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6 11:20:34

나가이 고

나가이 고
{{{#ffffff [ruby(永, ruby=な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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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SC_6991-853x1280.jpg
본명 나가이 키요시 ([ruby(永井 潔, ruby=ながい きよし)])
출생 1945년 9월 6일 ([age(1945-09-06)]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만화가, 교수
수훈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1] (2019년)
서명 파일:나가이 고 서명.jp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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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colbgcolor=#fff,#1f2023>도쿄도립이타바고등학교 (졸업)
와세다세미나[3] (중퇴)
혈액형 O형
형제 나가이 야스타카(永井泰宇) (1941년생)
데뷔 메아카시 포리키치 (1967년)
장르 소년만화
활동 기간 1967년 – 현재
역임 직위 일본 SF작가 클럽 회장 (1996~1999)
오사카예술대학 캐릭터 조형학과 교수 (2005~)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심사 위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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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데뷔 이전2.2. 데뷔 이후
3. 작품 성향4. 작가의 성품5. 나가이 고의 영향을 받은 것들6. 화풍7. 작품 목록8. 여담9. 관련 인물10. 관련 문서11.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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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와 함께 60-70년대에 일본 만화계를 개척한 거장 만화가로 불리는 인물. 데빌맨, 마징가 Z, 큐티하니 등의 굵직한 작품들을 만들어냈으며, 특유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미학으로 일본 만화계가 표현의 자유를 갖게 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2. 생애

2.1. 데뷔 이전

만화가를 지망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형이 가져온 데즈카 오사무로스트 월드를 읽고 나서였다고 한다. 그 밖에 이시노모리 쇼타로시라토 산페이의 만화에 영향을 받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주변 친구들에게 만화가가 될 거라고 호언장담하고 다녔으며, 지금도 만화가가 돼서 가장 좋은 점은 '만화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천직이라고 여긴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만화가가 되기 위한 소재를 얻기 위해, 어떤 날은 하루에 영화관을 3, 4관을 옮겨다니면서 보고, 소설과 라쿠고 등 뭐든지 창작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보고 읽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 진학을 목표로 재수를 하던 중, 3주 동안 멈추지 않는 설사에 시달렸는데, 둘째 형이 "그건 대장암에 걸린 것이다."라고 엉터리로 알려줬다. 나가이 고 본인은 자신이 죽고 난 후 세상에 자신이 살아있었다는 증거로 만화를 그려서 남겨야겠다고 결심한다. 나중에 병원에 갔더니 대장암은 아니고 장염으로 판명 나고 약 먹고 1주일만에 나았지만, 이 때의 결심으로 만화를 그리는 걸 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해 재수 생활을 3개월 만에 그만둔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짬짬이 그린 만화 원고를 들고 출판사의 문을 두들겼지만 제대로 상대해 주지도 않고 번번이 퇴짜를 맞았는데, 그 가운데 "학생은 공부나 열심히 해"라고 말하던 소년 선데이 편집부의 편집자에게 "어떡하면 만화가로 데뷔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니, "프로의 어시스턴트가 되면 데뷔하기 쉽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말을 들은 직후 나가이 고는 평소 존경하는 데즈카 오사무 프로덕션으로 찾아갔지만 데즈카 선생님은 부재중이었고, 그 자리에서 데즈카의 제자인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어시스턴트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소개를 통해 그의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되었다.[4]

2.2. 데뷔 이후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습작을 쌓아가던 나가이 고는 1967년, TVA '꼬마 괴수 야다몽 #'의 만화판 기획을 담당하게 되고, 그 전에 실력을 점검하는 의도로 개그 단편 <메아카시 포리키치(目明しポリ吉)>로 데뷔한다. 본인은 어릴 적부터 SF를 좋아해서 스토리 만화, 특히 SF 스토리 만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이시노모리의 어시스턴트 생활이 너무 바빠서[5] 스토리 만화를 그릴 시간이 없게되자 그림이 간단하고 배경이 없어도 되는 개그 만화라면 그릴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이때 나가이 고는 스토리 만화 기법으로 개그 만화를 그리고, 개그 만화는 3등신이라는 기존의 형식을 벗어난 8등신 캐릭터를 등장, 칸 나누기도 큰 칸을 사용하고, 2페이지 전면 컷을 집어넣는 등 새로운 스타일의 개그 만화를 선보인다.

나가이 고가 데뷔하고 5번째로 발표한 단편을 본 잡지 모험왕의 편집장 카베무라 타이조(壁村耐三)[6]가 나가이 고를 찾아와 그의 작품을 칭찬하고 유명 개그 만화가 아카츠카 후지오에게 나가이 고를 소개시켜 같이 만난 적이 있는데, 아카츠카는 그의 단편에서 어린애들이 토막난 사람 시체를 가지고 노는 장면을 보고 "어린이 상대로 이런 잔혹한 만화를 그리면 안된다."며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에 대해 혹평했다. 하지만 나가이 고는 오히려 개그만화의 거물 아카츠카 후지오가 못하는 것, 안하는 것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슬랩스틱, 에로, 그로테스크, 넌센스한 요소를 집어넣은 작품을 추구하기로 마음먹는다.

데뷔한 다음 해인 1968년, 새로 창간된 주간 소년 점프에서 연재를 시작한 그의 첫 장편 만화[7] 파렴치 학원은 나가이 고의 출세작이자 초기의 소년 점프의 지탱하는 대들보 역할을 하였고, 이후 쏟아지는 개그물의 의뢰로 나가이 고는 개그 만화 작가로 이름을 알린다.

1969년에 다이나믹 프로라는 어시스트를 포함한 만화가 창작집단 회사를 설립했다. 다이나믹 프로는 만화가 한 명과 그 밑의 어시스턴트의 모임이 아니라, 개인 개인의 만화가들이 모인 공동체 개념의 회사였다.

나가이 고는 70년대 부터 <스스무쨩 대충격(ススムちゃん大ショック)>[8] 같은 심각하고 쇼킹한 주제의 단편들을 내놓기 시작하더니 오니, 마왕 단테, 데빌맨부터는 본격적으로 그가 그리고 싶어하던 스토리 만화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또한, 나가이 고는 그의 만화 마왕 단테를 애니메이션화하고 싶어하는 토에이 애니메이션 기획부장과 만나서 동업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데빌맨, 마징가 시리즈 등의 히트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면서 재능을 마음껏 뽐내기 시작한다. 특히 인간이 로봇에 탑승해서 자동차를 운전하듯이 조종한다는[9] 아이디어는 거대로봇물 장르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일본만화계는 데즈카 오사무에게서 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면, 나가이 고에게서는 특유의 성적 개방성폭력성을 배웠다고 흔히 표현한다. 데즈카 오사무 역시 어두우며 폭력적이고 성적인 만화들을 많이 그렸음[10] 에도 유달리 나가이 고에게 이런 수식어가 붙는 것은 일본 만화계의 수위 논란 당시 이미 데즈카 오사무는 상업적인 전성기를 지나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불리는 상황이어서 이러한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데즈카의 초창기 작품의 상당수는 디즈니의 영향을 받아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것들로 이뤄져 있었던데다 데즈카 자신은 모든 연령대를 생각하고 만화를 그린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에[11], 치마 들추기라는 성적인 요소를 만화의 이야기 구조를 강화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만화의 주요 소재로 활용한 나가이 고가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것. 이 과정에서 나가이 고는 이전까지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개그만화 파렴치 학원을 처절하게 마무리 시키고 더욱 더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만화 데빌맨을 히트시키면서[12] 자신의 이미지를 데즈카 오사무와 완전히 상반되는 이미지로 변모시키며 독보적인 존재로 부상하게 된다.[13]

2005년부터 만화가나 소설가 등을 초빙하여 교수로 삼는 오사카예술대학의 캐릭터 조형학과의 교수가 되었다. 또한 2009년에 자신의 고향에 나가이 고 기념관이 개관하였다.[14] 제자 혹은 소중한 동료 로는 겟타로보의 원작자인 이시카와 켄, 그로이저X의 원작자인 오타 고사쿠가 있다.

