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2:19:03

동구(대전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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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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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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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행정동 법정동
<colbgcolor=#bdb76b> 중앙동 {{{#!wiki style="margin: -16px -11px" 원동 정동 중동 소제동 신안동 }}}
신인동 {{{#!wiki style="margin: -16px -11px" 신흥동 인동 }}}
효동 {{{#!wiki style="margin: -16px -11px" 효동 천동
구청
가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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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암1동 {{{#!wiki style="margin: -16px -11px;" 판암동 삼정동 }}}
판암2동 판암동
대동 대동
용운동 용운동
자양동 자양동
가양1~2동 가양동
용전동 용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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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동 홍도동
삼성동 삼성동
대청동 {{{#!wiki style="margin: -16px -11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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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동 {{{#!wiki style="margin: -16px -11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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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자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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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ordercolor=#fff,#191919><tablebgcolor=#fff,#191919>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
동구
東區
Dong-gu
}}}
<colbgcolor=#2d2926><colcolor=#fff> 구청 소재지 동구청로 147 (가오동)
광역자치단체 대전광역시
하위 행정구역 16[1]
면적 136.68㎢
인구 216,872명[2]
인구밀도 1,592.24명/㎢[3]
구청장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박희조 (초선)
구의회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5석[4]

5석[5]
시의원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3석[6]
국회의원
장철민 (재선)
지역번호 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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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징3. 지역 특징4. 인구5. 경제
5.1. 금융
6. 의료기관7. 정치8. 하위 행정구역9. 여담10. 출신 인물11.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파일:attachment/81343_55805_2828.jpg
대전 동구청
대전광역시의 동부에 위치한 자치구이자 중구와 함께 대전의 역사를 함께한 두 자치구 중 한 곳이다. 대전의 자치구들 중 네 번째로 인구가 많고, 유성구 다음으로 면적이 넓다. 북으로는 대덕구, 동으로는 옥천군, 남으로는 금산군, 서쪽으로는 중구와 접해 있다. 대전역 대전복합터미널한국철도공사, 국가철도공단 본사인 철도기관 공동사옥이 있다.

둔산신도시유성구 개발의 영향으로 대덕구와 함께 도심 공동화를 경험하고 있는 자치구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대전의 오랜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한 곳이다. 동구에서 담당하던 중심지 기능이 1990년대부터 서구의 신시가지로 옮겨졌다는 면에서 광주광역시의 경우와 비슷하다.

거대한 유리궁전 구청이 있다. 대전에서 세수가 가장 적게 걷히는 지역인데도 전 구청장인 이장우가 자기 치적을 위해 구청을 웬만한 시·도청 못지않게 크고 화려하게 지어놓는 실책을 범했고[7][8], 그런 탓에 동구는 대전의 다른 자치구들에 비해 빚이 많고 재정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9]

이후 2018년 부임한 황인호 구청장 체제에서 공무원에게 수당을 전액 지급하면서도 빚을 조기 상환하였고, 예산 규모로 대전 5개 구 중 유성구를 제치고 2위에 오르는 등 현재는 많이 호전된 상태이다.

지역에 있는 대학으로는 대전대학교, 우송대학교, 우송정보대학, 대전보건대학교, 한국폴리텍Ⅳ대학이 있다. 때문에 빌라들이 엄청나게 많다.

2. 상징

동구의 CI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
동구민을 위한 혁신의 바람 동구가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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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2d2926> 파일:동구(대전광역시) 구기(1995-2000).svg
1995년 ~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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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의 브랜드 슬로건
파일:대전 동구 BI.png
자유로운 공직 분위기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로바로 소통하고, 구민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한 정책을 적기에 바로 추진해 동구를 새롭게 구민을 신나게 만드는 행정을 추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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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2d2926> 파일:동구(대전) BI.png 2022년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이 나오기 전까지 사용된 슬로건 }}}}}}}}}}}}}}}
동구의 구정 슬로건
파일:대전 동구 구정 슬로건.png
'~를 새롭게, 구(시,군)민을 신나게'라는 패턴은 대전 동구 말고도 민선 8기 국민의힘 지자체 상당수[10]가 걸어놓은 구(시,군)정 슬로건이기도 하다. 즉 아류작.#

3. 지역 특징

작은 마을이던 한밭이 대전역으로 경부선 철도가 들어오면서 대전광역시로 급성장을 한 점으로 봤을때 동구, 그 중에서도 소제동, 정동, 중동, 원동, 신안동은 대전 역사의 출발점과도 같은 기념비적인 지역이다. 원동과 정동 각 일부가 과거 대전리였다.

하위 법정동명에 유난히 외자 이름이 많은 동네이기도 하다. 중동, 정동, 인동, 효동, 원동, 대동, 천동 등.[11][12] 또한 삼성동도 있는데, 서울 강남구삼성동과는 분위기가 매우 다른 동네다. 자양동, 가양동도 마찬가지다. 용운동에는 대전대학교가 있는데 유명 야구선수 김태균류현진이 이 학교 출신이며, 한 때 음치개그로 잘 나가던 개그맨 김미연도 이 학교 무용학과 출신이다.

옥천군 방향으로 경부선 세천역이 있는데, 이 역의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로. 대청동(구 동면) 및 산내동(구 산내면)은 1989년 대덕군 폐지와 함께 면에서 동으로 전환된 지역으로, 아직까지 시골 지역으로 남아있다. 산내동은 산내 포도가 유명하다. 산내동 중 낭월동엔 천주교 공동묘지가 있으며, 한국전쟁의 비극인 '산내 양민학살'의 현장도 이 곳에 위치해 있다.

