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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아초 치아노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제53대 이탈리아 왕국 외무장관
갈레아초 치아노
Galeazzo Ciano
파일:Galeazzo_Ciano_1936.jpg
본명 잔 갈레아초 치아노
Gian Galeazzo Ciano[1]
작위 코르텔라초·부카리 백작
(Conte di Cortellazzo e Buccari)
출생 1903년 3월 18일
이탈리아 왕국 토스카나
사망 1944년 1월 11일 (향년 40세)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베로나
재임기간 제53대 이탈리아 왕국 외무장관
1936년 6월 9일 ~ 1943년 2월 6일
바티칸 시국 주재 이탈리아 왕국 대사
1943년 2월 5일 ~ 1943년 7월 25일
국적
[[이탈리아 왕국|]][[틀:국기|]][[틀:국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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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콘스탄초 치아노 (아버지)
카롤리나 피니 (어머니)
에다 무솔리니 (아내)
파브리치오 치아노 (아들)
라이몬다 치아노 (딸)
마르치오 치아노 (아들)
학력 로마 대학교 (법철학 / 학사)
종교 무종교(무신론)
직업 외교관, 정치인
정당
서명
파일:갈레아초 치아노 서명.svg
1. 개요2. 생애3. 후손4.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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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외교관외무장관. 한국 국내에는 뮌헨 협정추축국 결성에 모두 참여한 이탈리아 외교관쯤으로 알려져 있다.

2. 생애

갈레아초 치아노는 1903년 토스카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콘스탄초 치아노 코르텔라초·부카리 백작은 해군 장성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군공으로 작위를 받았었다. 갈레아초는 1930년 베니토 무솔리니의 장녀인 에다와 결혼하여 그의 사위가 되었다. 주중 이탈리아 공사를 지낸 적이 있으며, 1932년 제1차 상하이 사변 중 중재를 맡아 송호정전협정 체결 과정에서 조정인으로 참관했다. 이 때문에 장쉐량이 1933년 유럽 외유를 떠났을 때 그와 교류했으며 장쉐량에게 파시즘 물이 들게 했다. 일설에는 장쉐량이 치아노의 아내와 바람을 피웠다고(...). 1934년 언론선전부 차관, 1935년 언론선전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침략에서 세운 군공으로 외무장관에 임명되었다. 차후 무솔리니 정권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제2차 세계 대전내내 무솔리니 정권 하에서 외교업무를 맡다가 전쟁이 이탈리아에 불리해지자 장인어른인 무솔리니에 반대하여 그를 합법적으로 실각시키려 했다. 1943년 2월 바티칸 대사로 전임하였다. 갈레아초와 국가 파시스트당 최고평의회 의장 디노 그란디는 1943년 7월 24일 파시스트당 긴급 최고평의회를 소집, 무솔리니 탄핵 결의안을 19대 7로 통과시켰고, 다음날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탄핵안을 추인하고 무솔리니를 해임, 체포하였다.

그러나 탄핵 후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9월 12일, 오토 스코르체니가 지휘하는 독일 국방군 특공대가 체포된 무솔리니를 구출하여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의 수장으로 옹립했고, 수도 로마는 독일군에게 장악되었다. 사위가 자신을 배신한 것에 격분한 무솔리니의 명령으로 독일군에게 반 파시스트 혐의 및 반역으로 체포됐으며 합법적으로 사형을 당했다. 치아노와 함께 탄핵을 주도했던 디노 그란디 의장은 친분이 있던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으로 망명하여 1988년 93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천수를 누렸다.

무솔리니가 반대파들을 숙청하다 치아노까지 포함된 것을 알고 사위를 죽인 것을 후회했다는 루머가 있지만 근거는 부족하다. 다만 실제로도 무솔리니가 치아노의 숙청에 크게 고뇌했다고는 한다.

3. 후손

  • 에다 무솔리니 (처)
    • 파브리치오 치아노, 3대 코르텔라초 부카리 백작 (1931-2008)
    • 라이몬다 치아노 (1933-1998)
    • 마르치오 치아노 (1937-1974)
      • 피에트로 치아노, 4대 코르텔라초 부카리 백작 (1962-)
        • 카를로 치아노 (2009-)
      • 로렌초 치아노 (1965-)

4. 대중매체

1985년작 드라마 무솔리니에서는 라울 줄리아가 치아노 역을 맡았다.

HOI4 모드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에서는 게임 시작 시점의 이탈리아의 지도자로 나오며, 이탈리아 파시즘의 개혁을 주장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당 서기인 스코르차와는 보수 / 개혁 성향으로 갈려 갈등을 빚는 중이며, 유저의 선택에 따라 국가의 지도자가 변경된다.[2]

치아노가 권력을 유지하는 루트에서는 스코르차는 변방으로 유배, 치아노는 개혁을 마치고 사임하여 이탈리아에 민주주의 정권이 수립된다. 스코르차가 권력을 장악하는 루트에서는 선택지에 따라 치아노는 처형되거나 외국으로 유배된다. 이후 유저 선택에 따라 스코르차 정권 하의 이탈리아는 여러가지 결말을 맞이하는데, 가장 압권인 루트는 민주주의 파시즘.

스코르차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지만, 국민의 생활과 권리를 보장하며 경제를 증진시키고, 비밀경찰이 일반 국민이 아닌 정치와 경제계 거물들의 부패를 조사하며, 이탈리아 국민들이 파시스트 의원들을 선출하도록 하고, 이탈리아의 식민지들의 탄압을 축소, 식민지 권익을 보장하여 무너져가는 이탈리아 제국의 근간을 다시 새운다. TNO 내부에서 '산 세폴크로주의'라고 불리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장점만 취합한 완전히 새로운 주의를 바탕으로 국가를 재편, 종국에는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명분 하에 국가 최고지도자 '두체'의 임기를 제한하고 나라를 좀먹는 왕실의 특권을 제한한다. 이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꿈꾸는 왕실과 왕당파를 제압, 왕정을 폐지하고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을 설립하고 국가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스코르차가 스스로 사임(...)하는 희대의 엔딩으로 이야기의 막이 내린다.

HOI 4 본편에서는 이탈리아 왕국의 장관진 중 1명으로 등장한다. DLC By Blood Alone 이후에 등장했다.


[1] 이탈리아어로는 갈레아초 차노에 가깝다.[2] 이탈리아 이벤트 '베로나 회의'에서 치아노와 스코르차의 주장 중 어느 쪽을 더 많이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