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23:45:01

마이크로크레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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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credit, 무담보 소액대출(無擔保 少額貸出).

1. 소개2. 최초의 구상3. 사업확장4. 대한민국의 경우5. 고리대금업의 위장6. 기타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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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유누스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 총재인 무함마드 유누스에 의해 개발된 빈민 구제 방식. '일단 먹여주되 취업하면 손뗀다' 형식의 기존 빈민구제법을 뒤엎은 획기적 방법. 이 정책의 핵심은 빈민들에게 소규모 사업 자금무이자 무담보로 지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알아둘 점은 완전한 무이자가 아니다. 유누스의 책을 보면 완전 무이자는 아니지만 정해진 이자로 선을 긋고 그야말로 이자를 낼 수 없는 첫 거래자는 제외이다. 이 정도도 엄청난 셈. 참고로 방글라데시 서민들이 어쩔 수 없이 쓰는 사채업자의 이자는 50~70% 이상에 심지어 90%가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조적으로 그라민 은행의 이자는 10% 남짓.

그 이전에도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실험하려는 계획은 있었고, 방글라데시에서도 1950~70년대 초반에도 아크타르 하메드 칸에 의해서 코밀라 마을과 그 근교를 중심으로 비슷한 프로젝트가 실험되고 있었지만, 그 결과가 썩 성공적이지 않았던것에 비하면 획기적으로 성공한 모델인 셈이었다.

2. 최초의 구상

이 사업은 유누스가 시골 마을에서 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게 되며 시작되었다. 처음에 시골 사람들은 할 줄 아는게 밭일이나 잡노동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그들 중 일부가 말해준 사업 계획들을 듣고 놀라게 된다. 능력도 아이디어도 있는데 돈이 없어서 잡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태반이었던 것.

마을과 은행을 오가며 그들이 원하는 자금을 시험적으로 대출해준 유누스는, 그들이 성공적으로 사업을 발전시키는 것을 보고 의문을 품게 되었다. "창업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왜 굳이 취업을 시키라고 난리지?"
  • 한국에도 나온 그의 회고록을 보면 릭샤왈라(인력자전거꾼)가 하루 종일 일하고도 번 돈의 5~70% 이상을 인력거 대여비로 내는 바람에 식구들 먹을 거 사고 남은 돈도 모았다가 집세로 내야하기에 남는게 없어 저축이 불가능한 것을 보고 인력거를 사도록 빌려주면[1] 어떤가 하여 시범적으로 시행했다. 그리고 그 릭샤왈라들은 몇달도 안가 대출비를 갚았고, 이걸 더 확장하게 되었다.
  • 한 구두닦이는 구두 닦는 통이나 솔도 돈주고 빌려서 일하는, 릭샤왈라와 똑같은 처지였다. 이 구두닦이에게 돈을 빌려주자 구두약 및 구두솔과 천같은 걸 담는 통을 다 사고 개인사업을 하였는데 역시 몇달 안가 대출금을 깨끗하게 갚았다. 이렇게 번 돈으로 구두닦이 장비들을 여럿 사서 돈받고 빌려주며 자신도 일하고 예전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
  • 남편이 죽고 홀로 바느질과 잔심부름으로 겨우 밥먹을 돈을 벌어 살아가는 어느 미망인이 은행을 찾아와 사업 같은 걸 모르겠다고 하자 창업 정보를 제공했다. 그라민 은행 측은 우선 암소 1마리를 살 돈을 대출해주고 그 돈으로 를 산 그 미망인은 우유를 짜내 마을에 팔았는데 신선하면서도 싼 값에 팔면서 인기가 좋아 몇 달 안가 대출금을 갚았다. 다음에는 을 여러 마리 사고 닭장을 만들 돈을 대출하여 달걀을 팔게하는 걸 권했다. 이렇게 하여 5년도 안가 그 미망인은 이전에 살던 허술한 흙집을 가축우리로 쓰고 전기가 나오며 펌프물이 나오는 집을 사고 20마리가 넘는 소와 100마리가 넘는 닭을 기르면서 마을에서 꽤 부유층이 되었던 실화가 있다. 당연히 이 미망인은 동네방네 그라민과 마이크로크레디트 제도에 대한 찬사를 소문냈다고.

3. 사업확장

유누스는 자신이 발견해낸 빈민구제법을 마을 전체에 적용했고, 결과가 좋자 다른 은행들에도 권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20여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여러 시행착오와 갈등을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종전 방글라데시 은행들은 여성에겐 대출을 금지하고 남성이나 남성대리인이 동반한 여성에게 대출해주었는데 그러다보니 미망인이나 남편이 사고나 병으로 움직이지 못한 여성들은 대출받기가 까다로웠다. 대출이자도 취지에 안맞게 터무니없이 높았고 대출 심사 과정에서 뇌물을 요구하는 경우도 허다했으며 결국 사채업자에게 대출해야 하는 수밖에 없었던 극빈층들은 터무니없는 이자에 시달리고 쌓인 빚을 갚지못하여 아이들이 강제노동에 동반되어 그 임금을 사채업자가 가지는 폐단이 흔했다.