4. 인구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대전광역시 동구 인구 추이
(1980년~현재)
1977년 9월 1일 대전시 동부출장소 + 북부출장소 → 대전시 동구 설치
1980년 272,812명
1983년 2월 15일 충청남도 대덕군 회덕면 → 대전시 동구 편입
1985년 337,884명
1989년 1월 1일 충청남도 대전시 → 대전직할시 승격
舊회덕면 지역, 대덕군 신탄진읍, 오정동·대화동 지역을 대덕구로 분리
1990년 302,551명
1995년 272,705명
2000년 247,381명
2005년 232,673명
2010년 248,835명
2015년 239,579명
2020년 223,021명
2024년 1월 217,079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5만 명
행정동별 인구 통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효동 22,903명
용운동 21,410명
용전동 20,158명
산내동 19,622명
가양2동 18,949명
신인동 15,289명
대동 14,120명
삼성동 13,272명
가양1동 12,952명
판암1동 12,060명
홍도동 11,303명
성남동 11,021명
자양동 10,877명
판암2동 7,985명
중앙동 3,848명
대청동 2,268명
2023년 11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그래프 최대 값은 2.5만 명
}}}}}}}}} ||

===# 행정동별 인구 #===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중앙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원동, 신안동, 소제동, 정동, 중동(법정동) → 원동, 신안동, 소제동, 정동, 중동(행정동)
1966년 32,628명(원동 3,712명 + 신안동 8,318명 + 소제동 8,315명 + 정동 5,658명 + 중동 6,625명)
1970년 37,537명(원동 4,014명 + 신안동 9,042명 + 소제동 11,429명 + 정동 6,208명 + 중동 6,844명)
1975년 38,356명(원동 3,243명 + 신안동 8,535명 + 소제동 13,633명 + 정동 6,709명 + 중동 6,236명)
1980년 37,331명(원동 2,673명 + 신안동 9,157명 + 소제동 14,725명 + 정동 5,154명 + 중동 5,622명)
1985년 32,331명(원동 2,307명 + 신안동 7,766명 + 소제동 13,985명 + 정동 3,961명 + 중동 4,312명)
1990년 24,379명(원동 1,594명 + 신안동 6,103명 + 소제동 9,892명 + 정동 3,371명 + 중동 3,119명)
1995년 14,057명(원동 806명 + 신안동 3,974명 + 소제동 6,245명 + 정동 1,821명 + 중동 1,211명)
1998년 12월 14일 원동 + 정동 + 중동 → 중앙동 합동
대1동+ 신안동 → 대신동 합동[13]
2000년 14,182명(중앙동 2,761명 + 대신동 6,695명 + 소제동 4,726명)
2005년 11,646명(중앙동 2,072명 + 대신동 5,656명 + 소제동 3,918명)
2008년 9월 1일 중앙동 + 대신동 일부 + 소제동 → 중앙동 합동
2010년 9,208명
2015년 6,512명
2020년 4,963명
2023년 9월 3,888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만 명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효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효동 + 천동 + 가오동 → 효동 신설
1966년 9,073명
1970년 12,824명
1975년 16,565명
1980년 18,095명
1985년 19,138명
1990년 21,218명
1995년 14,843명
2000년 16,132명
2005년 13,597명
2010년 26,528명
2015년 28,583명
2020년 25,338명
2023년 9월 23,044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만 명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신인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인동, 신흥동(법정동) → 인동, 신흥동(행정동)
1966년 17,358명(인동 9,603명 + 신흥동 7,755명)
1970년 19,723명(인동 10,023명 + 신흥동 9,700명)
1975년 22,017명(인동 10,399명 + 신흥동 11,618명)
1980년 24,175명(인동 10,942명 + 신흥동 13,233명)
1985년 22,060명(인동 9,512명 + 신흥동 12,548명)
1990년 20,344명(인동 9,469명 + 신흥동 10,875명)
1995년 14,974명(인동 7,095명 + 신흥동 7,879명)
2000년 12,301명(인동 5,928명 + 신흥동 6,373명)
2005년 10,599명(인동 5,526명 + 신흥동 5,073명)
2008년 9월 1일 인동 + 신흥동 → 신인동 합동
2010년 14,248명
2015년 13,002명
2020년 12,322명
2023년 9월 15,315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5만 명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판암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판암동 + 삼정동 → 판암동 신설
1966년 6,226명
1970년 7,986명
1975년 10,767명
1980년 13,115명
1985년 14,359명
1990년 17,025명
1992년 9월 1일 판암동 → 판암1동, 판암2동 분동
1995년 15,049명
2000년 14,778명
2005년 13,136명
2010년 11,470명
2015년 10,325명
2020년 12,503명
2023년 9월 12,083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75만 명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판암2동 인구 추이
(1995년~현재)
1992년 9월 1일 판암동 → 판암1동, 판암2동 분동
1995년 20,346명
2000년 17,280명
2005년 14,152명
2010년 12,337명
2015년 10,550명
2020년 8,811명
2023년 9월 8,006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용운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용운동(법정동) → 용운동(행정동)
1966년 4,693명
1970년 6,580명
1975년 8,409명
1980년 9,309명
1985년 12,994명
1990년 26,574명
1995년 22,943명
2000년 19,690명
2005년 23,147명
2010년 21,895명
2015년 20,293명
2020년 18,610명
2023년 9월 21,439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5만 명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대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대동 + 자양동 → 대동 신설
1966년 19,219명
1970년 7월 1일 대동 → 대1동, 대2동, 자양동 분동
1970년 20,515명(대1동 7,998명 + 대2동 12,517명)
1975년 24,921명(대1동 8,692명 + 대2동 16,229명)
1980년 28,808명(대1동 8,850명 + 대2동 19,958명)
