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01:52:30

콜로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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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콜로니아 (2015)
Colonia Dignidad , Colonia
파일:external/img.goldposter.com/Colonia_poster_goldposter_com_8.jpg
장르 드라마, 로맨스, 멜로, 스릴러
상영시간 110분
개봉일시 2015.9[1]
감독 플로리안 갈렌베르거[2]
출연 엠마 왓슨, 다니엘 브륄, 미카엘 니크비스트
국내등급 15세 관람가
1. 개요2. 줄거리3. 실제 콜로니아
3.1. 창립자 파울 섀퍼의 과거3.2. 실체3.3. 몰락
4. 예고편5. 등장인물6. 평가
[clearfix]

1. 개요

파일:2014년의 콜로니아.jpg
2014년에 촬영된 콜로니아의 모습[3]
1973년 칠레의 '콜로니아', 죽음보다 더한 지옥 , 사랑하는 연인을 구하기 위한 '레나'의 목숨을 건 여정이 시작된다!

1973년 칠레 쿠데타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부독재 시절 정치범을 강제수용한 사이비 종교단체 '콜로니아 디그니다드'를 배경으로 하여 플로리안 갈렌베르거가 연출한 독일 영화. 대한민국에서는 극장에서 상영은 되지 않았지만, 2017년 4월 6일에 IPTV로 공개되었다. 이 문서에는 실존했던 사이비 종교의 내용과 영화의 내용이 혼합되어 서술되어있으니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2. 줄거리

1973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한다. 민선 정부인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이 붕괴하고 아옌데 대통령을 위한 자유 정부 모임 시위에 가담했던[4] 독일인 다니엘(다니엘 브륄)은 피노체트의 군대에 체포된다. 루프트한자스튜어디스였던 레나(엠마 왓슨)는 연인 다니엘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다니엘이 수감된 콜로니아로 들어간다. 다니엘과 레나는 극적인 탈출에 성공하고 콜로니아의 잔혹함을 공개하지만 묵살당한다.

3. 실제 콜로니아

3.1. 창립자 파울 섀퍼의 과거

파일:파울 섀퍼.png
콜로니아의 창립자 파울 섀퍼(Paul Schäfer, 1921~2010)

콜로니아를 창립한 독일인 파울 섀퍼는 1921년 12월 4일에 근처의 트로이스도르프 마을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의 이혼과 형편없는 학업 성적 등으로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사고로 한쪽 눈이 멀어 항상 의안을 차고 다녔다고 한다. 이러한 섀퍼는 어릴 때 히틀러 유겐트에 참여했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프랑스에 있는 독일군의 야전 병원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한 전적이 있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인 1948년부터 섀퍼는 오순절주의 계열 교단에 속한 교회에서 청년 지도자로 일하다가 1951년에 소년들을 성추행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출교당한 후 독일 전역을 순회하는 설교자로 일했으며, 1953년에 어린이집과 고아원을 설립한 후 동프로이센의 난민들을 받아들이며 미성년자 사회 복지사로 일하다가 1959년에 2명의 소년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자 1961년 1월에 칠레로 이주한 후 숲이 울창한 칠레 남부에다가 면적 130제곱킬로미터의 면적에 300여명이 거주하는 독일인 농업 공동체 콜로니아 디그니다드(Colonia Dignidad)를 만들고 이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교리적, 신학적으로 '늦은비 운동'으로도 알려진 윌리엄 브랜험(William Branham)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5]

3.2. 실체

콜로니아는 명목상으로는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 등을 제공했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바이에른의 농민의 옷을 입고 독일의 민요를 노래하며 일하는 등 독일 전통 농촌의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한때 가난한 독일 주민들이 유토피아로 생각하고 찾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섀퍼는 본색을 드러내고 이곳은 지옥으로 변했다. 콜로니아의 실태는 가히 칠레판 아가동산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6].

