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5 22:36:37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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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코트인 '디스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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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컴 디스크 시스템 본체와 디스크 라이터
일본 공식 사이트
1. 개요2. 상세3. 역사
3.1. 개발3.2. 출시 이후
4. 게임 목록5. 여담

[clearfix]

1. 개요

광고 영상 The Gaming Historian의 소개 영상
닌텐도 온라인 매거진 디스크 시스템 편(아카이브)
디스크 시스템 게임 목록과 다시 쓰기 서비스 안내(미러 사이트)

닌텐도에서 1986년 2월 21일에 15,000엔으로 출시한 패밀리 컴퓨터의 확장기기. 플로피 디스크의 일종인 퀵 디스크를 주요 매체로 채택했으며, 디스크 드라이브 본체와 램 어댑터[1]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타이틀은 1992년 12월 22일에 출시됐다. 누계 판매 대수는 440만 대, 소프트 판매량은 5,339만 개이며, 다시 쓰기 서비스는 2003년 9월 30일, A/S는 2007년 10월까지 계속되었다.

2. 상세


캡션
창고에 잠들어 있던 패밀리 컴퓨터 디스크 시스템을 기동해 보았다. #

파일:external/www.nintendoworldreport.com/4.jpg[2]
주요 매체인 디스크 카드는 미쓰미 전기의 2.8인치 퀵 디스크에 불법 복제 방지 및 일반 디스크와의 구별을 위한 음각 NINTENDO 로고를 추가해 3인치로 만든 것이다.[3] 때문에 이것을 제거하면 디스크를 일반 퀵 디스크 드라이브에 사용할 수도, 그 반대 방법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기본 색상은 노란색이며, 이 밖에도 디스크 팩스용인 파란색[4], 경품용인 금색[5]과 은색[6], 개발용인 흰색[7] 등이 있다.

그때까지 패미컴 카트리지 용량은 40KB(320 kbit) 였으나 디스크 카드의 용량은 한 면에 56 KB(448 kbit), 양면 포함 총 112 KB(896 kbit)로 제법 대용량이었으며, 게임의 용량이 작을 경우에는 빈 면에 또다른 게임을 기록해 한 장의 디스크 카드에 두 게임을 기록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쓰기 기능을 활용해 게임의 진행 상황을 기록할 수 있었다.

퀵 디스크는 나선형 데이터 저장 방식으로 플로피 디스크와 다르게 데이터를 순차적으로만 접근할 수밖에 없었지만, 단면 전체를 읽는 속도가 8초밖에 되지 않아 로딩 속도가 분 단위인 카세트 테이프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매체였다.[8] 가격 또한 플로피 디스크보다 저렴했기에 개발에 착수할 당시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3.5인치 플로피 디스크처럼 셔터도 없었고 주로 어린이가 쓸 물건 치고는 너무나 약했기에 디스크가 손상되는 일이 잦았으며 디스크 드라이브의 고무 벨트도 잘 늘어져서 일정 시기 이후에는 고장나는 경우가 많았다.[9]

램 어댑터에 1채널짜리 주파수 변조 가능한 음원칩을 탑재했다.[10] 음색을 파형 데이터(Waveform data, Wavetable)로 Wave RAM에 저장하면 DSP가 주파수 변조 연산을 할 수 있었는데 LFO를 위한 것이다. 비브라토트레몰로, 스윕 효과를 구현할 수 있었다. 이를 사용한 디스크 게임들은 조금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었으며, 디스크에서 카트리지로 역이식된 게임들조차 디스크 게임의 소리만큼은 재현할 수 없었다.
메트로이드 사운드 비교 영상 젤다의 전설 사운드 비교 영상