1985년 29,163명(대1동 8,920명 + 대2동 20,243명)
1990년 21,432명(대1동 6,924명 + 대2동 14,508명)
1995년 15,416명(대1동 4,749명 + 대2동 10,667명)
1998년 12월 14일 대1동 + 신안동 → 대신동 합동
대2동 → 대동 개칭[14]
2000년 9,231명
2005년 8,150명
2008년 9월 1일 대신동 일부 + 대동대동 합동
2010년 12,120명
2015년 13,280명
2020년 15,175명
2023년 9월 14,142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만 명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자양동 인구 추이
(1970년~현재)
1970년 7월 1일 대동 → 대1동, 대2동, 자양동 분동
1970년 5,629명
1975년 8,383명
1980년 10,639명
1985년 15,254명
1990년 18,089명
1995년 17,871명
2000년 15,896명
2005년 15,320명
2010년 12,352명
2015년 11,151명
2020년 10,582명
2023년 9월 10,950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가양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가양동 + 용전동→ 가양동 신설
1966년 9,635명
1970년 13,582명
1975년 20,547명
1979년 5월 1일 가양동 → 가양동, 용전동 분동
1980년 31,186명
1982년 9월 1일 가양동 → 가양1동, 가양2동 분동
1985년 25,884명
1990년 26,330명
1995년 21,042명
2000년 18,000명
2005년 16,386명
2010년 14,594명
2015년 15,440명
2020년 13,994명
2023년 9월 13,014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25만 명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가양2동 인구 추이
(1985년~현재)
1982년 9월 1일 가양동 → 가양1동, 가양2동 분동
1985년 18,341명
1990년 23,624명
1995년 27,299명
2000년 25,506명
2005년 24,353명
2010년 23,418명
2015년 21,401명
2020년 18,475명
2023년 9월 18,996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75만 명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용전동 인구 추이
(1980년~현재)
1979년 5월 1일 가양동 → 가양동, 용전동 분동
1980년 7,764명
1985년 13,472명
1990년 19,262명
1995년 17,444명
2000년 21,662명
2005년 22,616명
2010년 21,379명
2015년 21,174명
2020년 20,607명
2023년 9월 20,184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성남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성남동(법정동) → 성남동(행정동)
1966년 15,676명
1970년 7월 1일 성남동 → 성남1동, 성남2동 분동
1970년 20,872명(성남1동 10,122명 + 성남2동 10,750명)
1975년 24,233명(성남1동 11,810명 + 성남2동 12,423명)
1980년 26,390명(성남1동 13,175명 + 성남2동 13,215명)
1985년 27,414명(성남1동 14,105명 + 성남2동 13,309명)
1990년 22,940명(성남1동 10,994명 + 성남2동 11,946명)
1995년 16,094명(성남1동 7,031명 + 성남2동 9,063명)
2000년 13,225명(성남1동 5,741명 + 성남2동 7,484명)
2005년 14,593명(성남1동 5,350명 + 성남2동 9,243명)
2008년 9월 1일 성남1동 + 성남2동 → 성남동 합동
2010년 12,273명
2015년 13,827명
2020년 12,341명
2023년 9월 11,030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75만 명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홍도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홍도동(법정동) → 홍도동(행정동)
1966년 5,919명
1970년 7,565명
1975년 8,587명
1980년 10,779명
1985년 14,265명
1990년 16,620명
1995년 14,952명
2000년 15,356명
2005년 13,594명
2010년 13,894명
2015년 12,477명
2020년 11,051명
2023년 9월 11,306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75만 명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삼성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삼성동(법정동) → 삼성동(행정동)
1966년 20,213명
1970년 7월 1일 삼성동 → 삼성1동, 삼성2동 분동
1970년 20,815명(삼성1동 14,411명 + 삼성2동 6,404명)
1975년 25,925명(삼성1동 15,767명 + 삼성2동 10,158명)
1980년 29,661명(삼성1동 16,632명 + 삼성2동 13,029명)
1985년 30,821명(삼성1동 15,516명 + 삼성2동 15,305명)
1990년 26,847명(삼성1동 11,298명 + 삼성2동 15,549명)
1995년 21,546명(삼성1동 8,619명 + 삼성2동 12,927명)
2000년 17,973명(삼성1동 6,652명 + 삼성2동 11,321명)
2005년 15,272명(삼성1동 5,107명 + 삼성2동 10,165명)
2008년 9월 1일 삼성1동 + 삼성2동 → 삼성동 합동
2010년 20,003명
2015년 17,064명
2020년 14,590명
2023년 9월 13,325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25만 명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대청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1,176명
1970년 10,836명
1975년 10,675명
1980년 5,707명
1985년 5,441명
1989년 1월 1일 대덕군 동면 → 대전직할시 편입 및 폐지
대덕군 동면 → 추동, 세천동 분리
1990년 4,658명(추동 2,067명 + 세천동 2,591명)
1995년 3,972명(추동 1,780명 + 세천동 2,192명)
1998년 12월 14일 추동 + 세천동 → 대청동 합동
2000년 3,310명
2005년 3,064명
2010년 3,129명
2015년 2,907명
2020년 2,491명
2023년 9월 2,286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파일:동구(대전광역시) CI.svg산내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0,588명
1970년 10,811명
1975년 12,470명
1980년 13,088명
1985년 14,777명
1989년 1월 1일 대덕군 산내면 → 대전직할시 편입 및 폐지
대덕군 산내면 → 산서동, 산내동 분리
1990년 13,509명
1995년 14,857명
2000년 12,859명
2005년 13,048명
2010년 19,987명
2015년 21,593명
2020년 21,168명
2023년 9월 19,679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5. 경제

