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0 23:27:01

프랜시스 파커 요키

프랜시스 파커 요키
Francis Parker Yockey
파일:Francis_Parker_Yockey.jpg
필명 울릭 바나지
Ulick Varnage
출생 1917년 9월 18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사망 1960년 6월 16일 (향년 42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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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애리조나 대학교 법학과 (학사)
노터데임 대학교 법학전문대학 (박사)
직업 작가, 변호사, 철학자
1. 개요2. 생애3. 성향4. 저서5. 기타6. 대중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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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네오파시즘 정치철학자.

2. 생애

1917년 9월 18일에 독일계-아일랜드계 가톨릭교도 상위 증산층 집안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청년 시절 피아니스트로서의 재능을 보였으나 손 부상으로 음악적 경력이 좌절되면서 정치와 법학에 눈을 돌렸다. 가족이 미시간주로 이사한 후 미시간 대학교를 2년 다니다가 조지타운 대학교로 편입하고, 이후 다시 애리조나 대학교로 편입해 졸업하였다.[1] 대학 시절부터 흑인, 유대인, 공산주의자와는 함께 식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변호사로서 나치주의자들과 파시스트의 변호에 적극 나섰을 뿐만 아니라, 미국 내의 파시즘 단체를 지원하고 나치즘자본주의에 이은 새로운 시대의 주류라 칭송한 '임페리움'을 작성하는 등 반유대주의적이고 파시즘적인 행적을 이어나갔다. 결국 미국 파시스트계의 위험인물로 지목받은 요키는 1960년 FBI에게 체포되었으며, 감옥에서 청산가리 알약을 밀반입하여 자살했다.

3. 성향

요키는 파시스트임에도 반공주의자라고 보기는 애매한 인물이다. 그는 미국에서 활동했지만 소위 '유대-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을 제일 적대했으며 이 때문에 자신과 같은 미 극우주의자들이 소련 및 극좌들과 전략적 동맹을 맺어 미국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꾀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일부 동구권 국가에서의 반유대주의적 숙청을 옹호했으며 사회주의자인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와 만나 반이스라엘 활동도 벌였다. 이러한 친소련, 반미적 행보 때문에 미국 나치당 당수이자 반공주의적 파시스트였던 조지 링컨 록웰은 그를 싫어했으며 협력 역시 거부했고, 슈트라서주의자라고 깠다.

다만 이는 공산주의에 이념적으로 동질감이나 호감을 느껴서 그랬다기보단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중 자본주의를 더 큰 적으로 여겼기에, 당시 자본주의의 본산 미국의 최대 적이었던 소련과 전략적, 한시적인 협력을 꾀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대학 시절에 공산주의자와 밥도 먹지 않았고(..) 반공 출판물도 여러 차례 냈다. 또한 이오시프 스탈린 이후의 소련은 관료화, 권위주의화가 가속화되어 초기의 혁명적, 계급해방적, 국제주의적 요소가 퇴색되고 러시아 중심의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요소가 점차 힘을 얻고 있었다.[2] 이 때문에 오토에른스트 레머 등 다른 파시스트들도 전후에 소련과의 '적갈동맹'을 주장하기도 했으며, 비단 요키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4. 저서

한제 원제 저술 년도 비고
임페리움: 역사와 정치의 철학 Imperium: The Philosophy of History and Politics 1948 #[3]
런던에서의 선언 The Proclamation of London 1949

5. 기타

Kerry R. Bolton, Tomislav Sunić가 요키 : 파시스트 오디세이(Yockey: A Fascist Odyssey)라는 서적을 집필하였다.

6. 대중 매체에서

Hearts of Iron IV의 모드인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에서는 나치즘&파시스트 국가인 추축국연합국에게 이긴 세계관이다 보니 미국도 극단주의가 생겨서 멀쩡히 살아있다. 국가진보동맹(NPP) 요키파의 수장으로 등장하며, 요키파의 지지율이 20%를 넘길 시 1972년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거스 홀과 마찬가지로 당선 시 슈퍼 이벤트가 발생한다.


[1] 학부 졸업 후 들어간 로스쿨노스웨스턴 대학교, 드폴 대학교를 거친 끝에 노터데임 대학교 로스쿨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확인된 것만 6개 대학교를 다녔다.[2] 스탈린 이후 소련 내 소수민족 탄압이 심화되었으며, 1956년 헝가리 혁명브레즈네프 독트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냉전 시기 소련은 자신들의 이념과 모순되는 확장주의, 제국주의적 행보를 여러 차례 보였는데, 이는 신좌파 발흥과 68혁명의 계기가 되었으며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소련을 소비에트 제국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3] 스위스 언론인 크리스티안 크라흐트(Christian Kracht)가 미국 작가 데이비드 우다드(David Woodard)와의 서신에서 추천한 도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