3. 역사

3.1. 개발

패미컴 발매 전부터 일본에서는 워드프로세서 붐이 일어나면서 메모리 수요가 몰리는 바람에 닌텐도는 카트리지에 쓸 롬을 원활하게 공급받지 못했다. 이런 가격 상승 압력은 패미컴 발매와 동시에 3천엔대로 출시되었던 게임의 가격까지 소급해서 올려야 할 정도였고[11], 그 이후에 나오는 게임들의 가격도 계속 상승해 익사이트 바이크 같은 경우는 5,000엔을 넘겼다. 닌텐도는 게임의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이 패미컴에서 멀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대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1984년 여름, 닌텐도의 이러한 고민을 일찍이 알고 찾아온 허드슨 소프트는 패미컴의 새로운 매체로 미쓰비시 수지와 같이 개발한 비카드(BEE CARD)를 제안했다. 비카드는 신용 카드 만한 크기에 상당한 용량, 다시 쓸 수 있는 기능 등 여러 장점이 있었다. 닌텐도는 이를 마음에 들어했으나, 비카드의 비싼 생산 비용과 특허료 때문에 무산되었다.[12] 그 대신, 비슷한 시기에 채택을 검토해 달라며 찾아온 미쓰미 전기의 퀵 디스크를 채택했다.

닌텐도는 디스크 시스템 개발과 동시에 NTT와의 협업으로 전화선을 이용해 게임을 배포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도매상의 반발로 취소, 대신 '디스크 라이터'라는 디스크 자판기를 마트나 문구점 등에 설치해 디스크 판매와 동시에 5백 엔의 요금으로 다른 게임을 내려 받는 다시 쓰기 서비스를 계획한다.

그렇게 1985년 내내 개발에 매진, 발매 직전까지 갖가지 문제에 시달린 디스크 시스템이었지만 결국 1986년 2월 21일, 무사히 출시된다.

3.2. 출시 이후

디스크 시스템이 발매되며 나온 디스크 게임의 가격은 당시 카트리지 게임의 절반 수준인 2,500엔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나중에 가격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보통 3천 엔 초반을 넘지 않았으며, 앞서 상술한 다시 쓰기 서비스를 통해 500엔 정도의[13] 요금으로 디스크에 새로운 게임을 기록 받을 수도 있었다.

닌텐도는 디스크 시스템 발매 이후로 오직 디스크 시스템으로만 게임을 발매할 것을 선언했지만 이와 달리, 디스크 시스템 개발 중간에 서드 파티에게 개발기를 보급하지 않았고 디스크 시스템으로 게임을 개발하면 저작권을 공동 소유하는 조건[14]을 내걸어 개발사들을 당혹시켰다. 이 때문에 디스크 시스템용 최초의 서드 파티 게임은 디스크 시스템 발매 이후 6개월째가 되어서야 겨우 발매된다. 많은 개발사들은 디스크 시스템으로 게임을 개발하지 않았으며 특히나 허드슨과 남코는 디스크 시스템으로는 신작을 일절 개발하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디스크 시스템 개발 당시의 상황과는 달리, 이미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생산성을 크게 높여 고품질 저가격을 무기로 1984년에 세계 시장 점유율에서 미국을 제칠 정도로 급성장한다. 게다가 패미컴 발매 당시 일본 내 반도체 품귀 현상의 원인을 제공했던 워드프로세서와 마이컴 붐이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식은 데다가, 1985년에 플라자 합의와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수요가 사라졌고, 이는 과잉 생산으로 이어져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카트리지를 싸게 생산할 수 있게 되자, 디스크 시스템 발매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86년 6월에 1 Mbit 게임인 마계촌이, 그 다음 달에는 2 Mbit 게임인 고에몽이 등장한다. 이로 인해서 디스크의 장점인 대용량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저장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이듬해 1987년 4월에 발매된 모리타 쇼기를 시작으로 미래신화 쟈바스, 인드라의 빛, 파이널 판타지 등의 게임에 SRAM과 전지를 이용해 게임의 진행 상황을 SRAM에 저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속속 사용되며[15] 사라졌다.