대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힌다. 사실 원래부터 낙후된 동네는 아니었고, 오히려 동구는 대전에서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서구유성구 일대가 개발되면서 동구는 점점 쇠퇴하기 시작한다. 정부대전청사대전광역시청 등 관공서와 공공기관, 기업체와 상점들이 둔산신도시 등지로 이동하며 기존 원도심인 동구가 쇠퇴하게 된 것이다.[15]

그나마 다행인 건 대전역대전복합터미널, 철도기관 공동사옥이 동구에 소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외부인들로 수입을 벌어들이는 형국이다. 이후 이 일대가 혁신도시로 지정되어 재개발이 단계적으로 진행 중이어서 앞으로 미래가 그리 어둡지는 않은 편이다.

5.1. 금융

대전 동구에 위치한 금융기관[괄호]
제1금융권[괄호]
국가기관
대전우체국 (9)
특수은행
수협은행 (1) 농협은행(중앙회) (4)
시중은행
신한은행 (3) 우리은행 (2)
SC제일은행 (1) 하나은행 (7)
국민은행 (2)
제2금융권(상호금융)[괄호]
농업협동조합
동대전농협 (6) 회덕농협 (1) 산내농협 (2) 대전축산농협 (2)
대전충남우유농협 (3)
새마을금고
홍도동새마을금고 (3) 성남동새마을금고 (2) 동대전새마을금고 (3) 가양2동새마을금고 (2)
가양1동새마을금고 (1) 우리새마을금고 (2) 대전동부새마을금고 (4) 소제새마을금고 (1)
예스새마을금고 (2) 중앙동새마을금고 (2) 삼성동새마을금고 (2) 한마음새마을금고 (1)
신용협동조합
대전한일신용협동조합 (2) 대전우리신용협동조합 (1)[19] 대전동부신용협동조합 (2) 한밭신용협동조합 (2)
문창신용협동조합 (1) 대전체신신용협동조합 (1) 혜화학원신용협동조합 (1) 점진신용협동조합 (1)
혜화학원신용협동조합 (1) 새울신용협동조합 (2)

6. 의료기관

종합병원인 대전한국병원(220병상) 말고는 특별한 의료기관은 없다. 다만 동구와 같은 구도심인 중구에 대학병원 2개가 있어 이용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다.

7.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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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하위 행정구역

대청동은 舊 대덕군 동면, 산내동은 舊 대덕군 산내면이었으며, 나머지 지역은 1989년 직할시(광역시) 승격 전 대전시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8.1. 중앙동

관할 법정동은 소제동·신안동·원동·정동·중동이다. 대전군 대전읍에 속했다. 원래 각 법정동별로 행정동이 있었으나 1998년 원동·정동·중동이 합병되어 중앙동이 출범하였고, 2008년에 소제동·신안동(대신동에서 편입함)을 흡수하여 지금에 이른다. 인구는 3,845명.[P]

대전역이 있는 중동, 북쪽으로 정동, 동쪽으로 소제동과 신안동, 남쪽으로 원동이다. 대전이 경부선 철도를 통해 성장한 도시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곳은 그야말로 대전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동네다.

역주변이 다 그렇듯 이곳 또한 상당히 낙후되어 있고, 정동쪽 골목으로는 쪽방촌이 형성되어 있다. 대전역만 나오면 아줌마들이 붙잡으며 호객행위를 하는것도 정동과 중동의 쪽방촌 골목인데, 웬만하면 따라가지 말자. 특히, 소제동쪽으로 가면 미칠듯한 괴리감이 드는데 소제동쪽이 역 뒤에 있다보니 대전역 건물이나 그 근처에 우뚝 세워진 건물과 1960~70년에 지어진 건물이 부조화를 이뤄서 그런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6.25 전쟁 당시 대전 점령 사진으로 나오는 지역이 바로 이 곳. 참고로 여기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이곳의 쪽방촌들을 밀어내고 혁신도시를 세울 계획이 잡혀있는데 쪽방촌 주민들은 당연히 비대위까지 세우며 반발하고 있다.

대전역이 있고, 과거 구도심의 흔적 등도 있어 동구 도심 지역, 더 나아가 대전시내 도심 지역들중 보수세가 제일 강하다. 이곳은 박근혜 탄핵 뒤 치뤄진 19대 대선에서 이 지역은 홍준표 후보가 승리했으며, 보수정당이 최악의 참패를 당했던 7회 지방선거 대전시장 선거에서도 이 지역은 박성효 후보가 승리했다. 심지어 박성효 후보는 당시 대전 전체 행정동에서 동구 중앙동, 대청동, 서구 기성동 단 3곳만 승리했는데, 대청동과 기성동이 대전에 단 두 곳밖에 없는 미개발지인 것을 감안하면 대전 시내지역에서는 이곳만 유일하게 승리했다. 다만 20대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이곳에서는 상위 10위안에 들지 못해 대전 도심에서 보수성향이 제일 강하다고 보기에는 조금 애매하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첫 지방편을 찍었던 청년구단이 바로 이 동네에 있다.

8.2. 신인동

관할 법정동은 신흥동·인동이다. 대전군 대전읍에 속했다. 원래 법정동별로 행정동이 따로 있었으나 2008년에 통합되었다. 인구는 15,282명.[P]

대전역에서 원동을 지나 옥천방향으로 틀면 신흥동, 금산방향으로 틀면 인동이 나온다. 인동은 대전시 초창기 때 가장 번성했던 동네로 지금도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신흥동엔 야구로 유명한 충남중학교가 있으며, 이전에 있었던 판자촌을 대거 철거하고 신흥 SK뷰(1,588세대), 이스트시티 2단지(636세대)와 같은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는 등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상태. 그 외 아파트단지로는 어진마을(813세대), 인동현대아파트(728세대), 신흥마을(721세대)이 있다. 대덕구 법동에 있던 대전동부경찰서가 이 곳에 신축하여 이전했다. 신흥동버스정류소에서 옥천, 금산, 보은방면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학교는 신흥초, 충남중이 있다.

8.3. 효동

관할 법정동은 가오동·천동·효동이다. 효동의 경우 대전군 대전읍에 속했고, 천동은 대전군 외남면에 속했다가 1932년 대전읍에 편입되었다. 가오동은 대덕군 외남면에 속했다가 1940년 산내면으로 넘어갔고 1963년 대전시에 편입되었다. 인구는 22,857명[P]으로 동구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대전직할시 출범 이전에는 대덕군 산내면의 경계지역에 있는 변두리 동네였고, 2000년대까지만 해도 가오중과 대전맹학교, 대전혜광학교밖에 없었고 그 주변은 논밭이었다. 요즘은 효동 바로 옆동네 신흥동에 신흥역이 개통되고 천동 재개발로 아파트단지가 생기고 가오동에도 소규모 신도시가 조성되어 점점 뜨더니 홈플러스 대전가오점과 CGV 대전가오[23]가 생겼고 심지어 스타벅스가 오픈했다. 특히 중앙동에서 강탈해온 동구청이 이곳 가오동에 위치해 새로운 동구의 중심지로 뜨고 있다.[24] 가오동의 경우 2006년부터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었고 이후로도 아파트가 계속 생기며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관내 아파트단지는 은어송마을1,3~6단지, 휴먼시아1~2단지(1,709세대), 효동현대아파트(1,056세대), 위드힐아파트(960세대), 천동주공아파트(560세대) 등이 있으며 리더스시티 개발이 완료되면 인구가 더 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거지역으로 개발되면서 혜광학교와 맹학교가 더 외딴 곳으로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1995년부터 2012년 10월까지 원도심의 마지막 방송국이자 희망이었던 대전방송 사옥이 대전천변 효동에 있었다. TJB의 모기업인 우성사료의 본사 부지였는데, 우성사료는 본사를 오정동으로 이전하고 기존 본사 사옥을 TJB로 활용하였던 바 있다. 현재 TJB는 도룡동 신사옥으로 이전하였고 구 사옥에 2017년 대전국악방송이 들어섰다.