그러니 무이자에 무담보에 게다가 여성이라도 홀로 오면 문제없이 대출해주니 사람들이 너도나도 올 수밖에. 덕분에 사채업자들과 시중은행 관계자들이 그라민은행을 터무니없는 헛소문으로 매도했으며, 보수적인 이슬람 율법학자들도 여성을 고용하는걸 (아무래도 외간남자를 피하는 보수적인 이슬람 지역이 많기에 여성 대출자를 위하여 여성 직원을 고용했던 것임에도)문제삼아 비난하거나 여러 시골마을에선 촌장같은 권력자에게 사채업자들이나 은행이 그라민은행에 마을 사람이 가지못하게 해달라며 뇌물을 바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 유누스가 기독교인이라느니, 그라민은행이 기독교 자본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등의 악의적 소문으로 여러 곳에서 지점을 만드는 일도 막혀 가서 설득하느라 온갖 고생을 해야했다. 물론 이럼에도 대출한 사람들이 하나하나 대박을 거두면서 종전과 차원이 다른 중산층이나 부유층이 되는 경우를 보면서 사람들도 생각이 달라지면서 다른 은행들도 따라하기에 이른다. 결국 이 구제법으로 노벨평화상서울평화상을 받았다.

유누스는 아직은 더 많이 노력하고 고쳐야한다면서 일부 밖에 성공못했다고 했지만, 그 일부가 500만명을 헤아린다. 방글라데시 극빈층 인구가 1억은 된다고 하니까 일부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수의 비율은 세계의 경제학자들을 경악케 하기에는 실로 충분했다. 대부분이 하루 벌어 먹는 노동자들이나 미망인같은 극빈층인데 이 대출로 집도 사거나 작은 농장이나 가게를 열어 이전과 차원이 다른 수익을 벌고 있다고 한다.

이 구제법이 주로 이용하는 개인적 소규모 창업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다. 개발경제학 분야에서 제일 핫한 이슈 중의 하나이지만 자료를 모으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이 빈민촌에 직접 들어가서 사업을 집행하고 분석과 테스트를 하면서 자료까지 모으고 있다. 현재 이런 사업으로 사람들을 어느 정도 극빈층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에는 유효하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빈곤층을 뛰어넘어 사업가로 성공하는 것이 유의미하게 가능한가 하는 데는 이견이 있다.[2] 빈곤층에서 사업가가 되려면 미소금융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교육을 비롯한 다른 조건들도 맞춰져야 한다.

다만 최근에는 마이크로크레디트로 최악의 빈곤상황을 벗어난 가정들의 경우 상당수가 우선적으로 자녀의 교육환경을 개선시키는 경향을 보임에따라[3][4] 보다 장기적인 추적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늘고있다.

4. 대한민국의 경우

한국의 마이크로크레디트는 민간 주도로 2000년부터 처음 시도되었다. 이를 시도한 단체가 정식 금융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출만 시행하며 자본금은 국가·기업으로부터 기존 빈곤층 창업사업을 위탁받거나, 개인들한테 기부금을 받아 마련하고 있었다. 사회연대은행, 신나는조합, 아름다운 세상 기금(아름다운 세상 재단), 사회복지은행 등이 한국의 민간 마이크로크레디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다 2009년 말부터 여러 기업들과 정부에서 펀드를 조성하여 미소금융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그라민 은행 방식과 외관 상 비슷한 것 같지만 실은 많은 차이가 있다. 마이크로크레디트는 무담보 대출이긴 하지만, 신용까지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골 지역사회의 인맥 네트워크는 매우 끈끈하며, 이를 신용으로 전환하여 대출을 해 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돈을 못 갚으면 그 사람은 동네 바보형(…)이 되는 식으로 처벌이 이뤄지는 것. 이런 방식의 신용전환이 약한 도시화 사회에서는, 신용을 서류로 문서화할 수밖에 없고 이를 평가하고 처리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므로 마이크로크레디트 시스템의 운영 자금이 늘어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마이크로크레디트 시스템이 쉽게 보급되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다.

5. 고리대금업의 위장

무하마드 유누스가 주장한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본래 빈민층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로 본질적으로 금융시스템에 비영리적인 목적(=빈민구제)을 담는데에 있었다. 그러나 유누스가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처음 시도한 이래 난립하기 시작한 일부 마이크로 크레디트 단체들은 고리대금업마이크로크레디트로 포장하였다.