위와 같은 이유로 디스크 시스템으로 발매된 게임 타이틀 수는 카트리지로 발매된 게임 타이틀 수에 비하면 매년 1/2~1/3 정도로 매우 적은 데다가 그나마도 만 3년째인 1989년에 접어들며 20 타이틀로 뚝 떨어지게 된다. 디스크 가격이 점점 저렴해지고 기종이 업그레이드되며 플로피 디스크 발매작이 늘어난 MSX와는 대조적이다.[16]

저렴한 디스크 시스템 게임 가격은 판매 차익이 적음을 뜻하기도 했기 때문에 도·소매상들은 디스크 시스템이 거슬리는 제품이라고 생각했다. 디스크 시스템은 출시 첫 해에는 200만대나 팔렸지만 그 해 패미컴 본체는 900만대나 팔렸기 때문에 사실상 망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듬해인 1987년이 되자 전년도의 절반도 안되는 75만 대로 급감했고, 악성 재고를 떠안게 된 소매점에서는 떨이를 하거나 아예 폐기 처분을 하기 시작했다. 닌텐도에서는 디스크 시스템 활성화를 위해 '디스크 팩스'[17] 시스템과 전용 게임을 이용해 최고 점수를 겨루는 대회를 열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고득점자들이 속출하는 바람에 부작용만 초래했다. 오직 디스크 시스템으로만 게임을 발매해왔던 닌텐도 역시 1987년 11월 펀치 아웃!!을 롬 카트리지용으로 발매하며 디스크 시스템 전용 정책을 포기[18], 1989년부터는 전체 발매된 신작의 수가 전년도의 절반 이하인 20작품으로 줄어들었고 그 게임들조차 기 발매된 게임들이 다시쓰기 서비스 전용으로 나온 것일 뿐이었다. 이후 1992년 12월 22일에 다시쓰기 전용 게임인 '가위바위보 디스크성(じゃんけんディスク城)'을 끝으로 신작 게임의 공급은 중단된다.

1993년에는 소매점 등에 설치한 디스크 라이터를 전부 수거해 지사나 서비스 센터에 설치해 서비스했고 우편 등을 통한 다시 쓰기 서비스를 2003년까지 제공했다.

4. 게임 목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패밀리 컴퓨터/게임 목록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일본어 위키백과 목록

총 199종의 게임이 출시되었다.
젤다의 전설, 메트로이드, 악마성 드라큘라, 광신화 파르테나의 거울 같은 유명 시리즈의 작품들이 최초에는 디스크 시스템 전용(사실상 독점) 게임이었다.

5. 여담

게임 생산 비용이 롬 카트리지보다 저렴했기에 해커 인터내셔널이나 '슈퍼 피그' 등의 게임 회사들은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으로 무허가 성인 게임들을 다수 내놓았다. 그밖에도 정식 게임의 해적판, 패미컴의 롬 카트리지 게임의 불법 이식판 또한 다수 유통되었다.

램 어댑터 뒤쪽에는 예비 병렬 포트가 있으나 실제로 사용된 적은 없다.

디스크 드라이브는 별도의 전원을 필요로 하지만 AC 어댑터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대신 C 배터리 6개로도 작동할 수 있고, Y형 어댑터를 사용하면 하나의 어댑터로도 사용할 수 있다.

디스크 시스템의 출시를 계기로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 쿠타라기 켄(久夛良木健, 1950~)은 닌텐도를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디스크 시스템의 원시적인 사양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쿠타라기는 1986년 4월에 부품 판매를 위해 정기적으로 닌텐도를 방문하는 소니 영업 담당자와 동행해 패미컴을 개발한 제2 개발부 책임자였던 우에무라 마사유키(上村雅之, 1943~2021)와 만난다. 그는 800 KB 용량의 2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보여주며 채택을 제안하나 너무 늦어서 채택될 수가 없었고, 대신 보여준 신형 사운드 칩을 슈퍼 패미컴에 채택하면서 닌텐도와 급격히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샤프에서는 패미컴과 디스크 시스템을 합친 트윈패미컴을 발매했다.