2010년에 진 마징가 충격! H편의 연재를 시작하는 동시에 바쿠만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자신의 실제 연재경험을 바탕으로 그리는 (일단 서두에서 픽션이라고 하고 있지만) '게키만' 이라는 작품을 그리고 있다. 주간 만화 고라쿠에서 연재 중. 아무리 봐도 나가이 고 본인으로 보이는 가공의 만화가가 주인공인데 이름도 나가이 게키. 주로 자신의 작품에서 왜 이런 연출이 들어갔는지 그 의도를 간접적으로 해설해주거나, 연재 중 에피소드 같은 게 나오는데 바쿠만 주인공들을 앞서나가는 그의 발상력과 대담함, 행동력을 보면 역시 나가이 고란 말이 나온다. 물론 과장도 섞였을지도 모르지만.

2020년대에는 고령이 되어 장편 만화를 그리는 건 힘들지만 단편이라도 계속 선보이겠다고 한다. 대신 팬 이벤트 활동, 애니메이션, 영화 작품 감수, 디자인 쪽에서 다방면으로 활동 중이다.

3. 작품 성향

에로티시즘, 그로테스크, 넌센스라고 불리우는 3대요소로 유명하며 본인도 그러한 것을 몹시 즐긴다.

사실 원래는 개그 만화 작가였다. 물론 지금보면 이게 과연 개그 만화에서 해도 되는 짓인가 싶은 광기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일단은 진지한 작품은 거의 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15] 사실 본인은 원래부터 진지한 만화를 그리고 싶어했다지만 데뷔작이 개그 만화였던 것도 있고해서 개그 만화 말고는 연재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나가이 고는 "난 평생 개그 만화 말고는 그릴 수가 없는 게 아닌가" 하고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파렴치 학원 사건이 터진다. 파렴치 학원은 당시 만화를 사냥하던 PTA(학부모협회)에 의하여 집중공격을 받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PTA의 영향력[16]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의 언론에 의해 "동정이라 상상이 변태적이라서 작품이 그렇다."[17]는 둥, "오카마 바에 출입하는 동성애자"라는 둥 언론이 만들어낸 거짓 루머에 시달렸다. 당시엔 특히나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안 좋던 시절이며, 게이로 몰아가는 것은 아예 사회적으로 말살시키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파렴치 학원의 교사진이 당시까지의 권위적인 교사상에 반했기 때문에 교육자층도 앞장서서 나가이 고를 공격했다. 이때의 나가이 고는 그야말로 악마이자 공공의 적이었다. 전국민과 지상파 뉴스가 나가이 고를 심심하면 욕하는 수준이었으며 학교 동창들도 나가이 고를 욕하고 밖에 나가면 손가락질을 당하는 등 심한 이지메를 당했다고 한다. "내가 그때 주간지 4개 동시 연재. 1달에 300페이지를 그렸는데 게이 바에 놀러다닐 시간이 어디 있냐." 라고 억울해 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응원해주는 어린이 팬이 아니었으면 만화가를 접었을 거라고.

또한, 이 즈음에 나가이 고가 겪은 무시무시한 일화가 있다. 당시 나가이 고는 편집자에게 "외로우니 여자 좀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편집부는 이 말을 듣고는 "나가이 고가 여자를 만나서 동정을 버리면 지금과 같은 대박 아이디어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라고 당황하면서 무려 슈에이사 편집부 전체와 같은 동료 작가들에게 나가이 고는 절대적으로 동정을 지켜야 하니 여자를 소개시켜주지 말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심지어 "나가이 고의 동정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기까지 했다! 이 모임을 만들 것을 주장한 사람이자 회장은 일본침몰의 작가 고마츠 사쿄였다는 소리도 있다. 고마츠 사쿄도 꽤나 엽기적인 글을 쓰기로 유명한데 자신이 동정을 버리자 그런 글이 안 써졌다며 그런 자신의 경험에 의거해 나가이 고의 동정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회원 중 한 명이 츠츠이 야스타카였다고. 이게 사실인지는 세월이 지나 확인이 곤란하지만 업계에선 유명한 소문인지 만화가 니시자와 5mm가 자기 작품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나가이 고 본인은 이 시절을 철저하게 자신의 인격을 부정당했다고 회상하며 이 때의 분노가 담긴 것이 파렴치 학원의 대전쟁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쟁은 외부세력이 학원에 간섭하여 학원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하여 처절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이며 이 외부세력은 PTA를 암시한다고 한다.

이러한 분노는 파렴치 학원으로 끝나지 않고 이어져서 '마왕 단테'에서는 초고대문명을 이룩한 고대지구인들이 우주에서 침략해온 에너지 정신체인 신에 의하여 학살당하고 악마가 되어버렸으며 현재의 인류는 신에 의하여 편리한 도구로 인공적인 진화를 마친 유인원이라는 충격적인 전개를 내던졌다. 신에 의하여 악마가 돼버린 초고대인들은 신의 주구인 인간과 대립을 피할 수 없으며 주인공은 악마의 수장으로서 신과 맞선다는 스토리였다. 마왕 단테는 연재하던 잡지의 휴간으로 도중에 끝나버렸지만 이러한 설정은 데빌맨에까지 이어져서 당시의 편집자는 "나가이 고가 인간 그 자체를 증오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했고 후에 나가이 고는 선선히 그것을 긍정하기도 했다. 다만 자신은 모랄리스트이며 인간의 선한 가능성은 늘 믿는다고 한다.

이러한 반사회적이라고할 수도 있는 성향은 언론과 각종 시민단체에 의하여 당시 주목되던 만화에 대한 사회적인 탄압에 딱 좋은 표적이 되었지만 반면에 동종업계인들과 만화의 독자층에서는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예술지가 아니라 상업지인 만화잡지에서 계속해서 나가이 고의 만화를 연재하게 한 것도 사회적인 규탄을 받는다는 손해를 상회하는 이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병상련의 기분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만화가로서 시리어스한 측면만이 평가되어 코믹, 개그 만화가로서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덜한 감이 있는데 어떤 만화에서도 개그를 잊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단순히 심각한 만화만을 그리는 작가는 아니다.

