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05:03:15

감자골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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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황3. 제명 이후4. 관련 문서

1. 개요

1991년 제1회 KBS 대학개그제 출신(KBS 7기 공채)인 김국진 & 김수용 & 김용만 & 박수홍이 뭉쳐서 결성된 코미디크루 감자골 멤버들이 KBS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면서 일어난 사건. 90년대 초반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불렸던 감자골 멤버들이 겪은 대표적인 시련으로 유명하다.

2. 정황

파일:감자골 사태.jpg

이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선 1990년대 한국 방송계의 관행에 관해 알아야 한다. 21세기에는 방송사 공채 연예인이 전속 기간을 어느 정도 채우면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타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은 물론이고 특정 기획사와 계약하여 원하는대로 활동할 수 있으나 90년대 한국 방송계는 매우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에[1] 방송사 공채는 방송사만의 전유물로 취급되어 이적은 커녕 타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게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어 있었다.[2][3] 또 신인급 공채 연예인들의 출연료가 낮았으니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 출연시키면서 많이 부려먹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타급 선배들의 대규모 이적으로[4] 당시 신인 개그맨이었던 감자골 멤버들이 기회를 받아 많은 프로그램들에 출연하고 있었는데 마구잡이식 활동으로 인한 혹사 때문에 육체적 &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해서 이를 보다못한 팀의 맏형 김국진이 PD들에게 스케줄을 여유롭게 만들어 달라고 사정했는데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던 PD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5]

결국 과도한 스케줄 혹사로 김용만은 몸져 누웠고, 이에 열받은 멤버들이 김국진의 주도 하에 1993년 1월을 기해 KBS에서 출연 중이던 모든 프로그램 하차를 선언했다. 즉, 보이콧을 한 것인데 이때가 데뷔한 지 불과 2년차였다.[6]

그러나 선배들은 감싸주진 못할망정[7] 새파란 후배들이 프로답지 못한 행동을 한다며 비난하였다.[8] 이 상황에서 감자골을 옹호해 준 선배는 임하룡이경규 단 두 명뿐이었다고 한다. 이미 1992년 말에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KBS와 MBC에 동시 출연 중이던 임하룡은 특히 "얘네들이 어린 아이들도 아니고 군대 갔다 온 성인이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방송사 측에 항변한 것일 텐데 왜 우리 동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주지 못할망정 싹도 안 자란 아이들을 영구제명시키냐?" 라면서 그들을 옹호해 주었다.

특히 이경규는 모두가 외면하던 분위기 속에서 이들을 방송에 맘껏 출연할 수 있게 받아 준 당대의 유일한 진행자였으며 끝내 이들은 미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결정하고 멤버들 중 최연소였던 박수홍은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김수용도 본래 김국진과 김용만과 함께 유학을 가려고 했으나 비자 문제로 떠나지 못한 채 결국 후폭풍을 혼자 다 한국에서 감당해야 했다. 이 때의 일로 인해 김국진은 지금도 김수용을 아픈 손가락처럼 여기며 신혼여행 자금을 통째로 지원해 주는 등 각별히 아끼고 있다.

결국 견제와 피로 누적으로 지친 이들은 같은 해인 1993년 2월에 감자골은 당시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출연하여 고별인사를 하고 미국으로 가기로 했는데 녹화가 시작되기 직전 "프로그램을 열 개씩 하던 감자골이 갑자기 그만둔 것은 MBC로 이적하기 위함이었다!" 라면서 임하룡을 제외한 당시 KBS의 코미디언 50여 명이 MBC로 쳐들어와서 녹화를 방해하기에 이르렀다.[9]이들이 난동을 피우는 통에 김국진은 스태프들을 따라서 개구멍으로 도망쳐서 피신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때 김국진을 숨겨준 사람이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이다. 1980년대 말~90년대 초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코미디언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씁쓸해지는 부분이다.

선배들에게 몰매를 맞기 직전까지 가버린 감자골 멤버들은 이경규가 전면에 나서 선처를 호소했고 맏형 김국진이 나서서 "자신들이 다른 곳으로 이적하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언으로서 은퇴하고 이민가는 것이다." 라고 설득해서 겨우 시청자들에게 고별 방송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감자골은 방송 3사 코미디언 협회에서 제명을 당했다. 이들의 KBS 선배 개그맨 이봉원은 후일 라디오 스타에서 감자골 사태에 대한 질문을 받자 "당시 나는 SBS로 이적한 상태라서 아무 관련이 없다." 라는 얘기를 했다.

