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마르지엘라가 설립한 프랑스의 명품 패션 브랜드에 대한 내용은 메종 마르지엘라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000><colcolor=#fff> 마틴 마르지엘라 Martin Margiela | |
출생 | 1957년 4월 9일 ([age(1957-04-09)]세) |
벨기에 림뷔르흐주 헹크 | |
국적 | [[벨기에|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패션 디자이너 |
학력 |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 |
경력 | 1982년~1985년: 장 폴 고티에 어시스턴트 디자이너 1988년: 메종 마르지엘라 설립 1997년~2003년: 에르메스 수석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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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벨기에의 패션 디자이너. 세계적인 명품 패션 브랜드인 메종 마르지엘라의 설립자이다.2. 상세
1957년 벨기에 플랑드르(Flandre) 림뷔르흐(Limburg) 지역에서 가발과 향수 사업을 하는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학교 졸업 후 장 폴 고티에 아틀리에에서 3년정도 도제 생활을 하였다.1987년 8월 제니 메이렌스와 함께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를 설립한다.
1997년, 에르메스의 장 루이 뒤마 회장에게 발탁되어 에르메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메종 마르지엘라 쇼에 뒤마의 딸이 모델로 섰던 것이 인연이 되어 그녀의 추천을 통해 에르메스로 재직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장 루이 뒤마 회장은 그를 두고 '명마를 위한 훌륭한 기수'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재직 기간동안 그는 에르메스를 위한 고급스러움과 에르메스의 전통개념을 이어가면서도 자신의 테일러링 실력을 발휘하였는데, 특히 가죽과 캐시미어 사용에서 절대적인 질과 우수성을 보증받기도 하였다.
2008년 2009 S/S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패션계에서 은퇴한다.
3. 특징
1980년대 처음 파리 패션계에 데뷔한 그는, 해체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의 의상을 선보였는데, 주로 의복에 숨겨진, 의복이 구성되는 아이템에 집중하는 의상들을 선보였다. 단편적인 예로, 보통 자켓을 만들 때에는 시침선을 먼저 가봉 후에, 재봉질을 하여 시침선이 옷의 겉면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방법이지만, 마르지엘라는 그 틀을 깨고, 자켓의 어깨부분에 시침선이 그대로 드러나게 재봉을 한다든지 원단 롤을 스커트의 일부분으로 남겨두는 식으로, 기존에 존재하던 의복의 방식을 깨트려버린다.한편, 그는 극도로 얼굴이나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실제로 아틀리에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으며, 극히 가까운 일부 지인들을 제외하고는 그의 존재를 본 적도, 마주친 적도 없다고 한다. 어찌나 철저한지, 모든 인터뷰나 지시 관련된 사항마저도 메일이나 팩스를 이용하여 처리하고 있다고. 그는 종종 자신의 쇼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객석 한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자신의 쇼를 보고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르지엘라의 이런 익명성을 띈 태도는 그의 라벨에서도 나타나는데, 브랜드나 자신의 로고를 대문짝만하게 라벨에 새기는 여타 브랜드와는 다르게 그는 1번부터 23번이 새겨져있는 모슬린 소재의 라벨만 사용하고 있으며,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0번은 아티저널 컬렉션 라인의 숫자인데, 일년에 2번 정도 열리는 오트 쿠틔르(Haute couture) 기간 중에 열리고 있으며, 주로 세계 각지의 골동품 시장에서 수집 한 제품들을 가지고 해체하고 재 조합하여 또 다른 의복으로 재탄생 시키고 있으며, 리사이클링과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제품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4. 브랜드
자세한 내용은 메종 마르지엘라 문서 참고하십시오.5. 기타
- 그의 아틀리에는 파리 시내가 아닌 북부 교외쪽 철도작업장을 쓰고 있으며, 매장 직원 및 본사 디자인 팀 모두 하얀색 가운을 입고 일하는데, 이는 데뷔 후 돈이 없었던 마르지엘라가 직원 유니폼으로 선택한 것이 흰색 가운이었고, 그때부터 흰색 가운을 전 스탭이 착용하고 있다고 한다.
- 마틴 마르지엘라는 과거에 얼굴이 공개되지 않았던 디자이너였다. 인터넷이 발달한 현재 구글에 검색해 보면 그의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으니 참고.
- 국내 기준 2020년 10월 마르지엘라 다큐멘터리가 개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