덧붙여 그의 전반적인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신화적인 색채가 꽤나 강하다. 단테의 신곡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연재한 마왕 단테부터 시작해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유산을 복원하여 전투병기로 개조한 기계수와 싸우는 마징가 시리즈라던가[18][19], 태고의 악마가 부활하여 인간과 빙의해 같은 악마들을 처단하는 데빌맨, 직접 제작은 아니지만 구상과 설정에 큰 영향을 미친 수신 라이거등을 보면 과학문명과 신화적 세계를 접목시킨 독특한 분위기를 잘 표현한다.

작업 스타일도 상당히 특이한 편인데, 처음부터 잘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라 그리는 게 아니라 단지 기본적인 캐릭터와 배경만을 설정한 뒤 스스로 거기에 몰입해서 '캐릭터가 움직이는 대로' 그려낸다고 한다. 덕분에 모 작품에서 주연급 캐릭터가 사망하는 충격적인 전개가 있었는데, 본인 말로는 정작 그려놓고 자기도 엄청나게 놀랐다고 한다. 자신 스스로도 "이 캐릭터가 왜 이러지?" 라는 걸 모를 때가 많다고 한다. [20] 이래서 스스로를 캐릭터를 자신의 안으로 불러들이는 '빙의형'작가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상상력이 뛰어나서 머리 속에서 온갖 기발한 영상이 끝 없이 떠올랐고 그걸 자신만 보는 게 아까워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은 그 영상을 캡처하는 것처럼 그림에 옮기는 것이며, 디자인도 대부분 그런 이미지에서 따온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이 아니고 실사 영상이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연재 중에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서 고생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아이디어가 막혀서 고민할 때는 기획 초기 단계 때고 제목과 캐릭터만 잘 정해두면 이후로는 일사천리라고 한다. 때로는 이미 존재하지만 자신은 전혀 모르는 것이 보이거나, 미래의 영상을 보기도 해서 이건 자신이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고 운명이 시키는 것 같다고 하기도 한다. 다만 그 이미지가 안 떠오르게 되면 그 작품은 더 이상 그릴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귀신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도 꽤 자주 보며 그래서 오컬트를 믿는다고 한다. 자신이 보는 귀신은 대부분 사람 같거나 재밌게 생겼는데 종종 매우 혐오스러운 귀신이 있다고 한다.[21] (출처: 일본 방송 [주간 소년] 8회.)

이 때문에 그의 작품에선 삘 받아서 던져놓고 회수하지 않는 떡밥이 매우 많고 스토리의 앞뒤가 맞지 않을 때가 있다. 대표작으로 알려진 바이올런스 잭 조차도 작품내 던져놓고 회수 못한 떡밥들이 넘쳐난다.[22] 나가이 고의 작품은 현실적이지 않을 때가 많으며 독자가 나가이 고가 꾸는 꿈을 같이 보는 것 같은 작품이 많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너무 진지하게 분석하면서 보면 안 된다.

또한, 몹시 질리는 게 빨라서 작품의 연재가 오래가지 않는 것이 특징 겸 단점으로 수십 종이 넘는 만화를 연재했지만 그 중에서 10권을 넘긴 것은 드물다. 그나마 길게 연재한 것은 파렴치 학원, 바이올런스 잭, 아바시리 일가[23] 정도가 있다. 그나마도 바이올런스 잭은 연재를 몇 번 중단했다가 성인잡지로 옮겨서 완결했다. 이는 위에 언급된 것처럼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으면 그릴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막힐 것 같으면 길게 고민하지 않고 과감히 작품을 접고 새로운 걸 시도한다고 한다.

이래서 일각에서는 결말을 제대로 안 내는 작가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가이 고의 작품은 대부분 결말이 중요하지 않은 개그물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완결낸 작품도 찾아보면 꽤 있다. 결정적으로 그의 대표작인 데빌맨은 제대로 완결을 냈다. 한국에서는 결말을 안 내는 작가라는 인식이 강한데 이는 한국에서 유명한 마징가 시리즈가 나가이 고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결말이 제대로 안 나는 시리즈라 이런 인식이 생긴 걸로 보인다. 다만 일본에서도 이런 이미지가 없는 건 아니라 같은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제자인 하야세 마사토(早瀬マサト)는 "미완결 작품이 많으면 사람들이 제자보고 대신 그리라고 하고 고생하게 되니까 완결은 확실히 하는 게 좋습니다. 나가이 고에게 특히 이 말을 전하고 싶네요." 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단점이 있어도 그 틀을 벗어난 천재적인 발상력에서 나오는 캐릭터와 아이디어만큼은 높이 평가받으며 그의 아이디어를 받아서 만든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중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인기를 끄는 작품이 많다. 어찌보면 일본 만화계의 누벨바그 작가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가 만화계에서 큰 입지를 차지하는 건 그 만큼 히트작을 연타석으로 다수 배출한 작가가 일본 내에서도 매우 희귀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원나블 급의 히트작을 혼자서, 잡지 4개에서 동시에 연타석으로 배출한 괴물이다. 이런 작가는 데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이후에는 나가이 고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의 작품을 자주 고치는 편이다. 복각판이 나오거나 재판할 때 새로 그린 페이지를 넣거나, 내용을 수정할 때가 많다. 더 좋아지는 작품도 있지만 데빌맨 같은 작품은 오히려 내용이 빠지거나 수위가 약해져서 초판이 더 비싸게 거래된다.

정의, 도덕은 위험하다 생각하며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은 스스로가 정의라 생각했습니다. 누구도 거기에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과연 옳은 걸까요? 지금 인터넷이나 현실에서 사회 규범에 어긋난 일을 하는 사람과 소수자를 공격하곤 하는데 그것도 과연 옳은 것일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은 "정의란 과연 옳은 것인가?" 라는 주제를 담는다고 한다. 데빌맨도 그렇고 마징가 Z도 그러하며 심지어 파렴치 학원도 그렇다고 한다. 자신은 작품은 획일화된 정의관, 도덕관을 담지 않는다고 한다. #

또한 데빌맨, 바이올런스 잭 같은 작품의 나오는 극도의 폭력적이고 성적인 묘사는 전쟁에 대한 경고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것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여러분들이 보게 될 광경입니다. 너무 잔혹하고 저런 일은 안 일어날 것 같지요?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전쟁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라고 한다.

이렇게 진지한 내용에 의미부여까지 한 작품도 있지만 고어와 에로는 본인이 좋아해서 그리는 것이기도 하다. 아이디어가 막히거나 스트레스가 심할 땐 일단 야한 장면이나 폭력 장면을 그려버리고 시간이 지나면 신기하게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아바시리 일가 같은 일부 코미디 작품은 큰 의미는 없고 즐기면서 그린 것에 가깝다.

평론가 오카다 토시오는 "데즈카 오사무가 일본 만화의 기본을 창시했으니까 나가이 고는 만화의 신이라는 평가는 얻지 못했지만 나가이 고도 천재입니다. '누가 더 재미있는 만화를 그렸는가?' 그것만 따지면 나가이 고의 작품이 더 재밌습니다. 나가이 고의 작품은 시대성이 없습니다. 지금 봐도 재미있고 미래에 봐도 재밌을 겁니다. 전 무인도에 둘 중 어느 사람의 만화를 들고갈 거냐고 물으면 나가이 고의 만화를 고를 겁니다. 전부 재밌으니까." 라고 평했다. #

4. 작가의 성품

유달리 폭력적이거나 외설적인 작품들을 많이 그려와서 성격 또한 반사회적이고 심지가 뒤틀렸을 거라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이다. 나가이 고는 일본의 모든 만화가들을 통틀어서 올곧은 성품과 선량한 마음씨를 지닌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친절하고 유머감각도 상당하여 동네 아저씨같은 느낌을 준다고 한다.

