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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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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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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高麗
Goguryeo (Koguryŏ)
Goryeo (Kory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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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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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7년[2] ~ 서기 668년 12월 3일[3] (705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고조선 현도군[4]
고구려현

안동도호부[5]
발해[6]
부여 소고구려[7]
고구려부흥운동[8]
예맥계 소국들[9] 통일신라[10]
패서 호족 보덕국
국호 졸본부여[11] → 고구려[12] → 고려[13]
위치 한반도 중 · 북부,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프리모리예 지방 일대[14]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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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7년 건국
3년 국내성 천도
194년 진대법 시행
311년 서안평 점령[15]
313년 낙랑군 정복
314년 대방군 정복[16]
372년 불교 전래
373년 율령 반포
427년 평양성 천도
475년 위례성 점령
494년 부여 병합
545년 추군과 세군의 동란
612년 살수대첩
631년 천리장성 축조
642년 연개소문 집권
645년 안시성 전투
668년 평양성 함락, 고구려 멸망
수도 졸본성[17]국내성[18]평양성[19]
삼경 국내성[20] · 평양성 · 한성[21]
종족 예맥[22]·말갈[23]·한(韓)·한족[24]
언어 고구려어 (고대 한국어)
문자 한자, 구결
종교 토속 종교[25], 불교[26]
정치 체제 제가귀족제 → 전제군주제
국가원수 태왕(太王)
주요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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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동명성왕[27]
3대 대무신왕[28]
6대 태조대왕[29]
9대 고국천왕[30]
15대 미천왕[31]
17대 소수림왕[32]
19대 광개토대왕[33]
20대 장수왕[34]
23대 안원왕[35]
26대 영양왕[36]
28대 보장왕[37]
국성 고(高)[38]
현재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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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틀:국기|]][[틀:국기|]]

[[중국|]][[틀:국기|]][[틀:국기|]]

[[러시아|]][[틀:국기|]][[틀:국기|]]
계승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북한|]][[틀:국기|]][[틀:국기|]]
1. 개요2. 상징
2.1. 국호
2.1.1. 발음
2.2. 군기2.3. 옥새
3. 역사4. 사회5. 문화6. 정치7. 경제8. 군사9. 국력10. 지리
10.1. 영역과 행정구역
11. 외교12. 멸망과 유민13. 역사귀속과 계승인식14. 관련 사료 목록
14.1. 한국14.2. 중국14.3. 일본14.4. 금석문
15. 고구려/문화재16. 연표17. 왕조18. 인물19. 고구려의 대(對)중국 전쟁 목록20. 고구려부흥운동21. 고구려/창작물22. 기타23. 같이 보기2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고구려() 또는 고려()는 삼국시대 예맥을 지배층으로 한 고대 다민족 국가이다.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를 중심으로 전성기에는 한반도 중·남부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던 나라로서, 삼국 가운데 가장 큰 영토를 점유했다. 만주를 지배했던 고대 국가라는 점에서 고구려를 계승한 한국의 또 다른 왕조인 발해와도 비교되는 경우가 많다.[39] 704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존속한 장수 왕조다.[40]

2. 상징

2.1. 국호

<colbgcolor=#000><colcolor=white> 언어 명칭 및 해설
한국어 고구려(高句麗, Koguryŏ, Goguryeo) / 고려(高麗, Koryŏ, Goryeo)

광개토대왕[41] 또는 장수왕 때부터 '고려'라고 고정하여 불렀지만 현대 한국에서는 왕건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여전히 '고구려'라고 부른다.
중국어 가오거우리(高句丽, Gāogōulí) / 가오리(高丽, Gāolí)[42] 현대 관화 기준이다.

'가오리'가 일반적이며, 굳이 '高句丽'라고 쓸 때는 '句'의 독음이 일반적인 '쥐(jú)'가 아니라 '거우(gōu)'가 된다. 이 독음법은 오로지 고구려라는 단어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중국인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컴퓨터 입력기에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일부 유사역사학자들이 고구려를 '가우리'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는 결국 중국어 독음인 것. 그러나 이 독음 역시 결국은 현대 중국어의 독음일 뿐이며, 옛 중국어의 한자 발음은 현대 중국어보다는 오히려 한국식 발음과 상대적으로 더 가깝다.[43]

고구려의 경우 한나라에서 사용한 상고한어로는 "kˤaw kˤo rˤe", 당나라에서 사용한 중고한어로는 "kɑu kəu liᴇ"로 발음했다. 고려의 경우 상고한어로는 "kˤaw rˤe", 중고한어로는 "kɑu liᴇ"로 발음했다.
일본어 코쿠리([ruby(高, ruby=こう)][ruby(句, ruby=く)][ruby(麗, ruby=り)], Kōkuri) / 코라이([ruby(高, ruby=こう)][ruby(麗, ruby=らい)], Kōrai) / 코마([ruby(高, ruby=こ)][ruby(麗, ruby=ま)], Koma)[44]

때때로 '高麗', '狛(박)', '駒(구)' 등으로 써 놓고 '코마(こま)'라고 읽는 경우도 있다.
고대 티베트어 케우리(Ke'u-li)[45]
고대 튀르크어 뵈퀼리(𐰋𐰇𐰚𐰠𐰃, Böküli)[46]

고대 튀르크어는 어두에 /m/ 등의 비음이 오는 경우가 드물어 다른 음가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아래의 산스크리트어 명칭과 비교하면 원래 형태는 뫼퀼리(Möküli)였을 것이다.
중세 그리스어 무크리(Moúkri)[47]
산스크리트어 무쿠리(Mukuri)[48] / 쿠쿠테스바라(Kukutesvara)[49]

'고구려'라는 이름은 중국 후한의 역사가 반고(32~92)가 지은 《한서》 〈지리지〉에 최초로 등장하며, 한사군현도군에 속한 현인 '고구려현'(高句驪縣)이라는 지명으로 나온다. 이는 한나라의 지명 조어법과는 상이하므로, '고구려'는 일대의 토착민들이 본래 자신들의 마을 또는 지역을 부르던 고유어 지명으로 추정된다. 현도군 고구려현은 본래 오녀산성국내성이 있는 압록강 지안시 일대에 있었으나 기원전 75년에 토착민의 강력한 저항으로 흥경(신빈만주족자치구 일대)으로 이전하였으며, 1세기에 다시 무순(푸순현 일대)으로 후퇴하였다. 이 과정은 나라로서의 고구려가 성립하는 과정이기도 했는데, 부여계 유민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졸본에 도읍을 세웠으며 이들도 '고구려'라는 지명사를 국호로 사용하게 되었다. 현도군의 '고구려현' 쪽도 계속 이름은 남아 있다가 서기 14년 고구려 유리명왕에게 흡수당했다. 그래서 《삼국사기》에는 고구려가 고구려를 공격하여 복속하는 대목이 나온다.
三十三年 秋八月 王命烏伊 摩離 領兵二萬 西伐梁貊 滅其國 進兵襲取漢高句麗縣
오이(鳥伊)와 마리(摩離)에게 명하여 병사 20,000명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양맥(梁貊)을 정벌하여 그 나라를 멸망시켰다. 계속 진군하여 한의 고구려현을 습격하여 빼앗도록 하였다.
삼국사기》 권13 〈고구려 본기〉 1 유리왕(琉璃王) 33년 가을 8월

건국 초기에는 국명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서 고구려(高駒驪), 구려(句麗), 구려(駒驪), 고리(高離) 등으로 기록되었는데 주로 고구려(高句麗)의 빈도가 가장 높았다. 당연하겠지만 이는 고유어 이름을 한자를 빌려 나타내는 과정에서 여러 표기가 나타났다가 점차 '고구려'로 통일된 것이다. 고구려의 기원과 관련되어 졸본부여나 '맥'(貊)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4세기부터는 '고려'(高麗)로 불리기 시작하여, 5세기에 이르러서는 '고구려'라는 이름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고려'로만 불리게 되었다.

현재 사학계의 정설은 장수왕 때 고구려가 고려(高麗)로 고정되어 멸망할 때까지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은 한국사 교과서에도 실리지 않아 한국의 비전문가들 사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듣보잡인 경우가 많다. 장수왕 때 고려로 국호를 바꿨다는 증거들은 여럿 있다. 가령 5세기 장수왕 대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주 고구려비에는 고려라는 두 글자가 떡하니 박혀 있고, 장수왕 시기부터 중국 측 문헌에 '고려'라고만 표기되기 시작된다. 전성기를 맞이한 장수왕 재위기에는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는 등 국가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여러 정책들이 추진됐는데, 국호 역시 그 일환으로 변경된 것으로 추정된다.

왜 바꾸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아무래도 고구려(高句麗)의 고(高)와 구(句)의 발음이 비슷해서 빨리 발음하면 고려(高麗)나 구려(句麗)로 줄어들게 되는데 구려보다는 고려가 한자의 의미를 봤을 때, 물론 어원은 한자의 의미와 무관한 고유어에서 유래했겠지만 더 그럴 듯해 보여서 고려로 변경했을 수도 있다.[50] 고구려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나는 《한서》 〈지리지〉에서는 현도군의 속현으로 고구려현과 함께 상은태(上殷台)현과 서개마(西蓋馬)현이 소개되는데, 이 둘은 전부 방위어인 상(上)과 서(西)로 시작하므로 고구려 역시 본래 방위어 고(高)와 토착 지명 구려(句麗)의 합성어였을 것으로 보인다.[51] 이렇게 본다면 국호가 '고려'로 변경된 것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국명의 본래 형태와 유사하게 돌아온 셈으로 볼 수 있다.

이 '구려(句麗)'의 정확한 어원은 불명이나, 가장 유력한 설은 《삼국지》 〈동이전〉에 소개된 (城)을 뜻하는 고구려의 고유어 '구루(溝漊)' 및 《삼국사기》 〈지리지〉에 기록된 고구려 지명에서 역시 성의 의미로 자주 사용된 '홀(忽)'과 연관짓는 것이다.[52]

하지만 이후 동명성왕이 세운 나라를 보장왕 때까지 통째로 고구려, 대조영이 세운 나라를 발해, 궁예가 세운 나라를 후고구려[53], 그리고 왕건이 세운 나라인 고려를 그냥 고려라고 부르는 관례가 생긴다. 이는 우리가 '고려시대'라고 부르는 그 시대 중에 성립된 관습이라고 볼 수 있다. 언급한 네 국가 모두 궁예가 기분 내킬 때마다 바꾼 태봉을 제외하면 다 고려가 정식 국호였다. 자세한 건 후고구려, 발해, 태봉, 고려 문서로.

장수왕 이래로 고구려를 고려라고 불러왔던 탓에, 5대 10국 시대북송을 거친 이후부터 전근대까지의 중국과 일본에서는 왕건이 세운 고려도 고구려가 거의 그대로 이어지되 왕조만 바뀐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송나라 사신이 쓴 《고려도경》에서도 중세의 고려를 고씨 고려가 망하고 왕씨가 일어나 세운 고려라 표현했으며, 중국 역사학자들이 종종 이렇게 부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오늘날 한국에서 쓰듯이 고구려, 발해, 고려 등으로 부른다.

현대에 로마자로 표기할 때는 2000년 이전 남한의 로마자 표기법과 거의 유사한 매큔-라이샤워 표기법북한식 표기법을 따른 Koguryŏ와 남한식 표기법을 따른 Goguryeo 두 가지가 쓰인다. 남한 매체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은 높지만 2000년 이전 남한에서 생산된 문헌에다가 고구려 자체가 현 북한 지역에서 기반한 왕조였다보니 두 표기법의 저명성은 엇비슷한 편이다.[54]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에서는 북한과 중국의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으므로 Koguryŏ로 표기했다.

왕씨 고려 때는 구고려(句高麗)[55], 구려(駒驪)[56]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한 자국을 고구려의 고려에 맞춰 후고려(後高麗)[57]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아예 고구려와 고려를 동일시하여 고구려를 우리 고려[我高麗]라고 부르는 축문도 등장한다.[58]

궁예가 처음 세운 나라 이름이 '후고구려'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냥 '고려'였다가 나중에 마진, 태봉으로 바꾼 것이었다. 왕건이 세운 고려는 궁예의 태봉을 멸망시키고 세웠으며 고구려를 계승했다는걸 표방하기 위해 국호를 고려로 정한 것이다. 일본에서 발견된 외교문서에서는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도 고려라는 이름을 사용했음이 나타난다. 사실 발해라는 국호는 과의 협상에서 어쩔 수 없이 합의된 대외용 국호였고, 어디까지나 공식 국호는 고려였으나 워낙 발해라는 국호 사용 빈도가 평소에도 높다보니 발해인들 스스로도, 적어도 요나라 시대 후기, 금나라 때부터는 본인들이 발해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된다.[59]

장수왕 대의 국호 변경을 대체로 제대로 반영한 사극으로는 태조 왕건이 있다. 고증 등에서 문제 제기가 여럿 있는 사극이긴 하지만, 극중에서 고구려가 장수왕 때 고려로 바꾼 것은 제대로 반영해서 해설했으며, 궁예가 처음 세운 나라의 이름 역시 후고구려가 아닌 고려로 불렀다. 그런데 극중에서 옛 고구려를 언급할 때는 고구려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옛 고구려도 나중 이름을 써서 고려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높지만 시청자들이 헷갈려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냥 고구려라 한 듯.

같은 이환경 작가가 대본을 쓴 연개소문에서는 고구려로만 표현했다. 태조 왕건과 달리 연개소문은 아예 작중 내내 고구려를 언급해야 하는데 극중에서 계속 고려라고 부르면 시청자들이 혼란을 느낄 게 뻔하니….

이외에도 고구려 유민 고모의 묘지명(高牟墓誌銘)에 따르면 별칭으로 동해지동(東海之東, 동해의 동쪽), 한향(韓鄕)이라 부르기도 했고 삼한=삼국으로 여겨지면서[60] 그 중 마한에서 유래했다고 여겨 그냥 마한이라 불리기도 했다.[61] 근데 보통 고구려는 마한과 동치되긴 했지만 이게 좀 어지러워서 진한이나[62] 변한[63]으로 불리기도 했다.

2.1.1. 발음

학계 일각에서는 고구려 당대의 국호 발음이 '고구리' 또는 '고리'였을 가능성을 주장한다. 호삼성은 《자치통감》을 주해하며 37권의 고구려 관련 기사에서 수말당초 학자 육덕명을 인용하여 "려(驪)는 력(力)과 지(支)의 반절로 발음한다[力支翻]"[64]라고 기록했다. 또 《책부원귀(冊府元龜)》에도 "려는 려(驪)라고도 쓰고 리로 발음한다[亦作驪 音離]"라는 주석이 붙어 있다. 즉 중국 당·송 시대에는 통상 麗를 거성으로 발음하여 '려'로 읽었지만, 고구려의 국호에서 麗를 읽을 때는 통상적인 발음과 달리 평성으로 '리'라고 읽어야 했기 때문에 음가 주석을 붙인 것이다.

이는 시간이 꽤 흐른 뒤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여말선초 사람들이 직접 저술한 일부 문헌에서도 고구려의 麗는 '리'로 발음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를테면 《용비어천가(1445)》 제6장에 '麗運이 衰ᄒᆞ거든(고려의 운이 쇠하거든)'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려(麗)는 리(离)로 발음하고 고려를 말한다[麗音离, 高麗也]"라는 주석이 달려 있다. 한마디로 '고려'로 읽지 말고 '고리'로 읽으라는 소리다. 조선 후기의 성호 이익이나 연암 박지원도 이에 대해 기록을 남겨두었다.

이 연구[65]에 따르면 고구려가 다른 문헌에서 '고리(高離)'로도 나타난다는 것이나, 한국을 제외한 타국에서 부르는 '코아(Korea)'라는 이름, 돌궐에서 뵈퀼,[66] 인도에서 무쿠, 중국에서 가오거우(가오), 일본에서 코우 등으로 불렀던 것을 참고하여 '본디 발음이 고였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추정할 수도 있다.

조선 후기의 글인 《대동지지》에서도 "한나라 현도군에 속한 현에 고구리(高句麗 — 麗[려]자는 离[리]로 읽는다)가 있는데..."라는 대목이 있어 '고구리'라는 음가가 옳다는 인식이 지속되었음을 나타낸다. 《증보문헌비고》에서도 '리'로 읽으라고 주석하고 있다. 즉 조선 전기에 麗 자의 발음이 일반적으로는 려로 읽히는 음가가 제시되었으나, 국명으로서는 리라는 음가가 옳다는 인식이 학자들 내에서는 계속된 것이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 간행된 자전을 보면 麗자에 '나라 이름 리'라는 훈음이 계속 병기된다.

그러나 麗를 '리'로 발음하라는 해석은 어디까지나 현대 한국 한자음 기준으로 성립할 뿐, 당·송 시대에 쓰인 중고한어 기준으로는 오히려 '례(*lje)'에 가까운 발음으로 재구되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오류가 있는 주장이다. 언어학자 윌리엄 백스터의 재구 체계에 따르면 육덕명이 평성 麗의 독음으로 제시한 '력(力)과 지(支)의 반절'에서 운모에 해당하는 支 자는 *tsye, 《책부원귀》에서 麗의 독음으로 제시한 離 자는 *lje 정도로 읽혔다. # 도리어 麗의 일반적인 독음인 '려'는 중고한어 당시에 '레이(*lej)'로 발음되었다.

아울러 《삼강행실도언해(1481)》, 《번역노걸대(1517)》,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 《박통사언해(1677)》, 《오륜행실도(1797)》 등 조선시대에 간행된 다수의 한글 서적에는 고구려와 고려의 발음이 한글로 '고구려', '고려'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이미 '고구려'를 현재와 같이 발음하였음을 알 수 있다.
容齋以爲高麗之麗字本平聲, 而作側字用之, 誤也.
용재(容齋)가 고려의 '麗'자는 본래 평성인데 측자로 만들어 (한시에) 사용한 것을 두고 잘못이라고 하였다.

湖陰曰, 初以山高水麗爲國號, 此何害? 華人精於聲律, 豈容有誤. 容齋嘿然.
호음(湖陰)이 말하였다. "처음 고려가 산고수려(山高水麗)에서 따와 국호를 삼았으니, 이것이 해가 될 것이 있겠는가. 화인(華人)은 성률에 정통하니, 어찌 잘못이 있겠는가." 이에 용재는 말이 없었다.
대동야승 패관잡기 권4, 용재총화 中 (1525)
이에 따르면 호음 정사룡(1491~1570)은 고려의 발음을 [고려]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산고수려(山高水麗)에서 麗는 곱다는 뜻으로서 거성으로 읽어야 하며, [려]로 발음된다. 물론 산고수려 기원설 자체는 많은 비판을 받은 주장이기는 하지만(비판을 받음에도 억지로 인용한 저의를 보라), 그 진위와는 별개로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민간어원에 이끌려 고려의 麗가 [려]로 발음되었던 것이다. 이는 다음 기록들에서도 확인된다.
心溪甞謂惠風曰, 高麗之麗, 中原人雖以離讀, 本國則以厲讀, 則爲詩不從平聲, 未爲不可. 余亦以心溪言爲是.
심계(心溪)가 일찍이 (우리나라의) 풍속을 사랑하여 말하기를, "고려(高麗)의 麗 자를 중국 사람들은 비록 리(離)라는 음으로 읽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려(厲)라는 음으로 읽으니, 시를 짓는 데 있어서는 평성을 따르지 않아도 안 될 것이 없다." 라고 하였다. 도 심계의 말을 옳게 여긴다.
《청장관전서》 제33, 청비록 2 려(麗) 中 (1795)
內史侍郞徐熙語契丹蕭遜寧曰, 我國卽高句麗之舊地故號高麗. 按麗音離, 而東史寶鑑作麗音呂, 是未詳何義也. 今華人猶呼音離, 而韻學等書皆從之, 東人變呼音呂.
내사시랑 서희가 거란의 소손녕에게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곧 고구려의 옛 땅에서 일어났기에 고려라 이름하였다." 라고 하였다. 살피건대 麗의 음은 리(離)이다. 그러나 동사보감은 麗의 음을 려(呂)라 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오늘날 중국인은 리(離)라고 부르고 음운학 책은 모두 그것을 따르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려(呂)라 바꾸어 부르고 있다.
대동지지》 방여총지(方輿總志) 권4 中 (1861~1866)
정리하자면 고구려 당대에는 국호를 현대 한국 한자음의 '고구리'에 대응되는 형태로 발음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후대에는 평성 麗의 기존 독음이 '려'와 유사하다는 사실과 산고수려 기원설 등의 영향으로 국호 발음이 '고구려'로 정착하여 현재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일각의 내용을 근거로 '고구리'만이 정당한 발음이라 단정짓고, 나아가 현대에 통용되는 표기까지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한 담론이다. 애시당초 고구려 당시의 한자음 대다수가 현대의 것과 완전히 같지 않아 본래 음가를 현대 국, 한문으로 정확하게 전사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언어학계에서 재구한 당대 발음은 오히려 '고구려'에 가까울 뿐더러 '고구려'와 '고려'라는 발음 역시 상술한 바와 같이 상당한 역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고구리', '고리' 등으로 표기를 정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 가운데에는 환단고기 추종자(환빠)로 대표되는 유사역사학자들이 섞여 있는데, 이들이 오늘날에 와서 교과서 등지의 표기 정정을 주장하고 예찬하는 이유는 역사 용어를 주류 사학계에서 쓰이던 명칭에서 분리함으로써 고구려사 전체를 자신들의 이론대로 재인식하게끔 하려는 저의가 깔려 있다. 동시에 '고구려', '고려' 등을 '외세의 영향을 받은 근본없는 독음' 취급하려는 국수주의 사관의 영향도 들어 있다.[67] 환빠의 경우 역사학계의 연구부정행위와 밀접하게 닿아 있어, 단순한 사료 외 주석이나 해설에서도 이러한 명칭을 의도적으로 유지하는 서적이 있다면 저자와 인용출처 등 확인에 주의가 필요하다.

2.2. 군기

파일:고구려 군기.svg
彼師雖多, 皆備數疑兵而已. 其驍勇唯赤旗. 若先破之, 其餘不攻自潰.
고구려 군대가 비록 수는 많으나 모두 수를 채운 가짜 병사입니다. 그 중 날쌔고 용감한 병사는 오직 붉은 깃발의 군대뿐이니, 만일 그들을 먼저 쳐부수면 그 나머지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
삼국사기 권제24 백제본기 제2 근구수왕 원년 11월 첫번째기사

고구려군은 스스로를 상징하는 깃발로 붉은 기를 사용하였다. 초기에는 고구려의 계루부 내지 중앙군만 붉은 기를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시기가 뒤로 움직이며 고구려군의 깃발은 붉은 깃발로 통일되어 갔다.

5세기 말 쌍영총 연도동벽화 거마행렬도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고선지 실크로드 개척사-기창을 든 개마갑주무사와 석반부철모' 원전 이미지와 복원 이미지 발췌.

안악 3호분 벽화에서도 기수가 붉은 색 깃발을 들고 있으며, 개마무사 부대가 붉은 깃발을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붉은 색 깃발을 군기(軍旗)로 사용한 것은 명확해 보인다. 다만 근대적인 국기(國旗)의 개념이 없었던 만큼 국가의 상징은 아니었을 것이다.

2.3. 옥새

遂賜姓負鼎氏. 抵利勿林宿, 夜聞金聲. 向明使人尋之, 得金壐·兵物等. 曰, “天賜也.” 拜受之.
동틀 무렵 사람을 시켜 찾아보게 하니, 금새[金壐]와 병장기 등을 얻었다. (왕이) 말하기를, “하늘이 주신 것이다.”라고 하고 절한 다음 받았다.
삼국사기 권제14 고구려본기 제2 대무신왕 4년 12월 첫번째기사

고구려는 금새(金璽)를 하늘에서 받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동양 세계에서 새(璽)라는 단어는 원래 오직 황제의 옥새에만 사용할 수 있었으며 제후는 인(印)을 사용해야 했다. 물론 제후의 의미가 비중화 주변국으로 확장된 뒤로는 그런 거 없고 개나소나 (대중외교 문서를 제외한) 모든 문서에 옥새를 쾅쾅 찍어대긴 했다. 심지어 류큐(...)조차 금인은 구석에 처박아두고 옥새를 마구 휘둘러 썼으니 별 의미 없는 규정.

그런데 고구려의 금새가 여타 제후국의 옥새와 차별화되어 중요한 것은, 고구려는 중원왕조에게 도장을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제후국들은 중국에 보내는 문서에만 중국이 준 도장을 찍고 자기들의 문서엔 자기들의 옥새를 찍었다면, 고구려는 중국에 보내는 문서에도 자신들의 금새를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의 고구려와 중국 왕조들의 관계를 본다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고구려의 금새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아서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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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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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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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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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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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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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계 국가 중에서는 통일 중국과 총력전을 벌여 승리한 유일한 국가이다.[68] 심지어 수나라는 그 패배가 멸망의 원인 중 하나가 되어 고구려의 기억은 이후 천 여년이나 동아시아 문명에서 한국의 국력을 고평가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69][70]

9. 국력

72년(484) 겨울 10월에 사신을 위(魏)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그때 위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강하다고 생각하여, 여러 나라 사신의 숙소를 두는데, 제(齊)나라 사신을 첫 번째로, 우리 사신을 그 다음으로 두었다.
《삼국사기》 18권 〈고구려 본기〉 장수왕

영명 7년[71] 에 평남참군 안유명과 용종복사 유사효가 위나라에 사신으로 갔더니 원회에서 고려(고구려) 사신과 나란히 앉게 하였다. 이에 안유명이 위나라 주객랑 배숙명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중국 임금의 명을 받고 그대 나라에 왔소. 천하에 우리나라와 겨룰 수 있는 나라는 오직 위나라(북위)뿐이거늘…(중략)… 하물며 동이의 조그만 맥국(고구려)은 우리의 신하인데 어찌 감히 우리랑 나란히 선단 말이오'

유사효 역시 위나라 남부상서 이사충에게 '우리는 위나라에 이런 적이 없었소.'라고 하자 사충이 답하였다.

'정사와 부사 모두 전 위에 오르지 못했을 뿐이지 이 자리도 충분히 높은 자리이니 이 정도도 족히 갚음이 될 것이오'[72]
《남제서(南齊書)》 〈동남이열전〉 고구려.

정시 연간[73]에 세종[74] 이 동쪽 당사에서 고구려의 사신 예실불을 인견하니, 실불이 말하였다.

'고려는 하늘과 같은 정성으로…(중략)… 황금은 부여에서 나고, 가[75]는 섭라[76]에서 생산됩니다. 이제 부여는 물길에게 쫓겨났고 섭라는 백제에게 합병되었는데…(중략)…지금 두 가지 물건을 올리지 못하는 것은 사실 두 도적들 때문입니다.'

하자, 세종이 말하였다.

“고려가 대대로 상장(上將)의 직함을 가지고 해외를 마음대로 제어하여 교활한 오랑캐인 9이(九夷)를 모두 정벌하여 왔소, 술병이 비는 것은 술동이의 부끄러움이라고 하니 그것이 누구의 허물이겠소? …(중략)…위압과 회유의 방략을 다하여 못된 무리들을 멸망시키고 동방의 백성들을 편안케 하여, 두 읍을 옛 터로 돌아가게 하고 그 지방의 토산물을 항상 바치는 공물에서 빠짐이 없게 하오.”[77]
《위서》 〈열전〉 고구려
15만 군대가 내달리고 깃발이 30리에 뻗쳤다.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닿은 것이 누런 뱀이 흙먼지를 토하듯 하였고 기병들이 들판을 뒤덮은 것이 마치 붉은 개미떼와 같았다(有徒十五萬, 連旗三十里. 烟火稽天, 若黄虵之吐霧. 彀騎横野, 邁赤蟻之爲羣)[78]
《전당문》

초기의 고구려는 작은 나라였다. 졸본의 성읍 국가였으며, 4세기까지만 해도 한반도 북부와 남만주 일대의 유력 세력에 불과했다. 하지만 미천왕, 소수림왕, 광개토대왕, 장수왕 등 연이은 명군들의 치세를 거치면서 한강 유역을 포함한 한반도 중·북부과 요동, 만주를 아우르는 강력한 대국으로 성장했다.

전성기의 고구려는 백제를 정벌하여 멸망에 준하는 피해를 입히는 한편 백제, 가야, 왜 연합군으로부터 신라를 구원하여 신라를 사실상 속국으로 삼았다. 북으로는 동만주, 연해주 일대의 말갈 세력 대부분과 요서, 내몽골 일대의 거란 세력 일부를 복속시켜 고구려의 세력권에 편입시켰다. 요동을 차지한 후에는 중국 왕조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된다.

