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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2e4e3f> 교육협력병원
||삼성창원병원 | 삼성서울병원 | 강북삼성병원 |
<colbgcolor=#2E4E3F><colcolor=#FFF> 성균관대학교 成均館大學校 Sungkyunkwan University | ||||
교훈 | 수기치인(修己治人) | |||
교시 | 인의예지(仁義禮智) | |||
상징 | <colbgcolor=#2e4e3f><colcolor=#FFF> 슬로건 | 예로부터 나라의 인재는 성균에 모여 왔으니, 그대 머묾이 우연이겠는가 | ||
교목 | 은행나무 | |||
교색 | 리더십 신뢰 지성 책임 (#003E74) 다시 시작되는 역사 (#8DC73F) 창조 역동 혁신 (#FF6C0F) 소통 공유 협력 (#2E4E3F) |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분류 | 사립대학 종합대학 | |||
지역 | 서울특별시, 경기도 | |||
개교 | 1398년 7월 ([age(1398-07-01)]주년) 성균관[A] | |||
1946년 9월 25일 ([age(1946-09-25)]주년) 성균관대학[B] | ||||
설립자 | [[조선|]] 태조 이성계[A] | |||
[[미군정|]] 심산 김창숙[B] | ||||
총장 | 제22대 유지범 | |||
이사장 | 제20대 박재완 | |||
학교재단 | 학교법인 성균관대학[5] | |||
부 속 병 원 | 대학병원 | 성균관대학교 삼성창원병원 | ||
교육협력 병원 |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 |||
주 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25-2 (명륜3가) | |||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서부로 2066 (천천동) | ||||
판교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289번길 20 (삼평동) | |||
재 학 생 | 학부생 | 19,487명 (2023년)[6] | ||
대학원생 | 8,454명 (2023년)[7] | |||
교원 | 3,820명 (2023년)[8] | |||
대학기관평가인증 인증대학(2024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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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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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공식 홍보영상 (2024) | }}}}}}}}} |
成人材之未就
성인재지미취
이루어지지 않은 인재를 이루어지게 하고
均風俗之不齊
균풍속지부제
정돈되지 못한 풍속을 고르게 한다.
성균관대학교는 서울특별시 종로구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소재한 대한민국의 4년제 종합대학이다. 한국에서 약칭은 성대(成大)이며, 영문명 Sungkyunkwan University의 약칭은 SKKU이다.성인재지미취
이루어지지 않은 인재를 이루어지게 하고
均風俗之不齊
균풍속지부제
정돈되지 못한 풍속을 고르게 한다.
1398년 조선 한성부 숭교방에 새롭게 개편하여 설립한 최고학부 성균관의 전통을 계승하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age(1398-07-01)]년 역사를 지닌 대학이다.[9]
1965년부터 삼성그룹이 학교법인과 재단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10]
2. 역사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성균관을 계승한 성균관대학교는 [age(1398-07-0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이다.
1398년[11] 개성에서 한성부 숭교방으로 성균관이 이전되었고, 기존의 개성 성균관은 향교로 격하되었다. 1895년 갑오개혁 이래 성균관에 경학과[12]가 설치되었으며 근대적 제도 개혁[13]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성균관은 경학원(經學院)으로 개칭되었으며 근대적 대학 교육의 기능도 중단되었다. 이후 유림들에 의한 성균관 교육기능 회복 움직임[14]의 영향으로 부설된 교육기관인 명륜전문학교[15]마저도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1943년 폐교되었으며, 이듬해 명륜연성소로 개편되어 젊은 남성을 대상으로 각종 훈련과 근로 등을 수련하게 한 연성소(鍊成所)[16] 중 한 곳으로 전락했다.
1945년 광복 후 군정법령[17]에 의해 기관의 명칭이 경학원에서 성균관으로 회복되었고, 명륜연성소는 명륜전문학교로 환원되었다. 이후 전국유림대회를 통해 유림 천여 명은 성균관대학의 설치를 결의하였고, 이어서 성균관대학 기성회가 조직되었다. 이로써 김창숙의 주도 하에 명륜전문학교와 학린사[18]가 통합되어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설립되었다. 성균관대학은 1946년 문교부의 인가를 받았고, 캠퍼스는 전묘후학[19]의 원칙에 따라 옛 성균관의 뒤편에 자리잡게 되었다. 1953년 종합대학으로 개편되었으며, 1981년 자연계열 학과가 새롭게 조성된 수원시의 자연과학캠퍼스로 이설되었다. 이는 성공적인 이원화 캠퍼스 체제로 굳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옛 성균관의 부지 전체는 1964년 사적 제143호로, 건물 5동[20]은 앞선 1963년 보물 제141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 과거 이와 성균관대학교를 하나의 법인이 관리하였으나, 1963년 사립학교법이 시행된 이후 재단법인 성균관[21]과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으로 분리되어 각각 종교와 대학 교육의 기능을 전담하게 되었다. 법적으로는 분리되었지만 활발한 인적 교류[22]를 이어가며 깊은 상호 관계를 맺고 있다.