다만 이봉원의 해명은 거짓말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바로 위에 이봉원이 했던 발언은 감자골 사태의 당사자 중 한 명인 김국진의 바로 옆에서 했던 데다가, 당사자인 김국진 본인이 "이봉원 씨는 관련이 없습니다" 라고 부인하면서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거기다가 당시 기사에는 KBS와 MBC 코미디언들에 대한 얘기만 있을 뿐 SBS에 대한 내용은 언급조차 없었기에, 이봉원의 해명은 사실일 확률이 높다. # 실제로, 이봉원은 후배들을 잘 챙겨주는 것으로 미담이 많이 알려져 있으며 한참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케줄을 무시한 채 방송국을 찾아가서 대놓고 깽판을 놓을 시간이나 있었을지 의문이고, 정말로 가해자였다면 나중에라도 진작에 폭로되었을 것이다.

훗날, 시간이 흘러서 MBC 출신의 선배 개그맨 서승만은 자신의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나쁜 선배들이 시켜서 감자골 멤버들을 괴롭혔다."면서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이야기를 했다. 감자골 4명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선배들이 쟤들은 나쁘다고 그래서 MBC에 가서 항의하고 있었는데 기자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 선배들은 모두 도망가버렸고 개그우먼 김영하와 임종국[10], 서승만 3명만 그 자리에 남았다고 한다.

결국 서승만은 주도자로 몰려서 스포츠 신문에 후배를 괴롭히는 개그맨으로 기사가 올라가는 바람에 MBC에서 잘렸고, 잠시 KBS로 갔다가 김영희 PD에게 억울함과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시 MBC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서승만의 말대로 사건의 정황상 정말로 저 3명만 가해자였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고 서승만보다 선배였던 가해자 개그맨들도 있었다. 나중에 서승만은 감자골 4명을 다시 만났는데 너무나도 착한 아이들이라 후회하면서 다시 사과를 했고 지금은 친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저 몰라서 그랬다는 변명이 아니라 누가 봐도 자신이 잘못한 것이 맞고 지금도 "인생의 영원한 흑역사로 생각한다" 라고 말할 정도로 크게 후회한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고별 방송을 하고 김국진과 김용만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지만 같이 가기로 했던 박수홍은 군대 영장이 날아와서 입대하게 되었다. 김수용은 비자 발급 당시 설문을 제대로 안 읽고 총기와 마약을 소지한 전력이 있다는 항목을 체크하는 바람에(...) 비자가 안 내려와서 입국이 안 되었다고 한다.

다만, 감자골 4인방이 라디오 스타에 나왔을 때 김수용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서류상에 직업은 '코미디언'으로 적었지만 감자골 사태로 모든 방송에서 하차는 했기 때문에 현재 출연 중인 프로그램도 없고, 따라서 수입도 없기에 미국 대사관 관계자가 미국에 가서 불법 체류로 눌러앉을 가능성이 많다고 자체 판단하여 거부했다고 이야기했다. 아마 상기된 '마약 체크' 내용은 예능용 에피소드일 확률이 높다. 그래도 본인은 나름 캐나다까지 넘어간 뒤 골프장을 통해서 밀입국을 시도하려다가 실패하고 멕시코 경유로 밀입국하는 루트를 찾았다고 한다. 다만 너무 위험해서 포기하고 그냥 귀국했다고...[11]

감자골 멤버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3사 코미디언 협회에서 제명당하고 한동안 방송계를 떠나 있었다. 이렇게 이들은 소리소문 없이 묻히나 했지만...

3. 제명 이후

파일:감자골1.jpg

미국으로 유학을 간 김국진과 김용만은 이것저것 해 보다가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때인 1994년에 귀국하여 2000년대 초반까지 MBC에서 활동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으며[12] 군복무를 마친 박수홍은 전역 후 SBS와 MBC에서 활동하며 비록 앞의 둘만큼은 아니었지만 역시 전성기를 보냈다.[13]

반면 비자 문제로 미국행이 좌절되고 이미 군대도 갔다 온 김수용은 선배들의 핍박을 감수하면서 KBS에 복귀했는데 단역 위주로 활동하다가 어느 정도 상황이 나아지자 MBC로 이적하면서 나름대로 괜찮은 활동을 했다. 그리고 수드래곤이 되셨지.

이후 박수홍1997년 시트콤 마주보며 사랑하며로, 김용만2002년 '김용만·박수홍의 특별한 선물'로, 김국진2003년 일요일은 101%로 KBS에 복귀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KBS 코미디는 1991년 말 SBS 개국에 이은 2차 타격을 받으며 한동안 암흑기에 빠지고 말았고,[14] 이후 KBS 희극인실에서는 공채 개그맨의 방송사 전속 기간을 2년으로 정하고 데뷔 3년 차부터 연예기획사와의 자유로운 계약과 각 방송사 자유 출연을 허용했다.