이 시기 고구려는 아시아 전역을 범위로 잡아도 그 존재감이 뚜렷할 만큼 위상이 높았고 강대국으로 군림하였다. 명실상부 자타가 공인하는 한반도와 요동, 만주 지방의 지역 패권국이었다. 그러나 동아시아 최강국이었던 중국 통일 왕조들의 침략을 70여 년 가량 막아내면서 국력은 지속적으로 소모되었고[79], 진흥왕 이후 급성장해 백제를 밀어내고 고구려와 한반도 패권을 두고 경쟁하게 될 신라와의 외교에 실패함과 동시에 군사 면에서도 신라 방면으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660년의 백제 멸망과 663년 백제부흥운동의 좌절로 인해 양면전선의 불리함이 가중되었으며, 여기에 연개소문 사후 그 아들들의 분열이 겹치면서 정치적 소요 사태가 크게 발생했으며 결국 당나라, 신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다.
  • 생산력
건국 직후 고구려는 인구 3~6만호 남짓한 현도군의 변방, 압록강 상류의 험준한 산지에서 인구를 부양하며 국력을 어렵사리 키워나가는 판국이었다.[80] 그러다가 초기에는 간도를 차지하고 송화강과 요하 일대에 있는 동북 평원과 평안도, 황해도 등의 비옥한 땅을 석권하면서 전성기에 접어들고 높은 생산력을 갖추게 되었고 멸망 당시에는 대전을 치르고도 70만호를 남기는 여력이 구당서신당서에 기록되어 있다. 동시대 남조 대다수의 국가의 집계 인구가 50~90만호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수준의 체급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고구려가 얼마나 건실하게 국력을 길러왔고 또 그것을 철저하게 관리해왔는지 알 수 있다. [81]
  • 군사력
고구려 초기에는 20,000~30,000명의 침공병력조차 버거워서 나라가 휘청였지만 중반기 이후에는 이 정도의 병력은 오히려 고구려가 외지에 여유롭게 투사할 수 있는 병력이 되었다. 또한 일거에 수십만 대군을 동원하고 야전에 투입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체급 면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전성기에 접어들면서 대외적으로 백제와 가야를 굴복시키고 신라를 복속했고 중국으로부터도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패권을 인정받았으며 나아가 만주와 내몽골, 연해주 일대에 말갈, 거란, 실위 등을 두고 요긴하게 활용하거나 공존하고 혹은 그들에게 강력한 패권을 행사하여[82] 일부는 멸망 때까지 고구려와 운명을 같이하고 발해 건국의 초석이 되기도 했다. 후대에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를 생각한다면 이들을 통제한 고구려의 저력이 상당했음을 방증한다. 하지만 이중/삼중 전선의 문제 역시 해결되지 않았기에 고구려는 끝내 백제나 신라를 완전 병탄하여 자력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이룩할 수는 없었다.
  • 국제적 위상
초창기 중국의 대 고구려 외교 및 무력 투사는 군현의 태수, 일개 주의 자사 선에서 정리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6세기 이후에는 황제를 위시한 중앙 관료들이 직접 나설 뿐 아니라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중원의 물자와 인력을 총동원해야 할 정도의 상대가 되었다.[83] 고구려 자신은 유목민족 세력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중국의 북쪽 및 북동쪽 유목민족 전반에 대해 강한 지배력을 행사했으며, 대륙 세력들이 치고받는 중심지에서 살짝 비껴난 입지와 착실히 쌓아온 전적까지 더해져서 상당한 대접을 받았다. 특히 고구려의 국왕은 중국 황실에게 동이교위라는 관작을 받았는데, 이는 중국이 고구려 국왕을 동이 지역의 최고 패권국 수장임을 공인한 것이다. 유연, 남조를 쥐어패는 데는 망설임이 없던 탁발선비의 북위는 고구려에게 압박이나 도발을 받고도 대결을 피했고 오히려 남조와 동등한 의전으로 달랬으며 백제나 탐라(신라), 말갈, 거란 등에 대한 패권을 인정하기도 했다. 북제와 북주, 유연을 굴복시킨 돌궐 제1제국을 상대로는 고구려가 승리하여 이웃 국가로서 대등하게 병존하였다. 그 돌궐을 무너뜨린 수나라는 이러한 병존적인 질서를 뒤엎고 새로이 판을 짜다가 고구려를 상대로 수백만의 대군을 쏟아넣는 등 국력을 고갈하여 멸망하였다. 당나라 역시 고구려가 실질적으로는 신하국이 아님을 자각하고, 중화사상을 배제한 대우를 논의하기도 하였으며 고구려를 상대하다 나라가 휘청였고, 가까스로 멸망시킨 후에도 이를 건사하지 못하고 국방력의 고갈이 현저해진다.[84] 중국에서도 고구려의 인상은 그 뒤로도 깊게 남아있어서 여몽전쟁 당시 몽골 제국쿠빌라이고려가 항복하자 당태종도 어찌하지 못한 나라의 항복을 받아냈다며 기뻐했고[85][86][87] 조선 초기에 조준을지문덕살수대첩으로 시를 써놓자 명나라 사신이 굴욕을 느낀 적이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명나라에 지원 요청을 하니 명나라 조정에서는 고구려의 후예들이 20여 일 만에 수도를 뺏기고 의주까지 도망쳤을 리가 없다며 진상조사단을 파견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렇듯 고구려는 당시 동아시아의 기준에서, 국지적인 패권을 넘어 동아시아적인 영향력을 끼칠 힘이 있던 나라였다. 고구려의 영향력은 동쪽으로 몽골 사막, 연개소문 시대에는 북경 유역에 이르렀고, 남쪽으로는 신라, 백제, 가야, 왜까지 공포에 떨게 했으며, 북쪽으로는 훗날 유목제국으로 발전해 중국사의 절반을 차지해 버리는 거란, 실위, 말갈 등을 자기 뜻대로 통제했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하다가 멸망하는 전례를 똑똑히 봤음에도 당나라가 건국 직후 고구려를 공격하는 데에 국력을 쏟아부은 것은, 여론이나 역사적 교훈의 중요성보다 고구려의 영향력에 의한 위험성이 더 컸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이나 고려 등 이후 왕조들이 북방 유목민족들에게서 강역을 사수하는 데에 전념해야 했던 것과 달리, 고구려는 그들을 직접적으로 복속하고 통제했으며 심지어 전쟁에서 자기 군대로 동원하기도 했을 정도였으니[88] 그 수준의 차이는 가볍지 않다. 이후의 왕조 가운데 군사적으로 가장 고평가받는 고려조차도 거란을 상대로 고전하는가 하면, 고구려에게는 영토의 오차범위 수준에 불과한 함경도에 17만 대군을 동원하여 공격하고도 끝내 정복을 이루지 못했다. 조선은 초기 강군을 거느렸던 시기에는 함경도 지역을 점령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결국 이후 고구려의 속국이던 말갈의 후예인 여진족의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했다. 21세기의 대한민국 역시 전 세계적으로 보면 대단한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등하게 겨루기는커녕 최빈국으로 추락한 북한 하나를 뜻대로 통제하지 못한다.[89]중원 왕조와 대등하게 겨룰 정도의 패권을 잡았던 고구려의 저력은 세계적 기준으로도 엄청났던 것이다.

만주를 기원으로 제국을 세워 중국을 위협한 민족이 대부분 유목제국이었던 데 반해 고구려는 유목제국이 아니었고 훗날 유목제국을 세우게 되는 만주의 유목민들을 통제했다는 점에서 고구려의 이질성이 두드러진다. 이는 고구려의 선대였던 고조선, 부여에도 나타나는 현상이었는데 만주 일대에서 중원의 경계를 살 정도로 세력을 떨친 비유목민 세력은 주로 예맥계였다. 고조선도 전성기에 요녕성을 중심으로 중원의 경계를 사 전한에게 멸망당했으며 전한은 고조선을 "흉노의 왼팔"이라 부르는 등 북방 유목민과 합세해 중원 왕조를 견제하는 선례를 보여주었고 동만주 일대를 중심으로 한 부여는 사서에서 중원 왕조가 각별히 신경 쓸 정도의 국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고구려가 강성해질 때까지 만주 일대에서 유목제국이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부여도 상당한 수준의 유목민 통제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요동과 만주의 예맥계가 유목민들에게 흡수된 중세시대 예맥계를 대신해 만주의 패자로 떠오른 유목제국(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은 차라리 예맥계가 나았다 싶을 정도로 중원 왕조에 예맥계보다 더한 악몽을 선사했다. 중원 왕조의 입장에서 예맥계는 동방의 성가신 적이었지만, 동시에 유목민 노이로제로부터 중원을 보호하는 브레이크이기도 했던 셈.

10. 지리

10.1. 영역과 행정구역

파일:천재 고구려.png
파일:비상 고구려 강역.png
전성기 고구려의 강역을 나타내는 검정 역사 교과서의 지도들.
천재교육 역사 교과서의 고구려 영토 지도(좌), 비상 역사 교과서의 고구려 영토 지도(우).

고구려의 영토는 수도와 지방을 각각 5부로 나눴다.[90] 수도 5부의 경우, 고구려의 주요 부족집단이었던 5부(계루부, 연노부, 절노부, 관노부, 순노부)가 고국천왕에 의해 행정구역인 5부로 정리된 것으로, 각각 방위의 이름(동, 서, 남, 북, 중)을 가졌다. 지방 5부의 경우 욕살(褥薩, 지방관)이라고 하는 대표를 두어 다스렸다. 부의 아래에는 대성(大城), 중성(中城), 소성(小城)을 두었는데, 각 성을 다스리는 처려근지(處閭近支, 중국식으로는 '도사')를 두어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했다. 욕살과 처려근지는 모두 어떤 관직을 뜻하는 순우리말(고대 한국어, 고구려어)을 한자를 빌려 표기한 것으로, 원음은 알 수 없다.

고구려는 4세기 이전까지는 압록강 북부~함경도에 걸쳐 있던 소국이었으나, 미천왕을 시작으로 광개토대왕, 그리고 장수왕문자명왕 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중국 군현의 터를 몰아내면서 한반도 북부 전역을 지배하고, 서쪽으로는 요동을 차지하고 요하를 건넜으며 남쪽으로는 한강을 포함한 한반도 중부 지방까지 정복했고, 북쪽으로는 송화강 유역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그 대략적인 기록은 다음과 같다.
十四年 冬十月 侵樂浪郡 虜獲男女二千餘口
재위 14년 10월, 낙랑군을 공격하여 남녀 2,000명을 사로잡았다.
十六年 春二月 攻破玄菟城 殺獲甚衆
재위 16년 2월, 현도성을 함락시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사로잡았다.
《삼국사기》 제17권 〈고구려 본기〉 제5(미천왕)
冬十月 攻陷百濟關彌城 其城四面峭絶 海水環繞 太王分軍七道 攻擊二十日 乃拔
(재위 원년) 10월, 백제 관미성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관미성은 사방이 절벽으로 되어 있고 바다로 둘러싸였는데, 태왕이 군대를 일곱 방면으로 나누어 20일만에 빼앗았다.
十一年, 太王遣兵攻宿軍 燕平州刺史慕容歸 棄城走
재위 11년 태왕이 병사로 하여금 숙군을 치게 했다. 연나라의 평주 자사인 모용귀가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삼국사기》 제18권 〈고구려 본기〉 제6(광개토대왕)
九月 太王帥兵三萬 侵百濟 陷王所都漢城 殺其王扶餘慶 虜男女八千而歸
(재위 63년) 9월, 태왕이 친히 군사 30,000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공격해 수도 한성을 함락시켰다. 부여경(개로왕)을 죽이고 남녀 8,000명을 사로잡아 귀환했다.
《삼국사기》 제18권 〈고구려 본기〉 제6(장수왕)

장수왕에서 문자명왕 대에 고구려는 남으로는 평택 아산만에서 경상북도 일부, 북쪽으로는 북부여에 이르는 영토를 손에 넣고 일대의 말갈 및 실위를, 동쪽으로는 책성을 중심 거점으로 말갈을 지배했고 서쪽으로는 요하를 건넜다. 이 밖에 고구려계 왕족인 고운이 북연의 천왕이 되었고, 변경의 말갈, 두막루와 실위를 군사적 영향권 아래 두었다. 백제는 한성이 함락되자 웅진성으로 수도를 옮겼으며, 신라는 의 침략에 시달려 광개토대왕의 지원군을 받는 등, 고구려는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거듭났다. 이러한 정세는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고구려 원정을 시도하기까지 계속된다. 이와 관련한 고고학적 증거로는 지안의 광개토대왕릉비, 충주의 충주 고구려비, 신라 호우총 등이 있다.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에 이르고, 서북쪽으로 요수를 건너 영주에 이르며,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서 백제에 이르고, 북쪽으로 말갈에 이른다. 동서 3,100리이며, 남북 2,000리이다."
구당서
其地後漢時方二千里. 至魏南北漸狹, 纔千餘里. 至隋漸大, 東西六千里.
후한 때에 사방 2,000여 리였다. 대에 이래로 남북이 점점 축소되어 겨우 1,000여 리였으며, 수대 이래로 동서 6,000여 리로 확대되었다.
《통전》 제186권 〈변방〉 2
파일:goguryeo_seong.jpg
고구려의 주요 도성.

고구려는 전성기 이래로 서쪽 국경선은 요하~송화강 선을 국경으로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거란, 말갈, 실위, 지두우 등을 복속시키거나 군사적인 영향권 안에 두고 중원 세력과 요서의 지배권을 다투면서 동몽골, 북만주, 요서 등지의 진출을 단행하였다. 또한 남쪽 국경선은 임진강 및 남한강 줄기를 따라 백제, 신라와 대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강 유역, 삼각형 모양의 자연절벽 위에 자리한 고구려 서남쪽 국경요새들(영상) 그러나 사료의 부족으로 지리를 상고하기 힘들고, 이탈과 복속이 일정치 않아서 구체적인 비정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파일:이인철 고구려의 부여와 말갈 통합 지도.png
한국 역사 교과서(이인철)의 고구려 지도
말갈 영역 상당 부분을 고구려 영토에 포함시킨 지도이다.[91]

고구려의 강역은 성곽을 깔아놓고 조밀하게 통치하는 구역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드문드문 거점을 두고 통치하는 구역, 세력들의 복속을 통한 간접지배를 통해 통치되는 구역도 있다. 이에 대한 해석에 따라 상이한 강역 비정이 나오곤 하는데 이 지도는 후기 부여, 말갈이 위치한 연해주와 동북만주 일대에만 신경을 썼지만 흥안령, 동몽골, 요서 등 다른 지역에도 비슷하게 견해 차이로 강역 비정이 달라지곤 한다.
파일:천리장성.jpeg-231.jpg

고구려의 천리장성 위치만 보더라도 요하강이 있는 곳에 쌓았다는 점. 송화강쪽에는 장성을 쌓지 않았다. 요하강과 송화강 사이에 강이 없는데 결정적으로 거란이 이쪽으로 우회해 쳐들어와 발해가 함락되었다. 4군 6진의 압록강과 두만강처럼 방어하기는 좋지만 국경이 넓어져 여러 문제가 생긴다. 이를 다 해결한다고 해도 후에 만주족(후금)이 청나라까지 세우게 되어 요동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당대 지도부들도 어쩔 수 없이 이를 포기하고 압록강과 두만강 사이에서 한반도만 지키기로 결정했었다는 것. 진시황때 부터 쌓은 만리장성 조차도 북방유목민족이 넘어와 매번 침략을 당했으니.

차지했던 남만주 지역은 산지 비율이 많다. 그렇기에 사람이 살기 어렵다. 북만주나 요동쪽이 평야 비율이 많다.#
파일:조선력사 고구려 (1960년대).png
파일:조선력사_고구려.jpg
북한 역사 교과서 《조선력사》에 나타난 고구려 강역.
왼쪽은 1960년대, 오른쪽은 비교적 최근의 것이다.

한편, 북한의 경우 당국의 정책에 따라 역사관이 변화하였다. 서울특별시를 아직 명목상의 수도로 정하고 있던 1960년대의 북한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가 그렇듯 유물론적 역사관을 채용하여 고대 노예제 국가에 불과한 고구려를 크게 평가하지 않았고, 영토 비정에서도 사료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사항외의 추측은 자제하는 것이 관찰된다. 그러나 김일성이 1인 독재 체제를 완전히 굳히고 휴전이 장기화된 70년대 이후 북한에서는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고조선이나 고구려의 존재를 부각시킴으로써 역사적, 민족주의적 정통성을 제고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한 예로 단군 신화가 미신에 불과하다고 여기던 것에서 단군릉을 피라미드 형태로 개축하고 실존 인물임을 인정한 점 등이 있다. 최근의 역사 교과서에서 북한은 "고구려가 차지한 령역은 서북-내몽골 동부, 북-흑룡강 남쪽 류역, 동북-우쑤리강 류역을 넘어 흑룡강 하류, 남-아산만으로부터 청하계선에 이르게 되였다. 즉 동족의 나라 전 령토의 90%를 차지하였다."고 서술하며, 말갈, 거란, 실위 등 북방 민족을 고구려의 영역으로 통합시켜 매우 방대한 영토를 가진 것으로 해석한다. #

아래 표는 《삼국사기》 권37, 지리지#에서 확인가능한 압록강 이북의 고구려 시대의 성이다.
명칭 명칭 비고
[ruby(助利, ruby=조리)][ruby(非西, ruby=비서)] [ruby(北, ruby=북)][ruby(扶餘, ruby=부여)][ruby(城, 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안동도호부 북부여성주(北扶餘城州)?
[ruby(蕪子, ruby=무자)][ruby(忽, ruby=홀)] [ruby(節, ruby=절)][ruby(城, 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ruby(肖巴, ruby=초파)][ruby(忽, ruby=홀)] [ruby(豊夫, ruby=풍부)][ruby(城, 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ruby(仇次, ruby=구차)][ruby(忽, ruby=홀)] [ruby(新, ruby=신)][ruby(城, ruby=성)]/[ruby(敦, ruby=돈)][ruby(城, 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안동도호부 신성주(新城州)도독부
[ruby(波尸, ruby=파시)][ruby(忽, ruby=홀)] [ruby(桃, ruby=도)][ruby(城, 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ruby(非, ruby=비)][ruby(達, ruby=달)][ruby(忽, ruby=홀)] [ruby(大豆, ruby=대두)][ruby(山, ruby=산)][ruby(城, 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ruby(烏列, ruby=오열)][ruby(忽, ruby=홀)] [ruby(遼, ruby=요)][ruby(東, ruby=동)][ruby(城, 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안동도호부성주(遼城州)도독부
屋옥城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안동도호부 옥성주(屋城州)
[ruby(白, ruby=백)][ruby(石, ruby=석)][ruby(城, ruby=성)] 백암성(白岩城)?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ruby(多, ruby=다)][ruby(伐, ruby=벌)][ruby(嶽, ruby=악)][ruby(城, 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안동도호부 다벌악주(多伐嶽州)?
[ruby(安十, ruby=안십)][ruby(忽, ruby=홀)]/[ruby(安寸, ruby=안촌)][ruby(忽, ruby=홀)] [ruby(安市, ruby=안시)][ruby(城, ruby=성)]/[ruby(丸, ruby=환)][ruby(都, ruby=도)][ruby(城, ruby=성)] 끝까지 항복 안 한 11성 중 한 곳
안동도호부 안시주(安市州)
양암성 안동도호부 창암주
목저성 안동도호부 목저주
수구성
남소성 안동도호부 남소주
감물이홀 감물주성 안동도호부 가물주도독부
능전곡성
거시압 심악성
불내 國국內내城성/위나암성 안동도호부 국내주(國內州)
초리파리홀설부루성
골시압후악성
자목성
내물홀연성
면악성
개서압홀아악성
감미홀취악성
적리홀적리성안동도호부 적리주
소시홀목은성
가시달홀이산성
甲갑忽홀 穴혈城성 뚫은 3성 중 1곳
折忽절홀 銀은城성 뚫은 3성 중 1곳
소시홀 사성 뚫은 3성 중 1곳

안동도호부는 9도독부+42개 주=51개 주[92]로 구성되어 있지만 32개만 확인되는데, 압록강 이북으로 서술을 한정한 영향으로 보인다. 나머지 19개 주는 확실하지 않지만 압록강 이남 한사군의 현을 그대로 계승했을 가능성이 있다[93]. 또한 발해의 행정구역으로도 족보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1. 외교

파일:고구려 군기.svg 고구려의 대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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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멸망과 유민

중원 왕조들과의 피비린내 나는 국가간 총력전부터 시작해서 이남의 신라와 전선을 수십년간 맞대었던 고구려는 멸망 시점인 668년에 인구가 69만 7천여 호(戶)로 급감하게 된다.[94] 그 상태에서 고구려 유민들은 주로 신라, 발해, 등으로 뿔뿔히 흩어졌으며 고토에 잔류하거나 을 탈출해 발해에 합류한 유민들은 훗날 발해 유민의 형태로 고려, 요나라, 금나라 등에 편입되기에 이른다. 더러는 말갈, 돌궐, 왜국 등으로 도피하였지만 수는 위의 세 부류[95]에 비하면 얼마되지 않았다. 이렇듯, 고구려 유민들의 거취는 대규모 망명, 강제 이주, 부흥운동의 여파로 여러 국가에 걸쳐져 있었다.[96][97] 타향으로 끌려가거나 객지에 머물게 된 고구려 유민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구려인으로서의 의식이 희석돼 현지 사회에 동화되는 양상이었다. 그렇기에 최종적으로 고구려의 적통을 잇게 된 건 고구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끝까지 보존해 종국에는 고려를 건국한 신라 내의 일파들이다.[98] 이들은 동족인 발해인들의 합류에 힘입어 백제인, 신라인과 더불어 한민족(韓民族)의 원류(原類)를 구성하는 세 축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나아가 통일신라가 실패했던 세분화된 종족 정체성의 통합을 이루어내게 된다.[99]
  • 신라 고려
첫째로는 신라에 흡수된 일파이다. 신라가 영역화해서 그대로 편입된 인구[100], 멸망 직전 연정토가 바친 고구려 남부의 12성 700호의 주민 3,543명[101], 안승을 따라 신라로 남하해 귀부한 4천여 호[102], 고구려부흥운동 세력[103]의 대다수와 이들하고 연계한 고구려의 반당(反唐) 백성들, 그리고 당나라 영주에서 탈주한 고구려 유민 가운데 발해에 합류하지 않고 패서에 정착한 고구려 유민[104]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렇듯 진흥왕 대부터 고구려 멸망 직후인 검모잠안승고구려부흥운동 시기까지 신라에 편입된 고구려인들의 규모는 무시못할 정도로 거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105][106] 고구려가 멸망하기 직전에 신라가 무탈하게 차지해서 편입시킨 한성(漢城) 일대[107]와 패서(浿西) 지역[108]은 고구려의 심장부이자 내지(內地)로 일컬어지는 인구 밀집지였다. 이러한 이상적인 조건 때문에 고구려 멸망 이후 남부의 부흥운동 세력[109]이 한성과 패서 일대를 근거지로 삼았고, 먼 훗날에는 고구려 유민 출신의 패서 호족들이 태동할 수 있었다. 당나라의 직접 통치를 피해 달아난 반당(反唐) 성향의 고구려인들[110][111], 고구려 부흥운동의 잔당 세력[112], 당나라에서 이탈해 신라로 탈출한 무리들[113]까지 합세하면서 임진강 일대와 그 이북은 사실상 고구려 유민들을 주류로 하는 반자치적인 보금자리 혹은 엔클레이브로 남게된다.[114][115] 한편, 안승고연무를 위시로 한 고구려 부흥운동 세력의 한 일파는 구 백제의 수도권 지역인 금마저보덕국을 세우면서 존속하다가 신문왕에 의해 서라벌과 남쪽 변방[116] 등으로 철저하게 사민당한 탓에 고구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만다.[117] 상술한 두 부류의 고구려 유민들에 비하면 존재감은 낮지만 영동의 고구려계 유민들도 신라에 편입되면서 존속하다가 훗날 고구려계 호족들이 세운 고려에 합류하였다.[118] 종합해보면, 신라에 흡수된 고구려인들 중 보덕국을 구성했던 이들과 전쟁 포로로서 서라벌로 사민된 이들[119] 외의 대다수는 현재의 임진강과 그 이북인 패서 지역에서 통일신라의 구성원으로 살다가 몇백년 뒤 신라가 흔들릴 때 일어나서 후고구려(태봉)를 세웠다. 그리고 이는 최종적으로 왕건[120]이 세운 고려로 이어지게 된다. 발해가 멸망한 뒤로 고구려의 적통은 사실상 신라에 편입되어 훗날 고려를 건국한 고구려 유민들에 의해서 계승된다.[121][122][123] 이러한 계승 의식은 훗날 직계 후손인 한민족에게로 이어져 고구려가 국내외에서 온전히 한국사로 인정받는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124][125][126]
  • 발해 거란고려 금나라
둘째로는 발해 건국과 함께 발해인이 된 사람들이다. 다만 발해는 고구려 멸망 이후 30년 뒤에 건국되었고, 발해 건국의 주체들은 한때 당나라 내지로 끌려갔던 고구려 유민들이었다. 고구려를 멸망시켰음에도 결과적으로 당은 서쪽 토번의 위협으로 옛 고구려의 땅인 요동을 계속 장악하는 것에 실패했고, 영주에 사민된 고구려 유민들은 말갈족[127]과 함께 탈출, 동쪽으로 이동해 동만주 일대에 발해를 건국한다. 이후 발해가 초기 영역을 중심으로 확장하면서 요동과 동만주 일대에 머물러 있던 옛 고구려 유민들을 흡수하고 주변 말갈족들을 복속하였다. 그러나 발해는 926년 거란의 침공으로 멸망하게 되는데, 이때 발해인들은 보통 세 갈래로 또다시 갈라져서 운명을 달리하게 된다. 자신들을 정복한 새로운 열강인 요나라에 귀속된 부류, 한반도의 후삼국을 통일한 남방의 또다른 고구려계 왕조인 고려에 대규모로 이주한 부류, 발해 고토에 잔류해 요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금나라 건국 이후 말갈의 후신인 여진족에 동화된 부류가 그것이다. 요나라나 금나라에 복속된 발해 유민들은 성향에 따라서 정체성을 유지한 쪽[128]거란족 혹은 여진족에 협조하면서 동화된 쪽[129][130]으로 또 나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발해인들의 지속적인 저항이 꾸준히 일어나 내부에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다만 발해인들이 해당 나라 내에서 전체 인구의 한 축을 담당하고 한인(漢人)들과 더불어 선진 문물의 전수를 통해 요나라의 사회문화적 발전을 주도한 점은 특기할만 한 점이다. 이들의 대다수는 최종적으로 여진족이나 거란족, 그리고 한족 집단으로의 동화를 거치면서 궁극적으로는 융화된다. 한편, 고려에 투화한 발해 유민들은 요나라나 금나라에 복속된 발해인들과는 달리 같은 고구려계로서의 동질감과 고려 태조 대부터 지속적이고 일관된 포용 정책 덕분에 쉽고 빠르게 고려 사회에 적응하였다.[131][132] 규모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던 발해 유민들의 수[133][134][135]에도 불구하고 신라계나 백제계처럼 부흥을 명분으로 한 봉기가 일어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고려 내의 발해인들이 일찍이 주류로 편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136] 이는 툭하면 현지의 거란족이나 여진족과 갈등을 빚었던 요나라, 금나라의 발해인들과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일각에서는 고려의 후삼국 통일의 원동력으로 발해 유민들을 꼽기도 하는데, 수뇌부의 다수가 전사하고 왕건 본인이 겨우 목숨만 건져서 돌아온 공산 전투의 궤멸적인 피해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태세를 정비할 수 있었음에는 고려에 유입된 압도적인 수의 발해 유민이라는 인적 자원이 있었다는 것이다.[137] 고려에 정착한 발해인들은 주로 북진 정책의 일환으로 다시금 개척된 북방 지역[138]과 패서 지역[139]에 정착했으며 일부는 남쪽 영토[140]에도 대거 자리잡아 훗날 한민족의 원류에 흡수, 현대 한국인들의 조상이 된다.[141][142][143]
  • 당나라
셋째로는 당나라 내부로 옮겨진 인구 중 발해에 합류하지 않은 집단으로, 연개소문의 아들들 및 연비 등 그 후손들, 그리고 당나라 군인으로 활동한 고선지이정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당나라는 나당전쟁으로 갈라선 신라의 삼국통일을 인정하지 않아 725년 당현종의 태산 봉선의식 때까지도 고구려와 백제의 구 왕족을 '고려조선왕'과 '백제대방왕'으로 형식상 존치시켜 당나라 경사(장안)에 거주시키는 등 내신지번으로 삼아 이용했다. 이들은 당에서 대를 거듭하고 8~9세기를 거치면서 당나라 사회에 동화, 중국인 집단으로 스며들었다.[144] 당 내지로 끌려간 고구려인들의 수[145][146]가 수인만큼 당시 고구려인들의 존재는 당 내에서 상당한 파급력을 낳았다. 당나라의 내지 각지로 이주된 고구려 유민들은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데 이용되거나 빈 땅을 채워 주민 사회를 형성하는데 기여한 바가 있어 당나라 황실에서조차 높이 평가했을 정도였다. 당장 고선지나 이정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이들은 당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당의 팽창과 발전에 기여했고, 반대로 자치적인 항거 세력을 구축해 당 조정에 도전하기도 하였으며, 더러는 걸걸중상이나 대조영처럼 상당수가 당에서 이탈해 발해, 신라, 말갈 등에 투화하였다. 그러나 탈주하지 못하고 당나라 내지에 잔류한 고구려 유민 다수는 타국의 피지배층이 된 이민족으로서의 궁핍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147] 당장 당나라 조정에 입신양명한 몇 안되는 고구려 유민 출신의 신하였던 왕모중도 처음에는 노비였다. 궁극적으로 당나라 내지의 고구려 유민들은 신라발해에 편입되었던 고구려인들과 달리 고구려인으로서의, 나아가 고구려의 유예(流裔)로서 최소한의 자각조차 없는 채로 한족에 서서히 동화되었다.
  • 잔류 고구려인
넷째로는 요동평양, 평안도 지역에 계속 남은 집단인데 여기는 본래 황해도/평안남도와 함께 고구려의 삼경(三京)[148]을 이루는 핵심 지역[149] 중 하나였지만 수나라-당나라고구려 부흥군, 신라군이 얽히고 설킨 오랜 전쟁과 혼란으로, 《신당서》에 의하면 나당전쟁까지 끝난 시점의 요동에는 늙고 빈곤한 자만 남겨두고(弱窶者留安東), 나머지는 당나라 내지로 가능한 이주시킨 것으로 되어 있어 이 지역의 고구려계 유민 사회는 크게 위축되었으며, 특히 수도였던 평양성은 황폐화되었다.[150] 당나라로 강제이주 조치된 요동의 유력 민호들은 당나라의 관할에 들어간 항복한 11개의 성(城)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요동과 압록강 이북의 안시성, 요동성, 오골성, 신성 등 항복하지 않은 성(城) 11곳은 고구려부흥운동이 실패한 시점에서 신라에 귀부하거나 당나라에 의해 점거당했을 때 말갈 등으로 탈출하기도 하였다.[151] 요동과 평양성의 고구려 유민들은 거주 인구가 없지는 않았지만 훗날 고려가 복원하기 전까지 비중은 다소 떨어진다. 평안도 일대의 고구려인들은 고려 왕조에 의해 수복되어 한국인의 원류에 합류하였지만 발해 멸망 당시 고려에 귀부하지 않았던 요동의 잔류 고구려계들은 이민족 치하를 거치며 만주, 중국인 집단에 동화되었다.[152]
  • 북방 초원
다섯째로는 몽골 고원 방면 북방 유목민 사회인 돌궐 제국으로 유입된 집단으로 고문간, 고공의 등이 이끌던 집단이 이에 해당한다. 고구려의 강토에서 먼 만큼 그 인구 비중이 낮은 것으로 보이겠지만 후일 고문간과 고공의 모두가 돌궐의 혼란을 틈타 당나라에 망명할 때 규모가 모두 합해서 만여장(萬餘帳)[153]에 달했음을 보면 적어도 일본으로 이주한 무리보다는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는 돌궐 등의 초원 일대에서 생활하다가 당나라 측에 망명한 고구려 유민의 수만 합산한 경우이기 때문에 당나라에 귀부하지 않고 북방 유목민 사회에 잔류한 고구려인들도 상당수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당나라에 망명한 부류와 돌궐 등 북방 유목사회에 잔류한 부류 모두 현지에 동화되어 고구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몽골 고원 방면으로 이주한 고구려 유민들은 대다수가 고구려의 내지(內地)나 핵심 거점 출신이 아닌 지리적으로 북방과 인접한 북만주 일대 성읍들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장 압록강 이북에 위치한 고구려의 주요 성읍 32곳 가운데 내미홀성(乃勿忽城)처럼 도망한 성읍이 7곳이나 되었으니 상술했다시피 몽골 등지로 이주한 고구려 유민들은 이들 도망한 성읍들을 출신으로 두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왜국
여섯째는 일본으로 이주해 간 집단으로, 《신찬성씨록》에서 52개의 고구려계 씨족이 확인된다. 대부분은 일본인에 동화됐지만 코마 후미야스처럼 일부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154][155] 고마 신사 등이 일본에 귀부한 고구려 유민의 흔적이다. 다만 지리적 여건도 여건이지만 당시의 시대적인 정황상 위아래로 나당 연합군에게 공격당하는 고구려의 상황 때문에 일본으로 이주한 고구려인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멸망을 전후로 적지 않은 수의 백제인[156]과 가야인[157]이 왜국으로 피신했을 때의 규모와 비교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다.