2007년 무렵 한국에 방한했을 때 그가 집필한 특유의 선정적, 폭력적, 광기 넘치는 작품들 때문에 상당히 염세적이고 까칠한 인상일 줄 알았던 만화 팬들이 현장에서 그가 보인 인품에 반해서 팬이 되었다는 후문이 있다. 몇몇 한국의 팬들과 기자들이 나가이 고 자택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때마다 융숭하게 대접했다고 한다.

또한 나가이 고는 데뷔 이후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문답 실수로 논란을 일으킨 적이 단 한 건도 없다. 이는 그가 얼마나 배려심이 있고 말조심을 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며, 이런 사람을 그렇게 공격한 당시 PTA 일원과 언론인들이 얼마나 파렴치하고 몰지각했는지도 알 수 있다.

역사관도 뚜렷히 정진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인이 과거 저지른 전쟁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비판한 적이 있으며, 평화헌법개정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낸 적이 있다. 사실 그의 전설적인 작품 "파렴치학원"에서도 전쟁을 비판하는 대사가 나온다. 그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세대 일원으로서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걸어온 산증인 중 한 명이기 때문에 국가 정부의 잘못된 사상과 폭력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는지 외면하지 않으며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을 그리면서 만들어온 성장성을 토대로 인간의 욕망을 억지로 거세시키지 않고 그대로 긍정하면서, 이를 통해 정의와 양심을 찾는 것이 나가이 고가 추구하는 가치관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일부 독자들은 나가이 고야말로 위선적이지 않은 진실한 크리에이터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나가이 고는 "만화는 작가의 인격을 반영한다는데 저는 안 그런 것 같습니다. 제 성격보다 훨씬 잔인한 캐릭터가 나오기도 해요. 난 다중인격이 아닐까(웃음)." 이라고 하기도 했다. #

나가이 고 작품엔 찐빵 같이 생긴 작가의 오너캐가 자주 나오는데 이 캐릭터의 성격이 나가이 고와 유사하다.

5. 나가이 고의 영향을 받은 것들

  • 마징가 Z는 당시까지 원격조종형인 철인 28호와 자율형인 아톰에 대하여 탑승형이라는 3번째의 형태를 제시했으며[24] 사실상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가 이를 배우고 잘 써먹고 있는 만큼 일본에서 인간이 로봇에 탑승하는 모든 작품의 선조가 되었다. 물론 마징가 Z가 최초의 탑승형 로봇[25]은 아니지만 비주류였던 탑승형 로봇을 주류로 끌어올리고 로봇의 한 가지 형태라고 인지시킨 것은 마징가 Z이다. 또한 마징가 Z는 로봇물의 기본적인 틀을 제시하였으며 그것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지켜졌고 계속해서 지켜지고 있다.
  • 이시카와 켄이 그린 겟타로보 시리즈에 경우 초기의 캐릭터 구도는 마징가 Z와 유사하다.(유미 사야카 - 사오토메 미치루, 카부토 시로 - 사오토메 겐키 등) 그리고 겟타로보 시리즈의 주요 콘셉인 합체는 비록 이시카와 켄이 처음 주창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나가이 고의 영향력도 컸다. 당시 이시카와 켄이 '도저히 현실적으로 합체 구도를 만들 수 없다'며 나가이 고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만화니까 자유로운 상상에 맡기라'면서 디자인을 비롯해 여러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나가이 고는 겟타 2겟타 3의 디자인을 담당해주었고 특히, 겟타 3의 특이한(다른 형태와 다르게 일렬로 합체하지 않는) 디자인은 나가이 고의 공이 크다.
  • 70년대 로봇 애니메이션들은 대부분 나가이 고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다. 마징가 시리즈에 참여했던 후지카와 케이스케가 각본을 맡은 마그네로보 가킨이 대표적이고 동사가 제작한 대공마룡 가이킹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는 토에이에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며 작품을 만든 소에이사(선라이즈)의 용자 라이딘도 영향을 받았다. 70년대 애니메이션 업계는 마징가 시리즈의 메가 히트를 보면서 "마징가를 무찔러라!"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새로운 작품에 도전했다. 물론 마징가 시리즈가 그렌다이저를 끝으로 시들해지자 이후 새롭게 부상한 초전자로보 컴배틀러 V로 대표되는 합체 로봇이 대세가 된다.
  • 타카하시 루미코는 나가이 고를 존경한다고 공언하고 있으며 개그 만화가로서의 나가이 고의 스타일과 그림체를 이어받아서 80년대에 모에 장르를 개척했다. 대중적으로 순화시킨 나가이 고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아바시리 일가가 특히 루미코 작품과 비슷한 점이 많은데 좋아한다고 말했다간 큰일날 만화라서 그런지 딱 찝어서 어떤 만화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6. 화풍

화풍에 고유한 몇가지 특징이 있다. 스크린톤의 비중이 적고 대신 검은 먹선 위주로 채색하며 그라데이션 표현이 거의 없어 음영이 뚜렷하다.
파일:external/static6.comicvine.com/2120532-462901_neo_devilman_super.jpg 파일:external/www.normaeditorial.com/01262000301_g.jpg 파일:external/static4.comicvine.com/2106644-217056__________04_001_super.jpg
데빌맨 시리즈의 캐릭터들 마징가 Z 코믹스 큐티하니 코믹스
주요 등장인물들의 경우 눈 위아래 폭이 넓고 눈꼬리부분이 위로 치솟아 매서워보이는 눈매를 가졌으며, 눈 밑에 아이라이너를 바른 듯 미간부터 눈꼬리까지 이어지는 선이 강하다 .눈동자는 작아 흰자의 비중이 큰 삼백안이나 사백안이다. 쉽게말해 윗쪽을 잡아늘인 사다리꼴 스타일. 대표작인 데빌맨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다 이런 눈매를 가지고 있다. 미키처럼 눈동자가 크고 정사각형에 가까운 순정만화풍 눈매를 지닌 여캐는 매우 드물다. 나가이 고는 작품과 캐릭터에 따라서 눈모양에 확연한 차이를 두는 스타일로 눈모양만으로도 캐릭터의 성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캐릭터를 두드러지게 그리는 편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화가 되면 그림체가 좀 더 소년만화처럼 변하게 되는데, 그래서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이가 원작 만화를 보면 강한 개성에 이질감을 느끼게 될 정도이다. 이는 나가이 고도 그렇고, 나가이 고에게 영향을 받은 이시카와 켄도 마찬가지이다.

