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00:29:57

복고 가톨릭교회

구 가톨릭교회에서 넘어옴
1. 개요2. 역사3. 특징4. 위트레흐트 연합스크랜턴 연합5. 전통주의 가톨릭과의 혼동6. 같이보기

1. 개요

Old Catholic Church

19세기가톨릭 교회에서 독립한 그리스도교 교파.

일반적으로 복고(復古) 가톨릭교회 또는 고(古) 가톨릭교회라고 하고 개신교에서는 구(舊) 가톨릭교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교단 명칭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전의 옛 모습으로 돌아간 가톨릭교회를 의미한다.

이름에서 받을 수 있는 인상과는 달리 오히려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반대하는 반동주의 내지 근본주의 성향의 전통주의 가톨릭과는 반대에 가까우니 주의할 것.

2. 역사

1869년 교황 비오 9세의 주도로 일어난 제1차 바티칸 공의회교황무류성교황수위권을 교의적으로 최종 확립했으며 공의회가 교황권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공의회 중심주의교황권 제한론을 밀어냈다.

그러자 독일 등지에서 자유주의 성향의 신학자와 사제부터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공의회가 단지 교황의 자문기관에 불과한 것이냐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교황무류성을 부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결국 이런 주장을 펼친 이들은 교황무류성이 결정되기 이전의 가톨릭교회 체제를 고수해야 한다는 명분을 표방하게 되었다.

1871년에 이르러 독일 대학교 신학과 교수들이 교황무류성에 반발하여 시위와 항의를 일으켰고 이것이 독일 각지의 가톨릭 교회들로 퍼져나가면서 결국 독일 가톨릭의 자유주의적 신학자들인 될링거·프리드리히·로이시·슐테 등의 주도로 뮌헨에서 복고 가톨릭교도 대회를 열고 독립 교단의 창설을 선언했다. 독일에서 복고 가톨릭교회가 창립되자 이런 분위기는 유럽 각지로 퍼져나가 오스트리아·프랑스·스위스는 물론 교황청이 있는 이탈리아까지 복고 가톨릭교회 교단이 창립됐다.

1873년 유럽 각국의 복고 가톨릭교회들은 교황청과 관련없이 독자적으로 주교를 성성했고 1889년에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각국 복고 가톨릭교회들이 모여 위트레흐트 연합을 결성하고 위트레흐트 선언을 통해 교황 수위권 부정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여전히 명예 수장으로 교황을 인정한다고는 했지만 명예 수장 인정은 성공회에서도 논의했던 사안이므로 별 의미는 없었다.

3. 특징

교리적으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결정한 내용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성모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믿음, 곧, 성모무염시태교황무류성교황수위권 등을 거부하고 사제의 의무 독신제도 부정한다. 반대로 가톨릭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에야 인정했던 모국어 전례는 일찌감치 인정하였다. 고해성사에 있어서도 그 필수불가결함을 부정하는 입장을 일찍이 취했다.

교회 조직은 각 나라마다 국교회가 있고 이 국교회를 한 명의 주교가 관할하며 전세계적으로는 각국 국교회의 주교들이 모인 주교회의가 연합체 위트레흐트 연합으로서 존재한다. 주교회의가 최고 의결권을 가지고 있으며 성공회 대표격인 캔터베리 대주교처럼 위트레흐트 대주교가 수장이지만 어디까지나 명예직에 불과하다.

복고 가톨릭교회의 각 국교회들은 성직자와 평신도가 공동으로 구성하는 교구회의에서 교회의 모든 사안을 결정한다. 각 교회의 주임신부는 신자들이 선출한다.[1] 교회의 구조와 형태는 성공회와 유사하고 교리적으로도 현 가톨릭보다 성공회 고교회파(특히 '앵글로가톨릭' 성공회)와 유사하다.

1932년부터 성공회와 활발하게 교류협력을 하며 완전한 상통[2] 관계를 맺었다. 따라서 복고 가톨릭교회와 현 가톨릭교회 간 차이보다 복고 가톨릭교회와 고교회파 성공회 간 차이가 더 적다.

복고 가톨릭교회는 스스로 교황 수위권을 부정하면서 독립한 교단이다. 더군다나 이미 1920년대부터 루터교·성공회 등 개신교 교단과 교류를 시작했으며 1932년에는 성공회와 상통 관계를 맺었고 1990년대부터는 여성을 성직에 서품[3]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복고 가톨릭교회와 성공회 및 북유럽 루터교와 교회론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공통된 바가 많았기 때문이다.