콜로니아는 '칠레의 법률이 미치는 곳은 콜로니아의 현관까지'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독특하다 못해 엽기적인 규율을 자랑했는데, 먼저 섀퍼는 원시 기독교 시대의 공동체를 모델로 정착지를 만들었다지만, 실제 섀퍼는 성경의 내용을 왜곡해서 사실상 감옥과도 같은 곳을 만들었다. 콜로니아의 사람들은 6~7살밖에 안된 아이마저 매일매일 하루에 16시간 동안 무봉급 강제노동을 해야 했고, 휴일은 섀퍼의 생일인 12월 4일 단 하루밖에 없었으며, 이렇게 가혹한 노동을 해야 했던 사람들은 구타나 고문 등의 온갖 가혹행위에 시달렸다. 당시 콜로니아 내에서 행해진 나치 스타일의 조사와 고문들은 칠레 정부가 행했던 그것보다도 더 '무거웠다'고 한다[7].

또한 섀퍼는 "아동교육의 문제는 아이들에게 있지 않다. 이 문제는 항상 그들의 부모에게 잇는데, 왜냐하면 아이들의 죄에 대한 책임은 부모에게 있기 때문이다"라며 주장하며 콜로니아 주민들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나면 출산 직후 부모로부터 강제로 떨어뜨린 뒤 보모의 품에서 자라게 했으며, 가족끼리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끼리 만나는 것조차 금지시켰다. 이렇게 콜로니아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사랑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매우 차갑고 무기력하게 자랐다고 한다. 그리고 섀퍼는 외부로부터의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TV, 전화, 심지어 달력도 금지시켰는데, 이렇게 완전히 고립된 콜로니아에서 섀퍼는 '신의 다음에 오는 존재'로 숭상되었다.

게다가 바깥은 센서가 붙은 8피트 높이의 가시철선 울타리, 군인과 경찰이 24시간 지키고 있었고, 겨우겨우 탈출한 사람은 해외까지 쫓아가 강제로 송환시켰기 때문에 콜로니아는 탈출이 애초에 불가능한 곳이었다. 실제로 콜로니아에서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36년간 단 5명밖에 없었다.

1973년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쿠데타로 집권하자 섀퍼는 이곳을 반정부 인사 강제 수용소로 운영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섀퍼는 요제프 멩겔레[8] 등의 악랄한 나치 전범들을 콜로니아에 넣어 보호했으며, 내부에는 나치 잔당들의 재산과 무기 밀매 등으로 구한 로켓포나 전차 등을 포함한 수많은 무기를 저장한 창고를 두고 있었고, 심지어 준군사조직 기지가 있어 여기서 군인들이 훈련하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섀퍼는 "여성은 성욕이 통제되지 않으면 남성을 욕망에 사로잡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유혹자다.", "성관계는 악마의 도구다."라고 주장하며 주민들에게는 성관계를 금지시키거나 남녀를 격리시켰고, 심지어 성욕 억제제 복용을 강요하는 등 순결을 강요한 주제에[9] 정작 본인은 하루에 서너명씩 소년 위주로 죄 없는 아이들을 매일같이 성폭행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 6살밖에 안된 아이에게까지 성폭행을 가하는 극악무도한 행각까지 저질렀다.[10] 그리고 섀퍼는 소년들의 성욕을 관리한다는 명목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을 손수 전기고문 등으로 고문하거나 굶기기도 했으며, 자신에게 성폭행당해 종속당한 아이들은 '훌륭한 기독교인'으로 칭송했다. 이런 과정에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수학 교수로 일하던 유대계 소련인 보리스 바이스필러(Boris Weisfeiler, 1941~1985?)[11]를 포함한 최소 100여명이 콜로니아 내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3.3. 몰락

국민 투표로 피노체트 정권이 끝난 1990년 이후에도 섀퍼는 풍부한 자금과 독일계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칠레의 법원, 의회, 경찰 등에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독일 대사관까지 매수했기 때문에[12] 이런 대악행들을 지속할 수 있었으며, 1991년에는 이름을 '비야 바비에라(Villa Baviera)'로 바꾸기까지 했다. 그나마 1996년 8월 중순에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해자들 26명에게 기소를 당한 후 아르헨티나로 도피하게 되며 36년간의 대참극은 끝이 나게 된다.

