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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성의 자치주{{{#!wiki style="margin: 0px -10px; display: inline-table; word-break: keep-all" | <tablebordercolor=#ffffff,#1c1d1f><tablebgcolor=#ffffff,#1c1d1f> | }}} | |||
| <colbgcolor=#ee1c25><colcolor=#ffff00> 주정부 소재지 | 연길시 공원로 2799호[4] | ||||
| 하위 행정구역 | 6현급시 2현 | ||||
| 성급행정구 | 지린성 | ||||
| 면적 | 43,329.34km²[5] | ||||
| 인구 | 1,886,200명 (2024) | ||||
| 인구밀도 | 43명/km² | ||||
| 민족 구성 | 한족 60.3% | 조선족 35.4% 만주족 3.7% | 기타 민족 0.6% | ||||
| 서기 | 후자푸(胡家福) | ||||
| 주장 | 홍경(洪庆/洪慶)(조선족) | ||||
| GRDP | <colbgcolor=#ee1c25><colcolor=#ffff00> 전체 | $141억 9,623만 (2024) | |||
| 1인당 | $7,526 (2024) | ||||
| 상징 | 시화 | 진달래 | |||
| 차량번호 | 吉H, 吉K[6] | ||||
| 행정구역 약칭 | 延边 | ||||
| 행정구역코드 | 222400 | ||||
| 지역전화번호 | 0433 | ||||
| 우편번호 | 133000 | ||||
| ISO 3166-2 | CN-JL-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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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변(延边, Yánbiān, 옌볜) 조선족 자치주는 중국 지린성의 행정구역으로, 지급시에 상당한다.[7]2. 기후
북쪽에 위치하여 기후는 춥다. 연길의 1월 평균기온은 -13.6℃이며, 7월 평균기온은 21.5℃이다.[8]# 연강수량은 528mm로 적은 편. 서북쪽 돈화시의 경우 더 추워서 1월 평균기온이 -16.6℃에 달해 자강도 중강진(-16.1℃)과 비슷한 수준.[9]3. 역사
지린성 동부에 위치한 중국 유일의 조선족 자치주이다. 연길시에 조선족 60%가 거주하는 중국 최대의 조선족 집거 지역이다. #기원전 27년, 고구려는 연변에 "도시"를 건설했다. 698년에 대조영은 고구려의 옛 영토에 발해를 세웠다.
발해의 첫 수도인 동모산은 연변자치주 돈화시에 있고 발해 5경 중 동경용원부는 훈춘시, 와 중경현덕부는 화룡시에 있고 상경용천부는 바로 옆 동네인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닝안시에 있다.
713년에 당나라로부터 발해왕으로 불리고 대조영은 나라 이름을 "발해 왕국"으로 바꾸었다. 연변에 살던 발해 사람들은 랴오양 지역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발해 사람들이 이주한 후, 연변 지역은 여진족의 정착지가 되었고, 백두산에 여진족 왕궁을 세웠다.
1121년, 금나라가 건국된 후에, 금나라는 6개의 수도와 19개의 행정 구역을 설치했다. 후금이 등장한 후 , 옌볜 지역은 후금의 관할 아래 있었다. 1636년 후금은 청나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당시 옌볜 지역에는 여진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3.1. 건립 과정
북만민맹은 이후 1949년에 연변으로 들어온다. 연변에 들어오기 전에는 하얼빈 주변을 중심으로 북만주에서 활동했다. 특히 1948년 주덕해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사무처가 건립되어 활동한다. 민족사무처는 중공의 동북행정위원회 민족위원회 산화로 조선민족을 중국공산당 주변에 결집시키고 연변에 자치주를 건설하는데 목적을 두었다.민족사무처의 처장이었던 주덕해는 이후 인재를 모으고 민족간부를 양성한다. 특히 1948년 7월 20일에 하얼빈에 조선인 간부학교를 개교하였으며 이후 연변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150여명의 조선인들에게 간부 교육을 진행했다.