인도의 가장 성공한 마이크로 크레디트 업체 SKS는 5만 달러 규모의 자선단체로 시작했으나 2000년대 중반 실리콘밸리로부터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받은 이후 사업을 확대해서 규모를 35억 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후 이자율을 30% 수준으로 끌어올린 SKS는 마구잡이로 대출을 해주고 가혹한 채권추심을 반복해서 수많은 대출자들을 자살로 몰고 가서 세계적으로 충격을 가져다 주기도 하였다.[5] 결국 인도는 이로인해 마이크로 크레디트에 관한 규제를 도입해서 가혹한 채권추심을 막아버렸고, 이로 인해 상환률이 감소, 결국 경제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감수해야만 했다.
CGAP가 발표한 마이크로크레디트 단체들의 평균 이자수준에 관한 자료를 참고해보면 현재 세계적으로 마이크로 크레디트 단체들의 평균 이자율은 국가에 따라 격차가 심하지만[6] 평균적으로 35%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유명한 KIVA[7]도 마찬가지인데 KIVA의 평균 이자율 또한 약 35%로 추정되고 있다.[8]

이러한 고이자에 대해 일부는 개발도상국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낮은 상환률에 대한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영리목적이라면 투자자를 위해 원금을 최대한 보전하기 위해 리스크에 고려해 고이자를 부과하는게 타당하다. 하지만 이는 유누스가 주장한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사회공헌적 성격을 왜곡하는 이야기이다. 유누스의 마이크로크레디트는 고리대금을 통한 영리목적의 투자나 투자자 보호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이를 바탕으로 가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적 목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이는 자본주의적 성격보다는 자선적 성격이 더 강한 사업이며, 고리대금업을 하고 싶으면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탈을 쓰지 말고, 그냥 당당하게 정식 대부업을 하면 될 일이다.

고리대금은 오히려 극빈층이 가난을 탈출하는 데 방해된다.[9] 즉 최소한의 장벽이나 유지비용 확보를 위한 이자수준(유누스도 이야기했듯이 주장한 10~15%대)을 넘어선 이자를 부과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6. 기타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이용하여 빌리려는 사람과 빌려주려는 사람을 직거래해주는 대출 시스템이 미국에서 실험적으로 운영중이다.[10]

그밖에도 요구르트를 제조하여 파는 등 여러 사업화로 나서고 있다. 싸면서도 맛있고 신선한 제품 판매 및 생산라인까지 갖추고 있다고 한다.

붕탁으로 유명한 반 다크홈도 포르노사업으로 번 돈을 여기에 쓰고 있다. 자세한건 항목 참조.

무함마드 유누스의 강연을 듣고 영감을 받은 미국의 매트 플래너리와 제시카 제클리가 2005년 비영리 단체인 키바(KIVA)를 설립했는데, 상환률이 96~97%에 달하며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1] 대여비를 안 내고 두어달만 일하여 저축하면 살 돈이다.[2] 구멍가게나 작은 농장을 어느 정도 큰 가게나 큰 농장으로 바꾸는 것은 미소금융이 큰 역할을 하지만, 그 다음 수준부터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한데 미소금융으로 조달하긴 어려우며, 가게와 농장 주인이 경영자로서 교육 수준이 높아야 그것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도 자영업보다는 그냥 회사에서 조직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직업이 없어서 자영업을 하는 사람도 많다. 또한 그들의 업종이 제한적이라 서로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것도 발목을 잡는다.[3] 빈곤가정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아동노동이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의 빈곤층은 의무교육의 부재로 부모부터 자식까지 모두 노동에 투입함에따라 아이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있으며, 이는 그 아이들이 성장하여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똑같은 환경속에서 아이들이 다시 노동에 투입되는 빈곤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있다. 마이크로크레디트로 최악의 빈곤을 벗어난 가정들은 아이들의 교육에 좀 더 비용을 투자하게되고 이는 향후 세대에서 빈곤층을 벗어날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4]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의 볼사 파밀리아 정책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것도 이점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원하는 볼사 파밀리아 시행이후 1990년대 이후 출생 아동들의 전반적인 학력 상승이 이루어졌고, 빈민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5] 이 시기 SKS같은 마이크로크레디트 단체들의 이익률은 매년 100%를 찍었는데, 같은 시기 한달에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이자를 감당 못하고 자살하는 사례가 수십건씩 나타났다.[6] 우즈베키스탄은 이자율이 80%에 이르는 반면 스리랑카는 17% 수준이다.[7] 마이크로크레디트 시장에서 그라민뱅크의 뒤를 이어 가장 유명하며 SNS를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적극적으로 연결한 모델[8]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단순 비교하는건 좋은 비유가 아니지만) 한국의 법정최고이자율이 34.9%20%다(2024년 법 개정). 이 또한 평균적으로 최고 이자율이 15% 안팎에서 움직이는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서 매우 높다고 이야기되고있는데 비영리적인 목적을 내세우고 있는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세계적으로 평균 35% 수준의 이자율을 유지하는건 큰 문제이다.[9] 높은 이자가 부과되면 대출자는 당연히 대출을 통해서 얻은 수익의 상당수를 이자로 사용할 수밖에 없고 자산이 거의 없어 마이크로 크레디트에 기반해 사업을 시작한 개발도상국 대출자의 입장에서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 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10] 위에서 언급된 KIVA가 이 모델을 가장 성공적으로 제시해서 유명해진 단체이다. 물론 그렇게 직접 연결해줬는데도 결국 고이자가 발생하고 있다는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