13. 역사귀속과 계승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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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관련 사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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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후비전(后妃傳)」
무선황후 · 문소황후 · 문덕황후 · 명도황후 · 명원황후
6권 「동이원유전(董二袁劉傳)」 7권 「여포장홍전(呂布臧洪傳)」 8권 「이공손도사장전(二公孫陶四張傳)」
동탁 ,이각 곽사 마등 한수,
원소 ,저수 전풍 원담 원희 원상, · 원술
유표 ,유종 부손 괴월 한숭 채모,
여포 ,장막 진궁 진등, · 장홍 공손찬 ,유우, · 도겸 · 장양
공손도 ,공손연,
장연 · 장수 · 장로
9권 「제하후조전(諸夏侯曹傳)」 10권 「순욱순유가후전(荀彧荀攸賈詡傳)」
하후돈 ,하후무 한호 사환, · 하후연 ,하후패, · 조인 ,조순, · 조홍 · 조휴 ,조조(肇),
조진 ,조상 이승 환범 하안, · 하후상 ,하후현 이풍 허윤,
순욱 ,순의 예형, · 순유 · 가후
11권 「원장양국전왕병관전(袁張凉國田王邴管傳)」 12권 「최모서하형포사마전(崔毛徐何邢鮑司馬傳)」 13권 「종요화흠왕랑전(鍾繇華歆王朗傳)」
원환 · 장범 ,장승, · 양무 · 국연
전주 · 왕수 · 병원 · 관녕 ,왕렬 장천 호소,
최염 ,공융 허유 누규, · 모개 · 서혁
하기 · 형옹 · 포훈 · 사마지
종요 ,종육, · 화흠 · 왕랑 ,왕숙,
14권 「정곽동류장류전(程郭董劉蔣劉傳)」 15권 「유사마량장온가전(劉司馬梁張溫賈傳)」 16권 「임소두정창전(任蘇杜鄭倉傳)」
정욱 ,정효, · 곽가 · 동소
유엽 ,유도, · 장제 · 유방 ,손자,
유복 ,유정, · 사마랑 · 양습 ,왕사,
장기 ,유초 장집, · 온회 ,맹건, · 가규 ,가충,
임준 · 소칙 · 두기(畿) ,두서 악상,
정혼 ,정태, · 창자 ,안비 영호소,
17권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 18권 「이이장문여허전이방염전(二李藏文呂許典二龐閻傳)」
장료 · 악진 · 우금 · 장합 · 서황 ,주령, 이전 · 이통 · 장패 ,손관, · 문빙 · 여건 ,왕상,
허저 · 전위 · 방덕 ·방육 ,조아, · 염온
19권 「임성진소왕전(任城陳蕭王傳)」 20권 「무문세왕공전(武文世王公傳)」
조창 · 조식 ,양수 정의 정이, · 조웅 조앙 · 조삭 · 조충 ·조거 · 조우 ·조림(林) · 조곤 · 조현 ·조간 ·조표 ·조정 ·조림(霖)
21권 「왕위이유부전(王衛二劉傳)」 22권 「환이진서위노전(桓二陳徐衛盧傳)」 23권 「화상양두조배전(和常楊杜趙裴傳)」
왕찬 ,진림 완우 유정, · 위기 · 유이 · 유소 · 부하 환계 · 진군 ,진태, · 진교 · 서선 · 위진 · 노육 화흡 · 상림 ,시묘, · 양준 ·두습 · 조엄 · 배잠 ,배수,
24권 「한최고손왕전(韓崔高孫王傳)」 25권 「신비양부고당륭전(辛毗楊阜高堂隆傳)」 26권 「만전견곽전(滿田牽郭傳)」
한기 · 최림 · 고유 · 손례 · 왕관 신비 ,신헌영, · 양부 ,왕이, · 고당륭 ,잔잠, 만총 · 전예 · 견초 · 곽회
27권 「서호이왕전(徐胡二王傳)」 28권 「왕관구제갈등종전(王毌丘諸葛鄧鍾傳)」
서막 · 호질 ,호위, · 왕창 · 왕기 왕릉 ,선고 영호우, · 관구검 ,문흠, · 제갈탄 ,당자, · 등애 ,주태, · 종회 ,장창포 왕필,
29권 「방기전(方技傳)」
화타 · 두기(夔) ,마균, · 주건평 · 주선 · 관로
30권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오환 · 선비 ,가비능, · 부여 ·고구려 · · 읍루 · 예맥 · 동옥저 · 마한 · 진한 · 변한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bgcolor=#fff> 관련 틀: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08b><tablebgcolor=#00008b> ||
}}}}}}}}}}}} ||

송서(宋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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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2·3권 「무제기(武帝紀)」 4권 「소제기(少帝紀)」 5권 「문제기(文帝紀)」
유유(劉裕) 유의부 유의륭
6권 「효무제기(孝武帝紀)」 7권 전폐제기(前廢帝紀)」 8권 「명제기(明帝紀)」
유준(劉駿) 유자업 유욱(劉彧)
9권 「후폐제기(後廢帝紀)」 10권 「순제기(順帝紀)」
유욱(劉昱) 유준(劉準)
※ 11권 ~ 40권은 志에 해당. 송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3f51ba> 41권 「후비전(后妃傳)」 ||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노혜남 · 왕헌원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42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43권 「서선지등전(徐羨之等傳)」 44권 「사회전(謝晦傳)」
유목지 · 왕홍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사회
45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46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47권 「유회숙등전(劉懷肅等傳)」
왕진악 · 단소 · 상정 · 유회신 · 유수 조륜지 · 왕의 · 장소 유회숙 · 맹회옥 ,맹용부, · 유경선 · 단지
48권 「주령석등전(朱齡石等傳)」 49권 「손처등전(孫處等傳)」 50권 「호번등전(胡藩等傳)」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손처 · 괴은 · 유종 · 우구진 호번 · 유강조 · 원호지 · 장흥세
51권 「종실전(宗室傳)」
유도린 · 유도규 · 유준고
52권 「유열등전(庾悅等傳)」 53권 「장무도등전(張茂度等傳)」 54권 「공계공등전(孔季恭等傳)」
유열 · 왕탄 · 사경인(1) · 원담 · 저숙도(2) 장무도(3) ,장영, · 유등지 ,유병지, · 사방명 · 강이 공계공 · 양현보 · 심담경
55권 「장도등전(臧燾等傳)」 56권 「사첨등전(謝瞻等傳)」 57권 「채곽전(蔡廓傳)」
장도 · 서광 · 부륭 사첨 · 공림지 채곽
58권 「왕혜등전(王惠等傳)」 59권 「은순등전(殷淳 等傳)」 60권 「범태등전(范泰等傳)」
왕혜 · 사홍미 · 왕구 은순 · 장창 · 하언 · 강지연 범태 · 왕준지 · 왕소지 · 순백자
61권 「무삼왕전(武三王傳)」
유의진 · 유의공 · 유의계
62권 「양흔등전(羊欣等傳)」 63권 「왕화등전(王華等傳)」 64권 「정선지등전(鄭鮮之等傳)」
양흔 · 장부 · 왕미 왕화 · 왕담수 · 은경인 · 심연지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65권 「길한등전(吉翰等傳)」 66권 「왕경홍등전(王敬弘等傳)」 67권 「사령운전(謝靈運傳)」
길한 · 유도산 · 두기 · 신념 왕경홍(4) · 하상지 사령운
68권 「무이왕전(武二王傳)」
유의강 · 유의선
69권 「유담등전(劉湛等傳)」 70권 「원숙전(袁淑傳)」 71권 「서담지등전(徐湛之等傳)」
유담 · 범엽 원숙 서담지 · 강담 · 왕승작
72권 「문구왕전(文九王傳)」
유삭 · 유굉 · 유창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약
73권 「안연지전(顏延之傳)」 74권 「장질등전(臧質等傳)」 75권 「왕승달등전(王僧達等傳)」
안연지 장질 · 노상 · 심유지 왕승달 · 안준
76권 「주수지등전(朱脩之等傳)」 77권 「유원경등전(柳元景等傳)」 78권 「소사화등전(蕭思話等傳)」
주수지 · 종각 · 왕현모 유원경 · 안사백 · 심경지 소사화 · 유연손
79권 「문오왕전(文五王傳)」
유탄 · 유위 · 유혼 · 유휴무 · 유휴범
80권 「효무십사왕전(孝武十四王傳)」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81권 「유수지등전(劉秀之等傳)」 82권 「주랑등전(周朗等傳)」 83권 「종월등전(宗越等傳)」
유수지 · 고침 · 고기지 주랑 · 심회문 종월 · 오희 · 황회
84권 「등완등전(鄧琬等傳)」 85권 「사장등전(謝莊等傳)」 86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등완 · 원의 · 공기(孔覬) 사장 · 왕경문(5) 은효조 · 유면
87권 「소혜개등전(蕭惠開等傳)」 88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89권 「원찬전(袁粲傳)」
소혜개 · 은염 설안도 · 심문수 · 최도고 원찬
90권 「명사왕전(明四王傳)」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91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劉瑜) · 가은 · 곽세도 · 자원평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민 · 손극 · 하자평
92권 「양리전(良吏傳)」
왕진지 · 두혜도 · 서활 · 육휘 · 완장지 · 강병지 · 왕흠지
93권 「은일전(隱逸傳)」
대옹 · 종병 · 주속지 · 왕홍지 · 완만영 · 공순지 · 유응지 · 공기(龚祈) · 적법사 · 도잠 · 종욱지 · 심도건 · 곽희림 · 뇌차종 · 주백년 · 왕소 · 관강지
94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완전부 · 왕도륭 · 양운장
95권 「삭로전(索虜傳)」 96권 「선비토욕혼(鮮卑吐谷渾)」
삭로 토욕혼
97권 「이만전(夷蠻傳)」
임읍국 · 부남국 · 가라타국 · 가라단국 · 반황국 · 반달국 · 사파파달국 · 사자국 · 가비려국 · 고구려 · 백제국 · 왜국 · 형옹주만 · 예주만
98권 「저호전(氐胡傳)」 99권 「이흉전(二凶傳)」
구지 · 저거몽손 유소(劉劭) · 유준(劉濬)
100권 「자서전(自序傳)」
심약
(1) 본명이 사유(謝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인(景仁)으로 표기되었다.
(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3f51ba><tablebgcolor=#3f51ba> ||
}}}}}} ||

남제서(南齊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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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2권 「고제기(高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4권 「전폐제기(前廢帝紀)」
소도성 소색 소소업
5권 「중폐제기(中廢帝紀)」 6권 명제기(明帝紀)」
소소문 소란
7권 「후폐제기(後廢帝紀)」 8권 「화제기(和帝紀)」
소보권 소보융
※ 9권 ~ 19권은 志에 해당. 남제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3797e8> 20권 「황후전(皇后傳)」 ||
진도정 · 유지용 · 배혜소 · 왕보명 · 하정영 · 왕소명 · 유혜단 · 저영거 · 왕순화
21권 「문혜태자전(文惠太子傳)」 22권 「예장문헌전(豫章文獻王傳)」 23권 「저연등전(褚淵傳)」
소장무 소억 저연 · 왕검
24권 「유세륭등전(柳世隆等傳)」 25권 「원숭조등전(垣崇祖等傳)」 26권 「왕경칙등전(王敬則等傳)」
유세륭 · 장괴 원숭조 · 장경아 왕경칙 · 진현달
27권 「유회진등전(劉懷珍等傳)」 28권 「최조사등전(崔祖思等傳)」 29권 「여안국등전(呂安國等傳)」
유회진 · 이안민 · 왕현재 최조사 · 유선명 · 소간 · 원영조 여안국 · 주산도 · 주반룡 · 왕광지
30권 「설연등전(薛淵等傳)」 31권 「강밀등전(江謐等傳)」 32권 「왕곤등전(王琨等傳)」
설연 · 대승정 · 환강 · 초도 · 조호 강밀 · 순백옥 왕곤 · 장대 · 저현 · 하집 · 왕연지 · 원도
33권 「왕승건등전(王僧虔等傳)」 34권 「우완지등전(虞玩之等傳)」
왕승건 · 장서 우완지 · 유휴 · 심충 · 유고지 · 왕심
35권 「고조십이왕전(高祖十二王傳)」
소영 · 소황 · 소엽 · 소고 · 소장 · 소삭 · 소감 · 소봉 · 소예 · 소갱 · 소구 · 소현
36권 「사초종등전(謝超宗等傳)」 37권 「도휘등전(到撝等傳)」
사초종 · 유상 도휘 · 유전 · 우종· 호해지
38권 「소경선등전(蕭景先等傳)」 39권 「유환등전(劉瓛等傳)」
소경선 · 소적부 유환 · 육징
40권 「무십칠왕전(武十七王傳)」
소자량 · 소자경(卿) · 소자향 · 소자경(敬) · 소자무 · 소자륭 · 소자진 · 소자명 · 소자한 · 소자륜 · 소자정 · 소자악 · 소자문
소자준 · 소자림 · 소자건 · 소자하
41권 「장융등전(張融等傳)」 42권 「왕안등전(王晏等傳)」 43권 「강효등전(江斅等傳)」
장융 · 주옹 왕안 · 소심 · 소탄지 · 강석 강효 · 하창우 · 사약· 왕사원
44권 「서효사등전(徐孝嗣等傳)」 45권 「종실전(宗室傳)」 46권 「왕수지등전(王秀之等傳)」
서효사 · 심문계 소도도 · 소도생 · 소면 왕수지 · 왕자 · 육혜효 · 소혜기
47권 「왕융등전(王融等傳)」 48권 「원단등전(袁彖等傳)」 49권 「왕환등전(王奐等傳)」
왕융 · 사조 원단 · 공치규 · 유회 왕환 · 장충
50권 「문이왕명칠왕전(文二王·明七王傳)」
소소수 · 소소찬 · 소보의 · 소보현 · 소보원 · 소보인 · 소보유 · 소보숭 · 소보정
5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최혜경 · 장흔태
52권 「문학전(文學傳)」
구영국 · 단초 · 변빈 · 구거원 · 왕지심 · 육궐 · 최위조 · 왕준지 · 조충지 · 가연
53권 「양정전(良政傳)」
부염 · 우원 · 유회위 · 배소명 · 심헌 · 이규지 · 공수지
54권 「고일전(高逸傳)」
저백옥 · 명승소 · 고환 · 장영서 · 하구 · 유규 · 유역 · 종측 · 두경산 · 심유사 · 오포 · 서숙
55권 「효의전(孝義傳)」
최회진 · 공손승원 · 오흔지 · 한계백· 손담 · 화보 · 한영민 · 봉연백 · 오체지 · 왕문수 · 주겸지 · 소예명 · 악이· 강필 · 두서 · 육강
56권 「행신전(倖臣傳)」
기승진 · 유계종 · 여법량 · 여문현· 여문도
57권 「위로전(魏虜傳)」 58권 「만・동남이전(蠻・東南夷傳)」 59권 「유목전(遊牧傳)」
위로 고려· 가라 · 왜국 · 임읍 · 부남국 · 교주 예예로 · 하남지 · 양씨저 · 탕창
60권 「자서전(自序傳)」
소자현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3797e8><tablebgcolor=#3797e8> ||
}}}}}} ||

주서(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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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2권 「문제기(文帝紀)」 3권 「효민제기(孝閔帝紀)」 4권 「명제기(明帝紀)」
우문태 우문각 우문육
5·6권 「무제기(武帝紀)」 7권 「선제기(宣帝紀)」 8권 「정제기(靜帝紀)」
우문옹 우문윤 우문천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열전(列傳) ]
9권 「후비전(后妃傳)」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10권 「소혜공호등전(邵惠公顥等傳)」 11권 「진탕공호전(晉蕩公護傳)」 12권 「제양왕헌전(齊煬王憲傳)」
우문호(顥)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우문호(護) 우문헌
13권 「문민명무선제자전(文閔明武宣諸子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식 · 우문찬 · 우문지 ·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
14권 「하발승등전(賀拔勝等傳)」 15권 「구락등전(寇洛等傳)」
하발승 · 염현 구락 · 이필 · 우근
16권 「조귀등전(趙貴等傳)」 17권 「양어등전(梁禦等傳)」
조귀 · 독고신 · 후막진숭 양어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18권 「왕비등전(王羆等傳)」 19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왕비 · 왕사정 달해무 · 후막진순 · 두로녕 · 우문귀 · 양충 · 왕웅
20권 「왕맹등전(王盟等傳)」 21권 「울지형등전(尉遲迥等傳)」
왕맹 · 하란상 · 울지강 · 질열복귀 · 염경 울지형 · 왕겸 · 사마소난
22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23권 「소작전(蘇綽傳)」 24권 「노변전(盧辯傳)」
주혜달 · 양관 · 류경 소작 노변
25권 「이현전(李賢傳)」 26권 「장손검등전(長孫儉等傳)」
이현 장손검 · 장손소원 · 곡사징
27권 「혁련달등전(赫連達等傳)」 28권 「사녕등전(史寧等傳)」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전홍 · 양춘 · 양대 · 우문측 사녕 · 육등 · 하약돈 · 권경선
29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우문성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양소 · 왕아 · 달해식 · 유웅 · 후식
30권 「두치등전(竇熾等傳)」 31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두치 · 우익 위효관 · 위형 · 양사언
32권 「신휘등전(申徽等傳)」 33권 「사적치등전(厙狄峙等傳)」
신휘 · 육통 · 류민 · 노유 · 당근 사적치 · 양천 · 조강 · 왕경 · 조창 · 왕열 · 배문표
34권 「조선등전(趙善等傳)」 35권 「정효목등전(鄭孝穆等傳)」
조선 · 원정 · 양표 · 배관 · 양부 정효목 · 최겸 · 최유 · 배협 · 설단 · 설선
36권 「정위등전(鄭偉等傳)」 37권 「구준등전(寇儁等傳)」
정위 · 양찬 · 단영 · 왕사량 · 최언목 · 영호정 · 사마예 · 배과 구준 ·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배문거
38권 「소량등전(蘇亮等傳)」 39권 「위진등전(韋瑱等傳)」
소량 · 류규 · 여사례 · 설징 · 설치 · 이창 · 원위 위진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40권 「울지운등전(尉遲運等傳)」 41권 「왕포등전(王襃等傳)」
울지운 · 왕궤 · 우문신거 · 우문효백 · 안지의 왕포 · 유신
42권 「소휘등전(蕭撝等傳)」 43권 「이연손등전(李延孫等傳)」
소휘 · 소세이 · 소원숙 · 소대환 · 종름 · 유번 · 류하 이연손 · 위우 · 한웅 · 진흔 · 위현
44권 「천기등전(泉企等傳)」 45권 「유림전(儒林傳)」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노탄 · 노광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46권 「효의전(孝義傳)」
이당 · 류회 · 두숙비 · 형가 · 진족 · 황보하 · 장원
47권 「예술전(藝術傳)」 48권 「소찰전(蕭詧傳)」
기준 · 장승 · 요승원 · 여경희 · 조문심 · 저해 소찰
49·50권 「이역전(異域傳)」
고구려 · 백제 · 만족(蠻) · 요족(獠) · 탕창 · 등지 · 백란 · 저족 · 계호 · 고막해 · 돌궐 · 토욕혼 · 고창 · 선선 · 언기 · 구차 · 우전 · 엽달
속특 · 안식국 · 파사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cccc><tablebgcolor=#00cccc> ||
}}}}}}}}}}}} ||

