자금 융자를 받게 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고, 주축 선수들의 유출로 나락에 빠진 전형적인 시민구단 테크를 밟으며 강등당했다. 때문에 일부 넷상에서 '황보관이 말아먹었다'는 식의 주장은 2ch 등에서의 악질적인 인신공격을 여과없이 수입한 것이다.

실상 오이타는 2008년 한해 반짝 4위를 기록한 게 최고 성적이다. 오이타의 J리그 성적은 14/16('03) 14/16('04) 11/18('05) 8/18('06) 14/18('07) 4/18('08) 17/18('09)이었다. 한마디로 DTD…. 게다가 2013년에는 홈 17경기에서 4무 13패를 기록하면서 시즌 홈 무승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웠다.

오이타 구단의 부사장을 맡고 있던 시절에는 K리그와 J리그를 통합해야 양국 축구가 발전할 수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어서, FC 서울 감독에 부임하여 귀국하기 이전부터 K리그 팬들에게선 시선이 긍정적인 편은 아니었다. 애초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인터뷰 내용 중에서 K리그보다 J리그가 더 우세하다는 듯한 언급도 했는데, 2007년과 2008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선 우라와 레즈감바 오사카가 연속으로 우승해서 당연히 해당 인터뷰 시점인 2009년 초반에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기야 했다. 하지만 정작 2009년과 2010년 포항 스틸러스성남 일화 천마 두 K리그 팀들이 연속으로 아시아 챔피언에 올라 그 발언이 무색해졌다.

일본 축구 팬들 사이에선 1군 감독으로는 아쉬웠지만, 그래도 유소년 육성에는 좋은 편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거만 보아도 지도자보다 프런트 쪽에서의 평가가 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K리그

3.1. FC 서울 감독 부임

FC 서울 역사상 최악의 감독.[4]

2010년 12월 28일, 재계약에 실패한 넬루 빙가다의 후임으로 FC 서울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K리그 우승으로 한껏 기대치가 높아진 FC 서울 팬들에게는 아무리 J리그에서 유소년 육성으로 나름대로 검증을 받은 인물이라고 해도, 사실상 듣보잡에 가까운 감독이었다. 게다가 그 전에 언급된 K리그와 J리그 통합 발언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도 있어서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반면 정조국, 김진규 등 고참들의 이적으로 팀 전력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할 시점이 닥치긴 했지만 몰리나, 김동진 같은 스타 플레이어들을 영입하고, FC 서울 정도 되면 팀 리빌딩 중이라도 하위권으로 밀려날 일은 없으리라고 믿으면서 기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이처럼 신임 감독을 바라보는 구단과 팬들의 시각은 너무나도 달랐고, 황보관 체제는 시작부터 온갖 잡음에 시달렸다.

아래는 황보관이 취임한 후 사임하기 전까지 FC 서울이 치른 경기와 결과다.
  •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1라운드 알아인전 원정 1:0 승
  • K리그 1라운드 수원전 홈경기 0:2 패
  • K리그 2라운드 대전전 원정 1:1 무
  •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2라운드 항저우전 홈경기 3:0 승
  • K리그 3라운드 전남전 원정 0:3 패
  • K리그 4라운드 전북전 홈 경기 3:1 승[5]
  •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3라운드 나고야전 원정경기 1:1 무
  • K리그 5라운드 부산전 원정 1:1 무
  • K리그 6라운드 울산전 홈경기 1:1 무
  •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4라운드 나고야전 홈경기 0:2 패
  • K리그 7라운드 광주전 원정 0:1 패
  • 리그 7전 1승 3무 3패. 7라운드 결과 16개팀 중 14위
  • 챔스 4전 2승 1무 1패
  • 총 11전 3승 4무 4패

아챔에서 3라운드까지는 선방했으나, 4라운드 홈 경기에서 나고야에 맹공을 퍼붓고도 0:2로 완패를 당하며 체면을 구겼다.

정규리그도 역시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 사실 21세기 들어서 K리그 판도 자체가 디펜딩 챔피언 자체를 쌈싸먹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남 일화가 몰락한 이후 K리그는 3연패는커녕 감히 어느 팀도 2년 연속 우승을 장담하지 못할 만큼 치열하게 물고 물리는 리그가 되어 버렸다. 다만 그렇다고 7경기 동안 딱 한 번 이기는 것은 당연히 큰 문제.

