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7-03 11:03:53

이적(가수)/음악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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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995~1996년: 패닉으로 데뷔 및 패닉 활동3. 1999~2004년: 첫 번째 솔로 활동 및 긱스 활동4. 2005~2010년: 패닉의 귀환, 다시 솔로 활동5. 2013~2014년: 5집 <고독의 의미> 발매 및 토이 7집 참여6. 2015~2016년: 소극장 전국 투어와 응답하라 1988 OST 참여7. 2017~2019년: 미니 앨범 발매8. 2020년: <당연한 것들> 싱글 발매 그리고 6집 발표

1. 개요




이적은 작은 흔적이라고 말했지만, 노래로 남긴 그의 발자취는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다.
GQ Korea 2020년 10월 28일 기사

2. 1995~1996년: 패닉으로 데뷔 및 패닉 활동

1995년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김진표와 함께 패닉으로 데뷔했다. 정확히 말하면 1994년에 A-Teen이라는 그룹으로 먼저 데뷔했지만 앨범 안에서의 비중이 워낙 적어 언급이 안 되는 듯. 당시 친구 녹음 도와주려고 왔다가 데모 테이프를 들은 들국화의 최성원이 발탁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그룹의 또 다른 멤버가 바로 훗날 이브의 멤버로 활동하게 되는 G.고릴라. 기사

참고로 이적과 김진표 둘 다 잘나가는 집안인 데다 집안끼리 사이가 돈독하다. 공부 잘하는 이적에게 김진표 공부 좀 가르쳐 달라고 맡겨놨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음악의 길로 갔다고 밝혔다. 후에 김진표가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 추억하길 이적은 남들 다 할 거 다 하고 놀 거 다 놀면서 늘 공부는 잘해 조금 재수 없었다고 한다. 가출하고 싶으면 하라고 얘기하면서 이적은 좋은 성적을 받아 학교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 얄미웠다고 한다.

당시 전곡을 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편곡했다는 신인답지 않은 모습과, 여기에 이적의 학벌[1], 서울대에서 독문학을, 이대에서 여성학 박사 학위를 받은 어머니[2]의 여성주의 운동 배경 등이 더해지면서 그는 단순한 가수가 아닌, 의식있는 아티스트이자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져 주는 아티스트의 한 명으로 인식된다.

그렇지만 서울대 사회학과 선배들은 이적이 사회적 메세지를 주는 엘리트 가수 평을 받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90년대 초 술자리에서 서태지 노래 등 대중가요를 불러제껴 "그냥 강남출신 날라리"로 생각했다는 것. 참고로 서울대 사회학과는 2000년 전후까지도 술자리에서 민중가요 부르고 놀았다.

패닉 1집 타이틀곡인 '아무도'는 정말 아무도 모르게 묻혔으나, 수록곡인 달팽이가 가요 차트에서 여러 번 1위를 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후속곡인 왼손잡이도 10위 권까지 갈 정도로 히트를 쳤다.

1996년에는 정규 2집 <>이라는 앨범을 냈는데, 앨범 디자인부터 음악 자체까지 완전 파격적이었던 터라 여러모로 사회적인 충격을 주었다. 참고로 패닉 2집은 한국의 명반 100위 중 하나로 선정된 바가 있으며 활동곡인 <UFO>가 중위권까지 들면서 선전했다.

이후 1997년 전람회김동률과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을 결성해서 카니발 1집 'Carnival'을 발표했다. 대표곡은 그땐 그랬지, 거위의 꿈, 비누인형 등이 있다. 이 중 거위의 꿈과 비누인형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3. 1999~2004년: 첫 번째 솔로 활동 및 긱스 활동

1999년 패닉의 3집 'Sea Within' 이후 잠정적으로 패닉 활동을 중단하고 둘은 각자 개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솔로 1집 'Dead End'를 발표하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실패한다. 이 솔로 1집은 이적 본인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앨범이라고 한다. 원래 패닉 활동을 정리하고 긱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동안에 써 놓은 곡 중 패닉에도 긱스에도 사용하지 못할 것 같은 자투리 곡들이 아까워서 가벼운 마음으로 냈는데 예상보다 팬들의 관심이 폭발해서 좀 더 정성을 들일걸 하며 후회했다는 모양이다.

이후 이적은 솔로 앨범과는 별도로 정원영, 정재일, 강호정, 한상원, 이상민과 함께 6인조 밴드 '긱스(Gigs)'를 조직하여 활동했으며, 2000년까지 2장의 앨범을 냈다. 한 인터뷰에서 긱스 활동이 자신에게 준 영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긱스 활동으로부터 나는 '보컬'을 얻었다."라고 얘기했다.

2001년에는 유희열의 원맨 프로젝트 밴드 토이의 정규 5집 'Fermata'의 '모두 어디로 간 걸까'의 보컬을 맡았다. 바로 전 해에 데뷔한 성시경과 함께 이 앨범에 투입된 토이의 객원보컬로, 이후 이적은 2014년까지 토이의 객원보컬로 자주 참여하고 있다. 또한 이 해 그는 김동률의 3집 앨범 귀향에, 4번 트랙 '우리가 쏜 화살은 어디로 갔을까' 의 작사와 피처링으로도 참여한다. 본인의 활동보다 피처링 활동으로 대중과 간접적으로 만난 한 해다.