3. 교가
<rowcolor=#fff> 성균관대학교 교가 |
변영로 사, 이흥렬 곡 1절 온누리 가장 오랜 배움의 마을 육백년[23] 쌓고 쌓인 드높은 학통 일사나 어지러랴 우리의 지킴 일보나 물러서랴 우리의 정진 2절 재지도 재지려니 도의 앞세고 양지의 횃불들어 어둠 헤치며 성훈의 지로따라 나아들가세 꾸준히 쉬임없이 나아들가세 3절 정의의 대도 걷다 쓰러지어도 불순한 온갖 명리 뒤로 세우고 낮과 밤 두렴없이 나아들감은 우리의 이상이요 정신이로다 후렴 배움만이 보배아닌 성균관대학 인의예지 그 자랑인 우리 대학교 |
4. 상징
<rowcolor=#fff> 과거 | 현재 |
성균관 명륜당 |
5. 학부 및 대학원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학부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대학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6. 연구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연구 문서 참고하십시오.7. 세계대학평가
성균관대학교 세계 대학 순위 | |||||||
<colbgcolor=#2E4E3F><colcolor=#fff> 연도 | QS | THE | ARWU | CWUR | USN & WR | CWTS P(10%) | Nature Index |
2019 | 100위 | 82위 | 151-200위 | 192위 | 188위 | 204위 | 166위 |
2020 | 95위 | 89위 | 201-300위 | 195위 | 195위 | 213위 | 152위 |
2021 | 88위 | 101위 | 201-300위 | 192위 | 205위 | 206위 | 199위 |
2022 | 97위 | 122위 | 201-300위 | 190위 | 230위 | 195위 | 163위 |
2023 | 99위 | 170위 | 151-200위 | 194위 | 263위 | 191위 | 148위 |
2024 | 145위 | 145위 | 151-200위 | 199위 | 275위 | 192위 | 130위 |
2025 | 123위 | 102위 | - | - | - | - | - |
8. 총학생회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총학생회 문서 참고하십시오.9. 학생문화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학생문화 문서 참고하십시오.10. 입학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입학 문서 참고하십시오.11. 캠퍼스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인문사회과학캠퍼스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자연과학캠퍼스 문서 참고하십시오.
12. 기숙사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기숙사 문서 참고하십시오.13. 학사제도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학사제도 문서 참고하십시오.14. 유교(儒敎), 유학(儒學)
기본적으로 성균관대학교는 유교를 하나의 동아시아 학문으로 바라보기에 미션스쿨이 아니고 종교, 이념, 철학, 사상으로 강요하거나 그러한 분위기가 아니며 학내도 유교적 분위기에 잠식되지 않고 자유로움을 강조한다. 또한 유교에 대해 비판적으로 개성 있게 구성원이 바라보는 것을 오히려 권장한다. 그러므로 종교로서의 유교나 봉건 체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며 오히려 학내에서는 서양철학 연구도 지원하는 등 균형 잡힌 입장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개신교와 천주교 동아리가 수도권에서 가장 활발하며 외국인 학생들의 이슬람교, 힌두교, 유대교, 몰몬교, 조로아스터교, 시크교, 바하이교, 자이나교 등의 활동도 관심을 가지는 등 학문으로서의 유교는 관심이 깊지만 종교로서 유교 학교로 보이는 것은 배격하며 학교의 재개교 과정도 일본의 제국주의적 고등 교육의 맞서 민족의 자주를 지키고 개혁적이면서 범 국민이 함께 민립적으로 근대적 학교로 개편한 것이라고 홍보하는 등, 민주적이고 혁신적인 학풍을 강조하는 것에 학교 당국을 비롯하여 전 구성원의 관심이 깊은 편이다. 고로 열려있는 민족 전통 대학으로 정체성을 확립하여 이를 계승한다고 보면 된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공자탄신일에 쉬는 학교다.[29] 명칭은 공부자탄강일(孔夫子誕降日). 가을의 개교기념일과 엇비슷한 날에 있기 때문에 공휴일이 전무한 가을철의 꽃이다. 이러한 공부자탄강일은 매년 양력 9월 28일, 건학기념일은 매년 양력 9월 25일에 지낸다.
이원화되어있는 캠퍼스 특성상, 입학식은 자과캠에서 하고 졸업식은 인사캠에서 하게 되는데, 졸업식 때 학/석사 대표들과 박사 학위수여자 등이 모여서 성균관 대성전 에서 고유례를 지낸다. 고유례는 조선 성균관 시절부터 학교의 입학, 졸업, 건물 준공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공자의 신위를 모신 대성전에 입신(立身)을 알리며 향을 올리고 축문을 고하는 의례다.