나가이 고의 선정성으로 여성 캐릭터 작화가 주로 언급되지만, 사실 남성 캐릭터를 에로틱하게 그리는 솜씨도 뛰어나다. 기본적으로 상체탈의 상태인 데빌맨을 비롯, 스쳐지나가는 남성 단역들도 노출씬이 드물지 않은데다 육체의 남성미를 잘 살리는 편. 특히 많은 작가들이 생략해버리는 늑골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남성 특유의 라인을 잘 살린다. 장미물 작가들 중에서는 나가이 고의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한 작풍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헤어스타일도 둥글기보다는 끝부분이 뾰족하게 빠지며, 단발머리의 경우 머리끝이 안쪽으로 뾰족하게 뻗혀있다. 바보털과는 다른데, 꽁지나 뿔처럼 날카로운 실루엣이다.

남녀 주연급중에는 갸냘픈 캐릭터는 별로 없고, 근육질의 굵은 체형을 가진 경우가 많다. 남녀 공통으로 역삼각형 근육질이 많으며, 특히 대흉근, 광배근, 삼각근이 두드러진다. 대신 상대적으로 하체근육은 크게 그리지 않아서 다리는 굵지 않은 편. 삼각근이 자기 머리통만한 바이올런스 잭도 다리근육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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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이 고의 바이올런스 잭 하라 테츠오의 북두의 권 미우라 켄타로의 베르세르크
비슷하게 상체근육이 큰 스타일인 하라 테츠오미우라 켄타로와도 차이가 있는데, 하라나 미우라는 바지를 입은 하체를 그릴 때에도 무릎과 대퇴사두근의 굴곡을 표현한 흔적이 보이지만, 나가이 고는 그러는 경우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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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캐의 경우에도 삼각근, 대흉근은 상당히 발달된 형태로 그리는데, 여성의 유방을 엎어놓은 밥공기(...) 형태로 그리는 특유의 그림체와 겹쳐서 의젖같은 형태다. 큐티하니시레누, 데빌맨 레이디가 대표적 케이스.

나가이 고는 자신의 만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체형이 일본인의 체형이 아님을 인정하고 있다. 어린 시절 봤던 프랑스나 헐리우드 영화에 나온 배우들의 체형이 기본이 되었다고하며 # 일본인의 체형은 그리기 싫었다고. 프랑스 여배우 마틴 캐롤 (Martine Carol)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마틴 캐롤을 검색해보면 나가이 고가 왜 여체를 저렇게 그리는지 알 수 있다. 나가이 고는 자신의 작품이 아시아보단 서양에서 더 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이런 것에 있지 않을까하고 추측했다. 나가이 고도 "내 작품에 나오는 미소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인 같지 않다." 라는 생각을 해 아예 혼혈로 설정하거나, "혼혈 연예인처럼 예쁘다." 라는 표현으로 외모를 수식하곤 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작품의 여성 캐릭터 그리는 법이 다른데 1970년대 작품의 여성 캐릭터는 어시스턴트 오카자키 유우(岡崎 優)[26]가 담당했다. 파렴치 학원, 마징가 Z 같은 작품에서 여캐가 야릇하게 그려지는 장면은 대부분 오카자키가 그렸다고 한다. 나가이 고는 "나보다 잘 그리니까 전적으로 맡겼다." 라고 한다. 그래서 1970년대의 나가이 고 작품을 더 선호하는 나가이 고 팬도 존재한다. 오카자키가 그만둔 이후의 작품은 나가이 고가 그렸다. 이 항목에 있는 예시는 대부분 나가이 고 작화이다. 물론 1970년대 작품도 나가이 고가 여캐를 그리기도 했다. 시마모토 카즈히코 말로는 그림을 잘 아는 사람이면 나가이 고와 오카자키가 그린 걸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오카자키가 그린 건 동양인 체형, 슬랜더에 귀엽고, 나가이 고가 그린 건 서양인 체형, 근육질에 멋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악당 캐릭터나 몬스터는 이시카와 켄에게 맡기는 등 다작을 위해 각 분야를 잘 그리는 어시에게 맡기기도 했다. 나가이 고는 활동 초기부터 다이나믹 기획이라는 팀으로 그리고 있다고 말을 했고[27] 작품에 어시를 출연시키면서 자신이 혼자 그리는 게 아니라는 걸 밝혀왔다. 그러면 이거 나가이 고가 그린 게 아니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주인공은 나가이 고가 그렸으며 디자인, 연출 네임을 짜고, 작화 수정하는 것도 나가이 고였다. 많은 작가들이 이렇게 작업하므로 나가이 고가 특별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만화가 항목 참조.) 실제로도 나가이 고는 다작 작가이던 시절엔 이 작업만 해도 죽을 뻔 했다고 했으며 이건 그의 제자들도 인정하는 것이다. 나가이 고 말로는 어시를 아무리 많이 써도 만화가 본인이 반드시 해야하는 작업이 있어서 결국 만화가 스스로가 잠을 안 자거나 안 쉬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한다.