양서(梁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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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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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무제기(武帝紀)」 4권 「간문제기(簡文帝紀)」 5권 「원제기(元帝紀)」 6권 「경제기(敬帝紀)」
소연 소강 소역 소방지
7권 「황후기(皇后紀)」
장상유 · 치휘 · 왕영빈 · 정영광 · 완영영 · 서소패
}}}}}}}}}
[ 열전(列傳) ]
||<-2><tablewidth=100%><tablebgcolor=#00c499> 8권 「소명태자등전(昭明太子等傳)」 ||<-2> 9권 「왕무등전(王茂等傳)」 ||<-2> 10권 「소영달등전(蕭穎達等傳)」 ||
소통 · 소대기 · 소방구 왕무 · 조경종 · 유경원 소영달 · 하후상 · 채도공 · 양공칙 · 등원기
11권 「장홍책등전(張弘策等傳)」 12권 「유담등전(柳惔等傳)」 13권 「범운등전(范雲等傳)」
장홍책 유역 · 정소숙 · 여승진 유담 · 석천문 · 위예 범운 · 심약
14권 「강엄등전(江淹等傳)」 15권 「사비전(謝朏傳)」 16권 「왕량등전(王亮等傳)」
강엄 · 임방 사비 ,사람, 왕량 · 장직 · 왕형
17권 「왕진국등전(王珍國等傳)」 18권 「장혜소등전(張惠紹等傳)」 19권 「종쾌등전(宗夬等傳)」
왕진국 · 마선병 · 장제 장혜소 · 풍도근 · 강현 · 창의지 종쾌 · 유탄 · 악애
20권 「유계련등전(劉季連等傳)」 21권 「왕첨등전(王瞻等傳)」
유계련 · 진백지 왕첨 · 왕지 · 왕준 · 왕간 ,왕훈, · 왕태· 왕빈· 장충· 유운 · 채준· 강천
22권 「태조오왕전(太祖五王傳)」 23권 「소업등전(蕭業等傳)」 24권 「소경전(蕭景傳)」
소굉 · 소수 · 소위 · 소회 · 소담 소업 · 소백유 · 소원간 · 소상 소경 ,소창 소앙 소욱,
25권 「주사등전(周捨等傳)」 26권 「범수등전(范岫等傳)」 27권 「육수등전(陸倕等傳)」
주사 · 서면 범수 · 부소 · 소침 · 육고 육수 · 도흡 · 명산빈· 은균· 육양
28권 「배수등전(裴邃等傳)」 29권 「고조삼왕전(高祖三王傳)」 30권 「배자야등전(裴子野等傳)」
배수 · 하후단 · 위방 소적 · 소속 · 소윤 배자야 · 고협 · 서리 · 포천
31권 「원앙전(袁昻傳)」 32권 「진경지등전(陳慶之等傳)」 33권 「왕승유등전(王僧孺等傳)」
원앙 진경지 · 난흠 왕승유 · 장솔 · 유효작 · 왕균
34권 「장면전(張緬傳)」 35권 「소자각전(蕭子恪傳)」 36권 「공휴원등전(孔休源等傳)」
장면 ,장찬 장관, 소자각 ,소자범 소자현 소자운, 공휴원 · 강혁
37권 「사거등전(謝擧等傳)」 38권 「주이등전(朱異等傳)」
사거 · 하경용 주이 · 하침
39권 「원법승등전(元法僧等傳)」 40권 「사마경등전(司馬褧等傳)」
원법승 ,원수 원원달, · 왕신념 · 양간 · 양아인 사마경 · 도개 · 유현 · 유지린 · 허무
41권 「왕규등전(王規等傳)」
왕규 · 왕승 · 저상 · 소개 · 저구 · 유유 · 유잠 · 은운 · 소기(幾)
42권 「장순등전(臧盾等傳)」 43권 「위찬등전(韋粲等傳)」
장순 · 부기 위찬 · 강자일 · 장승 · 심준(浚) · 유경례
44권 「태종십일왕・세조이자전(太宗十一王・世祖二子傳)」
소대련 · 소대심 · 소대림 · 소대춘 · 소대아 · 소대장 · 소대균 · 소대위 · 소대구 · 소대흔 · 소대지 · 소방등 · 소방제
45권 「왕승변전(王僧辯傳)」 46권 「호승우등전(胡僧祐等傳)」
왕승변 호승우 · 서문성 · 두즉 · 음자춘
47권 「효행전(孝行傳)」
등담공 · 심숭소 · 순장 · 유검루 · 길분 · 견염 · 한회명 · 유담정 · 하형 · 유사미 · 강부 · 유제 · 저수 · 사린
48권 「유림전(儒林傳)」
복만용 · 하동지 · 범진 · 엄식지· 하창 · 사마균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태사숙명 · 공자거· 황간
49·50권 「문학전(文學傳)」
도항 · 구지 · 유포 · 원준 · 유어릉 · 유소(昭) · 하손 · 종영 · 주흥사 · 오균 · 유어릉 · 유준 · 유소(沼) · 사기경 · 유협 · 왕적 · 하사징 · 유묘 · 사징 · 장엄 · 복정 · 유중용 · 육운공 · 임효공 · 안협
51권 「처사전(處士傳)」
하점 ,하윤, · 완효서 · 도홍경 · 제갈거 · 심의 · 유혜비 · 범원염 · 유우 · 유효 · 유선 · 장효수 · 유승선
52권 「지족전(止足傳)」 53권 「양리전(良吏傳)」
고헌지 · 도계직 · 소시소 유필 · 심우 · 범술증 · 구중부 · 손겸 · 복환 · 하원
54권 「제이전(諸夷傳)」
임읍 · 부남· 반반국 · 단단국 · 간타리국 · 낭아수국· 파리국 · 중천축국 · 사자국 · 고구려· 백제 · 신라 · · 문신국· 대한국 · 부상국 · 하남왕국 · 고창· 활국 · 주고가국 · 아발단국 · 호밀단국· 백제 · 쿠처 · 우전국· 갈반타국 · 저말국 · 파사국 · 탕창국· 등지 · 무흥국 · 예예국
55권 「소종등전(蕭綜等傳)」
소종 · 소기(紀) · 소정덕 · 소예
56권 「후경전(侯景傳)」
후경 ,왕위,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c499><tablebgcolor=#00c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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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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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제기(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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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서기(序記)」 2권 「태조기(太祖紀)」 3권 「태종기(太宗紀)」
탁발부 · 대나라 탁발규 탁발사
4권 「세조·공종기(世祖恭宗紀)」 5권 「고종기(高宗紀)」 6권 「현조기(顯祖紀)」
탁발도 · 탁발황 탁발준(浚) 탁발홍
7권 「고조기(高祖紀)」 8권 「세종기(世宗紀)」 9권 「숙종기(肅宗紀)」
원굉 원각 원후
10권 「효장제기(孝莊帝紀)」 11권 「폐출삼제기(廢出三帝紀)」 12권 「효정제기(孝靜帝紀)」
원자유 원공 · 원랑 · 원수 원선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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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열전(列傳) ]
13권 「황후전(皇后傳)」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도무선목황후 · 명원소애황후 · 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경목공황후 · 문성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풍폐후 · 효문유황후 · 효문소황후 · 선무순황후 · 선무황후 · 선무영황후
효명황후 · 효정황후
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神元平文諸帝子孫傳)」
탁발흘라 ,탁발제,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진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15권 「소성자손전(昭成子孫傳)」 16권 「도무7왕전(道武七王傳)」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虔) · 탁발순 · 탁발의열
탁발굴돌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17권 「명원6왕전(明元六王傳)」 18권 「태무5왕전(太武五王傳)」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 · 탁발간(簡) · 탁발약 · 탁발맹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22권 「효문5왕전(孝文五王傳)」 23권 「위조등전(衛操等傳)」 24권 「연봉등전(燕鳳等傳)」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위조 · 막함 · 유고인 연봉 · 허겸 · 장곤 · 최현백 · 등연
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27권 「목숭전(穆崇傳)」
장손숭 · 장손도생 장손비 · 울고진 목숭
28권 「화발등전(和跋等傳)」 29권 「해근등전(奚斤等傳)」
화발 · 해목 · 막제 · 유업연 · 하적간 · 이율 · 유결 · 고필 · 장려 해근 · 숙손건
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왕건 · 안동 · 누복련 · 구퇴 · 아청 · 유니 · 해권 · 차이락 · 숙석 · 내대천 · 주기 · 두대전 · 주관 · 염대비 · 울발 · 육진 · 여락발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우율제 고호 · 최영 · 봉의
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35권 「최호전(崔浩傳)」 36권 「이순전(李順傳)」
왕낙아 · 차노두 · 노노원 · 진건 · 만안국 최호 이순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38권 「조옹등전(刁雍等傳)」 39권 「이보전(李寶傳)」
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이보
40권 「육사전(陸俟傳)」 41권 「원하전(源賀傳)」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육사 원하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47권 「노현전(盧玄傳)」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두근 · 허언 · 이흔 노현
48권 「고윤전(高允傳)」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고윤 이령 · 최감 울원 · 모용백요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이효백 · 이형 유아 · 고려 유명근 · 유방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58권 「양파전(楊播傳)」
정희 · 최변 고우 · 최정 양파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한기린 · 정준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이표 · 고도열 왕숙 · 송변 곽조 · 장이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67권 「최광전(崔光傳)」
형만 · 이평 이숭 · 최량 최광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견침 · 고총 최휴 · 배정준 · 원번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이주영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노동 · 장열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손소(孫紹) · 장보혜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81권 「기준등전(綦儁等傳)」 82권 「이염지등전(李琰之等傳)」
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이염지 · 조영 · 상경
83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84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85권 「문원전(文苑傳)」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86권 「효감전(孝感傳)」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87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88권 「양리전(良吏傳)」
장순 · 녹생 · 장응 · 송세경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배타 · 두원 · 양돈 · 소숙
89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90권 「일사전(逸士傳)」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91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92권 「열녀전(列女傳)」
임성국태비
93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증흥 · 구맹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정엄 · 서흘
94권 「엄관전(閹官傳)」
종애 · 구락제 · 단패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진송 · 백정 · 유등 · 가찬 · 양범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96권 「사마예등전(司馬叡等傳)」 97권 「환현등전(桓玄等傳)」 98권 「소도성등전(蕭道成等傳)」
사마예 · 이웅 환현 · 풍발 · 유유 소도성 · 소연
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장실 · 걸복국인 · 독발오고 · 이고 · 저거몽손
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等傳)」
고구려 · 백제 · 물길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고막해 · 거란 · 오락후
101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강 · 고창 · 등지 · 만족 · 요족
102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104권 「자서전(自序傳)」
위수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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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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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제기(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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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문제기(文帝紀)」 3·4권 「양제기(煬帝紀)」 5권 「공제기(恭帝紀)」
양견 양광 양유
※ 6권 ~ 35권은 志에 해당. 수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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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7C4B3B> 36권 「후비전(后妃傳)」 ||
독고황후 · 소황후
37권 「이목등전(李穆等傳)」 38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이목 · 양예 유방(劉昉) · 정역 · 유구 · 황보적 · 노분
39권 「우의등전(于義等傳)」 40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우의 · 음수 · 두영정 · 원경산 · 원웅 · 두로적 · 하약의 양사언 · 우문흔 · 왕의 · 원해 · 왕세적 · 우경칙 · 원주
41권 「고경등전(高熲等傳)」 42권 「이덕림전(李德林傳)」
고경 · 소위 이덕림
43권 「하간왕홍등전(河間王弘等傳)」 44권 「등목왕찬등전(滕穆王瓚等傳)」 45권 「문사자전(文四子傳)」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웅 양찬 · 양정 · 양상 · 양지적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46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양희상 · 장손평 · 원휘 · 위사 · 양이 · 소효자 · 이웅 · 장경
47권 「위세강등전(韋世康等傳)」 48권 「양소전(楊素傳)」 49권 「우홍전(牛弘傳)」
위세강 · 유기 양소(素) 우홍
50권 「우문경등전(宇文慶等傳)」 51권 「장손람전(長孫覽傳)」 52권 「한금호등전(韓擒虎等傳)」
우문경 · 이예성 · 원효구 · 곽영 · 방황 · 이안 장손람 ,장손치, ,장손성, 한금호 · 하약필
53권 「달해장유등전(達奚長儒等傳)」 54권 「왕장술등전(王長述等傳)」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왕장술 · 이연 · 이누겸 · 전인공 · 두정 · 이철 · 최팽
55권 「두언등전(杜彥等傳)」
두언 · 고매 · 이주창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후막진영
56권 「노개등전(盧愷等傳)」 57권 「노사도등전(盧思道等傳)」
노개 · 영호희 · 설주 · 우문필 · 장형 · 양왕 노사도 · 이효정 · 설도형
58권 「명극양등전(明克讓等傳)」
명극양 · 위담 · 육상 · 두대경 · 신덕원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59권 「양제삼남전(煬帝三男傳)」 60권 「최중방등전(崔仲方等傳)」 61권 「우문술전(宇文述等傳)」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최중방 · 우중문 · 단문진 우문술 · 곽연
62권 「왕소등전(王韶等傳)」 63권 「번자개등전(樊子蓋等傳)」
왕소 · 원암 · 유행본 · 양비 · 유욱 · 조작 · 배숙 번자개 · 사상 · 원수 · 양의신 · 위현 · 유권
64권 「이원통등전(李圓通等傳)」
이원통 · 진무 ·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심광 · 내호아 · 어구라 · 진릉 · 왕변
65권 「주나후등전(周羅睺等傳)」
주나후 · 주법상 · 이경 · 모용삼장 · 설세웅 · 왕인공 · 권무 · 토만서 · 동순 · 조재
66권 「이악등전(李諤等傳)」
이악 · 포굉 · 배정 · 유장 · 원사 · 낭무 · 고구 · 장건위 · 영비 · 육지명 · 방언겸
67권 「우세기등전(虞世基等傳)」 68권 「우문개등전(宇文愷等傳)」
우세기 · 배온 · 배구 우문개 · 염비 · 하조
69권 「왕소등전(王劭等傳)」 70권 「양현감등전(楊玄感等傳)」
왕소(王劭) · 원충 양현감 · 이자웅 · 조원숙 · 곡사정 · 유원진 · 이밀 · 배인기
71권 「성절전(誠節傳)」
유홍 · 황보탄 · 유원 · 풍자명 · 장수타 · 양선회 · 독고성 · 원문도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72권 「효의전(孝義傳)」
육언사 · 전덕무 · 설준 · 왕반 · 양경 · 곽준 · 전익 · 유회 · 유사준 · 낭방귀 · 적보림 · 이덕요 · 화추 · 서효숙
73권 「순리전(循吏傳)」
양언광 · 번숙략 · 조궤 · 방공의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유광 · 왕가 · 위덕심
74권 「혹리전(酷吏傳)」
사적사문 · 전식 · 연영 · 조중경 · 최홍도 · 원홍사 · 왕문동
75권 「유림전(儒林傳)」
원선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76권 「문학전(文學傳)」
유진 · 왕규 · 최표 · 제갈영 · 손만수 · 왕정 · 우작 · 신대덕 · 왕주 · 유자직 · 반휘 · 두정현 · 상득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유빈
77권 「은일전(隱逸傳)」
이사겸 · 최곽 · 서칙 · 장문후
78권 「예술전(藝術傳)」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위정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허지장 · 만보상 · 왕영언
79권 「외척전(外戚傳)」
여씨 · 독고라 · 소규
80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81권 「동이전(東夷傳)」
고려 · 백제 · 신라 · 말갈 · 유구국 · 왜국
82권 「남만전(南蠻傳)」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83권 「서역전(西域傳)」
토욕혼 · 당항 · 고창 · 소그드인 · 강국 · 안국 · 석국 · 여국 · 언기 · 구차 · 소륵 · 우전 · 발한 · 토화란 · 읍달 · 미국 · 사국 · 조국 · 하국 · 오나갈 · 목국 · 파사 · 조국 · 부국
84권 「북적전(北狄傳)」
돌궐 · 서돌궐 · 철륵 · · 거란
85권 「우문화급등전(宇文化及等傳)」
우문화급 ,우문지급, ,사마덕감, ,배건통, 왕충 · 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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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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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송본기상(宋本紀上)」 2권 「송본기중(宋本紀中)」 3권 「송본기하(宋本紀下)」
유유(裕) · 유의부 유의륭 · 유준(駿) · 유자업 유욱(彧) · 유욱(昱) · 유준(準)
4권 「제본기상(齊本紀上)」 5권 「제본기하(齊本紀下)」
소도성 · 소색 소소업 · 소소문 · 소란 · 소보권 · 소보융
6·7권 「양본기상·중(梁本紀上·中)」 8권 「양본기하(梁本紀下)」
소연 소강 · 소역 · 소방지
9권 「진본기상(陳本紀上)」 10권 「진본기하(陳本紀下)」
진패선 · 진천 · 진백종 진욱 · 진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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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1·12권 「후비전(后妃傳)」 ||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노혜남 · 왕헌원 · 은숙의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 진도정 · 유지용 · 배혜소 · 왕보명 · 하정영 · 왕소명 · 유혜단 · 저영거 · 왕순화 · 장상유 · 치휘 · 왕영빈 · 정영광 · 완영영 · 서소패 · 장요아 · 심묘용 · 왕황후 · 유경언 · 심무화 · 장여화
13·14권 「송종실급제왕전(宋宗室及諸王傳)」
유도린 · 유도규 · 유의경 · 유준고 · 유의진 · 유의강 · 유의공 · 유의선 · 유의계 · 유소 · 유준(濬) · 유삭 · 유굉 · 유탄 · 유위 · 유창 · 유혼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무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범 · 유휴약 ·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15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16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유목지 ·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왕진악 ·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 주수지 · 왕현모
17권 「유경선등전(劉敬宣等傳)」
유경선 · 유회숙 · 유수 · 손처 · 괴은 · 상정 · 유종 · 우구진 · 맹회옥 · 호번 · 유강조
18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19권 「사회등전(謝晦等傳))」
조륜지 · 소사화 · 장도 사회 · 사유 · 사방명 · 사령운
20권 「사홍미전(謝弘微傳)」 21권 「왕홍전(王弘傳)」 22권 「왕담수전(王曇首傳)」
사홍미 왕홍 왕담수 ,왕훈,
23권 「왕탄등전(王誕等傳)」 24권 「왕유지등전(王裕之等傳)」 25권 「왕의등전(王懿等傳)」
왕탄 · 왕화 · 왕혜 · 왕욱 왕유지 · 왕진지 · 왕소지 · 왕열지 · 왕준지 왕의 · 도언지 · 원호지 · 장흥세
26권 「원담전(袁湛傳)」 27권 「공정등전(孔靖等傳)」 28권 「저유지전(褚裕之傳)」
원담 공정 · 공림지 · 은경인 저유지
29권 「채곽전(蔡廓傳)」 30권 「하상지전(何尙之傳)」 31권 「장유전(張裕傳)」
채곽 하상지 장유 ,장승,
32권 「장소전(張邵傳)」 33권 「범태등전(范泰等傳)」 34권 「안연지등전(顔延之等傳)」
장소 범태 · 순백자 · 서광 ·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안연지 · 심회문 · 주랑
35권 「유담등전(劉湛等傳)」 36권 「양흔등전(羊欣等傳)」 37권 「심경지등전(沈慶之等傳)」
유담 · 유열 · 고침 · 고기지 양흔 · 양현보 · 심연지 · 강이 · 강병지 심경지 · 종각
38권 「유원경전(柳元景傳)」 39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40권 「노상등전(魯爽等傳)」
유원경 은효조 · 유면 노상 · 설안도 · 등완 · 종월 · 오희 · 황회
41권 「제종실전(齊宗室傳)」
소도도 · 소도생 · 소요광 · 소요흔 · 소면 · 소경선 · 소적부 · · 소탄 · 소탄지
42·43권 「제고제제자전(齊高帝諸子傳)」
소억 · 소영 · 소황 · 소엽 · 소고 · 소장 · 소삭 · 소감 · 소봉 · 소예 · 소갱 · 소구 · 소현
44권 「제무제제자·제문혜제자·명제제자전(齊高帝諸子·文惠諸子·明帝諸子傳)」
소장무 · 소자량 · 소자경(卿) · 소자향 · 소자경(敬) · 소자무 · 소자륭 · 소자진 · 소자명 · 소자한 · 소자륜 · 소자정 · 소자악 · 소자문
소자준 · 소자림 · 소자건 · 소자하 · 소소수 · 소소찬 · 소보의 · 소보현 · 소보원 · 소보인 · 소보유 · 소보숭 · 소보정
45권 「왕경칙등전(王敬則等傳」 46권 「이안인등전(李安人等傳)」
왕경칙 · 진현달 · 장경아 · 최혜경 이안인 · 대승정 · 환강 · 초도 · 조무 · 여안국 · 주산도 · 주반룡 · 왕광지
47권 「순백옥등전(荀伯玉等傳)」 48권 「육징등전(陸澄等傳)」
순백옥 · 최조사 · 설연 · 우종 · 호해지 · 우완지 · 유휴 · 강석 육징 · 육혜효 · 육궐
49권 「유고지등전(庾杲之等傳)」 50권 「유환등전(劉瓛等傳)」
유고지 · 왕심 · 공규 · 유회진 유환 · 명승소 · 유이 · 유규
51·52권 「양종실전(梁宗室傳)」
소경 ,소매 소발 소앙 소욱, · 소의 · 소부 · 소창 · 소융 · 소굉 ,소정인 소정의 소정덕 소정립, 소수 · 소위 · 소회 · 소담
53권 「양무제자전(梁武帝諸子傳)」
소통 · 소종 · 소적 · 소속 · 소윤 · 소기
54권 「양간문제자·원제제자전(梁簡文帝諸子·元帝諸子傳)」
소대기 · 소대심 · 소대관 · 소대림 · 소대련 · 소대춘 · 소대성 · 소대봉 · 소대아 · 소대장 · 소대균 · 소대위 · 소대훈 · 소대구 · 소대흔 · 소대지 · 소대원 · 소방등 · 소방제 · 소방구 · 소방략
55권 「왕무등전(王茂等傳)」
왕무 · 조경종 · 조의종 · 석천문 · 하후상 · 길사첨 · 채도공 · 양공칙 · 등원기 · 장혜소 · 장징 · 풍도근 · 강현 · 창의지
56권 「장홍책등전(張弘策等傳)」 57권 「심약등전(沈約等傳)」 58권 「위예등전(韋叡等傳)」
장홍책 · 유역 · 정소숙 · 여승진 · 악애 심약 · 범운 위예 · 배수
59권 「강엄등전(江淹等傳)」 60권 「범수등전(范岫等傳)」 61권 「진백지등전(陳伯之等傳)」
강엄 · 임방 · 왕승유 범수 · 부소 · 공휴원 · 강혁 · 서면 · 허무 · 은균 진백지 · 진경지 · 난흠
62권 「하창등전(賀瑒等傳)」 63권 「왕신념등전(王神念等傳)」 64권 「강자일등전( 江子一等傳)」
하창 · 사마경 · 주이 · 고협 · 서리 · 포천 왕신념 · 양간 · 양아인 강자일 · 호승우 · 서문성 · 음자춘 · 두즉 · 왕림 · 장표
65권 「진종실제왕전(陳宗室諸王傳)」
진의 · 진상 · 진혜기 · 진창 · 진담랑 · 진백무 · 진백산 · 진백고 · 진백공 · 진백인 · 진백의 · 진백례 · 진백지 · 진백모
진숙릉 · 진숙영 · 진숙견 · 진숙명 · 진숙경 · 진숙헌 · 진숙제 · 진숙문 · 진숙달 · 진숙탄 · 진숙표 · 진숙웅 · 진숙중 · 진숙엄 · 진숙신 · 진숙우 · 진숙평 · 진숙오 · 진숙흥 · 진숙선 · 진숙목 · 진숙검 · 진숙징 · 진숙소 · 진숙광 · 진숙순 · 진숙모 · 진숙현 · 진숙륭 · 진숙영
진심 · 진장 · 진윤 · 진억 · 진언 · 진경 · 진건 · 진념 · 진지 · 진전 · 진번
66권 「두승명등전(杜僧明等傳)」
두승명 · 주문육 · 후진 · 후안도 · 구양위 · 황법구 · 순우량 · 장소달 · 오명철
67권 「호영등전(胡穎等傳)」
호영 · 서도 · 두릉 · 주철무(1) · 정령세 · 심각 · 육자륭 · 전도집 · 낙문아 · 손창 · 서세보 · 주부 · 순랑 · 주경 · 노실달 · 소마하 · 임충 · 번의
68권 「조지례등전(趙知禮等傳)」
조지례 · 채경력 · 종원요 · 한자고 · 화교 · 유사지 · 사기 · 모희 · 심군리 · 육산재
69권 「심형등전(沈炯等傳)」
심형 · 우려 · 부재 · 고야왕 · 요찰
70권 「순리전(循吏傳)」
길한 · 두기 · 신념 · 두혜도 · 완장지 · 견법숭 · 부염 · 우원 · 왕홍궤 · 심우 · 범술증 · 손겸 · 하원 · 곽조심
71권 「유림전(儒林傳)」
복만용 · 하동지 · 엄식지 · 사마경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공자구 · 황간 · 심수 · 척곤 · 정작 · 전완 · 장기 · 고월 · 척곤 · 왕원규
72권 「문학전(文學傳)」
구영국 · 단초 · 변빈 · 구거원 · 왕지심 · 최위조 · 조충지 · 가희경 · 원준 · 유소(昭) · 종영 · 주흥사 · 오균 · 유협 · 하사징 · 임효공 · 안협 · 기소유 · 두지위 · 안황 · 잠지경 · 하지원 · 서백양 · 장정견 · 완탁
73·74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瑜) · 가은 · 곽세통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구걸 · 사각수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인 · 손극 · 하자평 · 최회순 · 왕허지 · 오경지 · 소예명 · 소교처양 · 공손승원 · 오흔지 · 한계백 · 구관선 · 손담 · 화보 · 해숙겸 · 한영민 · 유풍 · 봉연백 · 오달지 · 왕문수 · 악이지 · 손법종 · 유도민 · 등담공 · 도계직 · 심숭소 · 순장 · 길분 · 견염 · 조발호 · 한회명 · 저수 · 장경인 · 도자장 · 성경준 · 이경서 · 사린 · 은불해 · 사마고 · 장소
75·76권 「은일전(隐逸傳)」
도잠 · 종소문 · 심도건 · 공순지 · 주속지 · 대옹 · 적법사 · 뇌차종 · 곽희림 · 유응지 · 공기 · 주백년 · 관강지 · 어부 · 저백옥 · 고환 · 두경산 · 장영서 · 오포 · 서백진 · 심인사 · 완효서 · 등욱 · 도홍경 · 제갈거 · 유혜비 · 범원엽 · 유선 · 장효수 · 유승선
77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서원 · 완전부 · 기승진 · 유계종 · 여법량 · 여문현 · 여법진 · 주석진 · 육험 · 사마신 · 시문경 · 심객경 · 공범
78·79권 「이맥전(夷貊傳)」
임읍 · 부남 · 중천축국 · 사자국 · 고구려 · 백제국 · 신라 · · 부상국· 하남왕국 · 탕창 등지 · 무흥국 · 형옹주·예주만 · 고창 · 쿠처 · 우전국 · 파사국 ·연연
80권 「적신전(賊臣傳)」
후경 ,왕위,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1) 본명이 주철호(周鐵虎)로 당태조로 추존된 이호(李虎)를 피휘하여 무(武)로 개칭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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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
[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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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당서(舊唐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fff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고조기(高祖紀)」 2·3권 「태종기(太宗紀)」 4·5권 「고종기(高宗紀)」
이연(李淵) 이세민 이치
6권 「측천황후기(則天皇后紀)」 7권 「 중종·예종기(中宗睿宗紀)」 8·9권 「현종기(玄宗紀)」
무조 이현(李顯) · 이단 이융기
10권 「숙종기(肅宗紀)」 11권 「대종기(代宗紀)」 12·13권 「덕종기(德宗紀)」
이형(李亨) 이예(李豫) 이괄
14·15권 「순종·헌종기(順宗憲宗紀)」 16권 「목종기(穆宗紀)」 17권 「경종·문종기(敬宗文宗紀)」
이송 · 이순(李純) 이항 이심(李湛) · 이앙
18권 「무종·선종기(武宗宣宗紀)」 19권 「의종·희종기(懿宗僖宗紀)」 20권 「소종·애제기(昭宗哀帝紀)」
이염(李瀍) · 이침(李忱) 이최 · 이현(李儇) 이엽 · 이축
※ 21권 ~ 50권은 志에 해당. 구당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a48252> 51·52권 「후비전(后妃傳)」 ||
태목황후 · 문덕황후 · 서혜 · 왕폐후 · 소양제 · 화사황후 · 위황후 · 상관소용 · 숙명황후 · 소성황후 · 왕폐후 · 정순황후 · 양귀비
원헌황후 · 장황후 · 장경황후 · 예진황후 · 정의황후 · 소덕황후 · 장헌황후 · 의안황후 · 효명황후 · 공희황후 · 정헌황후 · 적선황후
53권 「이밀전(李密傳)」 54권 「왕세충등전(王世充等傳)」
이밀 ,선웅신, 왕세충 · 두건덕
55권 「설거등전(薛舉等傳)」
설거 ,설인고이궤 · 유무주 ,원군장, · 고개도 · 유흑달 ,서원랑,
56권 「소선등전(蕭銑等傳)」
소선 · 두복위 · 보공석 ,감릉 왕웅탄, · 심법흥 · 이자통 ,주찬 임사홍 장선안, · 나예 · 양사도 ,유계진 이자화,
57권 「배적등전(裴寂等傳)」
배적 · 유문정 ,이맹상 진행사 유세룡 조문각 장평고 이사행 이고천 허세서 유사립 전구농 번흥 공손무달 방경운 장장경 이안원,
58권 「당검등전(唐儉等傳)」 59권 「굴돌통등전(屈突通等傳)」
당검 · 장손순덕 · 유홍기 · 은개산 · 유정회 · 시소 · 무사확 굴돌통 · 임괴 · 구화 · 허소 · 이습지 · 강모
60권 「종실전(宗室傳)」
이효기 · 이신통 · 이신부 · 이숙량 · 이침(李琛) · 이효공 · 이원(李瑗) · 이도현 · 이도종 · 이박예
61권 「온대아등전(溫大雅等傳)」 62권 「이강등전(李綱等傳)」 63권 「봉륜등전(封倫等傳)」
온대아 · 진숙달 · 두위 이강(李綱) · 정선과 · 양공인 · 황보무일 · 이대량 봉륜 · 소우 ,소예 소균 소관 소업, · 배구 · 우문사급
64권 「고조22자전(高祖二十二子傳)」
이건성 · 이현패 · 이원길 · 이지운 · 이원경(李元景) · 이원창 · 이원형 · 이원방 · 이원례 · 이원가 · 이원칙 · 이원의 · 이원궤 · 이봉(李鳳) · 이원경(李元慶) · 이원유 · 이원명 · 이령기 · 이원상 · 이원효 · 이원영
65권 「고사렴등전(高士廉等傳)」 66권 「방현령등전(房玄齡等傳)」 67권 「이정등전(李靖等傳)」
고사렴 · 장손무기 방현령 · 두여회 이정(李靖) · 이세적
68권 「울지경덕등전(尉遲敬德等傳)」 69권 「후군집등전(侯君集等傳)」 70권 「왕규등전(王珪等傳)」
울지경덕 · 진경 · 정지절 · 단지현 · 장공근 후군집 · 장량 · 설만철 왕규 · 대주 · 잠문본 · 두정륜
71권 「위징전(魏徵傳)」 72권 「우세남등전(虞世南等傳)」 73권 「설수등전(薛收等傳)」
위징 우세남 · 이백약 · 저량 설수 · 요사렴 · 안사고 · 영호덕분 · 공영달
74권 「유계등전(劉洎等傳)」 75권 「소세장등전(蘇世長等傳)」
유계 · 마주 · 최인사 소세장 · 위운기 · 손복가 · 장현소
76권 「태종제자전(太宗諸子傳)」
이승건 · 이관(李寬) · 이각(李恪) · 이태 · 이우(李祐) · 이음 · 이운(李惲) · 이정(李貞) · 이신(李愼) · 이효(李囂) · 이간(李簡) · 이복 · 이명
77권 「위정등전(韋挺等傳)」 78권 「우지녕등전(于志寧等傳)」
위정 · 양찬 · 유덕위 · 염입덕 ,염입본, · 유형 · 최의현 우지녕 · 고계보 · 장행성
79권 「조효손등전(祖孝孫等傳)」 80권 「저수량등전(褚遂良等傳)」
조효손 · 부인균 · 부혁 · 이순풍 · 여재 저수량 · 한원 · 내제 · 상관의
81권 「최돈례등전(崔敦禮等傳)」
최돈례 · 노승경 · 유상도 · 이경현 · 이의염 ,손처약, ,악언위, ,조인본,
82권 「허경종등전(許敬宗等傳)」 83권 「곽효각등전(郭孝恪等傳)」
허경종 · 이의부 곽효각 · 장검 · 소정방 · 설인귀 · 정무정 ,정명진, ,장사귀, ,조도흥,
84권 「유인궤등전(劉仁軌等傳)」 85권 「당림등전(唐臨等傳)」
유인궤 · 학처준 · 배행검 당림 · 장문관 · 서유공
86권 「고종·중종제자전(高宗中宗諸子傳)」
이충(李忠) · 이효(李孝) · 이상금 · 이소절 · 이홍 · 이현(李賢) · 이중윤 · 이중복 · 이중준 · 이중무
87권 「배염등전(裴炎等傳)」 88권 「위사겸등전(韋思謙等傳)」
배염 · 유의지 · 위현동 · 이소덕 위사겸 · 육원방 · 소괴
89권 「적인걸등전(狄仁傑等傳)」 90권 「왕급선등전(王及善等傳)」
적인걸 · 왕방경 · 요숙 왕급선 · 두경검 · 주경칙 · 양재사 · 이회원 · 두로흠망