졸업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과목영역 중에 성균인성-인성 영역이 존재하는데, 현재 이 영역에 속하는 과목은 인성고전과 성균논어다. 그 이외에도 졸업과는 무관하지만 유교(儒敎)나 유학(儒學)에 관련된 교양수업들이 개설되어 있어, 전공과 관련없이 다도나 차례 등을 견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학 중 하나이다. 학부대학이 아닌 유학대학원 수준에서 운영하는 민간대상 유학 수업들과도 연계가 잘 되어있어서, 드물게 유학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인 학교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동양학 분야의 전임교수가 가장 많은 대학이다. 성균관대학교의 유학·동양학과에는 전임교수가 10명이며, 동양학 분야로는 전임교수가 가장 많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에도 20명이 넘는 연구교수 및 상근 연구원이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동아시아학술원은 A&HCI에 등재된 SJEAS라는 학술지도 발행하고 있다.
15. 행사
15.1. 금잔디문화제/해오름제
<rowcolor=#fff> 금잔디문화제 | 해오름제 |
3월 말에 진행되는 성균관대의 행사로, 양일간 진행한다. 인문사회과학캠퍼스에서 진행하는 축제는 금잔디문화제,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진행하는 축제는 해오름제라고 한다. 가수, 아이돌 그룹을 초청하여 공연을 진행하지 않고 학내에서 자원한 학우/동아리에서 공연을 한다. 오후에는 공연을 하고 날이 어두워지면 영화를 틀어준다.
2022년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친선경기(vs. 이란)를 틀어주었다.
15.2. 5월 대동제
5월에 진행되는 성균관대학교의 대표적인 행사로, 인문사회과학캠퍼스와 자연과학캠퍼스 두 곳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한 주를 인문사회과학캠퍼스에서 진행하고 다음주에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진행하는 방식이다. 축제가 재미없기로 유명한 3S(서울대, 서강대, 성균관대)의 한 축이었으나 2018년을 기점으로 규모와 위상이 급상승했다. 또한 캠퍼스가 2개여서 축제 기간이 길고 오는 연예인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15.3. 건학기념제(ESKARA 1398)
성균관대학교 ESKARA 1398 소개 영상 (2023) |
성균관대학교의 건학일을 기념하여 여는 축제이다. 9월 말에 이틀 간 실시되고, 인문사회과학캠퍼스와 자연과학캠퍼스에서 격년으로 개최된다. 최근 들어 대학 축제로서의 위상이 상승하였으며, 특히 2022년과 2023년에는 IVE, NewJeans, AKMU등의 정상급 연예인이 다수 공연하였다.
15.4. 고하노라
성균관대학교 고하노라 소개 영상 (2018) |
최고(最古)의 역사, 최고(最高)의 축제
성균관대학교 유생문화기획단 청랑이 주최하고 학교가 지원하는 형태의 축제. 성균관대학교의 문화적 자산인 유소를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퍼레이드 형태로 재현한 행사이다. 크게 두 파트로 나눌 수 있다. 우선, 1부에서는 성균관에서 왕에게 상소를 올리는 전통을 재현한 뒤 서울 종로를 유생 복장을 한 채로 퍼레이드를 진행한다. 이후 2부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사전에 진행된 상소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상소의 답을 듣고, 플래시몹을 하는 형태이다.16. 학내 언론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학내언론 문서 참고하십시오.17. 커뮤니티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커뮤니티 문서 참고하십시오.18. 학내 동아리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동아리 문서 참고하십시오.19. 주변 교통편
19.1. 인문사회과학캠퍼스
<rowcolor=#fff> 성균관대학교 지하철(인사캠) |
<rowcolor=#fff> 성균관대학교 버스(인사캠) |
19.2. 자연과학캠퍼스
<rowcolor=#fff> 성균관대학교 지하철(자과캠) |
<rowcolor=#fff> 성균관대학교 버스(자과캠) |
20. 출신 인물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출신 인물 문서 참고하십시오.21. 여담
대한민국 지폐를 패러디한 짤방이 유명하다. 다만 퇴계 이황은 오늘날의 성균관대학교 총장에 상응하는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기 때문에 단순히 교수 정도가 아니라 총장이 더 어울릴 법하다. 천 원권 지폐 앞면의 건물이 성균관 명륜당이다.
}}} ||인문사회과학캠퍼스를 기준으로 할 때, 캠퍼스가 수도 서울특별시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왕조의 왕궁이자 대한제국의 황궁이었던 창경궁, 창덕궁 등과 접하고 있으며, 북악산 위에 캠퍼스가 걸쳐 있기 때문에 학교 정상부(법학관, 수선관 등)에 가면 굳이 남산 서울타워 전망대 같은 곳에 가지 않아도[44] 탁 트인 서울의 경치나 야경을 즐길 수 있다. 후문 쪽으로 나가서 등산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말바위 전망대나 북악 스카이웨이에 도달할 수 있는데, 경복궁 등을 조망할 수 있다. 현재의 대학로 역시 과거 성균관 유생들이 성균관을 빠져나와 휴가를 즐기던 반촌 터에 조성된 상권이므로,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대학로는 현재도 과거 성균관 인근의 반촌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서울의 대표적 관광지인 북촌, 인사동, 삼청동 등도 곧장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45]
과거 창덕궁과 창경궁을 학교에서 넘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엄격히 통제되어 관람 가능한 창덕궁 후원도 마음대로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밤에 궁궐로 들어가 달빛을 즐기며 술을 마시곤 했다고 한다. 물론 옛날 이야기이다. 지금은 높은 담벽이 궁궐과 캠퍼스를 갈라놓고 있다. 법학관 앞 대운동장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나무 숲은 창덕궁의 후원이다.