4. 관련 문서



[1] 경쟁할 만한 방송국이 매우 적어서 그랬다. 케이블 TV의 등장으로 경쟁자가 대폭 증가하면서 이런 기조가 사라진것.[2] 엄밀히 말하자면 타 방송사 프로그램 출연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이 루트를 타면 본래 출신 방송국에서 하는 프로그램에서 모두 하차하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각오를 하는 것이 암묵의 룰이었다. 1980년에 사라진 TBC처럼 MBC도 KBS로 통폐합했으면 진작에 사라졌을 망할 관행이었다 감자골 사태 이후에도 이영자가 MBC에서 출연하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잠정 휴식'을 선언하고 나서 타 방송사에 정식으로 진출할 수 있었고 신동엽도 1994년 MBC 일요일일요일밤에 MC로 내정되었다가 당시 진행하고 있던 SBS '열려라 웃음천국'과 같은 시간대라는 이유로 SBS에서 반발하여 이적이 불발된 적이 있었다. 이러한 방송사 간 '보이지 않는 벽'이 완전히 사라진 건 이경규가 KBS와 MBC에 동시에 출연하기 시작한 2000년 무렵으로 여겨진다.[3] 다만 SBS가 개국하던 시점부터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개그맨들은 코미디 외의 타 장르 프로그램에 게스트는 물론 MC로도 자유롭게 출연할 수 있었다. 일례로 MBC 싱글벙글쇼의 명콤비 강석-김혜영은 1991년 가을 개편에 각각 KBS 도전 차차차와 가족오락관 MC로 섭외되었고, KBS의 간판 개그맨이었던 김정식도 MBC 퀴즈여행 달려라 지구촌 MC로 발탁되었다.[4] 당시 거물급 대접을 받던 KBS 출신의 심형래, 김미화, 최양락, 이성미, 이봉원 / MBC 출신의 서세원, 정재환, 박미선이 1991년 가을 1년 전속 계약을 한 뒤 SBS로 이적했지만, 심형래는 SBS의 분위기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여 다음 해 2월 KBS로 복귀하면서 전속 계약을 파기했으며 서세원은 건강 악화 때문에 1992년 10월 7일 이후 방송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가 같은 달 26일부터 1년 전속 계약을 체결했으나 약속을 어기고 다음 해 5월 24일에 첫 회가 나간 MBC <전격 팡팡쇼> 진행을 맡아 물의를 빚었으며 이에 SBS는 1993년 6월 11일에 서세원을 상대로 6천만의 위약금 청구 소송을 서울민사지법에 제기했고 결국 서세원은 같은 해 9월 1일에 서울민사지법의 판결에 의해 SBS와의 계약 만료일인 1993년 10월 26일까지 SBS가 허용하지 않는 타 방송사 출연이 금지되어 <전격 팡팡쇼>에서 하차해야 했다.[5] 전속 제도가 축소되고 소속사의 권한이 더 강해진 2010년대 이후에도 상황에 따라 연예인방송국에 갑질을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감자골 멤버들과 KBS 7기 개그맨 공채 동기인 유재석 또한 2010년 약 6억 원에 달하는 출연료를 지급받지 못해 방송국 3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던 사례가 있다.[6] 연예계 선후배 간 경계가 많이 허물어진 지금도 2년차 신인 연예인이 자신들의 인지도, 생계와 이미지가 걸려 있는 거대권력인 방송국을 상대로 보이콧을 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7] 당시 코미디언계에는 그 악명높은 똥군기가 횡행하고 있었으며 신입이 갑자기 잘 나가는 것도 선배들에게 찍히는 이유가 됐다.[8] 신입 주제에 벼락스타가 된 감자골 팀을 못마땅하게 본 선배들이 주도적으로 나섰으며 불려가서 손찌검도 당했다. 파일:감자골 사태1.png[9] 무릎을 꿇고 빌어라는 식으로 다그치는 선배들 앞에서 막내 박수홍이 먼저 제스쳐를 취하려 하자 맏형 김국진이 "가만있어라"며 동생들을 막아선 다음,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강경히 나왔다고 한다.[10] 드라마 요정 컴미에서 쫄병 버그로 연기했었다.[11] 미국 뿐 아니라 나름 체계가 잡혀 있는 나라에서 밀입국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신분조회를 잘 하지 않는 막일 밖에 없고 그나마도 걸리면 각종 고초를 겪다가 강제추방이기 때문에 실패한게 차라리 다행이다.[12] 두 사람 모두 처음에는 KBS로 돌아와 주말 버라이어티 '토요일 7시가 좋다' MC를 맡았으나 1년도 안 되어 MBC와 전속 계약을 맺고 전성기를 맞이했다.[13] MBC로 이적할 때는 이경규가 후배 개그맨들을 통해 막으려고 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신인 개그맨이던 박명수가 뒤에서 조종했다고 예능에서 밝히기도 했다. 단, 김국진과 이경규는 이후에도 함께 방송을 여러개 하였고 해당 발언은 예능에서 웃자고 발언한 것으로 보이며 심하게 반대한 것은 아닌 듯.[14] 1994년 KBS를 통해 인기 개그맨이 된 조혜련이 바로 이듬해 MBC로 이적한 것이 이러한 상황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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