관내 학교는 가오초, 천동초, 대전가오중, 대전가오고 및 특수학교인 대전맹학교, 대전혜광학교가 있다.

동구에서 신도시로 개발한 몇 안되는 곳이라 그런지 동구 내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높다. 20대 대선때도 다른 지역이 줄줄이 쓸려나가는 와중에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당선인에게 동구 내에서 유일하게 승리한 곳이다.[25]

8.4. 판암1동, 판암2동

관할 법정동 판암동이며, 판암1동에는 법정동 삼정동도 포함한다.
  • 판암1동: 인구는 12,069명.[P] 판암역, 판암차량기지, 통영대전고속도로 판암IC가 있으며 옥천으로 나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다. 옥천로 주변에 있는 주거지역으로 대부분의 인구는 법정동 판암동에 몰려 있다. 아파트단지는 주공아파트1~3차, 삼정 그린코아 포레스트 1~2단지(1,565세대) 등이 있다. 학교는 판암초가 있다.
  • 판암2동: 인구는 7,985명.[P] 황악산 남쪽을 끼고 있는 거주지역이며 황학산 등산로가 있다. 주공아파트단지(4~6차)와 빌라가 있다. 임대 주공아파트가 몰려있어 기초생활수급자가 많이 산다.[28] 학교는 대전대암초등학교, 동신중학교가 있다.

8.5. 대동, 용운동

둘 다 행정동과 법정동이 일치한다. 둘 다 대전군 외남면에 속했으며, 대동은 1931년 대전읍에, 용운동은 1940년 대전부에 편입되었다. 대동의 경우 1972년에 행정동이 1,2동으로 분리되었고, 1998년에는 대1동이 신안동과 합병되어 대신동(대2동은 대동으로 개칭)이 되었다가 2008년에 대동과 대신동이 합병되어 지금에 이른다. 법정동으로 남아 있던 신안동은 중앙동에 편입되어 나갔다. 용운동은 행정동의 변천이 없었다.
  • 대동: 인구는 14,085명.[P]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고 맹인촌도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단독주택과 빌라들이 많은 거주지역이어서 전형적인 달동네 이미지였으나, 대동역이 있는 대동오거리 주변으로 상권이 형성되고 이스트시티1단지(1,345세대), 새들뫼휴먼시아1~2단지(1,272세대), 펜타뷰아파트(767세대) 등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낙후된 이미지는 탈피하였다.[30] 학교는 대동초, 한밭여중, 대전여고가 있다.[31]
  • 용운동: 인구는 21,341명.[P] 일명 용수골이라고 불렸으며, 과거의 낙후된 모습을 싹 갈아엎은 주거지역으로 e편한세상 대전 에코포레(2,267세대), 용방마을주공2~3단지(2,190세대), 용방마을 한화 꿈에그린(641세대) 등 아파트단지들이 많으며 가장 안쪽에 대전대학교가 있다. 학교는 대룡초, 용운초, 대전용운중이 있다.

8.6. 자양동

행정동과 법정동이 일치한다. 대전군 외남면에 속했으며 1935년 출범하는 대전부에 편입되었다. 인구는 10,816명.[P]

동아아파트(590세대)를 제외하면 아파트가 거의 없는 평범한 주거지역으로 우송대학교, 우송정보대학이 있으며 캠퍼스 자체는 동캠퍼스와 서캠퍼스로 나뉘어져 있다.[34] 우송대학교 앞 동대전로를 따라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각급 학교로 동광초, 자양초, 우송중, 동아마이스터고, 우송고와 학력인정 학교인 대전시립중/고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서울특별시 광진구에도 자양동이 있고 심지어 한자명도 똑같다. 그래서 위키백과에서 대전 자양동을 자양동(대전)으로, 서울 자양동을 자양동(서울) 항목으로 구별하고 있다.

8.7. 가양1동, 가양2동

관할 법정동은 가양동이다. 대덕군 외남면에 속했으며 1940년에 대전부로 편입되었다. 1982년에 행정동이 분리되었다. 동대전로를 기준으로 서쪽이 1동, 동쪽이 2동이다.
바로 옆 동네 자양동과 이름만 비슷한 게 아니라 특색 없는 것도 비슷하다. 대전보건대학교한국폴리텍대학 대전캠퍼스가 이 곳에 있다. 그리고 이 동네에 송시열과 관련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우암사적공원[38]과 남간정사가 있다. 여담으로 우암사적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보이는[39] 낡은 한옥 문으로 들어가면 있는 작은 낡은 건물이 남간정사고, 그냥 쭉 올라가면 우암사적공원. 근데 비주얼 차이로 정작 실제 본관인 남간정사는 사람들이 별 관심이 없다.

또한 동부네거리[40] 주변에 신도맨션 아파트가 있는데, 대전 최초의 아파트단지[41]로 준공년월은 1978.12. 그러다보니 최초 입주 당시 대전에서 지갑이 두꺼운 사람이 들어와서 살았다고 한다.[42] 그래서 그 주변은 부자동네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별 볼일 없다. 그 외 동별 주요 시설은 다음과 같다.
가양동과 타 동네를 구분하는 지리적 경계는 고물개봉과 장고개가 있다.
  • 고물개봉〔산〕 - 지금의 신도아파트가 들어선 언덕의 이름. 고물개(고무래의 지역어)로 긁어 모아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고물개봉이라고 하였다.
  • 장고개〔고개〕 - 가양주공아파트(현 대주파크빌아파트)와 대전상업고등학교[43] 사이에 있었다. 가양동에서 자양동을 가려면 이 고개를 넘어야 되며, 이 고개를 넘어 인동시장에 장보러 많이 다녔다 한다. 장을 보러 가기 위해 넘는 고개라서 장고개라고 하였다.

