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종로서적[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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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07년에 개업하고 2002년에 폐업한 대한민국의 서점.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66 (종로2가)에 소재했다. 현재 존재하는 종로서적과는 무관하다.
2. 역사
1954~7년 종로서관 대한기독교서회 건물[2] | 1973년 5월 종로서적센터 대한성서공회 건물 |
1987년 종로서적 본·신관 | 종로서적 서문 |
한때는 종로의 명물이자 독서가 및 독자들에게는 추억과 낭만이 가득하고 책과 함께한 곳이자 종로에 가면 항상 떠올리는 서점으로 지금의 중장년층들에게는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거나 회자되는 서점이기도 하다.
서점 구조는 6층까지 분류되었으며 2~6층 사이 국내도서 및 양서, 일서 등을 판매하였고, 4~5층 한쪽에는 문구 및 음반매장이 있었고, 1997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인터넷 서점을 오픈하기도 했다. # [5]
1980년대 이전까지는 종로에서 가장 알아줬던 서점이기 때문에 당시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가장 선호하였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 광화문에 교보문고가 개점하고, 이후 종로1가에 영풍문고 종로본점이 개장하면서 고객층 이탈이 이어졌다. 종로서적의 마지막 기회로 지금의 종로타워가 완공되고 건물측에서 지하에 대형서점을 입점시키려 종로서적측에 이전을 권유했으나, 결국 푸드코트와 쇼핑몰이 들어서게 되었다.[6]
비록 오래 전에 없어지기는 하였지만 지금도 옛 종로서적 입구를 보면 그 때 그 시절이 연상된다는 사람들도 있는 등 아직 종로서적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다.
2.1. 폐업
2002년 6월 4일 최종부도 처리[7]로 결국 폐점이 확정되어 영업을 종료했다.[8] 종로서적에 있었던 도서들은 모두 채권단에서 회수처리 되었는데, 이를 사전에 회수하지 못한 납품 출판사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종로서적이 부도날 당시 장하구의 조카인 장덕연 사장으로 대표가 바뀌고 주변에 교보문고, 영풍문고가 생기며 경영이 어려워지자 아무런 통보 없이 출판사들의 지불을 연기했다. 또한 전두환의 장남이자 당시 시공사의 주인이었던 전재국에게 종로서적을 인수해달라 했으나 거절당했으며기사[9], 폐업 당시 각계에서 회생을 도우려 했으나, 장덕연 종로서적 사장은 경영권만을 고집하고 권리금을 요구하는 등 이기적이고 방만한 경영으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고의부도를 내게된다.기사 이로 인하여 종로서적에 남아 있는 도서들은 각 출판사로 회수되지 못했으며 결국 많은 출판사들이 연쇄 부도를 맞았다.기사123
청계천 헌책방 사장님들이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고의 부도 이후 출판사로 회수되지 못한 엄청난 양의 새책이 청계천으로 흘러들어왔다.
이 당시 종로서적의 회생을 두고 많은 말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경영진의 고집 때문이었다는 말이 있다. 개신교 계열이다 보니 1층에는 반드시 개신교 서적과 관련 물품들로만 채웠고[10], 이것이 고객층 이탈로 이어졌다는 것. 비교적 자유롭게 서가배치와 리모델링을 거듭하며 고객을 유치했던 교보나 영풍과 다른 점.
사실, 다른 대형서점들과 달리 여러 층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책 구경을 해야 하는 구조적 약점이 있었다. 서가가 수평으로 넓게 펼쳐진 교보문고와 달리 서가가 수직으로 배치된 셈. 본관과 신관은 반층짜리 스킵플로어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어 각 계단이 길지는 않았으나, 총 6층이라는 높이는 오가기에 좋지 않았다.
3. 여담
구 종로서적이 있던 곳은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10번 출구 앞으로, 처음에는 학원이 들어섰으나 이후 오프라인 강의는 중단되고 온라인 강의 사이트의 사무실로 활용되다가, 2010년 말에 1~4층만 리모델링하여 다이소 600호 종각점이 들어섰다. # 이후 다이소 역시 예전 지오다노 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건물 전체가 공실화되었다.
당시 종로서적 대표였던 장하구는 장기하의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이 그가 별세했을 때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
[1] 6층이나 되는 거대한 서점이었다. 2000년대에는 창문에 김홍도의 서당 그림이 새겨진 것이 인상적인데 여기 참고. 해당 건물 전체 모습은 물론 주변 모습도 볼 수 있는 건 덤.[2] 우측의 붉은 벽돌 건물 1층[3] 참고로 이 예수교서회와 예수회를 헷갈려서 종로서적은 가톨릭 선교사들이 세운 서점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4] 이후 현존하는 서점 중에 가장 오래된 서점이 된 부산 영광도서의 김윤환 대표는 '고작 46년에 전국 최고(最古)다? 만감이 교차한다.'라고 말했다.[5] 대홍기획 인터랙티브팀 (現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부)에서 구축했다.[6] 그 자리는 반디앤루니스 종로점이 되었으나 2016년 9월 13일 폐점했다. 이후 신 종로서적이 반디앤루니스 자리에 오픈했다.[7] 2002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승리를 거둔 날이었다.[8] 이를 두고 안경환 당시 서울 법대 학장은 '종로서적이 망했는데 그깟 월드컵이 대수냐'라고 통탄하는 글을 조선일보에 투고한 바 있다.문학의 숲…/ 월드컵과 종로서적 그런데 그렇게 통탄하고 나서 학생들더러 우리나라 응원하라고 근대법학교육백주년기념관에서 축구 경기를 틀어주었다.[9] 이쪽은 북스리브로라는 서점 브랜드가 있었으며, 인근의 을지서적을 인수했다.[10] 원래 개신교 서점에서 출발한 곳이다 보니 대형서점 중에서 개신교서적을 가장 잘 구비한 서점이었다. 당시 기준으로도 그랬지만 지금 기준으로 봐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