2016년 영국 THE에서 선정한 4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대학 TOP 25에 아시아 대학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출처
영국 에식스 대학교와 교육 연수 및 교환학생을 비롯하여 여러 공동 연구를 통해 국제 교류하는데 상호 관계가 몹시 긴밀하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와 교육 연수 및 교환학생을 비롯하여 여러 공동 연구를 통해 국제 교류하는데 상호 관계가 몹시 긴밀하다.
90년대까지 성균관대학교에는 신입생이 해야 할 세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46]
첫 번째는 교문부터 후문까지 중앙선 밟고 걸어보기.
두 번째는 금잔디 소라껍데기 뛰어올라가기.
세 번째는 은행나무 위에서 하룻밤 자기.
두 번째는 금잔디 소라껍데기 뛰어올라가기.
세 번째는 은행나무 위에서 하룻밤 자기.
첫 번째의 이유는, 원래 성균관대학교의 중앙 도로는 그냥 공용도로였다고 한다.[47] 그래서 90년대 중반까지 시내버스가 이 길을 그냥 다녔는데, '이 도로는 우리 학교 땅이다'라는 의미에서 학생들이 일종의 땅밟기를 한것.
두 번째는, 원래 금잔디광장에는 조개탑이라 불리는 노천무대가 있었다[48]고 한다. 지금의 노천극장 따윈 당연히 없던 시절. 90년대까지 수많은 민중집회나 학내 행사가 이곳에서 열렸는데, 학생의 패기를 시험한다는 의미에서 조개탑을 뛰어올라가는 시합을 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손대지 않고 한 번에 조개탑을 뛰어올라가는 사람은 총학생회장이 된다는 전설이. 그러나 진짜로 꼭대기까지 도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세 번째는, 성균관 안에 엄청 큰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거길 올라가 보면 의외로 평평해서 사람들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 일종의 담력 테스트로 거기서 하룻밤 자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원래 금잔디광장에는 조개탑이라 불리는 노천무대가 있었다[48]고 한다. 지금의 노천극장 따윈 당연히 없던 시절. 90년대까지 수많은 민중집회나 학내 행사가 이곳에서 열렸는데, 학생의 패기를 시험한다는 의미에서 조개탑을 뛰어올라가는 시합을 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손대지 않고 한 번에 조개탑을 뛰어올라가는 사람은 총학생회장이 된다는 전설이. 그러나 진짜로 꼭대기까지 도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세 번째는, 성균관 안에 엄청 큰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거길 올라가 보면 의외로 평평해서 사람들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 일종의 담력 테스트로 거기서 하룻밤 자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졸업 전까지 한 번쯤은 비원으로 월담해 들어가보기라는 업적 퀘스트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아마도 로스쿨 시행 이전 시기의 이야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동아리가 약 500여 개 정도 존재한다.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49] 특히 성균관대학교 배구부는 상당한 수준급을 보여주고 있으며 성균관대학교 야구부는 2001년 이연수 감독이 부임한 이후 강훈련을 통해 전국대회 우승과 준우승을 밥먹듯이 하고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하면서 고교 유망주들이 선망하는 야구부가 됐다. 2020년대에는 최강야구 에 성균관대 야구부가 여러 번 출연하였고, 그 중 고영우와 원성준이 2024년 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하였다.
또한 미식축구부는 1957년 결성된 국내 최초의 대학 미식축구팀이며, 2012년에는 동문들이 미식축구 장학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 밖에도 학내에서 아마추어 야구, 축구, 농구, 아이스하키부 활동이 활발한 편.
농구부의 경우 2014년 김상준 감독이 부임후 첫 3년간 10-12-12위를 기록했지만 2017년 및 2018년 2년 연속 전국남녀 종별농구선수권대회[50] 우승을 계기로 반등에 성공하며 2024년 현재에도 재직중이다. 성균관대학교 축구부는 2015년 3월부터 2018년 9월까지 설기현 감독 재임 시 우승 2회, 준우승 3회, 3위 3회의 성적을 기록했다.
성균관대의 학풍은 개방적인 성향이다. 성대 학부 출신이 아닌 타대 출신 대학원생이나 교수라도 최선을 다한다면 주류로 받아주는 문화가 있다. 이는 외부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이고 개혁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출신이나 문화에 대해 포용적이며 상호 조화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서울 2033에도 나오는데, 성균관대학교 학생이 제작하였기 때문에 근처 주점 이름을 패러디 하는 등 묘사가 매우 상세하다.