교황청으로부터의 독립 및 상통 단절이 개신교 신앙(즉,종교개혁 정신으로부터 이어져 온)을 규정하는 유일한 잣대는 아니다.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서야 그것이 개신교를 규정하는 필수충분적인 기준이겠지만 그 어떤 개신교 신학자들이나 평신도들도 개신교 신앙 정체성을 이런 식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물론 복고 가톨릭교회는 단순히 교황청과의 독립 및 상통 단절 외에도 성모 마리아의 무염시태를 인정하지 않고, 고해성사의 필수불가결성을 부정하며, 성직자와 평신도가 공동으로 구성하는 교구회의에서 주요 사안을 처리한다. 따라서 신학적으로 가톨릭·정교회보다는 일부 성공회나 일부 루터교 등 광의의 개신교회 일부와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동방정교회에서 무염시태 교리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고해성사가 신앙에 있어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성사의 수는 지역 및 문화에 따라 다를뿐더러 성사가 몇 개라고 딱 규정하기를 무척 조심스럽게 여긴다.

또한 복고 가톨릭교회가 가톨릭 내부의 신학적 논쟁으로 촉발된 교파이기는 하나, 이는 루터교 등 다른 개신교 교파의 일부도 가톨릭 내부의 신학적 논쟁으로 촉발된 교단이니 광의의 개신교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사실 성공회와 루터교의 사례를 복고 가톨릭의 사례와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고교회파를 포함한) 성공회 및 루터교를 비롯한 개신교회는 16세기 이래로 촉발된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정치적 사건을 기화로 한 신학적, 정치적 결과물이지만, 위트레흐트 연합 및 비 위트레흐트 연합의 복고 가톨릭교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복고 가톨릭교회 스스로가 대부분의 루터교나 많은 성공회와는 달리 종교개혁으로부터의 신학 전통과 개신교 정체성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이를 부정하고 있는데, 이를 타자의 입장에서 그들은 개신교라고 딱 잘라 재단해버림은 도의적으로도 옳지 못하다

복고 가톨릭교회는 3성직뿐 아니라 많은 개신교 교단에서 이질적으로 간주하는 성모신심, 묵주, 성체성사의 신비(Real Presence), 성인공경, 수도원 등을 유지한다. 그러나 가톨릭에서 유래한 전통을 그대로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고교회파 성공회나 일부 고교회파 루터교처럼 변형을 가해 유지하는 한다고 보는 가톨릭측 일부의 관점이 있고, 이를 가지고 (넓은 의미에서) 개신교로 규정할 수 있다고 보는 주장이 있는데, 이 또한 무리가 있는 논리다. 선술했듯이 이들 교회들은 종교개혁이라는 공통된 신학적, 정치적 결과물로부터 이어져 온 교단이고, 근대 이래 해당 교리에 대해 변형을 가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반면 복고 가톨릭의 입장에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사항[4]이 기존 교리의 변형이다[5]. 복고 가톨릭에서 사제의 결혼은 동방정교회가 유지한 전통이자 그레고리오 7세의 결정 이전의 가톨릭 전통이며, 고해성사의 선택은 복고 가톨릭(스크랜턴 연합)의 포트루아얄 수도원[6] 계열이 속한 얀센주의자들의 주장[7]이다. 게다가 광의의 의미로 개신교에 속한다는 고교회파 성공회 중에서도 일부는 무염시태나 몽소승천, 심지어 교황무류성까지도 교리로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관구를 로마에 속한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Anglican Papalist)가 있어 매우 애매한 부분이다.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개신교와 비 개신교의 기준을 재단할 수는 없다.

현대 종교학계는 복고 가톨릭교회를 '독립 가톨릭(Independent Catholicism)'으로 분류하곤 하지만 개신교와 별개의 교회라는 맥락에서 '독립 가톨릭'으로 분류한다기보다는 개신교로 분류할 수 있는 교단들 중 3성직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톨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그러나 가톨릭·정교회는 아닌 교단들도 '독립 가톨릭(Independent Catholicism)'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는 입장이 있는데 현대의 통계나 종교학 그 어느 쪽도 이런 방식으로 독립 가톨릭 교회를 정의하지 않는다. 가령 복고 가톨릭교회와 깊은 관계를 지녀 온 성공회는 여러 독립 가톨릭 교회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독립 가톨릭'은 말 그대로 종교개혁에서 파생된 흐름이나 개신교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근대 이래 자생적으로 탄생한, 가톨릭의 전통과 정체성을 자처하며 등장한 일련의 교회들을 지칭한다. 만약 '가톨릭'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로마 가톨릭 교회'에만 국한시킨다면 복고 가톨릭교회는 기존의 가톨릭, 개신교와 구별되는 그리스도교의 또다른 줄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국에는 전혀 없는 교회인지라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들은 종교개혁으로부터의 신학 전통과 개신교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외부에서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사도 전승의 문제에 있어서는 여성 성직 허용 전에는 가톨릭, 정교회로부터 그 사도 전승을 별 이의 없이 인정받았으나, 여성 성직 허용 후에는 애매한 상황이 되긴 했지만, 성공회와는 달리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회법에서도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유효한(Illicit but Valid) 것으로 명시되었다.[8]