7. 작품 목록

8.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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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이 고(왼쪽)와 시노자키 아이[36]
  • 나가이 고는 일본에 존재하는 5개의 소년 주간 만화잡지에 5개 작품을 동시에 연재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 소년 점프에 파렴치 학원, 소년 선데이에 애니멀 캐다군, 소년 매거진에 오모라이군, 소년 킹에 파이팅 스포콘군, 소년 챔피언에 아바시리 일가. 데즈카 오사무이시노모리 쇼타로도 못해본 기록이라 한 번 해보고 싶어서 5개를 동시에 받아버렸다고 한다. 이때 1달에 700페이지를 그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37]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또 펑크는 안 냈다고. 그러나 역시 너무 무리가 따랐는지 소년 킹에 연재되던 파이팅 스포콘군은 연재 5주만에 종료되었다. 소년 킹은 폐간되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38] 또한 데빌맨을 연재하게 되면서 여기에 집중하기위해 당시 최고 인기작이었던 파렴치 학원을 그만두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는데 얼마 안 가서 소년 점프에 마징가Z를 연재하게 되면서 이 일정조율은 헛고생이 되었다. 다만 파렴치 학원을 더 그릴 모티베이션이 없는 상태라 그만둔 것이기 때문에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여튼 이런 짓은 그 이후로 다시는 안 했으며 후배에게도 하지 말라고 권한다.
  • 이렇게 다작을 하고자 스튜디오 '다이나믹 기획'을 엄청나게 크게 돌렸다. 직원을 20명 이상 썼다. 물론 다른 인기 작가도 그렇게 했지만 나가이 고는 신인 시절부터 명성에 비해 큰 화실을 굴렸다. 거기다 만화 그리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며 매니저까지 따로 고용했다. 이렇게까지 한 건 나가이 고가 처음일 것이라고 한다.[39] 그래서 작가 활동 초기엔 많은 수익을 얻어도 직원 인건비로 다 나가서 본인은 얼마 벌지 못 했었다고 한다. 만화가가 돈을 벌려면 어시를 적게 쓰고 히트작 1, 2개에 집중하는 것이 좋은데 자신은 떠오르는 건 많은데 다 그리고 싶고, 돈 욕심도 없어서 어시를 많이 쓰고 스튜디오를 크게 굴리며 다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마징가 Z부터 숨통이 트이고 돈이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만화가로서 평생 가난하게 살 각오를 했지만 가지고 싶었던 건 모두 가지게 되었다고.
  • 이렇게 다작을 했지만 마감을 어기고 펑크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자부한다. 데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마감을 어기거나 도망가기도 해서 출판사에서 감시할 사람을 보내기도 했는데 나가이 고는 그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출판사에서도 무조건 신뢰했다고 한다. 시간이 없으면 좀 날림으로 그려서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40] 마감을 최우선으로 지켰다고 한다. 마감을 잘 지키는 이유는 "이시노모리 선생님이 마감 직전까지 작업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편집자의 눈빛이 분노에 차서 오니같이 변했습니다. 그걸 보고 이런 짓은 하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한다.
  • 먼저 연재를 타진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는데 잡지사 측에서 "나가이 선생님의 만화를 연재해주시겠다는 것은 고맙지만 도저히 연재료를 지불할 수 없으니 포기하겠다"는 말을 들고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가이 고 작품의 권리 등을 다루는 다이나믹 프로가 나가이 고의 인기를 빌미로 사기적인 액수의 연재료를 요구한 것이었다.
  • 소년 점프에서 많은 히트작을 연재했음에도 소년 점프에서 자신들 잡지의 대표 작가들을 언급할 때 나가이 고나 그의 작품인 파렴치 학원, 마징가 Z는 보통 생략된다. 마징가 Z 연재 당시 소년 매거진에서 마징가 Z를 연재하기로 하고 점프판 마징가 Z는 대충 연재종료를 해버린 사건이 있기 때문에 괘씸죄로 언급을 안 한다는 설이 있다.
  • 기동전사 건담의 아버지 토미노 요시유키는 나가이 고를 존경한다고 한다. 데빌맨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다만, 토미노는 나가이 고의 대표 작품 마징가 Z를 싫어하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마징가 Z와 같은 로봇 애니만 만들게 하는 스폰서 때문에 생긴 개인적인 악감정과 라이벌 의식의 발현에 가깝다. 나가이 고의 실력은 인정하고 있으며 자신의 라이벌로 생각한다고 한다. 토미노는 "나가이 고와 반대되는, 새로운 걸 만들지 않으면 로봇 애니메이션은 결국 다 마징가 Z가 되어버린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 그런 토미노의 철학이 담긴 첫 결과물이 바로 용자 라이딘이다. 토미노는 나가이 고 특유의 신화적 분위기를 더욱 더 강화시키며 성전사 단바인이라던가 전설거신 이데온같은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 나가이 고는 데즈카 오사무를 매우 존경하였으며, 자신의 그림은 데즈카의 그림을 베이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걸 더한 것이라고 한다. 데즈카 오사무가 죽었을 때는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데즈카 오사무의 딸 데즈카 루미코가 트위터에 올려서 화제가 되었는데, 나가이 고는 "신이 죽었다는 기분이었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데즈카 오사무에 대해서는 "항상 미래를 보는 사람이었다. 과거의 이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됐고 앞으로 연재 할 차기 작품의 구상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솔직히 이시노모리 선생님보다 데즈카 선생님이 더 좋다."고 하기도 했다.
  • 영화광이며 할리우드 영화 뿐만 아니고 상당한 유럽 영화 전문가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프랑스 영화이탈리아 영화를 좋아한다. 위에 언급된대로 캐릭터의 체형과 외모도 거기서 따온 것이며 파렴치 학원, 마왕 단테 등 그의 작품 상당 수는 유럽 영화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 그쪽 인터뷰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자주 언급해서 "저 작가는 어떻게 저렇게 우리 문화를 잘 알고 있냐" 라면서 감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 액션을 제대로 그리고자 격투기 전반, 특히 프로레슬링을 즐겨보았고 실재로 그가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80년대 말에 방송국에서 방영과 함께, 프로레슬링 선수 데뷔를 진행했던 수신 라이거 프로젝트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다. 심지어는 쥬신 썬더 라이거의 데뷔 경기에서는 그가 직접 경기를 관람하고, 화환을 걸어주기도 했다.