인사캠 교정에는 청룡 두 마리가 똬리를 튼 청룡상이 자리 잡고 있는데, 과거에 청룡에서 모티브를 딴 마스코트가 있었던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2000년대 중반까지 같이 자취하는 룸메이트끼리 방열쇠를 주고받기 어려울 때 이 청룡상의 청룡 입속에 열쇠를 넣어놓고 찾아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이 청룡상은 현재 비천당 위치에 있던 청룡 분수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비천당이 복원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고 분수의 기능은 사라졌다.
}}} ||청룡상 |
'여자 두 명이 자과캠에 있는 김창숙 동상 앞을 지나가면 김창숙이 지팡이 버리고 뛰어 온다'는 옛날 옛적 슬픈 전설이 있었다. 자과캠에 여학생이 거의 없던 시절 생긴 전설이었다. 지금은 사정이 나아져서 여러 가지 변형이 존재한다.김창숙이 밥에 눈물을 흘린다든지.
자과캠에는 후문에서부터 1학년들이 많이 수업을 듣는 생명공학관~제1과학관까지 가는 길 맞은편에 작은 동산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조명도 마땅히 없고 풍물공연용으로 만들었음직한 구덩이가 있다. 나무가 많아 생각보다 조용하고 밤에는 운동장에서 새어드는 희미한 조명 덕에 교내커플들의 밀회장소로 꼽혔었는데 그 탓인지 밤 7시 이후로 이 길을 혼자 걸으면 3년간 여친이 안 생긴다고 한다.
90년대 삼성이 재단 운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직후, 주요 일간지 하단에 실렸던 삼성 래미안(율전) 광고에서는 "성균관대학교를 공원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식의 홍보 문구가 들어가 있기도 했다.
1997년 성균관대학교의 삼성 재단 영입과 관해 여러 풍문이 떠도는데 사실이 아니거나 왜곡된 경우가 많다. 1990년대 말 대학을 운영하고 싶었던 삼성이 인수 후보군으로 다른 대학들을 눈독들이고 있었지만 재단이 비협조적이어서 포기하고 성균관대학교를 인수하였다거나 성균관대학교가 싸게 나와서 사들였다는 등의 루머를 퍼뜨리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삼성이 성균관대학교 운영을 맡은 것은 1996년이 최초가 아니며, 과거에 1965년부터 1977년[51]까지 삼성문화재단이 성균관대학교의 운영에 참여했고, 재단 이사장이 이병철 회장이었다. 이후 제15대 장을병 총장이 1996년 삼성을 다시 성균관대학교로 들어오게 하였다.[52]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의 말에 따르면 60년대 당시 삼성은 전통을 가진 성균관대를 탐냈다고 한다. 하루는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형 이병갑 사장이 김창숙을 찾아와서는 봉투를 하나 건넸다. 김창숙은 비서 윤종[53]에게 "봉투에 뭐가 들었는지 보라"고 하더니 "5억원 수표가 들어 있다"고 하자 침을 뱉어 던지며, "이러면 내가 성균관대를 어서 가져가라고 내놓을 줄 알았느냐"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기사 이 내용이 기사화 되자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와 만났는데, "그런 일이 정말 있었느냐"며 "제가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못한 일(성균관대 인수)을 해냈네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기사
성균관대는 성균관을 이어받아 유림 세력의 주도로 설립한게 전부여서 재정적 기반이 탄탄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줄곧 재정적 압박에 시달렸다. 이는 90년대 들어 무재단 상태가 되면서 극심해졌는데, 1997년 삼성재단의 재영입으로 재정적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15년 기사를 보면 그때까지 1조5천억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은 낮은 수준이다. 2018년 기준 15개대 사립 대학 중 15위이다. #2018년 11월 2일 베리타스 알파 기사 #대학재정알리미 #2018 사립대학 재정통계 지표 보고서 다만 해당 문서에서 보듯이 이 순위가 높다 하더라도 그 재산의 수익율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아 일률적으로 평가할 항목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내각으로 성균관대 출신이 많이 등용되어 성시경 인사[54], 태평성대라고 불렸다. 대표적으로 정홍원 국무총리, 이완구 국무총리, 황교안 국무총리 및 법무부 장관,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모철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및 정책조정수석, 정진철 청와대 인사수석, 신성호 청와대 홍보특보, 이근면 인사혁신처장 등이 있다. 기사 기사
금융권에 성균관대 출신 금융인 모임인 성금회가 있다. 4대 금융그룹(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농협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수장 중 3명이 성균관대 출신으로 윤종규 KB금융 회장,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성균관대 동문이다.[55] 기사
성균관대는 과거 웹표준성 준수 면에서 최악의 행보를 보였다. 웹기반 포털 형태로 운영되는 타교의 학사포털과는 다르게, 성균관대의 학사포털 GLS와 인터넷 강의 사이트인 아이캠퍼스는 ActiveX, 베라인 기반으로 되어 있어 학생들에게 무한한 빡침을 제공하고 있다.[56] 또한 학교의 정보보안 의식도 허접해서 2012년까지 학교 도서관, 컴퓨터실 컴퓨터 OS가 윈도우 XP였고, 경영관 지하 3층의 프레시맨 라운지가 전부 QQ 떡칠이 되어 있던 충공깽한 상황을 연출하였다.[57] 또한 애플 제품 사용자들에게는 최악의 편의성을 자랑하는 학교다.[58] iOS 공식 앱은 오류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냥 사파리로 보는 것이 편할 수준이다. 특히 학술정보관 앱이 개판이다. 컴퓨터공학과 09학번 학우가 만든 별도의 프로그램을 깔아야만 Mac OS에서 아이캠퍼스가 접속된다. 요즘은 macOS에서 그냥 접속은 된다. 그런데 강의를 못 듣는다. macOS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수강신청이다. 재미있게도 올해부터 수강신청만은 모든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다 돌아간다. 그런데 2017년부터 사파리와 크롬에서도 아이캠퍼스가 돌아간다! 2018년 2월에 IE외 타 브라우저에서 킹고ID 로그인을 시도하면 멀티브라우징은 2018년 상반기 개선 예정이라는 알림이 표시된다. 2018년 상반기가 지나고 이제는 2019년 상반기 개선 예정이라는 알림이 표시된다. 2019년 3월 20부터 크롬으로 킹고ID 로그인이 가능해졌다.