2011년 7라운드를 치르는 동안, FC 서울은 물론이고 과거 '아시아의 깡패'로 명성을 날리던 울산 현대도 중하위로 쳐졌다. 우승 경쟁자로 예상되던 수원은 4위이고 2010년 준우승 팀 제주는 6위. 반면 리그 선두는 작년 9위였던 포항.

하지만 2010 시즌 우승 팀이라는 자부심이 있는 FC 서울 팬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임은 자명하다. 그 당시 차두리의 우루사 CF BGM으로 쓰이던 간 때문이야를 개사한 "관 때문이야" 노래를 부르거나 초호화 외국인 선수단 F4 에 황보관 감독이 Alt 라는 드립을 쳐댔다.

일견하기엔 감독 하나 바뀌면서 팀을 거하게 말아먹은 듯 하지만, 사실 바뀐 것은 감독 뿐만 아니라 스쿼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난 시즌 우승의 주역이었던 정조국, 김진규, 김한윤팀의 구심점이 되어 줄 고참이 대거 이탈했다는 점이 치명적으로 작용했다.[6]

3.2. 사임

FC 서울은 7라운드 광주 원정 경기에서 총력전을 폈으나, 신생 팀 광주의 카운터 한 방에 무릎을 꿇었다. 더구나 광주는 전 라운드에 홈에서 전북에 6:1로 대패당할 정도로 약체로 분류된 팀이었다. 자연히 FC 서울 홈페이지는 비난과 항의하는 글로 폭주했다.

결국 다음 날인 4월 26일에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하고 최용수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이로서 FC 서울 구단 사상 최초로 시즌 도중 사임한 감독이 되었으며, K리그 최단 기간 재임 감독[7]이라는 불명예도 함께 안게 되었다. 안습.

일각에선 겨우 7경기를 치르고 사임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대체로 현직 감독과 언론은 동정하는 분위기이다. 반면 FC 서울 팬들은 '더 일찍 사임했어야 한다'며 아직도 까는 중.

여담으로 FC 서울 감독 당시 축팬들사이에 불리던 별명은 맨날 진다고 해서 항복왕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업적이라고 부를 부분이 있다면, 훗날 K리그 챌린지에서 잠재력을 발휘하며 주전으로 거듭난 문기한의 능력을 미리 알아보고 1군에 데뷔시켜서 경험치를 쌓아줬다는 것 정도.

4. 대한축구협회

사임하고 한 달이 지난 5월 25일, 대한축구협회의 기술교육국장으로 선임되어 행정가 커리어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일본에서 은퇴한 후 프런트로 많이 일했고, 지도자보다 프런트일본에서 좀더 좋은 평가를 받은 데다가 축구 행정 경험이 상당한 인물이기에 선임한 것으로 보인다. 다들 역시 행보관은 감독 말고 행보관을 해야 한다며 반기는 평.

사족으로 이 문서는 감독직을 사임하고 나서야 작성되었다. 여러모로 안습.

대구 FC이영진 감독이 2011 시즌을 마치고 해임된 후 황보관 국장을 후임 감독 후보군에 올려두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에서는 축협의 H국장이라고 나왔지만, 대구 출신의 H국장이면 황보관밖에 없다. 거기다가 변병주 감독의 퇴진 후 새 감독을 뽑으려 할때도 감독 후보군에 올랐던 사람이 황보관이었다.

하지만 기사가 나온 바로 다음 날, 대구 FC브라질 올림픽대표팀 수석코치 출신의 모아시르 페레이라를 새 감독에 선임함으로써 K리그 팬들의 뒷통수를 시원하게 때렸다. 그리고 모아시르 감독은 대구 FC의 짧은 리즈 시절을 이끌었다.

2011년 11월 10일 이회택 전 기술위원장의 후임으로 대한축구협회의 기술위원장으로 취임했다. FIFA 랭킹 10위까지 올리겠다고 선언. 2011년 12월 8일 대한축구협회는 조광래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감독 임명 해임권을 쥔 기술위원회가 소집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높으신 분들끼리 밀실 행정 논란이 불거졌다.관련기사
2012년 2월 해임된 조광래 전 감독이 남긴 인터뷰에서 이 밀실 행정의 단초를 엿볼 수 있다. 단 재임 기간 내내 협회와 사이가 좋지 못했고 잘린 뒤 수차례 뒤끝 작렬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걸러들을 필요는 있다.
관련기사

리그의 유일한 1승도 전북을 상대로 거둔 1승이었는데, 전북 현대 모터스최강희 감독까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시켰다. 2012년 2월 29일에 열릴 쿠웨이트전만 맡는다고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고 전북에 돌아온다 하더라도 2012 시즌 준비는 어떻게 하려고...