개신교 여러 교단과 각국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 등이 가입한 세계 교회 협의회(WCC) 정회원 교단이다. 성공회와 이미 완전한 상통 관계를 맺었고, 3성직을 보유한 루터교 교단들과도 오랫동안 일치를 위한 교류를 지속해오고 있다. 정교회와도 오랫동안 교류해왔다. 여성 성직 등 문제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협력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여성 성직(부제, 사제, 주교)의 안수 문제를 가지고 용인하는 파와 용인하지 않는 파 사이에 대립이 표면화되었지만 1990년대부터 견해 차이가 남아있는 가운데 각지에서 여성 서품이 허락되었다. 단순히 부제, 사제의 여성 서품을 가능하게 했을 뿐 아니라 여성도 주교로 안수될 수 있게 되었다.

위트레흐트 대주교와 상통 관계인 복고 가톨릭교회는 한때 교세가 50만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11만 5천여 명으로 교세가 크게 감소했다. 여성 성직 허용 등으로 인한 교단의 분열도 감소 원인이지만, 가톨릭으로 원복하거나 다른 교파로 떠나거나 무종교인이 되는 것 또한 감소원인이다. 이렇게 보면 복고 가톨릭교회가 심각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복고 가톨릭교회는 위트레흐트 연합과 상통하는 교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영미권, 폴란드 등지에 위트레흐트 연합과 상통관계에 있지 않은 교회들이 복고 가톨릭교회의 후신을 자처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스크랜턴 연합)

4. 위트레흐트 연합스크랜턴 연합

위트레흐트 연합은 여성 사제 서품을 허용하고 동성 결혼을 축복하기로 한 연합이며, 스크랜턴 연합은 위트레흐트 연합의 결정에 반발하여 새로 세워진 연합이다.

위트레흐트 연합만 세계 교회 협의회의 회원 교단이다.

5. 전통주의 가톨릭과의 혼동

몇몇 사람들은 전통주의 가톨릭과 복고 가톨릭교회를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하는 실수를 하곤 한다. 전통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 가톨릭교회 내 깊어진 자유주의 성향에 반발하여 트리엔트 공의회로 대표되는 가톨릭 교회의 전통을 수호하자고 주장하는 흐름(사조)·성향·운동·집단이라면,[9] 복고 가톨릭교회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 후 가톨릭 교회 진보 성향 성직자와 신자 일부가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스스로 이탈하겠다고 선언한 완전히 별개의 교파이다. 즉 복고 가톨릭교회는 그 맥락과 방향성에서 전통 가톨릭과는 상극이라고 할 수 있다.

6. 같이보기



[1] 성공회의 일부에서도 본당 평신도들이 새 주임신부를 '초청'하는 형식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2] '서로의 주교가 상대 교단의 서품식에서 서로 안수하며 서로의 성직자를 교환하여 파송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해당 교단의 신자들이 상대방 교회에서 성사를 받는 것에 제한이 사라지게 된다.[3] 가톨릭 교회에서 여성 사제 운동을 하는 이들 중 일부는 복고 가톨릭교회 주교를 통해 서품을 받곤 한다.[4] 성모무염시태, 교황무류성 등[5] 전통 가톨릭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모국어 전례 허용 등을 변질로 보는 것과 같다.[6] 파스칼이 옹호한 아르노가 이끈 수도원이다. 얀센주의 자체가 개혁교회루터교보다 더 아우구스티누스 신학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개혁교회의 정통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구원론을 따르되, 교회론은 따르지 않는다. 루터교는 가톨릭에 비해 아우구스티누스의 구원론을 더 따르며, 교회론은 가톨릭이 아우구스티누스에 더 가깝다. 그러나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정죄되기까지 포트루아얄 수도원으로 대표되는 얀센주의는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의 교회론, 구원론을 따르며 직계라 할 만 했다. 예수회와 얀센주의의 대립이 종교개혁 및 반동종교개혁 시기에 가톨릭 내부 논쟁으로 번졌고 기존 가톨릭 교리를 주도하던 도미니코회가 예수회의 자유의지 강조에 맞서면서 논쟁이 크게 벌어졌다. 이게 바로 가톨릭 내부 예정설 논쟁인 은총논쟁이다.[7] 얀센주의 역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정죄되었다.[8] 가톨릭, 정교회 관점에서 여성 성직은 무효이기 때문에, (가톨릭, 정교회 관점에서) 복고 가톨릭교회의 사도 전승이 여성 주교 때문에 끊기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9] 일부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전통 가톨릭 신자들은 가톨릭 교회와 별개의 교회임을 표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