1949년 2월 10일에 주덕해를 포함한 북만주에서 발탁되고 양성된 인물들이 연변으로 이동하였으며 이후 연변의 핵심 요직을 맡았다. 이후 중공과의 회의를 통해 1952년 9월 3일에 연변조선족자치구가 건립된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 옌볜 지역은 제1차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전체회의에서 채택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강령의 규정에 따라 소수민족 자치 시행을 시작했다.
중국 성립 이후 1952년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설치되었으며, 1955년에는 돈화현과 합병되면서 연변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 연변조선족자치주)로 개칭되었다.
중국 수립 직후인 1952년 9월 3일 조선족자치구가 되었다. 이것이 소위 구삼명절(九三節)로 자치주 차원의 공휴일이다.
1952년 설립된 연변조선족자치구(延边朝鲜族自治区)는 전후 1955년 조선족이 극히 드문 돈화가 편입되며 연변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로 변경된다. 이를 두고 지위가 격하되었다고 하는 주장이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연변조선족자치구는 성급 자치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지방정부인 지린성 아래 있던 자치구였고, 오히려 돈화가 편입됨에 따라 면적도 넓어지고 승격된 것이다. 다만 당시 연변 조선족들은 주변의 조선족들이 사는 지역을 편입시켜서 성급 자치구로 승격하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4. 인구 구성
2024년 말 기준 연변의 총 등록 인구는 197만 9800명으로 연말 총 인구 중 한족은 119만 5700명으로 전체의 60.4%를 차지했고, 조선족은 69만 8900명으로 35.3%, 만주족은 7만 3000명으로 3.7%를 차지했다. 기타 민족은 12,200명으로 전체 인구의 0.6%를 차지했다. 상주 인구는 188만 6200명으로 이중 남성은 94만 600명, 여성은 94만 5600명이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지만 정작 조선족보다 한족이 더 많다. 연변은 한족, 조선족, 만주족, 후이족, 몽골족, 위구르족, 다우르족 등 48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한족이 60.1%, 조선족이 35.8%, 만주족이 3.5%, 기타 민족이 0.6%를 차지한다.
조선족의 출산율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한국보다도 낮은데, 2010년 기준으로 조선족의 합계 출산율이 0.98이었다. 통계상으로 보면 1999년까지 출산율이 2명대 정도였지만 그 이후로 대한민국과 중국 대도시 지역으로 급속히 빠져나가며 줄어든 것.
동북 3성 자체가 극도의 저출산과 고령화, 타 지역으로의 인구 유출로 중국 내에서도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지역으로 손꼽히지만, 유독 연변이 그 정도가 특히 더 심한 편이다. 2021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변 조선족 자치주 내의 조선족 인구 비중이 3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2016년부터 연변에 3자녀 출산을 허용하며 대책에 들어갔다. #
5. 산업
과거에는 연변 자치주 지역의 소득 수준은 상위권이었지만, 공업이 별로 발달하지 않아 예전만 못하다. 연변 지역이 중국 대도시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고, 공장이 들어서기에도 중국 내 단둥시 같은 주요 항구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별로 장점이 없기 때문이다.북한과 인접해 있다는 것이 그나마 연길이 가진 메리트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1990년대 한중수교 이전까지 북한과의 교류가 꽤 빈번했다고 한다. 이때에는 중국의 경제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고 북한의 공업화가 진전되던 상황이라, 북한제 물품이 중국제 물품보다 훨씬 품질이 좋아서, 북한 물품이 연변 각지에서 돌아다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1980년대 이후로 북한이 점차 쇠퇴되고 1990년대 와서 한중수교로 교류길이 열리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 물론 현재도 북한과의 교류는 어느 정도 있고, 북한으로 중국제 물품이나 남한제 물품을 수출하는 일종의 창구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남한과의 교류가 더 활발하다. 그래도 북한 내에서 한국 소식을 듣거나 중국산 공산품이 반입되는 통로이기에, 북한 입장에서는 연변과의 교류가 매우 중요하다.