성균관대역은 자연과학캠퍼스와 꽤 가까운 편이나, 2009년에 있었던 일로 인해 철도 동호인들한테 상당히 많이 비판받는다. 율전동 주민들이 성균관대역을 다시 지명인 율전역으로 바꾸려 하자[59] 학교 쪽에서 기숙사 학생을 의무적으로 전입신고를 하도록 해 결국 주민투표에서 이겼다. 지금은 기숙사생만으로 부재자투표소가 아닌 일반 투표소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이다.[60]
전직 수학과 교수가 판결에 앙심을 품고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쏜 판사 석궁 테러 사건 때문에 석궁관대학교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얻었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부러진 화살이 개봉해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사학 재단의 비리, 사법부의 비리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다."고 밝혔다. 다만 사실관계 측면에서 편향된 시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건 내막을 보면 일방적으로 매도할 문제는 아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조. 참고로 성대 수학과 학생들에게는 웬만하면 이 사건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 게 좋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지금 학부생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건이고, 그 일을 기억하는 대학원생이나 교수들은 그 교수에 대한 기억이 좋게 남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1990년경 인문사회과학캠퍼스에 있던 오래된 장승이 누군가에 의해 절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범인이 잡히지 않았고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테러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이후 학생회에서 예전보다 더 큰 나무로 더 두껍고 큰 장승을 만들어 같은 자리에 세웠다.
그 이후로도 자과캠내 성불회(성균관 불교 동호회)에 무단으로 침입해서 기물을 때려부수고 불상을 파괴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자과캠뿐 아니라 인문캠에서도 불교 동호회에 침입해서 불상을 참수했던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2014년 4월 14일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자가 중앙학술도서관(인문캠)에 수은을 테러하고 달아나서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해당 열람실은 폐쇄되고 경찰이 수은을 채취해 갔다.
이처럼 의외로 죽은 학생 이야기가 여럿 있는데, 평면도를 보면 'ㅁ'자 형태(건물의 가운데가 비어 있음)인 600주년 기념관의 옥상에서 성균관대 남학생과의 이별에 비관한 타 학교 여학생이 건물 안쪽의 빈 곳으로 떨어져 머리가 깨져 죽은 사건도 있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길에 건물의 빈 공간의 바닥을 볼 수 있다.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바닥의 석판 중 하나가 유달리 새 것처럼 다른 부분들과 대조되게 깨끗한데, 피가 닦이지 않아 그 부분을 새로 교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길에 건물의 빈 공간의 바닥을 볼 수 있다.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바닥의 석판 중 하나가 유달리 새 것처럼 다른 부분들과 대조되게 깨끗한데, 피가 닦이지 않아 그 부분을 새로 교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능 후 논술, 수시면접 등의 기간에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재학생들이 전통 복장을 갖춘 채, 응시자들을 응원한다. "시험 잘 보세요."