  • 아카츠카 후지오는 나가이 고가 어린애들이 토막난 사람 시체를 가지고 노는 개그만화를 그리자 "개그 만화엔 잔혹신이나 키스신이 나오면 안 된다. 편집부에 이런 만화 싣지 말라고 말하고 왔다." 라고 하면서 혼냈다고 한다.(#) 결국 이 만화는 인기는 좋았으나 조기 중단. 그러나 다른 잡지사에서 "아카츠카 후지오 선생이 욕한 만화는 성공한다." 라면서 나가이 고를 불러냈고 나가이 고의 바이올런스함은 불이 붙게 된다. 훗날 아카츠카 후지오는 그때 미안했다며 나가이 고에게 사과를 했다고 한다.[42]
  •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적이 있는데[43], 이때 담당 편집자의 추천으로 이리야 귀자모신(入谷鬼子母神)에서 액막이(お祓い)를 받자 해결됐다고 한다. 이후로도 도로롱 엔마군의 OVA 작품인 귀공자 엔마를 제작할 때 등, 악마나 귀신과 관련된 위험한 작품을 만들 때마다 액막이를 받았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비슷하게 악마를 소재로 한 게임을 만드는 회사인 ATLUS에도 영향을 미쳐, ATLUS에 매년 이케부쿠로의 귀자모신당(鬼子母神堂)에 액막이를 받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 훗날 대표작이 된 데빌맨이나 마왕 단테기독교적인 종말론/세계관이 등장하지만 정작 나가이 고 본인은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고 기독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고 한다. 성경은 데빌맨 때 독자가 "이거 요한의 묵시록에서 따온 건가요?" 라고 해서 "그런 게 이미 있다고?" 하고 놀라서 읽어본 게 처음이라고 한다. 다만 성경은 안 읽었지만 어릴 적에 단테신곡를 아동용으로 요약한 책을 읽은 기억과 서양 영화를 보고 영감을 얻은 어렴풋한 이미지로 만화로 그렸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일본 전체 인구의 1%도 안 되는 마이너 종교라서, 나가이 고가 만화에서 그린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종말론적 이미지가 당시 일본인한테는 대중적이지 않고 특이한 경우에 속했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유태교밀교 카발라와 비슷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 초기작 파렴치 학원의 1부 결말에서 정부 측 대표가 학원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몰살시키기 위해 출전하면서 "히히히 대동아 전쟁 이후로 오랜만에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대의명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지!"라고 언급하는 광기스런 대사와 게키만에서 밝힌 데빌맨의 배경 설정[44]으로 보면 역사적 인식이 꽤 올바른 사람이다. 나가이 고는 자신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피난선이 어뢰를 맞아 침몰할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매우 싫어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스승인 이시노모리 쇼타로부터가 전쟁고발 만화를 그린 사람이었고 같은 사상을 가진 만화가 선배인 데즈카 오사무, 아카츠카 후지오, 미즈키 시게루 소설가인 고마츠 사쿄, 츠츠이 야스타카 [45] 하고도 교류를 가졌다. 이런 환경에서 그가 우익사상을 가지게 된다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 한국에 대한 인상이 꽤 좋은 것 같다. 단순한 립서비스일 수도 있지만 여행 갔던 제주도의 제주도민들에게서 선물도 받는 등 따듯한 대접을 받은 모양이다. 실제로 윤서인과 63빌딩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고 용비불패문정후 작가에게 자신의 대표작인 데빌맨의 리메이크를 맡기는 등 한국 만화계에도 관심이 있는 모양.
  • 이시카와 켄은 절친이자 술 친구였다. 이시카와 켄은 나가이 고가 없었다면 자신은 만화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반대로 나가이 고는 이시카와 켄을 어시로 두긴 했지만 제자가 아닌 친구라고 표현한다. 이시카와 켄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재능이 있어 더 가르칠 게 없었다고 한다. 해외 여행도 같이 갔고, 함께 술 마시면서 "만화가는 마감이 없다면 이보다 좋은 직업은 없을 텐데"라며 푸념을 늘어놓는 사이였다.
  • 미국 성우들 몇몇과도 친분이 있는 것 같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신 큐티 하니 북미판 더빙 성우는 나가이 고 자신이 직접 추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젊었을 때 연애 경험은 거의 없고, 대신 만화에 등장하는 2차원 여성 캐릭터들에게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 데즈카 오사무리본의 기사에서 남장 여인 주인공 사파이어 공주가 여성으로 드레스를 입었을 때 가슴이 보이자 심쿵했다고.
  • 아내는 방송인 겸 인형극단원 겸 점술가였는데 당시 나가이 고가 잘 안 되던 연애문제로 점을 보기 위해 첫 만남을 가졌고 이후 정이 들어서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이 너무 바빠서 5 ~ 6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관계를 이어왔고 나가이 고가 "결혼할까?" 라고 말을 꺼내니까 "그걸 이제 말하냐." 라고 하고 바로 결혼했다고 한다.[46] 알고보니 나가이 고 외의 다른 남성과 만날 생각이 없어서 맞선도 전부 거절하고 혼기를 놓쳐 장인, 장모도 근심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가 영능력과 텔레파시 능력이 있어서 무슨 생각을 해도 간파해버리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바람을 피운 적이 없다고 한다. 연애할 적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는데 아내가 먼저 전화해서 "불렀어?" 라고 한 적도 있다고. 다른 여자를 생각하면 "다른 여자 생각했지?" 하고 바로 알아버린다고 한다. # 아내가 영어도 잘해서 해외에 갈 때 통역을 해주기도 한다고. 젊었을 때는 굉장한 미녀였으며 주변 말로는 도로롱 엔마군의 히로인 유키코 히메를 닮았다고 한다.[47] 나가이 고는 만화가가 되면서 "미녀가 좋지만 만화가 같은 가난한 직업이 예쁜 여자를 만날 수는 없겠지. 여자는 포기한다!" 라고 각오를 굳혔는데 결국 미녀와 결혼하게 되었다. 아내가 방송인이던 시절의 인터뷰 기사[48] 굉장한 애처가이다. [49] 아내가 없었으면 자신은 일찍 죽었을 것이라 하기도 했다.
  • 자녀가 있는지는 불명. 결혼과 달리 한 번도 출산과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 최신 만화나 애니메이션도 챙겨보고 있으며 최신작 중엔 귀멸의 칼날을 좋아한다고 여러 번 언급했다. #