이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그는 평발이다.), 서초구청에서 공익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앨범 준비를 했고, 소집 해제 후 2003년에 '하늘을 달리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동갑내기 친구 김윤아과의 듀엣곡인 음산한 분위기의 '어느 날' 등이 담겨 있는 솔로 2집, 2적을 발표했다. 성적은 약 80000장 정도로 동일한 날에 발매한 김진표 4집보다 좀 덜 팔린 정도로 뭐 그저 그랬다. 이 시기가 불법 음원 때문에 음반시장이 침체되던 시기긴 하지만... 이후 드라마 좋은사람의 OST인 방랑자(데프콘 피처링)를 불렀다(작사도 함).

4. 2005~2010년: 패닉의 귀환, 다시 솔로 활동

2005년에는 김진표와 함께 7년 만에 패닉 4집 '04'를 발표.

2007년에는 '다행이다'를 타이틀곡으로 발표한 솔로 3집 '나무로 만든 노래'가 2008년 제5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최우수 음반(팝), 최우수 노래(팝) 부문에서 상을 받으며 4개 부문 수상이라는 기염을 토한다. '다행이다'는 원래는 1절 정도만 있는 소품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김동률이 듣더니 메인으로 밀라고 해서 2절을 만들어 밀었다고 한다. 김동률은 로열티를 달라고 하는데 이적은 무시하고 있다고. 카니발 콘서트에서는 김동률이 부르기도 했다.

2009년에는 GMF 2009의 헤드라이너로 선정되었으며, '최고의 음악', '최고의 순간' 2개 부문을 수상했다. 2009년 11월 첫째 주에 있었던 서울대 사회학과가 주관한 "선배와의 대화"라는 초청강연을 통해 2010년 목표로 솔로 4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0년 9월 30일에는 자신이 전곡을 직접 작사/작곡/편곡한 솔로 4집, 사랑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 모든 곡이 사랑 관련 노래라 후술할 이유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네이버 오늘의 뮤직 2010년 10월 2주 '이주의 발견 - 국내' 앨범에 선정 및 꽤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2010 결산 올 해의 국내 앨범 10위에도 랭크되었다. 좋아하는 팬들 역시 많지만 긱스와 패닉 시절의 똘끼 넘치던 모습이 그립다는 팬들도 있다.

5. 2013~2014년: 5집 <고독의 의미> 발매 및 토이 7집 참여

2013년 11월 15일, 정인과 타이거JK가 피처링에 참여한 솔로 5집 '고독의 의미'가 발매됐다. 타이틀곡인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은 발매 4일만에 음원사이트 1위를 석권하는 희한한 흥행패턴을 보였으며, 11월 29일 뮤직뱅크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4년 11월 18일, 토이 정규 7집 'Da Capo'에 'Reset'라는 곡의 객원 보컬을 맡았다. 7집 수록곡 중 가장 힘이 넘치는 곡이며, 타이틀곡인 "세 사람"(Vo. 성시경), 그리고 "너의 바다에 머무네"(Vo. 김동률) 등 곡과 함께 상위 차트를 휩쓸고 있다. 다만 유희열의 곡답게 곡 자체가 빠르고 높다.

6. 2015~2016년: 소극장 전국 투어와 응답하라 1988 OST 참여

올해도 3월 한 달간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소극장 공연을 중심으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2016년 초까지 공연 스케쥴이 잡혀있다.

또한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OST에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곡을 리메이크한 곡으로 참여했다. 편곡은 물론 기타, 피아노 연주까지 담당했고 오혁이 리메이크한 이문세의 소녀와 같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드라마가 끝난지 1달 가까이 지난 2016년 2월까지 차트 10위권 안에 있다... 결국 2016년 멜론 연간차트 10위에 랭크하게 된다.

7. 2017~2019년: 미니 앨범 발매

12월 6일, 개인 페이스북 및 트위터 계정으로 12월 14일 오후 6시에 <흔적 part.1>을 공개한다고 게시글을 올렸고, 12월 12일, 나침반이라는 티져가 공개되었다.

라이브 원 인터뷰에서 밝히길, 2018년 3월경 <흔적 part.2>가 나온다고 했지만 감감무소식. 나중에 이적 홈페이지에 찬바람이 불어올 때쯤 나온다고 한다. 2019년 3월 2일, SNS를 통해 <흔적 part.2>가 이번 달 안에 나온다고 밝혔다. <흔적 part.1>이 공개된 지 1년 3개월 만이다.하지만 이에 대한 활동은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8. 2020년: <당연한 것들> 싱글 발매 그리고 6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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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6집을 준비하고 있으며 믹스 3곡을 남긴 나머지곡들은 전부 녹음을 끝마쳤다는 소식을 전했다. # 5월 12일 라디오 김이나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밝힌 바로는 가을에 발매 예정이라고 한다.

11월 11일에 정규 6집 <Trace>의 발표되었다. 타이틀곡은 "돌팔매".[3]


[1]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92학번, 동 학과 00학번인 장기하의 8년 선배가 된다. 참고로 둘 다 빠른 년생이다.[2] 이적이 데뷔하기 전 이미 여성계에서 명망있는 학자였다.[3] 김진표와 15년만에 협업을 했다! 패닉 25주년 기념인 것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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