91권 「환언범등전(桓彥範等傳)」 92권 「위원충등전(魏元忠等傳)」
환언범 · 경휘 · 최현위 · 장간지 · 원서기 위원충 · 위안석 · 소지충 ,종초객 기처눌,
93권 「누사덕등전(婁師德等傳)」 94권 「소미도등전(蘇味道等傳)」
누사덕 · 왕효걸 · 당휴경 · 장인원 · 설눌 · 왕준 소미도 · 이교 · 최융 · 노장용 · 서언백
95권 「예종제자전(睿宗諸子傳)」
이헌 · 이총 · 이범 · 이업 · 이융제
96권 「요숭등전(姚崇等傳)」 97권 「유유구등전(劉幽求等傳)」
요숭 · 송경 유유구 · 종소경 · 곽원진 · 장열
98권 「위지고등전(魏知古等傳)」 99권 「최일용등전(崔日用等傳)」
위지고 · 노회신 · 원건요 · 이원굉 · 두섬 · 한휴 · 배요경 최일용 · 장가정 · 소숭 · 장구령 · 이적지 · 엄정지
100권 「윤사정등전(尹思貞等傳)」
윤사정 · 이걸 · 해완 · 필구 · 소향 · 정유충 · 왕지음 · 노종원 · 이조은 · 배최 · 왕구
101권 「이예등전(李乂等傳)」 102권 「마회소등전(馬懷素等傳)」
이예(李乂) · 설등 · 위주 · 한사복 · 장정규 · 왕구례 · 신체부 마회소 · 저무량 · 유자현 · 서견 · 원행충 · 오긍 · 위술
103권 「곽건관등전(郭虔瓘等傳)」 104권 「고선지등전(高仙芝等傳)」
곽건관 · 곽지운 · 왕군착 · 장수규 · 우선객 · 왕충사 고선지 · 봉상청 · 가서한
105권 「우문융등전(宇文融等傳)」 106권 「이임보등전(李林甫等傳)」
우문융 · 위견 · 양신긍 · 왕홍 이임보 · 양국충 · 장위 · 왕거 · 왕모중
107권 「현종제자전(玄宗諸子傳)」
이종(李琮) · 이영(李瑛) · 이염(李琰) · 이요 · 이완 · 이거(李琚) · 이일(李一) · 이수(李璲) · 이교 · 이민 · 이린(李璘) · 이모 · 이분 · 이기(李琦) · 이환(李環) · 이황 · 이빈 · 이규(李珪) · 이공(李珙) · 이진(李瑱) · 이선(李璿) · 이경(李璥)
108권 「위견소등전(韋見素等傳)」 109권 「풍앙등전(馮盎等傳)」
위견소 · 최원 · 최환 · 두홍점 풍앙 · 아사나사이 · 글필하력 · 흑치상지 · 이다조 · 이사업 · 백효덕
110권 「이광필등전(李光弼等傳)」 111권 「최광원등전(崔光遠等傳)」
이광필 · 왕사례 · 등경산 · 신운경 최광원 · 방관 · 장호 · 고적 · 창최
112권 「이고등전(李暠等傳)」 113권 「묘진경등전(苗晉卿等傳)」
이고(李暠) · 이린(李麟) · 이국정 · 이환(李峘) · 이거(李巨) 묘진경 · 배면 · 배준경
114권 「노경등전(魯炅等傳)」 115권 「최기등전(崔器等傳)」
노경 · 배융 · 내진 · 주지광 최기 · 조국진 · 최관 · 경괄 · 위원보 · 위소유 · 위백옥 · 이승
116권 「숙종·대종제자전(肅宗代宗諸子傳)」
이계(李係) · 이담(李倓) · 이필(李佖) · 이근(李僅) · 이간(李僴) · 이정(李侹) · 이영(李榮) · 이광 · 이수(李倕) · 이사 · 이소(李佋) · 이동(李侗) · 이희 · 이막 · 이하(李遐) · 이술 · 이유(李逾) · 이연(李連) · 이형(李迥) · 이구(李遘) · 이내 · 이신(李迅) · 이선(李選) · 이소(李溯) · 이조 · 이섬 · 이운(李運) · 이우(李遇) · 이휼 · 이통 · 이규(李逵) · 이일(李逸)
117권 「엄무등전(嚴武等傳)」 118권 「원재등전(元載等傳)」
엄무 · 곽영예 · 최녕 · 엄진 · 엄여 원재 ,왕앙, ,이소량, · 왕진 · 양염 · 여간 · 유준
119권 「양관등전(楊綰等傳)」 120권 「곽자의전(郭子儀傳)」 121권 「복고회은등전(僕固懷恩等傳)」
양관 · 최우보 · 상곤 곽자의 복고회은 · 양숭의 · 이회광
122권 「장헌성등전(張獻誠等傳)」
장헌성 · 노사공 · 곡환 · 진한형 · 양조성 · 번택 · 이숙명 · 배주
123권 「유안등전(劉晏等傳)」 124권 「설숭등전(薛嵩等傳)」 125권 「장일등전(張鎰等傳)」
유안 · 제오기 · 반굉 · 왕소 · 이손 설숭 · 영호창 · 전신공 · 후희일 · 이정기 장일 · 유종일 · 소복 · 유혼
126권 「이계등전(李揆等傳)」 127권 「요령언등전(姚令言等傳)」
이계(李揆) · 이함(李涵) · 진소유 · 노악 · 배서 요령언 · 장광성 · 원휴 · 교림 · 장섭 · 장진 · 홍경륜 · 팽언
128권 「단수실등전(段秀實等傳)」 129권 「한황등전(韓滉等傳)」 130권 「왕여등전(王璵等傳)」
단수실 · 안진경 한황 · 장연상 왕여 · 이필 · 최조 · 관파
131권 「이면등전(李勉等傳)」 132권 「이포옥등전(李抱玉等傳)」
이면 · 이고(李皋) 이포옥 · 이포진 · 왕건휴 · 노종사 · 이봉(李芃) · 이징(李澄)
133권 「이성등전(李晟等傳)」 134권 「마수등전(馬燧等傳)」
이성 마수 · 혼감
135권 「노기등전(盧杞等傳)」
노기 · 백지정 · 배연령 · 위거모 · 이제운 · 이실 · 위집의 · 왕숙문 · 정이 · 황보변
136권 「두참등전(竇參等傳)」
두참 · 제영 · 유자 · 노매 · 최손 · 제항
137권 「서호등전(徐浩等傳)」
서호 · 조연 · 유태진 · 이서 · 소설 · 우소 · 최원한 · 우공이 · 여위 · 정운규 · 이익 · 이하(李賀)
138권 「단수실등전(段秀實等傳)」 139권 「육지전(陸贄傳)」 140권 「위고등전(韋臯等傳)」
조경 · 위륜 · 가탐 · 강공보 육지 위고 · 장건봉 · 노군
141권 「전승사등전(田承嗣等傳)」 142권 「이보신등전(李寶臣等傳)」 143권 「이회선등전(李懷仙等傳)」
전승사 · 전홍정 · 장효충 이보신 · 왕무준 · 왕정주 이회선 · 주도 · 유평 · 정일화 · 이전약
144권 「상가고등전(尚可孤等傳)」
상가고 · 이관(李觀) · 대휴안 · 양혜원 · 이원량 · 한유괴 · 가은림 · 두희전 · 울지승 · 형군아 · 양조성 · 장경칙
145권 「유현좌등전(劉玄佐等傳)」
유현좌 · 동진 · 육장원 · 유전량 · 이충신 · 이희열 · 오소성
146권 「설파등전(薛播等傳)」
설파 · 포방 · 이자량 · 이설 · 엄수 · 소흔 · 두아 · 왕위 · 이약초 · 우흔 · 노징 · 양풍 · 정원 · 두겸 · 양조성 · 설비
147권 「두황상등전(杜黃裳等傳)」 148권 「배기등전(裴垍等傳)」
두황상 · 고영 · 두우 배기 · 이보길 · 이번 · 권덕여
149권 「우휴열등전(于休烈等傳)」
우휴열 · 영호환 · 귀숭경 · 유후인 · 해척 · 장천 · 장예 · 유등 · 심전사
150권 「덕종·순종제자전(德宗順宗諸子傳)」
이의(李誼) · 이심(李諶) · 이량 · 이상(李詳) · 이원(李謜) · 이겸 · 이인(李諲) · 이계(李誡) · 이악 · 이함(李諴) · 이경(李經) · 이위(李緯) · 이종(李縱) · 이서(李紓) · 이주(李綢) · 이종(李綜) · 이약 · 이결 · 이상(李緗) · 이구(李絿) · 이기(李綺) · 이현(李絢) · 이훈(李纁) · 이관(李綰) · 이선(李繕) · 이롱 · 이곤 · 이신(李紳) · 이륜 · 이작 · 이집
151권 「고숭문등전(高崇文等傳)」
고숭문 · 이신(伊慎) · 주충량 · 유창예 · 범희조 · 왕악 · 염거원 · 맹원양 · 조창
152권 「마린등전(馬璘等傳)」
마린 · 학정옥 · 왕서요 · 유창 · 이경략 · 장만복 · 고고 · 학자 · 단좌 · 사경봉
153권 「요남중등전(姚南仲等傳)」 154권 「공소부등전(孔巢父等傳)」
요남중 · 유내 · 원고 · 단평중 · 설존성 · 노탄 공소부 · 허맹용 · 여원응 · 유서초 · 장숙 · 웅망 · 백기
155권 「목녕등전(穆寧等傳)」 156권 「우적등전(于頔等傳)」
목녕 · 최빈 · 두군 · 이손 · 설융 우적 · 한홍 · 왕지흥
157권 「왕굉등전(王翃等傳)」 158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왕굉 · 치사미 · 이용(李鄘) · 신비 · 마총 · 위홍경 · 왕언위 무원형 · 정여경 · 위관지
159권 「위차공등전(衛次公等傳)」 160권 「한유등전(韓愈等傳)」
위차공 · 정인 · 위처후 · 최군 · 노수 한유 ,장적 맹교 당구, · 이고(李翱) · 우문적 · 유우석 · 유종원 · 한사
161권 「이광진등전(李光進等傳)」
이광진 · 오중윤 · 왕패 · 이공(李珙) · 이우(李祐) · 동중질 · 양원경 · 유오 · 유면 · 석웅
162권 「반맹양등전(潘孟陽等傳)」
반맹양 · 이소(李翛) · 왕수 · 조화 · 위수 · 정권 · 주지 · 한전의 · 고하우 · 고우 · 최융 · 육선 · 장정보
163권 「맹간등전(孟簡等傳)」 164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맹간 · 호증 · 최원략 · 두원영 · 최홍례 · 이우중 · 왕질 · 노간사 왕파 · 이강(李絳) · 양어릉
165권 「위하경등전(韋夏卿等傳)」 166권 「원진등전(元稹等傳)」
위하경 · 왕정아 · 유공작 · 최현량 · 온조 · 곽승하 · 은유 · 서회 원진 · 백거이
167권 「조종유등전(趙宗儒等傳)」 168권 「위온등전(韋溫等傳)」
조종유 · 두역직 · 이봉길 · 단문창 · 송신석 · 이정(李程) 위온 · 독고울 · 전휘 · 고익 · 풍숙 · 봉오
169권 「이훈등전(李訓等傳)」 170권 「배도전(裴度傳)」
이훈(李訓) · 정주 · 왕애 · 왕번 · 가속 · 서원여 · 곽행여 · 나립언 · 이효본 배도
171권 「이발등전(杜黃裳等傳)」 172권 「영호초등전(令狐楚等傳)」
이발 · 장중방 · 배린 · 이중민 · 이감 · 고원유 · 이한 · 이경검 영호초 · 우승유 · 소면 · 이석
173권 「정담등전(鄭覃等傳)」 174권 「이덕유전(李德裕傳)」
정담 · 진행이 · 이신(李紳) · 오여납 · 이각(李珏) · 이고언 이덕유
175권 「헌종·목종·경종·문종·무종·선종·의종·희종·소종제자전(憲宗穆宗敬宗文宗武宗宣宗懿宗僖宗昭宗諸子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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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권 「이종민등전(李宗閔等傳)」
이종민 · 유위 · 양우경 · 마식 · 이양이 · 위모 · 주지 · 최귀종 · 정숙 · 노상
177권 「최신유등전(崔慎由等傳)」
최신유 · 최공 · 노균 · 배휴 · 양수 · 위보형 · 노암 · 하후자 · 유첨 · 유전 · 조확 · 필함 · 두심권 · 유업 · 두로전
178권 「조은등전(趙隱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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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권 「소구등전(蕭遘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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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권 「주극융등전(朱克融等傳)」
주극융 · 이재의 · 양지성 · 장중무 · 장윤신 · 장공소 · 이가거 · 이전충
181권 「사헌성등전(史憲誠等傳)」 182권 「왕중영등전(王重榮等傳)」
사헌성 · 하진도 · 한윤충 · 악언정 · 나홍신 왕중영 · 왕처존 · 제갈상 · 고병 · 시부 · 주선
183권 「외척전(外戚傳)」
독고회은 · 두덕명 · 장손창 · 무승사 · 위온 · 왕인교 · 오서 · 유성 · 두유 · 왕자안
184권 「환관전(宦官傳)」
양사욱 · 고역사 · 이보국 · 정원진 · 어조은 · 두문장 · 구문진 · 토돌승최 · 왕수징 · 전령자 · 양복광 · 양복공
185권 「양리전(良吏傳)」
위인수 · 장윤제 · 이동객 · 이소립 · 설대정 · 가돈이 · 이군구 · 최지온 · 고지주 · 전인회 · 위기 · 권회은 · 풍원상 · 장엄 · 왕방익 · 설계창 · 배회고 · 장지건 · 양원염 · 예약수 · 이준(李浚) · 양교 · 송경례 · 강사도 · 강순 · 반호례 · 양무겸 · 양인 · 최은보 · 이상은(李尙隱) · 여인 · 소정 · 장연 · 이혜등 · 임적간 · 범전정 · 원자 · 설빈 · 염제미
186권 「혹리전(酷吏傳)」
내준신 · 주흥 · 부유예 · 구신적 · 삭원례 · 후사지 · 만국준 · 내자순 · 왕홍의 · 곽패 · 길욱 · 요소지 · 주이정 · 왕욱 · 길온 · 나희석 · 모약허 · 경우
187권 「충의전(忠義傳)」
하후단 · 유감 · 상달 · 나사신 · 여자장 · 이공일 · 장선상 · 이현통 · 경군홍 · 풍립 · 사숙방 · 왕의방 · 성삼랑 · 윤원정 · 고예 · 왕동교 · 소안항 · 유문준 · 연흠융 · 안금장 · 이징(李憕) · 장개연 · 최무피 · 노혁 · 장청 · 안고경 · 설원 · 장순 · 허원 · 정천리 · 원광정 · 소진 · 부린 · 조엽 · 석연분 · 장비 · 견제 · 유돈유 · 고목 · 가직언 · 유경휴 · 신당
188권 「효우전(孝友傳)」
이지본 · 장지관 · 유군량 · 왕군조 · 조홍지 · 진집원 · 원양 · 배경이 · 배수진 · 이일지 · 최면 · 육남금 · 장수 · 양문정 · 최연 · 정공저 · 나양
189권 「유학전(儒學傳)」
서문원 · 육덕명 · 조헌 · 구양순 · 주자사 · 장사형 · 가공언 · 장후윤 · 곡나율 · 소덕언 · 허숙아 · 경파 · 유백장 · 진경통 · 나도종 · 형문위
고자공 · 낭여령 · 노경순 · 왕원감 · 왕소종 · 위숙하 · 축흠명 · 곽산운 · 유충 · 노찬 · 윤지장 · 서대 · 소변 · 육질 · 풍항 · 위표미 · 허강좌
190권 「문원전(文苑傳)」
공소안 · 원랑 · 하덕인 · 유포 · 채윤공 · 정세익 · 사언 · 최신명 · 장온고 · 유윤지 · 장창령 · 최행공 · 서제담 · 두역간 · 노조린 · 양형 · 왕발 · 낙빈왕 · 등현정 · 곽정일 · 원만경 · 교지지 · 유윤제 · 부가모 · 원반천 · 유헌 · 심전기 · 진자앙 · 송지문 · 염조은 · 가증 · 허경선 · 하지장 · 석예 · 제완 · 왕완 · 이옹(李邕) · 손적 · 이화 · 소영사 · 육거 · 유포 · 최호 · 왕창령 · 맹호연 · 원덕수 · 왕유 · 이백 · 두보 · 오통현 · 왕중서 · 최함 · 당차 · 유분 · 이상은(李商隱) · 온정균 · 설봉 · 이증 · 이거천 · 사공도
191권 「방기전(方伎傳)」
최선위 · 설이 · 견권 · 송협 · 허윤송 · 을불홍례 · 원천강 · 손사막 · 명숭엄 · 장경장 · 이사진 · 장문중 · 상헌보 · 맹선 · 엄선사 · 금양봉 · 장과 · 엽법선 · 현장 · 신수 · 일행 · 상도무
192권 「은일전(隱逸傳)」
왕적 · 전유암 · 사덕의 · 왕우정 · 노홍일 · 왕희이 · 위대경 · 이원개 · 왕수신 · 서인기 · 손처현 · 백이충 · 왕원지 · 반사정 · 유도합 · 사마승정 · 오균 · 공술예
193권 「열녀전(列女傳)」
배숙영 · 경상자 · 위무기 · 두백랑 · 두중랑 · 이현진 · 왕화자
194권 「돌궐전(突厥傳)」 195권 회흘전(回紇傳)」 196권 「토번전(吐蕃傳)」
돌궐 회흘 토번
197권 「남만·서남만전(南蠻·西南蠻傳)」
임읍국 · 파리국 · 반반국 · 정랍 · 수진랍국 · 타원국 · 가릉국 · 타화라국 · 타파등국 · 동사만 · 서조만 · 장가만 · 동여국 · 남조만 · 표국
198권 「서융전(西戎傳)」
니파라국 · 당항 · 고창 · 토욕혼 · 언기국 · 소륵국 · 우전국 · 천축국 · 계빈국 · 발율국 · 강국 · 파사국 · 불름국 · 대식국
199권 「동이·북적전(東夷北狄傳)」
고려 · 백제 · 신라 · 왜국 · 일본 · 철륵 · 거란 · · 실위 · 말갈 · 발해 ·
200권 「안녹산등전(安祿山等傳)」
안녹산 ,안경서 고상 손효철, · 사사명 ,사조의, · 주차 · 황소 · 진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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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서(新唐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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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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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1권 「고조기(高祖紀)」 2권 「태종기(太宗紀)」 3권 「고종기(高宗紀)」
이연(李淵) 이세민 이치
4권 「측천황후·중종기(則天皇后中宗紀)」 5권 예종·현종기(睿宗玄宗紀)」 6권 「숙종·대종기(肅宗代宗紀)」
이현(李顯) · 무조 이단 · 이융기 이형(李亨) · 이예(李豫)
7권 「덕종·순종·헌종기(德宗順宗憲宗紀)」 8권 「목종·경종·문종·무종·선종기(穆宗敬宗文宗武宗宣宗紀)」
이괄 · 이송 · 이순(李純) 이항 · 이심(李湛) · 이앙 · 이염(李瀍) · 이침(李忱)
9권 「의종·희종기(懿宗僖宗紀)」 10권 「소종·애제기(昭宗哀帝紀)」
이최 · 이현(李儇) 이엽 · 이축
※ 11권 ~ 60권은 志에 해당. 61권 ~ 75권은 表에 해당. 신당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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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bgcolor=#a48252><tablewidth=100%> 76·77권 「후비전(后妃傳)」 ||
태목황후 · 문덕황후 · 서혜 · 무조 · 왕폐후 · 화사황후 · 위황후 · 상관소용 · 숙명황후 · 소성황후 · 왕폐후 · 정순황후 · 원헌황후 · 양귀비
장황후 · 장경황후 · 정의황후 · 예진황후 · 소덕황후 · 위씨 · 장헌황후 · 의안황후 · 효명황후 · 공희황후 · 정헌황후 · 선의황후 · 곽귀비 · 왕현비 · 원소황후 · 혜안황후 · 곽숙비 · 공헌황후 · 적선황후
78권 「종실전(宗室傳)」
이도종 · 이도흥 · 이효기 · 이도현 · 이숙량 · 이효협 · 이사훈 · 이진(李晉) · 이유량 · 이침 · 이효공 · 이괴 · 이원 · 이신통 · 이도언 · 이효일 · 이신부 · 이박의 · 이봉자
79권 「고조제자전(高祖諸子傳)」
이건성 · 이현패 · 이원길 · 이지운 · 이원경(李元景) · 이원창 · 이원형 · 이원방 · 이원례 · 이원가 · 이원칙 · 이원의 · 이원궤 · 이봉(李鳳) · 이원경(李元慶) · 이원유 · 이원명 · 이령기 · 이원상 · 이원효 · 이원영
80권 「태종제자전(太宗諸子傳)」
이승건 · 이관(李寬) · 이각(李恪) · 이태 · 이우(李祐) · 이음 · 이운(李惲) · 이정(李貞) · 이신(李愼) · 이효(李囂) · 이간(李簡) · 이복 · 이명
81권 「삼종제자전(三宗諸子傳)」
이충(李忠) · 이효 · 이상금 · 이소절 · 이홍 · 이현(李賢) · 이중윤 · 이중복 · 이중준 · 이헌 · 이총 · 이범 · 이업 · 이융제
82권 「14종제자전(十四宗諸子傳)」
이종(李琮) · 이영(李瑛) · 이염(李琰) · 이요 · 이완 · 이거(李琚) · 이일(李一) · 이수(李璲) · 이교 · 이민 · 이린(李璘) · 이모 · 이분 · 이기(李琦) · 이환(李環) · 이황 · 이빈 · 이규(李珪) · 이공(李珙) · 이진(李瑱) · 이선(李璿) · 이경(李璥) · 이계(李係) · 이담(李倓) · 이필(李佖) · 이근(李僅) · 이간(李僴) · 이정(李侹) · 이영(李榮) · 이광 · 이수(李倕) · 이사 · 이소(李佋) · 이동(李侗) · 이막 · 이하(李遐) · 이술 · 이유(李逾) · 이연(李連) · 이형(李迥) · 이구(李遘) · 이내 · 이신(李迅) · 이선(李選) · 이소(李溯) · 이조 · 이섬 · 이운(李運) · 이우(李遇) · 이휼 · 이통 · 이규(李逵) · 이일(李逸) · 이의(李誼) · 이심(李諶) · 이량 · 이상(李詳) · 이원(李謜) · 이겸 · 이인(李諲) · 이계(李誡) · 이악 · 이함(李諴) · 이경(李經) · 이위(李緯) · 이종(李縱) · 이서(李紓) · 이주(李綢) · 이종(李綜) · 이약 · 이결 · 이상(李緗) · 이구(李絿) · 이기(李綺) · 이현(李絢) · 이훈(李纁) · 이관(李綰) · 이선(李繕) · 이롱 · 이곤 · 이신(李紳) · 이륜 · 이작 · 이집 · 이녕 · 이운(李惲) · 이종(李悰) · 이흔 · 이오 · 이각(李恪) · 이경(李憬) · 이열 · 이순(李恂) · 이역(李懌) · 이음(李愔) · 이협 · 이담(李憺) · 이충(李㤝) · 이췌(李惴) · 이척(李惕) · 이탄 · 이책 · 이주(李湊) · 이용(李溶) · 이보(李普) · 이휴복 · 이언양 · 이집중 · 이성미 · 이영(李永) · 이종검 · 이준(李峻) · 이현(李峴) · 이기(李岐) · 이역(李嶧) · 이차 · 이한 · 이경(李涇) · 이관(李灌) · 이자(李滋) · 이근(李沂) · 이택 · 이윤 · 이흡 · 이예(李汭) · 이문 · 이옹(李澭) · 이일(李佾) · 이건 · 이길 · 이간(李侃) · 이보(李保) · 이의(李倚) · 이진(李震) · 이승 · 이유(李裕) · 이우(李祤) · 이계(李禊) · 이인(李禋) · 이의(李祎) · 이비 · 이기(李祺) · 이진(李禛) · 이상(李祥) · 이정(李禎) · 이기(李祁) · 이복 · 이희(李禧) · 이고(李祜) · 이제 · 이희(李祐)
83권 「제제공주전(諸帝公主傳)」
동안공주 · 장사공주 · 양양공주 · 평양소공주 · 고밀공주 · 장광공주 · 장사공주 · 방릉공주 · 구강공주 · 노릉공주 · 남창공주 · 안평공주 · 회남공주 · 진정공주 · 형양공주 · 단양공주 · 임해공주 · 관도공주 · 안정공주 · 상락공주 · 양성공주 · 여남공주 · 남평공주 · 수안공주 · 장락공주 · 예장공주 · 북경공주 · 보안공주 · 동양공주 · 임천공주 · 청하공주 · 난릉공주 · 진안공주 · 안강공주 · 신흥공주 · 성양공주 · 합포공주 · 금산공주 · 진양공주 · 상산공주 · 신성공주 · 의양공주 · 고안공주 · 태평공주 · 신도공주 · 의성공주 · 정안공주 · 장녕공주 · 영태공주 · 안락공주 · 성안공주 · 수창공주 · 안흥소회공주 · 형산공주 · 회양공주 · 대국공주 · 양국공주 · 설국공주 · 식국공주 · 금선공주 · 옥진공주 · 곽국공주 · 영흥공주 · 천장공주 · 영국공주 · 흥당공주 · 서평공주 · 낭령공주 · 광화공주 · 창락공주 · 수춘공주 · 장녕공주 · 연경공주 · 정락공주 · 낙온공주 · 영청공주 · 위국문의공주 · 안화공주 · 보강공주 · 창원공주 · 창녕공주 · 금화공주 · 인수공주 · 영수공주 · 당흥공주 · 영평공주
84권 「이밀전(李密傳)」 85권 「왕두전(王竇傳)」
이밀 ,선웅신 조효징, 왕세충 · 두건덕
86권 「설이이유고서전(薛李二劉高徐傳)」 87권 「소보심이양전(蕭輔沈李梁傳)」
설거 ,설인고이궤 · 유무주 · 고개도 · 유흑달 · 서원랑 소선 · 보공석 · 심법흥 · 이자통 ,주찬 임사홍 장선안, 양사도(梁師都) ,유계진,
88권 「유배전(劉裴傳)」 89권 「굴돌울지장진당단전(屈突尉遲張秦唐段傳)」
유문정 · 배적 굴돌통 · 울지공 · 장공근 · 진경 · 당검 · 단지현
90권 「이유은허정시임구전(二劉殷許程柴任丘傳)」 91권 「온황보이이강최전(溫皇甫二李姜崔傳)」
유홍기 · 은개산 · 유정회회 · 허소 · 정지절 · 시소 · 임괴 · 구화 온대아 · 황보무일 · 이습지 · 강모 · 최선위 · 이사진
92권 「두감왕이원나왕전(杜闞王李苑羅王傳)」 93권 「이이전(二李傳)」
두복위 · 감릉 · 왕웅탄 · 장사귀 · 이자화 · 원군장 · 나예 · 왕군곽 이정(李靖) · 이적
94권 「후장설전(侯張薛傳)」 95권 「고두전(高竇傳)」 96권 「방두전(房杜傳)」
후군집 · 장량 · 설만균 고검 · 두위 방현령 · 두여회
97권 「위징전(魏徵傳)」 98권 「왕설마위전(王薛馬韋傳)」 99권 「이이대유최전(二李戴劉崔傳)」
위징 왕규 · 설수 · 마주 · 위정 이강(李綱) · 이대량 · 대주 · 유계 · 최인사
100권 「진양봉배우문정권염장강장전(陳楊封裴宇文鄭權閻蔣姜張傳)」
진숙달 · 양공인 ,양사도(楊師道), · 봉륜 · 배구 · 우문사급 · 정선과 · 권만기 · 염입덕 · 장엄 · 위홍기 · 강사도 · 장지건
101권 「소우전(蕭瑀傳)」 102권 「잠우이저요영호전(岑虞李褚姚令狐傳)」
소우 잠문본 · 우세남 · 이백약 · 저량 · 요사렴 · 영호덕분
103권 「소위손장전(蘇韋孫張傳)」 104권 「우고장전(于高張傳)」
소세장 · 위운기 · 손복가 · 장현소 우지녕 · 고풍 · 장행성
105권 「장손저한내이상관전(長孫褚韓來李上官傳)」
장손무기 · 저수량 · 한원 · 내제 · 이의염 · 상관의
106권 「두이최고곽조최양노이유이유손형전(杜二崔高郭趙崔楊盧二劉李劉孫邢傳)」
두정륜 · 최지온 · 고지주 · 곽정일 · 조홍지 · 최돈례 · 양홍례 · 노승경 · 유상도 · 이경현 · 유덕위 · 손처약 · 형문위
107권 「부여진전(傅呂陳傳)」 108권 「유배누전(劉裴婁傳)」
부혁 · 여재 · 진자앙 유인궤 · 배행검 · 누사덕
109권 「최양두종축왕전(崔楊竇宗祝王傳)」
최의현 · 양재사 · 두회정 · 종초객 · 축흠명 ,곽산운, · 왕여
110권 「제이번장전(諸夷蕃將傳)」
사대내 · 풍앙 · 아사나사이 · 아사나충 · 집실사력 · 글필하력 · 흑치상지 · 이근행 · 천남생 · 이다조 · 논궁인 · 손유정 · 울지승 · 상가고 · 배분
111권 「곽이장삼왕소설정당전(郭二張三王蘇薛程唐傳)」
곽효각 · 장검 · 왕방익 · 소열 · 설인귀 · 정무정 ,정명진왕효걸 · 당선 · 장인원 · 왕준
112권 「왕한소설왕류풍장전(王韓蘇薛王柳馮蔣傳)」 113권 「당장서전(唐張徐傳)」
왕의방 · 한사언 · 소안항 · 설등 · 왕구례 · 류택 · 풍원상 · 장흠서 당림 · 장문관 · 서유공
114권 「최서소두로전(崔徐蘇豆盧傳)」 115권 「적학주전(狄郝朱傳)」
최융 · 서언백 · 소미도 · 두로흠망 적인걸 · 학처준 · 주경칙
116권 「이왕위육이이두전(二王韋陸二李杜傳)」 117권 「배유위이길전(裴劉魏李吉傳)」
왕침 · 위사겸 · 육원방 · 왕급선 · 이일지 · 두경전 · 이회원 배염 · 유의지 · 위현동 · 이소덕 · 길욱
118권 「장위한송신이이배전(張韋韓宋辛二李裴傳)」 119권 「무이가백전(武李賈白傳)」
장정규 · 위주 · 한사복 · 송무광 · 신체부 · 이발 · 배린 · 이중민 · 이감 무평일 · 이예(李乂) · 가증 · 백거이
120권 「오왕전(五王傳)」
환언범 ,이복업 습수 설계창, · 양원염 · 경휘 · 최현위 · 장간지 · 원서기
121권 「유종최이왕전(劉鐘崔二王傳)」 122권 「위위곽전(魏韋郭傳)」
유유구 · 종소경 · 최일용 · 왕거 · 왕모중 위원충 · 위안석 · 곽진
123권 「이소로위조화전(李蕭盧韋趙和傳)」 124권 「요송전(姚宋傳)」
이교 · 소지충 · 노장용 · 위거원 · 조언소 · 화봉요 요숭 · 송경
125권 「소장전(蘇張傳)」 126권 「위로이두장한전(魏盧李杜張韓傳)」
소괴 · 장열 위지고 · 노회신 · 이원굉 · 두섬 · 장구령 · 한휴
127권 「장원배전(張源裴傳)」
장가정 · 원건요 · 배요경
128권 「소윤필이정왕허반예석제전(蘇尹畢李鄭王許潘倪席齊傳)」
소향 · 윤사정 · 필구 · 이걸 · 정유충 · 왕지음 · 허경선 · 반호례 · 예약수 · 석예 · 제한
129권 「배최노이왕엄전(裴崔盧李王嚴傳)」 130권 「배양송양최이해전(裴陽宋楊崔李解傳)」
배수진 · 최면 · 노종원 · 이조은 · 왕구 · 엄정지 배최 · 양교 · 송경례 · 양창 · 최은보 · 이상은(李尙隱) · 해완
131권 「종실재상전(宗室宰相傳)」 132권 「유오위장유침전(劉吳韋蔣柳沈傳)」
이적지 · 이현(李峴) · 이면 · 이이간 · 이정(李程) · 이석 · 이회 유자현 · 오긍 · 위술 · 장예 · 유방 · 심기제
133권 「이곽양왕장우전(二郭兩王張牛傳)」 134권 「우문위양왕전(宇文韋楊王傳)」
곽건관 · 곽지운 · 왕군착 · 장수규 · 왕충사 · 우선객 우문융 · 위견 · 양신긍 · 왕홍
135권 「가서고봉전(哥舒高封傳)」 136권 「이광필전(李光弼傳)」 137권 「곽자의전(郭子儀傳)」
가서한 · 고선지 · 봉상청 이광필 곽자의
138권 「이이마노전(二李馬路傳)」 139권 「방장이전(房張李傳)」 140권 「최묘이배여전(崔苗李裴呂傳)」
이사업 · 마린 · 이포옥 · 노사공 방관 · 장호 · 이필 최원 · 묘진경 · 배면 · 배준경 · 여인
141권 「최등위위이한노고전(崔鄧魏衛李韓盧高傳)」
최광원 · 등경산 · 최관 · 위소유 · 위백옥 · 이징(李澄) · 한전의 · 노종사 · 고하우
142권 「이양최류위로전(李楊崔柳韋路傳)」
이린(李麟) · 양관 · 최우보 · 유혼 · 위처후 · 노수
143권 「고원이위설최대왕서치신전(高元李韋薛崔戴王徐郗辛傳)」
고적 · 원결 · 이승 · 위륜 · 설각 · 최한형 · 대숙륜 · 왕굉 · 서신 · 치사미 · 신비
144권 「내전후최엄전(來田侯崔嚴傳)」 145권 「원반여양엄두전(元王黎楊嚴竇傳)」 146권 「이이전(二李傳)」
내진 · 전신공 · 후희일 · 최녕 · 엄여 원재 · 왕진 · 여간 · 양염 · 엄정 · 두참 이서균 · 이용(李鄘)
147권 「삼왕노신풍삼이곡이로전(三王魯辛馮三李曲二盧傳)」
왕사례 · 노경 · 왕난득 · 신운경 · 풍하청 · 이봉(李芃) · 이숙명 · 곡환 · 왕건휴 · 노군 · 이원소 · 노사매
148권 「영호장강이유전왕우사전(令狐張康李劉田王牛史傳)」
영호창 · 장효충 · 강일지 · 이유(李洧) · 유옹 · 전홍정 · 왕승원 · 우원익 · 사효장
149권 「유제오반왕이전(劉第五班王李傳)」 150권 「이상조최제로전(李常趙崔齊盧傳)」 151권 「관동원조두전(關董袁趙竇傳)」
유안 · 제오기 · 반굉 · 왕소 · 이손(李巽) 이계 · 상곤 · 조경 · 최조 · 제앙 · 노매 관파 · 동진 · 원자 · 조종유 · 두역직
152권 「장강무이송전(張姜武李宋傳)」 153권 「단안전(段顏傳)」 154권 「이성전(李晟傳)」
장일 · 강공보 · 무원형 · 이강(李絳) · 송신석 단수실 · 안진경 이성,이소(李愬),
155권 「마혼전(馬渾傳)」
마수 · 혼감
156권 「양대양이이한두형전(楊戴陽二李韓杜邢傳)」
양조성 · 대휴안 · 양혜원 · 이원량 · 이관(李觀) · 한유괴 · 두희전 · 형군아
157권 「육지전(陸贄傳)」 158권 「위장엄한전(韋張嚴韓傳)」
육지 위고 · 장건봉 · 엄진 · 한홍
159권 「포이소설왕오정육노유최전(鮑李蕭薛樊王吳鄭陸盧柳崔傳)」
포방 · 이자량 · 소흔 · 설파 · 번택 · 왕위 · 오주 · 정권 · 육긍 · 노탄 · 유성 · 최융
160권 「서여맹유양반최위전(徐呂孟劉楊潘崔韋傳)」 161권 「장조이정서왕풍유전(張趙李鄭徐王馮庾傳)」
서호 · 여위 · 맹간 · 유백추 · 양풍 · 반맹양 · 최원략 · 위수 장천 · 조연 · 이서 · 정운규 · 서대 · 왕중서 · 풍항 · 유경휴
162권 「요독고고위단여허설이전(姚獨孤顧韋段呂許薛李傳)」
요남중 · 독고급 · 고소련 · 위하경 · 단평중 · 여원응 · 허맹용 · 설존성 · 이손
163권 「공목최유양마전(孟簡等傳)」
공소부 · 목녕 · 최빈 · 유공작 · 양우릉 · 마총
164권 「귀해삼최노이설위호정이왕은전(歸奚三崔盧二薛衛胡丁二王殷傳)」
귀숭경 · 해척 · 최연 · 노경량 · 설빈 · 위차공 · 설융 · 호증 · 정공저 · 최홍례 · 최현량 · 왕질 · 은유 · 왕언위
165권 「삼정고권최전(三鄭高權崔傳)」 166권 「가두영호전(賈杜令狐傳)」
정여경 · 정순유 · 고영 · 정인 · 권덕여 · 최군 가탐 · 두우 · 영호초
167권 「백배최위이이황보왕전(白裴崔韋二李皇甫王傳)」
백지정 · 배연령 · 최손 · 위거모 · 이제운 · 이실 · 황보박 · 왕파
168권 「위왕육유유정전(韋王陸劉柳程傳)」 169권 「두배이위전(杜裴李韋傳)」
위집의 · 왕숙문 · 육질 · 유우석 · 유종원 · 정이 두황상 · 배기 · 이번 · 위관지
170권 「이고이주이유범이왕맹조이임장전(二高伊朱二劉范二王孟趙李任張傳)」
고숭문 · 이신(伊愼) · 주충량 · 유창예 · 범희조 · 왕악 · 맹원양 · 왕서요 · 유창 · 조창 · 이경략 · 임적간 · 장만복 · 고고 · 학비
171권 「이오왕양조고유석전(李烏王楊曹高劉石傳)」 172권 「우왕이두범전(于王二杜范傳)」
이광진 · 오중윤 · 왕패 · 양원경 · 조화 · 고우 · 유면 · 석웅 우적 · 왕지흥 · 두겸 · 두아 · 범정전
173권 「배도전(裵度傳)」 174권 「이이원우양전(二李元牛楊傳)」
배도 이봉길 · 원진 · 우승유 · 이종민 · 양사복
175권 「두유이장양웅백전(竇劉二張楊熊柏傳)」 176권 「한유전(韓愈傳)」
두군 · 유서초 · 장우신 · 양우경 · 장숙 · 웅망 · 백기 한유
177권 「전최이위이고풍삼이노봉정경전(錢崔二韋二高馮三李盧封鄭敬傳)」
전휘 · 최함 · 위표미 · 고익 · 풍숙 · 이우중 · 이고(李翺) · 노간사 · 고원유 · 봉오 · 정훈 · 경회 · 위박 · 이경양
178권 「유분전(劉賁傳)」
유분
179권 「이정이왕가서전(李鄭二王賈舒傳)」
이훈(李訓) · 정주 · 왕애 · 가속 · 서원여 · 왕파 · 곽행여 · 한약 · 나립언 · 이효본 · 고사옹 · 이정소
180권 「이덕유전(李德裕傳)」 181권 「진삼이조유전(陳三李曹劉傳)」
이덕유 진이행 · 이신(李紳) · 이양이 · 조확 · 유첨 · 이울
182권 「이이최소이정이노위주이배유조왕전(二李崔蕭二鄭二盧韋周二裴劉趙王傳)」
이고언 · 이각 · 최공 · 소업 · 정숙 · 노균 · 노간방 · 위종 · 주지 · 배휴 · 유전 · 조은 · 배탄 · 정연창 · 왕부 · 노광계
183권 「필최유육정주한전(畢崔劉陸鄭朱韓傳)」
필함 · 최언소 · 유업 · 육의 · 정계 · 주박 · 한악
184권 「마양노노전(馬楊路盧傳)」 185권 「정이왕위장전(鄭二王韋張傳)」
마식 · 앵수 · 노암 · 노휴 정전 · 왕탁 · 왕휘 · 위소도 · 장준
186권 「주왕등진유조이양고전(周王鄧陳劉趙二楊顧傳)」
주보 · 왕처존 · 등처눌 · 진유 · 유거용 · 조덕인 · 양수량 · 양성 · 고언랑
187권 「이왕제갈이맹전(二王諸葛李孟傳)」 188권 「양시주손전(楊時朱孫傳)」
왕중영 · 제갈상 · 이한지 · 왕경무 · 맹방립 양행밀 · 시부 · 주선 · 손유
189권 「고조전주전(高趙田朱傳)」 190권 「삼유성두종장왕전(三劉成杜鐘莊王傳)」
고인후 · 조주 · 전군 · 주연수 유건봉 · 성예 · 두홍 · 종전 · 유한굉 · 장웅 · 왕조 · 유지겸
191·192·193권 「충의전(忠義傳)」
하후단 · 유감 · 상달 · 경군홍 · 여자장 · 왕행민 · 나사신 · 장도원 · 이육덕 · 고예 · 안금장 · 왕동교 · 오보안 · 이징(李憕) · 노혁 · 장개연 · 최무피 · 안고경 · 가순 · 장순 · 허원 · 남제운 · 뇌만춘 · 요은 · 정천리 · 방견 · 장흥 · 채정옥 · 부령기 · 유내 · 맹화 · 장비 · 주증 · 장명진 · 석연분 · 오서 · 고목 · 가직언 · 신당 · 황갈
194권 「탁행전(卓行傳)」
원덕수 · 권고 · 견제 · 양성 · 사공도
195권 「효우전(孝友傳)」
이지본 · 장지관 · 유군량 · 왕소현 · 임경신 · 지숙재 · 정원사 · 무홍도 · 정잠요 · 원양 · 배경이 · 양문정 · 심계전 · 허백회 · 진집원 · 장수 · 서원경 · 여상안 · 양열 · 목종세 · 후지도 · 정구라 · 하징수
196권 「은일전(隱逸傳)」
왕적 · 손사막 · 전유암 · 맹선 · 왕우정 · 왕희이 · 이원개 · 위대경 · 무유서 · 백이충 · 오긍 · 노홍 · 오균 · 반사정 · 사마승정 · 하지장 · 진계 · 장지화 · 공술예 · 육우 · 최근 · 육구몽
197권 「순리전(循吏傳)」
위인수 · 진군빈 · 장윤제 · 이소립 · 손지원 · 설대정 · 가돈이 · 전인회 · 배회고 · 위경준 · 이혜등 · 나상 · 위단 · 노홍선 · 설원상 · 하역우
198·199·200권 「유학전(儒學傳)」
서문원 · 육덕명 · 조헌 · 안사고 · 공영달 · 구양순 · 주자사 · 장사형 · 장후윤 · 개문달 · 곡나율 · 경파 · 나도종 · 낭여령 · 서제탐 · 심백의 · 노경순 · 왕원감 · 왕소종 · 팽경직 · 노찬 · 윤지장 · 유충 · 마회소 · 공약사,공소안, · 저무량 · 원행충 · 진정절 · 시경본 · 노이빙 · 왕중구 · 조동희 · 담조 · 위융 · 진경(陳京) · 창당 · 임온 · 위공숙 · 허강좌
201·202·203권 「문원전(文苑傳)」
원랑 · 하덕인 · 채윤공 · 사언 · 최신명 · 유연우 · 장창령 · 최행공 · 두심언 · 왕발 · 원만경 · 이적(李適) · 위원단 · 유윤제 · 심전기 · 송지문 · 염조은 · 윤원개 · 유헌 · 이옹(李邕) · 여향 · 왕한 · 손적 · 이백 · 왕유 · 정건 · 소영사 · 소원명 · 이화 · 맹호연 · 유태진 · 소설 · 우소 · 최원한 · 우공이 · 이익 · 노륜 · 구양첨 · 이하(李賀) · 오무릉 · 이상은(李商隱) · 설봉 · 이빈(李頻) · 오융
204권 「방기전(方伎傳)」
이순풍 · 견권 · 원천강 · 설이 · 명숭엄 · 상헌보 · 엄선사 · 두생 · 장과 · 강무 · 상도무
205권 「열녀전(列女傳)」
배숙영 · 왕난영 · 경상자 · 위무기 · 하후쇄금 · 왕아족 · 왕옥영 · 요아 · 두백랑 · 두중랑 · 이묘법 · 왕화자 · 사소아 · 봉순
206권 「외척전(外戚傳)」
독고회은 · 무사확 · 위온 · 주인궤 · 왕인교 · 양국충 · 이소(李翛) · 정광
207·208권 「환관전(宦官傳)」
양사욱 · 고역사 · 정원진 · 어조은 · 유정양 · 토돌승최 · 마존량 · 구사량 · 양복광 · 이보국 · 왕수징 · 유극명 · 전령자 · 양복공 · 유계술
209권 「혹리전(酷吏傳)」
삭원례 · 내준신 · 후사지 · 왕홍의 · 곽홍패 · 요소지 · 주이정 · 왕욱 · 최기 · 모약허 · 경우
210권 「번진위박전(藩鎭魏博傳)」 211권 「번진진기전(藩鎭鎭冀傳)」
전승사 · 사헌성 · 하진도 · 악언정 · 나홍신 이보신 · 왕무준 · 왕정주
212권 「번진노룡전(藩鎭盧龍傳)」
이회선 · 주도 · 유평 · 주극융 · 이재의 · 장중무 · 장윤신 · 이무훈 · 이전충 · 유인공
213권 「번진치청횡해전(藩鎭淄青橫海傳)」 214권 「번진선무창의택로전(藩鎭宣武彰義澤潞傳)」
이정기 · 정일화 · 이전략 유현좌 · 오소성 · 이우 · 이비
215권 「돌궐전(突厥傳)」 216권 「토번전(吐蕃傳)」
돌궐 토번
217권 회흘전(回紇傳)」 218권 사타전(沙陀傳)」
회흘 사타
219권 북적전(北狄傳)」 220권 동이전(東夷傳)」
거란 · 해족 · 실위 · 발해 · 말갈 고려 · 백제 · 신라 · 왜국 · 일본 · 유귀국
221권 「서융전(西戎傳)」
니파라국 · 당항 · 동여국 · 고창 · 토욕혼 · 언기 · 구자 · 소륵 · 갈반타국 · 우전국 · 천축국 · 계빈국 · 강국 · 안국 · 동안 · 동조 · 서조 · 중조 · 자지국 · 미말 · 굴상니가 · 화심 · 갈상나 · 나색파 · 달밀 · 영원국 · 대발률 · 토화라 · 읍달국 · 구란국 · 월저연국 · 범연국 · 석한나 · 식익 · 사몰 · 구밀 · 호밀 · 개실밀 · 골돌 · 소비 · 다미 · 이오성 · 사자국 · 파사국 · 구위 · 불름국 · 대식국 · 달만
222권 「남만전(南蠻傳)」
남조 · 임읍 · 파리국 · 반반국 · 정랍 · 수진랍국 · 타원국 · 가릉국 · 타화라국 · 타파등국 · 동사만 · 서조만 · 장가만 · 표국
223권 「간신전(奸臣傳)」
허경종 · 이의부 · 부유예 · 이임보 · 진희열 · 노기 · 최윤 · 최소위 · 유찬 ,장현휘 장정범 씨숙종 주우공,
224권 「반신전(叛臣傳)」
복고회은 · 주지광 · 양숭의 · 이회광 · 진소유 · 이기(李錡) · 이충신 · 교림 · 고병 · 주매 · 왕행유 · 진경선 · 이거천
225권 「역신전(逆臣傳)」
안녹산 · 고상 · 손효철 · 이희열 · 사사명 · 주차 · 황소 · 진종권 · 동창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a48252><tablebgcolor=#a48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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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한국