섀퍼는 콜로니아를 떠나는 날에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눈물을 글썽이며 환송식을 마친 후 콜로니아 내의 터널로 도피했으며, 이후 한동안 행방불명되었던 섀퍼는 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부유층들의 게이티드 커뮤니티[13]인 '라스 아카시아스(Las Acacias)'에 있는 타운하우스에서 살다가, 2005년 3월에 체포되어 칠레로 인도된 후 2006년 5월 24일 25명의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으며, 그를 기소한 피해자 11명에게 7억 7천만 페소(약 15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도 받았고, 2010년 4월 24일심부전으로 교도소 병원에서 향년 8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뒤늦게 사태의 책임과 방관을 인정한 독일 정부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이 직접 칠레와 콜로니아를 방문해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사과하기도 했다. 콜로니아는 셰퍼가 수감된 이후에도 사라진 것이 아니라 '비야 바비에라'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수백 명의 신자가 활동 중이라고 하는데, 출입은 좀더 자유로워지다 못해 아예 '관광 리조트'처럼 되어 콜로니아의 피해자들이 '아우슈비츠맥도날드를 설치하는 것과 같다'고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4. 예고편


5. 등장인물

6. 평가

★★★☆
인간이란 참 잔인한 존재. 악은 동전의 양면이다..
랜드 오브 마인
메타크리틱
스코어 33 유저 점수 7.1
로튼 토마토
신선도 29%관객 점수 61%
IMDb
평점 7.1/10


[1] 한국에서는 개봉되지 않고 IPTV로만 공개되었다.[2] Florian Gallenberger, 1972~,[3] 후술하듯 이름을 '비야 바비에라'로 바꾸고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물론 오늘날의 '비야 바비에라'는 후술할 참극 같은 일은 일아니지 않는다.[4] 아옌데 대통령을 지지하는 포스터를 제작 및 배포했다. 군사독재 정권의 실태를 기록하기 위해 피노체트 군대의 사진을 찍다가 레나와 함께 체포된다. 그러나 레나는 혐의가 인정되지 않아서 풀려난다.[5] 아이러니하게도 브랜험의 영향을 받은 자들 중에는 섀퍼와 사상적으로 극단적 정반대인 짐 존스가 있었다.[6] 참고로 아가동산의 교주 김기순의 아가동산에서의 행적은 파울 섀퍼와 거의 평행이론 수준으로 똑같았다.[7] 실제로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에서는 SS게슈타포 출신 인사들이 칠레의 비밀 경찰들에게 자신들이 쓰던 고문 방법을 전수하기도 했다.[8] 이곳에서 멩겔레는 섀퍼에게 사린가스 사용법을 전달했는데, 섀퍼는 이를 칠레의 비밀경찰에게 전수해줬다고 한다. 참고로 멩겔레는 파라과이의 군사독재자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의 보호를 받기도 했다(물론 스트로에스네르 역시 섀퍼와 비슷한 극악무도한 연쇄 아동 성폭행범이었다).[9] 실제로 콜로니아에서 태어난 아이는 겨우 60명에 불과했으며, 심지어 1975년과 1989년 사이에는 새로 태어난 아이가 아예 없었다고 한다.[10] 참고로 콜로니아에서는 전술한 것처럼 가족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 아이들이 성폭행 피해자가 되어도 부모에게 요청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했다.[11] 1984년 크리스마스에 칠레로 하이킹을 하러 갔다가 1985년 1월 초에 실종되었다고 한다.[12] 영화 속에서도 다니엘과 레나가 탈출할 때 도와주는 것처럼 보였던 독일 대사관은 사실 콜로니아와 한패였다. 주 칠레 독일 대사는 공항에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척하면서 공항 지하에 다니엘과 레나를 감금하였고 독일 대사가 콜로니아와 한패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여기서도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고 비행기에 탑승하여 비행 허가가 취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를 이륙시키는 기장의 기지로 칠레에서 벗어난다.[13] Gated Community, 담장으로 둘러싸여 자동차와 보행자의 유입을 통제하는 단지형 주거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