정몽규 제 52대 축구협회장이 당선되고 난 후에도 전 대한축구협회 집행부들 중 유일하게 유임되었다고 한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홍명보호가 참담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기술위원회 역시 책임론이 불거졌다. 여기에 현행 기술위원회가 사실상 허울뿐인 기구로 전락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관련기사

2014년 7월 3일 빗발치는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홍명보 감독이 유임하고 심지어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 누구 한사람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자, 붉은 악마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황보관 위원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관련기사

2014년 7월 10일 결국 홍명보 감독과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이때 황보관 위원장 역시 동반 사퇴한다는 보도가 돌기도 하였으나, 대한축구협회는 아직 황보관 위원장의 거취는 결정된 바 없다고 일단 부인했다. 축구협회는 황보관이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백서작업을 마무리하는게 우선이라지만 월드컵을 말아먹은 사람이 반성과 결산을 한다는게 말이 되냐는 지적이 많다. 오죽 사람이 없으면 물러날 사람이 반성과 결산을 할 정도로 축구협회 행정이 유치하냐는 비판도 쏟아진다.

축구 팬들 사이에서 음모론처럼 떠도는 카더라에 따르면, 정몽규 회장이 축구계 사정에 밝지 못한 점을 이용해서 몇몇 친목질 종자들이 회장 주변에 인의 장막을 구축하고 FC 서울에서 잘리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황보관을 데려다가 바지사장처럼 기술위원회에 앉힌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홍명보, 허정무 사퇴 이후 축피아의 핵심이자 만악의 근원으로 찍혔다. 네이버의 축구기사마다 그러니까 황보관이 사퇴해야 한다가 어김없이 베플에 오르는 지경. 국내 축구 기사는 물론 해외축구 기사에도 달리며 심지어는 다른 종목[8], 심하면은 스포츠와 관련없는 기사(...)에도 베플로 계속 달리고 있다. 심지어 황보관이 물러나고 새로운 기술위원장으로 이용수가 선임되었다는 기사에도 '황보관 사퇴하라'는 댓글이 달렸을 정도다(...).

축협에서 물러난 것 같았으나, 2017년 기준으로도 기술교육실장으로 여전히 축협에서 활동 중이다. 심지어 2015 호주 아시안컵 기간에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슈틸리케호) 지원팀장으로 활동했다. 쿠웨이트전을 앞두고 손흥민이랑 몇명이 감기몸살로 인해 쿠웨이트전을 출전을 못했는데,[9] 당시 대표팀 주치의흉부외과 출신이라고 하는 걸 보면 팀 닥터를 잘못 뽑은 것이 맞다. 해당기사를 보면 확실히 대표팀 의료부분에 문제가 있는 게 확실하다.

2017년 9월 14일, 다른 축협 임원들과 함께 횡령 배임혐의로 기소됐다.


[1] 171경기 44골[2] 54경기 27골[3] 우디네세 칼치오의 연고지[4] 그런데 2018시즌 들어 황선홍이 지분을 쌓고 있는 등 황보관의 타이틀을 위협하고 있다.[5] 혹자는 이 승리를 놓고 본프레레 국가대표 감독이 2004년에 독일을 상대로 거둔 3:1 승리에 비견하기도 한다. 그만큼 당시 최강희 감독의 전북을 상대로 어떻게 이렇게 이겼는지 의문이 드는 경기였다.[6] 서울은 야심차게 몰리나까지 영입하며 최고의 외국인 선수 진용을 갖췄지만, 일각에선 이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다. 몰리나, 제파로프, 데얀 셋의 장단점을 짜맞춰보면 서로 엇박자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리고 실제 이런 우려가 상당 부분 들어맞았다.[7] 1월 3일 ~ 4월 26일. 110일[8] 야구, 농구 등.[9] 사실, 대개 축구계에서 독감에 걸리는 것은 선수들의 몸관리 실패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독감에 걸린 선수에게 프로의식이 부족하다는 사유벌금을 내게 하는 구단도 많은데, 이것은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