22. 재정
2022년 기준 학생 1인당 2701만 1300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전체 4년제 대학 평균인 1775만 4500원보다 높은 수준이다. #2024년 기준 학생 1인당 교육비 3,154만원을 기록하였으며, 종합대학의 경우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순서였다. #
23. 사건사고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사건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24. 외부 링크
2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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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조선 건국 이후 1398년에 개성 성균관을 한양으로 이전하였다.[B] 재단법인으로서의 재개교일자.[A] [B] [5] 삼성 산하에 속해있는 재단이다.[6] 휴학생 6,751명 미포함[7] 휴학생 839명 미포함[8] 학부 (전임 1,257명, 비전임 1,628명), 대학원 (전임 268명, 비전임 551명)[9] 성균관은 조선의 국립 최고학부로서 기능하다가 1895년부터 서양의 체계를 바탕으로 한 근대적 대학 교육을 시작하였다. 다만 성균관대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 단정하기에는 따져 볼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중국의 후난대학은 조선 성균관의 1398년보다 이른 976년 송나라 시기에 건립된 웨루서원(嶽麓書院)으로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며, 서구적 근대 대학 교육의 역사로 한정하면 1611년 스페인 국왕의 허가로 마닐라 대주교가 설립한 필리핀의 산토 토마스 대학교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10] 1965년부터 1977년까지는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다가, 1996년부터 현재까지는 삼성이 직접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을 운영한다.[11] 태조 7년[12] 經學科, 역사·지리·수학 등의 근대 교육이 이루어진 3년제 교육 기관[13] 전·후 2학기의 학기제, 교수 임명제, 입학·졸업시험제 등[14] "그 뒤 전국 유림들에 의한 성균관 교육기능 회복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 1930년에 경학원 부설로 명륜학원(明倫學院)이 설립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성균관(成均館))[15] 경학원 내 명륜학원(明倫學院)이 설치(1930)되었고 이후 명륜전문학원로 개편(1939), 명륜전문학교로 거듭났다(1942).[16] 조선청년특별연성령 제1조 이 영은 조선인청년에게 심신단련 기타 훈련을 시행하여 장래 군무에 복무할 경우에 필요한 자질의 연성을 목적으로 함과 아울러 근로에 적응하는 소질의 연성을 기하는 것으로 한다.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17] 군정법령 제15호 제1조 경성제국대학의 명칭은 자에 차를 서울대학이라 변경함. 제2조 공자묘 경학원(孔子廟經學院)의 명칭은 자에 차를 성균관이라 변경함. (영문: The name of the Confucian temple, Kyung Hak Won, is hereby changed to Sung Kyoon Kwan.) 제3조 본령은 1945년 10월 16일 야반에 효력을 생함. 출처: 한국 현대 사료 DB '미군정 관보'[18] 학봉 이석구가 재단법인 학린사의 53만여 평에 이르는 거대한 토지재산을 희사하였다.[19] 前廟後學, 앞쪽에 묘당을, 뒤쪽에 학업용 건물을 배치한다는 뜻.(출처: 우리말샘)[20] 대성전·동무·서무·삼문·명륜당[21] 문화재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이를 관리하는 유교 및 전통 문화 전문 교육 기관을 의미한다.[22] 삼성그룹이 성균관대학을 재인수한 1990년대까지도 성균관대학교 총장이 성균관의 당연직 이사를 맡고, 성균관장이 성균관대학의 당연직 이사를 맡으며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그 이후에도 성균관과 성균관대학교의 중요 행사에는 각각 성균관장과 성균관대학교 총장이 함께 참석하여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23] 1950년대 초 작사 당시에는 '오백년'이었다. 1998년 건학 600주년을 맞아 이후 변경되었다.[24] 2006년 3월 20일 성균관대학 재개교 60주년을 맞아 로고가 교체되었다. 관련 글[25] Sungkyunkwan의 이니셜인 SKK(에스카카)를 발음하기 쉽도록 변형한 것이다.[26] 은행나무의 학명 Ginkgo biloba. 일반적으로 은행나무를 말할 때는 짧게 Ginkgo라고 하며 '깅코'라고 발음한다. 학명은 은행(銀杏)을 그대로 일본식 한자음으로 읽은 긴쿄(ぎんきょう)에서 유래한다. 로마자로 표기하면 Ginkyo 내지는 Ginkjo지만 실수로 Ginkgo로 적은 것이 굳어지면서 학명으로 공인된 사례. 현대 일본에서는 흔히 은행나무를 이쵸(イチョウ), 은행알을 긴난(ぎんなん)이라고 부른다.