14.2. 중국

14.3. 일본

14.4. 금석문

15. 고구려/문화재

※ 비석 문화재 목록은 금석문 문단 참조.

15.1.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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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21e1f,#fff> 성곽 <colbgcolor=#666> 환런현 <colbgcolor=#fff,#191919><colcolor=#373a3c,#ddd>오녀산성
지안시 국내성 | 환도산성
왕릉 우산하 고분군 장군총 장군총 1호 배총 | 태왕릉 광개토대왕릉비 | 임강총 | 우산하 0호| 우산하 992호 | 우산하 2110호
마선구 고분군 천추총 | 서대총 | 마선구 626호 | 마선구 2100호 | 마선구 2378호 | 마선구 2381호
산성하 고분군 산성하 전창 36호
칠성산 고분군 칠성산 211호 | 칠성산 871호
귀족묘 및
벽화분
우산하 고분군 우산하 3319호 | 산연화총 | 마조총 | 오회분 1호 | 오회분 2호 | 오회분 3호 | 오회분 4호 | 오회분 5호 | 사회분 1호 | 사회분 2호 | 사회분 3호 | 사회분 4호 | 우산하 2112호 | 사신총 | 각저총 | 무용총
산성하 고분군 절천정총 | 귀갑총 | 형총 | 제총 | 왕자묘
하해방 고분군 환문총 | 모두루
장천 고분군 장천 1호 | 장천 2호 | 장천 4호
* 표시가 있으면 벽화분.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지 않은 왕릉, 귀족묘, 벽화묘 등에 대해서는 통구 고분군, 고구려왕릉 문서를 참고.
※ 각 고분군 구분에 대해서는 통구 고분군 문서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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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21e1f,#fff> <colbgcolor=#fff,#1c1d1f><colcolor=#373a3c,#ddd>동명왕릉과 진파리 고분군 | 호남리 사신총
덕화리 1호분 | 덕화리 2호분 | 덕화리 3호분
강서삼묘 | 덕흥리 벽화분 | 약수리 벽화분 | 수산리 벽화분 | 용강대총 | 쌍영총
안악 1호분 | 안악 2호분 | 안악 3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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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 성과 요새

남한지역의 고구려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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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한탄강 유역 고구려 보루군 <colbgcolor=#ffffff,#1f2023>연천 호로고루ㆍ연천 당포성ㆍ연천 은대리성ㆍ연천 무등리 1·2보루ㆍ파주 덕진산성
양주분지 고구려 보루군 양주 태봉산 보루ㆍ양주 독바위 보루ㆍ양주 천보산 보루군ㆍ양주 불곡산 보루군ㆍ양주 도락산 보루군
아차산 일대 보루군 아차산 보루ㆍ용마산 보루ㆍ홍련봉 보루ㆍ시루봉 보루ㆍ수락산 보루ㆍ망우산 보루
불암산 보루ㆍ배봉산 보루[a]
한강 이남 고구려 점령 성곽 서울 몽촌토성안성 도기동 목책 유적ㆍ대전 월평동 산성ㆍ청원 남성골 산성ㆍ진천 대모산성[b]충주 장미산성[b]
[ 각주 ]

[a] 아차산 일원은 아니지만 서울 권역에 소재[b] 축조와 점령의 주체에 대해서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가 거론되고 있는 상태이다. 그나마 대모산성에는 치 시설이있어 고구려라고도 하지만 수 킬로 둘레를 갖는 큰 성벽에 치는 단 1개만 있을 뿐이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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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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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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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계루부 고씨 왕실의 후손이라는 가문이 존재한다. 한국에는 동명성왕 고주몽을 시조로, 보장왕의 아들인 고인승을 중시조로 하는 횡성 고씨가 있으며, 일본에는 보장왕의 아들인 고약광의 후손 고마씨가 있고, 중국의 경우에는 장수왕을 시조로 하는 요양 고씨가 있다.

18.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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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고구려의 대(對)중국 전쟁 목록

20. 고구려부흥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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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멸망 직후부터 활발하게 부흥운동이 일어났는데 부흥운동에 투신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검모잠, 고안승, 고연무 등이 있다. 이때의 부흥운동 세력은 신라에 귀순해 보덕국을 세우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고구려 유민들에 의하여 30년 뒤에는 발해가, 200년 뒤에는 고려가 건국되며 전체적으로 보면 성공한 부흥운동이 되었다.