폐쇄된 북한의 상황 때문에 북한의 항구를 쓰기 쉽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90년대 이후에는 북한의 구매력이 형편없어지면서, 공업의 발달이 지체되었다. 아울러 개혁개방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로부터 많은 조선족들이 돈을 벌려고 대한민국이나 중국 내에 있는 대도시로 일하러 가서 인구도 감소했고, 공업의 발전이 이루어질래야 이루어질 수 없었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1960년대 한국 풍경이 펼쳐질 정도이다.
2015년 기준 자치주의 1인당 GDP는 6,441$로 중국 평균(8,068$)보다 낮은 수준이었으며, 지린성에서는 9개 지급 행정구역 중 7위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관광산업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는데,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제한되자 중국 국내에서 저렴하게 한국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중국의 한 왕훙(인플루언서)의 홍보로 인해 일약 중국 젊은 층들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라, 2023년에는 전년보다 3배 이상 증가한 무려 2,59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했다. 기사
6. 주변 지역과의 교류
조선족 자치 구역인 만큼 대한민국과 이래저래 교류가 많다. 과거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출신들이 괄시를 받는 경향이 있었다고는 하나(남한 출신이 북한 출신에 비해 괄시를 받았다는 의미), 1990년대 이후로는 한국에 친척이 있는 조선족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한국에 취직하면서 사정이 뒤집혔다.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도 한국의 깊은 영향을 받는 지역이라서 한국매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노래나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음식도 쉽게 맛볼 수 있지만, 한국영사관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연변 주민들이 한국행 비자를 발급받으려면 700여 km(연길 기준) 떨어진 선양의 대한민국 총영사관까지 가야 한다. 이 거리면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이용해도 최소 9시간 걸린다.아울러 북한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창구이다. 북한 제조업은 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대차게 타격을 입으면서 주요 소비재들이 중국을 통해 수입되고 있고, 아울러 북한 경제가 장마당 위주로 돌아다니게 되면서 장마당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돈주들의 돈줄 상당수도 연변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며, 한국 소식들이나 영상매체들도 연변을 통해서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중요한 창구가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주로 함경도 일대의 유통을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1990년대 당시에는 남한가요가 북한에서는 연변가요로 알려지기도 했다. 물론 어느 정도 정보가 퍼지고 한국 가수들의 공연도 여러 번 벌어진 2000년대 이후로는 다들 남한가요라고 알 수 있다.
2016년 10월 경에는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방사능 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심화되자 방사능 오염에 대한 검사를 했다.# 다만 생각보다 별 문제는 없었는지 이후 잠잠해졌다.
7. 두만강을 통한 동해로 진출