가양초등학교 앞 도로(가양로)는 사실 복개도로다.[44] 이 도로는 가양천을 복개한 것인데, 비래동 가양비래공원에서 송촌동 웰니스병원 뒷편을 지나 가양초등학교를 거쳐 대동천에서 합류한다. 복개 시기는 80년대 이 일대 진행되었던 토지구획사업 시기 이후로 추정된다.

서울특별시 강서구에도 가양동이 있지만 한자 표기는 서로 다르다.[45]

8.8. 용전동

행정동과 법정동이 일치한다. 대전군 회덕면에 속했으며 1963년 대전시에 편입되었다가 1979년 대전시 동구 가양동에서 분리되었다. 인구는 20,167명.[P]

대전광역시 주관문 중 하나인 대전복합터미널이 이곳에 있다. 이전부터 대전IC가 인접하고 고속터미널이 있는 대전에 관문이라는 이점으로 둔산신도시나 원도심만큼은 아니어도 꽤 많은 기업체들이 이곳에 위치해있다. 대표적으로 대전지방국토관리청, 한국전력공사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 CJ제일제당 충청지사, 조선일보 충청지사 등등.

과거 서로 인접해 있던 고속터미널(1979년)과 동부시외터미널(1980년)이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한 터미널 이용객 팽창 및 시설물 노후화로 이용객들의 불편함이 발생하였다. 결국 두 고속/시외버스터미널을 통합해 대전복합터미널이 건설되었으며 2011년 12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서울과 주요 광역시급 노선은 물론이고 전국의 거의 모든 시 단위 도시를 연결한다. 대전복합터미널 본관(서관)의 1층은 고속버스,시외버스 매표창구와 큰 대합실로 이루어져 있고 2층은 신세계스타일마켓, 3~4층에는 이마트[47]가 5~7층에는 주차장이 있다. 구름다리로 연결된 별관(동관)에는 지하1층 박차장, 1층에는 하차장, 2층 대형 서점인 영풍문고 대전점과 3층 CGV 대전터미널점등이 있으며, 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예식장은 아예 건물 확장을 하여 호텔까지 문을 열었다. 복합터미널 승객수가 평일 5만에서 주말은 7만 이상이라고 한다. 터미널 앞 동서대로가 10차선 입구쪽 출입도로는 6차선이다.

터미널과 그 상업시설로 인해 용전동은 대전 동부권의 중심 상권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따른 역효과로 고속버스+시외버스+주차차량+마트고객이 합쳐져 가장 교통체증이 심하다던 서구 괴정동 롯데백화점을 능가하는 헬게이트를 형성하였다.[48]

터미널 주변으로는 유흥업소가 정말로 빽빽하다.[49] 크로스오버 테너 최성봉이 어렸을 적 이 동네 유흥가에서 껌과 박카스를 팔며 살았다. 이 동네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그의 자서전인 '무조건 살아, 단 하나의 삶이니까'를 참고하기 바란다.

다만 이런 유흥가나 번화가스러운 모습은 터미널 주변에 국한되며, 북쪽으로 올라가면 한숲아파트(1,036세대), 신동아아파트(914세대) 등의 아파트, 빌라, 주택이 혼재되어 있는 주거지역이다. 그 중에서도 빌라의 비중이 높은 편. 학교는 용전초가 있다.

8.9. 성남동

행정동과 법정동이 일치한다. 대덕군 외남면에 속했으며 1940년 대전부에 편입되었다. 1970년에 1동과 2동으로 분리되었으나 2008년에 도로 합병되었다. 인구는 11,004명.[P]

용전동 복합터미널 도로 건너편에 있는 동네로, 옛 성남2동을 중심으로 전형적인 달동네 이미지가 남아있다.[51] 옛 성남1동(현.성남동 구성2지구)은 KT를 제외한 모든 통신사에서 비대칭형 동축케이블을 설치해주고 일부 성남로32번안길 뒤에 성남쓰레기장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드물게 있다. 대전 토박이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으나 몇몇 곳이 헐리고 주공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많은 수가 떠났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달동네 철거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스마트뷰(1,115세대) 등 고층 아파트가 재차 들어섰다. 과거 보신탕집, 조그만 사글셋방 비슷한 허름한 1~2층 건물에 만(卍)자 깃발을 걸어놓은 점집, 암자가 흔했던 곳이었던 만큼 토박이들에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동구 유일의 종합병원인 대전한국병원이 있으며 학교는 성남초가 있다.

8.10. 홍도동

행정동과 법정동이 일치한다. 대덕군 외남면에 속했으며 1940년에 대전부로 편입되었다. 인구는 11,281명.[P]

복합터미널에서 한남대학교나 둔산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곳으로, 홍도육교와 가구시장 정도 외에 별 특색은 없다. 1984년 준공된 홍도육교는 33년만인 2017년 철거를 시작하여 2021년 지하차도로 바뀌었다.

8.11. 삼성동

행정동과 법정동이 일치한다. 대전군 외남면에 속했으며 1931년 대전읍에 편입되었다. 1970년에 1동과 2동으로 분리되었으나 2008년에 도로 합병되었다. 인구는 13,222명.[P]

대전역과 상당한 지근거리에 있으나, 도로 하나 차이로 중앙동 5형제로 분류되진 않았다. 하지만 동네분위기는 별 차이 없다. 대신 한밭교육박물관이 이 곳에 있는데 한 때 초등학생들의 주 단골 방문지였으나 지금은… 그리고 바로 그 앞 건물은 박물관이 아니니 조심하자.[54] 한밭 자이(1,063세대)가 가장 큰 아파트단지이고, 주공 삼성타운(631세대), 우송대학교 솔브릿지국제경영대학이 있으며 학교로 동서초, 삼성초, 현암초, 한밭중, 계룡디지텍고가 있다.