21. 고구려/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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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기타

  • 해외에서는 통일된 한국(Korea)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남한과 북한 지역의 역사를 분리해서 인식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이유로 고구려도 북한의 역사로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158] 평양 등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관련이 깊은 도시를 비롯해서 상대적으로 남한보다 북한 지역에 고구려의 흔적이 훨씬 많은 것도 이러한 인식을 낳는 이유다. 실제 북한에서도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한반도 북부의 고대 왕조를 계승한 것은 북한이라고 규정하고 교육 및 선전을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할 목적도 내포되어 있다.
  • 한국사 교과 과목 시험에서 고구려는 다음과 같은 사료로 등장하고는 한다. 대가들은 농사를 짓지 않으므로, 좌식자[159]가 10,000여 명이나 되는데, 하호들이 먼 곳에서 양식, 고기, 소금을 운반하여 그들에게 공급한다. 그 나라의 동쪽에 큰 굴이 하나 있는데, 수혈[160]이라 한다. 감옥이 없고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들이 의논하여 사형에 처하고 처자는 노비로 삼는다. 이 사료에서 고구려인 걸 알아차려야하며 고구려가 아닌 부여나 동예 등 오답형으로 종종 출제된다. 처음보는 수험생은 당황할 수도 있다.
  • 1999년 4월 동양 철학을 전공한 교수인 김경일[161]은 유교 문화와 한국 사회를 비판한 책인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을 출간하여 국내에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서 김경일 교수는 "고구려가 있던 만주는 러시아 영토인 연해주와 가까우며, 아울러 만주의 중심 도시인 하얼빈에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세워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만주에는 백인종인 슬라브인, 즉 러시아인들이 이주하여 살았으니 고구려인들은 러시아인과 혼혈이 된 집단일 가능성이 높다."라는 뉘앙스가 담긴 내용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아무리 세계사 전공자가 아니라고 해도 교수로서의 자질이 의심될 정도로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우선 러시아는 고구려가 멸망한 후인 서기 9세기에나 등장한 국가이며, 연해주가 러시아 땅이 된 때는 1860년 베이징 조약이 체결되고 나서였고, 러시아인들의 이주는 그 이후의 일이다. 아울러 시베리아에 러시아인들이 진출한 시기는 아무리 빨리 잡아도 서기 16세기 중엽에서야 가능했다. 그러니 고구려가 활동하던 기원전 1세기에서 서기 7세기[162]까지 러시아인들의 조상격인 슬라브족들은 시베리아 차지도 못했을 때였으며, 고구려에 백인종의 유입자체는 있었지만 주로 토하라인, 소그드인 계통의 종족들이었지 슬라브족은 아니었다 , 당연히 고구려인들이 러시아인들과 혼혈이 될 일도 없었다. 아마 연해주나 시베리아 동부가 원래부터 러시아 땅인 것으로 잘못 알고서 이런 터무니없는 오류를 저지른 듯하다.[163][164]
  • 역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고구려 관련 사료가 많이 번역 및 정리되면서, 단순히 "진취적인 기상", "넓은 땅" 수준으로만 인식되던 고구려 역시 대중 사이에 독특한 인식 내지 그 시대 강대국 중 하나이자 진짜 상남자 국가(...)의 인식으로 자리잡았다. 안악 3호분의 마교를 연상시키는 괴물 그림과 빛이 바래 소름끼치게 변한 벽화 등을 두고 마교국가, 한민족 막나가던 시절(...)이라는 등과 같은 반응을 보이거나, 약탈지의 농사가 잘되길 바라는 축제나 결혼할 때 수의부터 맞췄던 풍습 등을 두고 "내 조상이니까 웃지 진짜"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 고구려가 남하 정책할때 왜 삼국통일을 안했는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이때 나제 동맹으로 못 했다. 게다가 중국과 몽골계, 유목민족 등도 신경 써야하는데 마냥 전쟁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신라의 삼년산성만 보더라도 엄청난 요새성이다.
  • 고구려의 멸망은 명백히 한민족의 역량을 축소시킨 비극이었다. 단순히 강역이 축소되었다는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의 귀중한 평야지대인 서북한과 함흥평야가 무려 2세기 이상 방기되어 전근대 국력의 지표인 인구의 성장에 제약이 걸렸고, 또 그 서북한을 지키는 방어선인 요동을 고구려라는 패권국가의 부재 속에 성장한 북방민족들로부터 영영 되찾지 못해 기껏 개발한 서북한이 다시 전란에 휩쓸리기를 장장 1천년 간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서북한 평야지대는 11세기 들어 어느정도 개척을 진행했지만 함흥평야를 온전히 한민족 국가의 강역으로 확보하는 것은 14세기 쌍성총관부의 수복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23. 같이 보기