게임큐브 메뉴 화면의 배경음은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의 시동음을 1/16배속한 것과 같다. 피크민 시리즈의 피크민 쇼트 무비에서도 포크레인의 레버가 작동할 때 디스크 시스템의 시동음 뒤 나오는 효과음이 나온다.

디스크 시스템의 마스코트인 디스크군은 게임 & 워치 스페셜 프라이즈 슈퍼 마리오브라더스의 본체를 감싸는 케이스의 디자인으로 재활용되었다.

CPU와 PPU칩이 있는 패미클론에서도 불완전하게 작동된다고 한다.

'허니 비 패밀리 어댑터'라는 긴 카트리지 컨버터로 NES나 NES2에서도 구동할 수 있다.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의 마스코트인 디스크군은 훗날 슈퍼 스매시브라더스 얼티밋에서 서포터 스피릿으로 등장했다.
[1] 용량은 프로그램용 32 KB, 스프라이트용 8 KB로, 패미컴 롬 카트리지의 기본 사양과 동일하다.[2] 번역: 1장의 디스크 카드로 다양한 게임에 다시 쓸 수 있습니다. / 아래의 6점은 B면에 게임이 들어있지 않으므로 새로운 게임을 B면에 쓸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뒷면을 참조해 주세요. 덧붙여 아래의 6점은 종래의 롬식 카세트 게임, 내용과 같습니다.[3] 하지만 불법 복제 방지 대책이 너무 허술해서 로고대로 그대로 따라 파는 것부터 시작해서 불법 복제를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가 10여종 이상 난립했다.[4] 파일:SmartSelect_20210111-164631_Samsung Internet.jpg[5] 파일:경품디스크.jpg[6] 파일:은색 디스크.jpg[7] 파일:흰색 디스크.png[8] 로딩이 느린 것으로 드는 극단적인 예시로 드라큘라 2 저주의 봉인이 있지만#, 모든 게임이 이렇지는 않았다.[9] 오죽하면 닌텐도에서 디스크 시스템용 고무 벨트만 따로 팔기도 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는 고무 벨트 달린 물건의 숙명이며 MSX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도 이런 고장이 많다. 공식 지원이 종료된 이후로 한동안 자가 수리에 애를 먹었지만 요즘은 대용품도 찾기 쉬워지고 수리 방법도 널리 알려져서 그나마 고치기 쉬워진 편이다.[10] #[11] 가격을 올리는 대신, 패키지와 스티커 디자인이 새로워졌다.[12] 이후에 허드슨은 NEC에 찾아가 비카드의 개량형인 휴카드를 개발, PC 엔진의 주요 매체로 채택했다. 비카드 자체는 MSX에서 사용되었다.[13] 일부 게임의 경우, 설명서 요금으로 100엔 정도를 추가로 받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14] 타기종으로의 이식이나 2차 이용 등에 제한. 이 조건은 철회되었는지 악마성 드라큘라는 타 기종으로 원활하게 전개되었다.[15] SRAM 저장 시스템은 1984년에 나온 패밀리 베이식의 카트리지에 채용되었고, 게임으로서는 슈퍼 카세트 비전, MSX에서 1986년도부터 도입되었다.[16] MSX도 처음에는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너무 비싸서 카트리지나 카세트 테이프로 발매된 게임이 대부분이었고 플로피 디스크로 발매된 게임은 극히 드물었지만, MSX2의 염가화 이후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도 염가화되면서 플로피 디스크로 발매된 게임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양상을 보였다. 빈면, 속도와 용량 면에서 3.5인치 플로피 디스크에 열세였던 퀵 디스크는 유일한 장점이었던 저렴한 가격도 3.5인치 플로피 디스크의 염가화로 인해 퇴색되면서 빠른 속도로 도태되어 갔다.[17] 디스크 게임에서 획득한 점수를 닌텐도 본사로 전송하는 네트워크 단말 장치.[18] 디스크 시스템용 닌텐도제 신작은 이후에도 적지만 공급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