8.12. 대청동

관할 법정동은 내탑동·마산동·비룡동·사성동·세천동·신상동·신촌동·신하동·오동·용계동·주산동·주촌동·직동·추동·효평동이다. 구 대덕군 동면과 동일한 지역. 인구는 2,258명.[P]

대청호를 끼고 있어 인구는 그리 많지 않은 미개발지이며 대청호 때문에 개발 자체가 어렵다. 대신 나들이와 등산 코스로 사랑받는 곳. 학교는 동명초, 세천초, 대전동신과학고가 있다.

8.13. 산내동

관할 법정동은 구도동·낭월동·대별동·대성동·삼괴동·상소동·소호동·이사동·장척동·하소동이다. 구 대덕군 산내면의 동쪽 절반에 해당하는 지역. 인구는 19,576명.[P]

대전에서 금산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며, 대청동과는 달리 비교적 개발이 꾸준하게 진행되었다. 시가지는 가오동에 붙어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대성동과 동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낭월동에 형성되어 있으며 아파트단지는 은어송마을 코오롱하늘채 1~2차(1,649세대), 석천들주공아파트(1,072세대), 오투그란데(877세대), 남대전 e편한세상(713세대), 삼익세라믹아파트(633세대), 산내주공아파트(624세대)가 있다. 남대전IC 바로 앞에는 중부권광역우편물류센터가 있다. 학교는 산내초, 산흥초, 은어송초, 대전은어송중소년원인 대산학교가 있다.

대청동과 같이 보수세가 강한 동구 내에서 외곽지역을 끼고 있는 동네이지만, 이곳은 남대전IC 인근에 물류단지도 있고, 대청동과 달리 일부 지역이 개발되고 있어 민주당계 정당이 어느 정도 선전하는 편이다.

9. 여담

2023년 기준 대전 동구와 인구, 면적, 인구밀도가 모두 비슷한 해외도시로는 캐나다 키치너 등이 있다.

버스 정류장에 있는 대전 지역 관광명소들을 살펴보면 동구만 제외 되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0.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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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관련 문서