지도를 보면 지린성 훈춘시의 남동쪽은 북한과 러시아 영토에 막혀 아슬아슬하게 동해 바다와 접해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동해로 나가고 싶은 중국 정부가 동해로의 진출로를 모색하려고 북한에게 여러 가지 지원을 해주면서 나진항 이용권을 얻어가고 있다. 하지만 실용성이 있을지는 미지수이긴 하다.과거 청나라와 제정 러시아 시절에 연해주를 놓고 갈등을 벌인 적도 있다. 양국은 네르친스크 조약과 캬흐타 조약이라는 국경 획정 조약을 맺었지만, 1800년대에 서구 열강들이 중국을 차례차례대로 전쟁에 이기면서[10] 아이훈 조약과 베이징 조약으로 지금의 국경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와 별개로19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훈춘시 팡촨(방천,防川)일대에 내륙항구를 만들어 두만강 물줄기를 통해 동해안 진출을 노리고 있어 훈춘에서 40㎞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취안허(圈河)에서 부두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고 하지만 이를 두고러시아와 북한의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8. 언어
연변자치주 곳곳의 가게들을 보면 간판에 한국어를 위에 쓰고 아래에 중국어를 병기한 경우나 좌우로 한국어와 중국어를 병기해 놓은 곳이 많은데, 간판에 한국어를 병기하지 않으면 가게 허가가 안 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의 모든 소수민족 자치구들은 중국어를 쓰되, 그 지역 소수민족 문자로도 병기해야 한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곳은 한국식의 세련된 폰트나 북한 폰트, 한족이 운영하는 곳은 굴림체나 돋움체, 궁서체 계열을 많이 쓴다. 자치주 외에서도 조선족이 많이 사는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무단장시 등의 도시 일부 지역에서 이러한 간판 형태가 발견되기도 한다.연변의 한족, 만주족 등 비한민족계 민족들도 조선족과의 교류가 예전부터 많았기 때문에 중국 조선어를 조금은 할 줄 안다.#
9.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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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현급시, 2개 현이 있다. 연길, 용정, 도문은 중국 치고는 행정구역 면적이 작은 편. 다른 현급행정구는 면적이 엇비슷한데 이 세 현급시만 유독 다른 시/현보다 면적이 작은 이유는, 원래는 셋 다 같은 연길현에 속해 있었는데, 여기서 연길시와 도문시가 먼저 분리 승격한 다음, 잔존 연길현이 용정현으로 개칭 후 현급시로 승격되었기 때문이다.[11] 중국도 한국처럼 20세기 초중반에 도농분리제를 도입해 현의 일부를 분리 승격시켜 시를 설치하도록 한 역사가 있어서, 이렇게 과거에 실시된 도농분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10. 인구
- 볼드체는 주도.
| 도시명 | 총인구 | 조선족 인구 (명) | 조선족 인구비율 | |
| 연변 | 연길시 | 410,000 | 200,000 | 48.8% |
| 용정시 | 250,000 | 190,000 | 76% | |
| 화룡시 | 210,000 | 152,000 | 72.4% | |
| 도문시 | 130,000 | 82,000 | 63.1% | |
| 훈춘시 | 220,000 | 80,000 | 36.4% | |
| 돈화시 | 480,000 | 22,000 | 4.6% | |
| 안도현 | 210,000 | 52,000 | 24.8% | |
| 왕청현 | 250,000 | 85,000 | 34% | |
| 계 | 2,160,000 | 863,000 | 40% | |
11. 출신 인물
12. 관련 문서
[1] 주정부 연길시의 로고[2] 한국 외교부 및 언론사에서는 옌볜조선족자치주로 표기한다.[3] 소수민족 자치구나 자치주는 소수민족의 문자를 중국어와 병기한다. 옌볜의 소수민족 언어가 한국어로 이 위키의 언어와 일치하고, 대한민국 국립국어원도 옌볜과 연변을 복수표준어로 인정하므로, 문서명은 후자를 따른다.[4] 외래어 표기법상으로는 옌지시 궁위안루2799호. 다만 길림성, 연변, 연길도 국립국어원 기준으로 복수표준어이기는 하다.[5] 경기도 + 경상도의 면적과 비슷하다. 또한 평안도와도 비슷하다.[6] 吉K는 장백산보호구 한정[7] 자치주의 주도(州都)는 연길시(延吉市)이며, 면적은 43,329.34km². 조선족이 19세기에 한반도에서 해당 지역으로 이주한 것과 1990년대부터 한국 본토와의 교류 급증 등 원인이 상충되어 본 지역은 상당히 한국과 유사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8] 7월 기온은 강원도 태백시와 비슷하다.[9] 기후 상황은 한반도와 비슷한데, 한반도에서 비가 오는 날에는 여기도 십중팔구 비가 오고, 한반도에 한파가 몰려오는 기간에는 여기도 추위에 시달린다.[10] 아편전쟁, 청프전쟁 등[11] 2010년 창원시로 통합되기 전의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와 비슷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12] 토문이라고 불리기도 함.[13] 한국 한자음으로는 혼춘이나, 현지의 조선족들은 중국음으로 훈춘으로 표기한다. 만주어에서 유래한 지명이기 때문[한족] [한족] [16] 한족인지 조선족인지 불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