2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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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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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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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세기 말 쌍영총 연도동벽화 거마행렬도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고선지 실크로드 개척사-기창을 든 개마갑주무사와 석반부철모' 원전 이미지와 복원 이미지 발췌. 《삼국사기<근초고왕 본기>에서는 "고구려 군대가 비록 수는 많으나 모두 수를 채운 가짜 병사입니다. 그 중 날쌔고 용감한 병사는 오직 붉은 깃발의 군대뿐이니, 만일 그들을 먼저 쳐부수면 그 나머지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악 3호분 벽화에서도 기수가 붉은 색 깃발을 들고 있으며, 개마무사 부대가 붉은 깃발을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붉은 색 깃발을 군기(軍旗)로 사용한 것은 명확해 보인다. 다만 근대적인 국기(國旗)의 개념이 없었던 만큼 국가의 상징은 아니었을 것이다.[2] 고구려 건국 연도에 대한 다른 견해는 고구려/역사 문서의 건국 연도 문서로.[3] 무진(戊辰)년 계해(癸亥)월 임신(壬申)일로, 음력 10월 21일, 율리우스력에서는 11월 30일이다(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변환계산). 제3차 고구려-당 전쟁 중 평양성 전투에서 평양성이 함락됨으로써 고구려가 멸망했다.[4] 엄밀히 얘기하면 현도군은 지역민들의 반발로 기원전 75년경 치소인 고구려현을 포함하여 흥경 일대로 이현했고, 이후 압록강 유역에는 비류국, 졸본부여, 조나국, 구다국 등의 소국들이 군장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이후 졸본 지역에서 부여계 유민인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것으로 보고 있다.[5] 나당전쟁고구려부흥운동의 결과로 고구려 유민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통치기관이다. 단, 아직 건재하던 때 약 22,800에서 33,200여 호(戶)에 달하는 고구려 유민들을 영주와 중원 일대로 강제 이주시켰다.[6] 영주 일대에서 탈출한 걸걸중상대조영의 고구려 유민 세력, 그리고 만주에 잔류한 고구려 유민들 외에도 속말말갈을 비롯한 친고구려 성향의 말갈 부족들이 힘을 모아 건국했다.[7] 소고구려의 실존여부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다만 발해선왕 대에 이르러 복속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8] 발해 건국 세력 이외에도 패서(浿西)와 요동(遼東)에서 활동한 남북의 고구려부흥운동 세력들. 남부에서는 한성검모잠안승이, 북부에서는 북부여성의 고정문과 오골성의 고연무 등이 있다. 나당전쟁 당시 부흥운동이 꺾이자 이들 대다수는 신라에 합류했다.[9] 잘 알려진 동예, 옥저를 비롯해 비류국, 조나국, 개마국, 구다국, 주나국, 해두국, 행인국, 황룡국, 대수맥, 소수맥, 양맥 등 수많은 소국들이 초기 고구려 형성 과정 중 병합되었다.[10] 전북 일대의 보덕국민, 호로하 일대와 그 이북인 패서의 고구려인, 영동 일대의 고구려 유민, 그리고 요동 등 북방에서 대량으로 귀부한 반당(反唐) 성향의 고구려인들이 있다. 신라에 합류한 고구려인들은 대부분 고구려부흥운동 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왕건 등 이들의 후손인 패서 호족들은 훗날 고려를 건국함으로써 250여 년만에 부흥운동의 결실을 맺게 된다.[11] 동명성왕~동명성왕. 《삼국사기》 〈온조왕 본기〉, 《삼국유사》 〈고구려〉편 기록. 두 기록에 따르면 동명왕은 처음엔 국호를 졸본부여로 한 것으로 나온다. 반면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는 아예 처음부터 국호가 고구려로 정해진 것으로 나온다.[12] 동명성왕~장수왕. 구려, 고리 등. 초기 고(구)려는 신라처럼 국가명이 공인된 한자 표기가 없었고 구전으로만 전해졌던 것으로 보인다.[13] 장수왕~보장왕. 이 국호는 고구려 멸망 후에도 700년 동안 발해 고왕, 태봉 궁예, 고려 태조가 이어갔으며, 그 이후에도 한자문화권 밖의 전 세계에서 한국의 대외적인 명칭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다. 만일 충주 고구려비가 최근의 연구 결과대로 광개토대왕 대에 세워진 것이라면 '고려' 국호는 광개토대왕 대부터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14] 영남의 신라와 그 주변부 그리고 거란이나 실위, 말갈 등 내몽골, 헤이룽장성, 연해주 남부의 유목, 수렵인들에게 지배력을 행사했었다. 고고학자 손보기는 몽골 동남부 수흐바타르 아이막의 다리강가에서 고구려 유적으로 가늠되는 유적들을 발견한 바 있다. # 장수왕 대에 유연과의 지두우 지역 분할 시도와 연관짓기도 하는데 다만 후속 연구는 수십년 째 전무하다.[15] 건국 당시 내륙 국가였던 고구려가 비로소 서해로 진출하게 되었다. 서해 진출의 의의는 중국 및 백제 방향으로의 진출이 해상으로도 가능해졌다는 것이며, 고구려가 수군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이때다. 반면 고구려가 동해안 방면으로 진출하게 된 때는 57년 옥저를 복속했을 때이다.[16] 기원전 108년 고조선이 멸망한 후, 한반도 북부에 한사군이 설치된 이래로 장장 400여 년간 지속된 걸로 추정되는 이민족의 지배를 청산한 역사적인 사건이 바로 낙랑군과 대방군을 축출한 것이다. 한사군을 완전히 축출한 것은 404년 광개토대왕때지만, 광개토대왕이 마지막으로 축출한 현도군은 이미 요동 지역으로 옮겨진 상태였기 때문에 당시 고구려의 영토 밖에 있었다. 따라서 현도군은 축출했다기 보다는 침공해서 점령에 성공했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 이 사건이 백제에 끼친 영향력도 상당한데, 낙랑군·대방군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오던 백제는 낙랑인과 대방인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대량으로 흘러들어온 신진 문물을 바탕으로 문화를 크게 발전시켰다. 훗날 백제가 일본으로 문화를 전파할 기틀을 이때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사건이 한반도 역사에 끼친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17] 광개토대왕릉비에는 홀본으로 기록됨.[18] →환도성→국내성[19] →장안성. 국내성-환도성은 평시 수도-전시 수도의 개념으로 거의 일체화되어 있었으며, 고구려 장안성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성과 동일하게 평양에 위치한 성이기에 애초에 《삼국사기》부터 '장안성은 평양성이라고도 한다'며 기록되어 있다. 이 때문에 장안성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 기록엔 고구려는 졸본에서 건국하여 국내성, 평양성의 순서로 도읍을 옮겼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같은 책 〈고구려 본기〉에 의하면 고구려는 졸본에서 건국하고, 유리명왕 대에 국내성(국내 위나암)으로 천도한 후 산상왕 대에 환도성으로 천도했고, 이후 동천왕 대에 조위관구검의 침공으로 환도성이 불타 평양성(장수왕 대의 평양성과는 다른 곳으로, 《삼국사기》 〈지리지〉의 남평양이 이곳일 가능성이 있다.)으로 천도하게 된다. 이후 고국원왕 대에 국력을 회복하여 국내성을 수리하고 환도성으로 다시 도읍을 옮겨오나, 전연모용황의 침공을 받아 평양 동쪽 황성(혹은 평양 동황성)으로 도읍을 옮겨갔다. 이후 장수왕 대에 평양성으로 천도하고, 평원왕 대에 장안성으로 도읍을 옮겨 멸망할 때까지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20]요사》 〈지리지〉에는 국내성 수도 시절 변란 때 임시 수도였던 환도성이 고구려의 중도였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이 기록은 '환도'(丸都)의 '환'(丸)을 '중'(中)으로 잘못 표기한 기록으로 보인다.[21] 패서 지역에 속하는 현재의 황해도 재령군 인근으로 비정된다. 평양성, 국내성과 함께 수도 역할을 분담하기 위해 설치됐으며 안승검모잠이 이 곳을 근거지로 삼아 고구려부흥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나당전쟁이 끝나고서는 통일신라가 차지했고, 이후의 고구려계 패서 호족들을 비롯한 일대의 고구려 유민들이 이 지방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워 고려를 건국하게 된다.[22] 지배층 및 주류민족.[23] 흑수말갈, 속말말갈, 백산말갈 등.[24] 거란, 실위, 선비[25] 고구려/종교, 무속 문서로.[26] 소수림왕 시기부터[27] 창업군주, 비류국, 행인국, 북옥저 정벌[28] 동부여, 개마국 병합, 낙랑군 정벌[29] 동옥저, 갈사국, 조나국 정벌, 중앙집권체제 마련[30] 진대법 실시[31] 서안평, 낙랑군, 대방군, 현도군 정벌[32] 불교 공인, 태학 설립, 율령 반포[33] 우리나라 최초로 연호 사용, 만주(숙신)와 한강 이북 점령, 백제, , 가야 연합군 격파[34] 평양성 천도, 국토 확장, 5부 개설[35] 양나라, 동위와 수교[36] 고구려-수 전쟁 발발, 신집 편찬, 담징 보냄[37] 고구려-당 전쟁 발발, 망국의 군주[38] 연노부 → 계루부. 건국 초기에는 연노부의 권력이 막강해 왕위를 맡았으나 계루부가 진입한 뒤, 초대 동명성왕 혹은 늦어도 제6대 태조대왕부터는 계루부 고씨가 왕위를 독점하기에 이르렀다. 동명성왕 또는 태조대왕 이전의 군주들이 해(解)씨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해씨 고구려설 문서로.[39] 다만 영토로 놓고 보면 발해가 고구려보다 약 1.5배 더 넓다.[40]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전한, 후한에서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많은 국가가 등장했다.[41] '고려태왕'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충주 고구려비가 397년(영락 7년)에 건립되었다는 주장이 있다.[42]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인 '가오리방쯔'(高丽棒子)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 욕설은 중국의 동북공정 기반 고구려 역사 왜곡을 반박하는 근거자료 중 하나로 쓰이게 된다.[43] 물론 상대적인 의미이다. 현재 한국의 한자음은 구어 사용의 변화에 따라 변화한 중국 한자음과 달리 대체로 당나라 시절의 장안음이 큰 변화 없이 고착된 것으로 본다. 상세한 것은 아래로.[44] 삼국시대 고구려를 가리킬 때.[45] 돈황문서 〈북방 몇몇 나라의 왕통에 관한 기술〉(Pelliot Tibetain 1283)[46] 돌궐 〈퀼 테긴 비문〉[47] 《Historiam》, 자세한 설명은 해당 항목으로.[48] 8세기 후반에 쿠차 출신 승려 리언(利言)이 편찬한 《범어잡명》에 기록된 국명이다. 무구리(畝俱理)라는 음차 표기도 같이 기재되어 있다.[49] 한자 음차로는 '구구타의설라'(俱俱陀醫說羅), 의미는 '계귀'(鷄貴). 즉 '쿠쿠테'는 ''이라는 의미이고(닭의 울음소리에 대한 의성어라는 설이 있다.) '스바라'는 '귀하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닭의 신을 받들어 모시기에 닭의 깃을 꽂아 장식으로 삼는다는 해설과 함께 기록된 호칭이다. - 《대당서역구법고승전》[50] 물론 초창기에도 '구려', '고례(高禮)' 등의 2음절 이름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애초 이름이 '고려'와 비슷한 그 무엇이었고, 앞의 고(高)는 접두어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51] 한편 이병도 교수는 고(高)의 한국어 고유 어휘인 '수리'와, 고을을 뜻하는 '골'을 연결시켜 고구려의 고유어 명칭을 '수릿골'이라고 추정하기도 하였다.[52] 일각에서는 이를 현대 한국어 '고을'과 연관짓기도 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중세 한국어에서 'ᄀᆞ옳'이었으며, 중세 한국어 자료인 용비어천가에서는 '조ᄏᆞᄫᆞᆯ(粟村)'이라는 지명 표기가 나와 본래 어형이 '*ᄀᆞᄫᆞᆯ'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ㅸ'이 'ㅂ'이었을 고대 한국어 시기의 자료에서도 기부리(己富利: 일본서기), 거벌(居伐: 울진 봉평리 신라비) 등으로 문증된다. 따라서 어중에 ㅂ이 있었던 '고을'은 고구려어 '*고로(溝漊)' 및 '*골(忽)'과는 다른 어원을 가지는 것으로 추정된다.[53] 단, 근래 한국 사학계에서는 후고구려 대신 최종 국호인 태봉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54] 구글 검색결과도 서로 비슷한 편이다.[55]고려사》 〈윤관 열전〉.[56] 《고려사》 〈묘청 열전〉. 대화궁 팔성당에 모신 신의 명칭에 붙어 있다.[57] 태자사낭공대사비, 《대각국사 문집》.[58] 《동국이상국집》 전집 제38권 〈제소정방 장군문〉.[59] 《발해 국호 연구》, 발해유민 연구 저서 참조.[60] 지금은 단순히 그렇게 발전한 건 아니란 게 증명되었지만 사학, 고고학이 많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대에는 그렇게 여겨졌다.[61] 여기에서 평양성의 별칭을 마한의 수도라는 뜻의 마읍(馬邑)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후 발해 및 발해 부흥운동으로 생긴 후속국가들도 자신들이 마한에서 유래했다고 여긴다. 이에 대해서는 고구려가 장수왕대에 백제를 달달 털어서 대부분의 국토를 장악한 뒤, 마한도 (거의) 정복했다고 인식되면서 마한=고구려가 되었다는 가설도 있다.[62] 이 경우 그냥 삼한을 통틀어서 진한이라 지칭한 것 같다. 한반도쪽을 가리키던 진국+한국을 적당히 섞어서 그렇게 부를 수도 있기 때문.[63] 마한이 백제와 동치되었을 때는 삼한 중 남은 게 변한밖에 없었기 때문에 고구려가 변한에서 나왔다 여겨진 것으로 보인다.[64] 다른 권들에도 고구려가 언급될 때마다 려(麗/驪)자의 음가를 력(力)과 지(知)의 반절로 적은 주석이 달려있다.[65] 서길수, 「'高句麗'와 '高麗'의 소릿값(音價)에 관한 연구」, 『고구려연구』 27, 2007, 27-105.[66] 고대 튀르크어에서 b와 m의 발음은 통용되므로 정확한 발음은 '뫼퀼리(Möküli)'가 된다.[67] 비슷한 사례로 역사서 《삼국사기》의 제목이 사실 '삼국사'이며 '삼국사기'는 일제가 조작한 명칭이라는 주장도 궤를 같이한다. 삼국사기 문서 참고.[68] 통일 중국이 타민족과 총력전을 하고서 진 경우는 여수전쟁, 요송 전쟁, 금송 전쟁 등이 있다. 몽골계 민족인 요나라는 통일 중국인 송나라에 선빵을 쳐서 수도인 개봉부까지 점령했고, 여진계 민족인 금나라는 화북을 통채로 먹었다. 요, 금을 중국사로 넣어버리는 중국 중심적 사관 때문에 두 전쟁을 한족과 다른 이민족의 국가가 중국과 총력전을 벌였다는 인식을 잊기 쉽지만 요, 금부터는 이전의 한족으로 흡수된 침투왕조와 달리 한족과 다른 민족 정체성을 확립한 정복왕조라는 사관이 학계의 주류설이며, 송은 명백히 한족의 통일왕조로 중원에 영토를 걸친 요, 금이 공존한다고 해서 중국의 분열기라고 할 수 없다.[69] 고구려 이후로도 한반도 왕조 국가들의 힘은 충분히 강했고, 실제로 세계적으로 한반도 왕조보다 강한 국가는 몇 되지 않았지만, 고구려처럼 통일 중원 왕조와 대등하게 패권을 쟁패하려고 드는 패기를 부릴 정도는 절대로 아니었다. 중국 왕조들이 고구려 시대를 기준으로 한국의 국력을 평가하는 것은 시종일관 과대평가였다.[166] 고구려의 이후 왕조들 중 군사적으로 고평가받는 고려만 해도 거란의 침략에 멸망 직전까지 내몰렸는데, 고구려는 거란과 같은 북방 유목민족들을 통제하고 제어했으며 심지어 복속시켜 번방으로 두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군사력도 세계 순위권에 들지만, 중국군과 직접 일대일 비교하기에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른다.[70] 그 예시로, 고구려가 억누르고 있던 주요 봉속국들이었던 거란, 실위와 고막해, 말갈은 예맥계 왕조가 북방 통제에서 손을 떼자마자 각각 요나라, 몽골 제국, 금나라로 분화하여 동북아시아 역사를 통째로 뒤집어 놨다. 이들을 직접 제어하고 심지어 복속시켰던 고구려의 저력은 북방으로부터의 침입을 막아내는 것에 온 나라의 국력을 쏟아부어도 모자랐던 고려, 조선 등 이후 왕조들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71] 남제의 연호, 서기 489년, 장수왕 77년[72] 풀어쓰자면 남제가 '뭐? 북위면 모를까 고구려와 맞먹으라고?'라고 따지자 북위가 '이 정도도 많이 대접해주는 거니 고마운 줄 알어…'라고 면박을 주는 상황이다. 실제로도 따지고보자면 남조의 국력이 고구려 북위 어느쪽에 가깝냐면 전자에 훨씬 가깝기도 하고[73] 正始, 북위의 연호, 서기 504~507년, 문자왕 13~16년[74] 생몰년 499~515. 북위의 8대 황제 선무제[75] 마노 혹은 옥[76] 탐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류는 신라이다. 신라는 예로부터 제이드(옥)의 주요 산지였지만, 제주도에서는 제이드나 애것(마노)이 나지 않는다.[77] 얼핏 보면 '백제랑 물길이 설쳐서 공물 못 바치겠습니다.'라는 고구려를 북위가 '니 구역은 니가 알아서 해야지…'라고 타이르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는 말갈과 백제를 포함한 중국 동쪽의 세계를 고구려가 관장한다는 인식도 은근히 드러나는 은유이기도 하다. 관념적으로는 천하에 중화질서 하나로만 흘러가지만 실제로는 아니라는 것을 너도 나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78] 645년 당나라 태종의 고구려 침공 당시 고구려에서 이에 맞서 15만의 대병력을 동원한 모습이다. 중국의 기록은 물론 역사서에서 이와 같이 적군의 위용을 기록자 스스로도 공포스럽게 기술한 경우는 손에 꼽힌다. 대개 적군의 진영을 두고 어떤 진을 쳤다, 혹은 어디에 진을 쳤다는 식으로 기술하였고, 그 위용을 당대인들이 진심으로 두려워했다고 해도 대개 "~~하였으므로 XX가 두려워하였다"라는 식으로 기술하게 마련이다. 반면 주필산 전투에서 고구려의 15만 대군을 마주한 당나라는 직접적인 감평 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들이 느낀 감정을 기록에 그대로 투영하였으며, 이것은 당시 당나라인들에게 고구려군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공포성이 매우 보편적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처럼 정사 기록에서 적군의 위용 자체를 직접적으로 공포스럽게 표현한 경우는 사서를 통틀어도 한나라 시기의 흉노에게서만 나타난다.[79] 단, 통일중원왕조와 반세기 이상 전쟁을 이어나갈 수 있는 국력을 가진 나라자체가 동아시아에선 고구려 외엔 거의 없었다. 또 전쟁의 결과로 고구려만 국력을 소모한 것이 아니라 수나라는 아예 망했고, 당나라 역시 태종이후로 대외 전략에 막대한 소모와 지장이 생겨버렸다.[80] 그리고 강대국이 된 후기에도 이러한 시절의 전통에 따라 평시의 평지성과 전시의 산성의 이중적인 수도 체계를 유지하였고, 강력한 수성 능력과 방어 체제를 운영하였다.[81] 북쪽에 자리잡은 고구려가 남쪽의 백제, 신라에 비해서 단위 면적당 생산력이 떨어졌음은 자명하지만 하지만 워낙 영토가 넓은 탓에 실질적 가용 면적이 적은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땅들 중에서도 요동과 서북한은 한반도 남부보다는 못해도 충분히 좋은 땅이었으며 전성기 한정으로는 한강 유역을 비롯한 한반도 중부까지도 보유했다. 동시대 중국의 하북 지역과 화춘 평야, 대대적인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강남에 비했을 때 고구려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지만, 중국을 제외하면 손가락 안에 꼽힌다.[82] 지배 성격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들이 강성해지지 못하고, 상국으로 대접받으며 어떨 때는 고구려의 전쟁에 동원될 정도의 역량이다.[83] 북위는 고구려를 상대하기 위해 대륙 서쪽 농우 지역의 기병을 동원하려다가 그만두었고, 당나라도 서쪽과 남쪽 끝에 해당하는 사천성, 강남 일대까지 쥐어짜다가 이에 반발한 농민들의 반란에 직면하기도 했다. 수나라는 무리한 고구려 원정으로 인해 아예 나라가 멸망해버렸다.[84] 당나라가 고구려에 정신이 팔린 사이 토번이 급성장해 토번이 장안성을 초토화시키는 상황을 초래했으며, 이는 신라와 전쟁을 벌인 나당전쟁에서 열세인 신라에게 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안사의 난을 기점으로 한 당나라절도사 봉건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85]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였고 국호를 그대로 물려받았기에 주변국들에게 사실상 고구려 시즌2로 여겼다. 이를 실리적인 이유로 인정하지 않은 나라가 바로 거란족의 요나라였고, 나중엔 외교 담판으로 인정하게 된다.물론 그렇다고 옛날 고구려 땅을 돌려주진 않았지만.[86] 고구려는 몽골의 직계조상인 몽올실위를 통제한 전적이 있기에 당대 몽골인들에게 있어 고구려는 '옛날 자기 상전 노릇하던 나라'이기도 했다. 쿠빌라이 칸이 고구려를 복속시켰다고 기뻐한 것은 단순히 고구려의 이름값이 높아서 그런 게 아니라 이런 역사적 관계에서 기인한다.[87] 다만 이후 카다안의 침입 당시 쿠빌라이 칸한테 "당태종도 고구려에게 패했고 우리도 너희를 굴복시키는데 매우 큰 힘을 쏟았는데, 왜 지금은 그깟 도적떼에 쩔쩔매는가?"라고 디스당한다.[88] 다만 규모의 차이가 현격했을 뿐, 신라, 고려, 조선도 유목민 출신 용병을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성계의 가별초 역시 여진족과 왜구 등이 섞인 다국적 군사집단이었고, 사르후 전투 때에도 다수의 친조선파 내지 반 누르하치파 여진인들이 길잡이는 물론 전투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고구려처럼 제후국으로 거느리고 수천 단위의 병력을 징집해 끌어오는 위력은 결코 아니었다.[89] 물론 이것은 21세기 국제질서와 6세기의 국제질서와 경제 체제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진 것에 있다. 대한민국이 전근대적 내지 제국주의적으로 사고해, 상당한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북한을 없애 버리겠다고 작정한다면, 북한은 단기간 안에 파멸을 면키 어렵다. 단지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그 정도의 필요성을 못 느낄 뿐이다. 물론 그런 신경전을 중국 상대로 직접 했던 고구려와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말이다.[90] 지방 5부의 경우 묘지명 및 각종 기록 등을 근거로 하여 후기에는 여러 개의 주(州) 제도로 확장 발전되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지방 각 부를 대표하는 장관이었던 욕살/도독이 매우 가까운 요동성건안성 등 근거리의 큰 성들에 동시에 배치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정설은 없는 상태이긴 하지만 국토를 동등하게 나누기에는 고구려의 인구 및 주요 도시는 주로 서쪽에 분포되어 있었으며, 주요 전선도 후기로 가면 북쪽과 동쪽은 이미 정리되고 서쪽과 남쪽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행정수요에 있어서도 편차가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91] 흑수말갈이 안거골부의 서북쪽에 위치한다는 사료들의 기록들과는 상반되게 중국과 한국의 거의 모든 연구자들이 안거골부를 흑수말갈의 서남쪽에 비정하 것과 조금 다르게 그려져 있다.[92] 도독부에 직속한 현이 있어, 주 단위로 볼 경우 9도독부 역시 주에 해당한다.[93] 영양왕 본기에서 고구려로 진격하는 수군의 좌 12군은 누방(鏤方), 장잠(長岑), 명해(溟海), 개마(蓋馬), 건안(建安), 남소(南蘇), 요동(遼東), 현도(玄菟), 부여(扶餘), 조선(朝鮮), 옥저(沃沮), 낙랑(樂浪) 방면으로, 우 12군은 점선(黏蟬), 함자(含資), 혼미(渾彌), 임둔(臨屯), 후성(候城), 제해(提奚), 답돈(踏頓), 숙신(肅愼), 갈석(碣石), 동이(東暆), 대방(蔕方), 양평(襄平) 방면으로 나와있다.[94] 호당 구성원의 수를 5명으로 잡으면 약 350만의 인구가 집계된다.[95] 신라, 발해, .[96] 왜국으로 망명한 백제부흥군 수뇌부 일부와 당나라로 끌려간 12,807명을 제외한 인구의 절대 다수가 신라에 편입된 백제인들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백제인들처럼 고구려인들도 오늘날 현대 한국인, 나아가 한민족의 직계 조상인 것은 사실이지만 '다수'는 맞더라도 백제인들처럼 '절대 다수'가 한민족의 역사권에 편입된 것은 아니었다.[97] 참고로 당나라에 끌려간 백제인들은 다시 고구려의 건안성으로 옮겨지는데(소백제), 이후 발해요동반도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발해에 흡수되었다고 추정된다.[98] 정확히는 패서 호족과 주민. 검모잠 등이 주도한 고구려부흥운동 세력의 실질적인 후계 집단이다. 전라북도 일대로 남하한 보덕국의 고구려인들은 현지에 동화되었고 영동의 고구려인들은 패서의 고구려인들만큼 유의미한 세력체를 형성하지 못했다. 대개는 고려의 건국 이후 합류하는 식이었다.[99] 고구려인들이 삼한일통을 실질적으로 성공시켜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00] 호로하(瓠盧河), 즉 임진강 일대와 그 이북인 송악, 정주, 파해평사현 등을 비롯한 경기 북부, 고구려 삼경(三京) 중 하나인 한성(漢城)과 고구려의 수도권인 패서 지역에 해당되는 황해도 전체와 평안남도의 일부, 그리고 영동 일대 등이 있다. 진흥왕 대의 정복 전쟁의 결과로 신라에 귀속된 국원성(國原聖)이나 남평양(南平壤) 등 한강 이남의 고구려인들은 논외로 한다.[101] 삼국사기 기준으로 연정토의 망명 당시 따라나선 귀신(貴臣), 즉 고위 관료들은 집과 땅을 하사받고서 서라벌에 정착하였다고 한다.[102] 670년대 석문 전투와 호로하 전투 패배를 기점으로 고구려부흥운동을 후원하던 신라에 귀부한 집단과는 별개의 무리로, 이들은 보덕국을 따로 세워 대당 항쟁을 남쪽 지역인 백제 영토에서 이어나갔다.[103] 검모잠의 무리들로 일컬어지는 패서요동의 고구려 부흥군. 당시 고구려부흥운동은 안시성부터 오늘날 파주까지 고구려 전역(全域)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만주 북부에 위치한 부여성(扶餘城)의 대수령(大守令)이었던 고정문(高定問)은 당나라군과 치열하게 싸우다 전사할 정도였다. 이처럼 고구려 백성 69만 8천여 호(戶)를 쉽사리 통제하지 못하면서 은 계속 애만 먹다가 발해 건국을 시점으로 고구려의 영토 대부분을 상실하고 만다.[104] 신형식 교수의 『통일신라사』 및 각종 논문 근거 등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백산말갈 출신으로 비정된다. 신라에 합류해 구서당 중 흑금서당을 구성한 말갈족들도 있었으나, 예맥계 비중이 속말말갈보다도 대단히 높았고 아예 인구로 유입된 다른 말갈 계열까지 예맥화시켜버릴 정도로 토착 문화 발전도가 높은 백산말갈과 동일시되기에는 어렵다. 백산말갈 항목 참고.[105] 신문왕 대에 완성된 중앙군 체제인 9서당 가운데 말갈족의 흑금서당까지 합하면 총 네 서당이 고구려계들로 구성되었다. 나머지 셋은 신라인, 둘은 백제인으로 구성되었다. 고구려인들로 구성된 부대는 황금서당, 벽금서당, 그리고 적금서당이 있으며 고구려인들과 함께 신라에 망명한 말갈인들로 구성된 흑금서당도 있었다. 넓은 의미의 고구려계를 여러 분류로 구분했는데 신라에 언제 어떻게 유입됐는지에 따라 집단이 구분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분할통치(디바이드 앤 룰, 소위 갈라치기)의 의도도 배제하기는 힘들다.[106] 삼국통일전쟁나당전쟁의 여파로 수많은 백성들이 전쟁으로 내몰려 사상당한 것을 감안하면 신라로서는 인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삼국을 통일할 실리적 이유가 있었다. 신라가 인구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당나라의 개입 이전까지 양면전쟁을 치를 수 있었던 데에는 유능한 명군들과 뛰어난 명장들의 활약, 그리고 소백산맥이라는 험준하고 강력한 방어망으로 둘러싸인 덕택이 컸다. 하지만 김유신이 사망하고 그와 함께했던 신라의 황금세대도 늙어가자 나당 전쟁을 기점으로 그 단물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상황이었다. 거기에다 신라 본토 바깥의 전쟁에서는 소맥산맥의 도움은커녕 오히려 동고서저라는 한반도의 지형 특성상 지리적 방어막 역할을 제한적으로밖엔 못 해주는 구릉지나 평야에 최대한 인구를 때려박으며 전쟁을 치러야 했다. 나당전쟁 초창기 부족한 인구를 메우기 위해서 신라가 당장 조치한 일로는 투항한 고구려백제 귀족에 대한 관등 및 관직 하사 외에도 김품일, 김문영, 천존, 죽지 등을 위시로 한 웅진도독부 정벌이 있었다. 이들 넷이서 옛 백제의 심장부이자 수도권이었던 웅진도독부의 82성(城)을 취한 뒤 해당 성읍들의 지배층과 백성들을 모조리 신라 내지로 이주시켰을 정도로 신라는 나름 절박했다.[107] 황해남도 재령군으로 비정. 고구려의 삼경(三京) 중 하나로서 평양성, 국내성과 어깨를 나란히했던 대성(大城)이였기 때문에 다수의 인구가 집중되어 있었다. 현대 한국과 비교하자면 경인 지역의 일부로 취급되는 인천광역시 같은 위상이라고 보면 쉽다.[108] 서울특별시하고 인천광역시를 제외한 나머지 수도권 지역인 경기도 같은 위상이다. 본래는 낙랑군대방군의 영역이었지만 미천왕 대에 고구려가 정복하면서 성장한 배후지다. 장수왕 대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됨에 따라 요동, 국내성 일대와 더불어 고구려의 핵심 영토이자 실질적인 수도권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109] 북부에서는 부여성(扶餘城)의 고정문(高定問)이나 오골성(烏骨城)의 고연무(高延武)와 같이 책성 • 안시성 • 요동성 • 신성 등 일대의 대성(大城)과 성읍들이 고구려 부흥세력으로서 대당 항쟁을 이어나가고 있었다.[110] 주로 요동(遼東)압록강 일대, 그리고 책성(柵城) 등 동만주(東滿州) 일대의 고구려 유민들로, 고구려부흥운동나당전쟁을 촉발시킨 신라군의 요동 공격 및 일시적 점유 과정에서 고연무(高延武)가 이끌던 오골성(烏骨城) 주민들처럼 신라로 남하한 이들이다. 이들은 나당전쟁 기간에 걸쳐 꾸준히 신라에 대거 유입되었다.[111] 于時日本餘噍, 據扶桑以逋誅; 風谷遺甿, 負盤桃而阻固.
"이때 日本(일본)의 남은 백성은 扶桑(부상)에 의지하여 주벌을 피하고 있고, 風谷(풍곡)의 남은 백성들은 盤桃(반도)를 의지하여 굳세게 저항했다."
예군 묘지명 中
[112] 석문 전투와 호로하 전투 이후 신라에 귀부한 고구려 부흥군 세력 등.[113] 당나라 영주에서 탈출한 무리 가운데 발해에 합류하지 않은 무리와 더불어 안동도호부에 잔류하던 요동의 고구려인들.[114] 역설적이게도 나말여초에 이르러 신라가 잦은 민란, 천재지변(가뭄, 홍수, 지진 등), 삼림파괴, 그리고 혼란한 정치 상황으로 쇠락하고 인구가 급감할 때, 패서 일대는 비교적 번영을 구가하면서 인구가 크게 증가하였다. 윤순옥, 황상일 (삼국사기를 통해 본 한국 고대의 자연재해와 가뭄주기).[115] 선덕왕 시절에 신라인들을 일부 패서로 사민시킨 바 있지만 원(原)신라 지역이 쇠락하면서 찰산후 박직윤(朴直胤)처럼 패서(浿西)로 자발적으로 이주한 왕경인(王京人)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들의 경우 현지의 고구려계 주민 사회에 동화되면서 고구려의 관직명인 대모달(大謨達)을 자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반대로 고구려 유민 사회에서도 신라 문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되면서 후에는 박(朴, 백제계지만 반남 박씨순천 박씨가 차용 사례의 대표로 들어진다), 김(金, 동주/서흥 김씨) 등의 신라식 성씨들을 차용하는가 하면, 신라식 관등 체계를 유지하기도 하였다. 왕건의 아버지였던 패서의 고구려 유민인 왕륭사찬을 지냈다. 마찬가지로 왕건의 조상이면서 고구려 유민이었던 자 가운데 스스로 골품제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각간(角干)을 자처한 두은점 등이 있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를 무려 성골장군(...)이라고 자칭하는 경우도 있었다.[116] 예를 들어 신라의 오소경(五小京) 가운데 하나인 남원소경(南源小京)이 보덕국 유민들을 이치시키면서 설치되었다. 요충지인 소경이니만큼 친신라 고위층을 중심으로 사민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금마저와 마찬가지로 남원소경의 전신인 고룡군도 백제 유민들의 저항이 거셌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남원소경은 고승들이 많이 배출되기로 유명했고, 거문고 명인 등의 예술인들 또한 많이 배출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신라계가 아니라 출셋길이 막히고 지방호족으로 전락한 고구려계 귀족들이 보덕국을 통해 남원소경에도 전수된 고구려의 유산을 거름삼아 문화예술 및 종교 분야로 많이 진출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117] 물론 일부는 전주 최씨나 일부 성씨들처럼 뿌리가 북방에 기인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이뿐만이 아니라 대략 당대쯤부터 시작하면서 중국을 기원으로 삼는 한국 성씨들의 대부분은 고구려, 백제 유민 계열의 성씨라는 견해가 있는데, 유민 출신으로서 보다 유리한 대우를 받기 위해 중국계를 자처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있다. 심지어 당시 당나라로 망명한 고위 귀족이었던 고흠덕(高欽德) 가문의 경우도 상나라의 충신 비간의 후손을 자처한 바가 있다.[118] 통일신라 당시 영동 지방은 원(原)신라 지역이 아닌 예맥의 땅 혹은 영역으로 취급되었다. 사실 이쪽 지역은 실직국이라는 독자적인 나라가 있기도 했고 영서 지방의 맥국을 비롯해 기원을 따지면 동예의 후예로 엄연히 고구려의 가까운 친척이긴 해도 약간 다른 정체성 또한 있었다. 그래서 후삼국시대에는 꾸준히 고구려 계승을 주장한 패서호족과는 별개로 태봉이라는 아예 다른 정체성을 주장한 궁예의 홈그라운드가 되기도 했다. 물론 신라 정부에서는 상기했다시피 그냥 예맥인들이 살고 있는 고구려의 옛 영역으로 봤고 궁예가 몰락한 뒤에는 좀 남쪽에 있던 왕순식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저항 없이 고려에 흡수되었다.[119] 사천 전투평양성 전투 당시 전쟁 포로로 유입된 집단 등.[120] 송악 출신의 고구려계 해상 호족인 왕륭의 아들로, 고려도경 등에 따르면 고구려 귀족의 후예다.[121] 고구려부흥운동의 결과로 세워진 고려는 고구려가 이전에 달성하지 못했던 신라와 백제의 병합을 이루는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발해 유민들을 짧게는 수십년에서 길게는 이백여년에 걸쳐 대거 수용하면서 삼한 내의 개별적인 종족 정체성을 고구려쪽에 가깝게 단일화하는데 성공하였다. 물론 고려 후기로 가서는 삼국을 모두 일정하게 계승했다는 의식이 강해지면서 고구려에 편중된 계승 의식은 희석되고 특히 고조선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또한 고조선은 한국사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였기에 몽골 제국의 침탈로 인한 우울하고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역사가 유구하다는 자존심을 위해 더더욱 강조되기도 했다. 그러나 고조선 또한 역시 평양을 기반으로 했던 왕조였기에 후대에도 삼국 중 고구려와의 관련성이 가장 강조되었고 그래서 해모수는 아예 시조 단군과 동일한 신격으로서 합쳐지게 된다. 이런 인식에 힘입어 동명성왕은 단군의 아들로서 같은 사당에 합사되었다. 또한 고구려 당대에도 이미 단군에게 고조선을 이어받았다는 전설이 있던 기자를 신으로서 섬기기도 했다.[122] 고구려를 정신적으로나 영토적으로나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추진된 북진 정책, 서경 중시, 강동6주 획득, 여진 정벌, 요동 정벌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고구려를 자처하고 멸망 이후에도 이백여년 동안 부흥 운동을 전개한 발해 만큼이나 고려도 끈질기도록 선조들의 유산을 되찾고자 하였다. 또한 고구려가 독자적인 천하관을 구축해 주변국들을 복속했듯이, 고려도 이를 그대로 답습해 전성기 시절 요나라북송을 상대로 여유롭고 자신만만한 외교 정책을 취하는 동시에 탐라국, 여진족 부족들, 일본계 호족들 등을 밑으로 두어 조공을 받는 해동천하를 일구었다. 고려의 사신들이 북송에서 행패를 부리거나 궐에서 요나라 사신을 모욕해도 두 강대국들이 고려를 어찌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북송의 유명한 시인 소식은 아예 고려인들을 '고구려인 도적'이라는 뜻의 맥적이라 깐 적이 있다. 북송을 멸망시키고 화북 일대를 호령하던 여진족금나라도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인식했으며 고려로부터 조공을 받는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와는 최대한 충돌을 피하려 하였을 정도로 고려를 경계하였다.[123] 발해 유민들이 고려 사회의 핵심 구성원으로 자리잡았음과는 별개로 어디까지나 주체인 고려의 건국 세력, 즉 신라 출신의 고구려인들에게 합류하는 형식이었다.[124] 혈연 및 정신적인 계승의식은 차치하고서 논하자면, 오늘날 한민족의 전통문화 가운데 전해지는 것들로 상당수는 고구려에서 유래하였다. 김치, 불고기, 젓갈, 된장 등의 식문화가, 온돌, 치성 등의 건축 문화가, 한복 등의 의복 문화가 고구려에서 시작되었다. 악기로는 대표적으로 대가야가야금과 함께 보덕국의 고구려인들을 통해서 전해진 거문고가 있으며, 무형(無形) 문화로는 한때 고려 시대 때 무신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한 수박의 후신으로 씨름 등이 전해진다. 언어의 경우 이병도와 이기문의 학설을 주류로 취급하는 한국의 학계에서는 현대 한국어신라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주장이 여전히 강하지만, 알렉산더 보빈이나 제임스 웅거 같은 해외의 저명한 언어학자들이 논증한 바로 신라어가 아닌 고구려어가 한국어의 뿌리라는 주장이 2013년부터 유력시된다.[125] 국내에서는 민족주의 등의 영향으로 여전히 반도 일본어설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적잖은 상황이기도 하다. 반도 일본어설은 한반도를 원향(原鄕)으로 삼던 고대의 일본어족고조선부여에서 남하한 고대 한국어족에 의해서 일본 열도로 밀려난 것을 골자로 한다.[126] 여담으로 알다시피 국내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한(三韓)을 모두 이었다고 해서 정한 대한(大韓)이라는 명칭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사람을 가리킬 때 한국인(韓國人)이라고 부르지만, 애초 해외에서의 한민족의 명칭은 신라인(Sillan)도, 백제인(Baekjean)도 아닌 고려인(Korean), 즉 고구려인(高句麗人/高麗人)이다.[127] 주로 속말말갈, 백산말갈 출신 등. 이들은 '퉁구스계'가 아니라 소위 '예맥계 말갈'이다.[128] 대연림처럼 발해 부흥운동을 전개한 유민들.[129] 고모한, 고청명, 곽약사처럼 관직을 두루 거치며 자리잡은 유민들.[130] 금나라에 합류한 발해인들의 경우, 금나라 황제에게 시집가 황실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금나라, 더 나아가 중국사 역사상 최악의 폭군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해릉양왕의 어머니는 발해 왕족인 대씨(大氏)였으며, 또한 금나라 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평가받는 금나라 세종도 어머니가 발해인 추와지(雛訛只)의 딸로 발해계 혈통이었다.[131] 당시 고려는 발해인들의 인심을 얻고 반(反)거란 의식을 고취시기 위해서 거란의 사신들을 유배보내고 만부교에서 낙타들을 굶겨죽인 적이 있었다. 만부교 사건 문서로.[132] 상술했다시피 고구려계라는 의식이 강했던 초기 고려인들은 발해인들을 동족으로 여겼던만큼 가 고려인 이상 따로 발해 출신으로 적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기본적인 예시가 유충정(劉忠正)이다. 발해 유민으로서 국내(고려)에서 나고 자란 것으로 추정되는 고영기(高英起), 고적여(高積餘), 양규(楊奎), 지채문(智蔡文) 등과 달리, 유충정은 사료에서 발해 출신이라고 따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시기상 유충정 혹은 그의 선대가 당시 발해로 여겨지던 정안국에서 979년 고려로 망명한 수만명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고려에서 이름을 전한 발해계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그들이 고려에서 벼슬을 하면서 고위 관직을 신라계 • 백제계와 대등한 조건으로 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처우와 조치들은 고려인들이 한국어족 계열의 탐라인을 여겼던 방식과는 확실히 대조되는 것들이다. 1105년 숙종 시기, 탐라군(耽羅郡)으로 개편되기 전까지 탐라인들은 발해인과는 달리 고려에서 관직을 얻기 위해 외국인들만이 응시하는 빈공과를 거쳐야 했다. 설령 빈공과를 통과해 중용되었어도 태자 고말로의 아들로 전해지는 고유의 사례처럼 탐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간관직을 겸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고유는 심지어 한낱 속국에 불과할지라도 엄연히 자견왕의 혈통을 잇는 왕족 지위에 탐라인 최초로 관직을 얻은 인재였음에도 말이다. 고유가 탐라인 최초로 임용된 1057년 이전에 등장하는 고씨들은 사실상 고구려계 • 발해계로 보아도 무방하다.[133] 934년 한해에 귀부한 세자 대광현의 무리만 해도 그 규모가 수만이 아니라 수만 호(戶)였다.[134] 정몽주의 시(詩)인 발해고성(渤海古城)에서도 발해 유민들의 귀부를 언급하고 있다. 시는 다음과 같다.
'渤海昔爲國, 於焉遺址存, 唐家許相襲, 遼氏肆幷呑, 附我全臣庶, 于今有子孫, 遺民那解此, 嘆息住歸軒.'
'먼 옛날 발해가 세워졌던 곳. 아직도 그 자취가 남아있구나. 에선 왕위 계승 허용했는데, 요것들이 함부로 병탄하였네. 우리의 신하와 백성이 되어, 여지껏 그 자손들이 이어지고 있거늘. (옛 발해 땅에) 남은 백성들은 이 사실을 어찌 알리오? 탄식하며 수레를 멈춰보노라.'
[135] 고려에 귀부했다가 죄를 지어 다시 거란으로 도망친 고모한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고모한의 출신지인 요동성부터 발해의 수도였던 홀한성(忽汗城)에 이르기까지 발해 유민들의 귀부는 소수의 거란군이 점유한 일부 지역까지 모두 포함해 일어나고 있었던 전국적인 현상이었다.[136] 대표적으로 고려 목종 대의 신료였던 유충정(劉忠正), 여요전쟁 당시 맹활약한 대도수(大道秀), 대회덕(大懷德), 고적여(高積餘) 등이 있었다. 무신정권 때는 권력자이자 간신배로 이름을 남긴 대집성이, 여몽전쟁 때는 고려군의 군관으로 활약한 대금취(大金就) 등이 전해지고 있다.[137] 각자 사병들을 거느리던 호족들이 난립하던 당시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오로지 왕건 본인에게만, 즉 고려 왕실에게만 직속으로 신속된 발해 유민들이라는 기반은 실로 엄청났을 것이다.[138] 서경 일대와 그 이북인 강동 6주 등.[139] 임진강을 기점으로 이북인 경기도 북부와 황해도, 그리고 평안남도 일대.[140] 특히 구 후백제 영토.[141] 그러나 건국 주체(고구려인)와 이념(고구려 계승), 그리고 역사적 연고권(패서평양성)이 분명했던 고려의 정통성과 연속성 덕분에 온전히 한국사의 영역으로 인정받는 고구려와 달리, 발해는 건국 주체부터 속말말갈인지 고구려인인지에 대한 학술적 논쟁부터 시작해서 예맥계인 고구려인과 숙신계인 말갈족의 인구 구성에 대한 토론이 결론나지 않아 국내외에서 순전히 한국사로서만 취급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점을 이용해서 중국인들의 넷상에서의 역사왜곡이 가장 빈번하기도 하다.[142] 하지만 모든 걸 떠나서 발해는 고구려계가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인 주도권을 쥔 지배계층으로서 고구려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이끌어간 나라였다. 속일본기의 여러 단편적인 기록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발해에서 발해인(예맥계)과 말갈인(숙신계)이 따로 구분됐다는 것이다. 나아가 발해인들의 통역을 맡았던 이들이 신라학어(新羅學語)라는 역관들이었음을 보면, 적어도 말갈인이 아닌 발해인들은 신라인들과 말이 통하는 한국어족 집단이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발해가 멸망하고 나서 곧바로 지배층의 다수를 포함한 인구의 상당수가 고구려계 국가인 고려에 귀부한 점, 고려왕건이 이들을 친척의 나라 혹은 혼인한 나라로 여겼다는 점, 고려가 거란으로부터 발해의 말왕(末王)이었던 대인선을 구출하기 위해 후당측에 협공을 제의한 점으로 미루어보면 고려인과 발해인은 같은 고구려계로서의 동류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고구려계만의 영향력을 앞세울 수도 없는 것이, 발해에서는 인구의 상당을 말갈족도 차지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본의 고려악(高麗樂)에 포함된 발해 음악의 제목도 다름아닌 신마카(新靺鞨)다. 이는 발해의 건국세력이 비단 고구려계뿐만 아니라 고구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향유한 속말말갈백산말갈도 포함되어서 그런 것도 있다.[143] 오늘날 전해지는 나말여초 대의 성씨들만 보아도 대씨(大氏) 외에도 사료상 신라에는 없었고 발해에만 있었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는 지씨(智氏), 곽씨(郭氏), 장씨(張氏), 양씨(楊氏), 기씨(奇氏)(이쪽의 경우 1033년 11월 발해인 기질화(奇叱火) 등의 내투를 근거로 하고 있는데 기씨는 이미 후삼국시대 고려에 속한 호족으로 여러 명이 등장한다. 奇라는 한자의 단순한 음가상 고유어나 말갈식 이름을 음차하다 보니 우연히 그 한자가 쓰인 것일 수도 있고 발해에도 이전부터 기씨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나타내는 걸 수도 있다), 오씨(吳氏) 등 여러 성씨들, 하물며 뿌리가 중국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성본(性本)들이 발해계로 추측되기도 한다. 이씨(李氏)와 고씨(高氏)의 경우 일부 본관들이 정황상 발해인들에게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현실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오늘날 남한의 1만 태씨(太氏)들만이 발해의 후손인 것은 실상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건 당연히 가장 수가 적었을 왕족만 1만이 넘는다는 걸 나타낸다.[144] 연남생의 묘지명만 봐도 아무리 배신했다지만 본인은 고구려인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지만 그의 증손자인 연비의 묘지명에는 스스로 경조 만년인(京兆萬年人)이라고 썼을 정도로 세대가 지나면서 차차 동화되는 정황이 나타난다.[145] 자치통감 기준으로 최소 28,200여 호(戶).[146] 중국인들이 활동하는 영문 위키백과바이두에서는 약 40만의 고구려 유민들이 강제이주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근거가 없는 낭설로,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자주 써먹는 역사왜곡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이들은 고구려안동도호부의 영문 항목에서 약 78,000여 호(戶)가 끌려갔다고 하는 등 중국인 학자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인용하면서 크게 문제시되고 있다. 다만 상당수의 고구려 유민들이 당나라로 자의든 타의든 유입된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대개는 유력한 민호 출신들이었는데,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왕실을 비롯해 지배층의 상당수가 청나라로 끌려간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조선의 경우에는 지배층 한정으로 본국으로 거의 대부분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물론 고구려도 걸걸중상이나 대조영의 사례처럼 당나라를 탈출한 상당수의 고구려인들이 말갈이나 신라로 피신했지만 조선과는 달리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인들 모두가 고토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147] 당나라의 문인인 장작(張鷟)이 지은 조야첨재(朝野僉載)에는 평양성 출신의 절세미녀로 당나라로 끌려가 중서사인(中書舍人) 곽정일(郭正一)의 종이 된 옥소(玉素)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녀는 자신을 학대하던 곽정일의 독살을 시도하고 그의 전택(田宅)을 벗어나, 연인으로 추정되는 무명의 고구려인, 그리고 그들에게 협력한 착마노(捉馬奴)라는 곽정일의 노비(본명이 아니라 마굿간지기라는 뜻)와 함께 탈출하려다가 발각되어 나란히 참수당했다고 한다.[148] 국내성, 평양성, 한성.[149] 사실상의 수도권.[150] 다른 게 아니라 서해의 섬에 피신해 있던 안승이 부흥군의 지도자로 추대되어 육지로 돌아온 뒤 전쟁 중 지나가면서 (아마도 그가 나고 살았을) 평양성 일대를 보고 폐허가 되고 사람이 얼마 안 남았다고 슬퍼한 기록이 적혀있다. 이는 안동도호부가 요동으로 후퇴하기 전 시점으로 나당전쟁 이전에 고구려의 각 방어선이 무너지며 전황이 악화되자 이미 상당한 고구려인들이 이탈했던 것으로 추정된다.[151] 말갈로 탈출한 이들은 발해에 합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152] 이성계도 출전했던 공민왕제1차 요동정벌 당시 고려군에게 귀부해 고국으로 다시 돌아간 1만여 호(戶)를 제외하면 사실상 나머지 전부라고 보아도 좋다.[153] 천막 만여 개의 규모.[154] 다만 이 정체성은 고구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아니라 고구려인 선조를 두었음을 인식하고 그들을 기린다는 의식에 가까운 것이다. 고구려인 선조들을 두었고 그들의 혈연적, 문화적, 의식적 유산들을 민족적인 차원에서 계승하는 오늘날의 한국인들과는 결이 180도 다르다.[155] 몇몇 진짜(상당부분은 중화사상으로 인한 사칭이고 한국 토성(土姓)이지만 일부분은 진짜 중국에서 온 조상을 두고 있다) 중국계 본관 성씨의 한국인들이 한반도에 정착한 옛 중국계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그들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여기지 않음과 같은 맥락이다.[156] 백제부흥운동의 수뇌부. 다만 멸망을 전후로 왜국에 망명한 백제인들은 얼마 안 되며 이전부터 교류나 이주 목적으로 왜국에 정착한 백제인들의 수가 더 많다.[157] 고구려의 신라 구원신라의 침공을 계기로 왜국으로 대거 망명한 가야인들. 가장 대규모로 이주했던 경우로 추정된다.[158] 같은 이유로 한반도 북부, 만주 지역에 비중이 큰 고대 왕조는 북한의 역사로, 남부 지역에 비중이 큰 고대 왕조는 남한의 역사로 인지하는 경우도 많다. 요컨대 고대에 별개의 국가였던 북부 왕조와 남부 왕조가 고려시대부터 하나가 되어 통일을 유지하다가 냉전 이후 다시 분리됐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북한인과 남한인이 서로를 다른 민족으로 인지하지 않고 그저 이념과 사상, 정치적 이해에 따라 분리됐음을 인지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성급한 관점일 수도 있다. 애당초 두 국가 전부 헌법상으로 상대국은 국가가 아니라 영토를 강제 점유 중인 괴뢰 세력이며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북한이 정통성이 있든 남한이 정통성이 있든 한반도의 역사는 남북 구분 없이 한민족의 역사이다.[159] 사학계에선 직업군인으로 본다. 고구려군 항목 참조.[160] 국동대혈이라는 것으로, 국사편찬위 홈페이지에 정보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수험생들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혈'이라 언급되기도 하며, 이 또한 고구려를 가리키는 키워드다.[161] 도올 김용옥 교수처럼 동양 철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유교를 비롯한 동양 철학을 굉장히 낮게 평가하고, 민족민족주의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인물이다.[162] 고구려의 후계 국가인 발해의 연도를 넣으면 서기 10세기 초반, 그래도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보다는 훨씬 오래 전이다.[163] 출처: 《르네상스의 어둠》,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273~274쪽[164] 사실 이밖에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들이 많았는데, 로마가 외국인들을 개처럼 멸시해서 국경 밖으로 쫓아내는 배타적인 태도 때문에 망했다는 황당한 내용을 버젓이 집어넣기도 했다.# 서로마의 역사까지만 보아도 1,200년, 동로마까지 합치면 무려 2,000년 동안 존속했던 로마가 외국인들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등용하고 받아들였는지를 감안한다면, 세계사에 너무나 무지한 소리다.[165] 교명이 고구려대학교였던 시절이 있다.



[166] 이것과 얽힌 웃픈 사연이 바로 임진왜란 초반에 있었는데 조선이 1달만에 자신들의 수도인 한양을 빼앗기는 등 왜군의 북상 속도가 너무 빠르자 명나라는 '고구려의 후예가 이렇게 약할 리가? 왜군이랑 짜고 우릴 치려는 거 아닌가?'라는 의심을 품고, 최세신(崔世臣)과 임세록(林世祿)을 파견하여 전황을 파악하게 한다.