[1] 45개 법정동, 16개 행정동[2] 2024년 3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3] 2023년 12월 기준.[4] 동구 가선거구 (중앙동, 신인동, 효동, 홍도동, 삼성동, 산내동) : 오관영, 강정규
동구 나선거구 (판암1동, 판암2동, 용운동, 대동, 자양동, 대청동) : 박철용
동구 다선거구 (가양1동, 가양2동, 용전동, 성남동) : 박영순
비례대표 : 김영희
[5] 동구 가선거구 (중앙동, 신인동, 효동, 홍도동, 삼성동, 산내동) : 이재규, 성용순
동구 나선거구 (판암1동, 판암2동, 용운동, 대동, 자양동, 대청동) : 정용, 김세은
동구 다선거구 (가양1동, 가양2동, 용전동, 성남동) : 이지현
[6] 동구 제1선거구 (중앙동, 신인동, 효동, 홍도동, 삼성동, 산내동) : 송인석 (초선)
동구 제2선거구 (판암1동, 판암2동, 용운동, 대동, 자양동, 대청동) : 이상래 (초선)
동구 제3선거구 (가양1동, 가양2동, 용전동, 성남동) : 정명국 (초선)
[7] 이 여파로 이장우는 5회 지방선거에서 낙선하나, 이후 2016년 말 전까지는 유효했던 친박 버프를 받아 두 번이나 국회의원당선되었고, 거기에 대전광역시장까지 되는 업적도 이루었다.[8] 하지만 동구청 신청사 건립 추진 이전의 이장우는 대전복합터미널 추진 및 조기완공, 철도기관 공동사옥 유치, 대전 문학관 건립 등 그만큼 업적도 많다. 심지어 국회의원 시절에는 대전역세권개발사업까지 따냈을 정도 이다. 당시에 이미 쇠락해가던 동구 입장에서는 대부분 미래를 건 역점사업이었고,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한 덕분에 지금 동구를 먹여살리고 있는 것 대부분이 이장우 때 이루어진 사업이다. 특히 대전복합터미널은 몇년째 삽도 못 뜨고 있는 유성복합터미널과는 딴판으로 속전속결로 끝난 덕분에[59] 지금까지도 대전의 주요 관문이자 동구-대덕구 일대의 핵심 상권으로 기능하고 있을 정도 이다. 확실히 무능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마지막으로 당시 숙원사업 중 하나인 동구청 신청사를 유리궁전으로 지으면서 엄청난 예산낭비를 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치적은 묻히고 지금은 대부분 동구 예산을 파탄낸 구청장으로만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9] 당시 동구 공무원들의 월급을 지급할 수 있냐 없냐 할 정도로 심각하게 쪼들렸다. 다행히 시에서 지원을 해준 덕에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이 때문에 한때 지역 사회에서 큰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10] 서울 강동구, 인천 옹진군, 충남 아산시, 경남 창녕군 등. 심지어 광역지자체인 충북(도지사: 김영환)도 '충북을 새롭게, 도민을 신나게'라는 도정 슬로건을 걸어놨다.[11] 대전역 주변은 거의 외자 돌림. 동구도 그렇지만 대전광역시 전체적으로도 한글자짜리 동명이 많다. 유성구에는 궁동, 갑동, 죽동 등 서구에는 변동, 내동. 대덕구에는 법동, 장동. 중구에는 목동.[12] 일제강점기부터 발전한 다른 지역들(서울, 대구, 부산, 목포, 광주 등)은 n가(일제강점기에는 n정목(쵸메, 丁目)) 식의 법정동 지명이 그대로 존치되었으나 대전은 각 정목들이 모조리 쪼개져 각각의 동으로 분리되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이다. 단적인 예로 일제강점기 당시 원동, 인동, 효동은 모두 혼마치로 묶여있었다.(정확히는 원동이 혼마치잇쵸메(本町一丁目), 인동이 혼마치니쵸메(本町二丁目), 효동이 혼마치산쵸메(本町三丁目))[13] 일시적으로 舊대1동 지역의 인구가 합산됨.[14] 일시적으로 舊대1동 지역 인구가 제외됨.[15] 다만, 1977년 중구가 분리될 때 충남도청, 대전시청을 비롯한 정치 중심지, 으능정이 거리로 대표되는 상업 중심지, 중앙로-계룡로 일대의 기업들, 신흥 택지지구로 개발중이던 태평동까지 싹싹 긁어가는 바람에 동구의 위상은 푹 꺾인 상태였다. 이 때문에 중구는 도심 공동화가 진행된 후에도 썩어도 준치라고 남아있는 기업체들과 공공기관들이 있어서 버티고 있는 반면에 동구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심하게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19] 구 오정신용협동조합[P] 2023년 12월 주민등록인구통계[P] [P] [23] 원래는 롯데시네마가 운영했는데 CGV로 바뀌었다.[24] 버스 노선은 동구 중심지답지 않게 512, 514, 608, 618밖에 없으며 이 네노선 전부다 배차간격이 15분이상으로 상당히 규모에 비해 불편한 편인듯 하나, 가오동의 중심이 되는 홈플러스 사거리 기준으로 5분 정도만 걸어내려와도 511을 탈 수 있고 조금 더 걸으면(이곳은 가오지구 소속이지만 이미 대성동이기는 하다) 급행 2번을 탈 수 있다.[25] 단 같은해 지방선거 대전시장 선거에서는 이장우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물론 동구 최저 득표율이긴 하지만.[P] [P] [28] 공공데이터포털에 따르면, 현재 대전광역시 동구에서 기초생활수급자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동이다.[P] [30] 다만 대동의 원주민들이라 볼 수 있는 저소득층들은 대동이 재개발되면서 상당수 더욱 좋지 않은 동네로 쫓겨났다. 지금 대동 아파트단지 거주자들의 대부분은 대동이나 인근 동네의 원주민들이 아니라고 봐도 좋다.[31] 대전여자고등학교는 대전에서 성적과 대학진학률이 낮기로 유명한 학교였다. 특히 성적은 2014년 졸업생까지는 인문계고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이유를 보면, 지금은 덜하지만 2009~2010년도 까지만 해도 대전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의 소득을 보면 저소득층으로 불리는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이 대전여고 전교생의 50% 이상으로 나올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던 동네이기 때문이다. 인문계(일반계)고의 극빈자가 전교생의 50% 수준이라면 다들 놀라는 수준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워낙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이 많았었다. 교사들이 기초생활수급자 학비 지원 신청서를 교실에서 대놓고 뿌려도 학생들이 신경 쓰지도 않았을 정도다. 이는 대전여고뿐 아니라 인근의 다른 초중고 역시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대동도 그렇고 대동 주변 동네도 그렇고 워낙에 가난한 저소득층들이 워낙 많이 살았기 때문. 지금은 아파트단지가 생긴 관계로 이렇게 가난한 학생들이 많지는 않다.[P] [P] [34] 과거에는 우송공업대도 있었다. 2009년에 같은 우송재단의 전문대학인 우송정보대와 통합하여 우송정보대학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2012년에는 동캠에 있던 우송대학교가 서캠퍼스로 내려오고 서캠이었던 우송정보대가 동캠으로 올라가면서 우송대학교 서캠퍼스로 변했다.[P] [36] '여자고등학교'라 불리지만 인문계가 아닌 특성화고(전문계)이다. 중구 신일여고 또한 전문계 여자고등학교이면서 인문계처럼 여고라는 교명을 쓰고 있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관계로 교명을 바꿨다고 한다. 이래서 대성이나 신일이나 어린 학생들과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인문계 여고로 착각하는 경우도 흔히 보인다.[P] [38] 참고로 우암사적공원과 대전보건대는 불과 몇백 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다.[39] 사실 가양동에서 넘어오는 인도가 있는 쪽 담장 너머로도 보인다.[40] 과거에는 대전탑이라는 건축물이 교차로 중심에 로터리 형태로 있어서 대전탑로터리라고도 불리었다. 1970년 한진건설(현 한진중공업)이 지어서 대전시에 기증한 이 건축물은 도로확장과 교통량 증가 등의 문제로 1990년 철거되고 양 옆에 있던 동상은 대전톨게이트 입구에 옮겨졌다. 파일:external/www.daejeon.go.kr/-1987151704.jpg대전탑이 있을때 교차로의 모습. 파일:미니 대전탑.jpg 현재 모습 (길 옆에 작게 만듦.)[41] 중구 대사동 보문맨션 아파트도 거의 대전에서 처음 생긴 아파트라는데 언제 준공되었는지 정보가 없다.[42] 부자들이 입주하니까 부자의 자식들이 근처에 있던 중학교를 다녔는데 공부를 잘 했다 카더라. 그래서 사람들이 그 중학교 이름 앞에 대(大)를 붙여서 부르고 다니곤 했다.[43]우송대 서캠퍼스 국제교육센터[44] 파일:external/www.daejeon.go.kr/hisname_219_105.jpg[45] 대전 가양동은 佳(아름다울 가)를 쓰고 서울 가양동은 加(더할 가)를 쓴다.[P] [47] 그리고 이마트 옆에는 홈플러스[48] 특히 주말에 가 보면 레알 헬게이트를 볼 수 있다. 경찰이 항시 나와 교통정리를 해도 답이 안 나온다.[49] 건물이 5층이라면, 지하에 노래방, 1층 식당, 2층 룸싸롱, 3층 이발소, 4층 안마방, 5층 전화방 단위면적당 유흥업소 밀집율은 안양 인덕원과 선릉역 주변을 바르고도 남을 정도.[P] [51] 구 성남2동 내 일부 지역은 2016년 초까지 도시가스도 놓이지 않았다.[P] [P] [54] 삼성초등학교 학교 건물이다. 개교년이 1911년이므로 100년이 넘었다.[P] [P] [57] 실질적인 성장은 서구 가수원동에서 했다. 현재 본가도 가수원동에 있다.[58] 정확히는 대전 편입 이전의 대덕군 출신이다.


[59] 유성복합터미널이 추진부터 착공까지 걸린 기간의 반의 반도 안 걸리고 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