[27] 해방 이후에는 재단법인 성균관이 옛 성균관을 관리함과 동시에 성균관대학교 또한 경영하였으나, 1963년 학교법인 관련 법률이 개정되면서 문화재청 소속의 재단법인 성균관과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으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른다. 법적으로는 분리되었으나,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28] 명륜당 왼쪽 뒤에 국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29] 심지어 중국에서도 안 쉬지만, 대만 학교는 스승의 날로 지정되어 있어 쉬는 학교가 있다. 이는 공자를 하나의 숭배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동아시아의 우수한 학자로 존경심을 보이는 모습에 기인한 것이지 공자의 주장이 무조건 옳다는 뜻은 아니다.[30] 종각역YMCA 또는 종각, 공평유전시관 정류장에서 종로 02로 환승. 9시 수업때는 공평에서는 100% 착석불가, YMCA에서도 착석 보장이 안되므로 남쪽에서 올라와서 아래 종로3가역에 적힌 금강제화까지 가는 용자도 있다.[31] 금강제화 정류장에서 종로 02로 환승[32] 종로5가, 3번출구 정류장에서 종로 08로 환승[33] 6번 출구 안국역, 인사동 정류장이나 안국역2번출구앞 정류장에서 종로 02로 환승. 주의할 점은 9시 수업일 경우 이미 종각에서 종로02가 만차라는 것. 이 정류장에서는 아예 승차가 불가능할 수도 있고, 타더라도 신도림급 인구밀도를 감당해야 한다.[34] 1번 출구에서 성균관대학교 셔틀버스 승차 또는 혜화역1번출구 정류장 또는 2번 출구 혜화역, 마로니에공원 정류장에서 종로07, 종로 08로 환승. 4번 출구로 나와 도보로도 10분 정도 걸린다.[35] 종점에서 하차.[36] 셔틀버스 노선과 동일하므로 교내에서 하차.[37] 명륜시장, 성대후문 정류장에서 하차.[38] 반대로 학교에서 역으로 갈 때는 오르막이라 넉넉히 후문에서 8분은 잡아야 한다.[39] 2번 출구 기준으로 도보로 5~7분이 소요된다. 단, 여기서의 5~7분은 단지 캠퍼스의 '입구'인 후문까지만의 소요시간이고, 실제로 강의를 듣게 되는 자연과학관, 1,2공학관 등으로 가려면 후문에서 약 5분은 더 걸어야 한다. 만약 정문에 가까운 화학공학관이나 반도체관까지 가려면 15분 이상 걸어야한다.[40] 사당역 9번 출구앞 정류장에서 7800으로 환승[41] 강남역 5번 또는 6번 출구에서 나와 강남역나라빌딩앞 정류장에서 3003으로 환승[42] 사당역 9번 출구앞 정류장에서 탑승 후 성균관대학교 정류장에서 하차. 서울에서 출발하는 가장 빠른 루트다.[43] 강남역에서 탑승 후 성균관대역 또는 천천초교 정류장에서 하차. 정류장으로부터 대학교까지가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다.[44] 반대로 서울타워를 쉽게 조망할 수 있다.[45] 법학관 옆 샛길로 빠지면 바로 위치해 있다.[46] 특정 학과에서만 전해지는 전통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총 동문회에서 저 이야기 나온적 있는데 80년대 90년대 학번들도 아무도 모르고, 체대 건물 옥상에서 고기 구워먹는 이야기만 나왔다.[47] 정확히 말하자면 공용도로는 아니었으나 성균관과 성균관대학교 부지가 구분되었을 시절 그 소속이 애매한 부지인 상태에서 일종의 국유지로 치부하던 곳.[48] [49] 이 밖에도 만학도 체육, 예술인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 특성상 현역 삼성 스포츠단 선수들이 재학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이승엽, 정성룡.[50] 연세대, 고려대, 경희대, 중앙대 등 농구 강호들은 출전하지 않는 대회다.[51] 77년 학내분규로 삼성이 성균관대에 철수하게 되었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성대재단이 삼성 이병철회장을 이사장으로 받아들인 이후 유림과 갈등이 많았다. 유림 측 주장은 다음과 같다. 성균관대학교 부지였던 안양땅을 삼성계열사에 팔아넘긴 후 나온 4억의 돈으로 수원 삼성공장부지로 매입해 놓았던 부지로 정하면서 성균관대의 자산을 삼성이 이윤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또한 당시 30만평으로 약속되었던 수원캠퍼스 부지가 15만평으로 줄었으며 이는 삼성의 거짓말이라고 한다. 이에 반박하는 입장은, 재단 내 영향력 축소에 대한 유림들의 반발이 갈등의 원인이라고 한다. 아무튼 이런 대립 구도가 학내 분규사태로 이어졌다. 즉 이병철과 유림의 갈등이 삼성재단 철수의 원인이었다.[52] 출처: 장을병 총장의 자서전 '옹이많은나무'[53] 윤봉길 의사의 아들[54] 성균관대·고시·경기고 출신[55] 2018년 1월 기준[56] 다만, 2017년부터 아이캠퍼스는 HTML5 기반으로 바뀌어 크롬 등 타 브라우저와 매킨토시 등 타 운영체제와 호환이 된다.[57] 다행히 2013년부터 윈도우 7으로 교체되었다.[58] 2016년 9월 20일부터 Apple On Campus(AOC) 대상 대학교에 추가되었다. http://student.skku.edu/wordpress/ 에 로그인하면 첫 페이지에서 바로 "Apple On Campus 프로그램 제휴안내" 라는 게시물을 볼 수 있다.[59] 참고로 성대역은 초기에 개통할 때는 율전역이었다. 하지만 당시가 80년대인지라 대학역명을 해 달라고 요청하면 거의 해줬기 때문에 역명이 바뀐 것이다.[60] 실제로 자과캠의 경우, 2014년 당시 기숙사생들은 신관 B동 대강당에 설치된 일반 투표소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다. 2024년 기준으로는 의무 전입신고 제도는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