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05 14:13:02

비동맹운동

비동맹주의에서 넘어옴



파일:Non-Aligned Movement.jpg
非同盟運動 /Non-Aligned Movement(NAM)

1. 개요2. 역사
2.1. 냉전 시기2.2. 탈냉전 이후

1. 개요

동맹에 속하지 않은 국가들의 중립적 외교정책 노선 운동. 제3세계 국가들이 중심이 된다.

2. 역사

2.1. 냉전 시기

비동맹운동에 따른 국제기구는 유고슬라비아, 인도, 인도네시아, 가나이집트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창설되었다.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반둥 회의에서 탈식민 국가들의 연합으로서 최초 구상되었고 1961년 유고슬라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설립되었다. 상술한 탈식민화에 바탕한 배경 덕분에 주로 아시아아프리카제3세계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비동맹운동 자체는 강대국과의 쌍무적 동맹관계를 가진 국가들을 가입국으로 승인하지 않으나, 가입국 대부분이 비동맹운동 가입 이후에 동맹관계를 형성했거나, 느슨한 동맹관계에 있었던 국가들도 있었다. 북한도 가입 당시 소련중국과 깊은 군사동맹 관계에 있었으나, 소련 해체이후 비동맹운동을 중시하며 반 서방 정책을 펼쳤다. 북한에서는 비동맹운동을 '쁠럭불가담운동'으로 부른다.

대한민국 역시 가입을 시도하였고 1975년 리마 비동맹 외상(외교장관)회의에서 한국의 가입안이 심의되었으나 부결됐다. 이 과정은 대단히 흥미롭고 복잡한 문제지만, 단순히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이 거부되었다는 정치적인 설명이나, 한미동맹이기 때문에 '비동맹'이 아니라서 거부되었다는 단조로운 설명만을 찾기 쉽다. 하지만 당시 외교문서들을 확인해보면 실상은 상당히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에서 부결된 것이었다.[1] 그럼에도 저 설명 자체를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가입에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저 이유들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우 별 이의 없이 즉시 가입안이 통과됐다. 남한의 가입안도 사우디아라비아, 가봉 등의 강력한 지지로 인하여 과반수 이상의 국가들이 한국 가입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회의 개최 직전에 북베트남에게 멸망해서 괴뢰국으로 전락한 남베트남 공화국 외상 응우옌티빈이 한국의 가입을 막아달라 눈물로 호소하면서 가입 분위기에 재를 뿌렸고, 쿠바를 비롯한 친북 국가 외상들은 행패에 가까운 난동을 부리면서 가입안의 회의 안건 상정 자체를 막았다. 결국 남한의 가입안은 표결조차 못 올리고 부결됐다. 비동맹운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이집트는 북한의 갖은 로비에도 불구하고 중립에 가까운 자세를 유지했다. 마찬가지로 큰 비중을 가지고 있던 인도는 딱히 남한에 억하심정은 없었지만 한미동맹을 이유로 들면서 기술적인 이유에 따라 반대에 가까운 입장을 취했다. 이후 한국은 옵저버 국가로 참가하며, 총회 때마다 한국 대표를 보내기도 하였다.

북한은 비동맹운동 가입을 남북한 아프리카 외교전으로 대표되는 남한과의 외교 경쟁에서의 외교적 대승이자 쾌거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북한의 희망사항과 달리 비동맹운동은 반미의 강철대오가 결코 아니었다. 모토로 비동맹을 내세우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회원국들은 미국과 실리적인 관계는 다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친미 국가들도 나름대로 가입했기에 무작정 반미를 내세우기는 어려운 모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비동맹운동을 자기네 반미 외교의 선전장으로 활용하려다가 외면받기도 했다. 1976년 9월 13일, 헝가리 대사관과의 면담에서 외교부의 헝가리 담당자는 소련과 중국 모두 믿을 수 없으나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은 비동맹국가들이라고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냉전기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실질적 맹주에 인도, 이집트, 가나인도네시아가 주요 국가들이었고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유고슬라비아가 멸망한 후에는 후자 4국이 맹주로 꼽힌다. 당장 1961년 운동 성립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이 이 5국의 지도자들인 요시프 브로즈 티토, 자와할랄 네루, 콰메 은크루마, 가말 압델 나세르수카르노였기 때문. 중국도 과거 냉전시절 소련과 갈등을 빚으면서 여기에 발을 좀 걸치기도 했다.

2.2. 탈냉전 이후

애초에 운동의 성립배경이 냉전기 급격한 양극화 즉, 제1세계제2세계 블록들로 세계가 나뉘던 것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는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당장 한때 가입에 힘을 쓰던 한국만 봐도, 가입을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던 시절이 무색하게 이제 비동맹운동은 완전히 잊혀서 그 누구도 이를 신경쓰지 않을 뿐더러 아예 존재 자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맹주국인 유고슬라비아는 독립전쟁으로 분열되었고 유고슬라비아의 계승국들은 비동맹운동 가맹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2] 한편, 탈냉전 시대로 접어들면서 제1세계의 확장으로 회원국이던 몰타키프로스유럽 연합에 가입하면서 비동맹운동에서 탈퇴했고, 현재 유럽에 남은 가맹국은 벨라루스(1998년 가맹)뿐이다. 마지막으로 운동의 가맹국이 늘어난것도 2011년 아제르바이잔[3]과 같은 해 피지의 가입이 다다. 그나마 아직 유엔 회원국의 과반수(121개국)가 회원국이고, 냉전 해체 이후 과거 제2세계로 불리던 중화인민공화국(1992년)과 러시아(2021년), 그 외 독립국가연합 국가들[4]과 구 유고연방 국가들이 참관국으로 들어왔다.

따라서 현재 비동맹운동은 단순히 블록 불가담 뿐만이 아닌 개발도상국들의 착취 문제나 남북 문제와 같은 새로운 존재의의를 현재진행형으로 찾아 나서고 있다.

[1] 상세한 내용은 다음의 링크 참조: #[2] 가맹은 하지 않았지만 구 유고 4개국(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은 참관국으로 참여한다.[3] 2019년부터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가 의장직을 맡아 2023년까지 재임하였다. 후임 의장은 우간다요웨리 무세베니.[4]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르메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