9.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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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관련 문서

11. 외부 링크



[1] 3등급에 해당한다.[2] 카부토 코우지 옆에 있는 것이 서명.[3] 사립학교[4] 출처: 週刊少年 「永井豪」 インタビュー[5] 본인 말로는 바쁠 때는 2주일간 하루 2, 3시간 잠을 자고, 화장실 가고 "가끔" 식사할 시간밖에 없어서 화장실에서 기절한 적도 있었다고[6] 나중에 소년 챔피언의 2대 편집장이 되어 발행부수 25만부였던 꼴찌 잡지를 250만부까지 끌어올려 업계 선두자리를 차지한 소년 챔피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물' 편집장. 마감을 넘긴 전성기의 데즈카 오사무를 찾아 가 멱살을 잡고 항의를 한 적도 있는 야쿠자같은 무뢰배로 유명했다. 한물 갔다고 평가받던 데즈카 오사무에게 블랙잭의 연재를 의뢰한 사람이기도 하다. 나가이 고에게는 처음으로 월간 잡지의 연재를 맡기고 최초의 어시스턴트도 데려와 주기도 했다. 나가이 고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7] 본격적으로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몇 편의 단편 연작 형식으로 소년 점프에 처음 실렸다.[8] 어느날 갑자기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이유도 없이 무자비하게 살해한다는 내용. 경찰이 어린이를 총으로 쏴 죽이고, 주인공인 스즈무쨩은 엄마한테 식칼로 목이 잘려 죽는다.[9] 애니메이션으로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왕과 새(1952)가 훨씬 더 빨랐다.[10] 사실 데즈카 오사무는 이런 선정적인 부분은 어느정도 순화시키는 선에 묘사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적극적인 나가이 고와는 대조적인 편이다.[11] 만화가의 길 참조[12] 데빌맨 연재 당시, 소년지에서 강간 장면을 처음으로 그리겠다면서 "사람이 아니라 악마가 악마를 범하는 거니 괜찮다"라고 이야기했던 게 바로 나가이 고다. 당연히 이는 기각되었고, 결국 후배 만화가들이 그린 앤솔로지에서야 비로소 구현된다. 그리고 데빌맨 Crybaby에선 영상화까지 되었다.[13] 하지만 데즈카 오사무가 사망했을 때 나가이 고는 어린애가 울듯이 통곡했다고 전해진다. 서로 지향하는 바는 달랐어도 데즈카에 대한 존경심은 높았던 듯.[14] 2024년 이시카와현 노토 지방 지진으로 인한 화재로 전소하고 말았다.[15] 자전적 만화 게키만에 따르면 데빌맨을 그릴 당시의 어시스트들은 모두 개그 만화 지망생이라 리얼한 배경을 그릴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배경대신 적 캐릭터를 많이 넣거나 숲에서 싸우는 걸로 해서 배경을 아꼈다고.[16] PTA의 조직내에서의 서열은 남편의 사회적인 직위에 의하여 결정되며 그런 탓에 PTA 회원들의 남편 중에서는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17] 다만 훗날 나가이 고는 "이건 사실일지도 모른다." 라고 하기도 했다. 여자를 만날 일이 별로 없어서 여자와 여체에 대한 호기심이 남들보다 좀 커졌다고.[18] 마징가 시리즈의 캐치프라이즈가 바로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다'이다. 1화에서 카부토 코우지가 할아버지인 카부토 쥬조 박사에게 들은 말도 마징가에 타면 넌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19] 마징가에서 선보인 신화적 색채를 더욱 더 강화하여 제작한 거대로봇물이 용자 라이딘이다.[20] 아스카 료가 대표적이다. 이건 자신과 별개로 생각하고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 같았다고.[21] 만화 슈텐도지를 그릴 때는 오니를 취재하러 갔다가 빙의와 괴 현상을 겪었다고 한다. 어시들도 겪었다고.[22] 다만 이 작품은 수시로 중단, 재연재를 반복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나가이 고의 중단된 다른 작품을 생각하면 이렇게라도 끝까지 간 게 기적이다.[23] 아바시리 일가는 액션 개그물이라 아이디어가 막혀도 액션으로 채워넣으면 떼울 수 있었기 때문에 장기 연재를 하기 좋은 작품이었다고 한다.[24] 아톰과 철인 28호와 똑같은 걸 만들면 데즈카 오사무요코야마 미츠테루에게 실례라고 생각해서 전혀 다른 걸 생각하다 탑승형을 구상해냈다고 한다. 나중에 나온 스승 이시노모리 쇼타로인조인간 키카이다를 봤을 땐 '스승님은 이렇게 나오는구나.' 라고 생각했다고.[25] 뜻밖에도 애니메이션 역사상 거대 로봇에 사람이 타는 것은 1952년작 프랑스 애니메이션 왕과 새이다.[26] UFO로보 그렌다이저의 만화판은 나가이 고 구상에 오카자키가 그린 버전, 오타 고사쿠가 스토리, 작화까지 다 한 버전 등 여러 개가 있다. 한국에 정식 발매된 건 오카자키 유우 판. 하지만 오타 고사쿠 판이 더 평이 좋다. 그리고 기동전사 건담의 만화판도 담당했다. (아무로 레이가 TV를 향해 펀치하는 다혈질로 나오는 걸로 유명한 만화이다.)[27] 자신의 작품을 낼 때 작화는 '나가이 고와 다이나믹 프로' 라는 명의를 써서 이를 알렸다. 작화를 특정 어시가 대부분 다 했을 때는 그 어시의 이름을 쓴다.[28] 데빌맨 장, 마징가 Z 장, 큐티하니 장 이후 마징가 Z&그레이트 편 연재.[29] 이시카와 켄과의 합작. 바빠서 직접 그리지는 못했지만,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많은 부분에 관여했다.[30] 이름만 빌려줬으며 실제로는 오타 고사쿠가 원작자에 나가이 고는 손도 안 댔다.[31] 원안 담당.[32] 데빌맨만큼 인기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지신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데빌맨처럼 완결이 제대로 난 작품 중 하나이다. 이 만화 그리겠다고 어느 절에 오니를 취재하러 갔다가 빙의와 심령현상을 겪었다고 한다. 어깨가 결려서 어깨를 슥 만졌더니 콧물 같은 게 묻어 나와서 "이게 엑토플라즘이구나." 라고 생각했었다고. 진짜로 오니와 싸우면서 그린 만화라고. 만화가 시마모토 카즈히코와 잇폰기 반(一本木蛮) 말로는 "도저히 수습 불가라고 생각했는데 기적적으로 완결을 낸 작품." 이라고 한다.[33] 1970년대 말, 80년대 초까지 주간 영 점프에 연재했던 에로 만화. 한국에는 1980년대 말, 90년대 초에 해적판 성인만화 '사랑의 박격포'로 소개된 적이 있다. 주인공 하나헤이. 통칭 '하낫페'가 악마로부터 자신이 손가락(남자 거시기처럼 변한)으로 가리키는 모든 여성과 성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내용이 2010년대 지금 기준으로도 수위가 높다. 만화 원작자가 코이케 카즈오다.[34] 오모라이는 쌌다는 의미. 더러운 걸로 화장실 개그하는 만화로 주인공이 너무 더러워서 주변 사람들이 병 걸려 죽기도 한다. 츠츠이 야스타카는 "일본 최초의 스카톨로지 만화." 라고 극찬했다고 한다.[35] 학생운동을 풍자한 만화로 교권이 지나치게 강화되어 총기를 가지게 된 교사들과 이에 게릴라로 대항하는 학생들을 그린 만화. 미도 타츠마란 캐릭터가 오토코노코의 선조로 유명하다. 짧게 끝났지만 작가의 애정이 깊은지 다른 작품에 이 작품 캐릭터가 자주 나온다.[36] 시노자키 아이는 2015년 신형 초합금 그레이트 마징가 발표회장에서 활약한 마징가풍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37] 이시노모리의 최고 기록이 600이었다고 한다. 다만 나가이 고는 700페이지 연재를 일찍 그만두었지만 이시노모리는 쭉 저 페이스로 연재한 기간이 있다. 그래서 만화계에서는 이시노모리를 더 괴물로 친다.[38] 소년 킹이 그저그런 잡지였던 것은 아니었고 1963년부터 출간된 유서깊은 잡지였는데 은하철도 999초인 로크 등이 연재되었을 만큼 나름 저력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못 이기고 메이저 주간만화 잡지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폐간되었다. 여담인데 초인 로크는 가히 국내만화가 김진의 저주를 능가할만한 수준으로 소년 킹 이후에 지면을 바꿔 연재되는 잡지나 사이트마다 죄다 망한 전설의 작품이다.[39] 다만 매니저는 나가이 고의 형제와 그의 친구들이었다. 나가이 고 혼자 온가족과 그의 지인들까지 먹여살린 셈이다. 2023년 현재도 나가이 고와 다이나믹 기획 작품의 저작권 관리는 나가이 고의 동생이 한다.[40] 다행히도 스승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시간은 덜 들이면서 멋있게 보이는 기법을 많이 알려주어 그렇게 해도 티가 잘 안 났다고 한다.[41] 첫번째는 데즈카 오사무다.[42] 사실 아카츠카 후지오 만화도 시체 가지고 노는 장면이 꽤 나온다. 오히려 나가이 고가 아카츠카 후지오에게 영향을 준 거 아니냔 추측도 있다.[43] 본인의 기억이 확실하지 않은지 데빌맨 연재 당시라고도 하고, 슈텐도지 연재 당시라고도 하는데 슈텐도지라 이야기한 적이 더 많으며 게키만 데빌맨 편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걸 보면 슈텐도지 때가 더 유력하다.[44] 데빌맨의 모티브와 극중의 아키라의 행동은 애국심과 순수함을 국가에 이용당한 젊은이의 절규라고 한다. 그리고 미래에 전쟁의 아픔이 잊혀졌을 때 우익들이 군비증강을 노리게 되고 젊은이의 사상을 침식해갈 것이며 데몬은 이를 상징한다고 한다. # 정치인들에 의해 극우화되어가는 현 일본의 상황을 생각하면 소름끼칠 정도로 예리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45] 한국에선 소녀상 망언으로 완전히 찍혔지만 원래는 역사인식이 올바른 사람이다. 문제의 망언도 실은 우익들을 트롤링하려는 목적으로 한 것이다.[46] 나가이 고가 37세, 아내가 33세에 결혼했다. 2020년대 한국 기준으론 그게 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당시엔 결혼을 일찍 하는 게 기본이었고 일본은 징병제도 없어서 더 빨리 결혼했으므로 굉장히 늦게 결혼한 것이다. 그래서 아내가 왜 이제 말하냐고 한 것.[47] 아내를 만나기 전에 그린 캐릭터라 아내가 모델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아내가 이상형의 여성이었으므로 비슷해진 것 같다고 한다.[48] "전 다 잘할 수 있는데 결혼의 재능이 없나봐요. 남자친구가 결혼할 생각이 없어요... 큰일이야." 라고 투정부리고 있다.[49] '주간 소년'이란 방송에서 "무인도에 가지고 가고 싶은 거 3가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망설임 없이 아내를 말했으며 이 방송에서 이 질문에 아내를 가장 먼저 말한 건 나가이 고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한다.[50] 작가 작품 특성상 대부분이 반드시 후방주의가 필요하다.[51] 엄밀히 말하면 제자이지만 나가이 고는 이들을 항상 '동료'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